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진위 논쟁 -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강독
[삼랑대학 특강]
본 특강은 2022년 12월 7일 삼랑대학 교육에서 시행된 『환단고기桓檀古記』 역주본 해제 강독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환단고기』 진위 논쟁의 핵심 문제를 파악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중국에 의해 왜곡된 고대사’ 부분을 먼저 보겠습니다.
사마천 『사기史記』의 대표적 왜곡 사례는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본기本紀」에서의 ‘금살치우擒殺蚩尤’, 그리고 「세가世家」 편에서의 ‘기자조선箕子朝鮮’, 그리고 「열전列傳」에서의 ‘위만조선衛滿朝鮮’인데, 이것의 폐해가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마천 『사기史記』에 보면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신하로 삼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문장 자체로 보았을 때도 결국 ‘조선의 왕으로 봉하지 못했다.’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리고 ‘신하로 삼지 않았다.’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아, 기자가 조선에 뭔가 등극하지 못했구나. 전혀 그런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윤내현 교수도 “우리 고대사가 잘못 시작된 것은 고려 중기 숙종 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숙종 때면 1095년에서 1105년 사이인데, 이 숙종 시절인 1102년 예부에서 “‘우리나라의 교화와 예의가 기자箕子로부터 비롯하였는데도 사전에 등재되지 못하였습니다. 바라옵건대 그 무덤을 찾고 사당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소서.’라고 하니 이를 따랐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려사』 권63 지 권제17 예5)
“우리 동방에서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은 모두 1천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태종실록 권10)라고 했고, “전조선의 왕은 단군이고 후조선의 왕은 기자다.”(세조실록 권3)라고 했습니다.
흔히 조선의 사대주의는 ‘명明사대주의’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또 하나는 ‘존주사대尊周事大’라고 합니다. ‘주나라를 존중하는 사대다.’라고 하는 것인데, 이 ‘주나라의 무왕이 기자를 봉했다.’라고 하는 것을 철석같이 믿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이 조선이 문명화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단군 천 년, 기자 천 년이 되었다.’라고 하는 것인데,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조선 시대에는 역사 말살책을 씁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환단고기』 속에 들어 있는 안함로 원동중의 「삼성기三聖記」와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조대기朝代記」, 「대변설大辯說」 등이 전부 다 수거령을 거치게 됩니다. 그리고 “책을 숨긴 자는 참형斬刑에 처한다.”라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세조⋅예종⋅성종 50년을 거치면서 우리 역사가 파괴되고, 결국은 성종 때 『동국통감東國通鑑』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 책은 ‘조선 시대 국정 교과서다.’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동국통감』을 통해서 기자 중심의 역사책을 편찬한 것입니다. 사서 중 ‘동국’이라고 쓰여 있는 모든 책에는 기자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즉 태종 때의 역사관을 담은 권근의 『동국사략東國史略』, 세조 때부터 명을 받아서 성종 때 완성한, 서거정 중심의 『동국통감』이 그런 유형의 책입니다. 기자 중심의 역사책이 편찬되어 완성되는 과정에서 수서령을 거침으로써 우리의 온전하고 올바른 역사를 드러내는 책들이 금서화되고 숨겨지고, 불태워지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국에는 기자조선箕子朝鮮, 그리고 기자조선의 끝에 준왕凖王이 있고, 그 준왕을 물리치고 찬탈한 위만의 위만조선衛滿朝鮮, 그리고 거기에서 한사군漢四郡에 이르게 되는 역사관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게 만들어진 기자조선의 폐해라는 겁니다.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기자조선의 끝에 준왕이 있고, 이를 찬탈한 위만과 그의 손자 우거, 이를 정벌한 한 무제와 한사군이 있는 이 역사를 완성하게 된다. 가짜 역사를 완성하였다는 겁니다. 결국에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서 시작되어 고려 중기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사대주의의 역사 왜곡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걸 받아서 일제의 식민사관植民史觀이 역사 왜곡을 완성하게 됩니다. 지금이 2022년인데, 일본의 기원이 2682년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후진국으로 역사도 2천 년밖에 안 된 역사를 가진 나라다.’ 이런 인식과 주장을 맞게끔 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을 합니다. 일본의 역사보다 훨씬 줄어든 조선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단군왕검을 신화로 여기고, 그리고 기자조선도 없애 버리고……. 뭐 가짜 역사니까 없애 버리면 좋지만 그것을 불순한 의도로 없애 버렸다는 겁니다. 그 결과 위만조선과 한사군만 남겨 놓은 그런 역사를 만들게 됩니다.
1920년 조선총독부의 국사교육지침을 보면, ‘옛날에 반도의 북부는 조선朝鮮이라고 불렀다.’라고 해서 여기를 옛조선, 고조선이라고 하고 ‘남부는 진辰이다.’라며 이렇게 바꿔 놨습니다.
결국 처음에 얘기한 것은 뭐냐 하면 ‘313년에 한사군이 멸망당하고 7년 후인 320년에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삼한, 고구려⋅백제⋅신라를 정벌했다.’라고 하면서 그 주장이 먼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420년에 200년을 더해 약 600년간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Collect and burn! 모아서 전부 불태웠다는 겁니다. 이렇게 ‘Korean Works of literature and history’, 한국에 관한 작품들, 문학, 역사들을 다 모아서 불태웠다는 분명한 증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마도 한 곳만 보더라도 고문서류가 6만 6천 매 이상, 고기록류 3,576책 등이 수거되어 불태워졌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일본 학자 하라타 사카에루 ‘역사와 현재’, 1981.04.25.)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이 책들은 목록이 전부 다 공개된 것이 아니다. 궁내청 쇼료부書陵部에 한국 도서가 얼마나 있는지 진짜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숨겨 놓은 도서 목록이 따로 있다는 것이 어떤 재판 결과에서 밝혀졌다.”(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2024.07.30. 조선일보 기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제가 51종에 20만 권 사서를 압수했다는 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고, 사실은 51종이 아니라 거기에 숨겨진 목록이 더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수거령을 내려서 수십만 권의 책들을 수거하고 난 다음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를 만들게 됩니다.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 그리고 1925년에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가 생기면서 약 16년간에 걸쳐 일제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들여서 일본어로 만든 35권, 2만 4천 쪽 분량, 거기에 부록 두 권까지 해서 조선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조작을 했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제의 식민사학이 해방 이후에 한국 사회에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신석호의 원래 이름이라고 할까요? 창씨 개명된 이름은 데라타니 슈죠寺谷修三입니다. 그는 미 군정기인 1946년 3월에 설립된 국사관을 거쳐서 건국 직후 대한민국에서 국사편찬위원회의 창립에 진력하게 됩니다. 광복 후에 성명을 복구해서 옛날 명칭으로 돌아온 것이 바로 신석호입니다.
