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로 문화읽기 | 바다를 표류하는 아파트와 가택신 - 집에 깃든 신과 사람의 우주적 동거
[칼럼]
작품 소개
이번 호에 소개할 작품은 2022년 9월 16일 공개된 이시다 히로야스石田祐康 감독의 신작 〈표류단지〉 (雨を告げる漂流団地, Drifting home ; 넷플릭스 2022)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와 옥상만 겨우 보이는 아파트 모습, 바다를 표류하는 아파트라는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아파트의 실제적인 ‘철거’와 추상적인 ‘추억’이라는 소재를 영리한 방식으로 구현해 내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작품이다.
지은 지 60년이 넘어 철거를 앞둔 낡은 아파트에 살던 초등학생 코스케와 나츠메는 본격적인 철거 전에 이사하고 서먹해진 채로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천방지축인 친구 타이시는 엄청난 방학 숙제 연구 자료를 준비했다며, 유즈루와 코스케에게 함께 아파트에 유령이 산다는 소문을 밝혀내자고 조른다.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코스케와 친구들은 유일하게 현관문이 열린 112동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404호를 찾는다.
404호 옷장에서 졸고 있던 나츠메를 발견하고, 나츠메는 정체불명의 친구 놋포를 소개해 주겠다며 옥상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6명의 친구가 모두 옥상에 모이게 되고, 서로에게 서운했던 코스케와 나츠메는 언쟁을 벌인다. 욱해진 감정으로 다투던 중 발을 헛디딘 나츠메가 건물 아래로 떨어지는데 원래는 죽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자 아파트는 순식간에 바다 위를 표류하고, 나츠메는 물에 떨어져 살아난다. 오래된 건물들이 표류하는 세계, 즉 다른 차원의 영적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6명의 아이들은 아파트와 하나로 연결돼 있는 놋포라는 정체불명의 아이가 나츠메를 구하기 위해 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극의 중반을 향해 가면서 3년 전 철거된 수영장, 6년 전 사라진 백화점부터 대관람차까지 새로운 건물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비밀에 가까워진다. 결말 부분에서 모든 오래된 건물들은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곳(일종의 해변)을 향해 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곳은 철거된 집과 그 집의 신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영화는 가택신家宅神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표류단지’라는 구체화한 공간을 매개체로 추억의 공간이라는 상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유년기의 순수함을 떠올리게 한다. 철거된 건물들과 건물에 깃든 수많은 영혼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감독의 상상력은 ‘공간과의 이별’을 성찰하게 만든다. 우리는 집, 학교, 회사, 공원처럼 매 순간 공간에 기대어 살아가지만 어른이 되면서 무언가를 잊고, 버리는 것에 익숙해진다.
놋포의 정체
부모가 부부 싸움으로 이혼한 나츠메는 가족의 정이 그리운 아이다. 나츠메는 같은 아파트의 코스케와 친하고 코스케의 할아버지도 친할아버지처럼 대해 준다. 코스케의 할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아파트가 낡아 철거하게 되자 나츠메는 추억과 그리움을 잊지 못해 철거 예정인 아파트에 자주 혼자 방문하는데 여기서 놋포라는 비밀스런 아이를 만나게 된다.
모두가 놋포의 정체를 궁금하게 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표류하는 아파트 옆으로 또 다른 폐건물이 지나가자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나츠메와 코스케가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 바닷속 깊은 곳에서 어떤 검은 존재가 잡아끈다. 이때 놋포가 이 둘을 구하는 과정에서 검은 존재는 놋포의 발목 부분을 잡아챈다. 놋포가 뿌리치고 탈출하지만, 아이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 놋포의 한쪽 발목 아래에 살이 녹아 버렸는데 뼈 부분이 철근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철근으로 된 발목을 본 아이들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코스케 : “놋포, 대체 네 정체는 뭐야?”
