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 한강의 작품 세계

[이 책만은 꼭]

대한민국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


한강의 작품 세계



*증산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는 문자만으로도 능히 모든 사물을 기록할지니 앞으로는 쉽고 간단한 문자로 천하에 통용되도록 하리라.” 하시고 “장차 우리나라 말과 글을 세계 사람이 배워 가리라.” 하시니라. …… 또 말씀하시기를 “우리나라 문명을 세계에서 배워 가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5:11:2~3,6)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富力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죽음이 실려 나가고 그러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무슨 잔치를 하고 즐거울까요?…… 스웨덴 한림원에서 상을 준 것은 즐기라고 하는 게 아니라 더 냉철해지라고 한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자랐다. 나는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뉴스가 한국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다.”

2024년 10월 10일, 한강韓江 작가는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부친인 한승원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친인 임강오 님은 이날 새벽 자택 앞에 태극기를 걸어 놓았다.



이제 노벨상 수상작을 원서로 읽을 수 있어



이런 날이 올 줄이야. 2024년 10월 9일 한글날을 조촐하게 맞이하고 난 직후 우리는 정말 놀랍고 충격적이며 기쁜 소식에 환호했다. 작가 한강韓江의 노벨상 수상이 발표되면서 대한민국이 들썩인 것이다. 2017년 이후 노벨 문학상(Nobel Prize in Literature)은 해를 바꿔서 남녀에게 수여되어 이번 해는 여성이 받을 것이라는 예측은 있었다. 하지만 설마 우리 대한민국 작가가 수상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수상자인 한강 작가도 아들과 저녁 식사 후 차를 한 잔 하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중이라 수상 사실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문학은 그 우수성에 비해 번역 등의 문제로 세계에 그 진가가 알려지지 못했다. 그동안 K-Pop, 드라마, 영화, 음식, 한글 등 우리의 문화가 전 세계로 알려지긴 했었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의 축적된 문화의 힘에 전 세계가 공감하고 제대로 평가하기 시작했기에 이번 수상은 받아야 될 사람이 제대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소설가 김중혁은 이런 말을 했다. “그 나라의 표정을 읽고 싶으면 음악을 들으면 되고 그 나라의 생각을 보고 싶으면 영화를 보면 되는데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싶으면 소설을 읽어라.” 이 말에 따르면 전 세계인들은 K-Pop으로 대한의 표정을 읽었고, 영화 〈기생충〉으로 대한의 생각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한강의 작품을 통해서 대한인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2024년 노벨 문학상을 번역 없이 원서 그대로, 전권全卷을 다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지은이 한강韓江



한강韓江은 시인이고 소설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이며,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이후 두 번째 수상자이다. 아시아 최초의 맨부커 국제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수상자이기도 하다.

1970년 11월 27일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나왔다. 아버지 한승원은 저명한 소설가이고 오빠인 한동림(한규호) 역시 소설가로, 집안 전체가 문학가 출신이다. 글쓰기와 함께 미술과 음악(‘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등 직접 작곡, 작사, 노래까지 한 곡이 있다)에도 심취했으며, 이는 그의 문학 작품 전반에 반영되어 있다.

1993년 계간지 『문학과 사회』(“Literature and Society”)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먼저 데뷔하였다. 1994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한강현韓江賢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이어 단편소설 등 여러 산문 작품을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은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2002, “Your Cold Hands”)으로, 한강이 예술에 대해 관심을 쏟은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이 소설은 실종된 조각가가 여성의 신체 석고 모형 제작에 집착하며 남긴 원고를 재현한 작품이다. 인체 해부학에 대한 집착과 페르소나와 경험 사이의 유희, 조각가의 작업에서 신체를 드러내는 것과 감추는 것 사이의 갈등이 발생한다. “삶은 심연 위에 아치형 시트를 얹은 것이고, 우리는 가면 쓴 곡예사처럼 그 위에서 살아간다.”라는 책의 마지막 문장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이런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던 작품 세계가 『채식주의자』(2007)에서는 기괴한 느낌의 소설로 변주되었다.

