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이 펼치는 신앙의 하모니(박봉서, 천애자)

[가가도장]
박봉서, 천애자 도생
서울은평도장에서 신앙을 하고 있는 박봉서, 천애자 도생 부부는 도장에서 부포정과 재정을 맡아 봉직하면서, 늘 드러내지 않고 성심을 다해 봉사하며 솔선수범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확고한 종통관과 신앙관을 바탕으로 맡은 바 직분과 역할들을 잘 이해하고 실천할 뿐만 아니라, 늘 최선을 다해 도정에 집중하고 참여하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사랑스러운 네 딸과 더불어 도방에서 건실한 신앙문화를 열어가고 있는 이 가정의 행복한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딸부자 집에 들어찬 화사한 기운


“부부란 인도人道의 시작이요 만복萬福의 근원이니라.” 도전 9편 123장에 있는 상제님의 말씀이다. 예로부터 가정은 가장 친밀한 혈연집단인 가족이 함께 살아가며 생활하는 가장 작은 사회 집단이자 서로의 감정과 가치 규범을 공유하는 생활 통일체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가족 구성원 간에 서로 믿음을 갖고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가풍을 만들어 가고 통일성을 갖추어 가는 것은 든든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가정이 바로 그러한 곳이다. 서울은평도장에서 신앙하고 있는 박봉서, 천애자 도생이 이룬 가정은 상제님 신앙을 중심으로 굳게 결속되어 있는 도방의 영역이 절대적인 삶과 가치의 중심이 되어 있다. 이 바탕 위에 두 부부의 신앙 역정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네 딸이 읽는 낭랑한 태을주 소리가 수려한 화음을 선물하며 가족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다. 그래서 이번 도방 취재는 그 조화로운 화성和聲을 듣는 것만으로도 저간의 사정과 이야기들이 충분히 느껴지고 이해가 될 만큼 편안하고 아름다운 시간들로 채워졌다.

7월의 첫 토요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 있는 이 도방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차량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고서도 몇 차례 골목을 돌고 돌아 헤매다가 마중 나온 박봉서 도생을 만나고서야 상황이 종료되는 촌극을 벌였다. 주택 4층에 도착해 들어선 도방은 고생 끝에 기어이 찾아낸 보물처럼 상큼하고 온화한 느낌으로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엄마인 천애자 도생과 고교생인 둘째 딸 박찬원, 중학생인 셋째 딸 박찬주, 그리고 여섯 살의 애교 넘치는 막내딸 박가영 도생이 함께 보내준 따뜻한 환영의 인사는 이날 도방 인터뷰의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결정타였음은 물론이다.

가정도장의 첫인상은 막내의 귀여운 미소만큼이나 밝고 차분했다. 딸부자 집에서 발하는 생동감과 화사함이 아기자기한 기운과 어우러져 공간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출입문 오른쪽 편에는 천신단 전용으로 쓰는 도방이 조성되어 있는데, 벽면 중앙에 마련된 천신단에는 상제님 어진과 태모님 진영 아래 가족의 수만큼 청수가 모셔져 있고 양옆으로 비치된 책꽂이에는 진리서적 및 홍보, 포교에 필요한 각종 자료들이 준비되어 있다. 가족들은 일상의 삶에서 야기되는 여러 문제들을 기도와 수행을 통해 풀어가는 신앙체험의 살아있는 공간으로 이곳을 활용하고 있다.

가족들이 나란히 앉으면 딱 들어맞는 소파가 놓인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부부 도생의 신앙과 삶의 이야기, 그리고 개성 만점인 딸들의 대견한 소감들을 하나씩 들어보았다.

