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잃어버린 문화와 역사를 되찾는 환단고기 북 콘서트 - 전주 편(1)

[종도사님 말씀]
道紀 143년 3월 10일(일),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말씀요약] 지금 동북아 역사 대전쟁이 다시 불붙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전쟁의 진실이 뭐냐 하는 것을 알려면,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의 참모습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되찾는 유일한 사서가 바로 『환단고기桓檀古記』인데, 이 『환단고기』는 대한사관大韓史觀으로 읽어야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계 대문명권이 대부분 5천 년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중동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핵 수메르 문명은 천산 산맥을 타고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 세운 문명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중국 황하문명의 역사 시조인 4,700년 전 인물 황제헌원은 곰을 토템으로 한 웅족의 후손이며, 중국이 자기들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태호복희씨도 동방 동이족 출신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은 일본 사람들이 우리 역사를 위만조선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조작한 것을 교과서에다 실어 놓고 대한민국의 역사는 2,200년이라고 세뇌를 시켜 왔습니다. 오늘날 동북아 역사의 주도권 싸움인 동북아 역사전쟁의 실체를 바르게 알려면 『환단고기』를 통해 이 전쟁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진정한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란 천지의 광명, 환단을 체험하고 살았던 우리 옛 조상들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환단고기』는 첫째로 인류 황금시절의 문화, 이 대우주의 본성인 광명을 체험한 광명문화와 역사를 기록한 원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환단고기』는 역사를 만드는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며 그 인간은 우주에서 위격이 뭐냐, 인간의 삶의 목적은 뭐냐, 동시에 역사의 궁극 목적은 뭐냐,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구성되느냐 하는 것을 알려 줍니다. 셋째로 이 『환단고기』는 무엇보다도 국통 맥, 잃어버린 우리 역사의 족보, 그 역사의 맥을 최초로 구체적으로 바로잡아 주는 유일한 책이라고 정의를 할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의 첫째 책 『삼성기』의 첫 문장은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입니다. 이것을 『삼국유사』 「고조선」기에서는 ‘석유환국’이라고 선언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을 부정한 대표적인 일본사학자 금서룡今西龍, 이마니시 류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는 말에서 나라 국國 자를 조작해서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만들었습니다. 일연 스님의 주석을 근거로 불교의 역사관을 악용하여 환국을 신화의 나라로 왜곡한 것입니다. 조선에 와서는 태종 이방원이 서운관에 있던 우리 전통 역사서를 유교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다 불질러 버렸습니다.

『삼국유사』에는 환국과 배달 단군조선의 역사가 압축되어 실려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일웅일호一熊一虎’를 모든 역사 교과서가 한 마리의 곰과 한 마리의 호랑이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그게 아니고 ‘웅호이족熊虎二族’, 웅족과 호족이라는 족호族號로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이찬구 박사 : 작년에는 부산 또 서울, 대구, 대전 이렇게 네 군데에서 『환단고기』 북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오늘은 이 전통의 도시 전주에서 콘서트가 열리는데요, 전주 시민과 우리 전북 도민을 위해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종도사님 : 이 지구촌을 다녀보면 전라도 땅 이곳이 아마 지리학으로 볼 때도 천하의 명당 가운데 명당이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말해 왔고 저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의 산세가 가장 잘 풀려 있는, 근대 역사의 성지, 이곳 전주에서 오늘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축제보다 더 뜻깊은 날을 맞아 여러분과 더불어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표하고 우리 생애에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찬구 박사 : 이 전주가 우리 근대 민족 정신사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환단고기』 원본은 백 년 전에 나왔고, 그동안 많은 분이 역주본을 발간했는데 이번에 나온 안경전 이사장님의 『환단고기』 역주본은 그동안 수집한 방대한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나왔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 고대사가 말살된 가운데서 구천 년 민족사의 국통맥을 바로 잡았다는데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이 책의 의미를 한 번 되짚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종도사님 : 『환단고기』란 어떤 책이냐? 우리가 그동안 배워 왔던 소위 뿌리 역사, 우리 문화와 역사의 원형성, 우리 한민족의 본래 역사를, 우주관과 신관, 인간론, 그리고 영성문화를 근본으로 해서 그 진면목을 보여주는 유일한 책이라고 정의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 오랜 세월이 걸려서 완역본이 나오게 됐는데 이 작업에 참여한 모든 일꾼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종도사님 : 이 박사는 저하고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환단고기』를 오랜 세월에 걸쳐서 연구하면서 이 책을 과연 내가 마무리를 지어야 되는가,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가, 이런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환단고기』 출간 백 주년이 다가오는데 이 책을 당신이 마무리 지어야 될 것 아니냐고 했어요. 이찬구 박사도 『환단고기』를 잘 알아요. 『환단고기』에 대해서 책을 낸 적도 있고, 『환단고기』의 정수를 가슴으로 잘 받아들이고 핵심을 잘 볼 줄 압니다. 동충서돌하며 동서 사상계를 누비고 공부를 아주 딴딴히 했습니다. 그래서 이찬구 박사께 고마운 말씀을 전합니다.