놋 포 : “난 이 아파트에 계속 있었어. 이 아파트가 생겼을 때부터 많은 사람이 이사 오고 아기가 태어나고 항상 아이들로 가득했지. 하지만 모두 떠났고... 난 그동안 여기에서 너희를 지켜봐 왔어. 난 이 아파트와 하나야. 내가 있을 곳은 여기뿐이거든. 너희와도 항상 함께였어. 너희가 이곳에서 진심으로 즐겁게 웃던 모습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지. 너희가 떠나고 나서 깨달았어. 난 너희의 미소가 너무 좋았던 거야. 그래서... 아마 이 바다도 나 혼자 와야 할 곳이었겠지. 내가 너희를 데려온 것 같아.”
놋 포 : “난 이 아파트에 계속 있었어. 이 아파트가 생겼을 때부터 많은 사람이 이사 오고 아기가 태어나고 항상 아이들로 가득했지. 하지만 모두 떠났고... 난 그동안 여기에서 너희를 지켜봐 왔어. 난 이 아파트와 하나야. 내가 있을 곳은 여기뿐이거든. 너희와도 항상 함께였어. 너희가 이곳에서 진심으로 즐겁게 웃던 모습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지. 너희가 떠나고 나서 깨달았어. 난 너희의 미소가 너무 좋았던 거야. 그래서... 아마 이 바다도 나 혼자 와야 할 곳이었겠지. 내가 너희를 데려온 것 같아.”
“난 이 아파트와 하나야.” 이 말에서 알 수 있듯 놋포는 가택신家宅神이었던 것이다. 철거 예정인 오래된 아파트에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나츠메를 놋포는 계속 지켜보았다. 그리고 건물이 철거되면 건물과 하나로서 가택신인 자신도 떠나야 했는데, 아이들의 미소와 나츠메의 슬픈 모습을 보고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택신에 대해 다룬 만화책 『신과 함께 이승 편』에서도 가택신의 중심인 성주신이 조왕신竈王神과 측신廁神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린 이 집이 지어질 때부터 여기 있었지. 집이 우리고 우리가 집이야.” 이 대사는 놋포가 “난 이 아파트와 하나야.”라고 말한 대사와 정확히 같은 말이다.
집이 철거되면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특히 한옥의 경우는 재료 자체가 자연에서 온 것이니 시간이 지나면 썩어서 다시 자연의 재료가 된다. 가택신 놋포의 몸에는 이미 나무뿌리가 있고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집에서 신이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상징으로 보인다.
영화에는 놋포 말고도 다른 가택신도 등장하는데 ‘야시마 놀이공원’ 관람차의 신이다. 이 신도 몸에 식물이 자라고 있다. 식물이 자란다는 것은 집이 인간 문명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진다고 하셨다. 실제 영화에서도 놋포가 떠나려고 하자 아파트 벽에 금이 가는 장면이 나온다. 비슷한 내용이 『신과 함께』에서도 나오는데 땅의 신인 지신의 경고 대사가 등장한다. “가택신이 집을 비우기 시작하면 가세가 기운다고. 조심해!”라는 말이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神이니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르고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지고,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되느니라.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62:4~6)
인간을 사랑하는 가택신들
60년 된 아파트의 신 놋포는 이 아파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서 죽는 모습을 보았다. 아파트에서 추억을 같이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울고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쉽게 떠나지 못했다. 영화 후반에 나오는 관람차의 신도 마찬가지다. 표류하는 아파트 단지는 점점 가라앉고 있는데 여기에는 놋포 때문에 떠나지 못한 나츠메가 있었다.
이때 다른 아이들은 표류하는 또 다른 건물 ‘야시마 놀이공원 관람차’를 타고 나츠메를 구하러 온다. 야시마 놀이공원도 철거 구역 내에 있는 건물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놋포와 같은 신이 있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레이나가 물에 빠질 위기에 처하자 이 관람차의 신이 손을 잡아 구해 준다. 레이나는 부잣집 아이이고 자존심도 강한데 특히 놀이공원을 좋아해서 이 관람차에 자주 왔었다.
