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무극대도 | 어머니 하느님의 괘 주역 두 번째, 중지곤괘重地坤卦䷁
[기고]
한태일(인천구월도장, 녹사장)
후천 곤도의 상징
주역 64괘 중 두 번째 괘는 중지곤괘重地坤卦(䷁)입니다. 중지곤괘는 땅[地]을 뜻하는 곤괘坤卦(☷)가 위·아래로 거듭 있다 하여 ‘거듭 중重’ 자를 써서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늘을 나타내는 중천건괘는 선천 양도陽道(건도乾道)를 상징하고, 땅을 나타내는 중지곤괘는 후천 음도陰道(곤도坤道)를 상징합니다. 주역의 중천건괘와 중지곤괘를 가리켜 천지부모괘라고 합니다. 이로써 건·곤괘는 천지건곤天地乾坤이 되며 건부곤모乾父坤母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중천건괘는 상제님의 괘이며 중지곤괘는 태모님의 괘입니다. 다가오는 후천 음도의 시대를 맞아 태모님께서는 상제님과 합덕하시어 후천 가을개벽 세상을 여십니다.
주역은 음양학입니다. 그래서 주역 64괘는 음효陰爻(⚋)와 양효陽爻(⚊)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64괘중에서 양효로만 되어 있는 괘가 첫 번째 괘인 중천건괘이고, 음효로만 되어 있는 괘가 바로 두 번째 괘인 중지곤괘입니다. 순음효純陰爻로 이루어진 중지곤괘는 곤도坤道를 상징하며 모든 음괘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래서 중지곤괘는 음도, 즉 곤도를 대표하며 억조창생의 머릿여자(수부首婦)이시며 천지만물과 온 인류의 생명의 어머니(太母: Great Mother)이신 태모 고수부님이십니다.
* 태모 고수부님은 억조창생의 생명의 어머니이시니라. 후천 음도陰道 운을 맞아 만유 생명의 아버지이신 증산 상제님과 합덕合德하시어 음양동덕陰陽同德으로 정음정양의 새 천지인 후천 오만년 조화 선경을 여시니라. (도전 11:1:1~3)
* 상제님과 수부님은 억조창생의 부모로서 음양동덕이시니, 상제님께서는 건도乾道를 바탕으로 9년 천지공사를 행하시고, 수부님께서는 곤도坤道를 바탕으로 10년 천지공사를 행하시거늘 (11:76:5~6)
* 상제님과 수부님은 억조창생의 부모로서 음양동덕이시니, 상제님께서는 건도乾道를 바탕으로 9년 천지공사를 행하시고, 수부님께서는 곤도坤道를 바탕으로 10년 천지공사를 행하시거늘 (11:76:5~6)
그리고 강건함을 나타내는 양효(⚊)로만 이루어진 중천건괘와는 달리 중지곤괘는 유순함을 나타내는 음효(⚋)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중천건괘와 더불어 중지곤괘를 알아야 주역 64괘 저변에 깔려 있는 천지이법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곤도, 다른 말로 지덕地德은 삿 된 기운 없이 방정하고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유순함이 있습니다.
이처럼 곤도는 후천 음도를 상징하며 그 성정은 유순하며 덕합무강德合无疆하며 극수는 10입니다. 건·곤도의 주요 특징을 열거하면 아래 표와 같습니다.
* 선천은 양도陽道·건도乾道로서 분열·생장하는 때이며 후천은 음도陰道·곤도坤道이므로 밖에서 중심으로, 위에서 아래로 만물을 수렴해 간다. (5:165:8 측주)
* 선천은 건 도수乾度數 시대로 구천九天이며, 후천개벽과 더불어 곤 도수坤度數가 열려 음도에 의해 십천十天으로 대개벽을 한다. (4:117:5 측주)
* 건乾 십수十數의 증산 상제님께서는 9년 공사요, 곤坤 구수九數의 나는 10년 공사이니 (11:76:3)
* 선천은 건 도수乾度數 시대로 구천九天이며, 후천개벽과 더불어 곤 도수坤度數가 열려 음도에 의해 십천十天으로 대개벽을 한다. (4:117:5 측주)
* 건乾 십수十數의 증산 상제님께서는 9년 공사요, 곤坤 구수九數의 나는 10년 공사이니 (11:76:3)
곤坤자는 ‘土 + 申’으로 밭[田]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띄운 모습으로 땅이란 지극히 순해서 하늘의 법도를 본받는 것을 말합니다. 설괘전에서 곤괘(☷)는 아시다시피 땅, 인체에서 배[腹], 동물로는 소[牛], 그리고 큰 수레[大輿]로 풉니다. 이는 곤괘를 보면 여섯 효 모두 가운데가 비어 있는 모습으로 음식물을 배 속으로 받아들이듯, 대지大地 또한 만물을 길러내고 저장하며 수용합니다. 배가 볼록한 소의 성정 역시 유순함은 곤괘의 덕성을 그대로 닮았죠.