그에 대해 이덕일 교수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사무국장 신석호가 총괄했는데, 국사 편찬의 역사를 보면 신석호의 재임 기간을 1929년 4월에서 1961년 1월 21일이라고 적어 놓고 있다.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를 계승했다고 당당하게 밝혀 놓고 있는 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조선사편수회라고 하는 것이 해방 때까지 존재했는데요. 그러고 나서 여기에 있는 사료들을 모아 가지고 ‘우리 역사서를 좀 더 정리를 해야 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만든 것이 미 군정 때 ‘국사관’이고, 이후 몇 년 뒤에 ‘국사편찬위원회’로 이름을 바꿉니다. 편찬위원회라고 하는 것이 생각나죠? 조선사편수회 바로 이전에 1922년에 조선사편찬위원회라고 했잖아요. 이제 우리 역사니까 ‘조선사’ 대신 ‘국사’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조선사편찬위원회, 조선사편수회, 그리고 그것이 국사관, 국사편찬위원회로 바뀌었는데 그 흐름이 바로 계승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겁니다.
전라도 천년사는 당초 천 년 역사를 기록하려다 편찬 범위를 넓혀서 5천 년 역사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래서 집필진도 112명에서 213명으로 늘리고 예산도 24억 원으로 증액했습니다. 여기에는 뭐가 담겨 있냐? ‘단군은 신화다.’, ‘고조선의 남쪽은 진이다. 그러니까 전라도도 진국이다.’ 이런 내용들이 들어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겁니다.
전라도 천년사든 또 옆에 있는 경상도 천년사든 역사를 보는 시각 자체에 문제가 있고, 요즘에는 김해 역사를 발간한 김해 지사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 일제의 식민사관으로 그 지역의 향토사를 정리하려다 보니 결국에는 모든 책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 남쪽은 단군조선이 아니라는 100년 전 지침에 충실하게 전라도사도 그렇게 완성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김인걸 씨는 원래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는데 이 한국역사연구회도 1980년대 후반에 나왔습니다. 이 시기에 나왔다는 건 뭘 의미하는가? 1986년에 『환단고기』가 출현하고 세상에 알려져서 100만 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그렇게 『환단고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니까 위기의식을 느껴서 나온 단체들이 전부 다 이 1980년대 후반에 나왔어요.
‘한국역사연구회’의 취지문에 “우리 모두 새로운 각오로 단결하자.” 이렇게 나옵니다. 이게 뭡니까? ‘단결해 가지고 민족사관을 몰아내자.’라는 의식으로 만든 게 한국역사연구회입니다. 이곳의 기관지가 〈역사와 현실〉인데, 최근에 기고한 여러 사람들 가운데 장신이라고 하는 사람이 2020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유립의 계연수 날조기’라고 해서 “이유립은 단단학회의 전신으로 단학회라는 걸 설정했다.”라고 썼습니다. “설정했다.”, 이건 없는 걸 만들어 냈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글을 버젓이 기관지의 논문으로 싣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발탁이 되어 인문학부 교수로 들어갔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 뒤에 살펴보겠습니다.
일제 시대에는 일본에 충성하는 인물들을 배출하기 위해 제국대학을 만들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 조선에 있었고 나머지는 전부 다 일본 열도에 있었습니다. 조선에 있던 대학이 ‘게이조京城 대학’, 한자로 보면 경성 제국 대학京城帝國大學이고 이게 나중에 서울대학교가 됩니다.
이 경성 제국 대학에 있었던 사람들이 전부 다 들어와서 우리나라 학술 부분을 장악하게 됩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됐는데, 바로 다음 날 이 제국 대학 출신들이 모두 모여서 “우리가 모든 부분을 잡자.”라고 합니다. 해방 이후로 새로운 개척을 해야 되니까 좋은 의도도 있었겠죠.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는 겁니다.
와그너 교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홍범 박사에게도 “동학을 공부해 보라.”라는 조언을 할 정도로 한국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분이지만,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식민사관을 배운 거예요. 그게 한국학에 투영이 된 겁니다. 그다음에 이분이 한 일이 이기백李基白의 『한국사 신론』을 번역해서 하버드 대학 출판부와 일조각에서 동시에 출간하였습니다. 여기 보시면 상생방송에도 나왔지만, 이 번역본 책에 동이東夷를 동방 야만족으로 왜곡 번역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이거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아는 거죠. 그래서 이 책에서 수많은 왜곡들이 생겼습니다.
하버드 대학은 미국 동부에 있는데, 서부로 가보면 유명한 대학 UCLA(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가 있습니다. LA의 UCLA에 한국학 연구소가 있는데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분이 한국학의 대부로 알려진 존 던컨John Duncan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이분이 강의한 영상이 유튜브에서 수십만 건 조회가 되고 있죠.
