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80년 생각
[이 책만은 꼭]
[그림1] 표지
쌈지공원(도시의 자투리땅에 세운 작은 공원), 남산자락공원, 디지로그(정보사회의 키워드로 제시한 학술용어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 새 천 년을 맞이해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를 칭한 즈믄둥이(즈믄은 1000년의 우리 본래 말), 동북아로 굳어져 가던 동아시아 지역 명칭을 한중일로 유행시켜 한국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일, 고속도로의 노견路肩이란 말 대신 갓길이란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기, 예술 영재를 위한 전문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한 예종) 탄생,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굴렁쇠 소년.
지금은 익숙하게 다가오는 이 단어와 문화 현상이 놀랍게도 모두 한 사람의 생각에서 나왔다. 바로 창조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이 시대 최고 지성인 고故 이어령李御寧 교수가 그 당사자이다. 이어령 교수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와 『축소지향의 일본인』 등 수많은 저작을 통해 우리나라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석학으로 ‘이어령’이란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어령이라는 우리나라 최고 지식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여정과 함께 그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2016년 『주간조선』에 약 1년간 연재한 「이어령의 창조이력서」를 바탕으로 하여, 20번의 인터뷰를 비롯해 약 100시간 이상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서 나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어령 교수의 회고록에 가장 근접한 책이 된 것이다.
이제 이어령이라는 이 시대 최고 지성의 두뇌를 파헤치는, 험난하지만 감동적인 보물찾기 여정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많이 헤매기도 하고, 넓고 환한 길을 걷다가 좁고 침침한 길도 걸어야 한다. 태양처럼 화려하고 산처럼 거대하지만, 달의 이면처럼 외롭고 쓸쓸한 순간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창조는 어둠 속에서 잉태되고 탄생할 때가 많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여섯 살짜리 질문쟁이 꼬마가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하기까지 ‘생각의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어령이라는 한 사람이 어떻게 창조적 생각의 지도를 그려 왔는지, 그만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크게 3가지 토픽으로 정리해 보겠다.
두 번째로 이어령 교수는 아버지의 지적 호기심과 어머니의 문학적 감수성이라고 하였다.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그를 금쪽같이 안아서 키워 주신 어머니가 그의 나이 불과 열두 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기억을 많이 새겼는데, 가장 특기할 부분이 바로 책 읽기라고 하였다. 돌잡이로 책을 집은 이어령 교수에게 장차 문필가가 될 거라며 책을 많이 읽어 주며 문학적 감성을 키워 주셨던 어머니이다.
그와 함께 당시 드문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였던 아버지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얼리 어답터는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관심 분야에서 남보다 앞서서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소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1940년대 벤처 기업인 같았던 그의 아버지는 다양한 기계 시설을 들여와 새로운 사업을 시도했다. 실패로 돌아간 기계들이 모였던 창고에서 그와 그의 형제들은 장난감처럼 이를 다루었다.
그래서 지적 호기심이 컸던 아버지를 닮은 형제는 학자로, 어머니의 피를 받은 이는 예술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어령 교수는 이 둘을 다 같이 받았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신은 “나도 확실하게 몰러.”라며 그저 웃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이성과 감성을 골고루 갖춘 전인적인 인격체였다고 할 수 있다.
굴렁쇠 소년은 ‘이어령’ 하면 떠오르는 창조의 트레이드마크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에서 에게Aegean해를 상징하는 호수에 한 소년이 종이배를 타고 등장하는 종이배 소년은 이 굴렁쇠 소년을 모티프로 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이어령 교수는 ‘정적靜寂의 힘’을 보여 주려 했다고 했다.
이념과 빈부의 벽, 분단의 벽들이 무너진 자리에서 태어나는 새싹! 지구상 모든 사람의 기억과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나타난 생명. 1분간의 굴렁쇠 퍼포먼스는 온 지구를 일시 정지 상태로 만들었고, 아무 소리 없는 고요함 속에 수많은 울림을 준 행위 예술이었다는 평가이다.