괘명을 보면 의아스러운데요. 중지곤重地坤, 즉 거듭(重)해서 땅[地]이 있다는 곤坤괘 입니다. 하늘이 거듭 있다는 중천건괘와 마찬가지로 왜 ‘땅이 거듭 있다’는 중지곤이란 괘명을 썼을까요? 지난 19세기부터 본격 제기되어 온 지구공동설地球空洞說(Hollow Earth)이 있습니다. 즉 지구의 속은 비어 있으며 그 속에 우리와 다른 문명 세계가 존재한다는 궁금증은 수백 년간 이어 온 풀리지 않는 숙제였습니다. 미국 해군 제독 리챠드 버드Richard E. Byrd(1888~1957) 등은 실제 그곳을 다녀와서 비행일지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지구공동문명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도전을 보면 상제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속에도 엄연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살고 있음을 확실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 천상사람이 있고 땅속에도 사는 사람이 또 있느니라. (4:66:3)
이 말씀 그대로 하늘도 보이는 하늘이 다가 아니고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어 ‘중천重天’이라고 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안에 또 다른 지구가 있기에 ‘중지重地’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아울러 무변광대한 우주, 천지인 삼계에는 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하면 아득하고 나중하면 얻으리니 먼저 괘사를 보겠습니다.
坤(곤)은 元(원)코 亨(형)코 利(이)코 牝馬之貞(빈마지정)이니 君子(군자)의
有攸往(유유왕)이니라
先(선)하면 迷(미)하고 後(후)하면 得(득)하리니 主利(주리)하니라
西南(서남)은 得朋(득붕)이오 東北(동북)은 喪朋(상붕)이니 安貞(안정)하여
吉(길)하니라
곤은 원하고 형하고 이롭고 암말의 정고함이니 군자가 갈 바를 두느니라.
먼저 하면 아득하고 나중에 하면 얻으리니 이로움을 주장하니라.
서남은 벗을 얻고 동북은 벗을 잃으니 편안하고 정고하여 길하니라.
有攸往(유유왕)이니라
先(선)하면 迷(미)하고 後(후)하면 得(득)하리니 主利(주리)하니라
西南(서남)은 得朋(득붕)이오 東北(동북)은 喪朋(상붕)이니 安貞(안정)하여
吉(길)하니라
곤은 원하고 형하고 이롭고 암말의 정고함이니 군자가 갈 바를 두느니라.
먼저 하면 아득하고 나중에 하면 얻으리니 이로움을 주장하니라.
서남은 벗을 얻고 동북은 벗을 잃으니 편안하고 정고하여 길하니라.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듯 건괘(하늘)가 갖고 있는 원형이정이란 사덕을, 곤괘(땅) 역시 원형이정의 사덕을 똑같이 갖추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건·곤괘는 천지부모 괘니까 두 괘 모두 같은 덕성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다만 다른 것은 땅이란 하늘의 정기를 받아 만물을 낳아 바르게 길러야 하므로 ‘암말의 정고함(牝馬之貞)’을 강조한 것만 다르네요.
그래서 지도地道 또한 천도天道와 같이 크고[元], 형통하고[亨], 이롭고[利], 암말의 정고함[貞]의 원형이정이 있으므로 군자가 이를 본받아서 앞으로 나아갈 지표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군자는 상제님과 태모님의 후천 곤도의 선경세계를 열어 나가는 천하사 일꾼을 말합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천하사 일꾼들에게 “원형이정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정의가 승리한다.”(7:3:10)라고 하셨으며, 태모님께서도 “원형이정에 두 길이 있으니 공功은 닦은 데로 가고 죄罪는 지은 데로 가느니라.”(11:198:3)라는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 같은 곤괘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글이 바로 『단군세기』에 있는<염표문念標文>인데요. ‘마음[念] 속에 지닌 큰 뜻을 드러내는[標] 글[文]’이란 뜻의 염표문 중 지덕을 설명한 것을 보면, “땅이란 하늘의 기운을 모아서 성대하니 땅의 도는 하늘의 도를 본받아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쉼 없이 길러 만물을 하나 되게 함이다. 