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국립 박물관 대형 화재

[지구촌개벽뉴스]

미주美洲 최대 자연사 박물관의 유물 90%가 소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잃어버리게 됐다.”

브라질 국립 박물관 화재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탄식이다. 지난 9월 2일(현지 시각) 오후 7시 30분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 위치한 국립 박물관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대원 80여 명이 출동해 진화 작업을 벌였으나 불길은 10시간 동안 꺼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던 유물 2,000만 점과 동물 표본 650만 점, 식물 50만 종 가운데 90% 이상이 소실됐다. 국립 박물관은 리우데자네이루에 세워졌던 이전 왕궁을 개조한 건물이다. 1808년 포르투갈 여왕 마리아 1세는 식민지 브라질로 건너와 이 건물을 궁궐로 사용했다. 건물은 1818년부터 박물관으로 쓰였다. 이곳은 미주美洲 최대 자연사 박물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계 기관 중의 하나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보물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이번에 소실된 유물들 중에 고대사 2층 전시관에 전시돼 왔던 1만 2,000년 전의 여성 유골 ‘루지아’가 포함됐다. ‘루지아’는 남미에 인류가 정착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열쇠로 불려 왔다. 1500년 포르투갈 원정대의 브라질 상륙 이후 1889년 공화정 수립 때까지의 브라질의 역사 자료와 생물학·고고학·지질학 관련 유물 등도 이번 화재로 사라졌다.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동 페드루 1세가 가져온 로마제국 폼페이의 프레스코 벽화와 기원전 750년의 이집트 미라도 화재를 피하지 못했다. 사라진 자료들 중에는 브라질 토착어를 기록해 둔 텍스트와 음향 자료, 공룡 뼈, 이집트의 석관 등 값어치를 따지기 어려운 세계적 유물이 포함돼 있었다. 1784년 발견된 5.36t짜리 브라질 최대 운석은 그나마 새까맣게 그을린 것을 위안으로 삼을 정도였다.

2016년 리우 올림픽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던 정부가 박물관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3년 전에는 박물관의 보안 요원에게 줄 급여가 없어 박물관 문을 닫기도 했다. 올해에는 박물관의 유지·보수 예산의 10%도 채 지급되지 않을 정도로 재정난에 시달렸다. 이번 화재 이후 조사에서 건물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소화전 물탱크에도 물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화재 감지기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가 파탄나자 박물관의 소방 방재 설비를 갖출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AP통신 등 외신은 “200년 된 박물관의 참사는 지난 수년간 브라질 정치권의 부패에 따른 경제 몰락과 가난한 정부를 상징하는 은유다.”라고 전했다.

박물관이 잿더미로 바뀌는 장면을 바라보던 시민들은 슬픔과 분노에 빠졌다. 3일 오전 정문 밖 공원에는 박물관이 불에 타고 남은 터를 보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많은 시민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정부의 예산 감축, 박물관의 감독 소홀 등을 비난하며 무능한 정부를 성토했다. 시위에 참여한 교사 호자나 올란다는 “그들은 우리 역사를, 우리 꿈을 태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브라질 정부 당국은 뒤늦게나마 소실된 국립 박물관 재건을 위해 기업과 은행 등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 국제 원조도 요청하여 유네스코와 프랑스·이집트 정부가 국립 박물관의 복원과 유물 발굴에 지원을 약속했다. 브라질 위키피디아에서도 소실된 유물을 디지털로 복원하자는 캠페인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