이찬구 박사 : 사실 지금 동북아 정세를 보면 이미 역사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역사 전쟁이란 말이 낯설게도 들리겠지만 여러분도 실감을 하실 겁니다. 일제 식민사학은 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강단 사학계는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은 벌써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역사의 손발을 자르고 있습니다. 일제가 우리 역사의 머리를 잘랐다면 중국은 그 팔다리를 자른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외치지 않나요? 잊어버렸나요? 우리는 백 년 동안 왜곡된 역사에 마취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깨어나서 바른 역사를 외쳐야 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환단고기』 북 콘서트는 잃어버린 우리 역사, 잃어버린 우리 정신을 되찾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역주자님께서 열강을 하실 때 박수로써 화답을 해 주시기 바라면서 오늘 강의를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본 강연>
서론 : 전라도의 역사성



전라도에 올 때마다 산세를 바라보면서 이곳저곳 시골길을 달려보면 정신이 상쾌해지고 또 이 지구상에 제아무리 명승지라 할지라도 이 전라도의 산세를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절절이 느끼면서 지난 수십 년을 전라도에 와서 사적 답사를 했습니다. 특히 동학혁명東學革命의 땅, 전라도는 근대 역사의 문을 연 성지이기 때문에 한국인 모두에게 남다른 감회가 깊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120년 전, 벌써 두 세기 전에 동학혁명이 일어난 이 전라도는 우리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위대한 깨달음의 성역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겠습니다. 미륵님이 이 동방 땅에서 오신다는 미륵불 신앙의 성지가 바로 이 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金山寺. 이곳은 1200여 년 전에 진표眞表라는 법상종의 한 도승이 도솔천 천주이신 미륵님으로부터 직접 도통을 받으신 곳입니다.

-미륵신앙과 태일 문화의 성지
저도 금산사를 여러 번 가 봤는데 이 세계에서 실내불室內佛로서는 금산사 미륵불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상해에 있는 영은사靈隱寺에도 미륵불이 있고, 또 북경에 있는 티베트 계열의 한 큰 절을 가서 제일 뒤쪽에 목조로 제작된 거대한 미륵불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러나 손에 여의주를 쥐고 있는 금산사 미륵불상이 이 지구촌에서 그 크기와 위용으로는 단연 으뜸입니다. 미륵의 새 역사가 바로 이곳 한반도 조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곳 금산사 금미륵이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곳 전라도에서 불교 3천 년 말법이 끝나고 가을의 금金시대 문명, 가을 개벽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선가 신선문화를 보면 바로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역사와 인간론의 주제인 이 태일太一문화, 태일사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출신인 김경수라는 분이 전라남도 함평咸平에서 50년을 기도하고 천상으로부터 태을천 소식을 받아 내렸습니다. 만인이 다 기뻐한다는 함평, 온 천하에 태평성대가 찾아온다는 함평 땅에서 바로 이 우주와 인간의 진리 주제인 태일문화가 완성이 됐어요. 그분이 태을천太乙天 상원군上元君님의 도를 받아 내렸는데, 그것을 누가 전했느냐 하는 것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 참 전라도를 많이 와서 답사를 해 봤습니다.

과거 기록에는 김경흔이라는 분이 나오는데 어떤 분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군산과 옥구군 위에 있는 바닷가 항구 서천군 비인면에 가서 족보를 다 뒤져 봤어요. 김가 집안은 다 뒤졌는데, 밤 아홉 시 넘어서 참 어둠이 깊은데도 전혀 흔적이 없어요.

그래 바닷가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역사의 뿌리를 찾는 것이 참 이렇게 힘이 드는구나’ 했어요. 그런데 그 뒤에 기적적으로 만나고 보니 바로 이 전주 근교에 사시는 분인데 그분의 직계 후손이더란 말이에요. 그분이 바로 함평에서 오신 김경수라는 분이예요. 이분이 태일문화의 완성인 태을천 소식을 우리 한민족에게 지금부터 한 100여 년 전에 전해 주었습니다.