최근에 어떤 도생님께서 아이를 가르치려고 세계사 책을 사러 갔는데, 전 세계에 300만 부 이상이 팔렸다는 가장 유명한 세계사 서적의 끝판왕 『더 타임즈 세계사』라고 있거든요. 그 책을 보니까 완전히 역사 왜곡으로 도배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관한 한은 그렇다는 거예요. 중국과 일본의 역사로 도배되어 있으면서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역사는 없더라는 겁니다.
여기 보시면 한나라 때 ‘낙랑’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저 우측에 보면 낙랑, 현도라고 두 개가 쓰여 있는데, 저 한강 아래쪽에는 일본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한사군’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는 ‘Han Dynasty’ 영역으로 되어 있어요. 세계사 교과서가 모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지도에도 보시면 중국의 식민지나 일본의 식민지였던 사실은 반드시 표기하고 넘어갑니다. 그리고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만주족에 예속되고, 일본령이 되었고……. 이런 것들은 정밀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역사는 침략을 받았던 역사라는 겁니다. 그리고 왜곡된 지도 같은 것들이 가득합니다.
해방 후에도 일본의 역사 왜곡은 계속되었는데요. 아까 보셨던 다카하시 토오루가 와그너 박사의 스승이 되어서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 사람만 가르친 게 아니겠죠. 그중의 하나가 김원룡金元龍 교수입니다.
해방 세대 역사학자로 식민주의 역사관 극복에 힘을 쏟았던 김용섭金容燮 교수가 서울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당시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김원룡 교수가 수업에 찾아와서 “일제 때 경성제대에서 내가 교육을 받았던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선생님인데, 김 선생님 강의를 참관하고자 하시기에 모시고 왔어요. 그래도 되겠죠?”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수업에 들어왔고, 결국 김용섭 교수는 1975년 서울대를 떠나 연세대 사학과로 옮겨서 역사 교육을 하게 됩니다.
이 당시 1961년의 교류를 보시면 한국 학자들의 좌장은 이병도, 조선학회의 좌장은 다카하시 토오루입니다. “다카하시 토오루는 열 명의 한국 학자들을 마치 고향 사람 만난 듯이 기뻐하는 내색으로 반겨 주었으며, 한국의 학자들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있어 반가운 인사와 기쁜 표정으로 서로 얼싸 안았다.”라고 합니다. 이건 실제로 이병도가 쓴 글입니다.
성삼제成三濟 계명대 교수는 2021년 대한사랑⋅세계환단학회 국제학술문화제에 토론자로 참석하여 “2001년 일본 학자들과 일본 언론인들을 만나 뵙고 하는 과정에서 제가 한국에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대책반 실무반장’을 맡고 있다고 하니까, 어느 한 분이 진지하게 저한테 하시는 얘기가 ‘우리 일본이 조선을 식민 통치하기 위해서 역사를 조작해 놓은 게 있다. 당신네 한국이 해방되면 당연히 복원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가 지나도 그대로 있더라. 그래서 우리 일본을 탓하기 전에 당신네들 거를 먼저 봐라.’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충격을 저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일본인이 이렇게 얘기하더라는 거예요.
노태돈은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인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환단고기』는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의 뿌리 상고사 자체를 복원하는 데 자료적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환단고기』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미에 쓰인 책이다. 그런 만큼 이 책을 통해서 상고사를 복원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환단고기』를 위서僞書라고 단언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이 전부 이렇게 『환단고기』를 폄하하고 있습니다.
2012년 『환단고기 역주본』이 출간됩니다. 그리고 『환단고기』의 역사와 문화가 풍미하게 되고, 10년 동안 〈환단고기 북콘서트〉가 상생방송을 통해서 세상에 전해집니다. 그와 함께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책들이 2010년대를 전후해서 굉장히 많이 나오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그때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연구서를 충분히 책으로 낼 수가 있는 건데, 내고 나니까 출간을 금지시키고 연구비를 환수하려는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여기뿐만 아니라 인하대 고조선연구소도 연구비를 환수당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들었던 일본어로 된 조선사 35권을 전부 다 번역하라고 해서 했는데, 번역한 것을 세상에 내선 안 된다고 하면서 연구비를 환수하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죠. 이런 일제 강점기에나 일어날 수 있는 탄압들이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의 역사 말살책이 결국에는 『환단고기』류에 속해 있는 책들의 수거령이었습니다. 지금의 강단 주류 사학계의 역사 말살책 역시 ‘환단고기 위서론僞書論’입니다. 이제는 옛날처럼 수거는 못 하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수거 대신에 ‘환단고기를 위서로 몰아라.’라는 명령이 강단 주류 사학계에 떨어진 것이죠. 그래서 사학과에 들어가면 무조건 ‘환단고기는 위서다.’라는 얘기부터 듣게 됩니다.
그랬더니 “나도 발언 기회를 달라.”고 하면서 한승훈이라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 종교학자가 나와서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합니다. “근래의 정밀한 연구들에 의하면 『환단고기』는 근대 이후 단군 계열 종교들에서 활발하게 생산된 역사서 형식의 경전들을 모방하여 1960~1970년대 사이에 성립된 것이 명백하다. 거기에 어떤 심오한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수천 년 전 조상들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의 한국인들의 산물이다.” 이렇게 써 놨어요.
이기동 교수는 유학을 공부하여 논어⋅맹자⋅중용⋅시경⋅서경⋅ 역경 등 사서 삼경을 전부 국내 최초로 완역하신 분입니다. 그분 이전에는 국내에 완역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유학 5천 년』이라고 하는 역사를 다시 썼잖아요. 이걸 정리할 수 있는 유학자가 이기동 교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유학이나 동양의 고전들을 전부 다 정리해 보니까 그 결론이 『환단고기』더라.’라고 하는 겁니다. 그게 그냥 단순하게 『환단고기』만 읽어서 나온 결론이 아니라는 거죠.
