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산채지가⑦ - 태전가사太田歌辭
[기고]
김남용 / 본부도장
태전가사 해제
태전가사
는 그동안 살펴본 춘산채지가의 최종 결론 편입니다. 특징이라면 아예 제목에 태전太田을 걸어 놓은 것입니다.
춘산채지가를 되돌아보면 남조선 뱃노래로 시작합니다. 반드시 남조선 배를 타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지요. 남조선은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에서 만국萬國 사람을 살리는 계책이 나오는 곳이고 어차피 특정 공간空間을 전제前提합니다. 만국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전 세계 사람이 어떤 이유로 죽는다는’ 사실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요. 아직껏 온 인류가 그와 같은 참화慘禍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상상이 미치지 못하지만, 지난 몇 해 동안 코로나 팬데믹 시국을 전 세계가 경험하면서 우리의 인식 속에 어떤 가능성의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1860년, 지금부터 164년 전 경주 사람 #최수운#이 경험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7개월간 기도 도중 4월 5일에 이르러, 상제上帝님으로부터 12제국諸國 괴질운수怪疾運數 소식을 첫 메시지로 듣습니다.
“전 세계(12제국)에 이름 모를 죽을병이 돈다.”
“온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이 직접 나를 찾아 이 말씀을 전해 주셨다.”
그는 나중에 이를 『용담유사龍潭遺詞』에 ‘
다시 개벽
’이라는 단어로 남깁니다.
우리가 말하는 동학東學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상제님으로부터 천명을 받은 남조선 사상이 있습니다. ‘
남조선 신앙信仰
’이라고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전혀 꺼릴 것이 없습니다. 지구촌을 달구는 한류韓流 물결은 세계 속에 남조선南朝鮮의 등장을 알리는 전령과도 같습니다.
다시 동학으로 돌아가면, 동학혁명을 거쳐 세계대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朝鮮 왕조는 역사 속에 사라지는 망국亡國의 시운에 접어듭니다. 역사의 순리順理이지요. 동학은 우주의 통치자로부터 온 인류에게 천명된 혁명적 메시지인데, 유가의 틀에 충실한 조선 조정이 이를 수용할 리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500년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국망국초國亡國初의 시기에는 어김없이 비결祕訣이 등장합니다. 거기에는 낡음과 새로움의 대비가 번뜩입니다. 동학혁명의 전개와 외세의 침입은 조선 왕조가 그토록 금기禁忌하던 비결祕訣어가 세상에 유포되는 계기가 됩니다.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예언이 있습니다. 바로
이재송송利在松松, 이재가가利在家家, 이재전전利在田田, 그리고 정씨鄭氏에 의한 계룡산 도읍都邑
이지요. 쉽게 말하면 앞의 세 가지는 민간인이 피난避難하는 비결인데, 조선 백성이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세 번의 큰 위기로부터 살 수 있는 방책을 압축시킨 말입니다. 처음은 왜倭로부터의 국난에서 대피 요령, 두 번째는 청나라 호란胡亂에서의 살길인데 세 번째는 도대체 무엇이냐는 거지요. 전혀 감感조차 잡지 못했습니다. 결국 정씨가 누구이든지 계룡산에 왕국을 건설하리라고 했는데 이재전전과의 연관성을 몰랐습니다. 이번 호에는 이런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본문 이해
어화 세상 사람들아 많은 백성 화和해보소
태전가사의 작자가 뽑은 화두는 ‘
화和
’ 자입니다. “서로 뜻이 맞아 좋은 상태가 되다.”라는 의미이지요. 화목, 온화, 순화, 화해, 화답에 이 글자를 쓰고, 수확한 벼禾를 여럿이 나누어 먹는다는 의미에서 화목하다는 뜻이라고 사전은 새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골문에는 籥(피리 약) 자가 들어간 龢(풍류 소리가 조화로울 화)가 쓰였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피리 소리가 고르게 퍼져 나간다는 의미에서 ‘조화롭다
’라는 뜻이 나왔다는 겁니다.