진리 감동과 영적 체험이 이끈 도문


박봉서 도생은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하기 전인 1993년, 학과 선배가 준 <한민족과 증산도> 소책자를 감명 깊게 읽은 것이 입도의 계기가 되었다. 그는 책을 읽는 동안 한민족의 웅대한 역사 이야기를 접하면서 가슴이 벅차올랐고, 그동안 ‘우리 민족은 진짜 그동안 배웠던 것처럼 그렇게 별 볼 일 없는 민족일까’라는 막연한 의구심에 시원한 해답을 얻은 것 같아 너무 뿌듯했으며, 정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또한 우주 일년 이야기를 읽으면서 ‘왜 착한 사람이 어렵게 살고 나쁜 짓하고 못된 사람들이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있는가? 왜 세상은 이렇게 갈등과 대립 속에서 굴러갈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그동안 고민해왔던 의문에도 시원한 답을 얻게 되었다. 아울러 종교 간의 갈등과 이로 인한 전쟁의 모습들을 보면서 각 종교에서 믿는 절대자가 같은 분일 텐데 왜 저렇게 싸워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았는데 “예수, 석가, 공자는 다 내가 쓰기위해 내려보냈느니라.”라는 상제님 말씀을 읽고 비로소 정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소책자를 통해 감동을 받은 이후에도 <이것이 개벽이다> <증산도의 진리> <도전> 등을 읽어가고 자연스럽게 도장을 방문하고 치성에도 참석하면서 그해 7월에 서울동대문도장에서 입도를 하게 되었다.

천애자 도생 역시 동대문도장에서 1992년 입도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춘천에서 신앙하고 있던 언니가 어느 날 증산도 얘기를 꺼내면서 우주에도 지구처럼 4계절이 있다는 우주 일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도 해서 언니를 따라 춘천도장에 방문을 했고, 교정님 말씀을 듣고서 수행을 했는데 도중에 인당에서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빛이 보여 너무 신기한 느낌을 가졌다고 한다. 그 후 몇 차례 혼자서 집에서 가까운 동대문도장을 방문하고 매일같이 가서 진리공부와 수행을 하며 다니다가 언니가 마련한 조상천도치성 준비를 하며 강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고, 이후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나서 입도를 했다.

천 도생은 영靈이 밝아서 수행을 통한 영적 체험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입도 당시의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던 천도식 준비 과정에서의 체험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입도 후 언니가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천도성금을 마련해 조상 선령의 천도식을 올리게 되었고 저도 동참해서 정성수행을 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새벽에 일을 나가셨는데 천도식 전날 제가 꾼 꿈속에서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이 켜져 건너시는데 큰 트럭이 달려와서 아버지를 치는 모습이 보였어요. 놀라서 잠에서 깨어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는데 벌써 아버지는 일을 나가신 뒤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녁 6시 30분에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는 거예요. 저는 무척 당황스럽고 놀라서 울며 1시간을 걸어서 병원에 도착했고 어머니로부터 그날 밤이 생사의 고비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무도 겁이 난 저는 그길로 혼자 동대문도장까지 2시간 거리를 울면서 걸어가 천도식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시고 아버지를 제발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다행히 천도식을 무사히 마치고 난 후 아버지께서 고비를 넘기시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매일같이 도장에 가서 21일 정성수행을 했는데 그 기간 중에 병원에서는 아버지의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절대로 안 된다고 울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1주일을 기다려 달라고 매달렸어요. 그리고서 도장에 가서 아버지를 위해 500배, 1000배례를 했는데 5일째 날에 수행을 하던 중에 태모님께서 태을주 족자를 내려주시는 모습을 뵈었어요. 그래서 도장에서 태을주 주문지를 받아와서 엄마 몰래 아버지 베개 속에 접어서 넣어드렸습니다. 그 후 꿈속에서 아버지가 두 다리로 걷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저는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것이 현실로도 나타나 아버지는 두 다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의사 선생님이 여태껏 이런 일이 없었는데 정말 기적이고 신기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 조상님께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는 한쪽 다리가 불편하시기는 하지만 잘 지내고 계십니다. 제가 어린 나이에 이런 체험을 하면서 신앙을 더욱더 굳건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영적 체험을 한 이래 지금까지도 천 도생은 증산도를 만나게 해주신 태사부님, 사부님, 조상님께 항상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 종도사님을 늘 강건히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과 함께 가족이 어떠한 역경에서도 상제님 신앙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기도의 중심 주제라고 한다.

