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의 내림줄로 만난 증산도 외 (권혜원, 정의석)
[입도수기]
조상님의 내림줄로 만난 증산도
증산도 신앙을 하는 딸과 아들은 이 어지러운 세상에 스스로 건강을 챙기고 개벽기 병란 극복을 위해 수행을 함께 하자고 권했습니다. 그것만이 스스로를 지키고 가족이 사는 길이라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봉청수 수행을 하는 딸의 모습은 과거 제 부모님의 모습과 꼭 닮아 있습니다. 역시 윗대 조상님의 내림줄은 속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봉청수 수행을 하는 딸의 모습은 과거 제 부모님의 모습과 꼭 닮아 있습니다. 역시 윗대 조상님의 내림줄은 속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혜원(여, 67세) / 서울목동도장 / 도기 154년 음력 12월 입도
스스로를 지키고 가족이 사는 길, 수행
지난 12월 가족 모임을 갖는 자리에서 아들, 딸, 사위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대통령 탄핵 사건과 더불어 국정이 어지럽고 국내외 여러 가지 문제들로 세상이 어지러운 것에 대하여 많은 대화를 하였습니다.
딸과 아들은 오래전에 증산도에 입도하여 상제님과 개벽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세상이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스스로 건강을 챙기고 개벽기에 병란을 극복하기 위해 수행을 함께 하자고 권하였습니다. 그것만이 스스로를 지키고 가족이 사는 길이라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부모님의 모습을 닮은 나의 딸
그런 말에 수긍을 한 저는 증산도에 입도하기로 결심하였고, 매일 청수를 모시면서 시천주주, 태을주 수행을 하였습니다. 수행을 하던 중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가 정화수를 떠 놓고서 촛불을 켜고 꿇어앉아 두세 시간씩 수행하던 모습이 생각났고, “너도 거기 앉아서 따라 해라.”라고 하셨던 어머니의 말씀도 기억이 났습니다.
이후 세월이 흘러 저의 딸이 증산도에 입도해 수행하는 모습이 우리 부모님과 꼭 닮아 있었습니다. ‘역시 윗대 조상님의 내림줄은 속일 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제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우리 딸의 권유로 저도 입도를 하였습니다. 되돌아보니, 저는 어린 시절 옥황상제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항상 잘못을 할 때마다 ‘상제님께서 다 지켜보고 계신다.’고 주의를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열심히 수행해서 몸과 마음을 굳건히 만들고, 개벽기 때 가족과 함께 생존할 수 있도록 상제님 신앙을 일심으로 해 나가겠습니다. 보은.
의미 없는 삶에서 건져 준 상생방송
빛꽃 수행이 가져다준 새 삶의 기회
대순진리회와의 인연으로 상제님 신앙을 했지만, 하나인 진리를 자기 중심으로 왜곡시키는 삿된 모습에 신앙생활을 포기했고, 병까지 얻어 삶의 의미를 잃은 채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만난 상생방송과 빛꽃 수행은 저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여기가 저의 마지막 자리이자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러던 중 만난 상생방송과 빛꽃 수행은 저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여기가 저의 마지막 자리이자 새로운 시작입니다.
정의석(남, 64세) / 목포도장 / 도기 154년 음력 12월 입도
생사의 기로에서 체험한 신명계의 도움
제가 어렸을 때 집 근처에는 보문사라는 사찰이 있었고 교회도 인접해 있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여러 종교에 관련된 서적을 탐독할 기회가 있었고, 10대와 20대의 젊은 나이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등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군에서 제대한 후 28세에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하던 중, 29세의 나이에 대순진리회 선각을 만나 상제님 신앙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강원도 처가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자동차에 온 가족을 태우고 가파른 고갯길을 지나는데,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앞차가 너무 늦게 서행을 해 앞지르기를 하려고 추월을 했습니다. 그런데 맞은편 차로 앞에서 차가 달려오는 바람에 정면 충돌 사고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너무도 급박하고 경황이 없는 가운데 정신없이 핸들을 돌렸고, 기적적으로 세 대의 차량이 동시에 좁은 길을 통과하며 멈추어 섰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았고, 상제님 진리를 만나 신명계에서 도와주셨음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남은 체험을 한 후 대순진리회 안동 방면에 입도를 하여 신앙생활을 몇 년간 하였습니다.
진리에 대한 의구심에 그만둔 신앙생활
이후 신앙과 포덕 활동이 주춤하던 중에 선각이 다른 방면으로 갔고, 저도 도에서 멀어지며 대순진리회 생활이 단절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대순진리회 종단의 분열이 있었는데, 저는 40세가 되어 우연히 새롭게 갈라진 대순 계열 단체인 대진성주회의 선각을 만나 두 번째 입도를 하였습니다. 대진성주회에서 신앙하면서 도장 짓는 공사와 도장에서 하는 각종 행사에 참여했고 포덕 등 일꾼으로서의 체험을 수년간 하다가, 직장 문제로 인해 통영으로 이직을 하며 도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40대 후반이 되어 예전의 첫 번째 선각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의 인도로 남해의 국도國島라는 섬에 종단을 가지고 있는 청우일신회라는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저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아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수행을 하던 중 ‘결국 진리는 하나이고 신앙 대상도 한 분인데 왜 다들 자기 중심으로 본인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 고심 끝에 저는 결국 신앙생활을 포기하였고, 53세 이후부터는 마음 수련 및 명상 수련, 기 체험, 호흡 수련 등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원인 모를 옆구리 근육 이상 증세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하여도 그 원인을 찾기 어려웠는데, 최근 2024년 5월에서야 경추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했고, 척수증 진단과 함께 같은 해 7월 일곱 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저는 제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지막 자리이자 새로운 시작, 증산도
서울에서 태어나 29세에 대순진리회를 만나 30세에 부산으로 이사를 하고 40대에 대진성주회를 만났으며, 45세에는 통영으로 이직을 하고 청우일신회를 만난 후 다시 52세가 되어선 목포로 직장을 이전하는 등 변화가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게다가 약 7년간의 원인 모를 고질병으로 고생하면서 저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목적의식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침체된 상황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두 달 전 우연히 보게 된 상생방송, 그리고 거기에서 만난 종도사님의 빛꽃 수행은 저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는 상생방송과 빛꽃 수행을 접하고 ‘여기다. 이곳이 나의 마지막 자리이자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증산도 목포도장을 방문하였고, 서용선 수호사님과 김상섭 포정님의 도움으로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곳 목포도장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으며, 앞으로 보은하는 신앙을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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