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B다시보기 | 상징으로 보는 여행 - 25회 이집트 문명의 건설자 람세스 2세, 26회 잃어버린 이집트의 역사

[STB하이라이트]
강사: 오동석 인문여행작가


●프로그램명 : 상징으로 보는 여행
●방송시간 : 30분 / 제작 : STB상생방송
●소 개 : 〈상징으로 보는 여행〉은 세계 여행 전문가 오동석 작가와 함께 세계 곳곳의 주요 유적과 유물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여행지와 보물들의 숨겨진 상징들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쉽고 흥미롭게 전달해 드리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입니다.

1. 전쟁을 즐기며, 장수한 람세스 2세



람세스 2세Ramesses II는 이집트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꼽히며, 신왕국의 제19왕조 3대 파라오로 람세스 대제(Ramesses the Great)라고도 부릅니다. 파라오가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 꼭 갖춰야 할 조건은 장수長壽 즉, 오래 사는 것입니다. 장수하면서 신전도 많이 남기고 문화적으로나 여러 치적을 많이 남겨야 하는데 람세스 2세가 그런 인물입니다. 람세스 대제는 30세에 등극을 해서 67년간 통치했으며, 96세에 삶을 마치게 되는데 전쟁을 매우 즐겼던 파라오였습니다.

이 지도는 이집트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문화는 파라오와 여러 신들을 위해 만드는 무덤과 신전이 중심이 된 문화입니다. 그리스인들도 이런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받아 신전을 많이 짓게 됩니다. 람세스 2세는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 ‘피-람세스Pi-Ramsses’(또는 페르라메수Per-Ramessu)라는 대규모의 도시도 만들었습니다. 이 그림은 룩소르Luxor에 있는 ‘람세세움’이라고 불리는 장제葬祭 신전입니다. 나일강 서쪽에 람세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만든 신전입니다.

2. ‘신들의 빛’이 존재하는 룩소르Luxor 신전



룩소르 신전은 이집트의 신전 중에 원형에 가깝게 가장 잘 보존된 신전으로 서기전 1400년경에 아멘호테프 3세가 나일강 동쪽 강변에 건립했으며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증축했습니다. 이집트의 신전은 모두 나일강을 통해 연결이 되어 있어 배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룩소르 신전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앞쪽에 오벨리스크Obelisk가 있고, 람세스 2세의 동상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현재 룩소르 신전의 모습입니다. 신전 앞에 오벨리스크가 1개밖에 없는데 이 1개는 프랑스 콩코드 광장에 있습니다. 이집트가 어려울 때 프랑스가 도와준 것에 감사하는 의미로 오벨리스크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룩소르 신전 앞에는 이렇게 3~5km 길이의 ‘스핑크스의 길’이 있는데 두 개의 신전을 연결하는 길입니다.
※오벨리스크(Obelisk): ‘신들의 빛’이라고도 불리며,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을 상징하는 돌로 된 사각 기둥을 말한다. 오벨리스크는 신단수神檀樹의 변형이다.


3. ‘신이 지상에 내려와 사는 곳’ 카르낙Karnak 신전



‘가장 완벽한 곳’이란 의미를 가진 카르낙 신전은 룩소르 신전의 북쪽에 있으며, 현존하는 이집트 신전 가운데 최대 규모로 축구장 26개 규모의 면적입니다. 카르낙 신전 안에는 200여 개의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100여 개 건축물 흔적만 남아 있는 엄청난 규모의 신전입니다. 여기도 다른 신전들과 같이 파라오들이 배를 타고 들어올 수 있는 신전입니다. 현장에 가 보면 기둥들이 빽빽하게 있어서 규모와 크기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르낙 신전은 ‘신이 지상에 내려와서 사는 곳’이라는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사진은 카르낙 신전에 있는 하트셉수트 여왕이 세운 오벨리스크입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은 카르낙 신전에 오벨리스크 2개를 세웠고, 투트모세 3세는 여기에 4개를 세웠습니다. 오벨리스크는 200톤 정도 되는데 기중기로도 들기 어려운 무게입니다.

