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 애기판 씨름의 서곡, 러일 전쟁

[사진으로보는역사]
사실은 순간순간 놓치기 쉽다. 기억으로 붙잡아도 망각의 강으로 스러져간다. 사진은 사실을 붙잡아 두는 훌륭한 도구다. 포착된 사진들은 찰나를 역사로 만들어 준다. 사진 속에서 진실을 찾아보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천지의 판을 짜러 회문산(回文山)에 들어가노라. 현하대세를 오선위기(五仙圍碁)의 기령(氣靈)으로 돌리나니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고 한 신선은 주인이라. (도전 5편 6장 1~3절)


“이제 만일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지 않으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에 짓밟히게 되리라. 그러므로 서양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이제 일본 사람을 천지의 큰 일꾼으로 내세우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화액을 끄르기 위하여 일러전쟁을 붙여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려 하노라.” 하시니라. (도전 5편 50장 4~6절)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은 우주정치를 행하시는 조화주 하느님이시다. 상제님은 선천 상극 질서를 마감하고 후천 상생의 새 질서를 여는 9년 천지공사를 보셨다. 이때 가장 문제되는 것이 선천 상극의 역사가 낳은 원한의 문제이다. 누적된 원한의 살기가 천지에 꽉 들어차서 우주가 폭파될 지경에 이르렀다. 선천 상극의 기운과 원한의 살기를 해소하기 위해 상제님은 세 번의 큰 싸움을 하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애기판 씨름, 총각판 씨름, 상씨름의 전쟁 도수다. 그리고 전쟁으로 가는 세계 정치 질서를 오선위기五仙圍朞로 판을 짜셨다. 오선위기란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상이다. 곧 우리나라가 바둑판이요, 주변 4대 강국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바둑을 둔다. 우리나라와 4대 강국을 합쳐 다섯 신선이다. 1901년 신축辛丑년 이후 세계 질서는 오선위기(체)와 씨름판(용)을 통해 삼변三變으로 진행된다. 위 성구 말씀은 오선위기 첫판을 펼칠 즈음 하신 말씀이다.

당시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시베리아 철도를 완공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었다. 갑신정변 이후 러시아는 조선과 수교에 이르렀다. 그러나 부동항不凍港을 확보하기 위한 러시아의 남하는 영국과 충돌을 일으켜 발칸반도 및 근동에서는 크림 전쟁으로, 중앙아시아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졌다. 조선과 러시아의 수교를 러시아의 남하로 간주한 영국은 조선의 거문도를 2년간 점령하였다. 반면 일본은 막 떠오르는 동아시아의 신흥 강국이었다. 청일 전쟁 이후 랴오둥遼東반도와 타이완臺灣을 얻어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삼국간섭으로 랴오둥반도를 다시 청나라에 되돌려 주게 된다.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하고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일본에게 러시아는 반드시 넘어야 할 벽으로 다가왔다.

프랑스는 아프리카에서 ‘횡단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영국의 ‘3C 정책’(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 이집트의 카이로, 인도의 캘커타를 연결하는 정책)이 걸림돌이었다. 러시아 역시 중앙아시아, 이란 등에서의 남하 정책을 영국에 의해 방해받고 있었다. 두 나라의 이해관계 일치는 러불 동맹(1892~1917년)으로 공고히 되었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하여 이해를 함께하던 일본과 군사동맹(1902년, 1차 영일동맹)을 맺었다. 이로써 조선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러시아가 바둑을 두고 영국과 프랑스가 훈수를 두는 오선위기 판이 만들어졌다. 주인인 조선은 1904년 어느 편을 훈수하지 않고 중립을 선포한다.

일본은 만주에서 러시아의 주도권을 인정해 주는 대신 한반도에서의 일본의 주도권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거부하고 한반도를 북위 39도선을 경계로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일본으로 하는 분할 통치안을 역제안하였다. 그러나 협상은 결렬되었다. 드디어 일본이 1904년 2월 8일 만주 여순旅順항에 있는 러시아 제국의 극동 함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 1904년 2월 9일 제물포 해전과 4월 30일 압록강 전투에서 일본이 승리하였고 1905년 1월의 여순항 전투, 1905년 3월의 만주 봉천奉天 전투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서 전쟁의 승패가 기울어졌다.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러시아는 발틱 함대를 움직였는데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해 있었던 함대에게 여순항 함락 소식이 들려왔다. 발틱 함대의 유일한 희망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경로는 3가지가 있었는데, 한국과 일본 사이의 대한 해협을 통과하는 길은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위험한 길이었다. 당시 일본 해군의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는 러시아 함대의 진로를 간파했다. 일본군은 대한해협의 동수도東水道인 쓰시마 해협(對馬海峽)에서 러시아 함대의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발틱 함대는 전멸되었고 겨우 3척의 함정만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빠져나갔다. 쓰시마 해전에서의 승리로 러일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그 결과로 러시아 제국은 정부의 무능을 세계에 들춰냈고, 자체적으로 제1차 러시아 혁명(피의 일요일)을 겪는다. 일본에서는 제국주의의 광풍이 더 심하게 몰아치게 되고, 조선은 일본의 지배권으로 들어가게 된다. 러일 전쟁의 기운은 식민지 개척으로 서로 대립하던 유럽으로 옮겨진다. 결국 게르만 민족과 슬라브 민족의 앙금이 깊었던 발칸 반도에서 불똥이 튀어 애기판 씨름, 제1차 세계대전으로 폭발한다. 상제님께서는 애기판과 총각판 씨름의 전 과정에서 일본을 천지의 큰 일꾼으로 내세우셨다. 동양에 있던 서양 세력을 쫓아내는 역할을 하게 하셨다. 러일 전쟁에서 개가凱歌를 올린 일본은 만주와 중국 대륙을 거쳐 동남아시아까지 진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