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역사 성인열전 | 한민족사 최전성기 조선을 연 단군왕검檀君王儉

[역사인물탐구]

이해영 / 객원기자


朝鮮國(조선국) 上計神(상계신) 中計神(중계신) 下計神(하계신)이 無依無托(무의무탁)하니
不可不(불가불) 文字戒於人(문자계어인)이니라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 (증산도 도전 5:347:16)


나라에 역사가 있고, 형체에 혼魂이 있어야 한다[國有史而形有魂]. 신시에 나라를 연 이후로 국통國統이 있어, 나라는 이 국통으로 인하여 세워지고, 백성은 이 국통으로 인해 흥하였나니, 역사를 배움이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오? (행촌 이암 선생의 「단군세기」 서序)


동방 천자의 나라, 단군조선


인류 문명의 뿌리 나라인 환국桓國은 천산산맥의 동쪽, 바이칼 호수 오른쪽을 경계로 해서 펼쳐진 열두 나라의 연합으로, 7대의 환인이 3,301년 동안 다스렸던 무병장수 문명 시대였습니다. 이후 환웅천황의 신시배달神市倍達이 있었습니다. 도읍은 신시였고, 나라 이름은 밝은 땅 배달이었습니다. 열여덟 분의 환웅천황이 1,565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초기에는 신시神市에 수도를 두었고, 후기 14세 자오지 환웅천황, 즉 치우천황이 청구靑邱라는 곳으로 도읍지를 옮겼습니다.

뒤를 이어 천지의 광명을 숭상하고 광명한 인간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신인왕검이 나라를 세우니 한민족사 최전성기를 연 동방 천자국, 조선朝鮮(단군조선檀君朝鮮)입니다.

고대 조선의 개창자, 신인왕검 단군



초대 환웅이 배달나라를 건국한 지 1,500여 년, 18세 거불단환웅에 이르러 배달은 그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말기의 쇠한 국운을 보여주듯 16세 축다라환웅, 17세 혁다세환웅과 18세 환웅은 역대 천황의 평균 수명인 104세에 못 미치는 짧은 생을 사셨습니다. 이런 사실은 당시 배달국 내부의 정치 상황과 동북아시아 정세가 매우 혼란스러웠다는 점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거불단환웅이 세상을 떠난 후, 배달 말기의 혼란을 잠재우고 신인왕검이 38세에 천제天帝의 아들로 추대되었습니다.

조선의 건국조인 신인왕검은 배달국 말기인 신묘년 즉 환기 4828년인 기원전 2370년 5월 2일 인寅시에 박달나무가 우거진 숲인 단수檀樹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씨왕熊氏王의 따님입니다. 환웅천황이 백두산 신시에 나라를 세운 첫 개천절로부터 1528년이 되던 해입니다.

신인왕검神人王儉이라는 말의 정확한 뜻은 ‘환국, 배달의 천지 우주광명의 심법이 열린 왕검’이라는 것입니다.

『환단고기』에는 “일산일수위일국一山一水爲一國이라”, 물 하나 끼고 산을 하나 끼면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역사학에서 말하는 부족국가, 성읍城邑국가입니다. 그때 나라를 다스리는 군장, 임금을 왕검王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왕검은 수백 명, 수천 명이 됩니다.

그럴 때 아주 특출한 분이 동방에서 나타났습니다. 초대 단군왕검의 심법과 영대가 통명通明하였기 때문에, 그 주변에 있는 나라 사람들이 그분의 신성함을 듣고 찾아가 가르침을 베풀어 달라고 하며 단군조선에 합류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단군왕검의 즉위


기원전 2357년 갑진년 14세에 웅씨왕에게 비왕裨王 즉 부왕으로 임명받고 24년간 대읍국大邑國의 국사를 섭정하였습니다. 38세 되던 무진년, 즉 기원전 2333년에 단국檀國(대읍국과 동일 나라로 추정)의 웅씨왕이 전쟁에 나갔다가 죽음을 맞자, 백성들의 인망을 얻어 귀국해 아사달의 박달나무 우거진 터에서 온 나라 백성에게 천제로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습니다.