염표문에서 보듯이 진리의 구성 틀이 하늘과 땅과 인간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천지가 전제되지 않는 진리는 인간 삶의 근본 주제가 결여된 불완전한 진리요, 천지인이 전제되지 않는 진리 정의는 깨달음을 빙자한 위선적인 정의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종도사님께서 풀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설괘전』에서 건괘는 강건한 말[馬]로, 곤괘는 원래 유순한 동물인 소[牛]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소가 아니라 ‘암말[牝馬]의 정고함’으로 설명한 것은 암말이 온순해서 길들이기 쉬우며 또 자기 짝 이외의 다른 말하고는 짝을 짓지 않는 정고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건괘에서는 다섯 효를 하늘을 나는 상상의 동물인 ‘용’을 상징 매체로 삼아 추상적·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반해, 곤괘에서는 초원에서 뛰노는 ‘말’을 매체로 삼아 구체적·형이하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은 먼저 하나(⚊)로 나와서 밝은 것을 나타내고, 음은 두 번째(⚋)로 나와서 어두운 것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유순하고 어두운 음도陰道는 양보다 먼저 앞서면 미혹되지만, 강건한 광명의 양도陽道에게 양보하고 나중에 한다면 순리에도 부합되며 이득 또한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先迷後得]. 선미후득을 상제님 진리로 풀이해 보면
* 음도陰道를 보내고 양도陽道를 오게 하여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려 하노라. (9:167:6)
즉 “선천 상극의 어두운 세상(陰道)을 보내고 대광명의 새 세상(陽道)을 오게 하신다는 뜻”(2:59:1.각주)이며 그 세상에서는 가을의 정신인 이로움(利)을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벗을 얻고 잃는다는 득붕과 상붕을 설명드리면, 방위를 나타내는 문왕팔괘도에서 서남방은 음방陰方으로 손巽(장녀, ☴), 이離(중녀, ☲), 곤坤(모, ☷), 태兌(소녀, ☱)의 4모녀인 음괘들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남방에 동성同性인 음괘들끼리 모여 있는 것은 ‘벗을 얻는 것(得朋)’이며, 이에 반해 동북방은 양방陽方으로 진(震, 장남, ☳), 간(艮, 소남, ☶), 감(坎, 중남, ☵), 건(乾, 부, ☰)의 4부자인 양괘들만 있고 음 입장에서 보면 음괘들은 없으니 ‘벗을 잃는 것(喪朋)’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성을 상징하는 곤괘의 특성을 감안하면 시집가는 것과 연계해서 볼 수도 있습니다. 상붕이란 정든 친정을 떠나 남의 집인 타성他姓으로 시집가는 것이고, 득붕이란 시집가기 전 친정 식구들과 한집에서 오순도순 살며 신부 수업을 받던 그때가 좋았던 시절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단전을 보면
彖曰(단왈) 至哉(지재)라 坤元(곤원)이여 萬物(만물)이 資生(자생)하나니
乃順承天(내순승천)이니
坤厚載物(곤후재물)이 德合无疆(덕합무강)하며 含弘光大(함홍광대)하여 品物(품물)이 咸亨(함형)하나니라
牝馬(빈마)는 地類(지류)이니 行地无疆(행지무강)하며 柔順利貞(유순이정)이
君子攸行(군자유행)이라
先(선)하면 迷(미)하여 失道(실도)하고 後(후)하면 順(순)하여 得常(득상)하리니
西南得朋(서남득붕)은 乃與類行(내여유행)이오. 東北喪朋(동북상붕)은
乃終有慶(내종유경)하리니 安貞之吉(안정지길)이 應地无疆(응지무강)이니라
단전에 이르길 지극하도다! 곤의 원이여! 만물이 그것을 바탕으로 생겨나니 이에 순하게 하늘을 이으니 곤이 후덕하여 만물을 실음에 덕이 끝없이 합해지며, 큰 것을 머금어서 빛이 커서 만물이 다 형통하느니라. 암말은 땅에 속하는 부류이니 땅에서 행하는 데 경계가 없으며 유순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는 것은 군자의 행하는 바이다.
앞서면 미혹하여 도를 잃게 되며 나중에 하면 순해서 항상 평안함을 얻으리니 서남방에서 벗을 얻는다 함은 이에 무리가 더불어 행함이요. 동북방에서 벗을 잃는다 함은 이에 끝내 경사가 있음이니 안정하여 길하다는 것은 땅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에 응함이라.
乃順承天(내순승천)이니
坤厚載物(곤후재물)이 德合无疆(덕합무강)하며 含弘光大(함홍광대)하여 品物(품물)이 咸亨(함형)하나니라
牝馬(빈마)는 地類(지류)이니 行地无疆(행지무강)하며 柔順利貞(유순이정)이
君子攸行(군자유행)이라
先(선)하면 迷(미)하여 失道(실도)하고 後(후)하면 順(순)하여 得常(득상)하리니
西南得朋(서남득붕)은 乃與類行(내여유행)이오. 東北喪朋(동북상붕)은
乃終有慶(내종유경)하리니 安貞之吉(안정지길)이 應地无疆(응지무강)이니라
단전에 이르길 지극하도다! 곤의 원이여! 만물이 그것을 바탕으로 생겨나니 이에 순하게 하늘을 이으니 곤이 후덕하여 만물을 실음에 덕이 끝없이 합해지며, 큰 것을 머금어서 빛이 커서 만물이 다 형통하느니라. 암말은 땅에 속하는 부류이니 땅에서 행하는 데 경계가 없으며 유순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는 것은 군자의 행하는 바이다.
앞서면 미혹하여 도를 잃게 되며 나중에 하면 순해서 항상 평안함을 얻으리니 서남방에서 벗을 얻는다 함은 이에 무리가 더불어 행함이요. 동북방에서 벗을 잃는다 함은 이에 끝내 경사가 있음이니 안정하여 길하다는 것은 땅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에 응함이라.
