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상을 바로 알게 해 준 뿌리 찾는 참진리 외 (민일진, 장진보, 이재종)
[입도수기]
내 조상을 바로 알게 해 준 뿌리 찾는 참진리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살다가, 한국에 와서 증산도를 만났습니다.
증산도 도생들은 순수하고 정감 있으며 가족 같았고, 저의 뿌리를 찾아 주는 정성스러움이 감동을 주었습니다.
여전히 증산도 신앙에 확신을 갖지 못했지만, 아내와 친한 포감님 가족의 천도식 후 나눈 도담이 크게 마음에 와닿아 입도로 이어졌습니다.
증산도 도생들은 순수하고 정감 있으며 가족 같았고, 저의 뿌리를 찾아 주는 정성스러움이 감동을 주었습니다.
여전히 증산도 신앙에 확신을 갖지 못했지만, 아내와 친한 포감님 가족의 천도식 후 나눈 도담이 크게 마음에 와닿아 입도로 이어졌습니다.
민일진(남, 58세) / 안양만안도장/ 도기 154년 음력 10월 입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아
저는 중국 요령성 환인현에서 태어난 교포입니다. 할아버지는 원래 경북에서 사셨는데 아버지가 할머니 배 속에 임신 중인 상태에서 중국으로 건너가셨다고 합니다. 저는 중국에서 나고 자라서 학교도 다녔지만 어린 시절부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았고 큰집에서 제사를 모시면 조상님을 모신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참석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어 결혼 시기가 되자 중매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부부가 함께 농사를 짓기도 하고 장사도 하며 예쁜 딸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여유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의논 끝에 한국에 가서 일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상제님과 조상님을 모신다는 증산도
한국에 와서는 여기저기 직장에 다녔고 식당에서도 일을 하였으며 횟집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아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 중국에 있던 딸이 한국으로 들어와 대학을 다니게 되었으므로 여러 여건을 감안하여 경기도 군포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아내인 이정희 도생은 식당에 일을 다니고 있었는데 평소에도 나이 40세만 넘으면 어떤 것이든 신앙을 가지겠다고 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절대 안 다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던 아내가 정말 어디를 믿고 다닌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일주일 중 수요일 저녁, 일요일 아침에 증산도 도장에 다닌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 불교는 들어 봤어도 증산도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상제님을 모시고 조상님을 모시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증산도가 생소하였던 저는 요즘 세상이 하도 뒤숭숭하니 걱정 반으로 너무 빠지지는 말고 취미 생활로만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집에서 아내는 상생방송을 가끔씩 시청하였고 제게도 지나가듯 좋은 내용이니 보라고 하여 가끔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원래 종교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친해지면 술도 한잔 같이 하며 정을 나누는 것이 삶의 낙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당신이 다니는 것을 반대는 안 하겠는데 나에게 강요하지는 말라고 하였습니다. 증산도도 종교라 생각해서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가정에서도 청수를 모셨지만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남편 잘되라고 기도해 준다는 말에 큰 반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조상 천도식에 감동을 받다
그러던 중 아내 조상님 천도식을 할 때, 조상님을 위한다고 하니 믿음이라기보다 술 한 잔 올리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도장에 참석을 해 보았습니다. 처가 조상님 천도식이라 아내는 언니, 남동생 부부, 딸, 사촌 오빠까지 다 초대하였으며, 처음 배우는 사배심고 절을 올리고 천도식 예법대로 주문도 함께 읽었습니다. 아내 집안 조상님들 천도식을 위해 많은 도생님들이 함께 오셔서 내 일처럼 도와주시고 참여해 주시는 모습에 감동도 받았습니다.
천도식을 마치고 음복을 하며 도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처음 만난 분들인데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것처럼 다들 너무나 다정히 잘 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방 친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내 이정희 도생의 구역포감님이신 홍순덕 도생님이 늘 제 아내를 친언니처럼 잘 챙겨 주시고 신앙으로 이끌어 주고 계셔서 저도 누님 동생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달리 수호사님을 비롯한 도장 도생님들에게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과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중국 교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도생님들은 정말 가족 같은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이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태을궁 행사에도 참여해 봤고, 집에 수호사님과 도생님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함께 하며 증산도 하시는 분들과 신앙을 떠나 인간적인 정을 더 쌓아 갔습니다.
