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의 진리 강좌 | 7장 세운공사世運公事 (1)
[증산도대학교]
증산도의 진리 7장
세운공사世運公事 (1)
천지공사로 짜 놓으신 세운과 도운은 크게 #세 단계 변화(삼변성도三變成道)#를 거치면서 선천의 낡은 가치관과 불합리한 사회 구조가 개혁되고, ‘묵은 하늘’의 저주와 원한이 완전히 해소된다. 지금은 선천 여름철 말에서 후천 가을로 전환하는 대변혁기이자, 우주 생명이 최대로 분열하는 때이다. 상제님의 진리 도법을 세상에 드러내는 준비 기간으로 최대 분열수인 81(9×9)수를 쓰시고, 선천 역사의 난법을 정리하고 묵은 기운을 떨쳐 내는 데 천지 일원수一元數 100수를 한 도수로 정하여 공사를 처결하셨다.
이제 상제님께서 세계 역사의 운로를 결정하신 #세운 공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제1절 세운공사의 기틀
세운 공사世運公事란 인간 세상의 역사 운로, 곧 지구촌 역사의 운명을 정하신 상제님의 세계 정치를 의미한다. 여기서 ‘역사歷史’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다 포함하는 총체적 개념이지만, 이 글에서는 세운 공사의 중심 내용이 오선위기로 펼쳐지는 것을 고려해서 세계 정치사 또는 세계 정치 질서의 움직임으로 한정 지어서 보기로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1차 세계대전 후 결성된 국제연맹,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직된 국제연합 등의 과도기 준비 과정을 거친 후, 후천 가을개벽의 지구촌 문명 대전환 과정에서 천상의 조화정부가 인간 역사에 완전한 모습의 조직 체계로 자리 잡아 대한민국에 세계 통일 문명이 열린다는 것이다.
세운 공사의 역사 배경
18세기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가장 부도덕한 전쟁인 ‘아편전쟁阿片戰爭’이 일어나 청나라가 무력하게 영국에 패하였고, 이후 서구 열강들과 일련의 불평등 조약을 맺고 반식민지 상태로 빠졌다. 이 무렵 러시아는 동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1860년에는 연해주를 차지하면서 조선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일찍이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대성사는 사후에 신도 세계에서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음덕으로 서양 사람들은 하늘(문명신)로부터 과학혁명, 산업혁명 등 천상 과학 문명의 기예를 전해 받았지만, 물질과 사리에만 정통하여 도리어 신神을 부정하고 수많은 상극의 죄악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였다. 인간의 정신 활동을 무시한 채 역사를 물질의 운동과 반영으로만 보고, 과학주의에 경도되어 신의 세계를 부정하며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려 하였다. 우월한 기술과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오만해진 서양 제국은 약소국을 침탈, 예속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이 땅에 강세한 우주 통치자 하느님이신 상제님께서는 삼계대권의 무궁한 조화로써 서양 문명의 이런 해악을 제어해 주셨다.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이런 서양 제국주의의 기운을 꺾고, 가을우주 통일 문명을 개창할 인류 시원 역사의 주인공을 동방 땅에 내는 과정이다.
천하의 난을 동하게 한 동학혁명東學革命
*1) 황토현 - 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으로 상제님 탄강지와 가깝다.
이에 일본은 1894년 ‘조선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아산만에 정박한 청의 군함을 급습해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우세한 전력을 바탕으로 청에 승리하였다. 이는 ‘중국 중심의 정치 질서’에 종지부를 찍고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 이후 동아시아에서 촉발된 국제 정치 질서의 급변은 마침내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후천개벽의 개혁 정치를 외친 동학혁명은 세계 정치의 새 질서를 여는 근현대 역사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몰락
이에 고종은 1897년 환구단圜丘壇을 세우고 상제님께 고유제告由祭를 올리며 국호를 대한大韓 연호를 광무光武로 선언하고,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자주국이고 천자국임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다. 이후 광무개혁을 추진하였지만, 일본의 방해로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국력을 키운 일본은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따라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켰고 승리하여 제국주의화하였다.
그리고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제로 체결하게 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1907년 정미7조약으로 군대를 해산하는 등 강제 병합의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결국 한민족의 대한제국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의 강제 체결로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어 35년간 광명을 잃었다.
비록 대한제국은 일제의 의해 무너졌지만, 상제님의 세운 공사 천명에 따라 장차 이 지구촌에는 태고 시대 광명光明 문화의 원주인原主人인 한민족을 중심으로 세계일가世界一家의 통일 문명이 열리게 된다.