위서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까 얘기한 한승훈, 그리고 젊은 역사학자 위가야, 기경량, 그리고 안정준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2016년 당시에 역사비평에서 이런 내용들을 썼고요. 2018년에 소설가 이문영 씨가 『유사 역사학 비판』이라는 책에서 '환단고기와 일그러진 고대사'라는 소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2016년, 2017년, 2018년으로 이어지면서 『환단고기』 역주본이 나온 이후로 위서론에 대한 주장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 고대사』, 『사회부 역사학』, 『유사 역사학 비판』,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등이 등장했고 이후에도 책은 계속 나오겠죠. 이런 책들을 쓰고 팟캐스트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기경량, 안정준, 위가야 등이 있습니다.
동북아 역사재단에 대한 한사군 한반도설로 비판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동북아 역사재단과 역사학계의 역사관이 식민사학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라는 논문을 써요. 이 논문을 써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위가야는 2022년에 보니까 동북아 역사재단 소속으로 되어 있습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죠.
이기동 교수의 위서론 반박은 결국엔 이겁니다. 지금까지 쭉 봐 왔던 것이 뭐냐, 러시아 사학자 부틴Yuri Mikhailovich Butin의 말처럼 ‘일본이나 중국은 없는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어째서 원래 있는 역사, 올바른 역사, 진짜 역사를 없다고 그러는가?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다.’라는 겁니다. 편견偏見에 잡혀 있다는 거죠. 편견을 영어로 Prejudice라고 하는데요. Pre, 미리 판단한다는 거예요. 미리 판단하고 심판하고 재단을 한다는 겁니다. 지금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환단고기』를 보지도 않고서 ‘환단고기는 위서다.’라고 한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위서론에 빠져서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식민지 멘탈리티(Colonisal Mentality)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환단고기에 관한 100건의 논문이 있으면 그중에 90건이 진서론에 관한 책이라는 겁니다. 환단고기가 진서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압도적인 비율로 논문이 나올 수 없잖아요.
이제 마무리를 하자면, ‘지금은 총성 없는 동북아의 역사 전쟁 현장에 서 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부에서 서로 총질을 하고 있죠. 우리가 총질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강단사학자들이 지금도 ‘환단고기는 위서다.’라고 하면서 총과 대포를 우리에게 겨누고 있습니다.
‘어떤 사료’가 뭐냐? 이것을 올해 2022년 10월에 이주한 선생이 증언을 했습니다. “그때는 책의 내용을 『환단고기』라고 못 썼는데. 이 ‘어떤 사료’라고 하는 것은 바로 『환단고기』였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성학의 대모라는 이분이 『환단고기』를 보면서 마지막에는 “우리가 통일을 하려면 『환단고기』가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또 한 분, ‘여성신학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박순경 교수가 있습니다. 이분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신 적이 있어요. 나중에 출옥할 때 사진이 딱 찍혔는데 가운데가 박순경 교수고, 그 오른쪽에 계신 분이 이효재 교수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은 『환단고기』는 결코 위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박순경 교수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 ‘근 1년 동안 상생방송을 보면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상생방송의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보라는 거죠. 『환단고기』가 결코 위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기동 교수는 대한사랑 문화제에 참석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환단고기는 짐승이 사람 되는 대중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환단고기에는 일반 대중이 모여서 합숙하면서 진리를 깨치는 21일간의 수련 과정을 설정하고 있다. 이 수련 과정은 오늘날 매우 중요하다. 이 21일간의 수련 과정이 복원된다면, 짐승이 되어 버린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다가올 것이다. 환단고기에 들어 있는 진리로 오늘날 사람들이 공감하는 진리관을 재창출하고, 21일간의 수련 과정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복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다.”라고 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어디에서 완수되고 있습니까? 바로 증산도의 ‘무병장수 선려화 치유 수행’을 통해서 상고 시대 우리의 전통 수행법을 복원하고 있는 과정에 우리는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걸 통해서 인류에게 광명을 줄 수 있다. 이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우리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회에서 고전을 다 보신 분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마무리하면서, 위서론에 꺾이지 말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거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
1. 중국에 의해 왜곡된 고대사
먼저 ‘중국에 의해 왜곡된 고대사’ 부분을 먼저 보겠습니다.
사마천 『사기史記』의 대표적 왜곡 사례는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본기本紀」에서의 ‘금살치우擒殺蚩尤’, 그리고 「세가世家」 편에서의 ‘기자조선箕子朝鮮’, 그리고 「열전列傳」에서의 ‘위만조선衛滿朝鮮’인데, 이것의 폐해가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봉기자어조선 이불신야
封箕子於朝鮮 而不臣也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봉했으나 신하로 삼지 않았다. (『사기史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封箕子於朝鮮 而不臣也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봉했으나 신하로 삼지 않았다. (『사기史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사마천 『사기史記』에 보면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신하로 삼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문장 자체로 보았을 때도 결국 ‘조선의 왕으로 봉하지 못했다.’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리고 ‘신하로 삼지 않았다.’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아, 기자가 조선에 뭔가 등극하지 못했구나. 전혀 그런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사대주의에서 비롯한 역사 왜곡과 심화
그런데 이러한 거짓 정보, 거짓 문헌과 기록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게 이제 국내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것은 사대주의에 의한 역사 왜곡과 심화입니다.윤내현 교수도 “우리 고대사가 잘못 시작된 것은 고려 중기 숙종 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숙종 때면 1095년에서 1105년 사이인데, 이 숙종 시절인 1102년 예부에서 “‘우리나라의 교화와 예의가 기자箕子로부터 비롯하였는데도 사전에 등재되지 못하였습니다. 바라옵건대 그 무덤을 찾고 사당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소서.’라고 하니 이를 따랐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려사』 권63 지 권제17 예5)
“우리 동방에서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은 모두 1천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태종실록 권10)라고 했고, “전조선의 왕은 단군이고 후조선의 왕은 기자다.”(세조실록 권3)라고 했습니다.
