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칼럼 | 홍산문명을 품에 안고 이제는 역사광복 전쟁이다
[칼럼]
이완영 / 전주경원도장
대한민국은 경제대국, 한류문화대국이다. 이러한 상승기세를 타고 우리 국민들의 글로벌 지수도 잔뜩 올라있다. 이제는 세상이 마치 우리 것인 양 보인다. 이 시점에 국사國史를 논하면 즉각 여기저기서 국수주의國粹主義니 촌스런 민족주의니 하는 화살이 날아온다. 세계화라는 이름하에 제각기 이유를 대며 국가, 민족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냉엄한 국제 현실을 보라. 각국은 오직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무한의 경제전쟁을 치르며 역사교육과 국가관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은 국가차원에서 자기네 역사를 홀대하고 나아가 스스로 자기 역사를 파괴하는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역사 상실은 필히 국론의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역사를 잃어버린 것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지금 대한민국은 존망存亡의 기로에 놓여있다. 이러한 현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동북아 시원문명을 보여주는 홍산문명의 유물을 전시하는 전라북도 순회 「동북아 시원역사 전시회」가 기획되었다.
홍산문명은 인류사를 새로 쓰게 하는 새로운 문명이다. 인류 고고학은 지금까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보편적 흐름으로 인식하였는데 홍산문화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옥기문화가 발굴되었다. 옥의 세공細工 기술을 보면 현대의 가공술과 같은 수준의 문명이다. 이러한 옥기문화는 한반도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으며 일본과 아메리카 인디언문화, 중미의 아즈텍문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발굴되고 있다. 네이멍구(內蒙古) 우란차푸(烏蘭察布) 시 주변에서 발굴된 흑피옥黑皮玉의 연대는 홍산 옥보다 이른 것도 있다. 최근까지 중국정부는 흑피옥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지금은 인정하고 국가보물로까지 지정하고 있다. 흑피는 철, 구리, 인, 크롬, 니켈, 망간, 티타늄, 수은, 탄산칼슘, 코발트, 갤린 등 35개의 광물성 원소로 이루어져 있어 당시 그러한 옥 가공 기술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현대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미개한 야만인이 살았던 시대가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고대국가가 존재하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흑피옥의 재료인 옥과 다양한 기물들, 그리고 그 가공 기법이 홍산옥과 일치하여 중국 학계에는 범홍산문명으로 인정하고 있다. 흑피옥은 홍산옥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개인 차원의 발굴로 민간들이 많이 소장해 왔다. 전라북도 순회로 진행 중인 동북아시원문명전의 전시품인 홍산옥, 흑피옥, 토기, 청동기류는 1980년대부터 개인소장가인 김희용 선생에 의해 수집된 기물器物이다. 중국 정부도 김희용 선생의 일생일대의 집념을 인정하고 흑피옥의 가치를 공식 인정하여 그 공로를 표창하였다. 일반 옥은 연대측정이 불가하나 흑피옥은 식물성 흑피 도료성분 측정으로 14,000년에서 5,000년 전의 것으로 측정 결과가 나왔다. 이는 한국사의 고조선 실체와 그 이전의 배달국, 환국을 인정케 하는 유물이다. 이러한 옥기문화와 더불어 발굴되는 문물들은 현대인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지금 현대인들도 쓸 수 있을 법한 농기구와 다양한 바늘세트들, 그리고 신발을 대량생산하는 데 사용한 신발 틀, 뼈로 만든 피리, 국가 차원의 궁중음악에서 사용되었던 석경石磬 등의 발굴은 그 시대 문명의 수준을 확인시켜 준다. 또한 다양한 곰 토템 관련 유물을 통해 그동안 풀지 못한 한국역사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동안 삼국유사에 기록된 곰과 호랑이의 실체를 두고 신화니, 토템이니 하며 오랜 논쟁을 해 왔지만 홍산문명의 발굴과 더불어 그 문명은 웅족 문명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또 하나 특별한 점은 이 문명의 주인공들이 머리에 상투를 틀었다는 것이었다. 상투옥고의 발견은 중국에 던진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중국 덕보박물관에서는 이 상투문화를 ‘고대인들이 우주의 주재자인 상제님(하느님)과 하나로 연결되는 문화’라고 소개하고 있다. 중국은 홍산문명 발굴로 다시 한번 자신들의 역사를 수정해야 하는 고통스런 과정을 거친다. 1980년대부터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겨왔던 황제헌원 외에 더 먼 과거의 웅족 계열인 염제신농씨(강씨의 시조, 동이족)까지 포함하여 자신들을 ‘염황지손’(炎黃之孫)이라 수정하여 부르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배달국의 14번째 치우천황까지도 자신들의 조상으로 만들어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에 모시고 받들고 있다. 이는 결국 대한大韓의 고대 역사 전체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역사 강탈 작업인 것이다.