“널 기억하고 있어. 아버지랑 자주 왔었지? 아빠 곁에서 응석만 부리던 네가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겠구나. 많이 놀러 와 주고 사랑해 줘서 고마워.”
- 관람차의 신
- 관람차의 신
112동 아파트의 신 놋포나 야시마 놀이공원 관람차의 신, 둘 다 똑같은 정서로 주인공들을 대한다. ‘난 너희의 미소가 너무 좋았던 거야.’ ‘많이 놀러 와 주고 사랑해 줘서 고마워.’ 이 대사들은 이들이 얼마나 부모와 같은 정서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보여 준다. 애틋하면서 이별을 슬퍼하고 있다.
표류하는 건물들이 도착한 곳은 가택신들의 영계
바다 위를 떠다니던 낡은 건물들이 정처 없이 표류하는 줄 알았는데 결말 부분에는 모두 한곳에 도착한다. 섬인지, 큰 대륙인지 모를 곳인데 신비로운 빛들이 군데군데 있다. 이곳의 땅에는 이미 내린 어린아이들이 보인다. 사람인 줄 알고 주인공들이 만나러 내려가려 하자 놋포는 안 된다고 한다.
“여기부터는 나만 갈 수 있는 곳이야. 나와 저 아이들은 똑같아. 여기는 우리가 돌아갈 곳이야. - 놋포
아마 여기서부터는 가택신들만 갈 수 있는 신들의 세계라는 뜻일 것이다. 천지에 가득 차 있는 신神은 그 존재 방식에 따라 크게 인격신人格神과 자연신自然神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인격신은 역사 속에서 인간으로 살다 간 신으로, 인간 형상을 하고 인간처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연신은 자연물의 정령精靈으로 목신木神, 바위신, 산신山神, 운신雲神, 수신水神 등과 같이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가택신은 자연신의 영역에 속한다.
가택신은 건물이 세워질 때 집과 함께 탄생해서 집이 허물어질 때 자연신의 본래 세계로 돌아간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60년간 아파트와 함께한 가택신 놋포가 여정을 마치고 가택신의 영계로 돌아가는 이야기로 해석이 가능하다.
사람의 인격신은 죽으면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에 있다는 삼도천三途川을 건넌다는 전설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 개념을 도입해 가택신이었던 자연신이 자신과 하나인 철거된 건물을 배처럼 타고 망망대해 같은 바다를 건너 가택신들의 저승에 도착하는 것을 묘사했다고 생각된다.
놋포는 여기서 이별을 고하면서, 빛나는 요정 같은 존재들이 인간 세계로 친구들을 데려다줄 것이라고 말한다. 빛의 존재들은 아파트를 밀어 올려 인간 세상으로 보내 준다. 영화 표류단지는 어린이들의 시각으로 집의 소중함과 추억 그리고 이별을 영적으로 그려 냈다. 이제 tvN 프리미엄 특강 쇼 〈어쩌다 어른〉(2017년)의 방송 내용과 만화책 『신과 함께』(저자 주호민)를 중심으로 가택신들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 보겠다.
한옥은 하나의 우주다
“우리 선조들은 한옥을 그냥 하나의 구조물,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사각형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한옥을 하나의 우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 우주 안에 우리가 신들과 함께 살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각각의 방에 그 방을 담당하는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으셨어요. 화장실에는 측신이 살고 있었고요. 부엌에는 조왕신, 그리고 재산을 불리도록 도와주는 업신이 있었고요. 또 집 전체를 주관하는 성주신이 존재했습니다. 한옥에는 경건함이 곁들여져 있다라는 것이죠.” -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tvN 〈어쩌다 어른〉 112회에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씨가 출연해 ‘한옥에 사는 즐거움’에 대해 방송했다. 양태오 씨는 배우 전지현의 신혼집을 디자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옥을 하나의 우주로 보고 그 우주 속에는 인간과 신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개념은 한국 문화에서 집을 소우주로 인식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집을 하나의 우주로 봤다는 것을 뒤집어 보면 우주도 하나의 집이라 할 수 있다. 우주를 방 하나로 말씀하신 분이 태상종도사님이시다.