흔히 조선의 사대주의는 ‘명明사대주의’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또 하나는 ‘존주사대尊周事大’라고 합니다. ‘주나라를 존중하는 사대다.’라고 하는 것인데, 이 ‘주나라의 무왕이 기자를 봉했다.’라고 하는 것을 철석같이 믿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이 조선이 문명화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단군 천 년, 기자 천 년이 되었다.’라고 하는 것인데,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조선 시대에는 역사 말살책을 씁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환단고기』 속에 들어 있는 안함로 원동중의 「삼성기三聖記」와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조대기朝代記」, 「대변설大辯說」 등이 전부 다 수거령을 거치게 됩니다. 그리고 “책을 숨긴 자는 참형斬刑에 처한다.”라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세조⋅예종⋅성종 50년을 거치면서 우리 역사가 파괴되고, 결국은 성종 때 『동국통감東國通鑑』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 책은 ‘조선 시대 국정 교과서다.’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동국통감』을 통해서 기자 중심의 역사책을 편찬한 것입니다. 사서 중 ‘동국’이라고 쓰여 있는 모든 책에는 기자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즉 태종 때의 역사관을 담은 권근의 『동국사략東國史略』, 세조 때부터 명을 받아서 성종 때 완성한, 서거정 중심의 『동국통감』이 그런 유형의 책입니다. 기자 중심의 역사책이 편찬되어 완성되는 과정에서 수서령을 거침으로써 우리의 온전하고 올바른 역사를 드러내는 책들이 금서화되고 숨겨지고, 불태워지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닉자처참
匿者處斬
숨긴 자는 참형에 처한다. (조선왕조 예종실록 1년)
匿者處斬
숨긴 자는 참형에 처한다. (조선왕조 예종실록 1년)
그러면서 결국에는 기자조선箕子朝鮮, 그리고 기자조선의 끝에 준왕凖王이 있고, 그 준왕을 물리치고 찬탈한 위만의 위만조선衛滿朝鮮, 그리고 거기에서 한사군漢四郡에 이르게 되는 역사관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게 만들어진 기자조선의 폐해라는 겁니다.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기자조선의 끝에 준왕이 있고, 이를 찬탈한 위만과 그의 손자 우거, 이를 정벌한 한 무제와 한사군이 있는 이 역사를 완성하게 된다. 가짜 역사를 완성하였다는 겁니다. 결국에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서 시작되어 고려 중기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사대주의의 역사 왜곡이 있었다는 겁니다.
2. 일본의 역사 왜곡, 식민사관
이걸 받아서 일제의 식민사관植民史觀이 역사 왜곡을 완성하게 됩니다. 지금이 2022년인데, 일본의 기원이 2682년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후진국으로 역사도 2천 년밖에 안 된 역사를 가진 나라다.’ 이런 인식과 주장을 맞게끔 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을 합니다. 일본의 역사보다 훨씬 줄어든 조선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단군왕검을 신화로 여기고, 그리고 기자조선도 없애 버리고……. 뭐 가짜 역사니까 없애 버리면 좋지만 그것을 불순한 의도로 없애 버렸다는 겁니다. 그 결과 위만조선과 한사군만 남겨 놓은 그런 역사를 만들게 됩니다.
1920년 조선총독부의 국사교육지침을 보면, ‘옛날에 반도의 북부는 조선朝鮮이라고 불렀다.’라고 해서 여기를 옛조선, 고조선이라고 하고 ‘남부는 진辰이다.’라며 이렇게 바꿔 놨습니다.
결국 처음에 얘기한 것은 뭐냐 하면 ‘313년에 한사군이 멸망당하고 7년 후인 320년에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삼한, 고구려⋅백제⋅신라를 정벌했다.’라고 하면서 그 주장이 먼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420년에 200년을 더해 약 600년간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역사 말살책
조선 시대의 역사 말살책은 고대 사서의 ‘수서령收書令’이었고, 일제 강점기 때도 그들(일본)에 의해 자행된 역사 말살책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의 고대 사서들을 수거한 ‘수거령’입니다. 물론 수거만 한 것은 아닙니다.one of the first of these reforms was to go through all the public archives and private libraries and systematically #collect and burn# korean works of literature and history. (『한국독립운동의 진상』, 나다니엘 페퍼)
Collect and burn! 모아서 전부 불태웠다는 겁니다. 이렇게 ‘Korean Works of literature and history’, 한국에 관한 작품들, 문학, 역사들을 다 모아서 불태웠다는 분명한 증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마도 한 곳만 보더라도 고문서류가 6만 6천 매 이상, 고기록류 3,576책 등이 수거되어 불태워졌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일본 학자 하라타 사카에루 ‘역사와 현재’, 1981.04.25.)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이 책들은 목록이 전부 다 공개된 것이 아니다. 궁내청 쇼료부書陵部에 한국 도서가 얼마나 있는지 진짜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숨겨 놓은 도서 목록이 따로 있다는 것이 어떤 재판 결과에서 밝혀졌다.”(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2024.07.30. 조선일보 기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제가 51종에 20만 권 사서를 압수했다는 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고, 사실은 51종이 아니라 거기에 숨겨진 목록이 더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조선사편수회의 역사 조작
일본은 수거령을 내려서 수십만 권의 책들을 수거하고 난 다음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를 만들게 됩니다.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 그리고 1925년에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가 생기면서 약 16년간에 걸쳐 일제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들여서 일본어로 만든 35권, 2만 4천 쪽 분량, 거기에 부록 두 권까지 해서 조선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조작을 했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제의 식민사학이 해방 이후에 한국 사회에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일제가 깔아 놓은 레일을 가는 학자들, 신석호
일제가 깔아 놓은 레일 위를 가는 학자들은 이병도李丙燾와 이기백李基白, 노태돈盧泰敦, 송호정宋鎬晸, 그리고 지금의 젊은 사학도들까지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병도의 경우 조선사편수회의 명단에 그의 이름이 분명하게 나와 있죠. ‘이병도는 실제적인 친일을 한 적이 없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실제로는 1943년 매일신보에 쓴 글을 보면 “일본 제국의 학도병이 되는 것은 광영이며 이보다 더 큰 감격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신석호의 원래 이름이라고 할까요? 창씨 개명된 이름은 데라타니 슈죠寺谷修三입니다. 그는 미 군정기인 1946년 3월에 설립된 국사관을 거쳐서 건국 직후 대한민국에서 국사편찬위원회의 창립에 진력하게 됩니다. 광복 후에 성명을 복구해서 옛날 명칭으로 돌아온 것이 바로 신석호입니다.
