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로 배우는 우주변화의 원리 | 겨울왕국으로 보는 동서양 문화 - 오원소설과 오행론
[한문화]
김덕기 / STB상생방송 작가
다양한 사물이나 현상의 근원을 이루는 원인이자 원리를 아르케arche라고 합니다. 화학에서는 모든 원소의 근원 물질을 뜻하며, 물리학에서는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인 기본 입자를 의미합니다.
아르케의 탐구는 그리스의 자연철학에서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탈레스는 아르케를 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양한 사물들이 물에서 생겨나서 물로 돌아간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후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크세노파네스는 흙을,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아르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궁극의 실재인 하나(일자一者)에서 어떻게 많음(다자多者)의 세상인 현상계가 벌어졌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만물의 근원이 씨앗이라는 것까진 알았지만 어떻게 씨앗에서 줄기와 가지가 뻗어 나오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물을 구성하는 궁극의 실재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고 주장하는 다원론자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엠페도클레스로, 만물은 차갑고 어두운 물[水], 밝고 뜨거운 불[火], 무겁고 단단한 흙[土], 가볍고 투명한 공기[風]라는 네 가지 원소들의 합성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네 가지 원소를 우주 자연을 구성하는 근원의 뿌리라는 의미로 리조마타Rhizomata라고 했으며, 사물은 이 기본 원소의 비율에 따라 서로 형태를 바꿀 뿐 어떤 사물도 새로 탄생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원소설은 인도에서도 등장했습니다. 불교와 힌두교 및 인도의 고대 신화에서는 이미 우주와 인생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를 타트바tattva라고 하여 지수화풍 ‘사대四大(마하-부따루빠)’로 논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태극이 음과 양으로 분화하고, 음과 양은 다시 사상으로 분화한다는 팔괘론을 연상하게 합니다.
팔괘의 생성을 설명한 복희팔괘차서도를 잠시 살펴보면, 음양을 품고 있는 태극太極은 시공간의 흐름에 따라 음과 양으로 발전하고, 음양陰陽은 다시 각각 음양으로 분화하여 사상四象이 됩니다. 그리고 사상도 각각 음양으로 분화하여 팔괘八卦가 됩니다.
그리고 『헤르메스 문서』에서는 ‘네 개의 원소는 다시 봄·여름·가을·겨울로 나타난다’고 하였는데, 자연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동쪽에서 해가 어둠을 뚫고 떠오르면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남쪽에서 해가 중천에 떠올라 세상을 밝게 비추면 활발히 움직이며 일을 합니다. 서쪽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면 일과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북쪽으로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깃들면 깊은 잠에 빠져들어 다음 날을 준비합니다. 1년 사계절도 마찬가지여서,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면 식물은 대지를 뚫고 나옵니다. 여름이 되면 뜨거운 태양 빛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가을에 날씨가 서늘해지면 낙엽을 떨구고 열매를 맺습니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면 씨앗을 저장하고 다음 해를 기다립니다. 이러한 우주 변화의 근본정신을 증산 상제님께서는 ‘생장염장生長斂藏’이라고 하셨습니다.
봄은 식물이 탄생하는 계절이고, 여름은 식물이 성장하는 계절입니다. 가을은 식물이 기운을 수렴하여 열매 맺는 계절이고, 겨울은 식물이 씨앗을 저장하여 다음 해를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사계절을 음양으로 다시 살펴보면, 봄여름은 식물이 탄생·성장하는 양陽의 계절이고, 가을 겨울은 식물이 수렴·저장하는 음陰의 계절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봄은 양기가 시작하는 계절이고, 여름은 양기가 극대화한 계절입니다. 가을은 음기가 시작하는 계절이며, 겨울은 음기가 극대화한 계절입니다. 이러한 음양의 소장성쇠消長盛衰를 사상四象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행으로 봄은 목, 여름은 화, 가을은 금, 겨울은 수에 배속하므로, 사상은 오행과 결부시킬 수 있습니다.