세운 공사의 결론 : 세계일가 통일 문명 건설
상제님은 선천 세상을 바로잡아 통일하시기 위해 ‘세계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는 ‘세계일가世界一家 통일정권統一政權 공사’를 보셨다. 그래서 지난 호에 언급한 대로 인류의 영원한 화평을 이루기 위해 먼저 각 지방신과 지운을 통일하는 공사를 집행하셨다. 한반도에 위치한 천지의 부모산 회문산과 모악산을 중심으로 사명당四明堂이 기운을 발동하게 하셨으며, 이후 전 세계를 통일하여 후천 가을 세상을 여시기 위해 이 땅에 황극신皇極神을 불러오는 공사를 보셨다. 황극신은 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제왕에 응기된 신이다. 황극은 우주가 변화하는 작용의 중심이요, 인사로는 역사의 중심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통치자를 가리킨다. 상제님 당시 이 황극신은 청나라의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되어 있었다. 이에 상제님께서 후천 통일 문명 시대를 여시기 위해 그 신명을 부르는 공사를 보심에 따라, 빛의 실마리라는 뜻을 담은 광서제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였고, 이후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를 거쳐 동아시아 최초의 근대적인 공화국인 한족의 중화민국中華民國으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국을 황하 문명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역사의 종주로 인식하고 있었다. 유교 사관에서는 진시황이 전국 시대를 통일하고 황제라 칭한 후로 천자 문화권이 정립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환국 이후 동방 천자의 종주권을 계승한 천자天子 문화의 본고향은 동방의 한민족韓民族이다. 동방 한민족, 배달겨레는 대대로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상제님을 대행하여 세상을 통치한 천자 문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다 고려 25세 충렬왕 대에 천자권을 몽골의 원元나라에 양도하고 왕王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후 건국된 한양 조선朝鮮은 사대모화주의事大慕華主義를 근본으로 한 왕정으로 일관하다 결국 패망의 위기에 몰렸다. 가까스로 고종 광무제가 천제를 올리면서 천자국의 위상을 회복한 것이다. 인간으로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께서 1908년 무신년 10월에 보신 세계일가 통일정권 공사가 역사의 전면에 총체적으로 실현됨으로써 황극신이 동방의 이 땅에 온전히 넘어오게 되었다. 이는 동방 시원 경전인 『환단고기桓檀古記』를 통해서 문헌적으로 명백히 밝혀졌고, 20세기 후반 한민족의 주 활동 무대인 만리장성 밖 요서 지역에서 발굴된 홍산紅山 문명으로 인해 유적과 유물로도 입증되었다.
세운 공사로 펼쳐지는 역사의 대세
서구사회에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취해 인류의 이상 세계를 향한 ‘제3의 길’을 열어 가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선천 세상에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현재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성장을 목표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을 극대로 부추기고 있고, 이로 인한 모순과 갈등이 축적되어 세상을 분열과 대결의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온 인류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정의로운 이상 세계는 개벽 뒤에 열리는 후천 세상에서 비로소 건설되게 된다. 상제님께서는 장차 지구촌의 녹을 고르게 분배해 창생의 삶을 평등하게 하는 후천의 복록소福祿所 도수를 보셨다. 다만 당분간 자본주의의 녹줄을 서양에 두고서 세계를 먹여 살린다고 하셨다. 이후 인류에게 녹줄을 분배하는 복록 대권의 심장부 조직이 장차 개벽과 함께 복록수 도수에 따라 대한민국으로 넘어오게 되어 있다.
상제님은 하늘 땅이 만물 생명의 근원이요 만물을 만들어 내는 실제적인 조물주라 밝혀 주셨다. 천지는 만물이 비롯된 근원이요, 인간에게 모든 녹祿을 내려주는 존재가 바로 천지부모天地父母이다. 우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 공기와 자원까지 천지부모의 품에 있는 생명을 인간이 가져다 쓰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이 녹을 쓰고, 또 생산하고 공유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은 천지의 꿈과 대이상을 실현하는 존재이다. 천지의 뜻과 목적에 부합함으로써 다가오는 후천 가을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온 우주의 생명은 선천 상극相克 질서가 무너지고, 후천 상생相生의 질서로 거듭나 진정한 하나의 공동체로 태어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상생의 문명을 설계하신 상제님의 9년 천지공사를 제대로 들여다봄으로써 앞으로 후천 가을우주의 조화 문명, 상생의 통일 문명이 열리는 역사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운 공사의 기틀 : 오선위기五仙圍碁 바둑판과 세 차례 씨름판
상제님께서는 구원의 새 법방을 ‘판’의 개념으로 쉽게 말씀하셨다. ‘판’은 열린 공간으로서 ‘마당’이자,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으로 사건의 ‘바탕’이 된다.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온 선천 역사를 ‘판 안’이라고 한다면, ‘판밖’은 선천 세상에 매여 있지 않는 상제님 후천 가을 세상을 상징한다. 사전적 의미로도 ‘판밖’은 ‘일이 벌어진 자리 밖’을 뜻한다. 그래서 ‘판밖의 남모르는 법’(도전道典 2:134)은 선천의 한계를 넘어선, 창세 이래 이 천지에 등장한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후천의 새 진리 법방이다.
