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 증산도는 어떤 맥脈으로 이어져 왔나요?
[생활 속에서 배우는 외국어]
증산도는 어떤 맥脈으로 이어져 왔나요?
甑山道はどのような脈筋で受け継がれてきましたか。
[증산도 백문백답]
太母樣が道門を開いて以来、甑山道は道門の名前を普天敎と言い、布教に出向きました。
태모님가 도-몽-오 히라이떼 이라이, 증산도와 도-몽-노 나마에오 보천교또 이-, 후꾜-니 데무끼마시따
태모님이 도문을 여신 뒤, 증산도는 도문의 이름을 보천교普天敎라 하고 포교에 나섰습니다.
普天敎は、日帝(日本支配下)の厳しい監視の中においてさえも爆発的に道勢を拡大しました。
보천교와 닛-테-(니혼-시하이까)노 키비시- 칸-시노 나까니 오이떼 사에모, 바꾸하쯔테끼니 도-세-오 카꾸다이 시마시따
보천교는 일제의 감시가 엄중하던 어려운 상황에도 폭발적인 도세道勢 확산을 이루었습니다.
朝鮮の人口が二千万人にもならなかった当時において信徒数が七百万人にもなりました。
쵸-센-노 징-꼬-가 니센-만-닝-니모 나라나깟따 토-지니 오이떼, 신-또 스-가 나나햐꾸만-닝-니모 나리마시따
조선 인구가 2천만이 안 되던 당시 신도가 7백만에 달해,
彼らは巨大な信仰決死隊でおり、反日独立運動の拠点にもなりました。
카레라와 쿄다이나 싱-꼬-켓-신-따이데 오리, 한-니찌 도꾸리쯔 운-도-노 쿄뗀-니모 나리마시따
거대한 신앙 결사체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しかし、日帝の残虐非道な弾圧のため、普天敎は水面下に潜ります。
시까시, 닛테-노 잔-갸꾸 히도-나 당-아쯔노 타메, 보천교와 스이멘-까니 모구리마스
그러나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지면서, 보천교는 지하로 숨어들었습니다.
その後、安雲山 太上宗道師樣の熱い精誠(血心)により、戦後再びの復興を成し,
소노 고, 안운산 태상종도사님노 아쯔이 세-세-(혈심)니 요리, 셍고 후따타비 훗꼬-오 나시,
8.15 해방 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혈심血心으로 두 번째 부흥을 이루어
数十万の信徒が入道しました。
스-쥬-만-노 신-또가 뉴-도-시마시따
다시 수십만 신도가 입도하면서 신앙의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ところが、これもまた朝鮮戦争の勃発とともに霧散されてしまいます。
도꼬로가, 고레모 마따 쵸-센-센-소-노 봇-빠쯔또 토모니 무산-사레떼 시마이마스
그런데 이 또한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무산됐습니다.
この後、甑山道は長い休憩期に入ります。
고노 아또, 증산도와 큐-께-끼니 하이리마스
이런 시대 상황이 이어지면서 기나긴 휴게기休憩期를 거쳐야 했습니다.
「三遷であればこそ、私の仕事が成し遂げられる」とおっしゃった上帝樣の御言葉通り、
「산-센-데 아레바 꼬소, 와따시노 시고또가 나시토게라레루」또 옷샷따 상제님노 오코또바 도-리
그러나 “삼천三遷(세 번 바뀜)이라야 내 일이 이루어지느니라.”라는 상제님 말씀대로,
1970年代に入り、安雲山太上宗道師樣と安耕田宗道師樣が再び開拓に出向きました。
셍-큐-햐꾸 나나쥬-넨-니 하이리, 안운산 태상종도사님또 안경전 종도사님가 후따타비 카이따꾸니 데무끼마시따
1970년대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과 안경전 종도사님이 거듭 개척에 나섰습니다.
これより、三度目の復興を成して今日に至ります。
고레요리 산-도메노 훗꼬-오 나시떼 콘-니찌니 이따리마스
이로써 세 번째 부흥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핵심어휘
- 開拓の歴史 [카이따꾸노 레끼시] 개척의 역사- 爆発的な道門の拡大 [바꾸하쯔테끼나 도-몽-노 카꾸다이] 폭발적인 도문의 확산
- 残虐非道な弾圧 [잔-갸꾸 히도-나 당-아쯔] 잔학무도한 탄압
- 朝鮮戦争の勃発 [쵸-센-센-소-노 봇-빠쯔] 한국전쟁 발발
- 長い休憩期 [나가이 큐-께-끼] 긴 휴게기
- 三遷であればこそ[산-센-데 아레바 꼬소] 삼천이라야
- 三度目の復興 [산-도메노 훗꼬-] 세 번째 부흥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