우리는 개벽을 집행하고 미래를 열어갈 일꾼들 | 사천벌용 오정란

[상생 인터뷰]

[들어가는글]


도문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 성직자 일꾼들을 만나 그들의 철학과 깨달음, 구도의 여정을 공유합니다. 이번 달은 사천벌용도장 오정란 포정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상제님 진리를 만나 대학교 동아리와 도장을 개창한 과정,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진리와 조직 체계를 잡고 난관을 헤치며 나아갔던 여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담담히 신앙을 돌아보며 느낀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일꾼의 심법과 근기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Q 오랜만에 꺼내 본 일기가 얘기의 첫 소재네요. 거기에는 어떤 게 있었나요?



신앙 초기에 썼던 일기장을 오랜만에 꺼내 봤습니다. 여기저기 넘기며 살펴봤더니 제가 좌우명같이 썼던 말들이 있더군요. 그중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말이 있었고 또 ‘초지일관初志一貫’, 말 그대로 처음 마음먹었던 일들을 끝까지 해낸다는 그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제가 신앙 초기 시절 일심一心에 대해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일심이란 무엇이고, 어디까지가 일심이냐에 대해 몇 년을 고심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어쩌면 오늘 제가 나누는 얘기의 주제도 일꾼의 일심과 관련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Q 진리를 만난 계기는요?



저는 40여 년 전인 1984년, 대학 2학년 겨울 방학인 1월 말쯤에 신민식 수호사님을 통해 상제님 진리를 만났습니다. 경희대학교 앞 어느 찻집에서였는데요. 첫 만남 때 탁자에다 무슨 책인지 모르지만 한 면을 딱 펼쳐 놓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했고, 또 중간중간 제가 하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헤어질 때 너무나 신기한 그 책을 좀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다음번에 만날 때 꼭 다 보고 갖다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제목도 안 보고 빌려 왔어요.

집에 가서 책을 펼쳐 보니까 『증산교의 진리』(지금의 『증산도의 진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 이게 종교였어?’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동양철학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이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교회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죠. 거기다 목차를 딱 보니까 2장에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라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절대자는 계시지만, 하나님은 교회의 전유물이다.’ 이렇게 정의를 하고 있었던 사람이라 하나님이라는 그 말이, 그것도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란 말이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 책을 바로 덮어 버리고 읽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유학을 준비하느라, 겨울 방학이었지만 학교 중앙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전공과목에 전념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공부하면서 하루 이틀이 지나는데 자꾸 빌려 온 책 생각이 나는 거예요. 다음번에 만났을 때 반드시 다 읽고 가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3일째 되는 날부터 빌려 온 진리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진리 책이 쉽게 넘어가는 책이 아니잖아요. 이후 만날 약속을 잡고 책을 돌려드리러 갔습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이 남아서 기다리는 동안 저는 어려운 한자, 의문이 드는 점 등을 다 체크하였고 그렇게 정리를 하다 보니 질문이 많았어요. 그날 만남에서 그러한 의문들을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어느덧 저녁 때가 됐습니다. 마침 그날은 수요일이었는데, 연관된 모임이 있으니까 가자고 권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여 도장에 처음 방문하였습니다.


Q 도장에 방문한 첫 느낌과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그때는 도장에서 향을 피우고 수행을 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도장 문을 여는데 향 냄새가 너무 좋게 다가오는 거예요. 게다가 주문 수행에 들어갔을 때 ‘훔치~’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훔’은 분명히 제가 현실적으로 처음 듣는 소리였거든요. 그런데 머릿속으로는 많이 들어 보고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 거죠.

그리고 치성 때 공지를 듣다 보니 얼마 뒤 대전에서 마지막으로 제3차 대학생 연수회가 있으니까 가자고 하는 거예요. 그때 대학생들이 전국에 굉장히 많았고 서클(동아리)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저는 아직 증산도가 뭐고 진리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이상하게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된다. 가서 들어 보고 아니면 왜 아닌지 이걸 얘기해 줘야겠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동행 허락을 하고 대전에 가게 된 것입니다.


Q 그때 교육을 받으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나요?