다섯 신선이 바둑을 형국五仙圍碁, 바둑판 도수
오선위기 도수에 따라 선천 역사의 ‘해원판’이 열려 천지의 모든 갈등과 증오와 원한의 살기가 세 차례의 바둑판(씨름판) 과정에서 모두 씻겨 나가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이는 대전쟁과 문명 이기의 비약적 발전으로 드러난다.
세 차례 씨름판 도수(전쟁 도수)
씨름은 우리 고유의 정서가 깃든 민속놀이이자 전통 무예의 일종으로, 상제님 재세 시 난장亂場이 서면 으레 씨름판이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난장은 정기적인 시장이 아닌 특수한 장으로, 지역 생산물이 집산되는 곳에서 열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방의 경기 부양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 열리는 수도 있었다. 여기에는 장사꾼뿐만 아니라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소비를 조장하였으며, 노름이나 싸움 등도 흔하게 행해졌다. 한편에서는 장이 서고 다른 한편에서는 씨름, 줄다리기, 윷놀이 등 온갖 민속 행사들이 함께 펼쳐지곤 했다.
이때 씨름판은 초반에 아이들이 겨루는 애기판과, 청년들이 겨루는 총각판을 거친 후 마지막 상씨름판에는 어른들이 겨루어 최종 승자를 결정지었다. 특히 이 상씨름은 ‘소[牛]’를 상품으로 걸고 최후의 일전을 벌였기에, ‘소걸이 씨름’이라고도 불렸다. 상제님께서는 이 고유한 풍속을 천지 공사에 끌어다 쓰셨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세운 공사의 애기판 씨름은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전개되었고, 총각판 씨름은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상씨름은 남쪽 상투쟁이와 북쪽 상투쟁이가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힘을 겨루는 한국전쟁과 앞으로 펼쳐질 제3차 세계대전으로 전개된다.
상제님께서 보신 전쟁 도수는 선천 세상에 쌓여 온 온갖 원과 한을 해소하는 과정이다. 상제님께서는 선천의 원한으로 인류가 진멸지경에 이른 상황을 전쟁으로 조율하심으로써 ‘큰 화를 작은 화로써 막아 다스리며’(도전道典 2:17) 단계적으로 원한의 살기를 해소하고자 하셨다. 전쟁 도수는 인류를 많이 건지기 위해 상제님께서 조율하신 최선의 전략인 것이다.
전쟁은 비극이다. 수많은 인명 피해와 물적 손실이 나오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창조를 위한 파괴 현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전쟁의 근본 원인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클라우제비츠Clausewitz 『전쟁론』의 경구처럼 전쟁은 최후의 정치 행위 수단으로도 쓰인다.
인류 문명사의 모든 원한과 고통, 모순과 비극을 일소一掃하는 최후의 결전 상씨름 과정이 지나면, 궁극적으로 전쟁의 역사를 끝막고 선천의 상극 질서가 정리되는 것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이는 남북 상씨름은 결과적으로 지구촌 동서양 문화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세계 상씨름이며, 천지 질서가 분열에서 통일로 돌아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천지 전쟁이며 개벽 전쟁이다. 지구촌 전 인류의 생사를 판가름하는 상씨름 전쟁을 제대로 인식하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삶의 향방은 물론 한반도의 갈등과 분단의 역사, 나아가 동서양 근현대사를 보는 안목이 달라진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오선위기 도수를 보실 때 “바둑을 마치고 판이 헤치면 판과 바둑은 주인에게 돌아가느니라.(도전道典 5:6)”라고 하신 이 ‘주인主人’이 상씨름 판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주인은 인류 시원 문명의 종주이자 후천 세상을 여는 주체 민족인 우리 한민족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뜻은 선천 역사를 종결짓고 후천 새 세상을 여는 도운의 참주인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즉 세운은 도운의 주인, 상제님 도통 문화의 진주眞主에 의해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8장에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제2절 애기판 씨름: 제1변 세운공사
일본을 내세워 서양 제국주의를 물리치심 : 러일전쟁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보신 20세기 초엽에는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약소국 침략이 절정에 이르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물론 태평양의 작은 섬까지도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고, 동북 간방의 조선도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이에 상제님께서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꺾고 꺼져 가는 동방의 빛을 훗날 다시 밝히기 위해 일본日本이라는 나라를 일꾼으로 내세웠다.