시댁의 조상선령을 만나뵙다


이러한 두 사람이 결혼에 이르게 된 것은 같은 도장에서 신앙하고 있던 인연이 작용했다. 그 당시 도장에서 경리 업무를 맡고 있던 천 도생은 청년부신도들과 어울려 철야수행을 계속 했었는데 어느 날 두 사람씩 조를 짜서 신유체험을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박 도생과 한 조가 되어 신유를 번갈아서 하게 되었다. 그때 문득 박 도생은 ‘조상님들이 우리를 밀어주고 계시는구나’라는 분명한 느낌을 가졌고 그 사실을 천 도생에게 이야기를 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교제를 시작해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 천 도생은 시댁에 처음 방문한 날 안방에서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자리에서 영으로 남편의 4대 조상님들이 갓을 쓰고 하얀 두루마기를 입으신 채 앉아 계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천 도생은 자신이 이 집안에 들어와서 뭔가 할 일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 겪은 난관은 녹록치 않았다. 먹는 문제로 힘들어 할 만큼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눈물겨운 생활을 하면서 천 도생은 “제가 이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상제님 신앙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라며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더구나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이 기독교 신앙을 하셨던 탓에 결혼 당시나 그 이후에도 환대받지를 못했던 점도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 도생은 상제님 신앙을 놓치지 않고 계속 하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시댁의 일원으로서 도리를 다하고자 노력을 했다. 시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10년을 모시면서 목욕 등 수발을 할 때는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시아버지께서 타계하신 후 시어머니와 시댁식구들로부터 조금씩 인정을 받게 되면서 지금은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천 도생은 시댁 가족들이 증산도문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수시로 해왔는데, 어느 날은 꿈에서 목격한 생생한 개벽상황에서 시댁 식구 한 분만이 모래사막에 있는 교회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본 천 도생은 그 분이 상제님 도문에 들어오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고 크게 상심한 적이 있다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신앙으로 이해하고 격려하는 부부의 삶


박 도생은 온화하고 포용적이며 자신을 내세우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평가받고 있다. 천 도생 역시 심성이 착하고 남 도와주기를 좋아하며 봉사에 열심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공히 인망도 무난하고 신앙을 우선시하며 도무에 대한 성실함과 집중도가 높아 도장에서 봉사의 직책을 맡고 있는데, 박 도생은 부포정으로 천 도생은 재정으로 봉직하고 있다. 박 도생은 봉직과 관련해 몇 마디 소회를 밝혔다.

“많이 부족하지만 도장에 봉사해야 할 누군가가 있어야 하기에 그런 마음으로 보직을 맡고 있습니다. 부부가 보직을 맡아 신앙을 하다 보니 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집안이나 아이들에게 신경을 제대로 써주지 못하는 면이 있어서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대신 한번이라도 더 기도하고 태을주를 읽어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아이들도 잘 감당을 해주고 있어서 고마운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아내와 제가 같이 보직을 맡고 있어 관련 업무에 신경을 쓰다 보면 스트레스도 받고 피곤할 때도 있어 부끄럽지만 종종 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직을 맡고 있는 입장을 서로 알기 때문에 좀 시간이 지나면 이해하게 되고 또 서로 격려도 해주게 되는 것은 저희 부부신앙의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깨닫는 것이 중요한 이유


박 도생은 입도 후 세상이 많은 모순과 부조리 속에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답답했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상제님 말씀에 이미 그 답이 있었지만 깨닫지를 못해서 그런 것이었는데, 그렇게 답답해하던 중에 문득 “지금은 난법 해원시대이니라.”라는 성구가 생각이 나면서 귀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리며 지각이 열리는 체험을 했다. 그에게 그것은 단순히 아는 것과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 크게 다른 것임을 강렬하게 느낀 경험이 되었다.

올해로 결혼 20년차를 맞는 박 도생은 어려움 속에서 깨친 재정 심법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결혼 후 중반까지 어려웠던 가정 재정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한때는 탈출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고 막다른 골목에 서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면서 ‘녹 떨어지면 죽느니라’는 상제님 말씀의 의미를 한편으로 알게 되었고 ‘마음을 알아보려면 돈을 불러 보아야 하느니라’는 말씀의 의미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정성들여 헌성하는 성금이 다름 아닌 우리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던 경험이었습니다.”