초대 문화부 장관 2년 시절의 파격 행보도 흥미진진하다. 큰 거보다는 생활 밑바닥에서부터 창조해 내고 이를 과감히 추진하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여기에 천재 백남준과의 우정과 서로를 알아본 이야기. 무주 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의 한복 입은 스키어에 이르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할 정도이다. 그리고 지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어령 교수의 앞으로 세상에 대한 전망을 들을 수 있다. 바로 ‘따로 서로’와 꼬부랑 고개 이론이다.
#{역사는 절대 직선으로 가지 않아. 지그재그로 가지.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 평등 박애주의가 곧바로 실현됐어요? 아니지. 한동안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잖아. 그게 내가 말하는 꼬부랑 고개 이론이야. 고개는 절대 직선으로 못 올라가, 왔다 갔다 하지. 얼핏 보면 후퇴하는 것 같아 보여도 멀리서 보면 분명히 조금 올라가 있어요. - 287쪽#}
이어령 교수는 백남준론을 통해서 백남준의 예술 활동을 국내에 끌어들였다. 천재 작가 이상李箱을 재평가하여 「이상 문학상」을 제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화가 이우환, 건축가 김수근, 김덕수의 사물놀이,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여기에 자기 전공인 문학 분야에서 박완서, 김승옥, 최인호 황석영 등 그 당시까지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천리마들을 발굴하여 그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게 장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그 뒷이야기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감명 깊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어령 교수는 다음처럼 강조하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치 한 시대를 열어 나간 신선과 그를 모시는 마지막 동자승의 대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담담하게 진행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어 계속해서 생각해 보게 말이다.
책 마지막에 저자는 이렇게 물어본다. “‘이어령처럼 생각하기’의 핵심은 뭐라고 보세요?”라고. 이에 대한 이어령 교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창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안 한 것뿐이야. 갓길도 그렇지. 낯익은 말로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탄생한 말이지. 그게 무슨 천재적 발상이에요? 우리는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생각한 대로 생각하지 않고, 행하는 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거짓과 잘못된 옷을 입고 있는 거예요.
이에 저자는 80대 후반에도 인공 지능을 비롯한 지식의 최전선을 꿰뚫고 있는 비결을 묻는다. 이에 이어령 교수는
신선은 노인이고, 신선 옆에 동자는 아이인데 둘의 얼굴이 똑같다고 하지. 노자는 도를 체득한 사람을 어린아이에 비유했고. 내 얼굴이 꼭 짓궂은 여섯 살 아이 같다, 노인 냄새가 안 난다고들 하는데 그건 나뿐 아니라, 물음느낌표를 갖고 지적 호기심에 빛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일 거예요. 나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귀엽다는 말이야. 어린아이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인삼 녹용이나 마찬가지예요. 초등학교 가기 전의 내가 내 상상력의 보고이고, 그때 봤던 세계가 오늘날 감성과 예술의 기반이 돼요.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어령 교수에게 최종 질문을 던진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뭐냐고. 이에 대해 이어령 교수는 “생명”이라고 답한다. “생명 자체가 목적이고, 찬란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지. 어떤 절망의 시대에도 생명의 힘은 놓치지 않았으면 해.”라고 하였다. 이후 이어령 교수는 2022년 2월 26일 향년 88세 미수米壽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인터뷰 매거진 〈톱클래스topclass〉 편집장. 학자와 예술가, 경영자와 문화 창조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600여 명을 인터뷰했으며, 현재 〈톱클래스〉에 ‘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를 연재 중이다.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제자로, 이화여대 국문과 학부 교양 강의 ‘한국인과 정보 사회’, ‘한국 문화의 뉴패러다임’을, 대학원 마지막 전공 강의인 ‘기호학의 이해’를 수강했다. 이어령 교수는 김민희에 대해 “저널리스트로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글을 쓰되,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문체를 지녀 한국의 츠바이크Stefan Zweig나 앙드레 모루아André Maurois가 될 자질을 갖췄다.”고 평했다.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언론인이자 교육자, 행정가이자 문화기획자 등 전방위를 넘나드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통섭형 지식인이다. 1934년 아산 출생으로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부터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30년 넘게 몸담았다. 28세 때부터 주요 신문사에서 논설위원을 지냈고, 〈중앙일보〉 고문으로 오랫동안 재직했다.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괄기획위원으로 ‘벽을 넘어서’라는 서울 올림픽 표어, 개회식의 굴렁쇠 소년 등 전 세계에 인상적인 연출을 하였다. 초대 문화부 장관,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대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고비마다 굵직한 모토를 한국 사회에 던져 왔다. 20대에는 ‘우상의 파괴와 저항의 문학’, 30대에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론, 40대에는 일본 문화론인 ‘축소 지향의 일본인’, 50대에는 88서울올림픽 슬로건 ‘벽을 넘어서’, 60대에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70대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접목을 말하는 ‘디지로그’, 80대에는 ‘생명이 자본이다’, 그리고 88세인 2020년에는 마지막으로 ‘눈물 한 방울’이라는 키워드를 남겼다.