내가 ‘일실건곤一室乾坤을 평화낙원平和樂園하리라.’는 포부를 밝힌 사실이 있다. 나는 이 지구를 한 집 안, 한 방 안으로 보았다. 흑인종이니 백인종이니 황인종이니 해서 인종이 다를 뿐이지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이지 않은가. 이 건곤을 방 하나처럼 보고서 ‘일실건곤을 평화낙원하리라, 상제님 진리로써 이 세상을 평화낙원으로 만들리라.’ 한 것이다. - 2009년 6월 24일, 의통군령 14호 태상종도사님 도훈
태상종도사님은 이 건곤천지를, 그리고 거대한 이 지구를 방 하나로 보셨다. 젊은 날 당신님의 배짱과 기국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건곤천지를 방 한 개로 보고 상제님 진리로써 평화낙원의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꿈은 이제 종도사님께서 이어받아 이루어 나가고 계신다. 한 집안에 부모님이 있고 자식이 있는 것처럼, 이 우주에도 천지부모 상제님 태모님이 계시고 인간과 신명이라는 자식이 있다. 거기에 더해서 집을 지키는 성주신과 가택신과 같은 자연신과 망량신의 세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가택신의 중심, 성주신
한옥을 건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재미있는 행사를 상량식上樑式이라고 한다. 상량식은 집에 큰 기둥을 세운 후 보를 얹고 마룻대를 올리는 고사이다.
기둥 위에 대목장大木匠분들이 올라가서 대들보 양쪽에 끈을 묶어서 당겨 내리시죠. 그럼 그게 마치 그네처럼 올라가면 되는데요. 그네 위에 그 한옥의 주인분을 태우고요. 덕담을 합니다. “이곳에서 좋은 일만 있어라, 자손들이 번창하길 바랍니다, 아프지 말고 무병장수해라.” 이런 덕담들을 나누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많은 음식을 준비하게 되죠. 동네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그 기둥 위에 대들보가 딱 안착이 될 때요. 마치 아기가 ‘응애’ 하고 태어나는 것처럼 성주신이 탄생한다고 해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존재가 태어나게 됩니다. - 양태오
상량식의 대들보에는 거북이와 용이 한자로 쓰여 있다. 화재에 취약한 한옥에 불이 나지 말라고 성주신에게 능력을 더 부여해 집을 보호하는 의미라고 한다.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단군왕검께서 어명을 내려 팽우彭虞에게 토지를 개간하게 하시고, 성조成造에게 궁실을 짓게 하시며, 신지臣智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셨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성조成造는 단군왕검 시대의 건축의 시조신으로 4천여 년 동안 신교의 한 갈래인 무속(샤머니즘)과 민간 신앙을 통해 ‘성조대군, 성주신(성조신成造神)’으로 받들어지고 집안의 수호신으로 모셔져 왔다.
상제님께서는 개벽공사의 시종을 김형렬의 집에서 보시면서 감나무 밑에 음식을 차리게 하시고 감나무를 잡고 ‘만수萬修’를 부르시며 성주풀이를 하셨다(도전道典 3:13). ‘성주풀이’는 조선 시대의 잡가로 성조가成造歌라고도 한다. 집터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성주신(성조신成造神)과 성주 부인에게 제를 지낼 때 부른다. 또한 집을 수호하는 성주신을 받아 내리는 신교의 풍속이다. 오늘날 새 집을 짓거나 이사한 뒤에 행하는 ‘집들이’는 ‘성주풀이’가 현대적으로 변형된 것이다.