상제님께서 최수운 대신사에게 도통을 내리고 나서, “글을 지어 세상 사람들을 잘 가르치라.”라는 천명을 내리시고, 수운이 가사歌辭 형식의 『용담유사』를 지은 이래 많은 가사체 형식의 글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서두序頭를 어떻게 시작하는가에 매우 중요한 비중이 있었습니다.
춘산채지가 여섯 편의 첫 문장들을 떠올려 보세요. 태전가사 첫 문장에 화할 화和 자가 선택되었다는 것은, 예를 들면 오케스트라에서 여러 악기가 각기 소리를 내는데 그중 피리 소리가 고르게 퍼져 나가며 다른 소리를 조화롭게 하는 그런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해석을 끌러 봅니다.
채지가의 여섯 가락이 기실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해 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태전가사는 마치 그들 모두를 구슬처럼 꿰어서 하나의 보석으로 만드는 과정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궁을궁을弓乙弓乙 조화중에 너도 좋고 나도 좋네
첫 번째로, 춘산채지가 여섯 편이
궁궁을을弓弓乙乙
이라는 신비로운 비결 주제를 찾아 가는 과정을 읊은 노래라면, 태전가사는 이미 그것을 잘 알고서 노래한다는 느낌이 확 듭니다. 비유하자면 난리 속에 가족을 잃은 어떤 고아孤兒가 어릴 적 들은 기억의 편린을 되살려 가며 고향을 찾아 가는 과정이 채지가 여섯 편이라면, 태전가사는 기억의 원형原型이라고 할까요. 종갓宗家집 분위기
가 흠씬 풍기고 있지 않습니까? “궁궁을을조화중”이라니 누가 이런 표현을 쓸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우리는 이미 궁궁을을의 조화 속에 살고 있어.”, “그것을 굳이 표현하라면 화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주장하는 느낌이랄까요.
송송가가松松家家 지낸 후에 이재전전利在田田 밭을 갈아
우리나라 비결 가운데 조선朝鮮의 3대 비결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문구의 느낌대로라면 이 글의 작자는 동학 가사를 거의 섭렵한 느낌이 드는데요. 왜냐하면 동학 가사에서 이렇게 송송가가란 표현을 자주 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재전전은 따로 떼어서 구분을 지었구요. 지나간 과거 비결과 앞으로 올 현실을 나눈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그 본질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흔들리는 큰 변혁의 시간대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것이기에 바둑을 복기하듯 살펴보면,
송송松松
은 임진왜란, 가가家家
는 병자호란에 살길을 암시하는 비결어였습니다. 곧 왜적들이 침입해 왔을 때는 소나무 송松 자가 살길이라는 의미인데, 일본군이 송 자가 들어간 청송靑松 땅은 일부러 피했다는 말이 있고, 명나라의 무장 이여송李如松이 구원병을 끌고 왔다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병자년 호란胡亂에서는 너무 혹한이라 집 안에 그대로 있는 것이 피난법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면
이재전전利在田田
은 무엇인가? 동학은 조선이 망하고 새 세상이 오는 이치를 설명하면서 그 연결 고리로 조선 비결 중 아직 해결이 안 된 이재전전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래서 동학 가사를 보면 으레 송송가가松松家家 후에 이재전전이 나옵니다. 그렇게 동학 가사에서 이재전전을 찾았지만 정작 이재전전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힌 가사가 없습니다.
안태전太田을 많이 갈아
전전田田이 무슨 뜻인가를 밝힌 저작물 중에는 태전가사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태전太田은 지금의 대전大田시를 가리키는 본래 이름
입니다. 과거 충청도의 중심은 공주公州였고 태전은 회덕懷德에 부속한 변두리였습니다.