『환단고기』 「삼한관경본기」에 보면 이때 단군왕검이 사람들에게 공약한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 이후로는 백성의 뜻을 들어 공법公法을 삼노니, 이를 천부天符 즉 하늘의 법이라 이르노라. 무릇 천부는 만세불변의 기본 경전이요, 지극한 존엄성이 담겨 있으니 범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그 후 배달국 말기의 혼란을 바로잡고 분열되어 있던 구환족九桓族을 하나로 통일하였습니다.

단군왕검의 의미


단군왕검은 환국과 배달의 정통 정신을 계승하여 옛 신시神市 정신을 크게 부흥시킨 분입니다. 이 신교문화는 한민족 고대 문화와 사상의 총 결정체로서, 조선의 정치제도, 종교, 경제, 풍속, 지리와 당시 동북아 국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단군왕검은 신교의 제사장과 군장(天君)으로서 통치자를 겸임하는 관명官名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단군檀君은 주제지장主祭之長, 즉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을 주관하는 어른,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군이라는 말은 원래 하늘, 하느님, 신을 상징하는 뎅그리에서 왔습니다. 이 텡그리를 서양 문명의 근원, 기독교 문명의 고향인 수메르에서는 딩기르라고 하였습니다. 몽골어로는 텡그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단군이란 바로 하나님, 신의 신성을 가진 분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왕검은 관경지장管境之長, 즉 국가 영토를 관장하는 군주라는 뜻입니다.

단군조선의 첫 번째 수도, 아사달



단군왕검은 조선의 개국시조로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쑹화강 유역, 지금의 헤이룽장성 하얼빈의 ‘아침 태양이 비추는 땅’인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였습니다. 아사달은 넓게 확 트인 땅으로, 도읍지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면서 도성이나 도읍의 주산을 가리키기도 하였습니다. 단군조선은 제정일치 사회로 신교문화가 지배하던 때이기 때문에 아사달은 군왕의 치소治所이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과 조상님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당시 사회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단군왕검이 머무는 도성이란 의미에서 임검성壬儉城, 왕검성王儉城, 왕험성王險城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사달은 단군왕검의 처음 도읍지로 햇빛이 밝게 비치는 확 트인 곳으로서 정교일체의 다스림 아래 하늘을 섬기고 조상을 숭배하며 신의 뜻에 따라 생활하던 성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단군 조선의 3왕조 시대 변천사


그런데 이 아사달은 모두 세 곳이 있었습니다. 초대 단군왕검 때 쑹화강 유역 아사달이 첫 번째로 이를 제1왕조, 삼한三韓(진한, 변한, 마한) 시대라고 합니다. 훗날 한양조선의 고종황제가 선포한 국호 ‘대한’은 바로 이 삼한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후 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22세 색불루단군은 이 쑹화강 아사달에서 남서쪽의 백악산 아사달, 지금의 길림성 장춘長春으로 천도하였습니다. 이때를 제2왕조 시대라고 합니다.

이후 44세 구물단군 때, 우화충의 반란 사건으로 쇠약해진 국운을 대전환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더 내려와 장당경 아사달, 지금의 요령성 개원시開元市로 천도하며, 국호를 대부여로 변경하였습니다. 이를 제3왕조 시대라 하고 삼조선三朝鮮(진조선, 번조선, 막조선) 시대라고도 합니다.

도읍지의 이동에 따라 세 왕조의 변천을 거친 조선은 마흔일곱 분의 단군이 2,096년 동안 동아시아를 지배하였습니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서 단군이 1,908세를 살았다는 것은 쑹화강 아사달 1,048년과 백악산 아사달 860년 시대를 합친 숫자입니다.

나라를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림



단군왕검은 신교의 삼신문화, 신의 우주 창조 법칙인 3수 원리로 국가를 경영하고 통치하여 진정한 왕도문화를 세운 분입니다. 단군왕검의 국가 경영의 기본 시스템은 삼신 우주관을 바탕으로 한 3수 원리로 영토를 셋으로 나눈 것입니다. 바로 단군조선의 국가 경영 제도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입니다. 단군왕검은 대단군으로서 요동과 만주 지역에 걸쳐 있던 진한(중기 이후에 진조선)을 통치하였습니다. 수도는 앞서 살펴본 하얼빈 아사달입니다. 그리고 요서지역에 치우천황의 후예인 치두남蚩頭男을 부단군으로 하여 번한 왕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수도는 안덕향, 바로 1976년에 당산지진唐山地震이 일어났던 허베이성 당산입니다. 일명 탕지보라고 하며, 뒤에 허베이성 창려현에 있는 험독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웅백다熊伯多를 부단군으로 하여 마한 왕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도읍을 달지국達支國에 정하였는데, 백아강白牙岡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지금의 평양 일대입니다.