- 동학혁명, 근대 역사의 문을 연 곳
선가, 불가, 그리고 근대 유불선을 기본으로 해서 서양의 천주학까지 수용한 동학, 이 동학의 근대 역사 문을 연 이곳 전라도, 특히 전주는 동학혁명이 거의 절정에 이르던 그때 이 전주성을 점령해서 자치기구 집강소를 열고 여러 가지 근대 개혁의 역사를 시작한 곳입니다. 전라도는 동학혁명군 60만 명 가운데서 30만 명이 참 무참하게 죽어간 곳이기도 합니다.

강연의 세 가지 주제


지금 시작되고 있는 역사전쟁, 마침내 다시 불붙은 동북아의 이 역사 대전쟁, 그 전망은 어떠한가, 이 역사전쟁의 진실이 뭐냐 하는 것을 알려면,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의 참모습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되찾는 유일한 사서가 바로 『환단고기桓檀古記』입니다. 오늘 『환단고기』의 주요 내용을 간결하게 한번 정리를 해 보겠는데, 제가 전해 드리려고 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환단고기』란 어떤 책이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환단고기』의 사서로서의 독보적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 역사 문화를 되찾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환단고기』를 어떻게 읽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환단고기』를 대부분 부정한단 말입니다. 강단사학계에서는 부정을 하고 있어요. 다 조작된 책이다, 믿을 수가 없다 이거예요. 그들이 『환단고기』 를 부정하는 실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제가 그 문제를 염려해서 책 출간을 뒤로 미루고 약 3년 동안을 더 정리해서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총체적인 이유 몇 가지를 이 책 해제에서 정리를 했어요.

『환단고기』는 대한사관大韓史觀으로 읽어야 됩니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관으로 읽을 때 이 책이 제대로 읽혀지고 그 속에 들어있는 너무도 엄청난, 진실로 엄청난 우리 역사의 참모습에 대해서 비로소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세 가지를 기본 주제로 말씀을 전하면서 우선 서두에서 우리 모두가 한 번 상기해야 할 우리 역사 왜곡의 핵심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를 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한국사의 현주소 : ‘단군조선은 신화다’


최근 수개월 전에 경기도에서 선생님들 열일곱 분이 학생들을 위해서 역사 자료집을 만들었는데 거기에서 단군조선, 고조선은 실제 역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때 약 2천억 원 이상을 긴급 투입해서 만든 동북아 역사 재단에 있는 교수님들이 뭐라고 했느냐? 단군 조선은 신화다, 그건 신화이지, 믿을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그런 자료집을 무시해 버리도록 외교통상부, 교육부에 압력을 넣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정부를 대변하는 관변학자들이 조작된 일본 식민사학, 노예역사관을 옹호하고 있다 이거예요. 이게 지금 대한민국 정부와 대학교의 전문 역사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역사 인식입니다.

- 중국, 일본이 조작한 역사 현장
우리 역사는 그 역년이 얼마냐? 궁금하잖아요. 대한민국의 역사는 단군이 서기전 2333년에 조선을 건국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옛 조선, 고조선이죠.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몽땅 신화로 부정해 버립니다. 그리고 고조선을 계승했다고 하는 위만조선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서기 전 194년에 연나라 사람 위만이 쳐들어와서 당시 번조선의 주인, 왕검성의 준왕을 내몰아버리고서 단군조선의 정통을 계승하는 왕이 됐다는 거예요. 이게 위만조선이에요.

그러니까 위만조선의 역사는 강도 역사입니다. 위만조선을 고조선의 정통 왕조로 인정하는 것은 마치 내 집 안에 쳐들어온 강도에게 자리를 내주고 그 강도를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에서 조상의 역사를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제가 어릴 때 일본의 기원은 2600년이라는 것을 수십 번을 들었어요. 초대 신무神武 왕으로부터 지금 125대 아키히토 왕까지 2600년이라는 겁니다. 일본의 자국토에서 한 번도 이탈되지 않고 26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역사라고 하는데 이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식으로 다 알고 있어요.