당시 3박 4일 동안 굉장히 많은 교육들이 진행됐습니다. 마지막 날 일정에 태상종도사님 말씀 시간이 있었어요. 말씀을 들으면서 쭉 계산을 해 보니까 한평생을 오직 한길로만 상제님 일을 해 오신 거예요. 그때 저는 마음속으로 ‘저런 분이라면 내가 믿고 따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부터는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의 도훈을 늘 받들면서 제가 이 진리를 깨쳐 나가고, 이 도를 닦는 데에 쾌감을 느낄 정도로 의식이 열려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신앙관이 자연스럽게 잡혔고, 드디어 도기 114년, 1984년 양력 4월 22일, 음력 3월 22일에 입도를 하였습니다.

Q 그렇다면 언제 책임자의 길을 걷게 되었나요?



당시 저는 신림동에 거주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관악도장 소속이었습니다. 그때는 지금의 보직 체계와 달라서, 책임자는 교정님이셨고 포감이라든가 이런 게 아니라 교령이라는 보직이 있었어요. 저는 여성부 교령을 하면서 도장 상근도 하는 핵심 일꾼으로 신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장 교정님이 추진하시던 정책이 새로운 도장 개창이었어요. 그 방침에 따라 여성부 교령인 저는 남성부 교령(지금의 남편)과 함께 도장 개창을 하기 위해서 활동을 같이 하고 결혼도 하면서, 실제로 노량진도장 개창을 이뤄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전국 도장의 도정에도 큰 변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남편 고향인 함양으로 내려왔습니다. 처음에는 이곳이 도생 수도 많고 운영이 잘되던 도장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점점 도생도 줄고 책임자도 없어지는 소형 도장이 되고 말았어요. 그러다 보니 당시에 포감을 하고 있었던 제가 집정 일과 함께 묵시적으로 책임자도 하면서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돈도 벌고 아이들도 키워야 해서 한 20년 동안 워킹맘으로 일을 하며 조용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군대에 가게 됐을 때, 다시 상제님 일을 하기 위해서 나서게 된 거죠.

마침 그 당시 종도사님께서 예비성직자 제도를 만드셨고 제가 1기로 교육에 참여하였습니다. 도기 147년(2017년) 11월 6일에 예비성직자 1기 교육이 8주 동안 진행이 됐어요. 12월 30일에 교육을 수료한 후 종도사님의 은혜로 사천벌용도장 책임자로 명을 받아서 지금 상제님 사업에 6년째 동참하고 있습니다.


Q 도무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도기 148년 1월 16일, 2018년 겨울이 제가 사천벌용도장에 착임을 한 날입니다. 도장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도무일지를 쓴 거예요. 지금 세 번째 쓰고 있는데 요즘은 정말 중요한 것만 간단히 쓰고 있거든요. 그래도 한번씩 펼쳐 보면 그때그때의 일들이 생각나면서 다시 각성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직자로 일하는 데 뜻을 둔 분들이라면 첫 번째로 이런 일지나 일기를 꼭 쓰시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Q 도장 성장의 출발이 기도였다구요?



사천벌용도장은 그 당시 규모가 아주 작은 도장이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간부가 한 명도 없어서 제가 본부에 오거나 자리를 비우는 상황이 있을 때 도장 운영을 맡길 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도장에 부임하고 처음 한 일은 불필요하게 쌓여 있거나 방치된 것들을 청소하는 거였습니다. 그런 걸 모두 없애고 이불도 다 버리고 도장 성전에 묵어 있는 위패들도 정리했어요. 그리고 일주일 동안은 도장 도생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인사를 하고 도장 운영을 위한 이런저런 준비도 하면서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정말 간절한 기도가 나오는 겁니다. “꼭 일꾼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이런 기도를 반복해서 매일 하게 된 거죠.


