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의 공복公僕으로서 신앙의 모범이 되라.

[태상종도사님 말씀]
道紀 133년 5월 27일, 신임간부 소양교육, 증산도교육문화회관
[말씀요약] 상제님 진리는 자연섭리요 천지의 이법이다. 자연섭리는 생장염장에 의해 둥글어 가는데, 천지는 말도 없고 손발도 없으므로 사람이 주체가 돼서 천리를 집행을 한다.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 신도들은 그 일을 하기 위한 천지의 대역자代役者다. 인사人事라 하는 것은 기회가 있는 것이다. 시호시호부재래時乎時乎不再來라, 그 기회는 절대로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인류역사를 통해서 성공이라 하는 것은 노력의 대가다. 상제님은 복록福祿도 성경신誠敬信이요 수명壽命도 성경신誠敬信이라고 하셨다. 모든 것은 자기가 신앙하는 성경신을 보고서 물어봐야 한다. 또 사람은 바르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사람은 내가 살기 위해서 남도 도와주고, 그러고 나는 노력의 대가를 받고, 그래야 한다.

상제님 진리는 가을 진리, 열매기 진리로서 인간 세상에 필요불가결한 진리가 전부 다 함축돼 있다. 지나간 역사 과정의 동서양 각색 문화권이라는 게 전부가 다 절름발이 문화이지만 상제님 진리는 완성품, 열매기 문화 성숙된 문화이며, 묶어서 군사부 진리다. 너희들은 나가서 천지의 사명을 올바로 집행해라. 사심을 버리고 첫째로 화합을 해야 하고 항상 겸허해야 하며 정책적으로 감화를 시켜서 그 사람이 스스로 쫓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상제님 일은 팔 짚고 헤엄치기다.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되는 일을 하자는데 그것도 못 하는가. 사람은 제 스스로 개혁改革을 하고 스스로 도야陶冶를 하고 스스로 성숙成熟이 돼야 한다. 하니까 내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정의로운 길을 걸어라. 신도들을 너희들보다 더 잘 믿는 신도로 만들어라. 너희들이 성공하는 길은 바로 그 길밖에 없다.

너희들은 천지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하니까 조직 속에서 조금이라도 뒤질세라 전부를 다 바쳐서 맡은 바 사명을 다해라. 그 결론은 사람 살리자는 것이지 뭐가 있겠나. 신앙이라 하는 것은 일편단심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봉사정신을 가져야하고 내 주체성을 가지고서 언제나 상제님 진리 속에서 살아야 신명한테 도움도 받고 상제님 사업을 성공할 수가 있다. 또한 너희들은 공인이며 증산도의 공복公僕이다. 증산도라는 틀이 우리 신도들의 집이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상제님이다. 모든 문제가 상제님이 틀을 짜 놓으신 대로만 둥글어 가므로 상제님의 그늘 밖으로 벗어나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상제님의 신도로서, 다 바쳐서 죽기 살기로 상제님께 충성을 하면 된다. 그러면 진리와 더불어, 세상과 더불어 정해진 대로 되는 것이다.


거역할 수 없는 천지의 이법


상제님이 ‘내가 도수를 굳게 짜 놓았다.’고 말씀하셨다. 그걸 다시 풀이하면, ‘천지의 이법에 의해, 새 틀 속에서 이 세상이 둥글어 갈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를 확실하게 짜 놓았다.’ 하는 말씀이다.

