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으로 보는 문화 이야기 | 임금님이 일월오봉도를 펼친 까닭은?
[한문화]
김덕기 / 본부도장
그동안 필자는 <예화로 배우는 우주변화의 원리>를 연재하며 동양의 역易 철학을 쉽게 풀어 쓰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적용 범위를 넓고 깊게 하다 보니 다소 어려운 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래의 취지를 살리고자 음양오행에 관한 다양한 예화를 좀 더 쉽고 자세히 설명하는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연재를 시작하며 역易 철학의 의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월오봉도에 담긴 뜻
조선 시대에 왕이 나와서 조회朝會를 하던 궁궐의 정전正殿에는 공통으로 배치된 것이 있었습니다. 임금이 앉는 어좌御座의 뒤편에 놓인 병풍屛風입니다.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 폭포, 그리고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를 그린 것으로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라고 부릅니다. 일월오봉도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직 조선에서만 발견됩니다. 현재는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 창덕궁의 인정전仁政殿, 창경궁의 명정전明政殿, 덕수궁의 중화전中和殿에 배설되어 있습니다.
일월오봉도는 국왕의 권위와 통치자가 다스리는 삼라만상을 상징합니다. 해와 달은 각각 왕과 왕비를, 다섯 개의 봉우리는 곤륜산崑崙山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월오봉도에 담긴 좀 더 깊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선 그림 속 사물들의 개수를 살펴봐야 합니다. 하늘에는 흰 달과 붉은 해가 두둥실 솟아 있고, 그 아래로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우뚝 서 있습니다. 산봉우리는 폭포수를 사이에 두고 가운데의 세 개와 바깥의 두 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땅에는 소나무가 좌우에 두 그루씩 서 있습니다. 산에서 힘차게 흘러나온 두 개의 폭포수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늘도 하나이고, 바다도 하나입니다.
동양의 역易 철학에서 1은 도道나 태극太極을 상징하고, 2는 음양陰陽을 상징합니다. 3은 삼원三元, 4는 사상四象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5는 오행五行, 6은 육기六氣를 상징합니다. 7은 칠정七政, 8은 팔괘八卦, 9는 구궁九宮, 10은 천간天干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일월오봉도는 삼라만상이 운동하는 ‘우주 변화의 원리’를 표현한 추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물이 하나에서 나와서 음양^오행으로 전개되었다가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대자연의 순환 법칙’을 드러낸 것입니다.
임금님이 국가를 다스리는 법法
국왕의 어좌 뒤편에 일월오봉도를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록 조선 시대에 임금님의 권한이 막강하다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국가를 경영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법에 의거해서 국가를 다스렸습니다.
조선은 개국과 더불어 법전 편찬에 착수하여 『경제육전經濟六典』을 제정하고 시행하였습니다. 하지만 미비하거나 현실과 모순된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7세 국왕 세조世祖는 즉위하자마자 통일 법전 편찬에 착수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大統領이 헌법憲法에 의거해서 국가와 국민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법전法典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합니다.
법은 국왕 또는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다스리는 통치 법도입니다. 그런데 불교의 교리를 법 자를 써서 불법佛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법法 자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 팔리어 ‘담마Dhamma’를 번역한 것입니다. 중국의 선禪 불교를 열었던 달마대사達磨大師(Bodhidharma, ?~528?)의 달마도 담마에서 따온 법명입니다. 불교에서 다르마는 ‘최고의 진리, 우주의 법칙, 도리, 실체, 모든 존재(일체법)’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법계法界(Dharma Dhatu)는 진리의 세계, 법륜法輪(Dharma Cakra)은 진리의 수레바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넓게 본다면, ‘법을 지키고 법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건 ‘진리에 따라 진리를 실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즉, ‘순천도順天道 종지리從地理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왕 또는 대통령이 법에 따라 국가를 경영한다.’는 건 ‘진리에 의거해서 국가를 통치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상징한 그림이 임금님 어좌 뒤에 배설한 일월오악도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의문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났나? 우주란 무엇인가?”
하지만 어릴 적, 상상의 나래를 펴게 했던 의문들은 이내 세월과 함께 묻혀 버리고 맙니다. 간혹 이를 풀어 보기 위해 신비의 문을 두드려 보지만 이내 공허한 메아리만 들려올 뿐입니다.