문화부 장관 시절 이어령 교수는 관료주의 혁파를 위해서 ‘3불不 3가可’ 운동을 제안했었다. 창조적인 생각과 창조적인 조직 문화를 위해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책 내용을 요약해 본다.
3불不은 문턱 없이 말하기, 생색내지 않고 말하기, 사심 없이 말하기이다. 수직 관계의 문턱을 없애고 소통할 수 있어야, 자랑하듯 떠벌리지 않아야, 계산 없이 솔직하게 터놓고 말해야 조직에 활기가 돌고 창조적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는 취지이다.
3가可 운동은 단번에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두레박’ ‘부지깽이’ ‘이끼’라는 상징어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문화부 비전을 세우면서 가장 중시한 건 반드시 순수 토박이말이어야 한다는 것이지. 첫 번째 비전은 두레박이었지. 우물에 두레박이 없다고 상상해 봐요. 문화 시설을 공유하는 문화 공동체 작업을 두레박에 비유한 거예요. 두레박의 속성이 참 특이해. 항상 물을 퍼 올리지만 자신은 늘 비어 있지. 채울 수 없는 갈증이 있는 거예요. 그렇게 영원한 갈증을 품은 두레박 역할을 바로 문화부가 해야 한다는 뜻이지.
둘째 부뚜막의 부지깽이가 되자는 것이었어요. 부지깽이는 겉으론 하찮아 보이지. 그러나 불을 지피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문화의 불을 지피는 역할, 아궁이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부지깽이 역할을 하자는 거였어요.
즉 스스로는 욕망을 채우지 않지만 늘 같은 자리에서 타인을 위해 묵묵히 봉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위의 이끼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을 주었다. “바위를 계란으로는 깰 수 없어요. 하지만 생명의 이끼로 몽땅 덮어 버릴 수는 있지. 변하지 않는 견고한 현실을 생명의 이끼로 덮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화의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고 봤어요.”
“창조는 외로운 거야.” (책 39쪽)
“고정관념은 상상력의 최대 적이다.” (책 139쪽)
“고정관념은 상상력의 최대 적이다.” (책 139쪽)
창조적 발상을 멈추지 않는 지식인의 ‘생각의 생각’ 해부 여정
쌈지공원(도시의 자투리땅에 세운 작은 공원), 남산자락공원, 디지로그(정보사회의 키워드로 제시한 학술용어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 새 천 년을 맞이해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를 칭한 즈믄둥이(즈믄은 1000년의 우리 본래 말), 동북아로 굳어져 가던 동아시아 지역 명칭을 한중일로 유행시켜 한국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일, 고속도로의 노견路肩이란 말 대신 갓길이란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기, 예술 영재를 위한 전문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한 예종) 탄생,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굴렁쇠 소년.
