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을 해석해서 세계 보편 철학으로 공표한 대작 『정신철학통편』
[이 책만은 꼭]
격동의 20세기, 전 세계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전 세계에 세력을 펼치며 동방을 점령하는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유일하게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하였지만, 배은망덕하게도 스승의 나라인 조선을 향해 침략의 독니를 드러내던 시기였다.
거의 동시대에 유학자 출신으로서 중화민국의 장상將相과 유럽의 외교관들에게 도를 전수하며, 공자나 맹자보다 더한 존경을 받은 도사道士가 있었다. 지금까지 그 실체가 전해지지 않은 서우曙宇 전병훈全秉薰으로, 전 세계에 한국 철학의 우수성을 알린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을 저술하였다. 이는 한국 선가 역사상 영원히 기억될 대작으로, 천부경에 대한 해석이 첫머리에 담겨 있다. 글이 난해해서 읽기 어려운데, 발간 100주년을 맞아 20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임채우 교수에 의해 완역본이 발간되었다. 우선 이 책의 저자에 대한 약전과 책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지은이 소개
●서우曙宇 전병훈全秉薰(1857~1927) 약전略傳 1 - 국내
이 책의 편찬자인 전병훈은 조선 철종 8년인 1857년 정사년 7월 6일 자시子時에 평안동도 삼등현 지금의 평안남도 강동군에 해당되는 학루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정선旌善이고, 자는 서우曙宇인데 이는 ‘우주 안의 새로 열리는 서광(宇內之新開曙光)’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호는 성암成菴, 취당醉堂 혹은 현빈도인玄牝道人이었다. 그의 생애는 중국 망명을 계기로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반부는 출생해서 50세 되던 1907년까지 유학자로 출사出仕하던 시기이다. 후반부는 상해로 망명을 떠나 1927년 70세 일기로 북경에서 세상을 떠난 중국에서의 활동기이다.
전병훈은 조선 시대 차별을 당하던 평안도 출신으로 어려서는 병이 많았고 24세 때에는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그러나 10세부터 평안북도 태천에 가서 당시 명유名儒인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문인인 운암雲菴 박문일朴文一(1822~1892)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화서학파의 여러 인물들과 교분이 두터웠고, 자주 서울에 출입하면서 흥선대원군과 독대하며 국사를 건정했다고 한다. 조정에서 관직으로 불렀으나 거부했으며 권문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고 하니, 매우 기개 있는 학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를 만난 위정척사론자였던 유중교柳重敎(1832~1893)는 편지에서 그를 이렇게 평했다.
서주西州의 한 선비가 찾아와 기다리다가 제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의 성명은 전병훈이고 나이는 올해 만 27세(갑신, 1884년 9월)인데 눈썹과 이마가 시원하고 빛나며 뜻과 기운이 구차하지 않아, 장래를 기대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전 군은 일찍이 조정의 초빙을 거부한 태천泰川의 학자 박문일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으니 박문일이 매우 훌륭하게 가르쳤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올해 박문일의 서재에 머무는 자가 백여 명이라 하니, 한 지방의 원기元氣를 맡길 만한 곳이 있음을 기뻐할 만합니다.
또한 1918년 천부경을 전병훈에게 전한 우국지사 윤효정(1858~1939)은 당시 평안도 관찰사 민병석이 그를 만나 보고는 정사를 게을리할 정도로 전병훈의 인품에 반했다는 증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그를 평했다.
백발이 도로 검어지며, 불그스레한 동안童顔이 씩씩한 40대 장년처럼 보였다. 담론이 뛰어나고 말투가 호방하면서 시원스러웠다. 인자한 덕이 안에서부터 밖으로 우러난 당대의 사표師表이자, 천지를 좌우하는 방략과 연단鍊丹을 이루는 선술仙術을 지닌 도가로서, 그의 문하에는 중국의 72명의 장상들이 즐비했고 유럽에서 온 외교관들도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조선 사람으로서 이런 대우를 받은 이는 최치원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가 35세 되던 1892년에 의금부 도사를 제수받은 것은 당시 평안도 감사인 민병석의 특별 추천이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사람을 끄는 그의 뛰어난 학식과 웅걸한 인품은 국내뿐 아니라, 중국에 망명해서도 여러 인사들과 깊은 교분을 쌓으면서 활약할 수 있었던 비결이 되었다.