통상적으로 살펴보면, 어려운 경제적 압박이 다가왔을 때 주변 환경과 신세를 탓하고 원망을 쏟아내면서 스스로 무너지고 추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박 도생은 직면한 역경 속에서 의미와 자존을 찾고 진리적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사고와 용기를 보여주었다. 상제님 진리를 신앙하는 도생으로서, 신앙이란 어떤 것이고 깨달음을 안겨주는 진리적 감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확인해 볼 수 있는 사례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진리와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이탈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동안 신앙을 해오면서 많은 동료 도반들이 들어오고 또 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혼자서 해보곤 하면서 제 자신은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끝까지 진리를 지키고 도장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십사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일반 도생 시절을 거치고 도장에서 조그만 책임을 맡아보곤 하면서 제 자신이 노력했던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했던 겁니다. 일반 도생이었을 때는 구역포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려고 했고, 그렇게 자꾸 생각을 하다 보면 포감의 입장과 역할이 이해가 되고 내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점을 볼 수 있게 되면서 구역활동에서 좀 더 능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도생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반 도생은 포감의 입장에서, 포감은 수석포감의 입장에서, 수석포감은 도장 책임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게 되면, 정말 지금보다 더 통정이 되고 화합이 되고 단순한 의무감이 아니라 좀 더 즐겁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조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은 서로를 이해하고 융합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렇게 바라보고 적절한 행동과 노력을 해왔다는 점 또한 진리적 입장에서 깨달음의 중요성을 잘 알려주고 있는 체험 사례라 할 수 있다.

도방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신앙의 거울


진리와 체험의 감동으로 신앙을 시작했고 어려운 시기도 신앙으로 함께 견뎌냈으며 아이들이 반듯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 지금, 이들 부부에게 도방은 과연 어떤 의미로 각인되어 있을까?

박 도생은 도방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을 했다.

“신앙을 하고 있는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가도장을 준비하게 되었고 아이들이 하나 둘 태어나면서 청수그릇도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기독교 신앙을 하시는 어머니 청수까지 7개를 모시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가족들이 기독교 신앙을 하기 때문에 집에서 혼자 청수를 모시면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는데, 가가도장을 운영하면서 저희 가족이 함께 청수를 모시고 수행을 하는 천신단이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마음 든든합니다. 도장과 도정에 참여를 하면서도 집에 천신단을 모시고 있음으로 해서 나태해져 있다가도 다시 반성을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도방은 신앙의 거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한 가정도장에서의 자식들 신앙교육에 대한 생각도 언급을 했다.

“딸아이들을 키우면서 마음으로는 내 자식이니까 알아서 신앙도 잘 하겠지 하는 마음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태신앙으로 시작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나이만큼 도장을 다녔지만, 막상 지나고 보니 그게 저만의 생각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착해서 부모의 말을 잘 따라주는 편이지만 막상 상제님 신앙을 왜 해야 하는지, 왜 도장에 가야 하는지, 왜 수행을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태상종도사님께서 ‘만원이면 타지 마라’는 어느 아버지의 자식 교육 얘기를 가끔 해주셨던 것이 많이 생각이 납니다. 요새는 아이들에게 신유술 3년의 의미와 수행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요철야수행에 한 명씩이라도 돌아가면서 참석을 해보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최소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아이들과 함께 도전을 읽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공부하지 않고 아는 법은 없다’는 말씀을 진작 깨달았더라면 좀 더 아이들에게 신앙의 틀을 잡아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둘째 딸이 수년째 꾸준히 봉청수와 수행을 해오고 있고 자매 사이에 신앙의 중심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 고맙고, 셋째 딸도 조금씩 봉청수와 수행의 의지를 다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함을 느끼곤 합니다.

상제님 진리가 열매진리이고 또 인류를 성숙시켜 인간 열매를 길러내는 진리이기 때문에 상제님 신앙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직장생활과 신앙생활, 도장 보직수행 그리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 돌이켜 보면 쉽지만은 않았던 시간이었는데, 지금까지 신앙을 놓치지 않고 올 수 있었던 데는 같이 신앙을 하는 아내의 도움, 그리고 천신단을 모시고 온 가족이 같이 기도하고 수행을 하는 가가도장이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제님 진리를 제대로 신앙해나가기 위해서 가가도장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 도생도 가정도장의 의미와 일화로 말을 이었다.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신단을 모시며 가가도장을 만들었고, 저희 가족은 언제나 신단 앞에 가서 기도하고 수행을 해왔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와 수행과 배례로 역경을 이겨냈습니다. 가가도장이 있으므로 저희 가족은 행복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청수 모시고 수행과 기도를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도 합니다.