지금은 익숙하게 다가오는 이 단어와 문화 현상이 놀랍게도 모두 한 사람의 생각에서 나왔다. 바로 창조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이 시대 최고 지성인 고故 이어령李御寧 교수가 그 당사자이다. 이어령 교수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와 『축소지향의 일본인』 등 수많은 저작을 통해 우리나라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석학으로 ‘이어령’이란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어령이라는 우리나라 최고 지식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여정과 함께 그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2016년 『주간조선』에 약 1년간 연재한 「이어령의 창조이력서」를 바탕으로 하여, 20번의 인터뷰를 비롯해 약 100시간 이상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서 나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어령 교수의 회고록에 가장 근접한 책이 된 것이다.
이제 이어령이라는 이 시대 최고 지성의 두뇌를 파헤치는, 험난하지만 감동적인 보물찾기 여정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많이 헤매기도 하고, 넓고 환한 길을 걷다가 좁고 침침한 길도 걸어야 한다. 태양처럼 화려하고 산처럼 거대하지만, 달의 이면처럼 외롭고 쓸쓸한 순간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창조는 어둠 속에서 잉태되고 탄생할 때가 많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창조’는 새로움이다. 창조라는 말은 모든 존재의 최초에만 단 한 번 명명될 수 있는 거룩한 단어다. 정보와 빅 데이터가 범람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야말로 창조적 사고가 관건이다. 뻔한 정보와 기계적 사고로 무장한 인재가 아니라 자기 머리로 자기만의 생각을 할 줄 아는 인재야말로 이 시대가 꼭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어령의 생각의 탄생’을 말하는 이 책은 지금 시대에 더욱 긴요하다. - 책 9쪽
‘창조적 생각의 탄생’에 대한 세 가지 기록
이 책은 여섯 살짜리 질문쟁이 꼬마가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하기까지 ‘생각의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어령이라는 한 사람이 어떻게 창조적 생각의 지도를 그려 왔는지, 그만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크게 3가지 토픽으로 정리해 보겠다.
1.생각의 탄생
이 부분에서는 ‘나이 들어도 시들지 않는 감수성과 호기심의 원천은 과연 어디일까?’라는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다. 그 비결은 첫 번째로 바로 물음느낌표이다. 물음느낌표? 이게 무엇일까 싶다. 물음표가 느낌표를 감싸 안은 모양으로 ⁈, ⁉,‽ 로 표시된 비공식 문장부호다. 1962년 미국의 마틴 스펙터라는 사람이 만들었다. interrobang, 인테러뱅이라고 한다.“‘왜?’ ‘어떻게?’ 하는 물음표가 있어야 ‘아!’ 하고 무릎을 탁 치는 느낌표가 생기지,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야. 내 인생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고 가는 삶이었어. 나는 궁금한 게 많았을 뿐이거든.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겨도 나 스스로 납득이 안 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어.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는 것이 내 인생이고 그 사이에 하루하루의 삶이 있었지. 어제와 똑같은 삶은 용서할 수 없어. 그건 산 게 아니야. 관습적 삶을 반복하면 산 게 아니지. - 46쪽
두 번째로 이어령 교수는 아버지의 지적 호기심과 어머니의 문학적 감수성이라고 하였다.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그를 금쪽같이 안아서 키워 주신 어머니가 그의 나이 불과 열두 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기억을 많이 새겼는데, 가장 특기할 부분이 바로 책 읽기라고 하였다. 돌잡이로 책을 집은 이어령 교수에게 장차 문필가가 될 거라며 책을 많이 읽어 주며 문학적 감성을 키워 주셨던 어머니이다.
그와 함께 당시 드문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였던 아버지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얼리 어답터는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관심 분야에서 남보다 앞서서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소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1940년대 벤처 기업인 같았던 그의 아버지는 다양한 기계 시설을 들여와 새로운 사업을 시도했다. 실패로 돌아간 기계들이 모였던 창고에서 그와 그의 형제들은 장난감처럼 이를 다루었다.