봄이 되면 하나(1)인 씨앗이 발아하여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웁니다. 이때 줄기는 흙을 뚫고 한 가닥으로 곧게 뻗어나가는데, 이를 직향성直向性이라고 합니다. 목木이라는 글자는 뿌리의 양기陽氣가 대지를 뚫고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상징해서 만들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곧게 뻗어나가던 줄기는 가지로 갈라지고 잎이 우거지는데,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분열하는 것을 산포성散布性이라고 합니다. 화火라는 글자는 한 가닥으로 올라오던 기운이 음양으로 나뉘어 분열하는 모습을 상징해서 만들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식물은 성장을 멈추고 풋열매를 단단하게 키워 알찬 열매로 만드는데, 이를 견렴성堅斂性이라고 합니다. 금金은 밥을 지을 때 솥뚜껑을 덮어 증기가 발산하지 못하게 하듯이 상승하는 기운을 막아서 수렴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식물은 진액을 모두 응결시켜 씨앗에 저장하게 되는데, 이를 응고성凝固性이라고 합니다. 수水라는 글자는 모든 기운이 한군데로 모이는 것을 상징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원소의 성질도 사상의 성질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원소설에 따르면 물[Water]은 ‘차가움과 수축’이 기본 성질입니다. 불[Fire]의 기본 특성은 ‘열과 팽창’으로 물과 반대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공기[Air]는 물과 불을 중재하는 요소입니다. 불에서 ‘따뜻함’의 속성을 얻고, 물에서 ‘축축함’의 속성을 얻어서 만물이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흙[Earth]은 세 원소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한 것으로 고유한 속성인 ‘응고’를 통해 세 원소 모두를 품게 됩니다. 특히 이 응고성 덕분에 앞의 세 원소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게 되어 시간, 공간, 무게, 크기 등이 생기게 됩니다. 오행론에서는 흙[土]의 성질을 음과 양을 조화시키는 중화성中和性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원소에서 말하는 흙의 성질은 오행의 토土가 아니라 금金의 성질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의 사대설은 동양의 사상론과 융합하여 우리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그러나 17세기에 조선에 들어온 서양의 사원소설은 오행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기독교 교리와 결합된 형태였다고는 하나, 이처럼 불화를 겪게 된 것은 사원소설과 오행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이미 사원소에 이어 제5원소에 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제5원소를 불교와 힌두교에서 공허空虛 또는 아카샤로 인식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5원소를 사원소와 별개의 것으로 본 데 반해, 불교와 힌두 체계에서는 사원소를 낳은 근원 존재로 여겼습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헤르메스 문서』에서는 ‘빛과 어둠이 휘어서 하나의 뱀(우로보로스Ouroboros)이 되었으며, 빛과 어둠은 다시 네 개로 발전하여 사원소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5원소인 아카샤는 사원소를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로보로스는 아카샤에 대응됩니다. 그리고 빛과 어둠을 품고 있는 우로보로스는 음과 양을 품고 있는 태극太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카샤를 불교에서는 공空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동양 우주론에서 공空은 태극과 같기 때문입니다.
제5원소와 사원소의 관계를 오원소설에서는 다름과 단절에 초점을 맞추어 인식한 데 반해, 오행론에서는 같음과 연속에 초점을 맞추어 인식했습니다. 사원소를 제5원소와 분리된 존재가 아닌 제5원소의 성질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동등한 존재로 여긴 것입니다. 나무를 예로 들면, 나무는 뿌리에서 올라오는 기운을 받아 줄기와 잎을 피워냅니다. 땅속에 묻힌 뿌리는 본체가 되어 드러나지 않고, 줄기와 잎이 현상으로 드러나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단절되거나 차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며 나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줄기와 잎에 생명의 기운을 공급하는 근원이지만, 줄기와 잎도 영양분을 만들어 뿌리로 되돌리면서 호근互根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뿌리가 본체本體가 되고 줄기와 잎이 작용作用하는 관계를 체용體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체용體用은 서양의 본체와 현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의 본체와 현상은 오원소처럼 다름으로써 분리되어 있는 데 반해, 동양의 체와 용은 관점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생명을 낳는 측면에서는 뿌리가 주체主體가 되고 줄기와 잎은 작용作用이 됩니다. 반대로 생명이 활동하는 측면에서 보면 줄기와 잎이 주체가 되고 뿌리는 줄기와 잎을 도와주는 작용이 됩니다.