러일전쟁 때 일본 사람들이 경부선을 부설할 때 공주를 관통하는 것이 유리하였지만 “철마鐵馬(기차)를 절대 공주로 지나게 할 수 없다.”는 유생儒生들의 반대로 지금의 대전에 기차역이 서게 되었고(1904년) 이로부터 태전에 인구가 유입되며 발전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예 이름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죠. 1904년경에 태전으로 불린 적이 있다고 짧게 기록한 문서가 있습니다.
그러던 태전이 대전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에 대해 알아볼까요? 대전에 있던 〈호남일보〉가 1933년 3월에 발행한 「충청남도 발전사」에 따르면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빼앗은
이등박문伊藤博文
(이토 히로부미)은 1905년 12월 서울(경성京成)에서 특별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게 되었는데 기차가 급수를 하기 위해 대전역에서 정차했다고 합니다. 이등박문도 이 시간을 이용하여 잠시 열차에서 내렸는데 수행원에게 “여기가 어디냐?”라고 물었답니다. “태전입니다.” 하고 보고하자 이등박문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이름을 바꾸라고 해라. 이제부터는 태전太田이 아니라 대전大田이다.”라고 말했고, 이때부터 태전은 대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당시 대전역 자리는 산내면 태전리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태전을 대전으로 바꾸도록 했을까? 거기에 대한 문헌은 찾기 어렵습니다. 옛 이름이 한밭이고 태전의 태太 자는 사람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인데, 가운데 점은 생식기와 같은지라 이를 떼어 거세한 것과 같다는 주장에 비중이 실리고 있습니다.
1904년 태전역이 처음 생길 때 역원 4명, 경비순사 2명 등이 전부였던 조그만 시골 역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인들로 붐비기 시작하여 1906년에는 일본군 14연대, 1908년에는 경찰서가 들어섰고, 1909년 대전역 주변 정동, 원동에는 일본인 2,487명이 모여 살 정도로 도시가 커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태전 앞에 ‘#안태전#’이라고 머리가 붙은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재전전이 단순히 태전 지명만을 의미함은 아니라는 복선이 깔려 있습니다. 남조선의 의미를 풀 수 있는 키워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궁을궁을弓乙弓乙 때가 오니 어느 밭을 가잔말가
이제 태전가사의 두 번째 특징을 말할 때가 되었네요. 궁을궁을의 때가 온다는 표현입니다. 춘산채지가에서는 여태껏 궁을에 대한 속살도 내비치지 못하였는데 여기서는 때가 온다고 합니다. 그것은
궁을궁을이 만국 사람을 건져야 할 ‘12제국 괴질운수’의 때에 온 인류를 건지는 ‘구원의 주체’
라는 것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에 대해 예로부터 내려오는 비결에 “소 울음소리(우명성牛鳴聲)가 난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디서 난다는 걸까요? 전통 사회에서 소는 밭을 가는 것(耕田)이 주된 임무이지요? 그래서 ‘밭을 찾는 것’과 ‘소를 찾는 것’이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결국 궁을궁을은 ‘소(牛)’를 ‘새 생명을 내려 주는 주체’ 차원에서 표현한 말
입니다.
동풍삼월東風三月 을유시乙酉時에 청괴만정靑槐滿庭 오는 때가
춘산春山에 오르는 이유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풀(지초芝草)’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곧 기회이므로 그 때가 서로를 어기지 않습니다. 달력으로 봄이라면 정월 2월 3월 석 달을 모두 아우르지만, 여기서는
봄바람이 부는 때
로 적시하고 있네요. 이 바람은 생명을 태동케 하는 바람이면서 동시에 숙살肅殺 기운을 가지고 있기에 을유시乙酉時
라고 살짝 의미를 겹치고 있습니다.
청괴靑槐
는 푸른 회(화)나무를 의미하는데, 보통 느티나무를 말합니다. 느티나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시골 오솔길에 큰 그늘을 지어 주는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데, 고대 중국에서는 왕실 정원에 심을 만큼 지체가 높았습니다. 전통 사회에서도 마을을 보호하는 지킴이였지요. 그래서 이름에 귀鬼 자가 붙었나 봅니다. 어쨌건 우리는 지금 춘산의 봄이, 관능적으로 느티나무 정원에 만발하는 이미지로 시각이 완전히 고정되고 있습니다.