상제님 진리는 내가 입버릇처럼 노냥 하는 말이지만 자연섭리다. 천지의 이법. 천지의 이법이라는 것은 조금도 어김이 없고 어겨질 수가 없다. 천지의 이법이 머리털만큼도 어긋날 수가 있나? 그건 인위적으로, 무엇으로써도 거역할 수가 없다. 잡아당길 수도 없고 밀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 그건 자연에 의해서 그렇게만 둥글어 가게 되어져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어그러짐이 있으면 천지도 없고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진리라 하는 것은 그렇게 되어져 있다.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된 시대적인 요청도, 자연섭리가 둥글어 가는 틀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상제님이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노라.”하신 말씀과 같이 자연섭리는 생장염장에 의해 둥글어 간다.상제님도 생장염장이라는 천도, 그 이법에 의해서 오셔서 그 이법을 집행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진리를, 그 자연섭리를 거역하겠는가? 상제님의 천지공사도 그런 이법에 의해서 보시게 됐다.

인사만 집행하면 틀림없이 되는 일


상제님이 “천리天理와 지의地義와 인사人事에 합리적인 최선한 방법을 취해서, 파리 죽은 귀신도 원망이 붙지 않게 천지공사를 봤다, 틀을 짰다, 프로그램을 정했다.”고 하셨다. 또 ‘선천에는 모사謀事는 재인在人하고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을 했는데, 앞 세상에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라. 참 하나님인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이미 틀을 짜 놓았다, 모사를 다 해 놓았다.’고도 하셨다.

다시 말하면 ‘내가 와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서 물 샐 틈 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한도, 그 프로그램에 의해서 그렇게만 둥글어 갈 것이다.’, 이 한 말씀으로 다 한 것이다.

그렇다면 모사는 재천하고, 모사는 하나님이 와서 이미 다 그렇게 틀을 짜 놓으셨고 성사만 재인이라, 그 틀 짠 대로 집행하는 것은 사람이다. ‘재사모사는 내가 이미 다 해 놨으니 그 재사모사에 의해 인사만 집행을 하면 틀림없이 그대로 된다.’는 말씀이다.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다시 알기 쉽게 말해서, 일 년 생장염장에서 봄이 되면 사람이 씨를 뿌려야 될 것 아닌가. 파종播種 이종移種은 사람이 해야 된다는 말이다. 그 주체가 사람이다. 천지는 말도 없고 손발도 없다. 행위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이 주체가 돼서 천리를 집행을 한다는 말이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철에는 매 가꾸고, 가을에는 천지에서 봄에 물건을 내서 여름철에 기른 진액을 전부 뽑아 모아 성숙을 시켜 주면 사람이 추수해서 거둬들인다. 마찬가지로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내용 이념도 똑같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 신도들은 그 일을 하기 위한 천지의 대역자代役者다.

만일 “천도天道를 집행하겠다.” 약속을 하고 천명을 받아 놓고서, 상제님 신도로서 자기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이행을 하지 못하고 어디 가서 딴전이나 본다? 자기 자신의 사의私意, 사사 뜻에 의해 시간을 낭비하고 미성숙한 생각을 가지고서 세속말로 육갑잔치나 한다? 그건 조직 속에서도 자연도태를 당할 게고 신도에서 용서를 하들 않는다.

내가 노냥 하는 말이지만 인사人事라 하는 것은 기회가 있는 것이다.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 기회를 응용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시호시호부재래時乎時乎不再來라, 그 기회는 절대로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아무리 영웅 열사라 하더라도 보직을 받지 못하면 용사用事를 할 수가 없다. 자기 능력을 발휘를 하고 싶어도 보직을 행사할 수 있는 권權이 없으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헌데 이미 권을 받았는데 그 권을 잘못 행사를 한다? 그러면 조직 속에서 도태를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건 필연적인 귀결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사건 천리건 바로 그게 이법이다. 이법이라 하는 것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천지를 대표하는 사람은 만유의 주체


사람은 천리天理에 의해서 천리를 바탕으로 해서 살아야 한다.

사람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모든 기운을 돌돌 뭉쳐서 이 세상에 왔다. 참 능소능대能小能大, 무엇이고 다 할 수 있는 준비가 돼서 나오는 것이다. 알기 쉽게 말을 하면 사람은 만유 중에서 완성품이다. 만유라 하는 것은 사람을 빼놓고는 전부 다 미완성품이다.