또한 굉장히 충격적인 문체와 화술 등이 5.18이라고 하는 역사와 만났을 때 어떻게 폭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걸작 『소년이 온다』가 2014년에 출간되었다. 이후 나온 『작별하지 않는다』(2021)와 마치 2부작처럼 연결되면서 노벨상 수상에 이르게 되었다. 노벨상이 한 작가의 특정한 책에 수여되는 게 아님에도 이번 노벨 문학상 수여 시 스웨덴 한림원의 멘트에서 『소년이 온다』를 암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에 이 두 작품이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이 된 것 같다.

등단 이후 30여 년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창작자로서 명성을 쌓아 온 한강 작가는 2005년 이상문학상(『몽고반점』), 2014년 만해문학상(『소년이 온다』), 2016년 영국 맨부커 국제상(『채식주의자』),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소년이 온다』), 2023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수상했다.

그의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은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인정하며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오는 과정이었기에 시기적으로 조금 빠른 건 사실이지만 아주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과 글의 아름다움과 섬세함과 예민함을 보여 준 그는 특유의 아름답고 쓸쓸한 느낌의 어휘를 사용하여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작품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하여 한강 작가는 ‘생생한 이미지를 구현할 단어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의 의미 세 가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담고 있는 의미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20세기 이후 태어난 작가 중 노벨 문학상 수상은 프랑스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최연소(44세)이고 그다음이 한강 작가(54세)이다. 노벨상은 작가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 세계를 평가해 상을 수여했던 까닭에 고령의 수상자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한강 작가는 10년 뒤가 더 궁금해진다.

두 번째, 한강 작가는 대한민국 노벨 문학상으로는 최초이고 아시아 지역에서도 여성으로서는 최초 수상자이다. 그동안 미국, 유럽 중심의 흐름에서 벗어나 아시아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의 문화가 주목을 받게 되었고, 특히 한류 문화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도중에 수상이 된 것이라 더 의미가 크다.

그리고 여성 작가들의 역량에 세상이 더욱 주목하게 되면서, 후천 음존陰尊 세상이 어느덧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 주는 쾌거라 할 수 있다. 한강 작가는 프랑스 콩쿠르상을 제외한 세계 3대 문학상을 모두 받았다. 참고로 전 세계에서 노벨문학상과 맨부커상을 모두 수상한 작가는 단 여덟 명뿐이다.

세 번째, 노벨상 수상은 한국 번역의 힘이다. 그동안 우리 문학이 그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문제 등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 이번에 단기간에 걸쳐서 우수한 번역가들이 나왔다. 이는 한강 작가 이후를 책임질 우수한 한국 작가(정보라, 박상영, 김초엽 등)들의 작품이 전 세계에 번역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이들의 작품을 읽는 일뿐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조력자들


이번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조력한 이들에 대해 살펴본다.

우선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를 들 수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신 번역가로 한국식 이름은 김보라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맨부커 국제상 수상에 기여하였고, 한강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Human Acts)』도 번역했다

프랑스인 번역가 피에르 비지우Pierre Bisiou 또한 중요한 조력자이다. “한강이 노벨 문학상 받을 줄 확신했어요(Il ´etait ´evident que Han Kang recevrait ce prix)!”라고 말하는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번역하며 출판까지 직접 추진해 메디치상 수상에 큰 역할을 했다.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을 쓴 한국 문학의 거장으로, 민족과 역사의식을 통해 한강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 부녀는 이상문학상을 두 대에 걸쳐 수상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의 여러 번역가들은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해 한국 문학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한국 문학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루트를 개발하였고, 다양한 번역 시스템으로 좋은 번역가들이 단기간에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자체도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하였다. 이미 전 세계는 한류 열풍에 빠져 있다. K-Pop, K-드라마, K-푸드 등 높아진 대한민국 문화의 힘이 한강 작가를 비롯한 한국 문학의 위상을 한층 더 높게 해 줌으로써 노벨상 수상에 밑거름이 되었다. 전 세계인들이 미국이나 서구 중심이 아닌 아시아로 그 눈길을 돌리게 된 데에는 대한민국 문화의 힘이 컸다. 이제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우리 문화의 힘이 더욱더 거대하게 융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강의 작품 세계