마한은 하늘의 정신을, 번한은 땅의 정신을, 진한은 천지의 주인이요 중심인 인간을 상징하였습니다. 이것이 삼조선으로 수도가 셋, 삼경三京입니다. 삼한의 수도는 저울대(진한), 저울추(번한), 저울판(마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신관의 정신을 상징하는 단군조선의 세 수도 삼경의 균형이 지속되면 나라가 강성해지고 번영이 계속되지만 균형이 무너지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균형의 핵심은 군권軍權이었는데, 잘 유지되었을 때는 진한의 대단군이 모두 통솔하였는데, 후에 이것이 무너져 삼조선으로 군권이 분산되면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단군왕검께서 내려 주신 여덟 가지 가르침(檀君八條敎)


현재 우리 역사 교과서 및 공무원 수험서 등에서는 고조선 사회의 기본법으로 팔조범금八條犯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남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곡물로 보상한다.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소유주의 집에 잡혀 들어가 남자는 종이 되고 여자도 여자 종이 됨이 원칙이나, 배상하려고 하는 자는 전 50만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고조선 사회는 생명 존중 혹은 노동력을 중시하는 농경사회였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였으며,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구분되는 계급사회였고, 화폐경제가 존재하는 사회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군조선 제22세 색불루단군 4년에 있었던 금팔조禁八條의 내용입니다. 「태백일사」 번한세가 하편에 기록이 보입니다. 이는 색불루단군을 언급할 때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이 금팔조를 이해하기 이전에 우리는 초대 단군임금이 내려 주신 참된 삶을 위한 여덟 가지 가르침을 알아야 합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조 : 하늘의 법도는 오직 하나요 그 문은 둘이 아니니라. 너희들이 오직 순수한 정성으로 다져진 일심을 가져야 하느님(상제님)을 뵐 수 있느니라. [朝天]

제2조 : 하늘의 법도는 항상 하나이며, 사람 마음은 똑같으니라.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생각하라. 사람들의 마음과 잘 융화하면, 이는 하늘의 법도에 일치하는 것이니 이로써 만방을 다스릴 수 있게 되리라.

제3조 : 너를 낳으신 분은 부모요. 부모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으니, 오직 너희 부모를 잘 공경하여야 능히 하느님(상제님)을 경배敬天할 수 있느니라. 이러한 정신이 온 나라에 퍼져 나가면 충효가 되나니, 너희가 이러한 도를 몸으로 잘 익히면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먼저 벗어나 살 수 있으리라.

제4조 : 짐승도 짝이 있고 헌 신도 짝이 있는 법이니라. 너희 남녀는 잘 조화하여 원망하지 말고 질투하지 말며, 음행하지 말지어다.

제5조 : 너희는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라. 그 아픔에 차이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여 헐뜯지 말며, 서로 돕고 해치지 말아야 집안과 나라가 번영하리라.

제6조 : 너희는 소와 말을 보아라. 오히려 먹이를 나누어 먹나니, 너희는 서로 양보하여 빼앗지 말며, 함께 일하고 도적질하지 않아야 나라와 집안이 번영하리라.

제7조 : 너희는 저 호랑이를 보아라. 강포强暴하고 신령하지 못하여 재앙을 일으키느니라. 너희는 사납고 성급히 행하여 성품을 해하지 말고 남을 해치지 말며, 하늘의 법을 항상 잘 준수하여 능히 만물을 사랑하여라. 너희는 위태로운 사람을 붙잡아 주고 약한 사람을 능멸하지 말 것이며,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비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지어다. 너희가 이러한 원칙을 어기면 영원히 신의 도움을 얻지 못하여 몸과 집안이 함께 망하리라.

제8조 : 너희가 만일 서로 충돌하여 논밭에 불을 내면 곡식이 다 타서 없어져 신과 사람이 노하게 되리라. 너희가 아무리 두텁게 싸고 덮는다 해도 그 냄새는 반드시 새어 나오게 되느니라. 너희는 타고난 본성을 잘 간직하여 사특한 생각을 품지 말고, 악을 숨기지 말며,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지 말지어다.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여야 너희들의 복록이 무궁하리라.