중천건괘의 단전에서는 건의 덕성을 ‘크도다(大哉)! 건의 원이여(乾元)! 만물이 이를 바탕으로 비롯되었다(資始)’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지곤괘의 단전에서는 땅의 덕성을 ‘지극하도다(至哉)! 곤의 원이여(坤元)! 만물이 하늘의 정기를 받아 내린 것을 바탕으로 하여 생겨났다(資生)’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독음독양獨陰獨陽이면 화육化育이 행해지지 않나니 후천은 곤도坤道의 세상으로 음양동덕陰陽同德의 운運이니라. (2:83:5)
이 세상 이치는 양만 있어도 혹은 오로지 음만 있어도 생명 활동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즉 건곤이 합덕해야 그 원덕元德으로 만물이 ‘시생始生’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인 건괘의 원형이정 사덕 그대로 땅인 곤괘에서도 똑같이 사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땅의 덕성은 유순하여 하늘의 정기를 순하게 이어받아 만물을 포용하니 이는 천덕天德이 경계가 없는 것과 같이 지덕地德 역시 두터워서 경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곤괘의 괘상은 속이 비어 있는(☷) 음효로만 되어 있어 물건을 싣는 수레(輿)와 닮았다 하여 대여大輿(큰 수레)라 하며, 이는 천지를 뜻하는 말(堪輿)로도 쓰입니다. 또 땅의 곤덕은 음도로서 하늘의 건덕과 달리 은은해서 겉으로 표시나지 않고 안으로 머금어 키워서 크게 빛나니 이에 만물이 형통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잘나고 못난 것을 가리지 않고 다 보듬어 줄 수 있는 어머니 같은 대지는 만물이 갖고 있는 고유한 품성대로 잘 길러내서 빛나게 해 줍니다.
* 태모 고수부님은 억조창생의 생명의 어머니이시니라(11:1:1)
* 곤도를 바탕으로 ... 신명을 해원하고 만백성을 조화하여 (11:76:6~8)
* 사람은 잘나든 못나든 모두 천지 자손이니라. 하늘 아래 사는 놈은 다 내 자손이니 사람대접을 잘하라. (11:189:6~7)
* 곤도를 바탕으로 ... 신명을 해원하고 만백성을 조화하여 (11:76:6~8)
* 사람은 잘나든 못나든 모두 천지 자손이니라. 하늘 아래 사는 놈은 다 내 자손이니 사람대접을 잘하라. (11:189:6~7)
이 구절과 관련하여 경복궁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조선의 법궁, 경복궁은 처음 세워질 때부터 주역의 기본 원리인 음양오행은 물론 궁제원리宮制原理(좌묘우사左廟右社, 전조후침前朝後寢, 배북남면背北南面 등)와 전각 명칭 등을 주역에서 많이 인용하였습니다. 전각 명칭 중에서 인용한 예를 들면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를 비롯하여 바로 여기 곤괘 단전에서 따온 내순당乃順堂(乃順承天에서 인용), 함홍문含弘門, 함홍각含弘閣(含弘光大에서 인용) 등이 있습니다.
암말은 곤도의 상징 동물로 유순하면서도 이로움을 주며 또한 변치 않는 정고함이 있기에 군자가 이를 본받아 행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 너머까지 거침없이 달리는 군마群馬처럼 땅의 덕행(地德) 또한 지경地境이 없다는 뜻입니다.
먼저 하늘이 열린 후 땅이 생기듯 땅이라는 것은 하늘로부터 정기를 받아 내려 만물을 길러 내는 곤덕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보다 땅이 먼저 앞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남은 물론 떳떳할 수도 없는 것이죠.
문왕팔괘도에서 보듯이 음들이 모여 있는 서남방은 같은 음끼리 더불어 지낸다는 뜻으로 사람으로 치면 여자가 시집가기 전 상황을 의미하며, 양들만 무리지어 있는 동북방으로 음이 간다는 것은 벗들을 잃는 꼴로, 즉 남의 집으로 시집가서 죽어서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인고의 고된 시집살이를 의미합니다. 그래도 나중에 남편 출세시키고 자식 농사 잘 지어 놓으면 이보다 더 경사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처럼 여자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아야만 성정이 원만하고 조신하는 몸가짐을 배워 시집가서도 부덕婦德을 쌓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집안에는 좋은 일들이 생기듯이 지덕 또한 이와 같아서 그 베풂이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곤도의 덕성이 평안하고 정고한 것이 길한 것은 지덕의 베풂이 끝이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실으니
다음은 대상전을 보겠습니다.
象曰(상왈) 地勢(지세) 坤(곤)이니 君子(군자) 以(이)하여 厚德(후덕)으로 載物(재물)하나니라
대상전에 이르길 땅의 형세가 곤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느니라.
대상전에 이르길 땅의 형세가 곤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느니라.
