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 이 될 것인가? - 상제님 진리를 만날 때, 인생은 온전한 의미를 찾는다 | 제주연동도장 이미향 수호사
[상생 인터뷰]
구도의 여정에서 강력한 무기를 얻을 수 있는 팔관법 발표 교육의 중요성과 고난을 대하는 의식 및 태도, 그리고 개척자의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Q 진리를 만난 계기는?
우리가 도문에서 뵙는 분들과 말씀을 나누다 보면 저마다 크고 작은 사연들을 갖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어요. 한 13년 전 무렵인데, 사는 게 너무나 무의미해서 사는 걸 정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며 근근이 지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과 단절하고 우울증에 걸려서 거의 집에만 있었거든요. 유일한 낙이 책을 보는 것과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는 거였습니다. 주로 다큐 프로그램을 많이 좋아해서 프로그램을 찾다 보니까 낯선 방송이 딱 나오더라구요.
그러고서 3일 정도가 지났습니다. 책을 보느라고 방송 보는 걸 잊어버리고 있다가, 그 방송 생각이 나서 TV를 틀었는데 우주 1년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우주 1년 얘기를 하는데, 제가 청소를 하다 말고 한 이삼십 분 동안 완전히 돌덩이처럼 서 있었습니다. 그걸 보는데 한순간도 놓칠 수가 없는 거예요. 사람이 농사의 대상이라는 거에 머리를 한 대 크게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다시 재방송을 보고 싶었지만 바로 볼 수가 없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을 했어요. 연락처를 찾아 도장에 전화를 했더니 도장에 오면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때 저는 그 똑같은 방송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바로 볼 수가 없었죠.
그 후 시간을 보내다가 집 바로 옆 주민센터에서 책을 빌려 보던 걸 갖다주고서 ‘이제 이 방송을 좀 봐야지.’라고 생각하며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저 아래 책꽂이에 『이것이 개벽이다』와 『개벽 실제상황』이라는 책이 꽂혀 있는 게 보였어요. 순간 ‘응? 어디서 많이 듣던 개벽 얘긴인데?’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그 책 두 권을 빌려 왔어요.
거의 일주일, 열흘도 안 되는 시간에 두 권의 책을 다 읽었습니다. 잠을 안 자고 읽으면서 어마어마한 체험을 했어요. 그 시간이 새벽 세 시 반이었거든요. 큰 충격으로 “하~!”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면서 머리를 땅에다 박아 댔습니다. ‘도대체, 이 증산도라는 곳이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하지?’ 싶어서요. 그다음부터 잠이 안 오고 온통 머릿속에는 증산도 증산도 증산도였던 거예요.
Q 일꾼으로 나아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도장 중심의 일꾼이 된 것은 당시 딱히 하고 있는 일이 없어 눈만 뜨면 도장에 갔던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도장 책임자분이 현장통이셨어요. 아침에 가면 책을 좀 보다가 점심 먹고 나면 바로 홍보 포교 활동을 나가시고, 어떤 때는 아침에 나갔다가 들어와 오후에 또 나가고, 그러기를 2년 가까이 하셨습니다. 도장에 가면 그 수호사님을 따라서 같이 나가야 되잖아요. 그게 재밌는 거예요. 그러면서 현장 감각을 익히고 포교하는 것도 배우고요.
지금은 제가 큰 도장의 책임자를 맡고 있어 일이 많다 보니 활동을 조금 덜 나가지만, 강화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도장에 앉아 있으면 불안했어요. 밖에 활동을 나가야 마음이 편한 거예요. 어쩌면 제 조상님들이 저를 그렇게 쓰시려고 스파르타식으로 공부를 시켰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2년 동안 책임자분을 통해 저는 포교에 습관을 들이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Q 큰 변화를 가져다준 트레이닝을 받았다구요?
2년이 지나니까 도장에 새로운 책임자분이 오셨는데, 그분은 교육 위주로 일꾼을 양육하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오셔서 1년이 됐을 때 입도한 지 3년 차인 저에게 천록 봉직을 권하셨어요. 그때는 제가 포감을 맡은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천록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미향 포감님, 맨날 눈만 뜨면 도장에 오잖아요. 그렇게 그냥 하면 돼요.” 이러시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경제적으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천록 봉직이 너무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서 망설였는데, 그 후로도 책임자분이 1년 동안 계속 저를 설득하셨어요. 내가 뭐라고 자꾸 이렇게 권하실까 하는 생각에 한편으로 너무 고맙기도 해서 딱히 거부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입도 후 4년 차에 들어갈 때 천록 봉직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신입 때 포감을 맡았는데, 천지공사가 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갑갑한 마음에 천지공사 내용을 A4 용지에 정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알아야 되기 때문에 정리를 했더니 다섯 여섯 장이 되는 거예요. 그걸 또다시 핵심을 뽑아서 정리하고 한 번 더 간추려서 다시 정리하고, 그렇게 대여섯 번의 핵심 재정리 과정을 반복하니까 A4 용지 한 장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천지 공사가 머리에 다 들어와요. 이게 신명 해원 공사고 이건 무슨 공사구나, 어떤 연대에 태모님은 어떻게 하셨고 상제님은 어떻게 하셨고 이런 내용들이 머리에 정리가 되는 거예요. 아~ 공부는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이 공부에 너무 만족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포감일 때 구역원들한테 제가 공부했던 걸 보여 주면서 이렇게 요약 정리를 해 보시라고 했어요. 그러면 누가 가르쳐주기 전에 스스로 진리가 정립됩니다. 내가 먼저 찾아서 정립을 하면 그다음부터 팔관법은 쉬운 거예요.