성주신은 가신의 대표 신이고 대주는 가족의 대표이다. 이들 두 대표에 의하여 가운家運이 기본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대주를 성주라고도 부른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성주신은 집안에서 모시는 여러 가신家神들 중 우두머리로서 집 전체를 관장하는 신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이야기는 자연신인 가신의 대표 성주신과 인격신인 가족 대표 대주가 일대일로 세팅이 되어서 집안의 운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성주단지’라고 하여, 독이나 항아리·단지 안에 매년 10월 햅쌀을 담아서 집의 한 귀퉁이에 성주의 신체神體를 모시는 신앙이 있었다. 만화 『신과 함께』에서는 성주신이 성주단지 안에 사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철거 용역 인부들이 와서 성주단지를 부수자 성주신이 힘을 잃고 사라져 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조왕신
아직도 시골이나 고택에 가시면은 부엌에 아궁이 옆에요, 밥이나 물을 떠 놓는 것을 보실 수가 있을 거예요. 조왕신을 기리는 행위인데요. 불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 양태오
양태오 씨가 말한 내용은 조왕고사로, 부엌에 자리한 조왕신竈王神에게 지내는 가신 의례이다. 증산도 도전道典에서 조왕신은 부엌을 관장하는 화신火神으로 조왕대신, 부뚜막신이라고도 했다. 특히 살림살이를 맡아보는 신이라고 했다.
만화 『신과 함께』에서는 조왕신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주인의 수명이 다해 데리러 온 저승사자와 대결한다. 불쌍한 인간들을 위해서 가신들이 대신 싸워 준다는 설정이다. 이 대결에서 물과 불의 능력을 자유자재로 쓰는데 특히 불로 공격한다. 또 가난한 집이라 부엌이 따로 없어서 전기밥솥을 조왕신의 집으로 삼고, 밥을 하는데 밥이 맛있게 되도록 자신의 불기운 힘을 쏟는 장면이 나온다.
상제님은 일월은 조왕신이 주장이라고 하셨다. 일월은 물과 불기운으로 만물을 낳고 기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일월은 조왕신이 주장한다고 하신 것이다. 조왕신이란 부엌살림, 한 집안 살림을 맡은 신을 말한다. 천지 안에서 상제님 태모님의 도 살림을 맡은 것도 일월이다. 이것은 상제님의 도통맥, 종통의 정신을 이해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 2002년 9월 8일, 종도사님 도훈
“천지는 망량이 주장하고, 일월은 조왕이 주장하고, 성신은 칠성이 주장하느니라.” 하신 도전 4편 141장 말씀에서 자연의 모든 현상을 다스리는 숱한 자연신의 면모를 알 수 있다. 그중 일월은 조왕이 주장한다고 하셨는데 지구의 모든 생명체도 해와 달의 조화로 탄생하고 성장한다. 물과 불의 상징인 일월처럼 부엌이라는 공간은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기 위해 물과 불의 조화가 일어나는 곳이다.
상제님께서는 천하사가 “하루에 밥 세 때 벌이로 잘 먹고 살려는 일”이라고 하셨다. 가족들을 건강하게 잘 먹이고 행복하게 사는 모든 일이 부엌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조왕은 살림을 맡았다고 하는 것이다.