현 시점에서 광복 이후 70년간 대한민국 역사교육을 주도한 한국 주류사학계의 시각은 어떠할까? 일제는 우리를 영구히 식민통치하기 위해 우리 역사를 폄하, 왜곡하였다. 해방 이후 식민사학은 실증사학이라는 탈을 쓰고 그대로 계승되었다. 한국사학계는 실증사학이라는 이름 아래 세계 고고학계에서 그 한계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 ‘청동기 중심의 국가건국론’을 진리인 양 고집하고 있다. 고조선 이전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전국의 초, 중, 고등학교의 교사를 양성하는 한국 교원대의 모某 교수는 한술 더 떠 고조선 신화론, 고조선 부재론을 학생들에게 교육시켜 전국 학교에 국사선생님으로 보내고 있다. 홍산문명에 대해 한국 사학계는 아예 함구로 일관해오다 최근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이나 국사편찬위원회를 앞세워 “홍산문명은 우리 문화가 아니다.”라고 공식 주장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은 대다수 한국 국민들도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중국이 자기 나라에서 벌이는 사업일 뿐’으로 여기고 홍산문명은 ‘우리 문화가 아니라 민족의 구분이 없을 때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내부의 역사의식 부재를 눈치챈 발 빠른 중국정부는 한국사의 중국편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무無정신의 역사는 무無정신의 민족을 만들고 그 민족은 역사에서 반드시 사라졌다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 국민들은 되새겨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니 민족이니 역사니 하는 대의大義가 사라진 세상이라지만 역사의 필연인지 하늘의 도우심인지 홍산문화라는 인류의 보물이 우리 앞에 드러났다. 이제 그 주인공이 우리였음을 만천하에 선포해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역사광복운동이다. 이 시대 대한인들은 올바른 역사, 진실된 역사를 후손들에게 알려줘야 할 책무가 있다.
이번 8.15 광복절에는 홍산문명에 대해 알고 있고 우리의 뿌리 역사를 아는 지식인들의 역사광복 메시지가 언론기사에 많이 실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필자는 전시회에서 역사 큐레이터Curator 활동을 하면서 우리 국민들이 조금씩 역사의 진실을 알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 전국에서 역사광복의 불씨가 조금씩 타오르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누가 대신 찾아주지 않는다. 식민사학은 그냥 무너지지 않는다. 깨어있는 국민들이 똘똘 뭉쳐 전장戰場으로 나가야 한다. 잘못된 역사와의 전쟁, 잘못된 사관史觀과의 전쟁이다. 이것은 정의의 전쟁이므로 결국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다. 오늘도 나는 적군의 심장에 총을 겨누는 조선독립군의 심정으로 역사광복 현장에 서 있다.
환기 9212 / 신시개천 5912 / 단기 4348 / 서기 2015년 8월
대한민국은 경제대국, 한류문화대국이다. 이러한 상승기세를 타고 우리 국민들의 글로벌 지수도 잔뜩 올라있다. 이제는 세상이 마치 우리 것인 양 보인다. 이 시점에 국사國史를 논하면 즉각 여기저기서 국수주의國粹主義니 촌스런 민족주의니 하는 화살이 날아온다. 세계화라는 이름하에 제각기 이유를 대며 국가, 민족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냉엄한 국제 현실을 보라. 각국은 오직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무한의 경제전쟁을 치르며 역사교육과 국가관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은 국가차원에서 자기네 역사를 홀대하고 나아가 스스로 자기 역사를 파괴하는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역사 상실은 필히 국론의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역사를 잃어버린 것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지금 대한민국은 존망存亡의 기로에 놓여있다. 이러한 현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동북아 시원문명을 보여주는 홍산문명의 유물을 전시하는 전라북도 순회 「동북아 시원역사 전시회」가 기획되었다.