그래서 지적 호기심이 컸던 아버지를 닮은 형제는 학자로, 어머니의 피를 받은 이는 예술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어령 교수는 이 둘을 다 같이 받았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신은 “나도 확실하게 몰러.”라며 그저 웃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이성과 감성을 골고루 갖춘 전인적인 인격체였다고 할 수 있다.
2. 창조의 기록들
이 부분은 이어령 교수의 자서전 같다. 창조적 행위들의 역사를 담고 있고 그 이면에 담긴 일화를 들으면서 창조의 과정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88서울 올림픽 개폐회식과 그 당시 세계인들에게 큰 인상을 준 굴렁쇠 소년 등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준다.굴렁쇠 소년은 ‘이어령’ 하면 떠오르는 창조의 트레이드마크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에서 에게Aegean해를 상징하는 호수에 한 소년이 종이배를 타고 등장하는 종이배 소년은 이 굴렁쇠 소년을 모티프로 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이어령 교수는 ‘정적靜寂의 힘’을 보여 주려 했다고 했다.
이념과 빈부의 벽, 분단의 벽들이 무너진 자리에서 태어나는 새싹! 지구상 모든 사람의 기억과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나타난 생명. 1분간의 굴렁쇠 퍼포먼스는 온 지구를 일시 정지 상태로 만들었고, 아무 소리 없는 고요함 속에 수많은 울림을 준 행위 예술이었다는 평가이다.
“이어령 씨는 그 넓은 운동장에 시를 썼다. ‘정적’이라는 이 시는 태초의 빛을, 그리고 벽을 넘어 화합의 어우러짐에서 잠실벌의 숨죽임으로 남지 않았던가.” 김영태 시인의 평 - 147쪽
“창조 뒤에는 늘 외로움과 정적, 그리고 암흑이 온다. 한밤의 태양이 아닌 대낮의 어둠이 있다. 딱 한 번밖에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벤트는 아름답고 절실하다. 되풀이되지 않는 시간이요, 다시 점유할 수 없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일회성 행사에 그 많은 돈을 낭비하느냐고 묻는다. 이 물질주의자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이 태어날 때, 죽을 때도 한순간이다. 그것을 위해 당신은 전 생애를 바치고 있지 않은가.” - 154 ~155쪽
초대 문화부 장관 2년 시절의 파격 행보도 흥미진진하다. 큰 거보다는 생활 밑바닥에서부터 창조해 내고 이를 과감히 추진하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여기에 천재 백남준과의 우정과 서로를 알아본 이야기. 무주 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의 한복 입은 스키어에 이르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할 정도이다. 그리고 지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어령 교수의 앞으로 세상에 대한 전망을 들을 수 있다. 바로 ‘따로 서로’와 꼬부랑 고개 이론이다.
흔히 ‘따로 또 같이’라고 하는데 이건 한국말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우리말에는 음양이 같이 있는데 ‘따로’의 짝패는 ‘서로’이지 ‘같이’가 아니에요. ‘따로 서로’는 우리나라의 독립주의와 상호주의가 묻어 있는 말이지. - 286쪽
#{역사는 절대 직선으로 가지 않아. 지그재그로 가지.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 평등 박애주의가 곧바로 실현됐어요? 아니지. 한동안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잖아. 그게 내가 말하는 꼬부랑 고개 이론이야. 고개는 절대 직선으로 못 올라가, 왔다 갔다 하지. 얼핏 보면 후퇴하는 것 같아 보여도 멀리서 보면 분명히 조금 올라가 있어요. - 287쪽#}
3. 통찰을 넘어서
이어령 교수는 스스로를 천리마가 아니라, 천리마를 감별해 내는 백락伯樂이라고 하였다.“겸손으로 하는 말이 아니에요. 나는 하루에 십 리도 못 달리는 노마駑馬지만 천리마를 알아보는 눈이 있지.”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깨닫지 못했던 이어령 교수의 또 다른 얼굴, 그의 문화적 공적은 안팎으로 뻗어 있다. 그는 ‘문화 창조자’이기도 하지만, 숨어 있던 천재를 세상에 알리고 추임새를 넣고 손뼉을 쳐 바람을 일으킨 ‘문화 선동가’이기도 했다.