또 한번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이사를 하기 위해 보증금이 시급히 필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답답한 가운데 집에서 기도와 수행을 하던 도중에 시할머님이 영으로 나타나셔서 실타래를 던져주시는데 실타래가 확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수행을 마치고 나니 마음과 몸이 너무나 개운했습니다. 며칠 후에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보증금을 줄 테니 그것으로 이사를 하라고 해서 무사히 이사를 하게 된 경험도 있습니다.”

기도와 정성이 이룬 선물들


박 도생은 가정도장에서의 신앙력을 바탕으로 은평도장 조직 운영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도장이 역촌동의 소형 공간에 있다가 2000년경 지금의 큰 장소로 옮길 때, 도장 이전을 위한 정성을 모으는 과정에서 박 도생은 많은 도생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기도와 수행에 집중하였고, 그 결과 별 기대 없이 찾아간 도생으로부터 적잖은 정성과 참여를 이끌어낸 경험들을 했다고 한다.

또한 포정님과의 상의를 통해 여건상 치성 참석을 잘 못하고 있던 두 분의 도생에게 천도식을 모시게 해서 이를 계기로 신앙의 자리를 잡아나가도록 돕자는 데 공감을 하였다. 그리하여 포정님, 구역포감님, 재정님과 함께 도장에서 기도 수행을 하며 칠성경을 읽어드렸고, 그 결과 그 도생분들과 다른 분들이 여러 차례 도담을 나누고 마음을 열어나가면서 천도식을 하게 되었다. 천도식을 준비하면서 한 도생은 직장에서 그리고 주말에는 도장에서 정성수행에 최선을 다하였고, 다른 도생은 매일 퇴근 후 11시나 되어야 도장에 와서 새벽까지 수행을 하면서 끝까지 정성공부를 마치고 천도식을 잘 모시게 되었다. 또한 천도식 후에도 두 분 도생이 최선을 다해 치성에 참석하고 도장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과 환해진 얼굴을 보면서 책임자를 중심으로 보직간부가 뜻을 모으고 기도와 정성을 들이는 것이 참으로 큰 힘을 발휘함을 느꼈다고 한다.

천 도생은 1994년경 태상종도사님께서 육임을 짜야 된다고 말씀을 하셨을 당시 도장에서 21일 정성수행과 배례를 하면서 육임을 짜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러던 중 인당에서 환하게 영으로 누군가 6명을 보여주었는데 수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서 방문을 열어보니 동생 친구 6명이 있었다. 그래서 증산도 진리와 수행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모두 도장을 방문해보고 싶다고 하여 도장으로 인도되었고, 교정님 말씀을 듣고 1주일 동안 수행을 같이 하는 과정에서 빛을 보는 등의 체험을 하고 입도로 연결된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간절한 기도와 정성이 입도의 선물로 이어진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들 부부 도생은 도장 보직을 수행함에 있어 확고한 종통관과 신앙관을 바탕으로 사명감을 갖고 임한다는 중평을 받고 있다. 또한 치성 외의 금요 철야수행 등에도 대부분 빠짐없이 참석하며 주 평균 4회 정도 도장 중심의 정성수행을 하고 있다. 도장 책임자의 도정 집행에도 적극 조력하며 함께 움직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사실들과 평가들은 이들이 기본적으로 깊은 신앙심과 봉사의식을 갖고 있는 도생임을 드러내주는 징표가 되고 있다.

가정과 도장을 내실있게 이뤄나갈 것


도방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바라고 싶은 서원을 물었다.