그렇게 2년에 걸쳐서 팔관법 트레이닝이 끝났습니다. 저는 천록 봉직자니까 도장에 항상 있잖아요. 다른 분들은 일도 해야 하니까 도장에 없고요. 이 때문에 포교 대상자분들이 도장에 오면 아무래도 제가 교육을 가장 많이 합니다. 애써 트레이닝하고 정립한 진리 체계를 써먹지 않으면 감각이 둔해지거든요. 계속 쓰니까 요령이 막 생겨나고 말하는 것도 달라집니다. 이런 것들이 저한테는 진리적으로, 사상적으로 너무나 업그레이드가 되는 결과를 낳았어요. 팔관법 발표를 왜 해야 되는지를 스스로 뼈저리게 깨달은 거죠. 이건 진리를 전하는 정말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성직자가 되든 포감을 하든 어떤 구역의 책임자가 되든, 그 무엇을 하더라도 이러한 트레이닝은 진리적, 사상적으로 튼튼한 무기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트레이닝으로 팔관법 체계가 잡히면 밥 먹을 때 원하는 반찬을 골라서 먹듯이 자유로운 선택 활용이 가능해집니다. 기독교인을 만나도 불교인을 만나도 탁탁 뽑아서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우주관에서, 인간관에서, 천지공사에서 필요한 걸 뽑아서 다 얘기할 수 있어요. 자신감이 막 하늘로 솟습니다. 트레이닝이 끝나면서 느끼는 희열은 정말 겪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너무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 책임자분 덕택이죠.
Q 도장 개창을 하셨다구요?
당시 광역에서 강화도장을 개창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변화가 찾아왔어요. 도장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 때 제가 우리 아이들과 헤어졌거든요. 그 아이들이 스물일곱 살, 스물다섯 살 어른이 돼서 엄마랑 같이 살고 싶다는 거예요. 제가 아이들한테 너무너무 미안했는데 같이 살자니까 너무 좋잖아요. 도장 근처에 마침 괜찮은 집이 있어서 거기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이사하는 날 도장 수호사님이 우리 집에 오신 거예요.
저는 그때 딱 감을 잡았어요. 벌써 강화도장 책임자로 나가자는 말씀을 하시려고 오셨구나 하는 느낌이 온 거예요. 이삿짐도 풀리기 전에 얘기 좀 하자고 하셔서 저녁에 수호사님과 소주 한잔을 하며 얘기를 했죠. 예상한 대로 강화도장을 개창해 나가자는 거였습니다. 저는 너무나 깊은 갈등이 생겼어요. 아이들과 헤어졌다가 이제 같이 살게 됐는데 강화로 가면 또 헤어져야 되는 거예요.
저한테는 결정하기 너무 어려운 힘든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책임자로 강화에 가야 되는 상황이었기에 대의를 저버릴 수는 없었어요. 저는 도문에 들어오기 전에 한때는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고 싶어 했고 수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설득 과정이 정말 힘들었지만 다행히 아이들이 허락을 해 줘서 강화로 나가게 됐습니다.
강화도장을 개창해 갈 때 여성 도생님 한 분과 둘이서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팔관법을 교육할 수 있는 그 무기가 저한테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죠.
그런데, 나가니까 사람이 다닙니다. 사람이 없다는 섣부른 판단에 주저했는데 실제로는 나갔더니 사람이 다니더라는 겁니다. 결국 내 생각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또다시 절감한 거예요. 그냥 시도하면 되는 거였어요. 신도神道에서 사람들을 막 다니게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이제 간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개척이라는 것이 해 볼 만하지 않나요? 정말 도전이었고 해 볼 만한 거예요. 어떤 틀이 잘 갖추어진 여건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내가 스스로 이루어 낸다는 것이 구도자로서, 성직자로서 한번 해 볼 만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도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제가 해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렇게 일정한 교육 과정 등을 잘 수료하고 각자의 위치로 복귀하신 뒤에, 다시 예전의 원위치로 되돌아가지 마시고 이 기운과 다짐을 그대로 끌고 가서 적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제가 신입 때 태상종도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도훈 중에 하셨는데요. 저는 지금도 이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에 약간의 권태감이나 느슨함이 올 때면 항상 이 말씀을 가슴속에서 꺼냅니다.
“사람은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고,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있고,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있고,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저는 이 말씀이 그렇게 크게 와닿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어떤 도생이 돼야 될까? 어떤 신앙을 해야 될까?’ 이 문제를 늘 상기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사는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한 여성이, 우주 1년 사람 농사 이야기를 만나 도문에 들어왔습니다. 팔관법 발표 트레이닝을 하며 그녀는 삶을 살아가는 강력한 무기를 얻었고, 이제는 리더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외치고 이런 어려움쯤은 극복할 수 있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상제님 진리를 만나 개척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미향 수호사의 이야기는 우리가 인생에서 겪은 고난과 어려움들이 상제님 진리를 만날 때 온전히 그 의미를 되찾고 세상을 살리는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알려 주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상제님 진리를 만나 개척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미향 수호사의 이야기는 우리가 인생에서 겪은 고난과 어려움들이 상제님 진리를 만날 때 온전히 그 의미를 되찾고 세상을 살리는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알려 주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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