중국은 얼마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계 대문명권이 대부분 5천 년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 인도의 인더스 강, 이집트의 나일 강 유역에서 일어난 문명과, 서양 문명의 발상지인 중동 문화도 그 역사가 5,500년 전후입니다.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핵中核, 중심핵은 수메르 문명입니다. 수메르 사람들이 이라크 남부에서 도시국가를 20여 개 세웠는데 그 수메르 문명이 어디서 온 거냐? 이것을 서양 사람들이 나름대로 엄청나게 연구를 했어요. 그 결론은 뭐냐? 천산 산맥을 타고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 세운 문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계 4대 문명권의 하나인 동방 황하문명을 약 5천 년으로 말하는데, 중국은 최근에 와서 뭐라고 하느냐? 자기들 중화 한족의 역사 시조가 4,700년 전 인물인 황제헌원黃帝軒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헌원도 사실은 중국 한족이 전혀 아니에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국의 24사史 가운데 첫째 책인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는 자기들 역사 시조, 헌원에 대한 족보로 시작합니다. 헌원은 누구냐? 유웅씨有熊氏의 후손이다, 곰을 토템으로 한 웅족熊族의 후손입니다.

동방족 출신인 이 황제헌원의 역사가 4,700년 전인데 중국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중국 하남성, 정주를 가 보면 엄청난, 정말로 누구도 놀랄 수밖에 없는 동상을 보게 됩니다. 뭐냐? 바로 헌원보다도 6백년 전 인물인 신농씨神農氏입니다. 그래 염황炎黃, 곧 염제炎帝 신농씨와 황제헌원 두 분을 이렇게 거대한 석상으로 해서 산꼭대기에다가 모셔 놓았습니다. 그 공사 기간이 20년이에요.

지금부터 정확하게 6년 전 4월에 모셔 놓고 중국 13억 국민들에게 보아라, 우리의 역사가 5,300년이다라고 과시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도 좀 낡은 이야기가 되었어요. 북경에서 자동차를 몰고 서북쪽으로 서너 시간을 가면 중화문명의 실제 발상지라고 하는 탁록涿鹿이 나옵니다. 만리장성 경계 가까이에 있는 이 탁록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우리들의 뿌리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뿌리로 돌아가는 집, ‘귀근원歸根苑’이라는 아주 거대한 사당을 지어 놓았어요.

그래 여기를 들어가서 보면 거대한 사당이 있는데 바로 중앙에 중국 민족 역사의 시조 황제헌원을 모시고 그 좌우에 신농씨와 치우천황을 함께 모셔놓고 있어요. 치우천황은 황제헌원과 10년 동안 73회에 걸쳐 전쟁을 치른 배달의 통치자입니다. 그리고 그 벽을 보면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이 10년 대전쟁을 했던 모습이 벽화로 쭉 그려져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 지도자 강택민 주석 때를 전후해서 ‘우리 중국의 역사는 태호복희太昊伏羲부터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태호복희가 자기네 역사의 시조라는 거예요. 태호복희는 지금 대한민국의 국기에도 나오는 팔괘八卦를 그린 분입니다. 우리 한국인이 태극기의 유래는 알지만 이 팔괘를 처음 그린 역사에 대해서는 교육이 안 돼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태호복희씨도 동방 동이족 출신인데, ‘인문시조人文始祖’, 인류 문명의 조상이라 해서 중국 하남성 회양현을 가 보면 중국에 있는 어떤 궁전보다도 더 고풍스럽고 참 멋지게 지어 놓았어요. 가서 보면 자기 민족의 역사 시조라고 해서 그 입구부터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은 어떻게 돼 있느냐? 중국 한漢 패공 유방의 7세손인 무제武帝가, 번조선 준準 왕의 손자 우거를 기원전 194년에 멸하고, 그곳에다가 네 개의 식민지 군郡을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한 무제가 군을 두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우리 역사를 위만조선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조작했습니다. 그런 왜곡, 조작된 역사를 지금 우리가 교과서에다 실어 놓고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2,200년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중국과 일본이 조작한 이 역사를,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국가공무원들이 보는 교재에,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가르치는 삼군三軍 역사 교재에, 진실인양 기록하여 세뇌를 시켜 왔다 이겁니다.

동북아 역사전쟁은 역사의 주도권 싸움


오늘날 이 동북아 역사전쟁이라는 것은, 『환단고기』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 고전과 중국의 기록을 통해서 볼 때에도 실제로 동북아 역사의 주도권 싸움입니다. 우리 한민족은 이 주도권 싸움에서 지금부터 2,200년 전에 위만에게 역사 강도질을 당했습니다. 단군조선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번조선의 준왕이 하룻밤 사이에 쫓겨나 황해로 내려와서 군산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데, 그 준왕이 바로 지금 청주 한씨淸州韓氏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군산에서 조금 들어와 보면 거기에 어래산御來山이 있어요. 임금님이 오신 산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백여 년 전에 일어난 동학혁명에서,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한번 복고를 시키면서 근대 역사의 문을 열려고 했던 이 역사전쟁에서 패망을 당해 버렸습니다. 아주 철저하게, 죽음을 당했다 이겁니다. 일본 제국에게, 조선 왕조에게 패하여 무참하게 이 전라도 땅에서 죽어갔단 말입니다.

