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론병을 극복하고 천지일꾼으로 새로 태어나 외
[태을주천지조화문화를연다]
크론병을 극복하고 천지일꾼으로 새로 태어나
김준영(29) / 인천주안도장
17살 때 찾아온 불치병
저는 오늘 상제님 진리를 만나는 과정과 더불어 도문에 들어온 후 말씀과 태을주 도공의 은혜를 통해 몸과 마음에 있던 병마를 극복한 치병사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 사례가 많은 성도님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도기 139년 6월 5일, 23살 때 입도하였습니다. 저는 상제님 진리를 만나기 전 제 인생에 큰 충격과 변화를 가져다 준 일을 몇 번 겪게 됩니다.
첫째로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제가 17살 때의 일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찾아온 복통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었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하다 보니 입원하여 여러 검사를 하였는데 병명을 알지 못하고 6개월 동안 4~5군데의 병원을 다니며 관찰하였습니다. 그 결과 크론병(Crohn’s disease)이라는 병명을 진단 받았습니다. 이 6개월 동안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아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크론병은 국내에 약 2만 5천여 명 정도 앓고 있는 희귀병인데요. 염증성 장질환이라고도 하는데 자가면역질환으로 내 몸을 지켜야 할 면역체가 오히려 내 몸을 공격하여 식도부터 대장, 항문까지 장에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병입니다. 병 증상은 심한 복통과 설사, 체중감소, 피로감, 무기력증 등의 여러 합병증과 함께 장腸협착과 항문 주변에 농양이 생기는 증세가 있습니다. 심해지면 장을 절제해야 할 지경에 이르고 삶의 질을 굉장히 떨어뜨리는데, 현대 의학에서는 완치가 없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병입니다. 저의 병세는 주로 대장과 소장에 염증 반응이 심했는데요. 내시경을 통해 보니 입안에 염증이 생겨 노랗게 곪을 때처럼 대장, 소장 쪽에 수십 수백개의 종기가 생겨서 고름집처럼 부어 염증반응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복통이 너무 심하고 식사라도 하면 지옥의 형벌을 맛보는 느낌일 정도로 통증이 심했는데요, 이게 매일 반복되다 보니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제 몸무게는 65kg이었는데 그 당시 병을 앓은 지 한 달도 안되어 47kg으로 빠졌습니다. 또 여기에 더해 항문 주변에 다발성 농양이 생겨 3군데 종기가 생겼고 거기다 먹기만 하면 설사를 하여 거동조차 힘들었습니다. 외출이라도 하는 날에는 한두 시간 외출하고는 너무 피로하여 하루 종일 곯아 떨어져 자야했는데요 그것도 통증이 있어 편히 잠을 자지도 못했습니다. 당시 한 주먹씩 먹었던 약은 면역 억제제, 항염증제, 항생제, 스테로이드제, 소화제 등이었고, 나중에는 진통이 너무 심해 마약이라 쓰여 있는 진통제까지 복용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내가 전생에 정말 무시무시한 죄를 지었나 보다.’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뼈만 남아 죽어갈 것 같은 제 모습을 자주 멍하니 쳐다보시다가 저를 끌어안고 엉엉 우셨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눈빛에 어머니의 감정과 마음이 실려오면서 저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상제님 진리와의 첫 인연
그렇게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중 상제님 진리와 인연이 닿은 첫 계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18살 때 아버지께서는 읽어보라며 책 한 권을 전해 주셨는데, 그 책이 『이것이 개벽이다』였습니다. 대충 훑어봤는데 예언 내용인 거 같았습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당장 제가 고통스런 상황이었으므로 그때는 책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책장에 꽂아 두었습니다. 또 얼마 후 집에 오신 친척 분이 그 책을 보더니 이상한 책이니 읽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얘기 듣기도 싫고 해서 책을 장롱 안에다 안 보이게 치워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찾아온 진리와의 인연은 맺어지지 못했습니다. 이후 저는 마음에도 병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병마病魔는 몸과 마음을 점점 나약하게 만들었고 저는 이대로 잠들어 다시 깨어나지 않아도 좋겠다, 죽어도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별세
그런 저에게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일이 발생하는데요. 제가 스무 살 때 건강하게 보이시던 아버지께서 병원 진단을 받으셨는데 결과는 간암 말기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없이 몇 개월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하시며 가족을 위해 평생을 고된 노동만 하시다 47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니 인생이란 게 참으로 허망하게 느껴졌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 아버지께서 한복을 입으시고 장롱 문을 벌컥 열고 안에서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당시 저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이후 저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져 갔습니다. 들어간 대학은 휴학을 하고 매일 집에서 컴퓨터로 인터넷 게임과 소설 책 등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폐인廢人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고 의지가 되어 드려야 할 큰아들로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목적도 의미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스승님이 계셨으면 좋겠다