그는 당시 시국 문제에 대해서도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어, 어지러운 국정을 통탄하면서 고종에게 상소를 올렸다. 을미사변이 일어난 직후 김홍집 내각으로부터 관직을 권유받았으나, 국모를 시해한 역적을 용서할 수 없으며 외세에 의존한 정변이 대의를 어겼다는 이유로 당당하게 사양하였다.
1898년 광무 2년에는 사회 개혁을 위해 역대 명신들의 상소문을 발췌한 『백선미근百選美芹』을 올리는 등 여러 개혁안을 상소하였다. 1899년 42세에 중추원 의관이 되었고, 전남과 황해 지역의 양전量田을 지휘 감독하는 균전사로 파견되었다. 이후 을사늑약乙巳勒約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독립을 지킬 것을 상소하다가 좌천되었다. 50세 되던 1907년 일제의 압력으로 광무제가 퇴위하자, 그도 관직을 사임하고 일본의 교육계를 유람한 뒤 혈혈단신 중국 망명길에 올랐다.
●서우曙宇 전병훈全秉薰(1857~1927) 약전略傳 2 - 중국
1908년 2월 남경에 도착한 전병훈은 중국 고관들의 예우로 어렵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통제사 서소정徐紹楨과 양광총독兩廣總督 장인준張人駿 등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 후 상해 지역에 독립운동의 거점을 만들기 위해 김규홍과 동행하기도 하였다.그러다 1910년 3월 도교의 명산인 나부산에 있는 전진교全眞敎 용문파龍文派의 충허관沖虛觀을 방문하였다가 우연히 한 도사를 만났다. 그는 고공섬古空蟾이란 도사로 80세 고령인데 백발이 흑발로 변하는 이적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 전병훈은 고공섬으로부터 현관타좌식을 습득하고, 『도장道藏』을 연구하면서 수련하여 환갑의 나이에 정신이 현관玄關으로 응결되는 도를 체득하게 된다.
이런 수련 체험을 중심으로 북경 한복판에 정신철학사精神哲學社를 건립하고 우남전于藍田, 서변선유사西邊宣諭使 정몽찰丁夢刹, 육군중장인 강수기江壽琪 등을 제자로 삼았다. 이어 『정신철학통편』을 짓게 되는데, 책머리에 엄복嚴復이나 강유위康有爲 등 당대 중국 사상계의 원로들과 한림 출신 명사들이 논평을 싣고 있음을 볼 때 전병훈의 활동 영역과 비중을 엿볼 수 있다.
『정신철학통편』은 도교뿐 아니라 서양 사상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했으며, 동서고금의 철학 사상을 집대성해서 자신이 체득한 도를 정신철학이라고 명명한 사상적 결집체이다.
전병훈의 사상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바로 천부경天符經 사상으로 1919년 『정신철학통편』을 인쇄하기 직전 윤효정으로부터 천부경을 전달받은 뒤 1년여의 연구 끝에 천부경 주석을 맨 앞에 내세우게 되었다. 이후 천부경을 연구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독립지사들을 도우며 조국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고 고국의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돕다가, 1927년 9월 14일 70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그의 교유 관계를 보면 개화사상가나 서양 사상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 많았다. 이로 볼 때 그는 당시 보수적인 유림들처럼 복고적 전통주의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분명히 인식하였으며, 입헌 공화정을 통해 조선의 독립과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기개 있는 유학자 출신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고, 유불선 삼도를 회통한 기반 위에 서구 사상까지 깊이 연구 종합하였다. 여기에 궁극적으로 천부경을 융합한 사상가이자, 실제 자신이 수행을 하여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도사道士이기도 하였다.
역자 소개 - 임채우
충남 부여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이고 북경대 연수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현 국제뇌교육대학원 교수이다. 주역과 도교 철학과 한국 신선 사상을 전공한 전문 학자로, 20년에 걸쳐 책임지고 『정신철학통편』 전편을 해제, 번역하고 꼼꼼하게 주석을 붙였다.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겸손의 말을 전하며,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우리 고유의 천부경을 얻어 세계 통일 철학으로 승화시킨 정신을 전하는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하였다.