상제님은 1903년 10월에, 친일파로 몰려 순검대에게 쫓기고 있던 김병욱 성도를 통해 애기판 씨름 공사(도전道典 5:50)를 보시어 공사公事와 사사私事가 함께 끌러지게 하셨다.
한편 메이지 유신으로 급격한 근대화를 추진한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한 영국과 동맹을 맺어 극동에서 가장 우수한 해군력을 갖추게 되었다. 러시아는 영국과 영원한 맞수인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이에 맞섰다.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훈수를 한다.”는 상제님 말씀대로 오선위기 편 가르기가 시작된 것이다.
1895년 동학혁명군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전쟁의 결과로 얻었던 랴오둥반도遼東半島를 삼국간섭三國干涉(러시아⋅독일⋅프랑스)에 의해 빼앗기자 절치부심 군국주의로 나아갔다. 러시아와 일본은 한반도를 드나들며 산발적인 전투를 벌였고, 상제님께서 일러전쟁을 붙인다(도전道典 5:50)고 하신 후로 약 1년 반 동안, 일본과 러시아는 또 다른 두 씨름꾼인 영국과 프랑스의 훈수를 받으면서 싸움을 벌였다. 당시 대한제국은 ‘주인은 어느 편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한다.’고 하신 말씀대로 국외 중립을 선언하였다.
때를 벼르던 일본은 1904년 2월 8일, 마침내 선전포고 없이 기습적인 선제공격을 감행하여 러일전쟁이 발발하였다. 일본은 요동반도에 있는 여순항을 향해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고 진격해 결국 점령하였다. 여기에서 일본은 무조건 돌격하는 이른바 ‘반자이萬歲’ 돌격과 인명 경시의 전술을 내세웠다. 총병력 13만 명 중 절반 이상이 전사하였고, 장교는 10분의 1만 살아남았다. 이 외에도 한반도 전역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만주 등지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 정부는 동해에서 러시아 군함을 감시하기 위해 울릉도와 독도에 군사용 망루를 설치하였다. 1905년 2월 22일에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내용의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발표하였다. 울릉도에는 1904년 9월, 독도에는 1905년 8월에 망루를 세웠다. 이 전쟁의 분수령이 되는 대한해협 전투의 마지막 추격전이 독도 인근에서 끝나게 되어, 독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정국이 혼란한 러시아와 국력이 소진된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어 미국의 중재로 포츠머스강화조약을 체결해 전쟁을 매듭지었다. 당시 주일 미국 대사관 주재 무관이었던 아서 맥아더Arthur MacArthur는 러일전쟁을 참관한다. 이때 아들인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1880~1964)를 부관으로 데리고 있었다. 바로 우리가 아는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이다. 이렇게 장차 상씨름판의 훈수꾼이 될 미국이 애기판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2)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도 ‘무조건 돌격’을 외치다 무수한 사상자를 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전海戰의 흐름이 항공모함 위주의 전투였는데, 대형 전함 위주로 대응하다 패배했다.
일본인들은 대한해협 해전에서 천우신조로 불어온 동남풍(도전道典 5:53, 상제님께서 보신 ‘49일 동남풍 공사’)을 ‘가미가제神風’라 불렀다. 당시 연합 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鄉平八郎 제독의 참모로 참여한 아끼야마秋山 중장(당시 중좌, 중령급)은 발틱 함대가 대한해협을 항진하는 장면을 영몽靈夢으로 두 번이나 자세히 계시받음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다(아사노 키즈지로淺野和三郞, 『동룡冬龍』).