중지곤괘의 괘상을 보고 공자가 풀이한 대상전입니다. 복희씨가 땅이 생긴 모양이나 형세를 보고 그은 괘가 음효(⚋)가 세 개 있는 곤삼절(☷)이며, 그 곤삼절이 위·아래로 있는 것이 바로 중지곤괘(䷁)입니다. 중지곤괘는 어머니와 같은 땅의 후덕함, 즉 지덕地德을 설명한 괘입니다. 하늘이 무형의 기운을 내려 주면 땅은 생명을 잉태하여 유형의 만물을 길러 냅니다(天氣地形). 우리 눈에 보이는 만물들은 모두 지덕의 덕택으로 나온 것들입니다. 땅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도 땅에서 나와 결국은 땅으로 돌아가니까요. 그만큼 천덕天德 못지않게 지덕이 소중한 것임에도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 선천에는 하늘만 높이고 땅은 높이지 않았으니 이는 지덕地德이 큰 것을 모름이라. (2:51:2)
가운데가 비어 있는 여섯 개 음효로 이루어진 중지곤괘는 지덕의 후덕함으로 만물을 포용합니다. 군자 또한 이 같은 중지곤괘를 본받아 세상을 포용하라 하였습니다.
이 대목은 특히 정음정양의 후천 선경세계를 건설하는 우리 도통군자들에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왜냐하면 후천에는 바야흐로 10천이 열리며 그 10천은 하늘이 아닌 바로 이 땅에서 건설되는 지상천국이니까요.
* 후천개벽과 더불어 곤 도수坤度數가 열려 음도陰道에 의해 만물 생성의 산실인 지구가 우주의 가장 높은 하늘인 십천十天으로 대개벽을 한다. (4:117:5 측주)
다가올 후천 곤도시대는 음양동덕이므로 우선 집안에서부터 아내의 뜻을 존중하고 화목하게 일궈 나가야 합니다. 상제님께서도 천하사의 성공과 실패가 아내의 덕성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천하사의 성패가 지덕의 후하고 박함에 있나니 성인의 심법과 영웅의 도략이 있더라도 지덕地德이 박하면 성공하기 어려우니라. (8:69:1~2)#}
이처럼 한 가정으로 볼 때도 집안에서 지덕의 주인, 아내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상제님께서는 “천지신명이 가정의 기국을 시험하니 부부간에 다투지 말라(8:68)”는 경책의 말씀도 함께 내려 주셨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거창한 천하사를 말하기 전에 “집안에서부터 아내의 뜻을 잘 돌려서 순종하게 하고, 제가齊家를 못해 신명에게 미움을 받는 일이 없도록(8:70)”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아내의 마음을 돌리지 못할 때는 “분란을 이루지 말고 예를 갖추어 경배하기를 날마다 일과로 행하면 마침내 그 성의에 감동하여 순종하게 된다.”(3:245:8~10)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태을랑들에게 지덕의 후한 마음을 쓰는 법으로 서전書傳의 진서장秦誓章에 나오는 “남이 가진 재주를 자기가 가진 것처럼 아끼고 남의 훌륭함과 통달함을 마음으로 좋아하되 비단 말뿐이 아니라면 이는 남을 포용하는 것이니라.”(8:63:2)는 구절을 잘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몇 해 전 필자는 북경의 칭화대淸華大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의 중국을 이끄는 최고 영도자인 시진핑과 후진타오 같은 전·현직 국가주석을 배출한 명문대학인 칭화대의 교훈이 ‘자강불식自强不息 후덕재물厚德載物’인데요. ‘자강불식’은 중천건괘(대상전)에서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느니라’ 그리고 ‘후덕재물’은 중지곤괘(대상전)에서 ‘땅의 형세가 곤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느니라’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제 육효사를 알아보겠습니다.
初六(초육)은 履霜(이상)하면 堅冰(견빙)이 至(지)하니라
象曰(상왈) 履霜堅冰(이상견빙)은 陰始凝也(음시응야)니 馴致其道(순치기도)하여
至堅冰也(지견빙야)하느니라
초육은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되느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된다’는 것은 음이 비로소 엉기는 것이니 그 도를 길들여 굳은 얼음에 이르게 하느니라.
象曰(상왈) 履霜堅冰(이상견빙)은 陰始凝也(음시응야)니 馴致其道(순치기도)하여
至堅冰也(지견빙야)하느니라
초육은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되느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된다’는 것은 음이 비로소 엉기는 것이니 그 도를 길들여 굳은 얼음에 이르게 하느니라.
곤괘는 모두 음효로 되어 있으며 초육은 맨 먼저 나와 음의 위세가 약합니다. 마치 건괘에서 가장 먼저 나온 초구(잠룡潛龍)처럼 물속에 잠긴 어린 용이라서 쓰지 말라고 했듯이 말이죠. 서리를 언급한 것은 곤괘는 음력 10월 괘인데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절기에도 부합되며 비록 지금은 초육으로 음기가 약한 부드러운 서리(霜)지만 나중에는 단단한 얼음(冰)으로 변할 소지가 있으므로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소상전에서도 음기가 처음 엉기는 것이 서리인데 처음부터 조심해서 정도正道를 잃지 않도록 잘 길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혹은 작은 조짐을 보고 사물의 본질인 현저함을 아는 견미지저見微知著와 같이 앞으로 닥칠 일을 미리 내다보고 대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대수롭지 않는 부도덕한 일이라도 방치를 한다면 패륜까지 이를 수 있다고 주역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야생의 어린 짐승을 길들이는 것을 순치馴致라고 하는데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새끼 암말(빈마牝馬)을 잘 길들여서 명마로 만들 듯이 말이죠.