박봉서 도생은 “아직은 저희 가족만 모이는 가가도장이어서 그 이름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다른 사람과 같이 모여서 도담을 나누고 수행을 하고 진리공부를 하는 명실상부한 가가도장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신유술 천일기도를 통해 개벽이 언제와도 감당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쳐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부포정 보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신앙과정에서 한편으로 지치기도 하고 또 신유술의 천명을 내려받는 큰 시운에 잠시 주춤하는 도생들도 있지만, 신유술 3년 동안 많은 성장을 이뤄내야 하는 큰 목표도 주어져 있기에 도장책임자를 잘 받들고 도장에 더욱 봉사하여 도장 내실화와 성장을 이루는 데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천애자 도생은 “태을랑으로서 신유술 3년의 중요한 시기를 맞았기에 이제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진리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상제님 진리를 널리 전하고 굳건하게 헤쳐 나가겠습니다. 또한 가정도장은 가족이 최선을 다해 만들고 이뤄야 할 최종 상품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가정도방을 챙겨가면서 ‘뿌듯하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정말 대견스럽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결집할 수 있는 도방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한편 뷰티아트 쪽에 관심을 두고 있는 둘째 딸 박찬원 도생은 도방에서 자매들의 수행과 치성 참석을 챙기면서 부모님과 함께하는 신앙을 하고 싶고 친구들을 진리로 많이 인도하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손재주가 뛰어나 애니메이션 분야에 소질을 보이고 있는 셋째 박찬주 도생은 무거운 부담을 갖기 보다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스스로의 바른 신앙을 만들어가겠다는 씩씩한 포부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호 도방 이야기는 딸부자 집 부부의 생생한 신앙 스토리였다. 기사 첫머리에서 인용한 성구 말씀과 같이 부부란 인도의 시작이요 만복의 근원이다. 부부가 지닌 사고방식과 실천의지가 가족의 인도적 기틀을 만들고 가정의 분위기와 화목을 좌우하며, 만 가지의 복을 창출해 내는 토대 역할도 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박봉서, 천애자 부부 도생은 최소한 상제님 신앙을 주제로 한 가가도장 운영에 있어서는 내공이 깊은 경영자이며, 아주 단호한 신앙의식과 종통관을 지닌 봉사자로 칭할 수 있다.

이들 부부는 서로가 인정하는 분명한 진리의식과 신앙정신을 갖고서 그에 걸맞는 도방의 터전을 설계하고 그 속에서 딸아이 넷을 주체적 신앙인으로 양육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했다. 아이들에게 도장 중심 신앙의 이유와 수행의 중요성을 늘 반복해 주지시키고, 도정에 참여하며 서로를 돕고 봉사하는 것이 행복한 일이요 큰 힘을 가져다 주는 일임을 이해시키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특히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봉청수 올리고 기도와 배례와 수행이라는 영적 근본신앙을 통해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신앙훈련을 실천을 통해 가르친 점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박봉서 도생은 가정 도방을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케 하는 신앙의 거울로 표현했고, 천애자 도생은 도방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가족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근원처임을 강조했다. 부모가 신앙의 중심을 잡고 실행에 옮기면 자식도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르기 마련이다. 이는 우리 신앙문화에 있어 사필귀정의 존재 원리라고도 할 수 있다. 두 분 도생의 가정에 천지일월과 선령신의 신령한 기운이 가득 차오르기를 소망한다.


네 딸들에 얽힌 체험과 사연들
자매들의 근본신앙 박봉서, 천애자 도생은 슬하에 딸 넷을 두고 있다. 이들 부부에게 네 딸은 보물과 같은 귀한 존재이다. 단지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한 차원의 귀함이 아니다. 자식들 모두가 근본신앙으로 스스로를 간수할 줄 아는 경계에 이를 만큼 열심히 그리고 순수하게 앞가림을 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부모나 자식이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 가족도 부모가 네 딸을 키우면서 항상 아이들이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며 지성으로 태을주를 읽어왔다. 그 공력이 닿았기 때문일까? 자식들은 스스로 가정에서 봉청수, 배례, 정성수행을 매일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둘째 딸인 박찬원 도생은 가정이나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닥칠 때 정성수행으로 극복한 예가 꽤 있을 만큼 근본신앙이 잘 뿌리내린 상태이다. “작년에 저는 학교에서 어울리던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아져서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기도와 수행, 배례를 하면서 친구들과 다시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21일 정성을 들였습니다. 21일 정성공부를 마치고 나니 신기하게도 친구들이 하나 둘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친구들과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박찬원 도생이 전하는 체험 사례이다. 자신에게 발생한 문제를 신앙을 통해 스스로 끌러내는 신앙 습관이 정착되어 있는 걸 알 수 있다.