인류가 태초 이래로 찾아 왔던, 우주와 인생의 의혹을 풀어 줄 그 해답을 ‘진리眞理’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진리를 찾아 왔으며, 지금도 진리를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는 하나다.”, “진리는 살아 있다.” 등은 진리 탐구의 여정에서 한 번쯤 들어 보는 격언입니다. 그러나 막상 살아 있는 그 하나의 진리가 무엇인지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 그 하나의 진리란 무엇일까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가까이에 찾던 것이 있는데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라는 글자에 우리가 찾던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참 진眞’, ‘이치 리理’ 자로 ‘참된 이치’라는 뜻입니다.
‘리理’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을 도리道理라고 합니다. 신이 자연과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를 섭리攝理라고 합니다. 사물의 근본이 되는 이치를 원리原理라고 합니다. 이 밖에도 천리天理, 지리地理, 문리文理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울러서 밝혀 주는 참된 이치를 진리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란 ‘참된 우주의 변화 이치’를 의미합니다.
진리를 동양에서는 ‘도道’라고 불러 왔습니다. 그리스 문명권에서는 ‘로고스Logos’, 인도 문명권에서는 ‘다르마Dharma’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진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주·객을 동시에 간파하라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정치 드라마입니다. 미국 워싱턴 정계에서 벌어지는 탐욕과 권력, 야망, 비리 등을 다룬 정치 스릴러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카드로 지은 집이니 당연히 금방이라도 무너질 정도로 위태롭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이란 뜻의 ‘사상누각沙上樓閣’이 생각납니다.
강한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집을 만들려면 단단한 토대 위에 지어야 합니다. 지진이 나서 땅이 흔들리거나, 싱크홀Sinkhole로 땅이 꺼진다면 삶의 터전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인류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단한 토대 위에 기둥을 세워야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단단한 토대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중국의 기杞 나라에 하늘과 땅이 무너질 것을 걱정하여 침식을 전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어떤 사람이 불쌍히 여겨 “하늘은 두터운 기운이 쌓여 이루어졌으므로 꺼지지 않고, 땅은 흙이 두텁게 쌓여 이루어졌으므로 무너질 염려가 없다.”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제야 그는 근심을 풀고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기우杞憂’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입니다.
동양에서는 이처럼 하늘과 땅이 영원히 건재할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서당에서 아이들을 처음 가르칠 때 ‘하늘 천天, 땅 지地, 해 일日, 달 월月’로 시작하는 천자문을 가르친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근취저신近取諸身 원취저물遠取諸物’(『주역』 「계사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우주와 인간의 신비를 풀어 줄 진리를 가까이는 자신의 몸[주主]에서 찾고, 멀리는 대자연[객客]에서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말할 때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합니다. 해와 달의 운행이 결코 바뀐 적이 없다는 경험과 믿음에서 생겨난 속담입니다. 하루는 해의 운행을 따라 아침, 점심, 저녁, 밤이 반복됩니다. 1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반복됩니다. 식물은 봄에 태어나 여름에 성장하고, 가을에 열매를 맺어 겨울에 씨를 저장합니다. 사람은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거치며 일생을 살아갑니다. 이처럼 우주 만유는 동일한 우주 변화의 법칙에 따라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주 통치 법도, 생장염장
지금으로부터 4,300여 년 전(서기전 2333년), 환웅천황이 다스리던 배달국을 이어 단군조선(고조선)이 건국되었습니다. 단군왕검께서는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송화강 유역의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였습니다. 천자국 단군조선은 47명의 단군이 2,096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은 최고 통치자의 관직명으로, 제사장을 뜻하는 단군과 통치자를 뜻하는 왕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대의 제사장은 하늘과 소통하는 성인聖人이었습니다. 이는 단군조선이 성인정치가 이뤄진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였다는 걸 의미합니다. 제정일치의 전통은 후대에도 이어졌습니다.
‘제帝’ 자에는 임금 외에도 하나님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옥좌에서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상제上帝’라고 합니다. 상제는 동방 문명권에서 사용하던 하느님의 공식 호칭입니다. 상제님을 대행해서 지상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하제下帝(황제皇帝)’입니다. 황제가 제위에 오르면 대제사장이 되어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렸습니다. 상제님의 천명天命으로 정통성을 부여받고, 상제님을 대행해서 국가와 국민을 다스리고자 한 것입니다.
상제님은 삼계 우주를 통치하시고, 황제는 국가와 국민을 다스립니다. 상제님께서 천지인天地人 삼계 우주를 통치하시는 무상의 권능을 삼계대권三界大權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황제의 권력은 국가대권國家大權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제(대통령)가 진리인 법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듯, 상제님은 진리인 도道에 따라 삼계 우주를 주재하십니다. 도道는 상제님의 우주 통치 법도이고, 법法은 황제의 국가 통치 법도입니다.