서지書誌 정보
이 책은 1918~1919년 사이에 탈고된 것으로 보인다. 1918년 11월까지 전체가 탈고된 다음, 운초 계연수 선생으로부터 『단군천부경檀君天符經』이 입수되자 이를 주석하여 권1 『정신철학통편』의 앞머리에 「단군천부경주해」를 포함시키고, 이 주해에 따라 본문의 설명을 수정, 보완하여 1919년 11월에 완성하였다. 속 표제는 『정신심리도덕정치철학통편精神心理道德政治哲學通編』으로 되어 있다. 1983년 서울 명문당明文堂에서 합책하여 영인, 간행되었다.
원문에서 권수卷數나 장 제목이 다른 부분이 있는데, 이는 1918년 출판을 위해 조판하다가 1919년 천부경 부분을 앞에 추가해 보완하면서 순서에 착간이 발생하였다. 이 점에 유의해서 역자는 원서의 내용을 살리면서 목차 순서는 체계적으로 통일시켜서 번역했다. 완역본은 제1권 정신철학 10장, 제2권 심리철학 15장, 제3권 도덕철학 9장 그리고 제4권 정치철학 37장 총 71장과 해제, 범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자 임채우 교수는 20년 전 재단법인 솔벗에 전병훈 선생의 『정신철학통편』 번역 프로젝트 사업을 신청하여 2002년 한국학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20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초판 발행 100주년을 기해 발간하게 되었다. 『정신철학통편』은 글이 난해해서 많은 연구자들이 통독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오독誤讀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여러 어려움 끝에 완역을 일궈 냈고, 이어 올해 하반기에는 전병훈의 또 다른 저서와 글들이 전병훈 전집 하권으로 간행될 예정이다.
이 책을 통해 본 천부경 전수 과정
이 책은 인류 시원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의 입수 경위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다. 그동안 구전으로 또는 다른 기록으로 전해져 온 천부경에 대해서 전병훈 선생은 구체적으로 계연수라는 도인을 통해 얻었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해당 쪽을 살펴보면 이렇다.
동방의 어진 선진仙眞 최치원 선생은 “단군천부경 81자를 신지神志의 전서篆書로 옛 비석에서 보고서 그 글자를 해득해서 백산白山에 공경히 새겼다.”고 말씀하셨다. .... 이 천부경은 지난 정사년 1917년에 처음으로 한국의 서쪽 영변군 백산에서 출현했는데, 계연수桂延壽라는 한 도인이 백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산속까지 들어갔다가, 석벽에서 이 글자를 발견하고 베꼈다고 한다.
(단군천부경 주해<주해와 서문> 89쪽)
(단군천부경 주해<주해와 서문> 89쪽)
계연수桂延壽! 이분은 누구신가? 아마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읽어 보신 분은 알 것이다. 평안도 선천 출신이며 해학 이기李沂 선생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 1920년 경신년 57세 때, 조선독립군으로 위장한 밀정 감영극의 덫에 걸려 무참히 살해당했다.
계연수 선생은 자신의 집안에 보관해 오던 책과 지인들로부터 구한 책을 한 권으로 엮어 편찬하니 바로 『환단고기』이다. 계연수 선생은 일본 제국의 흉포한 야욕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기고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던 시기, 인류의 창세사와 한민족의 9천 년 국통맥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국사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전병훈은 본서를 편찬하고 막 인쇄에 부치려고 하던 즈음에 노유老儒 윤효정이 와서 (천부경을) 주었다고 하면서 참으로 하늘이 주신 신기한 일이라고 하였다(誠天賜之神異 - 단군천부경 주해<주해와 서문> 90쪽).