근데 조왕신은 굉장히 재밌는 신이에요.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다 기록을 한다고 해요. 이웃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많이 베풀었는지 부모에게 얼마나 효를 잘했는지, 자식을 잘 가르치고 있는지, 바람을 피우지는 않았는지, 이런 모든 것을 기록했다고 해요. 음력 12월 23일 날, 상제(님)에게 올라가서 이 모든 것을 보고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이 사람에게 벌을 내릴 것인지, 복을 내릴 것인지, 죽어서 지옥에 갈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부엌에서는 함부로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고, 욕을 하지도 않고 큰소리를 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자기가 은연중에 욕이 나왔다던지 했을 경우에는 부엌 아궁이에 엿을 발라 놨다고 해요. 왜 그랬을까요? 엿을 먹은 조왕신이 상제(님)에게 올라가서 입이 붙어 버리라고요. 혹은 조왕신이 엿이 발바닥에 달라붙어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붙잡는 역할로 엿을 발라 놓았다고 합니다. - 양태오
필자도 아주 어릴 적 시골 깡촌에 살 때 할머니가 솥에 엿을 붙여 놓은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냥 맛있는 걸 녹여 먹으려나 보다 그런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조왕신의 이런 문화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널리 퍼져 있다. 특히 베트남은 각 가정의 제단에 조상신과 함께 조왕신을 모셔 놓고 숭배한다고 한다. 집안의 모든 일을 기록해 하늘에 올라가 보고한다는 이야기도 동일하게 있다.
조왕신은 부엌에서 밥을 잘되게 해 주는 작은 신 정도가 아니라 이 모든 살림을 기록하고 상제님께 직접 보고를 올리는 높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부엌에서 함부로 행동하고 욕을 하고 삿된 일을 하는 것은 부정한 일이 될 수 있겠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고부 벌미면伐未面 괴동槐洞 손병욱孫秉旭의 집에 가시니 성도들이 많이 모였거늘 병욱이 아내를 시켜 점심을 짓게 하니 날이 매우 더우므로 병욱의 아내가 괴로워하며 혼자 불평을 하매 갑자기 와사증喎斜症이 일어나는지라. 황응종이 이를 보고 깜짝 놀라 상제님께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이는 불평하는 말을 하다가 조왕竈王에게 벌을 받은 것이니라.” 하시고 글을 써 주시며 병욱의 아내로 하여금 부엌에서 불사르며 사죄하게 하시니 곧 나으니라. (도전道典 4:103)
이 성구는 조왕신에게 신벌을 받는 내용이다. 손병욱 성도님의 아내가 더운 날 많은 사람들의 밥을 하느라 불평을 품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상제님이 드실 밥이니 조왕신이 벌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과 음식은 천지일월의 은혜와 농부의 노력과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결정체인데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하겠다.
측신
정월 28일에 해전리에 사는 조종남趙鍾南의 아내가 두통으로 고생하다가 급기야 온몸이 아파 사경에 이른지라. 김재윤이 이를 보고 태모님께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그 병은 측신廁神으로 인해 그렇다.” 하시며 전대윤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가서 처리하여라.” 하시므로 대윤이 명을 받고 즉시 가서 치성을 올리며 일심으로 기도하니 자연히 완치되니라. (도전道典 11:295)
측신廁神은 변소를 지키는 신이다. 민간 풍속에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지신밟기를 하는데, 이때 측간廁間을 돌면서 측신에게 “측간 속에 빠지면 백약이 소용없네. 아비부터 손자까지 빠지는 일이 없도록 비나이다, 비나이다, 측간지신께 비나이다.” 하고 덕담을 한다.
또 어떤 지방 풍속에는 측간에 빠지면 측신을 대접하기 위해 시루떡을 해 먹기도 한다. 시골에서는 거름에 쓰기 위해 변을 모아 두는데 어린이가 빠지면 위험할 정도로 깊었다. 필자도 어릴 적 재래식(푸세식) 변기에 여러 번 빠진 적이 있다. 그래서 이른바 똥독이 올라 고생을 하기도 했다.
만화 『신과 함께』에서는 똥독을 ‘동티’와 연결해 재밌게 표현한 장면이 나온다. 저승사자들이 집주인을 저승으로 데려가지 못하도록 하는 대결에서 측신이 저승사자의 얼굴을 할퀴는데 할퀸 부위가 퉁퉁 부어오른다. 측신이 이렇게 말한다.
“그게 바로 ‘동티’라는 거다. 거름독이지.”