어떻게 미완성품이냐? 예를 들면 짐승은 오행 기운 가운데 한 가지 기운에 치우쳐서 온다. 소는 북방北方 수기水氣만 타고서 오고, 말 하면 남방南方 화기火氣만 타고서 오고, 개 하면 서방西方 금기金氣만 타고서 온다. 그렇게 짐승들은 오행의 기운 하나만 품부稟賦해서 왔지만 사람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 기운을 전부 다 고루 갖추고 세상에 태어나기 때문에, 천지를 대표해서 만유의 주체가 되어 무엇이든 다 하게끔 되어져 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도 “천지생인天地生人하여 용인用人하나니 이인생以人生으로 불참어천지용인지시不參於天地用人之時면 하가왈인생호何可曰人生乎아.” ‘천지에서 사람을 내서 사람을 쓰는데 천지에서 사람 쓸 때에 참여하지 못하면 그게 인간의 값이나 나간다고 할 수가 있겠냐?’고 하셨다. 때는 두 번 오지 않는 것이다.

사私를 떠난 공公도 없고 공을 떠난 사도 없다. 누구도 자기의 개인 한 몸뚱이가 공인公人이 돼서 공도公道를 집행하게 되어져 있다. 공도를 집행하는 임무를 띤 사람이 나가서 자기가 공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개인주의로 세상을 보고 ‘나 위해 다오?’ 하면 안 된다. 공인은 공도에 입각해서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놀리는 데에 모범이 돼야 한다. 그걸 망각한 채 내가 아닌 타에 의존하고, 공도에 벗어난 행위를 한다? 그건 진리가 허용을 하들 않는다.

그리고 상제님 진리는 전만고후만고前萬古後萬古에 없는 진리다. 대학을 백 개 나온 사람이라도 여기 들어오면 새로 배워야 한다.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고유명사부터 새로 배워야 한다. 세상에 천지공사라는 문구가 있을 수가 있나?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서 물 샐 틈 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린다.’ 그게 무슨 말이냐? 어떻게 된 내용이냐? 이걸 배워야 하는 것이다.

태상사부太上師父님께서 걸으신 신앙의 외길인생


상제님 진리는 12만9천6백 년 만에 한 번 처음 만나는 진리다. 이 기회는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쉽게 얻지 못하는 기회다.

여기 앉아 있는 종도사의 아버지는 전부를 다 바쳐서 상제님을 믿었다. 그때는 보천교普天敎니까 보천교 신도다. 청수를 안 모신 날이 없고 태을주를 안 읽으신 날이 없었다. 그 일제 치하에 그게 우리 아버지의 천직이었다. 신앙의 외길인생.

그때는 몇 백 석 추수를 하면 부자라고 했다. 그런대로 밥을 먹고 사시니까 성금도 많이 내셨다. 그런데 저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을 보천교에서 전부 다 조달을 해줬다. 그건 비밀결사이기 때문에 글로는 한 줄도 안 남았다. 다 무덤까지 가지고 갔다. 그건 들키면 죽는 것이다. 드문드문 가다가 들킨 사람들은 다 결딴이 났다.

우리 아버지가 독립자금을 댔다고 해서 잡혀 가셨다. 죄명이 그때는 치안유지治安維持다. 잡혀 가서 너무너무 맞아서 식물인간이 됐다. 저 천안 독립 기념관에 가면 독립투사들에게 악형을 가하던 게 남아 있잖은가. 그런 것으로 맞았다. 그래서 목숨은 살았는데 천치바보가 되셨다. 그래 잡아 두어도 소용이 없으니까 일본 경찰이 내쫓아버렸다. 그렇게 나오셔서 조금 살다 돌아가셨다.

그런 분들은 평생 신앙한 죄밖에 아무 것도 없다. 농사지어서 다 성금으로 바치고도 때를 못 만나 매만 죽도록 맞고서 세상을 떠났으니 그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하겠는가?