책의 구성과 내용 살펴보기
이 책은 도교를 중심으로 유교와 불교를 종합하고 있다. 여기에 서양의 철학 및 정치·윤리·사상 등을 망라하는 방대한 구성 체계를 갖고 있다. 특히 저자는 당시에 전통적인 지식인들이 접하기 어려웠던 서양 철학과 정치·윤리·사상 등에도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던 매우 선진적인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의 사상을 집대성한 방대한 내용과 체계를 지니고 있으나, 핵심은 수행을 바탕으로 한 ‘정신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정신철학은 도교 사상을 기반으로 동서 사상을 모두 포섭해서 궁극의 대동 세계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그 방법으로 정신 수련을 통해 인간 및 사회 구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시원 문화 경전인 천부경을 만났을 때, 크게 기뻐하여 ‘하늘에 계신 성조 단군께서 감응하여 특별히 도와주신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와 함께 우리 대한이 천지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신성하며 문명한 나라임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본서 94쪽 참조).
이는 매 편 앞에 늘 한국인(韓人) 전병훈이란 서명을 사용하는 데서 알 수 있다. 그는 곳곳마다 한국 철학의 보편성과 더불어 탁월성을 언급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문명이 중국과 동등하게 전개되었다고 하면서, 학문에 있어서는 오히려 조선이 중국을 능가했다고 한다. 곳곳에서 한국 유림과 선현들을 소개하면서, 한국 유학의 뛰어난 점을 중국과 비교하면서 언급하고 있다.
특히 천부경은 유교의 성인뿐 아니라 도교의 신선까지 함께 이루는 요결을 담고 있는 최고의 경전, 성경聖經으로 존숭하고 있다. 그래서 천부경을 근거와 원리로 삼아서, 동서고금의 철학을 종합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본다면 전병훈은 천부경을 바탕으로 하여 일반 도교에서 지향하는 개인적인 장생불사를 넘어, 정신·심리·도덕·정치·철학 등 철학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세계 구원의 보편 철학의 모습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칸트의 영구 평화론에 영향을 받아 세계통일정부를 구상하기도 하였다(본서 681쪽에 세계 통일공화정부 헌법이 있다).
제1권 정신철학 - 천부경 주해를 중심으로
천부경에 대해서 저자는 다음처럼 그 소회를 밝혔다.
오직 이 천부경만이 천인天人을 포괄하고 성인을 겸한[兼聖] 도를 다했으니, 확실히 우리 단군성조께서 정신을 담아 전한 진전眞傳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글의 뜻이 비교할 수 없이 깊고 정미로와서 참으로 알기 어려웠는데, 며칠을 깊이 생각하다가 하루아침에 활연히 깨닫게 되었다. 아! 어찌 이렇게 지극히 신묘하면서도 성스러움을 겸할 수 있단 말인가? 4,252년 전 10월 3일 신인神人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오자 백성들이 임금으로 모셨으니, 참으로 민주주의의 기틀을 열었다고 하겠다. 이분이 단군으로 동방 한국을 창립하신 군사君師로서, 장생의 지극한 덕으로 나라를 다스린 신비한 교화와 성스런 덕이 끝없이 이어졌다. ······ 제가 감히 천부경을 주해해서 정신학의 첫 편을 삼았는데, 참으로 온 세상 사람들을 신선이 되도록 제도해서 세상이 극락에 오르게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기필코 여기에 있으니, 그런즉 이 책은 세계가 한 몸이 되고 지구가 한 집이 되는 천서가 아니겠는가? ······ 하늘은 장차 이 글로써 만세萬世를 고루 교화할 것이 틀림없다. 동서고금에서 서적을 다 구해 본다고 해도 이런 글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경이 마침 지금 내게 찾아왔고 나는 이를 공경히 받아 펴냄으로써 세상의 동포에게 주게 되었다. (본서 91쪽)
정신철학 편은 도교 사상을 토대로 삼고 있는데, 자신의 도교 수련 체험을 기초해서 도교 수련법과 도장道藏 연구를 통한 도교 사상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는 도교의 정기신精氣神 이론을 바탕으로 여기에 유가 불가 및 서양 철학 등을 두루 인용하면서, 내단內丹 수련을 통하여 세상을 제도하는 근본으로서의 정신 수양을 제시했다.
전병훈은 우리 민족의 천부경이 전 인류를 신선으로 되게 하고 온 세상을 극락으로 바꾸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보았다. 이는 개인의 장생불사만을 목표로 하는 중국 도교는 소승小乘이라고 한다면, 인류 구원을 도모하는 우리 한국 선도는 대승적大乘的인 대도라고 보았다.