소설을 비롯한 한강의 작품은 무엇보다 직접 읽어 보는 것이 그 언어와 표현에 담긴 의미를 느끼고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우선은 여기서 언급하는 순서대로 읽어 보시기를 권하며, 이 밖에도 작가의 시적詩的 스타일이 잘 나타난 『흰』, 그리고 상실과 친밀감, 언어의 궁극적인 조건에 대한 아름다운 명상이 담긴 『희랍어 시간』도 읽어 볼 만하다. 낭송하기에도 좋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1. 『채식주의자』
표제작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불꽃」으로 이뤄진 연작소설집이다. 1부 「채식주의자」는 어릴 적의 기억으로 채식주의자가 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각으로 서술된다. 예술가 소설이라 평가받은 2부 「몽고반점」은 드물게도 심사위원 7인의 전원 일치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세 이야기의 핵심 인물은 ‘영혜’이다. 영혜는 과거의 기억과 꿈을 통해 자신이 ‘목구멍에 생명들이 걸려 남아 있어 답답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고, 육식에 대한 혐오로 시작해 생명에 대한 폭력 자체를 거부하게 되며, 마지막엔 다른 생명을 죽여야 살아갈 수 있는 동물로서의 자신을 초월하려고 한다.
『채식주의자』는 육식, 가부장제, 자본주의, 산업 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으로 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사회 공동체 안에서 일종의 규범으로 포장되어 가해지고 있는 일상적인 ‘폭력’을 개인이 저항하는 과정 속에서 미학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2. 『소년이 온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처럼. 공기 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겨져 나와, 투명한 보석들같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처럼 너는 눈을 크게 떠 본다. 좀 전에 가늘게 떴을 때보다 나무들의 윤곽이 흐릿해 보인다. 언젠가 안경을 맞춰야 하려나. 네모난 밤색 뿔테 안경을 쓴 작은형의 부루퉁한 얼굴이 떠올랐다가, 분수대 쪽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박수 소리에 묻혀 희미해진다. - 『소년이 온다』 도입부에서


*이 소설을 젊은 세대 어린 학생들이 읽어서 광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될 수 있다면 ‘아 너무 좋겠다’, 꿈같은 일이지만 …… - 지난 2020년 11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한강 작가의 말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하고 있다. 여섯 장에서 각각 여섯 명의 시선으로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1980년 광주라는 거대한 역사의 비극이 관통한 개인의 고통과 내면에 몰두한 것이 특징이다.

한강 작가 본인이 맨부커 국제상을 『채식주의자』로 수상한 뒤 『채식주의자』보다 『소년이 온다』가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밝히면서 유명해진 책이기도 하다.

『채식주의자』가 한강을 국내외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로서 부각시킨 데뷔작이라면, 『소년이 온다』는 제주 4.3 사건을 주제로 발표된 후속작 『작별하지 않는다』(2021)와 함께 한강을 202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세계 문학계의 거장으로 인정받게 만든 진정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학생 희생자였던 광주상업고등학교(현 광주동성고등학교) 1학년 문재학 군의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한다. 당시 문재학 군은 국민학교(초등학교) 동창을 계엄군의 총탄에 잃었고,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시신을 염하는 일을 맡다가 결국 계엄군의 총탄에 의해 쓰러지고 말았다. 문재학 군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우리 아들 한을 풀어 줬다.”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비록 5.18 민주화 운동 이전 서울로 상경하여 직접 사건을 겪지는 못했으나, 광주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낸 만큼 애착이 큰 작품이고, 집필 과정에서 많은 압박을 받았다고 작가는 에필로그에 서술한다. 하지만 수많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소설가 한강은 지식인으로서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작품이 평가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소설 자체는 5.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했으나 한강 작가에 따르면 2009년에 발생한 서울 용산 참사 사건이 집필하게 된 계기라고 한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다룬 에필로그에서 언급된다.