나의 뿌리를 찾아 준 또 한 번의 감동
그러던 중 중국에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슬픔이 밀려왔지만 중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결국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함이 늘 마음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내 조상님 천도식 후에도 상제님 신앙이나 우리 조상님 천도식에 대한 마음은 딱히 들지 않았던 터라 아버님 천도식을 올려 드려야겠다는 마음도 처음엔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계속 신앙을 하면서 아버님 천도식을 해 드리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까지 신앙에 대한 마음이 크게 열리지 않았기에 저의 반응은 밋밋하였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아내는 아주 강력하게 말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몰라도 내 딸은 개벽기에 살려야 되니까. 당신이 민씨 종자이니 민씨 조상님 천도식은 해야 되겠다!”라고 밀어붙이는 겁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평소에 아버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는데 천도식을 올려 드리며 그 불효한 마음을 용서받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천도식을 할 마음을 먹고 수호사님과 상의하며 하나씩 준비를 해 나갔습니다.
천도식 준비를 하면서 무엇보다 큰 감동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왔기에 그동안 제대로 몰랐던 고조부님부터 윗대 조상님들의 존휘尊諱를 수호사님이 제적등본을 하나씩 떼고 확인하시며 다 찾아 주셨습니다! 아! 이래서 증산도가 뿌리를 찾는 곳이구나 하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치 상장을 받은 아이가 정말 기뻐서 그것을 들고 계속 쳐다보는 것처럼 조상님들 명단을 한참 바라보았고, 집에 잘 보관하여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알려 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천도식에 참석하려고 마음을 쓰고 있던 제가 덜컥 코로나에 걸려 천도식 참여를 못 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천도발원문도 읽어 드리려고 준비를 다 했는데 코로나로 참여를 못 하다니... 저는 마음이 너무 무겁고 안타까웠습니다. 아내가 대신 직선조 천도식을 올려 주고 저 대신 천도발원문도 읽어 드렸는데 너무 고마웠습니다. 천도식을 계기로 증산도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열리기 시작했고, 조상님을 도장에 모셔 놓았으니 도장 천도식 때나 보은치성 때는 빠짐없이 참여하여 조상님들께 잔을 한 잔 올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제님과 조상님 은혜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이후 가정에 상제님 태모님 어진을 모시고 가정치성도 함께 하였고 행사에도 아내를 따라 참석을 해 보았지만, 여전히 아직까지는 진리적이나 신앙적으로 마음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조상님에 대한 마음과 우리의 역사를 바로 찾는다는 그 의미는 좋아서 증산도가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입도를 결심하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는데, 홍 포감님 남편 공중환 도생님의 조상 천도식이었습니다. 평소에도 만나면 반갑게 맞이해 주시던 큰형님 같은 분이었는데 조상 천도식을 한다기에 당연히 참여해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천도식 후 도담을 통해 신앙의 좋은 점. 부부 신앙의 좋은 점 등을 말씀해 주시는데 크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 후 가정도방 어진을 추가하며 가정치성을 모시는 자리에서 입도식도 동시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부산 벡스코 〈개벽 문화 북콘서트〉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증산도 진리 공부가 아직은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앞으로 계속 참여하고 상생방송도 즐겨 보면서 시간 나는 대로 공부를 하여 상제님과 조상님 은혜에 보은하는 도생이 되겠습니다. 앞으로 부족하지만 아내와 함께 부부 신앙을 잘하면 딸과 사위도 시간이 지나 함께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증산도에 입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신 수호사님, 홍 포감님, 공 도생님 모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반대를 잘 참아 주고 기다려 준 아내 이정희 도생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나와 가족의 건강과 무탈함을 기도해 주는 제 아내가 아니었다면 조상님도 상제님도 제대로 찾지 못했을 겁니다. 또 도장의 다정한 형님 도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고 참여하며 보은하겠습니다!
우주의 순환 이치를 알고 진정한 삶의 해답을 찾다
사회생활을 하며 받은 스트레스로 저는 마음이 아픈 병에 걸렸습니다. 쳇바퀴 같은 인생에서 품은 수많은 의문이 늘 숙제처럼 함께하였습니다.
‘빛 치료’라는 주제로 증산도 진리를 만났습니다. 우주 일 년의 우주관 진리는 저에게 큰 놀라움과 충격을 주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모든 질문들의 대답이 『도전道典』에 있었습니다. 우주관을 통해 모든 변화 과정의 정답을 알고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느낌이었습니다.
‘빛 치료’라는 주제로 증산도 진리를 만났습니다. 우주 일 년의 우주관 진리는 저에게 큰 놀라움과 충격을 주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모든 질문들의 대답이 『도전道典』에 있었습니다. 우주관을 통해 모든 변화 과정의 정답을 알고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느낌이었습니다.