제2권 심리철학에서 동서 사상을 비교하다
첫 편인 정신철학은 도교를 중심으로 기술되었지만, 다른 편은 유불도와 서양 철학을 종합해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는 심리란 원래 하늘에 근원한 것으로, 정신이 곧 심리이면서 도라고 밝혔다. 정신과 심리는 나누어질 수 없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정신이 수양하는 내공內功에만 관련되는 것이라면, 심리는 내외를 통합한 것으로 초월적 성진聖眞과 세속적 인사, 즉 인간의 일상적 정신 활동을 통칭하는 개념이라고 했다(229쪽). 그래서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줄여서 마음을 보존하고 성품을 기르며 하늘을 섬기도록 하는 것이 심리철학이라고 보았다.
먼저 유교의 심리철학을 강조하였다. 공자의 심법의 요지는 ‘하늘의 도심道心인 인仁에 근원해서 마음이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고 자기의 사욕을 이겨 내는 것이며, 홀로 삼가는 신독愼獨과 극기복례克己復禮에 이르는 유가의 심학은 서양의 심리학이 미칠 수 없는 심법의 요령을 제시했다고 평가하였다. 이어 도교와 불교의 심성론을 언급하고 근세 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인용하여 상호 비교하면서 그 공통점을 언급하였다.
특히 서양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대뇌, 소뇌, 연수延髓 등의 척수로 연결되는 신경 계통이 바로 정신 활동의 중앙 기관이자 심리의 중심이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근세의 유물론과 뉴턴의 만유인력 및 벤저민 프랭클린의 전력 시험과 같은 과학을 통해 동양의 본체 개념인 태극太極의 동력 에네르기(에너지)를 증명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유도불儒道佛과 서양 철학의 장단점을 종합 지양해야 한다고 보았다는 특징이 있다.
제3권 도덕철학
도덕철학에서는 동서고금의 철학 사상이 모두 도덕을 강구하며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주로 유교의 도덕철학적 시각에서 비평을 진행하였다. 유교는 주역-서경-주공-공자-주자로 도덕철학이 발전했다고 보았다. 도가에서는 순박함으로 돌아가서 화합의 정치를 이루는 도를 제시한 노자의 도덕 개념을 강조하였다. 여순양(여동빈呂東賓)과 구장춘邱長春 같은 경우는 진인이 음덕을 행해서 도덕으로 세상을 구제하는 도학으로 진화되었다고 했다.
도를 맺고 덕을 갖춘 것보다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없다. 도덕은 하늘에 근원한다. 마음속에 존재하는 정신과 심리가 밖으로 발하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해 나가서 지선至善의 경지에까지 이른 것이 바로 대도이고 정덕正德이다. 그러나 마음이 공정한 천리에 말미암지 않고 사사로운 인욕人欲에 얽히게 된다면, 공리功利의 길에 빠진 것이지 이른바 하늘에 근원한 도덕이 아니다.
우리 동아시아 성현들의 경전을 보면 도덕책이 아닌 것이 없으나, 각자 만 가지로 흩어져 있어서 요령을 간파하기 어렵다. 그러니 새로 등장한 서구 과학의 학자임에랴! 또한 서구에서 새로 등장한 도덕 이론들을 참고해 보면 플라톤, 칸트 등 여러 철인들의 뜻에 배치될 뿐 아니라, 이기利己, 이타주의로 도덕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사사로운 공리功利에 매인 사견으로서 함께 논변하기에 부족하다. ······ 이에 내가 부득이 이 글을 편찬하는 까닭은, 세계가 통일되어 대동大同 정치가 이뤄지는 세상, 하늘을 본받아 도를 행하는 영웅과 신선, 성인께서 다스리는 천지에서 시원하게 혁신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니, 아! 반드시 그날이 올 것이다.