4. 이집트 최고의 신전이라 불리는 아부심벨Abu Simbel 신전



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정복지 아부심벨에 지은 이집트 최고의 신전이라 불리는 신전입니다. 이집트 남부에 있는 신전으로 20m의 좌상들과 함께 입구에 람세스 조각상 4개가 놓여 있습니다. 아부심벨 신전에는 상징성이 많습니다. 신전 위에 보면 개코원숭이 조각이 나열되어 있는데 개코원숭이는 새벽빛을 받는 새벽신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집트는 동물들을 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어도 신으로 모시고 하마도, 독수리도, 코브라도, 고양이도 신으로 모십니다. 신으로 모시는 것은 경외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용맹함이나 영리함 때문에 모시기도 합니다.

신전 안에 들어가면 벽화가 경이롭습니다. 이 벽화는 가장 대표적인 벽화로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전쟁으로 유명한 카데쉬 전투(Battle of Kadesh)를 표현했습니다. 카데쉬 전투는 서기전 1274년경 시리아의 카데쉬 지역에서 람세스 2세와 이집트 신왕국의 팽창을 의식한 히타이트 간의 대규모 전투입니다.

당시 람세스 2세가 2,500여 명에 달하는 히타이트의 포위망을 뚫고 전세를 역전시킨 무용담으로 유명한 전투입니다. 람세스 2세가 전차에 올라 활을 쏘고 있는 장면은 카데쉬 전투를 표현한 벽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람세스 2세의 조각상은 이집트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5. 잃어버린 이집트의 역사



이집트는 고대 이집트를 지나고 나서 약 1,200년가량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이집트의 문자는 상형문자象形文字인데 이 상형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1,200년 동안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집트는 2,600년간 30개의 왕조와 295명의 파라오가 존재해 왔습니다. 고왕국과 중왕국 그리고 신왕국과 후기왕국으로 역사가 흘러가는데, 후기왕국을 끝으로 2,300년간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7세기경 아랍이 이집트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상형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랍이 지배하면서부터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지배하기 전까지 약 1,200년간 이집트의 역사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집트가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2,300년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후기왕국이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을 당했다가 그리스의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이 들어와서 이집트를 정복하고 이집트의 문화를 큰 변화 없이 계승해서 발전시킵니다. 그리고 그리스가 들어와서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 왕조가 들어서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신전을 많이 만들면서 이집트 문화를 발전시키지만 언어는 그리스어를 쓰게 합니다.

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는 동안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 황제 시기에 기독교를 공식 국교로 선포하면서 다신교 신앙을 금지시켰습니다. 신전은 유지되었으나 이집트의 종교는 완전히 금지되었습니다. 유스티아누스Justinian 황제 때에는 이집트의 법전을 만들기도 했지만 모든 다신교와 이집트 신전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 그리고 7세기경에 아랍이 이집트를 지배하면서 상형문자를 읽는 사람이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나폴레옹Napoléon 군대가 나일강 하구 쪽에서 작전을 수행하다가 이집트의 로제타Rosetta라고 하는 도시에서 멤피스 쪽에 있었던 신전의 비석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을 로제타석(Rosetta Stone)이라고 합니다. 이 비석은 인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발견이 됩니다.

영국 런던의 브리티시 박물관에 가면 이 비석을 갖다 놓고 역사적 가치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비석을 보면 글자 종류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제일 윗부분은 이집트의 오리지널 신성문자神聖文字인 상형문자象形文字이고, 가운데는 이집트의 민중들이 사용했던 민용문자民用文字로 되어 있으며, 아래쪽은 고대 그리스문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제타석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견이 된 이유는 아래쪽의 그리스어 내용을 기반으로 윗부분의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 로제타석의 비문을 완벽하게 해석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프랑스의 이집트학 연구가이자 언어 천재로 불린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çois Champollion이란 인물입니다.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에 처음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로제타석의 내용은 이집트인들이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 5세Ptolemy V 황제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기록으로 기원전 169년 전쯤 만들어진 비석이었습니다. 이 상형문자 해독을 계기로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이집트학(Egyptology)이 생겨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