장진보(남, 36세) / 서울목동도장/ 도기 154년 음력 10월 입도
쳇바퀴 같은 인생에 의문을 품고
지금은 2024년 11월 6일 수요일 저녁 7시입니다. 저는 김제시 금산사에서 하루 묵고 있습니다. 금산사에 오기 전, 정읍시 신월리에 다녀왔습니다. 상제님께서 탄강하신 곳이 궁금했거든요. 상제님이 태어나시고 자라신 곳을 순례하고, 네거리 슈퍼에서 옥수수 카스텔라 빵과 바나나 우유를 사서 굶주린 배를 채운 뒤, 금산사로 이동했습니다. 모든 것이 신기합니다. 신실하진 않지만, 마음만은 크리스천의 사랑이라 외치고 다녔던 제가, 증산도 신앙을 하게 되다니요. 믿기지가 않습니다.
저는 서른여섯 살 된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이렇게 네 가족이 화목하게 자랐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여 미국 뉴욕에서 인턴 1년, 제약업계 대기업 회계 팀에서 총 8년 정도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회생활을 하며 받은 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이 아픈 병에 걸렸습니다.
입원하여 병을 치료하는 동안 무작정 이면지에 글을 적어 나갔습니다. 〈가끔씩 북극곰으로 변하는 너를 위해, 신경 쓰기의 달인〉이란 책을 썼습니다. ‘내가 왜 아픈가?’로부터 시작하여, ‘밥벌이는 무엇을 해야 하나?’,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들로 수백 장의 이면지를 검정 잉크로 가득 물들였습니다. 수없이 가득 채운 제 이면지 속의 마지막 질문은 이거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어떻게 되는데?”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가? 아니면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눈을 감는 것인가? 아니면, 계속 ‘쳇바퀴’ 같은 과정만 있을 것인가?”
기 치료 중 생긴 ‘빛 치료’에 대한 호기심
이런 궁금증을 안고 다시 사회생활을 하던 저는 2024년 9월 8일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몸을 풀자는 생각으로 바로 2층에 있는 ‘기 치료’ 간판이 있는 곳으로 우연히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기氣 치료 센터에는 아무도 없었고, 기다리면 누군가 오시겠지란 생각으로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벽면에는 환국, 배달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국통 맥에 대한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평소 지리와 역사를 좋아하는 저는 굉장한 흥미를 느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뒤, 조병현 포감님이 센터에 들어오셨고, 기 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몸의 막힌 곳이 뚫리면서 피멍이 들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신기했고, 처음에는 단순히 마사지라 생각했지만 치료를 받다 보니 뭔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이후 치료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조 포감님은 ‘빛 치료’를 하러 가자는 흥미로운 제안을 하셨습니다. 당시 쉬는 날이었던 저는 흔쾌히 허락하였습니다. 당시 들었던 생각은, 공원 같은 곳에 모여 태극권처럼 동작을 취하는 걸로 생각하였습니다.
우주관 공부 후 받은 큰 충격
그렇게 조병현 포감님의 손에 이끌려 증산도 서울목동도장에 방문하고, 이연주 포정님을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앓고 있는 병, 제가 가지고 있는 신념과 생각을 말씀드렸고, 포정님께서는 너무나 많은 공감을 해 주셨습니다. 따스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다음 날부터 증산도 진리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환단고기 북콘서트〉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환단고기桓檀古記』와 『도전道典』을 구입하여 독서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연주 포정님의 진리 교육을 받을 때마다 환희와 재미를 느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동일하였거든요. 특히 ‘개벽’ 이야기를 들었을 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썼던 책의 일부에 작성했던 평소 저의 생각과 개벽이 거의 같았습니다.
제가 특히 감명 깊게 받은 교육은 우주관이었습니다. 우주관 중에서도 “우주의 순환 이치를 알아야 이 길을 찾을 수 있느니라.”(도전道典 11:122:4)와 “선천 영웅 시대에는 죄로 먹고살았으나 후천 성인 시대에는 선으로 먹고살리니 죄로 먹고사는 것이 장구하랴, 선으로 먹고사는 것이 장구하랴. 이제 후천 중생으로 하여금 선으로 먹고살 도수度數를 짜 놓았노라. 선천은 위엄으로 살았으나 후천 세상에는 웃음으로 살게 하리라.”(도전道典 2:18:6~9)라는 『도전道典』 성구를 보고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모든 질문의 해답이 도전道典에 있다
저는 평소 우주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결국 인간의 끝은 죽음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궁금해하는 모든 질문들의 대답이 『도전道典』에 있었습니다. 우주관을 공부하면서 모든 변화 과정을 총체적으로 마무리 짓는 정답을 알게 되니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더 이상 인간 세계의 세속적인 문제로 골치 아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가뿐합니다. 증산도를 만나기까지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장두부 고조할아버지 외 저의 모든 조상님들, 그리고 저를 증산도에 손을 잡고 데려가 주신 조병현 포감님, 성심성의껏 저를 가르쳐 주신 이연주 포정님. 그 외 교육해 주신 포감님들께 이 글을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수행하여 개벽기 때 사람을 많이 살리는 성실한 일꾼이 되어 천지에 보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은!