성공은 노력의 결정체


인류역사를 통해서 성공이라 하는 것은 노력의 대가다. 알기 쉽게 하루 품을 팔고서 품삯을 받는 것도 일한 대가다. 노력도 없이 어떻게 대가를 받을 수가 있나?

다시 말해서 성공이라 하는 것은 노력의 결정체다. 천지도 정성이라는 이법에 의해서 한 치도 오차가 없이 둥글어가는 것이다.

오죽하면 상제님이 ‘복록福祿도 성경신誠敬信이요 수명壽命도 성경신誠敬信이라. 잘살고 못사는 것도 상제님을 얼마만큼 성경신을 바탕으로 해서 믿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고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도 얼마만큼 성경신을 바쳐서 상제님 신앙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셨다. 모든 것은 자기가 신앙하는 성경신을 보고서 물어봐야 한다.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정의롭게! 내가 살기 위해,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은 인간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사람은 내가 살기 위해서 남도 도와주고, 그러고 나는 노력의 대가를 받고, 그래야 한다. 어디 직장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묶어서 성과급이다.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사람은 설 자리가 없다,

특히 우리 증산도는 무에서 유를 형성시키는 단체다. 상제님 공사내용이 그랬고, 또 상제님이 오셔서 무에서 유를 형성시켰다. 그리고 증산도 종도사가 독행천리獨行千里에 백절불굴百折不屈로, 혼자 천리를 가는데 백 번을 자빠져도 꺾이지 않고 털고 일어나서 또 가고 또 가고, 다만 전진만 거듭해서 오늘 이 시간까지 온 것이다.

신앙은 어릴 때부터 해야


수일 전 입도식을 하던 날, 내가 교육을 시키러 잠깐 갔었는데 어린애들, 아동들은 아마 딴 실에서 교육을 시켰던가 보다. 내가 밖으로 나오는데 그저 초등학교 한 3, 4학년 4, 5학년쯤 되는 애들이 한 열댓에서 스무 명이 딴 실에서 나온다.

헌데 애들이 ‘종도사를 한번 봤으면 좋겠다, 종도사가 어떻게 생겼나?’하고는, 내가 나오니까 이렇게 쳐다보면서 “야~!” 하는 애도 있고, ‘아! 저분이 종도사로구나!’ 하는 아이도 있다. 내가 그 애들 마음을 꿰뚫어 보거든. 그래서 아이들의 눈에 이 증산도 종도사가 어떻게 비칠라나 하고 마음이 숙연했다. 종도사는 인자하잖은가. 벌레 새끼 하나 죽인 일도 없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마는, 사실은 그렇게 어린 동심童心에 상제님 진리를 넣어주면 절대로 안 잊어버린다. 신앙은 그때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상제님 진리는 선천문화권하고 완전히 다르다. 상제님 문화권은 사유비유似儒非儒, 유교 같으면서 유교도 아니고, 사불비불似佛非佛, 불교 같으면서 불교도 아니고, 사선비선似仙非仙, 선도 같으면서 선도도 아니다. 상제님 진리에는 인간 세상에 필요불가결한 진리가 전부 다 함축돼 있다. 다시 말을 하면 상제님 진리는 가을 진리, 열매기 진리다.

지나간 역사 과정의 동서양 각색 문화권이라는 게 전부가 다 절름발이 문화다. 기존 문화를 창시한 석가모니나 예수나 공자나 각색 문화권의 창시자들이 전부 절름발이 문화권을 제창하고서 갔다. 물건으로 말하면 미완성품이다. 상제님 진리는 완성품, 열매기 문화 성숙된 문화다. 다시 묶어서 군사부 진리다. 그건 억만 년이 가도 변할 수가 없는 원 뿌리 진리다.