그에 대해 이덕일 교수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사무국장 신석호가 총괄했는데, 국사 편찬의 역사를 보면 신석호의 재임 기간을 1929년 4월에서 1961년 1월 21일이라고 적어 놓고 있다.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를 계승했다고 당당하게 밝혀 놓고 있는 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조선사편수회라고 하는 것이 해방 때까지 존재했는데요. 그러고 나서 여기에 있는 사료들을 모아 가지고 ‘우리 역사서를 좀 더 정리를 해야 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만든 것이 미 군정 때 ‘국사관’이고, 이후 몇 년 뒤에 ‘국사편찬위원회’로 이름을 바꿉니다. 편찬위원회라고 하는 것이 생각나죠? 조선사편수회 바로 이전에 1922년에 조선사편찬위원회라고 했잖아요. 이제 우리 역사니까 ‘조선사’ 대신 ‘국사’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조선사편찬위원회, 조선사편수회, 그리고 그것이 국사관, 국사편찬위원회로 바뀌었는데 그 흐름이 바로 계승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역사연구회와 기관지 <역사와 현실>
전라도 천년사는 당초 천 년 역사를 기록하려다 편찬 범위를 넓혀서 5천 년 역사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래서 집필진도 112명에서 213명으로 늘리고 예산도 24억 원으로 증액했습니다. 여기에는 뭐가 담겨 있냐? ‘단군은 신화다.’, ‘고조선의 남쪽은 진이다. 그러니까 전라도도 진국이다.’ 이런 내용들이 들어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겁니다.
전라도 천년사든 또 옆에 있는 경상도 천년사든 역사를 보는 시각 자체에 문제가 있고, 요즘에는 김해 역사를 발간한 김해 지사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 일제의 식민사관으로 그 지역의 향토사를 정리하려다 보니 결국에는 모든 책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 남쪽은 단군조선이 아니라는 100년 전 지침에 충실하게 전라도사도 그렇게 완성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김인걸 씨는 원래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는데 이 한국역사연구회도 1980년대 후반에 나왔습니다. 이 시기에 나왔다는 건 뭘 의미하는가? 1986년에 『환단고기』가 출현하고 세상에 알려져서 100만 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그렇게 『환단고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니까 위기의식을 느껴서 나온 단체들이 전부 다 이 1980년대 후반에 나왔어요.
‘한국역사연구회’의 취지문에 “우리 모두 새로운 각오로 단결하자.” 이렇게 나옵니다. 이게 뭡니까? ‘단결해 가지고 민족사관을 몰아내자.’라는 의식으로 만든 게 한국역사연구회입니다. 이곳의 기관지가 〈역사와 현실〉인데, 최근에 기고한 여러 사람들 가운데 장신이라고 하는 사람이 2020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유립의 계연수 날조기’라고 해서 “이유립은 단단학회의 전신으로 단학회라는 걸 설정했다.”라고 썼습니다. “설정했다.”, 이건 없는 걸 만들어 냈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글을 버젓이 기관지의 논문으로 싣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발탁이 되어 인문학부 교수로 들어갔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 뒤에 살펴보겠습니다.
4. 제국 대학 출신들이 장악한 한국 역사학계
일제 시대에는 일본에 충성하는 인물들을 배출하기 위해 제국대학을 만들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 조선에 있었고 나머지는 전부 다 일본 열도에 있었습니다. 조선에 있던 대학이 ‘게이조京城 대학’, 한자로 보면 경성 제국 대학京城帝國大學이고 이게 나중에 서울대학교가 됩니다.
이 경성 제국 대학에 있었던 사람들이 전부 다 들어와서 우리나라 학술 부분을 장악하게 됩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됐는데, 바로 다음 날 이 제국 대학 출신들이 모두 모여서 “우리가 모든 부분을 잡자.”라고 합니다. 해방 이후로 새로운 개척을 해야 되니까 좋은 의도도 있었겠죠.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는 겁니다.
일제가 깔아 놓은 레일을 가는 학자들, 이기백
다시 넘어와서,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는 해방 이후에도 한국에 대해 지속해서 관심을 가집니다. 조선사편수회 간사였고 경성 제국 대학 교수였던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와 함께 ’조선학회朝鮮學會‘를 조직했고, 1951년에 ’조선학보朝鮮學報‘를 창간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식민사관을 버리지 않았으며, 한국학에 꾸준히 영향력을 주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는 해외에도 제자를 두었는데, 미국 하버드 대학의 와그너 박사가 대표적인 제자라는 거예요.와그너 교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홍범 박사에게도 “동학을 공부해 보라.”라는 조언을 할 정도로 한국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분이지만,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식민사관을 배운 거예요. 그게 한국학에 투영이 된 겁니다. 그다음에 이분이 한 일이 이기백李基白의 『한국사 신론』을 번역해서 하버드 대학 출판부와 일조각에서 동시에 출간하였습니다. 여기 보시면 상생방송에도 나왔지만, 이 번역본 책에 동이東夷를 동방 야만족으로 왜곡 번역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이거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아는 거죠. 그래서 이 책에서 수많은 왜곡들이 생겼습니다.