고전을 거듭하던 인생 여정 속에서 『도전』을 읽고 깨달은 세상 이치
한때 성공한 듯 보이던 인생이 왜 이럴까 싶을 정도로 풀리지 않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어디든 간절하게 정성을 쏟았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러다가 상생방송을 보며 활로를 찾았고, 수행을 따라 하며 『도전』을 세 번 읽었더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한 치도 틀림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조상님의 기도와 부모님의 걱정과 정성으로 이 길에 들어섰기에, 정성을 다해 참사람으로 깨어나겠습니다.
그러다가 상생방송을 보며 활로를 찾았고, 수행을 따라 하며 『도전』을 세 번 읽었더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한 치도 틀림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조상님의 기도와 부모님의 걱정과 정성으로 이 길에 들어섰기에, 정성을 다해 참사람으로 깨어나겠습니다.
이재종(남, 77세) / 부산중앙도장/ 도기 154년 음력 10월 입도
청수를 모시고 기도하던 어머니
저는 경남 남해 바닷가에서 8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나, 어린 시절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의 걱정을 한 몸에 받던 허약한 유년을 보냈습니다.
그 시대는 6.25 전쟁 때였는데 우리 형제 중 네 명이나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고, 전쟁터에서는 생사를 보장받기 힘들었기에 어머니는 새벽마다 청수 한 그릇을 정성껏 떠 놓고 빌고 또 비는 것을 보았고, 그 기도와 정성 덕분인지 우리 형제는 모두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서당에서 천자문을 가르치는 일을 하셨고 그 영향으로 유교와 근본 예禮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때 당시 동네에는 천도교 교당이 있었고 보천교 가옥 건물도 있어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우리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책을 읽고 주문을 읽는 것을 듣고 자랐는데, 상생방송을 보면서 그것들이 모두 상제님 진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삶의 굴곡과 진리적 공허함
중학교 졸업 이후에는 서울, 부산에서 야간 학교를 다니며 배움과 일을 동시에 하였고, 인테리어와 시공 일을 배우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너는 부모덕도 형제덕도 없으니 네가 혼자서 열심히 노력해 살아야 한다고 크게 걱정하시던 부모님의 말씀이 살아가면서 늘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더욱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며 살다 보니 주위에서 좋은 분들도 만났습니다. 그 덕에 제 아내와 결혼하여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2남 1녀를 두었습니다.
직장에서 독립하여 계약도 많이 하고 이름 석 자도 알려지며 사업을 크게 했지만, 관리 부족과 공사금이 풀리지 않은 문제로 점점 어려워지고 모든 것이 힘든 시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래서 무속인의 힘을 빌려 굿도 해 보고 장모님의 권유로 절에 가서 불공도 열심히 드렸습니다. 하지만 참 인생이 왜 이럴까 싶을 정도로 풀리지 않아 우울하던 차에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가 새벽 기도를 1년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디든 간절하게 정성을 쏟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대순진리회를 만나 6년 이상을 집중하고 정성을 다하였지만 깨달음과 진리를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아 답답함에 그만두고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STB 상생방송을 보면서 증산도가 그토록 찾던 참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전』을 세 번 읽었더니
그렇게 4년 동안 상생방송을 보면서 사업 문제로 고전을 겪고 있던 중 대순진리회에 인도해 준 김정숙 도생과 통화가 되었는데, 그분은 이미 대순을 그만두고 7년간 상생방송을 보면서 진리와 수행을 해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10월에 용기를 내어 결심하고 입도를 했다며, 11월에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개벽 문화 북콘서트〉에 참여하자고 권유를 했습니다. 저는 북콘서트 행사에 참석하여 종도사님의 말씀을 듣고 우주 1년과 개벽이 가까이 왔음을 실감하였고, 이후 부산 개벽 강좌에도 참석하여 진리에 확신을 가졌으며, 더 이상 미루지 말자는 결심을 하고 부산중앙도장 김정숙 도생의 인도로 입도를 하였습니다.
매일 상생방송을 보며 아침저녁으로 수행을 따라 했으며, 도전을 세 번 읽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한 치도 틀림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조상님의 기도와 부모님의 걱정과 정성으로 이 길에 들어섰기에 이제는 저도 더욱 정성을 다하여 대변혁의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참사람으로 깨어나겠습니다.
제가 증산도를 만나게 해 주신 천지일월 부모님과 저의 조상님과 부모님과 부산중앙도장 김정숙 도생과 수호사님, 그리고 따뜻한 중앙도장 도생님들께 감사합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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