역철학에서 숫자 일一은 수水, 이二는 화火, 삼三은 목木, 사四는 금金을 의미합니다. 태극이 음양을 거쳐 수화목금의 사상으로 분화·발전하는 과정에서 다섯 번째 요소인 토土가 자화自化되어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이는 부모가 낳은 자식이 커서 다시 부모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씨앗이 뿌리·줄기·잎·꽃의 과정을 거쳐 다시 씨앗을 만드는 것도 한 예입니다. 이런 관계는 음양과 삼원三元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도가 변화할 때는 음양으로 드러나는데, 음양이 순환변화를 하면서 자화되는 존재가 중中입니다. 그러므로 삼원의 중中과 오행의 토土는 결국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원론(음양론)의 구체적인 표현이 사상론이고, 삼원론을 세분화한 것이 오행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도전 2:20#}
토의 작용은 상제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무위이화無爲以化
토가 변화를 일으키는 화化의 작용을 하는 것은 식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식물은 봄에 싹이 터서 여름에 성장하여 가을에 열매를 맺은 후 겨울에 씨앗을 저장합니다. 여기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여름의 성장을 멈추게 하고 가을의 통일로 전환시키는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꽃입니다. 식물이 봄여름에 성장하는 이유는 가을에 열매를 맺기 위함인데, 꽃이 피면 식물은 성장을 멈추고 모든 영양분을 꽃으로 보내서 수렴시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꽃이 토의 작용을 한다는 것은 한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꽃 화花 자는 ‘풀 초艸’ 자와 ‘될 화化’ 자가 합해진 글자로 ‘화化를 이루는 풀艸’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꽃이 양의 운동을 음의 운동으로 전환시켜 새로운 변화를 창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태극이 사상을 낳고 변화시킨다고 하였습니다. 토가 태극과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토가 현실에서 태극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행론에서는 태극을 토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상을 통해 태초에 우주 만유를 낳은 시원태극과 현실에서 우주 만유를 변화시키는 현상태극이 있다는 것과 현상태극의 역할을 토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씨앗(시원태극)에서 뿌리와 줄기, 잎, 꽃이 나왔지만, 이들이 다시 새로운 씨앗(현상태극)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와 인도문화에서는 현상태극의 존재를 모르고 시원태극만 인식하였기 때문에 현실을 허상虛像 내지 열등한 세상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아르케가 신성이나 생명이 없다는 이러한 주장은 우주 자연이 기계적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탄생시키고, 마르크스의 극단적인 유물론을 태동시켰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물리학에도 영향을 끼쳐서 양자量子가 관찰자에 의해 살아있는 것처럼 운동하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르케의 신성이 제거되고 원리와 원소로서의 측면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오행은 원리와 원소, 그리고 신성으로서의 특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지금까지 오행이라고 하면 전부 원소와 원리의 측면에서 논해왔습니다. 오행을 원소의 측면에서 보면, 만물은 오행기五行氣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오행의 기운이 응고하게 되면 형체를 이루어서 만물(나무·불·흙·쇠·물 등)이 되고, 분해하게 되면 순수한 오행기(목기木氣·화기火氣·토기土氣·금기金氣·수기水氣)로 변합니다. 오행을 원리의 측면에서 보면, 목기는 직향성을 가지고 있고 화기는 산포성을 가지고 있으며, 목생화木生火의 변화작용을 합니다. 그런데 오행을 신성의 측면에서 논한 유일한 문헌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태백일사』의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입니다.
생명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는 원소와 신성으로 이루어져 원리에 따라 변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와 영혼을 가지고 정신 활동을 하는 인간이 자연법칙에 맞춰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숨 쉬는 우주 만유의 실상은 원소와 신성, 원리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오행법칙을 통해서만 온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2019년 겨울, 디즈니에서 제작한 영화 ‘겨울왕국2’가 전 세계의 극장가를 뒤흔들었습니다. 겨울왕국 2편은 서양의 자연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어 의미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여왕 엘사가 ‘물·불·바람·흙’을 다스리면서 마법의 비밀과 왕국의 평화를 찾는 과정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동양과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만물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를 탐구해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이를 오행五行이라고 하고, 서양에서는 오원소五元素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동양의 오행과 서양의 오원소는 다른 것으로 인식되어왔습니다. 오행과 오원소는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것일까요? 그 관계를 탐구해보겠습니다.