겸허하게 사람을 대하라


너희들은 나가서 천지의 사명을 올바로 집행해라. 너희들의 사심을 빼 버려라. 그리고 첫째로 화합을 해라. 상대방이 볼 때 ‘야, 그 사람은 참 진실로 사심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해야 한다. 모범적인 신앙인이 되라는 말이다.

어느 도장이고 성경신이 투철한 사람 몇 명만 있으면 그 도장은 성장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성장을 못 한다. 그리고 책임자가 아주 확실하고 규모가 있고 조직적이고 계획적이고 치밀하고 성경신이 지극한 사람이면 그 도장은 성장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퇴보하거나 잘 돼야 현상 유지밖에 못 한다.

그리고 내가 늘 강조하지만 지금은 시청각 교육 시대다. 지금은 중학교만 나왔어도 인간 됨됨이에 따라서 대학 실력 이상 되는 사람이 얼마고 있다. 눈 뜨고 보고 듣는 게 다 교육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사회 제도가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러니까 공중 아는 척하지 말고 겸허해야 한다. 여러 천 년 전에도 그랬다. “거상이교居上而驕 즉則 망亡이라.” 사람들 위에 거해서 교만하면 망하는 것이다.

누구를 무시하나? 내가 알캥이로 100% 꽉 찼어도 빈탕처럼 남의 것을 다 받아들여줘라. 그러면서 사리에 안 맞는 것은 집행을 안 하면 되지 않는가.

그렇게 겸허하면 사람들이 ‘저분은 참 진실한 분이고 정의로운 사람이다. 그래 허튼 수작을 하면 먹히지도 않으니 내 잘못을 스스로 고쳐야겠다.’ 하고 감복을 해서 쫓아온다.

옛말에 ‘무검질시撫劍疾視’라는 말이 있다. 어루만질 무, 칼 검, 미울 질, 볼 시, 칼을 어루만지며 ‘데끼 이놈!’ 하고 노려본다는 말이다. 너희들 크면서도 봤지? 어른들이 그렇게 억압으로 일을 시키면 “나 크거든 보자.” 하게 된다. 너희들도 크면서 그런 생각을 더러 했을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대항이 안 되니까, 너무 억울하니까, 10년이고 20년 후에 보자고 말이다. 그렇게 힘으로써 사람을 굴복시키는 건 절대로 안 된다. 그러니까 정책적으로 감화를 시켜서 그 사람이 스스로 쫓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고서 코에서 누렁내 나도록 교육을 시켜라.

상제님 일은 되는 일을 되게 하자는 것


거듭 말하거니와 상제님 진리는 우주원리, 자연섭리다. 자연섭리라는 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만 되어지는 것이다. 그건 누구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알아도 자연섭리에 의해서 끌려 넘어가고, 몰라도 그렇게밖에는 안 된다. 억울해도 천리는 그렇게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상제님 진리는 가만히 두어도 되는 일이다. 거기에 정성스런 신도들이 노력을 덧붙일 것 같으면 10배가 100배가 1,000배가 10,000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상제님 일은 팔 짚고 헤엄치기다. 팔 짚고 헤엄을 하면 물에 빠져 죽을 일도 없잖은가.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어떻게 되는 일만 하는 수가 있나? 암만 해도 안 되는 일이 더 많은데. 그런데 상제님 일은 되는 일만 하는 것이다. 되는 일을 하자는데 그것도 못 하는가.

너희들은 모범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신도들의 눈에서 벗어난다.

신도들에게 진리를 자꾸 넣어줄 것 같으면 성숙이 돼서 저희가 알아서 일을 하게 된다. 오죽하면 내가 ‘자기개혁 자기도야 자기성숙’을 강조를 한다.