“세계에서 국민들의 아이큐가 제일 높은 나라가 한국이잖아. 그런데 한국의 문화 풍토와 사회 환경, 톱-다운식 교육 체계는 그 머리 좋고 빛나는 천재들의 날개를 꺾어 버리지. 천 리는커녕 백 리도 달려 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천리마들, 한국의 숨은 피카소, 숨은 아이슈타인이 얼마나 많을까? 미국이 아직도 기회의 땅인 것은 천리마를 알아보고 천리마를 맘껏 달리게 해 주는 사회이기 때문이지.” - 338~339쪽
“세계에서 국민들의 아이큐가 제일 높은 나라가 한국이잖아. 그런데 한국의 문화 풍토와 사회 환경, 톱-다운식 교육 체계는 그 머리 좋고 빛나는 천재들의 날개를 꺾어 버리지. 천 리는커녕 백 리도 달려 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천리마들, 한국의 숨은 피카소, 숨은 아이슈타인이 얼마나 많을까? 미국이 아직도 기회의 땅인 것은 천리마를 알아보고 천리마를 맘껏 달리게 해 주는 사회이기 때문이지.” - 338~339쪽
이어령 교수는 백남준론을 통해서 백남준의 예술 활동을 국내에 끌어들였다. 천재 작가 이상李箱을 재평가하여 「이상 문학상」을 제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화가 이우환, 건축가 김수근, 김덕수의 사물놀이,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여기에 자기 전공인 문학 분야에서 박완서, 김승옥, 최인호 황석영 등 그 당시까지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천리마들을 발굴하여 그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게 장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그 뒷이야기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감명 깊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어령 교수는 다음처럼 강조하였다.
“한국인은 스스로를 저평가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잘 뭉치지도 않고 편 갈라 싸우는 걸 좋아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그건 아니야. 아이큐도 높은 민족이고, 역사적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어 낸 문화 유전자를 지녔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지혜로 버텨 온 것이지. 문화의 힘이야. 우리는 칼이 아닌 붓으로, 머리로 지배해 왔잖아. 한국인에게 내재된 ‘오래된 미래’의 저력을 느꼈으면 해요.” - 349쪽
마지막 대화 -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과 생명의 중요함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치 한 시대를 열어 나간 신선과 그를 모시는 마지막 동자승의 대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담담하게 진행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어 계속해서 생각해 보게 말이다.
책 마지막에 저자는 이렇게 물어본다. “‘이어령처럼 생각하기’의 핵심은 뭐라고 보세요?”라고. 이에 대한 이어령 교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창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안 한 것뿐이야. 갓길도 그렇지. 낯익은 말로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탄생한 말이지. 그게 무슨 천재적 발상이에요? 우리는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생각한 대로 생각하지 않고, 행하는 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거짓과 잘못된 옷을 입고 있는 거예요.
이에 저자는 80대 후반에도 인공 지능을 비롯한 지식의 최전선을 꿰뚫고 있는 비결을 묻는다. 이에 이어령 교수는
신선은 노인이고, 신선 옆에 동자는 아이인데 둘의 얼굴이 똑같다고 하지. 노자는 도를 체득한 사람을 어린아이에 비유했고. 내 얼굴이 꼭 짓궂은 여섯 살 아이 같다, 노인 냄새가 안 난다고들 하는데 그건 나뿐 아니라, 물음느낌표를 갖고 지적 호기심에 빛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일 거예요. 나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귀엽다는 말이야. 어린아이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인삼 녹용이나 마찬가지예요. 초등학교 가기 전의 내가 내 상상력의 보고이고, 그때 봤던 세계가 오늘날 감성과 예술의 기반이 돼요.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어령 교수에게 최종 질문을 던진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뭐냐고. 이에 대해 이어령 교수는 “생명”이라고 답한다. “생명 자체가 목적이고, 찬란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지. 어떤 절망의 시대에도 생명의 힘은 놓치지 않았으면 해.”라고 하였다. 이후 이어령 교수는 2022년 2월 26일 향년 88세 미수米壽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지은이 김민희 그리고 이어령
묻는 사람⋅지은이 김민희
인터뷰 매거진 〈톱클래스topclass〉 편집장. 학자와 예술가, 경영자와 문화 창조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600여 명을 인터뷰했으며, 현재 〈톱클래스〉에 ‘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를 연재 중이다.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제자로, 이화여대 국문과 학부 교양 강의 ‘한국인과 정보 사회’, ‘한국 문화의 뉴패러다임’을, 대학원 마지막 전공 강의인 ‘기호학의 이해’를 수강했다. 이어령 교수는 김민희에 대해 “저널리스트로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글을 쓰되,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문체를 지녀 한국의 츠바이크Stefan Zweig나 앙드레 모루아André Maurois가 될 자질을 갖췄다.”고 평했다.