이와 관련한 내용을 도전에서 찾아보면 상제님께서는 “어린 호연이에게 어른 앞에서 앉는 법과 절하는 법 등을 가르치시고 나중에 시집가면 이리해라, 저리해라”(9:140) 하고 여자로서 지킬 모든 예법을 일일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평소 아이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과 애들을 괄시하지 말라고 꾸중하셨습니다.
* 이제 어린아이인데 장차 어찌될 줄 알아서 큰소리를 치느냐? (9:8:7)
그래서 아이들을 꾸짖을 때에도 “데끼(大器) 이놈”, “알성급제할 놈” 등 욕에도 덕을 붙이시고 어린아이들의 심성을 살피시고 “너 커서 뭐 되고 싶냐”는 등 애정을 갖고 물으셨습니다. 부드러운 서리도 계속 밟게 되면 굳어서 단단한 얼음이 되듯 무슨 일이든지 초기에 올바른 길로 들어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時]라는 것이 중요하며 그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습니다.
六二(육이)는 直方大(직방대)라 不習(불습)이라도 无不利(무불리)하니라
象曰(상왈) 六二之動(육이지동)이 直以方也(직이방야)이니 不習无不利(불습무불리)는
地道光也(지도광야)라
육이는 곧고 방정하고 크니라.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느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육이의 동함이 곧고 방정함이니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땅의 도가 빛남이라.
象曰(상왈) 六二之動(육이지동)이 直以方也(직이방야)이니 不習无不利(불습무불리)는
地道光也(지도광야)라
육이는 곧고 방정하고 크니라.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느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육이의 동함이 곧고 방정함이니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땅의 도가 빛남이라.
64괘의 초효·이효 자리는 땅 자리에 해당되며 땅의 덕성은 곧고[直] 방정[方]하고 모든 것을 포용할 만큼 크다[大]는 것입니다. 육이는 곤도의 덕성이 잘 나타난 효로 유순하나 정고하여 곧고, 반듯하며, 만물을 포태하는 큰 덕을 가지고 있어 결실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육이의 ‘직·방·대’한 성품은 굳이 익히지 않아도 몸에 체득이 되어 자연스레 나오기에 이로운 것입니다. 그러니 땅의 도가 빛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 같은 육이의 덕성과 관련하여 상제님께서는 다음처럼 비유하여 말씀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우고서 시집가는 여자는 없느니라(未有學養子而後에 嫁者也라). (10:42:3)
이처럼 하늘은 차별 없이 원만하게(圓) 기운을 뿌려 주고, 또 땅이란 것은 하늘이 내려 준 그 기운을 유순하고 정고하게 그리고 반듯하게(方) 받아들여서 포태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아이가 복중에 있을 때는 반듯하게 앉고, 반듯한 것을 먹고, 마음도 반듯하게 먹어야 하느니라. 그래야 뱃속에 있는 자식이 산모의 조화로 바르게 크는 법이니, 큰자식을 보려거든 마음을 곧게 먹어야 하느니라. (9:215:4~5)
그리고 육이효와 관련한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은 천원지방天圓地方입니다. 하늘은 천구天球를 닮아 원만하고[◯. 圓] 땅은 네모나고 방정하여[□, 方] 하늘을 상징하는 양의 정신은 원만하고 땅을 상징하는 음의 정신은 방정하다는 천원지방 사상은 창세시대부터 내려온 인류 원형문화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룸은 없으되 마침은 있으니
六三(육삼)은 含章可貞(함장가성)이니 或從王事(혹종왕사)하여
无成有終(무성유종)이니라
象曰(상왈) 含章可貞(함장가정)이나 以時發也(이시발야)오 或從王事(혹종왕사)는
知光大也(지광대야)라
육삼은 빛나는 것을 머금어서 가히 바르게 함이니 혹 왕의 일을 좇아서
이룸은 없으되 마침은 있느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빛나는 것을 머금어서 가히 바르게 함이나 때로 발함이요
혹 왕의 일을 좇는다는 것은 앎이 빛나고 큼이라.
无成有終(무성유종)이니라
象曰(상왈) 含章可貞(함장가정)이나 以時發也(이시발야)오 或從王事(혹종왕사)는
知光大也(지광대야)라
육삼은 빛나는 것을 머금어서 가히 바르게 함이니 혹 왕의 일을 좇아서
이룸은 없으되 마침은 있느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빛나는 것을 머금어서 가히 바르게 함이나 때로 발함이요
혹 왕의 일을 좇는다는 것은 앎이 빛나고 큼이라.
양은 밝음, 음은 어둠을 나타내는데 육삼은 양 자리에 있으므로 빛나긴[含章] 하지만 내괘에서 외괘로 넘어가는 위태로운 자리라서 바르게[可貞] 해야 합니다. 이는 비록 육삼의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드러내지 않고 속에 잘 간직하여 올곧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신하라면 군왕의 뜻에 따르고, 지어미라면 지아비에게 따라야 하죠[或從王事]. 그래서 신하[지어미] 입장에서 공적은 군주[지아비]에게 돌아가지만[无成] 그 공을 인정받아 공명과 부귀는 얻게 된다[有終]는 뜻입니다.