홍산문명은 인류사를 새로 쓰게 하는 새로운 문명이다. 인류 고고학은 지금까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보편적 흐름으로 인식하였는데 홍산문화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옥기문화가 발굴되었다. 옥의 세공細工 기술을 보면 현대의 가공술과 같은 수준의 문명이다. 이러한 옥기문화는 한반도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으며 일본과 아메리카 인디언문화, 중미의 아즈텍문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발굴되고 있다. 네이멍구(內蒙古) 우란차푸(烏蘭察布) 시 주변에서 발굴된 흑피옥黑皮玉의 연대는 홍산 옥보다 이른 것도 있다. 최근까지 중국정부는 흑피옥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지금은 인정하고 국가보물로까지 지정하고 있다. 흑피는 철, 구리, 인, 크롬, 니켈, 망간, 티타늄, 수은, 탄산칼슘, 코발트, 갤린 등 35개의 광물성 원소로 이루어져 있어 당시 그러한 옥 가공 기술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현대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미개한 야만인이 살았던 시대가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고대국가가 존재하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흑피옥의 재료인 옥과 다양한 기물들, 그리고 그 가공 기법이 홍산옥과 일치하여 중국 학계에는 범홍산문명으로 인정하고 있다. 흑피옥은 홍산옥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개인 차원의 발굴로 민간들이 많이 소장해 왔다. 전라북도 순회로 진행 중인 동북아시원문명전의 전시품인 홍산옥, 흑피옥, 토기, 청동기류는 1980년대부터 개인소장가인 김희용 선생에 의해 수집된 기물器物이다. 중국 정부도 김희용 선생의 일생일대의 집념을 인정하고 흑피옥의 가치를 공식 인정하여 그 공로를 표창하였다. 일반 옥은 연대측정이 불가하나 흑피옥은 식물성 흑피 도료성분 측정으로 14,000년에서 5,000년 전의 것으로 측정 결과가 나왔다. 이는 한국사의 고조선 실체와 그 이전의 배달국, 환국을 인정케 하는 유물이다. 이러한 옥기문화와 더불어 발굴되는 문물들은 현대인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지금 현대인들도 쓸 수 있을 법한 농기구와 다양한 바늘세트들, 그리고 신발을 대량생산하는 데 사용한 신발 틀, 뼈로 만든 피리, 국가 차원의 궁중음악에서 사용되었던 석경石磬 등의 발굴은 그 시대 문명의 수준을 확인시켜 준다. 또한 다양한 곰 토템 관련 유물을 통해 그동안 풀지 못한 한국역사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동안 삼국유사에 기록된 곰과 호랑이의 실체를 두고 신화니, 토템이니 하며 오랜 논쟁을 해 왔지만 홍산문명의 발굴과 더불어 그 문명은 웅족 문명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또 하나 특별한 점은 이 문명의 주인공들이 머리에 상투를 틀었다는 것이었다. 상투옥고의 발견은 중국에 던진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중국 덕보박물관에서는 이 상투문화를 ‘고대인들이 우주의 주재자인 상제님(하느님)과 하나로 연결되는 문화’라고 소개하고 있다. 중국은 홍산문명 발굴로 다시 한번 자신들의 역사를 수정해야 하는 고통스런 과정을 거친다. 1980년대부터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겨왔던 황제헌원 외에 더 먼 과거의 웅족 계열인 염제신농씨(강씨의 시조, 동이족)까지 포함하여 자신들을 ‘염황지손’(炎黃之孫)이라 수정하여 부르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배달국의 14번째 치우천황까지도 자신들의 조상으로 만들어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에 모시고 받들고 있다. 이는 결국 대한大韓의 고대 역사 전체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역사 강탈 작업인 것이다.
현 시점에서 광복 이후 70년간 대한민국 역사교육을 주도한 한국 주류사학계의 시각은 어떠할까? 일제는 우리를 영구히 식민통치하기 위해 우리 역사를 폄하, 왜곡하였다. 해방 이후 식민사학은 실증사학이라는 탈을 쓰고 그대로 계승되었다. 한국사학계는 실증사학이라는 이름 아래 세계 고고학계에서 그 한계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 ‘청동기 중심의 국가건국론’을 진리인 양 고집하고 있다. 고조선 이전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전국의 초, 중, 고등학교의 교사를 양성하는 한국 교원대의 모某 교수는 한술 더 떠 고조선 신화론, 고조선 부재론을 학생들에게 교육시켜 전국 학교에 국사선생님으로 보내고 있다. 홍산문명에 대해 한국 사학계는 아예 함구로 일관해오다 최근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이나 국사편찬위원회를 앞세워 “홍산문명은 우리 문화가 아니다.”라고 공식 주장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은 대다수 한국 국민들도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중국이 자기 나라에서 벌이는 사업일 뿐’으로 여기고 홍산문명은 ‘우리 문화가 아니라 민족의 구분이 없을 때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내부의 역사의식 부재를 눈치챈 발 빠른 중국정부는 한국사의 중국편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무無정신의 역사는 무無정신의 민족을 만들고 그 민족은 역사에서 반드시 사라졌다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 국민들은 되새겨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니 민족이니 역사니 하는 대의大義가 사라진 세상이라지만 역사의 필연인지 하늘의 도우심인지 홍산문화라는 인류의 보물이 우리 앞에 드러났다. 이제 그 주인공이 우리였음을 만천하에 선포해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역사광복운동이다. 이 시대 대한인들은 올바른 역사, 진실된 역사를 후손들에게 알려줘야 할 책무가 있다.
이번 8.15 광복절에는 홍산문명에 대해 알고 있고 우리의 뿌리 역사를 아는 지식인들의 역사광복 메시지가 언론기사에 많이 실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필자는 전시회에서 역사 큐레이터Curator 활동을 하면서 우리 국민들이 조금씩 역사의 진실을 알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 전국에서 역사광복의 불씨가 조금씩 타오르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누가 대신 찾아주지 않는다. 식민사학은 그냥 무너지지 않는다. 깨어있는 국민들이 똘똘 뭉쳐 전장戰場으로 나가야 한다. 잘못된 역사와의 전쟁, 잘못된 사관史觀과의 전쟁이다. 이것은 정의의 전쟁이므로 결국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다. 오늘도 나는 적군의 심장에 총을 겨누는 조선독립군의 심정으로 역사광복 현장에 서 있다.
환기 9212 / 신시개천 5912 / 단기 4348 / 서기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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