너희 오가五加와 백성들아! 나의 말을 잘 받들지어다.


단군왕검이 내려 주신 8대 강령은 일심과 지극하고 순수한 정성을 가져야 천지부모, 천지 주인인 삼신상제님과 한마음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에는 상제님을 경배하려면 부모와 조상에 대해, 부부와 형제와 자식에 대해서 어떤 마음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늘의 도움을 받아 복록을 누릴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심법이 나타나 있습니다. 유가의 인仁 사상의 원형이 여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잘 읽어 보면 우리가 잘 쓰는 속담의 원형도 담겨 있습니다. 이 여덟 가르침은 직접 손으로 써서 안방, 거실 또는 냉장고, 아니면 운전대 옆에다가 붙여 놓고 한 번씩 읽어볼 만한 것이라 봅니다.

여러 신하들과 황후 하백녀河伯女


단군임금님의 배우자는 비서갑斐西岬에 사는 하백河伯의 따님(雒嬪)입니다. 왕비는 누에치기를 관장하여, 방적紡績을 통해 백성으로 하여금 옷을 짜 입게 하였습니다. 누에는 뽕나무를 주식으로 하는데, 거대한 뽕나무는 우리 동이족의 신목神木 즉 부상수扶桑樹입니다. 이미 배달국 14세 치우천황 시대에 방적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라 시기의 채도彩陶 유적에서 누에고치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후 순임금이 개발하여 시작된 흑도黑陶 시대에 이르러 방적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자취가 있습니다. 두 분은 슬하에 2세 단군 부루夫婁를 비롯하여 부소扶蘇, 부우夫虞, 부여夫餘 등 네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단군왕검은 배달의 삼신 세계관을 근거로 한 신교의 정치 조직을 계승하여 7대 명신인 삼선三仙과 사령四靈을 보좌관으로 두고 인간사를 다스리는 366사事를 맡게 하였습니다. 『신사기神事記』 「치화기治化紀」
에는 이 삼선을 토지를 맡은 팽우彭虞와 사관史官인 신지神誌와 농사를 맡은 고시高矢라 전하고 있습니다. 사령은 풍백風伯 지제持提와 우사雨師 악저渥沮와 뇌공雷公 숙신肅愼과 운사雲師 여수기余守己입니다. 여기서 풍백은 천제의 명이 바람에 있다는 뜻으로 오늘날의 입법관에 해당합니다. 우사는 천제의 명이 비에 있다는 뜻으로 행정관입니다. 운사는 천제의 명이 구름에 있다는 뜻으로 사법관인데, 혼인과 부자父子의 도덕을 관장했습니다. 오늘날 민법 중 친족과 상속 부분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밖에 성조成造에게 궁실을 짓게 하였습니다. 성조는 건축의 시조신으로 무속과 민간 신앙에서 성조대군, 성주신成造神으로 받들어지고 집안의 수호신으로 모셔져 왔습니다. 집을 수호하는 성주신을 받아 내리는 성주풀이는 신교의 풍속입니다. 오늘날 새 집을 짓거나 이사한 뒤 행하는 집들이가 성주풀이의 현대적 변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지臣智에게는 글자를 만들게 하였고, 기성奇省에게 의약을 베풀게 하였고, 나을那乙에게 호적을 관장하게 하였고, 희羲에게 괘서卦筮를 주관하게 하였고, 우尤에게 병마를 담당하게 하는 등 국가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습니다.

※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의 내용이 기본교리에 관한 것이라면 이 경전은 한배검(단군)에 관한 역사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순한문체로 된 책으로, 1923년 봄에 만주에서 대종교시교회大倧敎施敎會의 명의로 1차 간행되었다.


단군조선과 동방 9년 홍수


초대 단군왕검이 통치하던 시기에 특기할 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20년 중국 중남부에 엄청난 홍수가 발생한 것처럼, 단군이 87세 되시던 정사년丁巳年 기원전 2284년에 동방에도 대홍수가 발생했습니다.