소상전에서 음도는 빛남을 발현할 때는 드러내려 하지 말고 때를 봐서 은미隱微하게 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하늘의 뜻과 지아비에 순종하는 선미후득先迷後得하는 미덕을 지닌 곤도는 밝은 지혜와 큰 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六四(육사)는 括囊(괄낭)이면 无咎(무구)며 无譽(무예)리라
象曰(상왈) 括囊无咎(괄낭무구)는 愼不害也(신불해야)라
육사는 주머니를 매면 허물이 없으며 (또한) 명예로움도 없느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주머니를 매면 허물이 없다’는 것은 삼가면 해롭지 아니함이라.
象曰(상왈) 括囊无咎(괄낭무구)는 愼不害也(신불해야)라
육사는 주머니를 매면 허물이 없으며 (또한) 명예로움도 없느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주머니를 매면 허물이 없다’는 것은 삼가면 해롭지 아니함이라.
육사는 군왕을 모시는 최측근 자리이므로 입조심하기를 마치 주머니 입구를 꽉 잡아매듯 조심하고 또 조심하니 허물이야 짓지 않겠지만 그렇게만 한다면 공을 세울 일도 없으므로 당연히 명예로울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짓는 허물 중에 입으로 저지르는 허물이 많습니다. 그래서 상제님과 태모님께서는 천하사 일꾼들에게 입단속을 하라고 경책의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 평생 선善을 행하다가도 한마디 말로써 부서지나니 부디 말조심하라. (8:28:6)
* 사문死門은 입 구멍이요, 입은 사문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못 하느니라. 병病은 입으로부터 들어가고 화禍는 입으로부터 나오느니라.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라. (11:223:3~5)
특히 입 공부로 천하창생들을 살려내는 우리 일꾼들은 남의 가슴에 상처 주는 말을 하거나 말부터 앞서는 허세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삼사일언三思一言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 말을 좋게 하면 복이 되어 점점 큰 복을 이루어 내 몸에 이르고, 말을 나쁘게 하면 화가 되어 점점 큰 재앙을 이루어 내 몸에 이르느니라. (3:97:6)
* 말부터 앞서면 일이 안 되나니 일을 도모할 때에는 뒷감당을 해 놓고 말해야 하느니라. (8:7:8)
* 말부터 앞서면 일이 안 되나니 일을 도모할 때에는 뒷감당을 해 놓고 말해야 하느니라. (8:7:8)
그렇다고 창생들을 구제하는 천하사 일꾼들이 마냥 입을 다물고 있는 괄낭括囊만 해서는 안 되겠지요. 크게 외쳐야 할 때는 목이 터져라 외쳐야 합니다.
또한 후천 대개벽기에 창생들을 건져 열매 맺는 큰 일꾼이 되려면 상제님의 진리를 참되게 전할 수 있는 법의 입[法口], 진리의 입을 갖추어야 합니다.
* 공부는 입 공부가 가장 크니라. (5:434:5)
누런 치마면 길하리라
六五(육오)는 黃裳(황상)이면 元吉(원길)이니라
象曰(상왈) 黃裳元吉(황상원길)은 文在中也(문재중야)라
육오는 누런 치마면 크게 길하리라.
소상전에 이르길 ‘누런 치마가 크게 길하다’는 것은 무늬가 가운데 있음이라.
象曰(상왈) 黃裳元吉(황상원길)은 文在中也(문재중야)라
육오는 누런 치마면 크게 길하리라.
소상전에 이르길 ‘누런 치마가 크게 길하다’는 것은 무늬가 가운데 있음이라.
육오는 가운데(中) 있고 중앙은 황색이며 또 군왕의 자리이므로 황제가 입는 황룡포黃龍袍인 황상을 얻었습니다. 황상은 문언전에서 말하길 “육오 군자는 땅의 중덕에서 이치를 통하는 황중통리黃中通理를 해야 아래에서 바르게 거처하는 정위거체正位居體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진리적으로 보면 “황중통리는 황黃은 황皇이고 중中은 토土로 황중은 5황극의 정신을 상징하고, 토는 진辰과 술戌에 해당 한다”(6:137:2 측주)고 종도사님께서 밝혀 주셨습니다. 이를 인사로 보면 진토의 덕성을 지닌 태모님과 술토의 덕성을 지닌 태상종도사님을 의미합니다.
* 상제님께서 수부님께 도통道統을 전하시어 무극대도를 뿌리내리시고 그 열매를 수화水火(坎離)의 조화 기운을 열어 주는 태극과 황극의 일월용봉 도수에 붙이시어 신천지 도정道政의 진법 도운을 여시니라. (6:2:2~4)
중천건괘가 상제님을 상징하는 괘로 구체적으로는 비룡재천飛龍在天(구오효)이듯 중지곤괘는 태모님을 상징하는 괘로 구체적으로 황상원길黃裳元吉(육오효)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육오는 “상제님으로부터 무극대도의 종통대권을 이어 받은 하늘땅과 억조창생의 머릿여자(首婦)이시며 온 인류의 생명의 어머니(太母)”(11:1:1 측주)로 등극하신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 수부도수首婦度數로 천하 만민을 살리는 종통대권宗統大權은 나의 수부, 너희들의 어머니에게 맡긴다. (11:345:7)
그리고 곤괘는 비록 속에는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지만 곤도 특유의 유순한 중덕中德의 미덕을 지니고 있어 크게 길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소상전에서는 이런 육오의 곤덕坤德이 길한 것은 은은한 중덕의 무늬(아름다움)를 드러내니 빛나고 있다고 합니다.