저의 생활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벗어날 힘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마음속에 딱 하나 바라는 게 있었는데요. 그건 이런 생활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줄, 나를 이끌어줄 스승님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1년 2년 3년 4년 그렇게 23살까지 폐인 같은 삶을 보내던 어느 날 인터넷을 하다가 '네이버 지식 iN'에서 한 성도님이 쓰신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궁금증이 일어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을 주고받다 보니 아버지의 고향인 완도에서 증산도를 신앙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후 메일로 몇 가지 책을 소개 받아 책을 읽는데 책 이름이 어딘가에서 많이 봤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어 장롱 문을 열어보니 거기에 『이것이 개벽이다』책이 구석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또 신발장 위에는 『개벽실제상황』, 『개벽을 대비하라』가 꽂혀 있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관련 책들을 제대로 읽게 되었고 도장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운이 좋게도 그 무렵 종도사님께서 인천지역 순방을 오시는 때였습니다. 도장 방문 며칠 뒤 종도사님을 처음 뵙게 되어 도훈을 듣는데, 그 말씀이 마음에 와서 꽂히며 저의 마음에 있던 어둠을 걷어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척추부터 시작해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확신했죠. 찾았다! 저 분이다, 저 분이 내가 찾던 스승님이라는 걸 탁 느끼고 제가 입도를 하게 됩니다. 그때 당시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세포 하나하나에 차오르는 기쁨은 이 세상에서 좋다는 어떤 약과도 비교할 바 없이 치유효과가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진리를 만나고 스승님을 만났다는 기쁨만으로 그때 병의 반이 날아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천도식을 올려 드리며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저는 아버지의 손길을 강하게 느꼈는데요. 조상님과 아버지의 천도식을 올려드리고 싶은데 당시 제 처지가 돈을 벌거나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를 드리는 것뿐이었죠. 그렇게 몇 개월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대출을 받았다면서 쓰라고 목돈을 그냥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웬 떡이냐 하며 직선조 천도식을 올려드렸거든요. 그때도 제가 체험한 게 있는데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천도식을 준비하며 정성수행을 하는 기간 중 어머니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셨어요. 노란 한복을 입으시고 어머니 말씀 그대로 표현을 하면 아버지 몸에서 노란 광채가 났다고 해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살아생전에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너무 좋아서 싱글벙글하는 모습이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네가 아버지 천도식 올려드리니까 좋아서 그런가보다 하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천도식을 하면 위패를 올리는데요. 이 위패 모시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는 체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느 날 꿈을 꿨어요. 꿈이 할머니 댁에서 시작을 하는데, 할머니 댁에 큰방이 중앙에 있고 양옆으로 작은방이 있거든요. 오른쪽 방에 들어가 보니 방 한가운데에 사람 크기만 한 나무 조각상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 이게 우리 게 아닌데 왜 여기 있지?” 하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들어오세요. “아버지, 이거 우리 거 아니야. 이거 밖에 마당에다 치워야겠어요.” 하니까 아버지가 끄덕끄덕 그러세요. 아버지가 번쩍 들어서 마당에 내놓으시는데 제가 따라가보니까 뭔가 마음에 안 들어요. 그래서 다시 “아버지, 그냥 이거 마당 밖으로, 집 밖으로 내놔야겠어요.” 하니까 아버지가 또 끄덕끄덕하시고 그걸 들어서 밖으로 내놓으며 꿈이 끝났습니다. 보통 꿈을 꾸면 느낌이 오는데 이건 도통 뭔 꿈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2~3일이 지나고 도장에서 청수를 모시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조상님 신단을 모시면서 저희 집안 위패를 보니 못 보던 위패가 걸려져 있는 겁니다. 제 조상님 위패 위에 다른 성도님의 조상 위패가 떡 하니 걸려져 있는 거예요. 도장에서 한 번씩 위패 정리를 하는데,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그렇게 됐나 봅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 꿈의 의미를 깨달았죠. 또한 천도식을 올려드리면서 그동안 한 주먹씩 먹던 약을 완전히 끊게 되었습니다.