서양의 사원소설와 동양의 사상론
사원소설四元素說의 등장
산과 들에는 온갖 나무와 풀들이 한껏 자태를 뽐내며 수놓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작은 씨앗에서 벌어져 나왔습니다. 사람을 비롯한 동물도 정자와 난자가 만나 이루어진 씨앗에서 생겨났습니다. 이런 생각을 확대해보면 우주 만유가 아무리 천태만상으로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어떤 근원적인 실재에서 벌어졌을 것이라는 데에 이르게 됩니다.다양한 사물이나 현상의 근원을 이루는 원인이자 원리를 아르케arche라고 합니다. 화학에서는 모든 원소의 근원 물질을 뜻하며, 물리학에서는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인 기본 입자를 의미합니다.
아르케의 탐구는 그리스의 자연철학에서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탈레스는 아르케를 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양한 사물들이 물에서 생겨나서 물로 돌아간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후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크세노파네스는 흙을,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아르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궁극의 실재인 하나(일자一者)에서 어떻게 많음(다자多者)의 세상인 현상계가 벌어졌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만물의 근원이 씨앗이라는 것까진 알았지만 어떻게 씨앗에서 줄기와 가지가 뻗어 나오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물을 구성하는 궁극의 실재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고 주장하는 다원론자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엠페도클레스로, 만물은 차갑고 어두운 물[水], 밝고 뜨거운 불[火], 무겁고 단단한 흙[土], 가볍고 투명한 공기[風]라는 네 가지 원소들의 합성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네 가지 원소를 우주 자연을 구성하는 근원의 뿌리라는 의미로 리조마타Rhizomata라고 했으며, 사물은 이 기본 원소의 비율에 따라 서로 형태를 바꿀 뿐 어떤 사물도 새로 탄생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원소설은 인도에서도 등장했습니다. 불교와 힌두교 및 인도의 고대 신화에서는 이미 우주와 인생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를 타트바tattva라고 하여 지수화풍 ‘사대四大(마하-부따루빠)’로 논하고 있었습니다.
사원소와 사상四象
서양의 마법사상인 헤르메스주의Hermeticism는 르네상스(14~16세기) 시대에 큰 영향을 줬다고 알려져있습니다. 3세기 문헌인 『헤르메스 문서』에는 사원소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있습니다.세계의 시원에 서로 대립하는 두 원리, 즉 빛과 어둠이 있으며 이 둘이 휘어서 하나의 뱀(우로보로스Ouroboros)이 되었다. 빛과 어둠은 다시 네 개로 발전하여 불, 공기, 흙, 물의 4원소가 되었고 네 개의 원소는 다시 봄·여름·가을·겨울로 나타난다.
-『헤르메스 문서』
-『헤르메스 문서』
이는 마치 태극이 음과 양으로 분화하고, 음과 양은 다시 사상으로 분화한다는 팔괘론을 연상하게 합니다.
易有太極(역유태극) 是生兩儀(시생양의) 兩儀生四象(양의생사상) 四象生八卦(사상생팔괘
)
역에 태극이 있으니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느니라
- 『주역』 「계사상편」 <11장>
)
역에 태극이 있으니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느니라
- 『주역』 「계사상편」 <11장>
팔괘의 생성을 설명한 복희팔괘차서도를 잠시 살펴보면, 음양을 품고 있는 태극太極은 시공간의 흐름에 따라 음과 양으로 발전하고, 음양陰陽은 다시 각각 음양으로 분화하여 사상四象이 됩니다. 그리고 사상도 각각 음양으로 분화하여 팔괘八卦가 됩니다.
그리고 『헤르메스 문서』에서는 ‘네 개의 원소는 다시 봄·여름·가을·겨울로 나타난다’고 하였는데, 자연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동쪽에서 해가 어둠을 뚫고 떠오르면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남쪽에서 해가 중천에 떠올라 세상을 밝게 비추면 활발히 움직이며 일을 합니다. 서쪽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면 일과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북쪽으로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깃들면 깊은 잠에 빠져들어 다음 날을 준비합니다. 1년 사계절도 마찬가지여서,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면 식물은 대지를 뚫고 나옵니다. 여름이 되면 뜨거운 태양 빛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가을에 날씨가 서늘해지면 낙엽을 떨구고 열매를 맺습니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면 씨앗을 저장하고 다음 해를 기다립니다. 이러한 우주 변화의 근본정신을 증산 상제님께서는 ‘생장염장生長斂藏’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도전 2:20
봄은 식물이 탄생하는 계절이고, 여름은 식물이 성장하는 계절입니다. 가을은 식물이 기운을 수렴하여 열매 맺는 계절이고, 겨울은 식물이 씨앗을 저장하여 다음 해를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사계절을 음양으로 다시 살펴보면, 봄여름은 식물이 탄생·성장하는 양陽의 계절이고, 가을 겨울은 식물이 수렴·저장하는 음陰의 계절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봄은 양기가 시작하는 계절이고, 여름은 양기가 극대화한 계절입니다. 가을은 음기가 시작하는 계절이며, 겨울은 음기가 극대화한 계절입니다. 이러한 음양의 소장성쇠消長盛衰를 사상四象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행으로 봄은 목, 여름은 화, 가을은 금, 겨울은 수에 배속하므로, 사상은 오행과 결부시킬 수 있습니다.