서양 대전쟁 기운의 조성과 약소민족 해방 도수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극동 지역을 지배하려던 꿈을 접고 발칸반도 쪽으로 눈을 돌렸고, 이후 유럽에서는 발칸반도에서 오랫동안 쟁점이 되어 온 복잡한 인종 문제와 식민지 쟁탈 문제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 같은 긴장 국면의 이면에는 상제님 천지공사에 따른 신도神道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었다. 유럽 제국의 침략 야욕을 풀어놓기 위해, 유럽 전역에 전운이 조성되게 공사를 보신 것이다. 즉 유럽은 내부 단속을 해야 했고, 이어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으로 국력을 많이 소진하게 된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이를 위해 한민족의 수호성신을 서양으로 보내셨다(도전道典 2:58). 그리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약소민족과 식민지 국가들은 자주 정신을 배양하고 근대화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었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그렇게 꿈꾸던 조선을 독점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고, 만주에 대한 주도권을 잡음으로써 대륙 침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러일전쟁 종전 직후 대한제국은 일본군의 강압에 의해 외교권을 빼앗겼다(1905 을사늑약). 이에 조선은 큰 충격에 휩싸였고, 민족의 정기가 극도로 쇠잔해져 갔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고종 황제의 시종무관이던 충정공 민영환閔泳煥의 순국殉國을 명부 공사로 처결하시어 자주독립을 향한 민족의 대동 단합이 이루어지도록 대세를 잡아 돌리셨다. 을사늑약 체결에 비분강개한 민영환이 할복 자결하자 피폐하던 민족정신은 자주독립을 향한 충정으로 혁신되어 을사 의병으로 민족의 혼 속에 불붙어 갔다. 대마도로 끌려간 면암 최익현의 순국(도전道典 5:139), 의암 손병희의 죽음(도전道典 6:123)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도전道典 5:365) 등도 모두 상제님의 명부 공사 처결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조선을 일본에 의탁하신 연유
여기서 우리는 조선을 일본에 의탁하신 상제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 봐야 한다.임진란 당시 조선에 와서 성공하지 못해 맺혔다는 일본 사람의 삼한三恨(도전道典 5:286)을 풀어 주시기 위해, 상제님께서는 #천지역군에게 닥칠 큰 화액을 직접 대속#하시는 공사를 보셨다. 1907년 정미년 1월 상제님께서 ‘#진주 도수眞主度數#’ 공사를 보시기 위해 고부 경찰서에 친히 들어가 일본 헌병에게 모진 고문과 갖은 모욕을 당하셨다. 상제님께서 뒤에 말씀하시길 “지난 임진 난리에 사명당이 일본에 가서 인피 삼백 장을 받아 오려 하였나니, 그때 일본 공주가 ‘나 먼저 벗기라.’ 하고 자결하였느니라. 그 죽은 혼령이 원귀가 되어 내가 죽은 뒤에 너희를 죽이려고 헌병을 이끌고 왔나니, 내가 해원시켜 그 도수를 때웠노라.”(도전道典 5:214)라고 하셨다. 일본 공주의 원혼이 400여 년 동안 천지에 맺혀 있다가, 강력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더불어 해원하려 하기 때문에, 서슬 시퍼런 제국주의의 기세에 살아남을 자가 적을 것을 아시고 #일본 공주를 해원#시키고 미리 액땜을 해 주신 상제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다. 진주 도수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제8장 도운 공사에서 다시 살펴볼 예정이다.
천상의 병마대권자 관운장과 제1차 세계대전
분개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후 34개국이 참여한 세계 대전쟁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일본도 뒤늦게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뒤 연합국 대열에 합류하였다.
애기판 씨름의 역사적 의의
전쟁이 끝나고 진행된 강화회의에서 미국의 윌슨Thomas W. Wilson 대통령이 제창한 14개 조항의 평화 원칙이 적용되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는 전쟁 후 발칸반도 및 동유럽의 패전국들이 식민지를 내놓고, 승리한 영국과 프랑스가 패전국의 식민지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윌슨의 선언은 패전국 영토에 귀속된 소수의 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오해한 우리나라에서는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났다(일본은 이때 승전국의 일원이었다). 이는 인도, 중국, 서남아시아 등지에서 일어난 반제국주의 운동의 효시였다.
유럽과 중동에서 일부 제국이 몰락하고 많은 약소국이 독립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은 동서양의 세력 균형을 이루는 첫 손길로 작용하였다. 영국 등 유럽 제국은 기세가 한풀 꺾이고, 오스만튀르크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었다. 독일 제국은 빌헬름 2세가 퇴위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섰고, 러시아는 공산 혁명으로 무너졌다. 반면 인권과 민주주의를 세계에 뿌리내린다는 ‘자유 이념’을 들고나온 미국은 군사 강국으로 자리를 잡았고, 일본도 많은 이익을 챙기며 신생 제국으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
애기판 씨름의 결과 동양 여러 나라는 구시대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훗날의 번영을 기약하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아울러 상제님의 ‘세계일가 통일정권 공사’에 따라 천상 조화정부가 지상에 발현되기 시작하였다. 전쟁 처리를 위해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면서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의 결과로 국제연맹國際聯盟(League of Nations, 1920년 42개 회원국으로 출범)이 192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창설되었다. 이로써 세계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기구가 설립되어 역사 속에 세계 통일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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