갑오년 사부님과의 만남
그렇게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우리가 실제로 상제님 신앙을 하는 목적인 살릴 생生 자 공부를 해 나갔는데요. 이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포감님을 따라 대학가에서 5년을 활동하면서 씨는 그런대로 많이 뿌렸는데 그게 수렴으로는 하나도 이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좀 하려고 하면 한번씩 병이 말썽을 부리는 거예요. 스스로 마음이 그 병을 이겨내지 못해 계속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을 반복하며 5년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니 활동이 반복적으로 지속이 안 되고 맥이 끊기는 거죠. 그럴 때마다 선배 신앙인들이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조언을 하셨는데 그 말씀이 알 듯 말 듯 하여 경계를 넘지 못하였습니다. 개척활동을 하면서 진리와 함께 결론적으로 태을주를 전해야 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못 고치는 병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태을주를 자신 있게 전할까라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항상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무 성과 없이 28살이 되어 맞이한 작년 갑오년 7월에도 종도사님께서 인천 순방을 오셨는데, 그때 저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체험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순방 도훈이 있기 전에 도장에서 도정보고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개인신상과 함께 제 병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종도사님께서 제 병에 대해 자세히 물으신 후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병 아무것도 아니다. 3·7도수로 21일 정성수행 몇 번 하면 그냥 다 낫는 병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도정보고 시간이 끝나고 구월도장으로 이동을 하는 중에 체험을 하였는데, 가슴에서 무엇인가 묵직하고 호박만 한 게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속이 시원하면서 마치 몸에 박혀 있던 돌덩이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고 몸이 가볍고 상쾌하였습니다. 저는 이게 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이동하는데 순간 머리를 번뜩 스치는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처음 크론병 진단을 받을 때 의사로부터 “당신 병은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가 없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하며 가장 최선의 방법은 병세가 호전되었을 때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저에게는 그게 굉장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의사의 그 말이 제가 12년 동안을 병을 앓아오면서 마음속에 돌덩이처럼 박혀 있었나 봅니다. 주변에서 관심을 표하며 무슨 병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저는 병원 의사가 한 말의 추종자가 되어서 수십 명 수백 명한테 앵무새처럼 똑같이 말을 반복하였고, ‘이 병은 못 고치는 병이다’라고 점점 마음에 각인이 돼버렸던 것이죠. 그러면서 제가 깨달은 게 뭐냐면 ‘아, 이게 내 스스로에게 한계를 짓도록 한 것이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게 있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우리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고 경험한 것들이 내 마음에 돌처럼 박혀서 내가 신앙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하는 데에 방해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석 봉청수부터 바로잡아
제가 종도사님 말씀을 통해 큰 체험을 하면서 문제를 바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 사부님 말씀대로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강력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묵은 기운, 묵은 의식을 떨쳐내기 위해 하루 종일 운장주를 강력하게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문자답을 하며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조석 청수 모시는 것을 철저히 했습니다. 제가 그전에는 청수를 형식적으로 모시고 몸이 아프면 그것을 핑계 삼아 거르기도 많이 했어요. 종도사님 도훈 중에 “청수를 모시지 않는 사람은 신앙인이라 할 수 없다.”는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에 제가 깊은 반성을 했습니다. 이후부터는 온갖 핑계를 다 제쳐 두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정성을 다해 청수를 반드시 모시고 기도하고 수행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바로잡아가며 일주일 정도 지난 수요치성일이었습니다. 종도사님 말씀을 받들고 있는데 그 도훈 말씀이 제 마음에 들어와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 자꾸 글이 떠올랐습니다. 이게 뭐지 하는데 점점 강하게 글이 떠올라 그걸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병마야! 네가 나의 몸을 어지럽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을지언정
천지일월과 함께하는 나의 정신을 침범하지 못하고
나의 마음을 꺾지는 못하리라!