(★)
★ 봄을 소음少陰, 가을을 소양少陽으로 볼 수도 있다.
사원소의 성질
오행과 사상의 수(태음)·화(태양)의 성질은 사원소의 물·불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바람[풍風]도 『주역』 「설괘편」 11장에서 ‘손巽 위목爲木 위풍爲風’(손은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된다)이라 하여 목木에 배속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흙을 금金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오행에서 흙은 토土이고 금金은 쇠라 하여 별개로 보기 때문입니다.(★1))
그 해답은 사원소와 사상(오행)의 성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1) ‘사원소설과 사상론이 유사성을 넘어 일치한다’는 사고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봄이 되면 하나(1)인 씨앗이 발아하여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웁니다. 이때 줄기는 흙을 뚫고 한 가닥으로 곧게 뻗어나가는데, 이를 직향성直向性이라고 합니다. 목木이라는 글자는 뿌리의 양기陽氣가 대지를 뚫고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상징해서 만들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곧게 뻗어나가던 줄기는 가지로 갈라지고 잎이 우거지는데,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분열하는 것을 산포성散布性이라고 합니다. 화火라는 글자는 한 가닥으로 올라오던 기운이 음양으로 나뉘어 분열하는 모습을 상징해서 만들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식물은 성장을 멈추고 풋열매를 단단하게 키워 알찬 열매로 만드는데, 이를 견렴성堅斂性이라고 합니다. 금金은 밥을 지을 때 솥뚜껑을 덮어 증기가 발산하지 못하게 하듯이 상승하는 기운을 막아서 수렴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식물은 진액을 모두 응결시켜 씨앗에 저장하게 되는데, 이를 응고성凝固性이라고 합니다. 수水라는 글자는 모든 기운이 한군데로 모이는 것을 상징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원소의 성질도 사상의 성질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원소설에 따르면 물[Water]은 ‘차가움과 수축’이 기본 성질입니다. 불[Fire]의 기본 특성은 ‘열과 팽창’으로 물과 반대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공기[Air]는 물과 불을 중재하는 요소입니다. 불에서 ‘따뜻함’의 속성을 얻고, 물에서 ‘축축함’의 속성을 얻어서 만물이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흙[Earth]은 세 원소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한 것으로 고유한 속성인 ‘응고’를 통해 세 원소 모두를 품게 됩니다. 특히 이 응고성 덕분에 앞의 세 원소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게 되어 시간, 공간, 무게, 크기 등이 생기게 됩니다. 오행론에서는 흙[土]의 성질을 음과 양을 조화시키는 중화성中和性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원소에서 말하는 흙의 성질은 오행의 토土가 아니라 금金의 성질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뿐만 아니라 사원소의 발생 순서도 ‘수와 화의 상호작용으로 처음 발생한 것이 목이고, 수화목금토의 순서로 오행이 발생한다’는 오행론과 일치합니다. ★2) 사원소설에서는 공기를 봄, 불을 여름, 물을 가을, 흙을 겨울에 배속한다. 그러나 물과 흙을 가을과 겨울에 배속하는 것은 사원소의 성질과 사계절의 성질에 차이가 있다. 사상론에 비해 정합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 오원소설과 동양의 오행론
불교의 사대설은 인체를 구성하는 요소로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중국의 의학 속에 융화되어 한의학에 수용되었다. 따라서 사상의학의 연원에는 기존에 알려진 주역이나 유학사상 이외에도 불교의 사대설에 의한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박성식,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사상체질과 교수
-박성식,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사상체질과 교수
불교의 사대설은 동양의 사상론과 융합하여 우리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그러나 17세기에 조선에 들어온 서양의 사원소설은 오행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기독교 교리와 결합된 형태였다고는 하나, 이처럼 불화를 겪게 된 것은 사원소설과 오행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원소설五元素說의 등장