이 작품으로 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에게 “눈을 뗄 수 없는, 보편적이며 깊은 울림”(The New York Times),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다룬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설”(The Guardian),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문학평론가 신형철)이라는 찬사를 선사한 작품이다.

『소년이 온다』는 작가 한강만이 풀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1980년 5월을 새롭게 조명하며, 무고한 영혼들의 말을 대신 전하는 듯한 진심 어린 문장들로 5.18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5.18이 한낱 지나가 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어 우리는 끊임없이 이를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3.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현기영 선생의 『순이삼촌』 이후 나온 최고의 걸작이다. 『소년이 온다』에서 소년이 텅 빈 역사의 중심에서 밖으로 나와 우리와 만나는 구조라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외부에 있는 여성이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도입부를 보면 마치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처럼 다뤄지는데,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는 꿈으로 끝난다. 반면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꿈으로 시작한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화자는 그 도시가 『소년이 온다』의 그 도시가 아닌 또 다른 공간을 환기시키며 우리를 제주 4.3으로 이끌고 간다. 눈보라 치는 곳에 있는 새(말 못 하는 앵무새)에게 먹이를 주어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두 사건이 만나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한 번쯤 더 생각하게 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 전반을 다룬 이야기로 주인공을 관찰자 시점으로 사용하였다. 밀도 있는 사건 기록과 더불어 한강 특유의 신체 반응 묘사가 압도적이다. 제주도, 눈, 고통, 피, 사랑 등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이 책은 화자와 친구 인선이 사건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친척들에게 닥친 참사와 관련된 트라우마를 함께 짊어진 채 애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와 함께 이런 국가 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결코 잊을 수 없고, ‘작별’할 수 없는, 우리 모두가 기억 해야 할 일이라 말하고 있다.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 - 『작별하지 않는다』 중 -



포니정재단 시상식(2024. 10. 17)에서 밝힌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중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저는 믿고 바랍니다.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계속 써 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은 올봄부터 써 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 보고 있습니다.

저는 술을 못 마십니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습니다. 좋아했던 여행도 이제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사람입니다. 대신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읽어도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는 좋은 책들을 놓치지 않고 읽으려 시도하지만, 읽은 책들만큼이나 아직 못 읽은 책들이 함께 꽂혀 있는 저의 책장을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친구들과 웃음과 농담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담담한 일상 속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입니다. 아직 쓰지 않은 소설의 윤곽을 상상하고, 떠오르는 대로 조금 써 보기도 하고, 쓰는 분량보다 지운 분량이 많을 만큼 지우기도 하고, 제가 쓰려는 인물들을 알아 가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소설을 막상 쓰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길을 잃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아 예상치 못한 곳으로 들어설 때 스스로 놀라게도 되지만, 먼 길을 우회해 마침내 완성을 위해 나아갈 때의 기쁨은 큽니다. 저는 1994년 1월에 첫 소설을 발표했으니, 올해는 그렇게 글을 써 온 지 꼭 삼십 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상한 일은, 지난 삼십 년 동안 제가 나름으로 성실히 살아 내려 애썼던 현실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한 줌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 짧게 느껴지는 반면,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은 마치 삼십 년의 곱절은 되는 듯 길게, 전류가 흐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약 한 달 뒤에 저는 만 54세가 됩니다. 통설에 따라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입니다. 물론 70세, 8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것은 여러모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니, 일단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쓰다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 6년 동안 다른 쓰고 싶은 책들이 생각나,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세 권씩 앞에 밀려 있는 상상 속 책들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말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 보고 싶습니다.

지난 삼십 년의 시간 동안 저의 책들과 연결되어 주신 소중한 문학 독자들께, 어려움 속에서 문학 출판을 이어 가고 계시는 모든 출판계 종사자 여러분과 서점인들께, 그리고 동료, 선후배 작가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다정한 인사를 건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