너를 통해 나의 마음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고,
너로 인해 나태해짐을 항상 경계할 것이다.
너는 단지 심법을 닦는 수많은 도구 중 하나일 뿐이고,
너를 발판으로 삼아 나는 한 단계 성숙할 것이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글을 받고 제가 병을 대하는 자세가 확 달라졌습니다. 이 일로 용기를 얻어 더욱 정성스럽게 청수를 모시며 기도하고 수행해 나갔습니다.
21일을 정성수행으로 병을 완치하고
그러면서 어느덧 동지치성이 다가왔고 도장에서는 동지맞이 21일 새벽정성 수행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때 저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며 정성수행에 참여하였습니다. 새벽 4시 반에 기상하여 목욕재계하고 6시부터 도장에서 정성수행을 성도님들과 함께 진행해 나갔습니다. 정공과 도공을 하였는데 이틀차에 도공이 격렬하게 되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했는데 다리와 엉덩이가 번쩍번쩍 들리며 도공 기운이 크게 내려왔습니다. 그러다 극치로 가니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고요하게 착 가라앉으며 제가 가슴 부분을 손으로 쓸어내리는데 마음속에서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동안 고생했다. 그동안 애썼다. 많이 힘들었지? 이제 사람 많이 살리자”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 순간 지난 12년의 시간 동안 병으로 고통받고 서러웠던 감정들이 물밀듯 몰려오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지며 엉엉 울었습니다. 부모님 속을 아프게 한 것, 병 때문에 발목 잡히고 시도조차 못해본 것, 포기한 것 등 수많은 감정들이 밀려오며 도공이 끝날 때까지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도공이 끝나고 그런 한과 서러움이 모두 씻겨 나가며 ‘아 이거 21일 제대로 끝마치면 병이 낫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정성수행을 하며 20일차가 되었습니다. 그날 도공을 시작하며 ‘지기금지원위대강’을 하는데 눈물이 쏟아져 내리며 마음속에서 진심이 담긴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도공이 끝날 때까지 감사합니다란 말과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도공이 끝난 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병이 나아버렸구나. 그 뒤로는 의식 속에서 병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그전에는 항상 의식 속에 ‘나는 병자다, 나는 크론병 환자다’라는 게 있어 ‘병이 있으니 이건 못해, 저건 아마 못할 거야’ 하며 스스로 한계를 정했는데 그런 생각과 의식 자체가 마음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또 그전에는 항상 밑에서 누가 매달려 땅바닥으로 당기는 느낌처럼 몸이 힘들었는데 오히려 이젠 누가 위로 받쳐 올려주듯이 몸이 가볍고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동지치성을 모시고 온 뒤로 일주일 정도 지난 후 실제로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한 3일 동안 뒤로 시커먼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봤는데 제 몸에 있던 합병증 그게 깨끗하게 다 사라지고 그동안 저를 괴롭혀 오던 복통과 설사들 그런 게 다 사라졌습니다. 그전에는 복통과 설사 뒤 통증 때문에 밖에 외출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위축되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랬는데 이게 다 나아 그동안 족쇄처럼 여겨지던 모든 고통들로부터 해방되니 몸이 날아갈 것 같았고, 천지일월부모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밖에 안 들고 보은의 마음이 크게 일었습니다.