엠페도클레스는 지상의 만물은 사원소로 구성되어 변화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생각한 사원소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원소를 움직이게 하는 힘의 원리, 즉 사랑[인력]과 미움[척력]이라는 제5의 원소를 끌어들였습니다. 이후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을 변용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천체가 원을 그리며 운행하는 것을 본 아리스토텔레스가 영원불변의 제5원소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지상의 모든 물질은 사원소로 이루어져 있는 데 반해, 하늘은 지상에 없는 완전한 물질인 제5원소(★)
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제5원소는 라틴어로 ‘퀸타 에센티아Quinta Essentia’라고 한다. 제5원소의 별명인 “에테르ether”는 “불탄다”는 뜻인 그리스어 ‘아이테르’에서 유래하였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이미 사원소에 이어 제5원소에 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제5원소를 불교와 힌두교에서 공허空虛 또는 아카샤로 인식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5원소를 사원소와 별개의 것으로 본 데 반해, 불교와 힌두 체계에서는 사원소를 낳은 근원 존재로 여겼습니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다섯 번째 타트바tattva인 아카샤 원리로부터 이보다 열등한 네 개의 타트바가 생겨났다. 그러므로 아카샤는 궁극의 원인이며 다섯 번째 힘, 이른바 ‘제5원소’이다. 즉 본질Quintessenz/quintessence인 것이다.
-『헤르메스학 입문』
-『헤르메스학 입문』
앞서 살펴봤듯이 『헤르메스 문서』에서는 ‘빛과 어둠이 휘어서 하나의 뱀(우로보로스Ouroboros)이 되었으며, 빛과 어둠은 다시 네 개로 발전하여 사원소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5원소인 아카샤는 사원소를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로보로스는 아카샤에 대응됩니다. 그리고 빛과 어둠을 품고 있는 우로보로스는 음과 양을 품고 있는 태극太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카샤를 불교에서는 공空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동양 우주론에서 공空은 태극과 같기 때문입니다.
건乾의 위가 바로 태극이니 이것은 불교가 말하는 바의 공空인 것이며, 또한 ‘十’자의 中이다.
-『우주변화의 원리』319쪽
-『우주변화의 원리』319쪽
오원소설과 오행론의 차이점
오원소설에서 말하는 제5원소는 만물을 낳은 근원적인 존재로 태극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카샤는 만물을 낳고 변화시키는 고귀한 존재(★)
이므로, 열등한 사원소와는 질적으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 더해 제5원소가 지상에 존재하는 사원소와 달리 천상에 따로 존재하는 순수하고 영원한 실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사원소는 제5원소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후에 기독교 신관의 바탕이 됩니다.★ 겨울왕국 2편에서 제5원소라 할 수 있는 여왕 엘사가 사원소를 통제하고 이를 이용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5원소와 사원소의 관계를 오원소설에서는 다름과 단절에 초점을 맞추어 인식한 데 반해, 오행론에서는 같음과 연속에 초점을 맞추어 인식했습니다. 사원소를 제5원소와 분리된 존재가 아닌 제5원소의 성질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동등한 존재로 여긴 것입니다. 나무를 예로 들면, 나무는 뿌리에서 올라오는 기운을 받아 줄기와 잎을 피워냅니다. 땅속에 묻힌 뿌리는 본체가 되어 드러나지 않고, 줄기와 잎이 현상으로 드러나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단절되거나 차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며 나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줄기와 잎에 생명의 기운을 공급하는 근원이지만, 줄기와 잎도 영양분을 만들어 뿌리로 되돌리면서 호근互根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뿌리가 본체本體가 되고 줄기와 잎이 작용作用하는 관계를 체용體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체용體用은 서양의 본체와 현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의 본체와 현상은 오원소처럼 다름으로써 분리되어 있는 데 반해, 동양의 체와 용은 관점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생명을 낳는 측면에서는 뿌리가 주체主體가 되고 줄기와 잎은 작용作用이 됩니다. 반대로 생명이 활동하는 측면에서 보면 줄기와 잎이 주체가 되고 뿌리는 줄기와 잎을 도와주는 작용이 됩니다.