上六(상육)은 龍戰于野(용전우야)하니 其血(기혈)이 玄黃(현황)이로다
象曰(상왈) 龍戰于野(용전우야)는 其道窮也(기도궁야)라
象曰(상왈) 龍戰于野(용전우야)는 其道窮也(기도궁야)라
상육은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렇도다.
소상전에 이르길 ‘용이 들에서 싸운다’는 것은 그 도가 궁함이라.
중천건괘 상구는 양기가 극성한 용이 너무 높이 올라가 후회막급이듯, 중지곤괘 상육 또한 음기가 극성하여 하늘에 있는 용까지 땅으로 끌어내려 격렬한 싸움을 벌인다는 것입니다. 이는 ‘음양의 교전’으로 용龍은 양陽을, 들판[野]은 음陰을 나타냅니다. 음양의 교합으로 유혈이 낭자한데 그 피의 색깔이 하늘은 검어서(天玄) 검은 피를, 땅은 누렇기에(地黃) 누런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문언전의 설명은 “무릇 현황玄黃이라는 것은 천지의 섞임이니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니라.”라고 하였으며, 천자문의 첫 구절인 천지현황天地玄黃도 바로 이 구절에서 나왔습니다. 원래 유순하고 순종하던 음효가 용을 불러들여 싸운다는 것은 곤도坤道가 막다른 데까지 이른 것이라고 소상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用六(용육)은 利永貞(이영정)하니라
象曰(상왈) 用六永貞(용육영정)은 以大終也(이대종야)라
용육은 오래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용육의 오래하고 바름’이란 큼으로써 마치는 것이다.
象曰(상왈) 用六永貞(용육영정)은 以大終也(이대종야)라
용육은 오래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용육의 오래하고 바름’이란 큼으로써 마치는 것이다.
용육은 중지곤괘의 초육부터 상육까지 여섯 효를 다 쓴다는 것입니다. 중지곤괘의 여섯 음 효들이 발동을 하면 모두 양효인 중천건괘로 바뀝니다. 즉 중천건괘와 중지곤괘는 그 뿌리가 같습니다[陰陽同德]. 어머니가 배 속의 아기를 품고 있는 열 달 동안 조신하고 삼가듯이 곤괘는 생명의 씨를 잉태하는 숭고함이 있기에 영구히 정고함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고 말합니다. 곤괘는 음도를 주장하기에 원형이정 사덕 중에서 음기가 충만한 가을·겨울의 정신인 ‘이정利貞’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정고·정절’은 곤덕의 주요한 덕성으로 곤괘의 여섯 음효에 담긴 정고함을 잘 길러서 마무리하여야 한다고 소상전은 말합니다.
선을 쌓은 집안은
積善之家(적선지가)는 必有餘慶(필유여경)하고
積不善之家(적불선지가)는 必有餘殃(필유여앙)이라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런 일이 넘치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넘쳐 난다.
積不善之家(적불선지가)는 必有餘殃(필유여앙)이라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런 일이 넘치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넘쳐 난다.
이 구절은 흔히 적덕지가積德之家와 적악지가積惡之家로 많이들 알려져 있는데요. 원래 중지곤괘(문언전)에 나오는 말로 종가집의 고택 같은 데서 많이 보는 글귀입니다. 이 구절은 태상종도사님 말씀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사람 종자, 알캥이를 맺는 것은 조상에서부터 생활을 잘해야 되는 것이다. 조상에서 사회생활을 잘못하면 그 자손들은 가을철에 가서 빈 쭉정이밖에 안 된다. 남에게 잘해 주고 적덕을 하면 자손에게 그 업적과 덕이 물려져 그 복이 자손에게 돌아가고, 못되게 생활하면 그 남은 악이 자손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다. 사람이 좋게 살아서 좋게 사회생활을 하면 그 자손에게 복이 돌아간다. 그렇게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 가을이 되면 사람 씨알을 추린다.”
* 선령신이 짱짱해야 나를 따르게 되나니 선령신을 잘 모시고 잘 대접하라. 선령신이 약하면 척신을 벗어나지 못하여 도를 닦지 못하느니라. 선령의 음덕蔭德으로 나를 믿게 되나니 음덕이 있는 자는 들어왔다가 나가려 하면 신명들이 등을 쳐 들이며 ‘이곳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이르고 음덕이 없는 자는 설혹 들어왔을지라도 이마를 쳐 내치며 ‘이곳은 네가 못 있을 곳이라’ 이르느니라. (2:7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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