그러고서 불과 3년 후에 고종 황제가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동서 제국이 와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우리가 바로 진정한 제국이다. 대한제국, 천자의 나라다’ 이렇게 선포를 했던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한민족의 근대 역사의 문을 실제로 열었지만 그 후 13년 만에 일본에게 패망을 당하고 노예 민족으로 전락을 했던 것입니다.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것은 사실 엄청난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환단고기』를 제대로 읽을 때 바로 고종 황제가 선포한, 지구상의 최초이자 마지막 제국인 대한제국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어요. 그분이 지금의 조선호텔 바로 옆에 원구단을 다시 세우고 거기에서 우리 민족이 일만 년 동안 섬겨왔던 자랑스러운 하나님,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우리 역사의 옛 위상을 새롭게 선포를 했습니다.

본론 : 첫째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지금 북한의 지도자가 ‘전면전을 개시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선포를 했지요. 연일 전쟁 타령 중인데, 북쪽을 선제 폭격해야 한다는 발상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앞으로도 동북아는 눈만 뜨면 이 역사전쟁 문제에 부딪히는데, 이 역사전쟁의 실체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 전쟁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진정한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먼저 강조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갈까 합니다.

첫째는 『환단고기』 란 어떤 책이냐? 학계에서는 『환단고기』의 역사관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거의 무조건적으로 이 책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환단고기』 와의 인연 : 이유립 선생과 ‘커발한’
이 책을 가지고 북한에서 내려오신 분은 한암당寒闇堂 이유립李裕岦 선생입니다. 이분이 해방이 되고 나서 북쪽에서 두 번 남한으로 내려왔다가 가실 곳이 없으니까 부인은 청주로 먼저 보내놓고 1963년에 대전에 정착을 했어요. 그리고 20년 동안 주로 대전 시내 은행동에서 사실 때 『환단고기』를 홍보하는 소책자를 냈는데 그 이름이 ‘커발한’이었어요. 화면에 나오는 저것은 저분이 돌아가신 날 찍어낸 63집인데, 이 『커발한』이 우리 집에 몇 권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필경해서 낸 누런 종이로 된 작은 책자인데, 제가 10대 때 그것을 보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역사는 본래 이 만주를 중심으로 해서 동아시아에 있었던 큰 문화 대국이었다는 것입니다. 삼한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강 이남의 신라, 가야, 또 여기에 백제, 이런 진한, 번한, 마한이 아니고 저 북쪽에 삼한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화와 역사의 정신을 전해 준 분이 있는데 그분이 커발한이라는 거예요. 이게 무슨 중국말도 아니고, 세상에 있는 말이 아닌데 커발한이 뭐냐? 이 커발한이라는 말을 알 수 없었어요.

그 후 10대가 지나고 20세를 넘어서서 70년대 후반에, 우리 문화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자유』라는 월간지에 이유립 선생의 『환단고기』에 대한 논문이 좀 실려 있었어요. 그 당시에 『환단고기』 원본을 전수받아서 어느 날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을 초저녁부터 밥상에 한지를 깔고 무릎을 딱 꿇고 정장을 하고서 범례부터 읽는데 기가 막힌 거예요. 너무도 놀라운 얘기들이 있고 엄청난 역사의 진실이 담겨 있으니까 밤 열두 시가 넘었는데도 잠을 잘 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한번 끝장을 보자 하고 우선 읽혀지는 대로 그냥 보았는데, 책 전체를 한 번 훑어보고 나니 정신이 참 너무도 맑고 성성하게 깨져서 시원한 새벽 찬 바람을 쏘이면서 ‘야, 이 우주가 이렇게 열리고 인간 역사가 이렇게 시작되었으며 인류의 그 첫 역사라는 것은 동방과 저 중앙아시아 지구의 지붕이라 하는 파미르 고원, 환국에서 이루어졌다. 그 환국이 땅덩어리가 남북이 5만 리이고 동서가 2만 리이고.’ 이게 이해가 되냐 말이에요.

그때는 자동차도 없고 통신수단이 별로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 엄청난 땅을 다스렸느냐, 지금도 대부분 지식인들은 이런 논리로 이 책을 부정을 하고 있어요.