우주의 변화를 주도하는 토土
오행론에서는 사상의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존재가 생성된다고 합니다. 복희팔괘차서도를 다시 보면, 태극은 음양운동을 하면서 현상계를 펼쳐내고, 음양은 다시 각각 음양으로 분화되어 사상이 됩니다. 그리고 사상이 순환변화를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존재가 스스로 생겨나는데, 그것이 바로 우주의 변화를 주도하는 토土입니다. 사상과 토를 합해서 오행五行이라고 합니다.위에서 일이삼사一二三四의 발전을 설명하였지만 그것만으로써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주운동의 실질적인 변화는 발전과 통일작용에서 일어나는 모순을 조절하는 작용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므로 토土(오五)가 들어오는 것이다.…토土는 일이삼사一二三四의 십수十數(一二三四의 합수合數가 十이다) 자체에서 일어나는 순수정기純粹精氣이다.
- 『우주변화의 원리』 198쪽
- 『우주변화의 원리』 198쪽
역철학에서 숫자 일一은 수水, 이二는 화火, 삼三은 목木, 사四는 금金을 의미합니다. 태극이 음양을 거쳐 수화목금의 사상으로 분화·발전하는 과정에서 다섯 번째 요소인 토土가 자화自化되어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이는 부모가 낳은 자식이 커서 다시 부모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씨앗이 뿌리·줄기·잎·꽃의 과정을 거쳐 다시 씨앗을 만드는 것도 한 예입니다. 이런 관계는 음양과 삼원三元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도가 변화할 때는 음양으로 드러나는데, 음양이 순환변화를 하면서 자화되는 존재가 중中입니다. 그러므로 삼원의 중中과 오행의 토土는 결국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원론(음양론)의 구체적인 표현이 사상론이고, 삼원론을 세분화한 것이 오행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위이화無爲以化를 이루는 토土
봄여름은 식물이 분열·성장하는 양의 계절입니다. 반면에 가을 겨울은 식물이 통일·수렴하는 음의 계절입니다. 즉 양의 운동이 음의 운동으로 전환되는 것으로, 이때 양과 음을 매개하여 변화變化를 일으키는 존재가 토土입니다.{3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도전 2:20#}
토의 작용은 상제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무위이화無爲以化
(★)
의 ‘화化’가 바로 그것입니다. 토가 화化의 작용을 함으로써 만물은 조화調和롭게 변화變化할 수 있습니다. 계절로는 음력 6월(양력 7~8월)의 늦여름인 장하長夏에 해당하며, 음도 양도 아닌 중화성中和性의 존재이므로 음(-)과 양(+)을 합해서 토土라는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무위이화無爲以化’와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이화無爲而化’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토기土氣란 것은 그 성질이 화순和順하여서 불편부당不偏不黨하는 절대중화지기絶待中和之氣를 말하는 것이다.…그것은 동動적인 양陽작용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靜적인 음陰작용을 하는 것도 아닌 성질이므로 이것을 중中작용이라고 한다.