하버드 대학은 미국 동부에 있는데, 서부로 가보면 유명한 대학 UCLA(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가 있습니다. LA의 UCLA에 한국학 연구소가 있는데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분이 한국학의 대부로 알려진 존 던컨John Duncan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이분이 강의한 영상이 유튜브에서 수십만 건 조회가 되고 있죠.
5. 왜곡된 한국사로 가득한 전 세계 역사 교과서
최근에 어떤 도생님께서 아이를 가르치려고 세계사 책을 사러 갔는데, 전 세계에 300만 부 이상이 팔렸다는 가장 유명한 세계사 서적의 끝판왕 『더 타임즈 세계사』라고 있거든요. 그 책을 보니까 완전히 역사 왜곡으로 도배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관한 한은 그렇다는 거예요. 중국과 일본의 역사로 도배되어 있으면서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역사는 없더라는 겁니다.
여기 보시면 한나라 때 ‘낙랑’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저 우측에 보면 낙랑, 현도라고 두 개가 쓰여 있는데, 저 한강 아래쪽에는 일본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한사군’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는 ‘Han Dynasty’ 영역으로 되어 있어요. 세계사 교과서가 모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지도에도 보시면 중국의 식민지나 일본의 식민지였던 사실은 반드시 표기하고 넘어갑니다. 그리고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만주족에 예속되고, 일본령이 되었고……. 이런 것들은 정밀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역사는 침략을 받았던 역사라는 겁니다. 그리고 왜곡된 지도 같은 것들이 가득합니다.
6. 해방 이후 일본의 역사 왜곡
해방 후에도 일본의 역사 왜곡은 계속되었는데요. 아까 보셨던 다카하시 토오루가 와그너 박사의 스승이 되어서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 사람만 가르친 게 아니겠죠. 그중의 하나가 김원룡金元龍 교수입니다.
해방 세대 역사학자로 식민주의 역사관 극복에 힘을 쏟았던 김용섭金容燮 교수가 서울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당시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김원룡 교수가 수업에 찾아와서 “일제 때 경성제대에서 내가 교육을 받았던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선생님인데, 김 선생님 강의를 참관하고자 하시기에 모시고 왔어요. 그래도 되겠죠?”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수업에 들어왔고, 결국 김용섭 교수는 1975년 서울대를 떠나 연세대 사학과로 옮겨서 역사 교육을 하게 됩니다.
이 당시 1961년의 교류를 보시면 한국 학자들의 좌장은 이병도, 조선학회의 좌장은 다카하시 토오루입니다. “다카하시 토오루는 열 명의 한국 학자들을 마치 고향 사람 만난 듯이 기뻐하는 내색으로 반겨 주었으며, 한국의 학자들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있어 반가운 인사와 기쁜 표정으로 서로 얼싸 안았다.”라고 합니다. 이건 실제로 이병도가 쓴 글입니다.
성삼제成三濟 계명대 교수는 2021년 대한사랑⋅세계환단학회 국제학술문화제에 토론자로 참석하여 “2001년 일본 학자들과 일본 언론인들을 만나 뵙고 하는 과정에서 제가 한국에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대책반 실무반장’을 맡고 있다고 하니까, 어느 한 분이 진지하게 저한테 하시는 얘기가 ‘우리 일본이 조선을 식민 통치하기 위해서 역사를 조작해 놓은 게 있다. 당신네 한국이 해방되면 당연히 복원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가 지나도 그대로 있더라. 그래서 우리 일본을 탓하기 전에 당신네들 거를 먼저 봐라.’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충격을 저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일본인이 이렇게 얘기하더라는 거예요.
일제가 깔아 놓은 레일을 가는 학자들, 노태돈
노태돈은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인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환단고기』는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의 뿌리 상고사 자체를 복원하는 데 자료적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환단고기』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미에 쓰인 책이다. 그런 만큼 이 책을 통해서 상고사를 복원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환단고기』를 위서僞書라고 단언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이 전부 이렇게 『환단고기』를 폄하하고 있습니다.
일제가 깔아놓은 레일을 가는 학자들, 송호정
이제 노태돈에서 송호정宋鎬晸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노태돈이 석사 때부터 지도했던, 원래 부여사를 연구하고 싶어 했던 송호정을 격려해서 고조선사를 연구하게 합니다. 그저 순수하게 ‘고조선을 열심히 연구해 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윤내현 교수가 치달아서 새로운 고조선을 얘기하고 있으니 자기 제자를 내세워서 반박을 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고조선 박사를 만들어서 박사 논문을 쓰게 합니다. 박사 논문을 쓰고 나와서 송호정 교수가 한 것은 “단군은 신화다. 단군은 실재한 역사가 아니다. 요하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조선 문화를 대표하는 전성기는 바로 위만조선 시대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7. 환단고기 역주본 출간과 위서론의 등장
2012년 『환단고기 역주본』이 출간됩니다. 그리고 『환단고기』의 역사와 문화가 풍미하게 되고, 10년 동안 〈환단고기 북콘서트〉가 상생방송을 통해서 세상에 전해집니다. 그와 함께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책들이 2010년대를 전후해서 굉장히 많이 나오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그때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강단사학계의 반발
2016년에 나왔던 또 황당한 논문 중의 하나가 뭐냐면 〈정말 일제는 한국 고사서를 불태웠을까?〉라는 논문입니다. 이 논문에서는 ‘51종 서적의 대부분은 애국 계몽 서적이고 일제가 압수한 서적의 분량은 10만 권을 넘지 않는 수준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10만 권이나 20만 권이나 도긴개긴인데, 말도 안 되는 그런 논문을 쓴 겁니다.그러니까 연구서를 충분히 책으로 낼 수가 있는 건데, 내고 나니까 출간을 금지시키고 연구비를 환수하려는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여기뿐만 아니라 인하대 고조선연구소도 연구비를 환수당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들었던 일본어로 된 조선사 35권을 전부 다 번역하라고 해서 했는데, 번역한 것을 세상에 내선 안 된다고 하면서 연구비를 환수하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죠. 이런 일제 강점기에나 일어날 수 있는 탄압들이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8. 민족사학을 말살하는 젊은 홍위병들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의 역사 말살책이 결국에는 『환단고기』류에 속해 있는 책들의 수거령이었습니다. 지금의 강단 주류 사학계의 역사 말살책 역시 ‘환단고기 위서론僞書論’입니다. 이제는 옛날처럼 수거는 못 하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수거 대신에 ‘환단고기를 위서로 몰아라.’라는 명령이 강단 주류 사학계에 떨어진 것이죠. 그래서 사학과에 들어가면 무조건 ‘환단고기는 위서다.’라는 얘기부터 듣게 됩니다.