동티는 일종의 신벌神罰 같은 개념이다. 상제님께서는 도전道典 4편 145장에서 신농씨와 강태공의 은혜를 사람들이 모르고 보답하지 않으면서 ‘동티막이’만 한다고 비판하셨다. 은혜에 보답은 안 하고 신벌을 면하기 위한 꼼수만 쓴다는 말씀이다. 동티 문화는 배은망덕背恩忘德에 대한 것으로 보은報恩 사상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동티가 나는 이유는 신체神體를 상징하는 물체나 귀신이 거주하는 것, 신이 관장하는 자연물과 인공물을 함부로 훼손 또는 침범하거나 적절한 절차에 따라서 다루지 않았을 때 일어난다. 이러한 경우, 신이 진노하여 신벌을 내리거나 정해진 종교적 질서를 깨뜨림으로써 그 자리에 사악한 잡귀가 침범하기 때문에 동티가 나게 된다는 것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동티)]
업신
업신業神은 일명 업위신業位神 또는 사창신司倉神으로 재물과 복록을 내려 주는 재신財神이다. 조선 시대에는 업신을 업왕신業王神이라 하였다. 집안의 재물과 가복家福을 관장하는 신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 부루단지扶婁壇地 풍속의 유래와 전계佺戒의 뜻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는 부루단지를 업신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재위 58년 무술(환기 5015, 신시개천 1715, 단기 151, BCE 2183)년에 부루扶婁 단군檀君께서 붕어하셨다. 이날 하늘에 일식日蝕이 있었고, 산짐승이 떼를 지어 산 위에서 울부짖고, 만백성이 목놓아 통곡하였다. 후에 백성들이 제사를 지낼 때, 집안에 자리를 정하여 제단을 설치하고 항아리에 곡식을 담아 제단 위에 올려 놓았는데, 이것을 부루단지扶婁壇地라 부르고, 업신業神으로 삼았다. 또한 전계佺戒라고도 칭하였는데, 전계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계율을 받아[전인수계全人受戒] 업주가리業主嘉利가 된다.’는 것으로, ‘사람과 그가 이루고자 하는 업業이 함께 온전해진다.’는 뜻이다. -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檀君世紀」
이 기록의 부루 단군은 초대 단군왕검님의 장남이시다. 부루 단군의 공덕을 기리며 부루단지 문화가 시작됐다는 내용이다. 부루단지扶婁壇地는 정월正月이 되면 질그릇 단지에 쌀을 담아, 뒤울안의 박달나무 말뚝 위에 올려놓고 짚으로 고깔을 만들어 씌우고 복을 비는 형식이다. 이렇게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이 간직해 온 민간 신앙의 뿌리는 대부분 단군왕검 시대에 비롯된 것이다.
『규원사화揆園史話』의 저자 북애자는 「단군기檀君紀」에서 “지금 인가에 부루단지라는 것이 있으니 울타리 아래 깨끗한 곳에 흙으로 단을 쌓아 단지에 벼를 담아서 단 위에 두고 짚을 엮어서 가린 후, 10월이 되면 반드시 햇곡식을 갈아 담는다. 이를 업주가리라고도 하는데, 이는 부루가 물을 다스리고 자리를 정하여 살게 한 큰 덕을 기려 치성을 드린다는 뜻이니, 이리하여 부루는 땅을 지키는 신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부루 단군은 농토를 정리하고 도량형을 통일하여 삼신 문화가 부흥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다. 즉 경제적인 풍요와 안정 속에서 신교에서 명하는 삼신상제님의 온전한 인간, 삼신과 한 몸이 되는 인간의 현실적 삶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업을 주관하여 가정에 복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업신 문화의 출발이 부루 단군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철융신
철융신은 지역에 따라 ‘노적지신’ 내지는 ‘천룡신’으로 불린다. 흔히 장독대를 지키며 그 맛을 유지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MBC에서 방송한 드라마 <아랑사또전>에는 아랑이 장독대에 앉아 있는 철융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랑 : “이봐 장독대 귀신. 그 장들 잘 지켜. 장맛은 장독대 귀신 하기 나름이다. 알지?”