그동안 우주의 변화는 진리에 따라 저절로 자연自然히 이루어진다고 여겨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의 실상에는 우주의 창조 원리인 진리를 맡아 다스리는 상제님이 계십니다. 상제님과 도의 관계를 밝힌 분이 중국 남송 시대에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주희朱熹, 1130~1200)입니다.
帝是理爲主(제시리위주)
제帝는 우주의 창조 원리인 리理를 맡아 다스리는 분이라. - 『주자어류』
제帝는 우주의 창조 원리인 리理를 맡아 다스리는 분이라. - 『주자어류』
동방에서는 우주 삼계[天^地^人]의 생명의 근원과 그 변화의 길을 일러 도道라 하고, 이 도의 ‘주재자 하느님’을 제帝 또는 상제上帝라 불러 오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1:4:1)
그리고 마침내 1871년, 동방의 이 땅에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께서는 당신님께서 우주를 주재하시는 통치 법도를 온 인류에게 밝혀 주셨습니다.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無爲以化라 하느니라. (도전道典 4:58:4)
대자연의 변화를 연구하는 역 철학
상제님의 우주 통치 법도, ‘생장염장生長斂藏’! 이것이 바로 인류가 그토록 찾아 왔던 진리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바로 진리의 실상을 밝혀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탐구할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음양오행의 법칙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하도河圖^낙서洛書와 이를 바탕으로 한 팔괘八卦^오운육기五運六氣 등입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운동법칙이란 우주의 변화법칙變化法則이며, 만물의 생사법칙生死法則이며, 정신의 생성법칙生成法則이므로 우주의 모든 변화가 이 법칙 밖에서 일어날 수는 없다. …… 그러나 이것은 어느 개인의 창작이 아니고 역대歷代 성철聖哲(동양東洋)들의 합심협작合心協作의 결정인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진리가 있으니 이것은 상대적相對的 진리가 아니고 절대적絶對的 진리이다. - 『우주 변화의 원리』 11쪽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古朝鮮」 조條를 보면, 환국 말에 환웅천황이 환인천제의 명을 받고 지상으로 내려올 때 종통의 상징으로 ‘천부天符와 인印, 세 개’를 받았다고 합니다. 1에서 10까지의 자연수로 구성된 『천부경天符經』은 인류가 우주의 변화 원리를 파악할 수 있도록 삼신상제님께서 내려주신 최초의 계시록입니다.
『천부경』을 근거로 역의 뿌리인 ‘환역桓易’이 등장하였습니다. 그 뒤 배달국의 태호복희씨께서 ‘하도河圖’를 계시받고 ‘복희팔괘伏羲八卦’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희역羲易’을 만들어 백성을 교화하였습니다. 단군조선의 단군왕검께서는 ‘낙서洛書’를 처음 그리시고,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이 9년 홍수를 다스릴 수 있도록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임금이 낙서를 낙수洛水에서 발견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하夏나라 때에는 간괘艮卦로 시작하는 ‘연산역連山易’이 등장하였습니다. 은殷나라 때에는 곤괘坤卦로 시작하는 ‘귀장역歸藏易(龜藏易)’이 있었다고 합니다. 건괘乾卦로 시작하는 『주역周易』은 ‘문왕팔괘’를 완성한 주周나라의 시조 문왕이 괘사卦辭를 짓고, 그의 아들 주공이 효사爻辭를 지으면서 집대성되었습니다. 공자께서는 만년에 『주역』을 좋아하여 죽간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위편삼절韋編三絶] 읽은 후에 「십익十翼」을 저술하였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우리나라에서 김일부金一夫 대성사가 『정역正易』을 완성하여 선천에서 후천으로 바뀌는 천지개벽의 이치를 밝혔습니다.
日月爲易(일월위역) - 『설문해자』
대자연의 변화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을 ‘역易 철학’이라고 합니다. 역易은 일日과 월月을 합해서 만든 글자로, ‘음(달)과 양(해)의 변화 원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 법칙인 ‘역의 원리’는 인간 삶의 바탕인 책력冊曆(달력)을 만드는 틀이 되었으며, 삶의 과정인 역사歷史로 드러났습니다. 역 철학은 동북아 문명의 핵核이자, 우주와 인간의 운행 법칙과 존재 목적을 밝혀 주는 신비 개발의 법방입니다.
천지의 모든 이치가 역易에 들어 있느니라. (도전道典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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