그랬더니 “나도 발언 기회를 달라.”고 하면서 한승훈이라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 종교학자가 나와서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합니다. “근래의 정밀한 연구들에 의하면 『환단고기』는 근대 이후 단군 계열 종교들에서 활발하게 생산된 역사서 형식의 경전들을 모방하여 1960~1970년대 사이에 성립된 것이 명백하다. 거기에 어떤 심오한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수천 년 전 조상들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의 한국인들의 산물이다.” 이렇게 써 놨어요.
이기동 교수는 유학을 공부하여 논어⋅맹자⋅중용⋅시경⋅서경⋅ 역경 등 사서 삼경을 전부 국내 최초로 완역하신 분입니다. 그분 이전에는 국내에 완역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유학 5천 년』이라고 하는 역사를 다시 썼잖아요. 이걸 정리할 수 있는 유학자가 이기동 교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유학이나 동양의 고전들을 전부 다 정리해 보니까 그 결론이 『환단고기』더라.’라고 하는 겁니다. 그게 그냥 단순하게 『환단고기』만 읽어서 나온 결론이 아니라는 거죠.
위서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까 얘기한 한승훈, 그리고 젊은 역사학자 위가야, 기경량, 그리고 안정준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2016년 당시에 역사비평에서 이런 내용들을 썼고요. 2018년에 소설가 이문영 씨가 『유사 역사학 비판』이라는 책에서 '환단고기와 일그러진 고대사'라는 소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2016년, 2017년, 2018년으로 이어지면서 『환단고기』 역주본이 나온 이후로 위서론에 대한 주장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 고대사』, 『사회부 역사학』, 『유사 역사학 비판』,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등이 등장했고 이후에도 책은 계속 나오겠죠. 이런 책들을 쓰고 팟캐스트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기경량, 안정준, 위가야 등이 있습니다.
동북아 역사재단에 대한 한사군 한반도설로 비판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동북아 역사재단과 역사학계의 역사관이 식민사학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라는 논문을 써요. 이 논문을 써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위가야는 2022년에 보니까 동북아 역사재단 소속으로 되어 있습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죠.
9. 결론, 『환단고기』는 진서다
이기동 교수의 위서론 반박은 결국엔 이겁니다. 지금까지 쭉 봐 왔던 것이 뭐냐, 러시아 사학자 부틴Yuri Mikhailovich Butin의 말처럼 ‘일본이나 중국은 없는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어째서 원래 있는 역사, 올바른 역사, 진짜 역사를 없다고 그러는가?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다.’라는 겁니다. 편견偏見에 잡혀 있다는 거죠. 편견을 영어로 Prejudice라고 하는데요. Pre, 미리 판단한다는 거예요. 미리 판단하고 심판하고 재단을 한다는 겁니다. 지금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환단고기』를 보지도 않고서 ‘환단고기는 위서다.’라고 한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위서론에 빠져서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식민지 멘탈리티(Colonisal Mentality)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환단고기에 관한 100건의 논문이 있으면 그중에 90건이 진서론에 관한 책이라는 겁니다. 환단고기가 진서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압도적인 비율로 논문이 나올 수 없잖아요.
이제 마무리를 하자면, ‘지금은 총성 없는 동북아의 역사 전쟁 현장에 서 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부에서 서로 총질을 하고 있죠. 우리가 총질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강단사학자들이 지금도 ‘환단고기는 위서다.’라고 하면서 총과 대포를 우리에게 겨누고 있습니다.
‘어떤 사료’가 뭐냐? 이것을 올해 2022년 10월에 이주한 선생이 증언을 했습니다. “그때는 책의 내용을 『환단고기』라고 못 썼는데. 이 ‘어떤 사료’라고 하는 것은 바로 『환단고기』였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성학의 대모라는 이분이 『환단고기』를 보면서 마지막에는 “우리가 통일을 하려면 『환단고기』가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또 한 분, ‘여성신학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박순경 교수가 있습니다. 이분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신 적이 있어요. 나중에 출옥할 때 사진이 딱 찍혔는데 가운데가 박순경 교수고, 그 오른쪽에 계신 분이 이효재 교수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은 『환단고기』는 결코 위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박순경 교수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 ‘근 1년 동안 상생방송을 보면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상생방송의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보라는 거죠. 『환단고기』가 결코 위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기동 교수는 대한사랑 문화제에 참석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환단고기는 짐승이 사람 되는 대중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환단고기에는 일반 대중이 모여서 합숙하면서 진리를 깨치는 21일간의 수련 과정을 설정하고 있다. 이 수련 과정은 오늘날 매우 중요하다. 이 21일간의 수련 과정이 복원된다면, 짐승이 되어 버린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다가올 것이다. 환단고기에 들어 있는 진리로 오늘날 사람들이 공감하는 진리관을 재창출하고, 21일간의 수련 과정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복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다.”라고 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어디에서 완수되고 있습니까? 바로 증산도의 ‘무병장수 선려화 치유 수행’을 통해서 상고 시대 우리의 전통 수행법을 복원하고 있는 과정에 우리는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걸 통해서 인류에게 광명을 줄 수 있다. 이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우리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회에서 고전을 다 보신 분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마무리하면서, 위서론에 꺾이지 말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거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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