답한 사람 이어령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언론인이자 교육자, 행정가이자 문화기획자 등 전방위를 넘나드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통섭형 지식인이다. 1934년 아산 출생으로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부터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30년 넘게 몸담았다. 28세 때부터 주요 신문사에서 논설위원을 지냈고, 〈중앙일보〉 고문으로 오랫동안 재직했다.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괄기획위원으로 ‘벽을 넘어서’라는 서울 올림픽 표어, 개회식의 굴렁쇠 소년 등 전 세계에 인상적인 연출을 하였다. 초대 문화부 장관,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대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고비마다 굵직한 모토를 한국 사회에 던져 왔다. 20대에는 ‘우상의 파괴와 저항의 문학’, 30대에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론, 40대에는 일본 문화론인 ‘축소 지향의 일본인’, 50대에는 88서울올림픽 슬로건 ‘벽을 넘어서’, 60대에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70대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접목을 말하는 ‘디지로그’, 80대에는 ‘생명이 자본이다’, 그리고 88세인 2020년에는 마지막으로 ‘눈물 한 방울’이라는 키워드를 남겼다.
문화부 장관 시절 이어령 교수는 관료주의 혁파를 위해서 ‘3불不 3가可’ 운동을 제안했었다. 창조적인 생각과 창조적인 조직 문화를 위해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책 내용을 요약해 본다.
3불不은 문턱 없이 말하기, 생색내지 않고 말하기, 사심 없이 말하기이다. 수직 관계의 문턱을 없애고 소통할 수 있어야, 자랑하듯 떠벌리지 않아야, 계산 없이 솔직하게 터놓고 말해야 조직에 활기가 돌고 창조적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는 취지이다.
3가可 운동은 단번에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두레박’ ‘부지깽이’ ‘이끼’라는 상징어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문화부 비전을 세우면서 가장 중시한 건 반드시 순수 토박이말이어야 한다는 것이지. 첫 번째 비전은 두레박이었지. 우물에 두레박이 없다고 상상해 봐요. 문화 시설을 공유하는 문화 공동체 작업을 두레박에 비유한 거예요. 두레박의 속성이 참 특이해. 항상 물을 퍼 올리지만 자신은 늘 비어 있지. 채울 수 없는 갈증이 있는 거예요. 그렇게 영원한 갈증을 품은 두레박 역할을 바로 문화부가 해야 한다는 뜻이지.
둘째 부뚜막의 부지깽이가 되자는 것이었어요. 부지깽이는 겉으론 하찮아 보이지. 그러나 불을 지피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문화의 불을 지피는 역할, 아궁이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부지깽이 역할을 하자는 거였어요.
즉 스스로는 욕망을 채우지 않지만 늘 같은 자리에서 타인을 위해 묵묵히 봉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위의 이끼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을 주었다. “바위를 계란으로는 깰 수 없어요. 하지만 생명의 이끼로 몽땅 덮어 버릴 수는 있지. 변하지 않는 견고한 현실을 생명의 이끼로 덮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화의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고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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