-『우주변화의 원리』68쪽
-『우주변화의 원리』68쪽
토가 변화를 일으키는 화化의 작용을 하는 것은 식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식물은 봄에 싹이 터서 여름에 성장하여 가을에 열매를 맺은 후 겨울에 씨앗을 저장합니다. 여기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여름의 성장을 멈추게 하고 가을의 통일로 전환시키는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꽃입니다. 식물이 봄여름에 성장하는 이유는 가을에 열매를 맺기 위함인데, 꽃이 피면 식물은 성장을 멈추고 모든 영양분을 꽃으로 보내서 수렴시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꽃이 토의 작용을 한다는 것은 한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꽃 화花 자는 ‘풀 초艸’ 자와 ‘될 화化’ 자가 합해진 글자로 ‘화化를 이루는 풀艸’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꽃이 양의 운동을 음의 운동으로 전환시켜 새로운 변화를 창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토土는 현실 속의 제5원소
토는 만물을 조화調和롭게 변화變化시키는 화化의 작용을 합니다. 이런 토의 작용을 조화造化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화에는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음과 양을 매개하여 음생양陰生陽·양생음陽生陰으로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조변화造變化’입니다. 또 한 가지는 사상의 중심에서 사상을 생성·변화하게 해주는 ‘조화생造化生’입니다. 보통 토와 사상을 함께 그릴 때는 토를 중앙에 놓고 사상을 사방위에 배치하는데, 이는 토가 사상을 낳고 변화시킨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자동차로 예를 들면, 사상四象은 네 개의 자동차 바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바퀴는 구동축을 통해 엔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엔진에서 동력이 가해지면 바퀴가 움직이게 됩니다. 엔진은 오행의 토와 같습니다. 즉 토가 변화의 구심점이 되고 사상은 변화의 작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상을 토용土用이라고도 합니다.앞서 태극이 사상을 낳고 변화시킨다고 하였습니다. 토가 태극과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토가 현실에서 태극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행론에서는 태극을 토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창조란 것은 태극의 창조인 것이다. 우주의 운동이란 것은 바로 태극의 운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태극에는 양면성이 없을 수가 없는 바 그 양면성이란 것은 일면토一面土 일면수一面水의 성질을 말하는 것이다. -『우주변화의 원리』387쪽
이상을 통해 태초에 우주 만유를 낳은 시원태극과 현실에서 우주 만유를 변화시키는 현상태극이 있다는 것과 현상태극의 역할을 토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씨앗(시원태극)에서 뿌리와 줄기, 잎, 꽃이 나왔지만, 이들이 다시 새로운 씨앗(현상태극)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와 인도문화에서는 현상태극의 존재를 모르고 시원태극만 인식하였기 때문에 현실을 허상虛像 내지 열등한 세상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오행법칙은 지고지상의 규범
우주만유의 근원인 아르케arche는 시초라는 뜻 외에도 존재원리, 원인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타트바tattva는 산스크리트어로 ‘근원, 원리原理, 실재, 진리’ 등을 의미하며, 힌두 체계에서는 ‘원소元素’ 또는 ‘신성神性’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탈레스가 말한 아르케로서의 물은 살아있는 신성한 존재였습니다. 동식물 외에 무생물도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물활론物活論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엠페도클레스는 사원소를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아르케가 신성이나 생명이 없다는 이러한 주장은 우주 자연이 기계적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탄생시키고, 마르크스의 극단적인 유물론을 태동시켰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물리학에도 영향을 끼쳐서 양자量子가 관찰자에 의해 살아있는 것처럼 운동하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르케의 신성이 제거되고 원리와 원소로서의 측면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오행은 원리와 원소, 그리고 신성으로서의 특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행법칙의 특징은 물질 단위만을 가지고 삼라만상의 유동하는 변화를 측정하려는 것이 아니고 정신이나 생명을 가진 살아있는 물질의 동정(動靜)하는 모습을 측정할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법칙으로써 사물을 측정하려는 것이다.…오행이란 이와 같이 무형과 유형의 양면성을 띤 것이므로 모든 사물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오행법칙이 만상의 연구에 있어서 지고지상의 규범이 되는 것이다. -『우주변화의 원리』 59쪽
잘 알다시피 지금까지 오행이라고 하면 전부 원소와 원리의 측면에서 논해왔습니다. 오행을 원소의 측면에서 보면, 만물은 오행기五行氣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오행의 기운이 응고하게 되면 형체를 이루어서 만물(나무·불·흙·쇠·물 등)이 되고, 분해하게 되면 순수한 오행기(목기木氣·화기火氣·토기土氣·금기金氣·수기水氣)로 변합니다. 오행을 원리의 측면에서 보면, 목기는 직향성을 가지고 있고 화기는 산포성을 가지고 있으며, 목생화木生火의 변화작용을 합니다. 그런데 오행을 신성의 측면에서 논한 유일한 문헌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태백일사』의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입니다.
五靈(오령)호니 曰太水(왈태수)와 曰太火(왈태화)와 曰太木(왈태목)과 曰太金(왈태금)과 曰太土(왈태토)시라
다섯 성령은 태수와 태화와 태목과 태금과 태토이시다. -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다섯 성령은 태수와 태화와 태목과 태금과 태토이시다. -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생명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는 원소와 신성으로 이루어져 원리에 따라 변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와 영혼을 가지고 정신 활동을 하는 인간이 자연법칙에 맞춰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숨 쉬는 우주 만유의 실상은 원소와 신성, 원리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오행법칙을 통해서만 온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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