사람은 제 스스로 개혁을 해야 되지 남이 개혁을 하라고 한다고 해서 개혁이 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개혁을 하고 스스로 도야를 하고 스스로 성숙이 돼야 한다. 너희들이 먼저 자기개혁을 하고 자기도야를 하고 자기성숙을 해야 사람들도 지도자를 표본으로 삼아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는 ‘발람 풍’을 하는데 너는 ‘발람 풍’을 하지 마라.” 글쎄 그게 그렇게 될라나? “나는 ‘발람 풍’ 하지만 너는 ‘바람 풍’을 해라.” 그렇게는 안 된다.

하니까 내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정의로운 길을 걸어라. 그러자니 참말로 얼마나 어렵겠나? 헌데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하다 보면 생활화, 체질화가 돼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다.

내가 80이 넘은 나이에 젊은이들하고 똑같다. 내가 금년에도 저 중국도 갔다 오고 일본도 두어 번 갔다 오고, 아메리카를 갈 때는 동쪽으로 떠나서 올 때는 서쪽으로 왔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하고 똑같이 일어나고 똑같은 시간에 밥 먹고 똑같이 잠자리에 들고, 낮에도 똑같이 돌아다녔다.

너희들은 젊음이 있잖은가. 너희들은 한창 절정기다.

신도들을 너희들보다 더 잘 믿는 신도로 만들어라. 너희들이 성공하는 길은 바로 그 길밖에 없다. 너희들도 상제님 진리에 서투르지만 교육을 시키면서 깨달아지는 게 있다. 머릿속에 잘 와 닿지 않는 것도 교육을 시켜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자꾸 곱씹고 다시 교육을 시키다 보면 머릿속에서 자연 풀려버린다. 신명들이 머릿속에다가 그걸 풀어 준다. 그래서 너희들의 서투른 진리도 성숙되고 너희들보다 더 잘 믿는 신도가 양성이 되는 것이다. 너희들보다 더 잘 믿는 신도를 만들라는 말이다.

천지에서 선택받은 사람들


여기는 신앙의 경쟁장이다. 누가 골인을 하느냐? 나가서 다 하나같이 골인을 해라.

너희들은 천지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아까도 내가 얘기를 했다마는 너희들은 여기 종도사의 아버지보다 운명이 백 배, 만 배 나은 사람들이다. 종도사의 아버지는 때를 못 만나신 분이다.

벌써 몇십 년 전 얘기다. 종도사의 아버지가 종정의 할아버지 아닌가. 종도사의 아버지가 그 옛날 양반이다. 굉장한 학자이고 언제나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신 점잖은 양반이다. 하루는 어린 종정을 앞으로 오라고 하더니 엎드려서 두 손을 깍지 끼고서 “내가 못다 한 것을 네게다 부탁을 한다. 잘해 봐라 손자야.” 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때를 못 만나서 평생 신앙만 하다가 가셨다. 너희들은 얼마나 좋으냐? 지금은 거저먹기지. 오죽 한이 됐으면 손자인 종정의 두 손을 깍지를 끼고서 “전부를 네게다 부탁을 하마.” 하셨겠는가. 종정이 가끔 그 얘기를 한다.

그러니 너희들은 우리 아버지보다 낫잖은가? 그런 좋은 운명의 소유자다.

주체성을 가지고 언제나 상제님 진리 속에서 살아라


하니까 조직 속에서 조금이라도 뒤질세라 전부를 다 바쳐서 맡은 바 사명을 다해라.

너희들, 애들이 축구하는 것 못 봤는가? 그냥 엎어지고 자빠지면서도 공을 안 뺏기려고 냅다 발길로 찬다. 그게 생존경쟁이다. 그런데 그 결론은 사람 살리자는 것이지 뭐이가 있겠나.

그렇다고 사회 속에서 잘못해서 증산도 체제에 손상을 준다면 그건 안 된다.

신앙이라 하는 것은 내가 가끔 말을 하지만, 옛날 충신열사들이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죽어져서 넋이야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 변할 수 있으랴.” 하는 일편단심, 그런 빨간 정성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무엇이 되기를 바라겠는가.