만화 『신과 함께』에서는 오직 장맛에만 관심 있다면서도 결국 집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강인한 신의 캐릭터로 묘사된다. 호남 지방에서는 철융신을 모시기 위해 신체를 조성해 장독대 위 또는 옆에 단을 쌓아 그 위에 철융단지를 올려놓는다. 단지 안에는 쌀이나 벼를 넣고 백지로 봉한 다음,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고깔 형태의 주저리를 덮어 둔다.
철융신은 뒷마당의 토지신이자, 집 뒤에 위치한 뒷산에서 내려온 수호신이라고도 한다. 집 안에서는 앞마당을 관장하는 성주신과 비견되며, 집 밖에서는 마을의 입구를 수호하는 당산신과 비견된다. 때문에 보통 ‘집안의 당산’이라 하여 ‘당산철융’이란 말을 주로 사용한다.
예로부터 장독대가 있는 집의 뒷마당은 치성을 드리기에 중요한 장소이고, 특히 철융신이 거하는 장독대 위는 북두칠성에 기도를 하기 위한 제단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철융신을 다른 말로 칠성신으로 부르기도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칠성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이 우주의 북녘 하늘에 있습니다. 동방에서는 한 만 년 이전부터 ‘인간이 태어날 때 북녘 칠성에서 육신을 받아 가지고 온다.’고 믿었습니다. 옛날 신인들은 이것을 진리 상식으로 알고 있었어요. 또 예전에 아낙들도 장독대나 집안에 청수를 떠 놓고 합장하고 기도했습니다. 누구한테 기도한 거예요? 칠성하나님께 했습니다. 그게 원原하나님 문화, 칠성 신앙입니다. - 2019년 10월 27일, 『도전』 개벽 강해 종도사님 도훈
집의 의미
상제님께서는 도전 4편 63장에서 앉은뱅이를 고쳐 주실 때 김형렬 성도에게 외우게 하신 주문이 있는데 이 주문이 예고신주曳鼓神呪, 도로주道路呪라고도 부르는 지신주地神呪이다. 태모님은 지신주를 읽으면 가택을 수호하는 신이 안정을 찾는다고 하셨다. 상제님께서는 지신주를 읽혀 앉은뱅이에게 땅을 걷게 해 병을 낫게 하셨다. 자연신을 안정케 하여 인간을 고쳤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가?
曳鼓神 曳彭神 石蘭神
東西南北 中央神將 造化造化云 吾命令 吽
(도전道典 4:63:6)
지신주地神呪는 각 지방의 가택家宅을 수호하는 신명을 안정케 하는 주문이라. (도전道典 11:180:9)
東西南北 中央神將 造化造化云 吾命令 吽
(도전道典 4:63:6)
지신주地神呪는 각 지방의 가택家宅을 수호하는 신명을 안정케 하는 주문이라. (도전道典 11:180:9)
본래 천지자연을 뜻하는 ‘우주宇宙’란 집 우宇 자, 집 주宙 자로 인간과 만물을 둘러싼 시공간 전체를 가리키는데 글자 뜻 그대로 집이란 뜻이다. 집의 사전적 의미는 ‘벽과 지붕이 있어 바깥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곳’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집에 대한 느낌은 단순한 물리적 의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태어나 처음 가족을 만나는 곳,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장소, 추억을 함께하는 주체. 이렇듯 집은 우리의 기억과 정서에 농밀하게 연결된 소중한 공간이자, 고단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삶의 터전이다.
영화 표류단지는 아늑한 가정으로서의 집,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의 정서와 이별의 슬픔 그리고 어린이들의 성장을 보여 준다. 가택신들과 부모 형제 인간 가족이 함께 사는 하나의 작은 우주로서의 집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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