(351쪽 ~ 352쪽 도덕철학 서언에서 살펴본 도덕의 정의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도덕의 개념에 대한 부분과 당시 주목을 끌었던 서양 제국주의의 우승열패와 공리, 무력에 기반을 둔 논의를 비판하는 부분)
우리 동아시아 성현들의 경전을 보면 도덕책이 아닌 것이 없으나, 각자 만 가지로 흩어져 있어서 요령을 간파하기 어렵다. 그러니 새로 등장한 서구 과학의 학자임에랴! 또한 서구에서 새로 등장한 도덕 이론들을 참고해 보면 플라톤, 칸트 등 여러 철인들의 뜻에 배치될 뿐 아니라, 이기利己, 이타주의로 도덕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사사로운 공리功利에 매인 사견으로서 함께 논변하기에 부족하다. ······ 이에 내가 부득이 이 글을 편찬하는 까닭은, 세계가 통일되어 대동大同 정치가 이뤄지는 세상, 하늘을 본받아 도를 행하는 영웅과 신선, 성인께서 다스리는 천지에서 시원하게 혁신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니, 아! 반드시 그날이 올 것이다.
(351쪽 ~ 352쪽 도덕철학 서언에서 살펴본 도덕의 정의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도덕의 개념에 대한 부분과 당시 주목을 끌었던 서양 제국주의의 우승열패와 공리, 무력에 기반을 둔 논의를 비판하는 부분)
저자는 서양 철학자 중에서도 칸트를 성인으로 존경하면서 서양 도덕학의 최고 경지라고 극찬하였으나, 다만 현관玄關을 통해 진인이 되는 오묘한 이치는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단군을 비롯해서 동양에서 11명, 소크라테스를 비롯해서 서양에서 6명을 지목해서 총 열일곱 분을 성인으로 논하였다.
특히 우리나라는 도덕철학이 대단히 융성하였다고 하면서 단군으로부터 조선 조광조까지 5단계로 진화했다고 나누었다. 그래서 이 편에서 한국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앞으로 온 세계가 대동을 이루는 날에는 홀로 예치禮治의 문명을 실천해 온 우리나라가 모범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부분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고구려와 수隋나라 간의 전쟁에서 살수대첩으로 수 양제의 침략 야욕을 꺾은 을지문덕乙支文德에 대한 언급이다. 433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을지문덕께서는 “도로써 하늘을 섬기고, 덕으로써 백성을 보듬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道以事天 德以覆民).
『환단고기』를 읽은 독자라면 이 부분이 굉장히 익숙할 것이다. 왜냐하면 『태백일사』 「고구려본기」 내용 중 ’을지문덕의 호쾌한 심법 세계‘라는 부분에서 이와 유사한 구절이 나오기 때문이다.
을지문덕이 이렇게 말하였다. 도로써 천신(삼신상제님)을 섬기고, 덕으로써 백성과 나라를 감싸 보호하라(道以事天神하고 德以庇民邦하라).
고구려 을지문덕의 사료는 국내에서는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된 부분뿐이다. 그런데 『환단고기』와 『정신철학통편』에서 유사한 구절이 나온다는 것은 전병훈이 천부경을 전수받을 때 『환단고기』도 함께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큼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다. 이는 『환단고기』가 1980년 이후에 나왔다고 말하는 소위 위서론자들의 주장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 것이다.
제4권 정치철학
이 부분은 서구 사상이 가장 많이 거론되는 부분이다. 저자는 서구에서 로마 시대 이래로 여러 정치학자와 인물들이 나와서 정치 제도를 비롯해 물질문명이 크게 발달했다며 칭찬하고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헌법과 공화정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정치 전통 중에서는 민주정치와 정전제井田制와 예치를 중심으로 정치철학의 논지를 펴고 있다.
그는 요순에서 하상주夏商周 삼대까지 백성이 왕을 추대한 것이 바로 민주제라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고대 동아시아에서 민주정을 제도화하지는 못하고 사람에 의존하는 인치人治 정치 형태를 보인 것을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서양의 선진적인 정치 제도를 취해서 평화로운 대동 통일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禹임금 때 시행하였다고 전해지는 정전제井田制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이상적인 토지 제도이자 사회 제도라고 칭찬하였다. 정전제는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토지를 균분하여, 중앙 부분은 서로 힘을 합해 공동 경작해서 세금으로 납부하여 공적 용도로 쓰고, 나머지는 나눠서 대대로 경작하게 하는 이상적인 토지 제도이다. 저자는 이 세금으로 녹봉과 학교 제도를 제정하자고 한다. 이때는 세계를 통일해서 천지가 자리 잡히는 때이기 때문에, 군대 제도는 생략해도 된다고 보았다.
