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는 알면 알수록 대단한 진리 외(이지홍, 이영철, 정다은)
[입도수기]
증산도는 알면 알수록 대단한 진리
이지홍(18) / 부산온천도장 / 145년 음3월 입도
저는 OO전자공고의 공기업·대기업 공채 대비반에서 공부하면서 이OO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공채 대비반을 끝마쳐 갈 즈음 선생님께서 『한민족과 증산도』라는 책을 주셨는데,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평소 책을 많이 읽으시는 어머니께 그 책에 대해 아시는지 여쭤봤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나중에 종교 내용이 나온다며 별로 좋지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책의 중반부터 그런 내용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후 선생님의 소개로 <인류시원문명 사진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도장의 수석포감님 차를 타고 이동하며 선생님께 그 내용을 슬쩍 여쭤봤습니다. 선생님은 벌써 그만큼 읽었느냐고 놀라셨습니다. 사진전을 재미있게 관람하고 선생님께서 햄버거를 사주셨는데, 그 자리에서 수석포감님으로부터 음양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음양에 대해 듣고 나니 사람의 생김새로 성격도 맞출 수 있고,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나서 신기했습니다. 그 후 책을 읽으며 가을개벽이라는 용어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씀드렸더니 우주일년에 관한 만화책을 주시면서 우주일년과 상극, 상생 등에 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더불어 도전에 나온 내용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신기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2년 동안 심각했던 불면증이 매일 밤 잠자리에서 태을주를 들으며 속으로 읊었더니 서서히 고쳐진 것입니다.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인데, 1학년부터 태을주를 알기 전까지는 정말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매일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피곤한 몸을 씻고 잠을 자려 해도 새벽 2시가 지나기 전까지는 절대 잠에 들 수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밤을 새우기도 했고, 피곤한 채로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 태을주를 들으며 자는 날이 점점 많아질수록 잠을 편히 자게 되고, 낮에 피곤한 경우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광안도장에서 진리 관련 강의를 듣게 되었고, 증산도에 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온천도장에도 방문해보고, 궁금한 것들은 선생님께 물어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주말에는 어머니 일을 도와드려야 해서 남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따로 시간을 내어 도장에 방문할 수 없었습니다. 평일에는 헬스 등 운동을 마치면 밤 10시가 넘는데, 선생님께서 수석포감님과 함께 그 시간에 맞추어 매일 저를 데리러 와 주셨습니다. 지금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두 분도 바쁘시고 피곤하실 텐데 정말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밤마다 도장에 나가서 태을주 수행을 하였고 주말에 시간이 맞을 때는 진리공부도 하였습니다. 도장에 들어가면 분위기도 너무나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진리를 알면 알수록 증산도가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주 동안 매일 도장에 나가서 진리 공부를 하였습니다.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서 밤을 새웠지만, 다음 날 도장에 와서 입도 시험과 면접을 치렀고, 드디어 입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증산도로 이끌어 주시며 많은 노력을 하셨던 선생님과 수석포감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하겠습니다! ◎
세상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다짐하며
이영철(42) / 대구시지도장 / 145년 음4월 입도
지금으로부터 1년여 전부터 우연히 상생방송을 보게 되어 호기심에 한동안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즐겨 보았는데, 우리나라의 역사와 뿌리를 밝혀주는 내용이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보면 볼수록 진실된 역사라는 생각과 느낌이 들어 귀가 후에는 항상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시청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주일년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평소 우주의 주기에 관심이 있었고 지구에도 4계절이 있어 흥미롭게 접했습니다. 하지만 개벽 이야기나 도전 내용은 사실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온전히 믿을 수가 없어서 나름대로 여러 책도 읽어보다가 올해 들어와서 증산도 도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9살에 카센타를 열어 처음으로 개인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갑자기 몸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두통이 심해지다가 그 다음은 목, 어깨가 굳어지더니 2년 후에는 몸 전체가 굳어졌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어 할 수 없이 사업체를 처분하고,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 보았지만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뿐이었습니다. 이때는 정말 죽음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년 동안 산송장처럼 힘겹게 지내면서 저는 내적으로 많이 성숙하였습니다. 저는 비록 힘들어 누워있지만 이 세상에는 저보다 더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어린 나이에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환자들, 태어나면서부터 갖가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열악한 집안환경으로 혹독한 육체적 고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등)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최소한의 주어짐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저는 30여년 동안 참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만일 제 몸이 예전으로 회복되면 반드시 세상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이때 제 어머니께서 저를 살리고자 많은 애를 쓰셨습니다. 제가 목숨을 끊지 못한 이유도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매년 많은 돈을 들여 용한 무속인을 찾아다니며 굿판을 벌였는데 저는 속으로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하며 억지로 따라다녔습니다. 그렇게 굿판을 다니던 중 세 번째 굿판에서 전과는 다른 좋은 느낌이 들었고 그 이후로 2년이 지나면서 몸의 통증이 차차로 없어졌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어머니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인의 권유로 천주교 신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세례를 받을 무렵에 전 특별한 영적 메세지를 여러 가지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 몇 년 고난을 겪어서인지 사람의 인생이 참으로 허망하고 부질없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했고 마지막 순간에 값지고 소중한 삶을 살았노라 자부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때 ‘사람들의 인생이 모두 얼마 남지 않았다. 매우 촉박하다’는 느낌과 나의 조상님에 대해 매우 궁금해졌으며, ‘하느님이 계시지만 나의 조상님이 더 가까운 하느님’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느낌은 몇 개월을 지나 2~3년 동안이나 강하게 느꼈습니다.