백양무아白楊無芽 그시로다
백양목은 (은)사시나무를 말합니다. 무아는 아직 싹을 틔우지 않은 시기를 말하니 음력 2월경을 뜻하지요. 청괴만정은 싹이 온 뜰에 만발한 것이고,
백양무아
는 아직 움이 트지 않은 것이니 서로 대비되는 것이며 같은 시기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절은 태전가사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많은 한자 시구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인용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비결어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을 비결이라고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전후 구절은 대략 음력 2월에서 음력 5월까지의 기간을 넉넉하게 표현
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녹수청림綠水靑林 좋을 적에 봄갈기를 재촉한다
세 번째, 태전가사가 이재전전의 종갓집에서 나온 문서 같다는 느낌을 확인할 수 있는 구절이 이것입니다. 밭(田)은 씨종자를 심기 위해서는 먼저 갈아야 하겠지요? 태전가사는 ‘12제국의 괴질운수’를 대전제로 하면서도, 이를 크게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인사人事’를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곧 ‘
(구제중생하는) 때를 놓치지 마라.
’는 흐름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자연의 천시에 대응하는 인사의 역할
을 다룬 것입니다.
천봉만학千峯萬壑 저 두견은 우성재야牛聲在野 때가 온다
보통 은유와 상징은 시詩의 특징으로 말하지만, 태전가사의 한 줄을 읽으려면 얼마만큼의 역사적 사실과 그 상징을 알아야 할까요? 한국 사람이라면
두견杜鵑
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화투 패의 4월 흑싸리에 나오는 새가 두견이거든요. 거기다 많은 사람이 가정에서 쿠* 밥솥을 사용하는데, 때맞추어 밥이 잘되었다는 새소리가 바로 두견입니다. 종種으로 분류하면 뻐꾸기랑 사촌 관계이지만 같은 과라고 합니다. 접동새, 소쩍새 등으로 불리며 농사철을 알려 주는 시조時鳥로 불리고 있습니다. 촉蜀나라 망제望帝의 죽은 넋이 변해 두견이 되었다는 전설에서는 망제혼望帝魂이라고 불리는데,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망제가 죽어서까지 백성을 독려한다고 합니다(궁금하신 분은 자료를 더 찾아보세요).
농촌에서 모내기를 하고 한가로운 가운데 먼 산에서 들려오는 뻐꾹~ 뻐꾹~ 소리는 정겹기 그지없지만, 사실은 봄이 다 지나가고 있으니
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농사에 힘쓰라
는 두견이의 울부짖음이라고 하지요. 흔히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기 살림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에게 피맺힌 소리를 들려주는 두견이의 울부짖음은 생각해 보셨나요? 여기서는 우성재야牛聲在野
의 뜻이라고 밝힙니다. 소가 들에 있다는 것이지요. 왜일까요? 밭을 갈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때를 놓치지 말고 씨를 뿌려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만 가지 생명의 존재 근원, ‘궁을궁을’의 생명을 받아서 한 가족으로 화和하고 조화造化의 인간 꽃을 피우게 하는 것
입니다.
용담수龍潭水 많이 대어 밭갈기 바쁘도다
농사를 지으려면 밭에 물이 있어야겠죠?
구제창생하는 그 근원을 바로 용담수
라고 하는 거지요. 동학의 발원지 경주 용담. 최수운은 용담수류사해원龍潭水流四海源이라는 일곱 자 글을 지어 새 세상은 상제님이 내려 주신 무극대도로 온 인류가 ‘다시 개벽’을 극복하며 지상선경이 열릴 것임을 선포하였습니다. 태전가사는 그 결실이 전전田田에서 전혀 남모르는 법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알리는 글
입니다.