인류역사를 통해서 크고 작은 일이 전부 그런 빨간 정성, 일편단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두 마음을 가지고 허튼 수작을 하고서 일이 되기를 바란다는 건 바탕이 잘못된 사람이다. 그런 게 어디에 있는가.

상제님은 “성인의 바탕에 영웅의 도략을 취하라. 되는 일을 안 되게 하고 안 되는 일 되게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고, 그것 누구는 못하나? 안될 일을 되게도 하고 될 일을 안 되게도 하는 게 일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다. 큰 일을 경영하는 사람은 언제고 염념불망念念不忘, 생각 염 자 두 자, 아닐 불 자, 잊을 망 자, 언제고 생각을 하고 또 해라.

그리고 내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라. 남의 정신에 끌려가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정신을 가지고 못 산다. 기껏 잘 돼야 남의 심부름이나 한다. 사람은 내 주체성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속담에 그런 말이 있잖은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고. 사람은 제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절대로 남에게 끌려 다니지 마라.

내 사욕私慾은 다 버려버리고 유형도 다 바치고 무형도 다 바치고 언제나 오매불망寤寐不忘 상제님 태모님, 상제님 태모님, 아니면 상원군님! “제가 이것을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꼭 이루게 해 주십시오.” “누구를 만나러 가는데 그 사람을 만나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해라.

자면서도 태을주를 읽으면서 잠을 잔다. 잠이 안 올 때 태을주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단잠이 든다. 쉽게 말해서 태을주는 잠을 청하는 주문도 된다. 언제고 상제님 진리 속에서 살라는 말이다. 그래야 신명한테 도움도 받고 상제님 사업을 성공할 수가 있지,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신명보고 “나 도와다오.” 또 세상 사람보고 “나 도와다오.” 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봉사정신을 가져야 성공을 하는 것이다. 옛날 성자들은 다 세상을 위해서 봉사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증산도의 공복이다


너희들은 공인이다. 증산도의 공복公僕이다. 증산도라는 틀이 우리 신도들의 집이다.

이 세상은 상제님 진리 속에서 둥글어 가고 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누구냐? 증산 상제님이다. 모든 문제가 상제님이 틀을 짜 놓으신 대로만 둥글어 간다.

천하분란지사天下紛亂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천하종용지사天下從容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니라. 이 세상이 시끄럽고 전쟁 나고 하는 것도 상제님이 틀을 짜 놓은 것이고. 천지가 조용한 것도 상제님이 만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상제님이다. 하늘도 상제님의 하늘이요, 땅도 상제님의 땅이요. 지구상에 있는 60억 인류, 모든 만유도 다 상제님의 것이다. {상제님의 일령지하一令之下에 모든 게 이뤄진다. 그러니 상제님의 그늘 밖으로 벗어나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상제님의 신도로서, 다 바쳐서 죽기 살기로 상제님께 충성을 하면 된다. 그러면 진리와 더불어, 세상과 더불어 정해진 대로 되는 것이다. 증산도가 성장함에 따라서 내 몸도 성장이 된다. 내가 증산도의 공복, 상제님의 공복이 되는 게고 종도사 종정의 수족이 되는 것이다.

상제님이 한마디로 다 하셨잖은가. “나는 천지일월이다.” 상제님이 천지일월이다. “내가 옥황상제다.” 상제님이 옥황상제다. 그 이상 더도 덜도 없지 뭘 더 찾을 게 있는가.

너희들은 얼마나 행운아냐?

내가 앉아서 이런 교육을 하는 것은, 그저 천지의 주인이신 참 하나님을 잘 믿어서, 상제님 진리로써 나도 살고 남도 많이 살려 주고, 그렇게 천지에 공을 많이 쌓아서 전지자손傳之子孫해 가며 오만 년 동안 현실선경에서 잘 살라는 것이다. 전부 그런 덕담이지 딴 것 아무 것도 없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