지금의 생각엔 촉박한 시간의 느낌은 아마도 천지개벽의 때가 아닌가 싶고 조상님이 더 가까운 하느님이란 느낌은 부모님을 그만큼 소중히 여기고 돌아가신 조상님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내용들이 증산도 진리와 너무도 일치하는 것 같아서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정성공부를 마치고 입도식을 하는 날에는 천지에서 저에게 강력한 보호망이 쳐지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남달리 천주교 신앙을 열심히 해 오던 터라 종교를 바꾸기가 정말 쉽지 않았지만,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성숙되는 진리인의 삶을 제시해 주었기에 이렇게 용기를 내어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더 옳다는 믿음과 이끌림에 큰 결단으로 시작한 만큼 보잘 것 없는 저의 신앙이 여러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전 인류에게 상제님 진리를 전하는 큰 일꾼이 되겠습니다. 보은! ◎
조상님께서 남편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다은(21) / 익산신동도장 / 145년 음2월 입도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삼촌, 고모 이렇게 다 같이 함께 살았습니다. 어머니 역할을 고모와 할머니가 다 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어머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할머니와 고모께서 저를 잘 챙겨주십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저희 집안의 종교는 천주교였습니다. 어렸을 때 어른 미사하는 날에 할머니를 따라가서 사탕 받아먹는 재미로 다녔습니다. 유치원 때인 7~8살에는 어린이 미사에 혼자 참석도 했습니다. 솔직히 어렸을 때라 아무 생각 없이 다녔습니다. 저희 집 가족들은 모두 세례명이 있지만 저는 없습니다. 1년을 채 제대로 다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중학생, 고등학생 때에는 친구들이 다니는 원불교도 가보고 교회도 가보았습니다. 교회는 많은 친구들과 함께 2년 정도 다녔습니다. 종교를 신앙한다는 마음보다는 친구들과 교회에서 만나 어울리는 재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 3학년 때부터는 인터넷 게임에 빠져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게임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친구에게 전화가 와도 무시하고 게임이 다 끝나고 나서야 전화를 걸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별로 친하지 않은 학교 친구에게 전화가 왔는데 왠지 받고 싶은 전화였습니다. 그 친구는 저에게 자기 친구를 한번 만나보라며 권유했습니다. 저는 귀찮아서 그냥 연락만 하겠다고 하였지만 게임을 하느라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친구에게 소개받은 임OO 성도님이 금요일에 저를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만날 마음은 없었으나 결국 임 성도님을 소개시켜 준 친구 둘과 임 성도님, 그리고 저까지 넷이 만나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호감을 갖게 되어 임 성도님과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 성도님이 증산도라는 곳을 다닌다고 하더군요. 처음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물어보니 종교는 아니라고 하면서 증산도에 대해 대충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후로도 임 성도님은 증산도에 꾸준히 나갔고 저와 만날 때마다 증산도 이야기를 자주 전해 주었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만남을 지속하다가 드디어 양가 집안의 허락을 얻어 부부가 되었습니다.
제가 증산도에 입도할 수 있도록 열정으로 이끌어주신 인도자 오OO 성도님은 저의 시어머니이십니다. 처음 시어머니 오OO 성도님을 만났을 때 “우리 집안의 종교는 증산도다. 한 가족이 되려면 함께 신앙의 길을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평택 임씨 집안의 한 가족이 된 저를 시어머니께서는 적극적으로 도장에 데리고 다니십니다. 도장에 가면 성도님들이 모여 수행하고 말씀을 듣고 특히 일요치성에는 점심식사도 함께 하는데 참으로 좋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시어머니와 이제 남편이 된 임 성도님과 함께 증산도 도장을 따라 다녔습니다. 태전 태을궁에도 가 보았고, 증산도 도장을 갈 때마다 수행하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후 입도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포정님께 하루에 한 시간씩 입도교육을 받았습니다. 증산도 진리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들으니 뭔가 모르게 더 귀에 잘 들어왔고 이해가 갔습니다. 아직 완벽히 다 알지도 못하고 더 배워야 할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운명이란 것이 있다고는 믿습니다. 가을개벽을 극복하기 위해서 증산도에 대해 알고 계시는 제 조상님께서 임 성도님을 저에게 보내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입도를 하였으니 앞으로 도장을 더 열심히 다니고 관련 진리서적도 열심히 공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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