홍수가 범람한 다음 해인 무오년戊午年 7월 5일 단군왕검은 풍백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높은 산과 큰 하천을 잘 정리하여 백성이 편안히 거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운사 배달신倍達臣으로 하여금 강화도 전등산에 삼랑성三郎城을 축조하게 하고 마리산에 제천단인 참성단을 쌓게 하였습니다. 이때 강남의 백성 8천 명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3년 뒤인 신유년辛酉年인 기원전 2280년에는 친히 마리산에 올라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셨습니다.

이 동방 대홍수 사건은 중국 고대 첫 왕조인 하나라 개국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요임금과 순임금이 9년간 계속된 대홍수로 말미암아 전전긍긍할 무렵, 동방 조선의 천자 단군왕검은 104세 되시던 갑술년인 기원전 2267년에 태자 부루를 중국 양자강 남방에 있는 도산塗山에 특명 전권대사로 파견하여 회의를 주재토록 하셨습니다. 이때 부루태자께서는 단군조선의 제후 순임금이 특파한 우禹에게 ‘오행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五行治水法)’을 전수하셨습니다. 이는 『오월 춘추』나 『묵자』, 『응제시주』 등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우임금은 이 오행치수법으로 홍수를 다스려 민심을 얻고 하나라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단군조선이 하나라 개국에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태평성대의 모습과 단군왕검의 어천


단군왕검께서는 두 손을 맞잡은 채 단정히 앉아 함이 없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 다스렸습니다. 현묘한 도를 깨치셨으며, 뭇 생명을 접하여 교화하였습니다. 이런 단군왕검이 다스린 조선은 태평성대를 구가하였습니다. 나라의 기틀도 잡혀 있었고, 대홍수 사건도 동방 조선은 오행치수법으로 해결하였습니다. 단군왕검은 백성을 사랑하여 어질고 후덕한 정치가 사방에 미치어 천하가 태평하였다고 합니다.

재위 93년인 경자년 기원전 2241년에 왕검께서 버드나무로 지은 궁궐(柳闕)에 머무실 때 흙 계단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풀이 우거졌으나 베지 않으셨고, 박달나무[檀木]이 무성한 그늘 밑에서 곰과 호랑이와 더불어 노니시고 소와 양이 풀을 뜯는 평화로운 정경을 바라보셨습니다. 흔히 태평성대를 요순지치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단군왕검 때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단군왕검은 도랑을 파고 밭길을 내며,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시고 고기잡이와 사냥을 익히게 하시는 등 경제와 산업의 부흥에도 힘을 썼습니다. 그래서 백성에게 남아도는 물자가 있으면 나라 살림에 보태어 쓰게 하였습니다.

더불어 10월 상달에 나라에 큰 제전을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3월 16일에는 대영절이라 하여 삼신상제님을 맞이하는 제천의식인 삼신영고제를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훗날 고구려의 을지문덕, 연개소문 등의 역대 영걸들은 이 전통을 이어받아, 3월에는 마리산에서, 10월 개천절에는 백두산에서 천제를 봉행하였습니다. 이로부터 단군왕검의 덕화가 온 누리를 덮어 멀리 제주까지 미쳤고, 성덕의 가르침은 점차로 위세를 얻어 널리 퍼졌습니다. 단군왕검이 다스리는 삼한에는 모두 5가 64족이 있었습니다.

환기 4957년, 신시개천 1657년, 단기 93년인 기원전 2241년 3월 15일에 단군왕검께서 봉정蓬亭에서 붕어崩御하시어 교외 십 리 되는 곳에 장사지냈습니다. 모든 백성이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였고, 단군왕검을 추모하여 조기弔旗인 단기檀旂를 모셨습니다. 이 단기가 수천 년 동안 어린아이의 머리에 고운 비단 헝겊을 달아 주는 댕기의 원형입니다. 백성들은 아침저녁으로 모여 앉아 경배하며 항상 단군왕검의 덕을 가슴에 품고 잊지 않았습니다. 태자 부루께서 뒤를 이어 입극立極(자력이나 혈통상의 명분으로 제위에 오름)하여, 조선을 다스렸습니다.

<참고문헌>
『역주본 환단고기』(안경전, 상생출판, 2012)
『이것이 개벽이다 하』(안경전, 상생출판, 2014)
『한민족과 증산도(보급판)』(안경전, 상생출판,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