얘야 얘야 저 농부들 우성재야牛聲在野 알았거든
밭을 가는(耕田) 생명의 소(牛)가 소 울음을 내면(牛聲在野) 때를 맞추어 농부는 농사일에 바쁘게 됩니다. 밭이 없다면 농부는 어디서 일을 할 것이며, 밭이 있어도 소가 없다면 무슨 수로 밭을 갈 수 있을까요? 태전가사는
농부의 관점에서 읽어야
그 뜻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추수할 때 돌아온들 그 기한飢寒을 면할쏘냐
만사의 분수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의 위치에서 보면, 될 일을 되게 하는 책임만 있는 거지요. 시간도 공간도 재원도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일꾼은 그저 정성을 다하여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일만 담당할 뿐입니다.
추수의 시간(득신得辛)은 매우 짧다
고 하지요. 태전가사는 모든 것을 오픈하고 단지 농부(일꾼)들의 수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만물화창 하지마는 대소맥大小麥 추수시라
봄농사의 마디는 대소맥(밀과 보리)의 수확이듯이 이때는 만물이 화창한 봄날이지만 역설적으로 농부들은 대소맥을 결실하여 거두는 때라고 말합니다.
인간 농사를 대비하여 설명
하고 있습니다.
꽃을 따라 놀다가서 춘말하초春末夏初 때 오거든
아무리 세상일에 바빠도 천지의 질서가 뒤바뀌는
그때에 대한 대세는 잊지 말라
는 당부를 새로 하고 있습니다. 천지 대세를 알면 천하의 살 기운(생기生氣)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다시 개벽 정벽하니 목단화牧丹花를 구경하세
이제 마무리 부분에 접어들면서 동학 문서의 ‘
다시 개벽
’을 인용합니다. 채지가에서는 한 번도 ‘다시 개벽’을 언급한 바가 없지요. 여기서 정벽의 한자가 바를 정正 자가 아닐까요. 이때 목단화가 등장합니다. 모든 꽃 가운데 가장 호화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고 하여 화왕花王이라 불린다고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모란이라고 합니다. 꽃말 자체가 부귀, 영화 등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정벽이란 자연개벽의 차원에서는 파멸적 현상이 드러나지만, 한편 인간개벽의 차원에서는 모든 인간의 꿈, 부귀영화의 상징인 목단화가 만발하는 세상이 도래한다는 암시
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태음태양 심도하여 만법귀일 다시 되어
태전가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결론이 이것입니다. 동학은 무극대도를 주창했습니다.
무극無極
이라는 단어는 쉽게 풀 수 있는 말이 아니지만, 좀 더 다른 말로 대치하면 건곤乾坤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극기 모습을 생각해 보면 왼쪽 부분이지요. 건곤은 순수한 음양을 상징하기에 인사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 붙입니다. 건곤부모乾坤父母라고 하지요. 그런데 현실은 무극이 질서화된 태극의 세계로 일월日月이 무극을 대행
합니다. 이를 표현한 말이 태음태양
이라고 합니다. 태극기는 이와 같이 건곤일월의 존재 원리를 표상한 것입니다. 이것을 벗어난 이치는 없습니다.
동학은 우주의 건곤부모가 인간 세상에 강세를 하시는
시천주侍天主
소식을 전합니다. 그 소식을 비결에서는 궁을弓乙
이라는 상징어로 표현합니다. 일월(태음태양)은 건곤을 대행하는 존재입니다. 현실 세계는 일월의 빛을 받으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건곤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지만, 일월은 그 자체로 건곤의 존재를 증거합니다. 춘산채지가를 통하여 여러 곳에서 궁궁을을을 찾아 왔지만 태전가사의 마무리에서 비로소 궁궁을을이 그 실마리를 드러내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일월부모를 건곤부모와 동일한 위격에서 궁을弓乙이라고 표현
합니다. 그것은 만법萬法을 귀일歸一하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씨를 심고 키워서 열매 속에 다시 생기는 씨는 동일하잖아요. 그 이치이지요. 아직껏 궁을궁을을 이렇게 쉽게 이치적으로 드러낸 가사는 태전가사가 유일합니다.