또한 녹봉을 넉넉하게 정하여 염치廉恥를 기르게 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왕을 쫓아내는 혁명이나 정변을 야만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런 부도덕은 동양의 도덕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동양과 서양을 종합해서 상호 보완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동양의 대동 사회나 서양의 철인 정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보았다. 그 증거 또는 조짐으로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 만들어진 국제연맹國際聯盟을 들고 있다.
끝으로 저자는 총결론에서 다음처럼 자신의 바람을 말하고 있다.
세상에 그분[其人]이 나와서 이에 맞춰 나란히 실행한다면, 하늘에 합치하고 성인을 겸하면서[兼聖] 난리가 종식되는 태평, 통일정부의 성립이 그 손안에서 이뤄질 것이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지인至仁, 지덕至德과 겸성兼聖, 극철極哲, 태선胎仙의 사업이 모두 이루어져서 극락의 세상이 되는, 하늘이 만물을 완전히 길러 주는 날이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가 다시 무슨 소원이 있으리오! 다시 무슨 소원이 있으리오! (685쪽)
나가며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 속에서 조국의 멸망을 처절하게 경험했던 전병훈, 그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도사로서 명성을 떨치며 도교 이론과 도교 실천 두 방면에서 탁월한 성취를 남겼다. 그리고 당대 지식인과 고위 관리들에게 정중한 예우를 받으며, 스승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의 사상이 담긴 『정신철학통편』은 한 지역에만 국한되거나 편협한 시각을 넘어 보편적인 철학으로 조명받아야 할 것이다.
비록 서양 사상이나 세계 정치에 대한 이해가 다소 모호하거나 부정확한 면도 있고, 몇몇 오류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당대 누구보다 더 동서양의 철학과 정치 사회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였고, 그처럼 보편적인 인간 구원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내세운 이도 없다. 이제야 그의 사상이 조금씩 드러나게 되었고 조명되고 있다. 그의 사상은 먼저 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세계에서부터 정화를 해서 자기 구원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사회 구원으로 확장하고 제도화하면서 세계 통일정부 수립으로 나아가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동서고금의 모든 깨달음의 근원, 『천부경』
『천부경天符經』은 환인천제의 환국桓國 시절부터 구전口傳되어 온 경전이다. 이후 환웅천황께서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이를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하게 하였고, 고운 최치원崔致遠이 일찍이 신지의 전고비篆古碑를 보고 다시 첩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하였다. 『천부경』 81자 원문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태백일사太白逸史』이다.계연수는 스승 해학 이기로부터 아직까지 전해 내려오는 곳이 남아 있으리라는 유명을 가슴속에 새겨 두고 『환단고기』 발간 후 이를 찾다가 1916년 묘향산에서 이태집과 함께 고운 최치원의 『천부경』 고각古刻을 발견하고 이를 탁본하여 각각 단군교와 단학회에 보냈고, 단군교의 윤효정을 통해 중국에 있던 전병훈에게 전해졌다.
『천부경』을 우주 수학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수數를 중심으로 우주 만물의 생성과 변화, 본체와 작용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부경』에서 숫자 1은 우주의 본체, 근본을 상징하는 수로 만물의 시종始終을 표현하는 수이며, 천지인 삼재三才의 본성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수이다. 1과 3의 상징으로 회삼귀일會三歸一을 설명하고, 10수를 통해 우주의 완성을 설명한다.
천부天符는 하늘의 법이라는 뜻으로 천부경의 원고향은 마고성麻姑城의 부도符都로, 부도는 『천부경』의 고향이라는 뜻이다. 『천부경』은 하늘의 이법을 기록한 경전 또는 우주 이법의 주재자인 상제님의 천명을 기록한 경전을 말한다. 81자 안에 천지인天地人 창조와 변화 원리를 압축적으로 밝히고 있다. 환국 개창 역사와 함께 온 인류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우주 광명의 인간이 되게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숨 쉬듯 천부경 81자를 즐겨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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