셋째 딸 박찬주 도생 또한 수행으로 예지몽을 꾼 체험을 전했다. “어느 날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학교 우리 반에서 물건이 없어지는 일이 일어났고, 저는 그 물건을 가져간 아이가 누구인지 보게 되었습니다. 꿈을 깨고 나서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학교에 갔더니 그날 꿈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꿈속에서 본 아이가 실제로 그 물건을 가져간 것을 알고 저는 깜짝 놀랐고 신기했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게 된 것이 제가 수행을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여섯 살로 제일 어린 막내딸 박가영 도생은 어떨까? 주변의 평을 들어보니 그 활약상이 놀랍다. 봉청수도 스스로 척척 해내고 언니들을 따라 심고문, 태을주, 운장주를 카랑카랑하게 잘 읽고 도공도 잘 따라 할 뿐만 아니라 도장에서 또래 유아들의 수행을 곧잘 리드할 정도로 신통방통한 구석을 보이고 있단다. 취재를 간 그날도 도방 앞줄에 앉아 언니들이 무색할 정도로 태을주를 또박또박 야무지게 읽어댔다.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이 꼬마 아가씨는 취침을 할 때면 “아빠, 저 자야 하니까 태을주 읽어주세요.”라고 천연스럽게 말할 정도로 신앙 문화에 익숙해 있다.

이렇게 자식들의 근본신앙은 그 기초가 든든하게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결코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생활신앙을 통해 알게 모르게 가르친 교육과 훈련의 결과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천 도생은 평소에도 아이들이 상제님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으니 같이 잘 해나가자는 기도를 꼭 올린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진심을 담아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속에서 우뚝 서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해주곤 하는데, 어느 날은 둘째 딸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아빠 조금만 더 고생하세요. 제가 돈 벌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신도의 은혜로 살린 자식들 이렇게 소중하고 대견한 딸들을 얻기까지 부모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찔한 체험을 해야 했다. 둘째 딸 찬원이가 6살 때 당한 사고가 그것이다. 엄마인 천 도생은 동네 마트에 찬원이를 데리고 갔었는데, 영적으로 민감했던 천 도생은 이마트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떨리고 불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카트에 아이를 앉혀 놓고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줌마가 아이가 떨어질 것 같다고 얘기를 해주는 순간 아이가 공중으로 떠서 돌더니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아이가 공중에서 돌 때 보니 아이 옆에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는 신명이었다. 급히 아이를 데리고 동네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해보니 두개골이 반으로 갈라졌다고 했고, 아이는 며칠 동안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천 도생은 아이를 잃어버릴까봐 울면서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 조상님께 아이를 꼭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러던 중 아는 후배의 주선으로 강북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겼고, 그로부터 이틀 만에 아이가 깨어났다.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 조상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더 열심히 상제님 신앙을 하자고 굳게 다짐을 했다.

한편 셋째 딸 찬주는 산부인과에서 건강하게 태어났다.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틀이 지나서 간호원으로부터 아이가 좀 이상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가서 보니 아이 배가 풍선같이 부풀어 올라 있었는데 마치 바늘로 찌르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산부인과 의사도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난감해 했다. 그래서 강남 쪽의 큰 병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더니, 소아과 담당 의사가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는 아이 배를 갈라 보자고 했다. 너무 충격적이라 거부를 하고 나오는데 의사는 아이를 죽이려고 하느냐며 제지를 했다. 만류를 뿌리치고 울면서 아이를 데리고 도장으로 온 천 도생은 아이를 상제님 신단 앞에 눕혀 놓고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 조상님께 제발 아이를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간절히 기도를 올렸고, 동시에 도장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제발 도와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나서 아이와 함께 집으로 왔는데, 이상하게도 TV를 켜게 되었고 그 순간 방송 화면에는 집 근처 소아과 원장님이 나오고 있었다. 그 분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꼭 고쳐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를 안고 그 소아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아이를 보더니 배에 가스가 찼는데 무슨 수술이냐고 하면서 조그만 아이용 핫팩을 배에 얹어주었고, 30분쯤 지나자 아이가 방귀를 계속 뀌더니 배가 점점 가라앉아 정상이 되었다. 천 도생은 섣불리 칼을 대지 않고 제대로 고쳐줄 적임자를 만나도록 신도의 영감으로 이끌어주신 천지일월 부모님과 조상님께 한없이 깊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고 했고, 박 도생 또한 이 모든 것이 다 조상님의 보살핌과 태을주의 은혜라고 확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