사람 살리는 일을 크게 해보자
그래서 제가 크게 서원을 세웠습니다. 을미년에는 내 신앙 역사상 가장 강력하게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보자! 이렇게 서원을 세워 정성수행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조화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 제가 5년 동안 포교활동을 하며 씨를 많이 뿌렸지만 한 번도 성과라던가 동아리 회원가입을 시킨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설문활동을 하거나 홍보물을 붙이면 연락이 오고 동아리방 인도가 쉽게 쉽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달인 6월까지 제가 신앙을 하면서 처음으로 대상자 수렴 활동 때문에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중 몽골에서 유학을 온 19세 여성은 도장 인도까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저에게 너무너무 말할 수 없이 기쁜 일이 일어났는데요. 그건 어머니께서 제가 병이 다 나은 걸 확인하시고 마음이 크게 열리신 것입니다. 그전에는 제가 태을주라든지 진리 이야기를 하면 그거 다 네 믿음일 뿐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실제로 어머니 두 눈으로 그걸 확인하시게 되면서 신앙을 같이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그렇게 6월을 보내면서 정성수행을 통해 어머니께서 도장에 인도되셨고 팔관법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 아버지께서 어머니 꿈에 나타나 지원까지 해주신 덕분에, 어머니께서는 팔관법 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입도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제껏 항상 어머니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제가 병이 나으며 자주 웃어 드리니 어머니도 좋아하시고, 또 진리교육을 받으신 어머니께서도 웃음꽃이 피어나니 저 또한 그 기쁨을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족과 도담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축복이라는 것을 느끼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 체험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요. 제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진행형입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혹시 성도님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이 있다면 오늘 제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당당히 넘을 수 있는, 그런 힘을 얻으시면 좋겠습니다. 보은![7월 22일 인천지역 순방 도공전수의 날] ◎
경추와 척추의 불편함이 해소되어
박영지(44) / 진주도장
순방교육이 열리는 도장에 들어가 사배심고를 올리자마자 담痰이 속에서 올라왔고, 태상종도사님의 성음에 맞춰 태을주를 목이 아파 작은 소리로 읽는데 슬픈 느낌이 없는데도 양쪽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줄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더니 눈의 통증이 싹 가시고 편해졌습니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도공을 시작하자마자, 누가 위에서 제 몸을 쭈욱 당기듯 팔을 흔들며 몸이 곧게 세워졌고 종도사님 주문 소리, 북소리 리듬에 몸이 실려 저절로 움직이는데, 기운이 정말 강력했습니다. 굉장히 신나고 부드럽고 평온하면서 도공하는 순간에 행복감이 충만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거의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추다시피 했는데, 몸이 들썩들썩 거리면서 어느 순간 일어서야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일어서면 펄쩍펄쩍 뛸 것 같아 기운의 이끌림을 제가 애써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허벅지에 쥐가 내리면서 ‘이래도 안 일어설래?’라는 느낌이 들어 ‘모르겠다. 그냥 다 맡겨버리자.’ 하고 일어서서 뛰었습니다. 이후 태을주 도공 내내 몸이 저절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몸 내부가 흔들흔들 뭔가 털어내면서 자리를 맞추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목 경추와 척추의 불편함이 요리조리 뒤틀리면서 해소되고 저절로 스트레칭이 쫙쫙 되면서 몸이 알아서 움직였습니다. 제가 평소에 들인 공력과 정성에 비해 너무 많은 은혜를 매번 받고 있어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제 양심이, 그리고 조상선령님들이 사람을 살려내라고 꿈에서도 부르짖고 있습니다. [6월 28일 창원명서도장 순방] ◎
눈앞이 환해지고 나비가 된 느낌
백승순(47)/ 당진읍내도장