그런데 이 기도를 정말 들어주시더군요. 그달 말에 『환단고기』를 읽고 전화를 걸어 온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작정을 하고 이 사람을 일꾼으로 양육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21일 동안 정성 수행을 하고 난 다음, 두 달 간 하루에 두 시간씩 진리 교육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분이 입도를 하고 사선령 천도식을 올렸으며, 신입도생 교육을 비롯해 본부도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 행사에 다 참여하면서 일꾼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분이 지금은 본부 영상디자인팀에 발령받아 봉직하고 있는 정찬석 도생입니다. 이분은 그 와중에 딸을 입도시키고 1구역 포감을 맡기면서 최단 시간에 간부로 양성되었는데, 명실상부하게 도장의 많은 일을 저와 함께 하면서 도장에 활력을 붙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말에도 가족 포교로 다른 한 분이 더 입도가 되었고요.

이렇게 저희 도장은 6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입도가 이어졌습니다. 조직 편제도 4개 구역으로 발전이 되면서 체계가 잡혀갔고 참여를 안 하던 도생들도 복귀가 되면서 조금씩 도장이 가동이 되고 활력이 붙기 시작했어요. 기존 도생도 제자리를 찾으면서 지금의 사천벌용도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증산도 신앙이나 도장 운영은 마라톤과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때 꼭 필요한 게 마인드 컨트롤 같습니다.

Q 구체적인 자기 관리 방법이 있다면?



예를 들어 내가 스스로 진리를 아는 것과 진리를 다른 이에게 가르쳐 주는 건 굉장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구요. 완벽히 준비가 돼서 책임자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뜨거운 여름이나 추운 한겨울에 활동을 하기 어려울 때면 도서관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보고 싶은 책도 보고 진리 교육 체계를 잡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가 참 홀가분하고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그렇게 하나씩 필요한 부분을 갖춰 가는 준비를 했습니다. PPT 제작이라든가 줌(ZOOM) 교육, 영상 편집 등도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지 않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걸 잘하시는 수호사님이나 포정님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일단 배웠습니다.


우리가 진리 교육 체계를 잡고 준비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데, 정작 교육의 중심인 책임자가 없거나 무너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책임자는 자기 관리와 더불어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개벽을 집행하고 미래를 열어 나갈 일꾼들이므로 장기전으로 가야 합니다. 때가 곧 온다고 하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어려움과 고난이 있어요. 그때마다 지혜롭게 극복하고 이겨 내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도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 모두는 일심으로 이 어려운 난국을 헤쳐 나가며 천지일월 사체 하나님과 모든 망량님들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인류의 선두 주자들입니다. 또 성직자로 봉직을 한다면 지도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혈식천추 도덕군자로 추앙될 위치에 있는 분들입니다. 태모님께서는 “포덕천하 광제창생하자니까 전하지, 알고 보면 전하기가 아까우니라. 앞으로 좋은 세상 나오리니 너희들은 좋은 때를 타고 났느니라.”(도전道典 11:55:4~5)라고 하셨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태상종도사님께서는 “그 살기 좋은 세상 지상선경 세계에서 5만 년 동안 자자손손 많은 후손들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복은 우주에서 가장 큰 스승이자 주군이신 종도사님과 사모님을 직접 모시면서 가르침을 받들고 있다는 점이며, 우주 역사에 참여하며 함께 나아가는 우리는 행운아라는 사실입니다. 129,600년에 오직 한 번 있는 귀하고 복된 시간대에 태어나서 5만 년 비전이 있는 큰일에 동참하고 있으니, 정말 가슴이 벅차고 심장이 뛰는 그런 일 아닙니까?

저와 일꾼들 모두가 박차고 일어나서 그동안 고이 접어 감춰 두었던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훨훨 날아 보면 좋겠습니다. ‘다시 없는 우주사적인 행운이요 기회다.’라고 생각하며 천하사 일꾼의 길을 향해 같이 달려가 봅시다.


[마치며]



불입호혈不入虎穴 부득호자不得虎子, 위험하더라도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도 잡을 수 없으니,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적극성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진리를 처음 만난 과정에서 직접 부딪히며 과감히 뛰어들어 서클과 도장을 개창하였고, 지금은 책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오정란 포정의 이야기를 통해 하면 반드시 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합니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시도해 보지 못한 일이 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이 가장 도전하기 좋은 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