상제님은 참동학을 말씀하셨습니다. 동학은 이재전전의 존재 원리를 알았으나 찾지 못했는데, 참동학에서 비로소 이재전전의 의미를 밝혀 줍니다.
태전가사는 동학의 이상이 참동학 증산도에서 마침내 이루어지며 그것이 이재전전의 참뜻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태전가사 전문
화
어화 세상 사람들아 많은 백성 和해보소
궁을궁을
弓乙弓乙 조화중에 너도 좋고 나도 좋네
시경
時境따라 노래 불러 시구 시구 좋을시구
녹수청음 송송가가
綠水淸陰 좋을시구 松松家家 지낸 후에
이재전전 태전
利在田田 밭을 갈아 안太田을 많이 갈아
궁을궁을
弓乙弓乙 때가 오니 어느 밭을 가잔말가
십승지지
十勝之地 알았거든 오곡잡곡 많이 심어
근농 동풍삼월 을유시
쉬지 말고 勤農하소 東風三月 乙酉時에
청괴만정 백양무아
靑槐滿庭 오는 때가 白楊無芽 그시로다
이때 두고 이른 말이 춘풍삼월 돌아오니
녹수청림
綠水靑林 좋을 적에 봄갈기를 재촉한다
경개절승 천봉만학
景槪絶勝 좋을시구 千峯萬壑 저 두견은
우성재야
牛聲在野 때가 온다 바쁘도다 바쁘도다
용담수
어서 바삐 밭을 갈아 龍潭水 많이 대어
초야인민
밭갈기 바쁘도다 草野人民 농부들아
춘일미곤
春日迷困 하지마는 어서어서 깨달아서
농사 때가 바쁘도다 곤한 잠 깊은 꿈을
천하대본
쉬지 말고 근농하소 天下大本 농사오니
실지농사 하게 되면 자세보고 글통하소
다시 할일 바이 없네 추무소업 없을런가
우성재야
얘야 얘야 저 농부들 牛聲在野 알았거든
의심 말고 쉬지 말고 천지 또한 때가 있어
평원광야 너른 들에 쉬지 말고 근농하면
우로지택
雨露之澤 아닐런가 가산요부 풍등일세
해태한 저 농부들 근농않고 앉았으니
이런 농사 모르고서 때 가는 줄 모르고서
여류
애달하기 다시 없다 세월이 如流하여
지은 농사 없었으니 그 기한을 못 면함에
추수할 때 돌아온들 그 기한을 면할쏘냐
빈형
그 貧形 어이하리 이리 저리 깨달아서
쉬지 말고 근농하소 부지덕 없는 바니
자네 신세 생각커든 자고이치 살펴보면
근농않고 되올손가 농사 때를 잃지 말고
사월남풍 좋은 바람 자네 살 길 생각커든
부디 부디 근농하소 만물화창 하지마는
대소맥
大小麥 추수시라 큰 농사 바탕 때라
청림
靑林시절 좋은 경에 대소맥을 추수하면
이화도화
얘야 얘야 농부들아 梨花桃花 만발하여
시운시경
완화하는 저 소년들 時運時境 둘러 보니
가지가지 단장이라 꽃을 따라 놀다가서
춘말하초 월하삼월
春末夏初 때 오거든 시유시유 月下三月
목단화
다시 개벽 정벽하니 牧丹花를 구경하세
태양태음 심도하여 만법귀일 다시 되어
시화시풍
時和時豊 돌아온다 근농하던 저 농부들
함포고복 즐겨하네 시구시구 좋을시구
격양가를 부르면서 태고순풍 좋을시구
아니 놀고 무엇하리 놀고 놀고 그래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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