도공을 처음 시작했을 때 종도사님 성음과 북소리에 깜짝 놀라면서 제 가슴에 성음과 북소리가 박히는 듯했습니다. 손을 흔들며 도공을 하는데 손목이 끊어지는 것처럼 아프고 어깨까지 빠질듯 아팠습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종도사님 성음에 맞추어 온몸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안개에 싸인 모습처럼 눈앞이 환해지면서 머리까지 온통 물안개 속에 있는 듯하고 몸이 아주 가벼워지면서 나비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양손과 머리 위쪽으로 팔을 움직일 때마다 아주 무거운 하얀 구름인지 안개인지 무언가를 들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하나도 무겁진 않은데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양손에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손을 벌려서 받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느낌이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인상을 쓰면서 도공을 하기도 했는데 온몸을 움직일 때마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서 기분이 아주 상쾌했습니다. 또 정수리 부분에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면서 기운이 뭉쳐 같이 움직였습니다. 도공을 마치고 마지막 태을주를 읽을 때는 사이다를 흔들었을 때 기포처럼 발끝에서부터 머리 위쪽으로 기운이 쭉 빠져 나갔습니다. 온몸이 너무 시원하고 기분이 개운해서 가슴이 벅차도록 기뻤고 그 여운이 쉽게 가라앉질 않았습니다. 도공을 마치고 차 운전을 하고 돌아와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났는데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얼굴 등 몸이 부어서 얼음 마사지를 했었는데 부기가 싹 빠져서 온몸이 가벼웠습니다. 그래서 남편보고 얼굴이 어떤지 봐달라고 하니까 부기도 없고 혈색이 좋다고 했습니다. 도공을 내려주신 종도사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보은하는 일꾼신앙을 하겠습니다. [7월 1일 공주신관도장 순방] ◎
몸 밖으로 담이 나오는 체험
김진우(33) / 춘천중앙도장
도공을 받기 전날 밤에 좋은 물(水)과 같은 기운들이 한번 찾아왔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평소에 위염 및 장염이 조금 있고 위에 열이 많고 장에 찬 기운이 돌아 담痰이 계속 나오므로 침을 자주 뱉곤 합니다. 도공 시에 따듯하고 온화한 기운이 몸속과 겉에 맴돌며 제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위염 및 장염을 모두 거둬내 몸 밖으로 담이 배출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몸속에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지극한 생명기운을 받아 마치 모든 병 기운을 씻어낸 기분이 들었고, 처음 입도했을 때 느꼈던 성령의 기운을 받아 정신도 더욱 또렷해졌습니다. 강력한 기운을 내려 받아 그동안 있었던 오장육부 구석구석의 냉한 기운들이 모두 해소되었으며 따듯하고 원원한 지기들이 온 몸을 감싸 안았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땀을 뺀 적이 없었는데, 온몸이 막 격렬하게 움직여지면서 진동과 기운이 하나가 되고 강력한 도공기운을 받아 내려 기분도 너무너무 좋았고 몸이 훨씬 가뿐해지고 활력이 생겼으며 정신도 더욱 맑고 또렷해졌습니다. 또한 시달리던 허령 기운도 잠잠해졌습니다. 종도사님 순방도공의 큰 은혜에 보은하는 천지 일꾼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보은! [7월 12일 원주우산도장 순방] ◎
척신과의 힘겨루기에서 이겨
곽명근(27) / 군산조촌도장
요즈음 과로에 의해 몸이 많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냥 안 좋은 것이 아니라 가슴과 배 어디쯤에서 탁한 기운이 뭉쳐있고 뭔가 안 좋은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오늘 내가 이것을 끌러내리라.’는 마음을 먹고 북소리에 맞춰 박자를 타며 ‘지기금지원위대강’을 힘차게 외치고 나갔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으니 처음엔 앞이 컴컴하다가 갑자기 어딘가로 빨려가듯이 환해졌는데 잡생각이 들 수 없는 어떤 경계로 접어든 것 같았습니다. 한참 신명나게 몸을 흔드는데 내 몸 바로 왼쪽에 사람의 형체를 한 검은 그림자가 앞을 보고 서 있더니 급기야 몸을 비틀어 내 얼굴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순간 몸이 오싹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 몸을 감싸고 있는 탁하고 먹구름 같은 먹먹한 기운이 신명이라는 것을... 척신인지 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을 몰아내자는 마음으로 더 힘차게 주문을 읽고 몸을 흔들었습니다. 순간 환했던 시야가 다시 어두컴컴해지며 검은 형체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시 환하게 되길 바라며 도공을 하는데 갑자기 잠이 쏟아졌습니다. 누군가 계속 의도적으로 의식을 흐트러뜨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무릎을 꿇고 자세를 바로잡아 주문소리로 때리듯이 리듬을 탔습니다. 한참 집중해서 하니 검은 형체의 의도적인 손길이 조금씩 약해지며 내 기운이 힘겨루기에서 이기고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거의 다 이겼다고 느꼈을 때 꽉 쪼이고 있는 무언가가 확 풀어지며 다시 환한 세상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다시금 그 경계에 들어가니 피톤치드 숲에서 누워있는 듯 너무 상쾌해졌습니다. 앞을 보니 띄엄띄엄 앉아있는 성도님들의 대각선 방향 빈 공간에 신명들이 앉아있는 게 보였는데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머리가 도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7월 29일 전주덕진도장 순방]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