- 『환단고기』 번역 작업의 과정
그래서 이 책을 읽으려면 단순한 역사 상식, 역사학만을 가지고는 되지 않고 우리 인류 역사와 문화 전 영역, 즉 종교, 영성문화, 동서의 사상사, 신화학, 인류학 등과 연관시켜 보아야 합니다. 또 역사는 발로 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직접 그 지역을 답사해야 됩니다. 가 봐야 아는 거예요. 최종적으로는 발품을 팔아서 역사의 현장에 가 봐야 이 책의 진실과 진가를 알게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밤새 읽고서, 이건 그냥 덮어두고 말 책이 아니구나 해서 그 뒤로 경전을 읽듯이 가슴에 새기면서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뭘 그냥 받아들이고 멍청하게 사는 그런 기질이 전혀 아니거든요. 그래서 열 번 읽어, 스무 번 읽어, 백 번 읽어, 오백 번 읽어, 천 번 읽어, 주요 내용을 그렇게 많이 보아서 머릿속에 각인이 되니까 『환단고기』를 쓴 다섯 분의 다섯 권 책을 감정하게 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의 마음 세계, 언어 정서를 정밀하게 10년, 20년을 감정하면서 역사 현장 유적지를 갔다 오고, 또 다시 보고, 이것을 반복하면서 우리 판 안에 있는 일꾼들에게 역사 교육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번역을 꾸준히 해 왔어요.

그리고 전에 『환단고기』를 전해 주신 이유립 선생이 만약 번역본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 출판사에서 직접 찍어드리고 싶다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게 1984년도였는데 출판사 부장들을 보내서 원고를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우리 일꾼들 말이, 번역된 원고가 최소 10년도 넘고 20년은 된 것 같이 누렇게 다 바래고 맞춤법이라든지 이런저런 것을 정리하기가 어려우니까 참 힘들겠습니다고 그래요. 그래서 저도 할 수 없이 그렇게 결정을 했는데, 그 뒤에 이 전라도에서 처음 번역본이 나왔어요.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 선생님 김은수라는 분이 번역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역작으로 번역이 잘 된 책이에요. 그 후로 한 스무 권 정도, 이런저런 만화책까지 해서 『환단고기』 역주본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세상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있게 번역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또 누가 읽어도, 제대로 알고서 번역을 해 놓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적어도 그런 심정으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또 중고등학교 나오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그런 번역을 하려고 했습니다.

- 번역의 어려움으로 포기, 그리고 중단
그런데 아무리 이 책을 읽고 생각을 해 봐도 또 천지에 기도를 해도 번역이 안 되는 내용들이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역사 관념을 무너뜨리는 엄청난 진리의 근원 문제들, 종교에서 풀리지 않는 것, 동서의 철학에서 풀리지 않는 것, 주역을 천번 만번 읽어도 알 수가 없는 그런 우주의 변화 문제, 이런 진리의 상단 자리에 있는 내용이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연결돼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역사 전문가도 아니고, 이것은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포기하고서 내부 교육용으로 쓰려고 88년도에 중간 번역을 마무리해서 나눠 주려고 하다가, 양심에 가책이 되니까 그때도 중단을 했어요.

지난 동학혁명 때 이 전라도에서 동학 농민군들이 머리에다가 흰 띠를 두르고 ‘오만 년 수운’, 오만 년 개벽 운을 받는다고 하면서 혁명을 했거든요. 제가 이 후천 오만 년, 앞으로 오는 이 가을 문화를 여는 원전인 『도전』을 정리하고 내면서 과로로 쓰러졌어요. 그러면서도 이 『환단고기』에 대한 인연과 미련을 던져 버릴 수가 없어서 늘 정리를 하면서 또 해외에 나가서 역사 현장 답사를 하면서 어떤 식으로든지 한 번 마무리를 해 봐야 될 텐데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참 많이 오더란 말이에요.

- 절망의 경계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
그래서 번역 마무리를 지을 때 다시 중단을 했다가, 내부용으로 그냥 분권으로 『삼성기三聖紀』 상하, 『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夫餘紀』 이렇게 세 권을 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분권 작업이나 어떻게 해 보고서 아주 『환단고기』를 잊어버려야겠다, 이런 절망의 경계에 갔는데, 이찬구 박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말했어요. “1911년에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나라가 망하고 나서 우리 한민족에게 전해진 가장 위대한 역사의 축복, 그 선물이 뭐냐? 동북아의 창세 역사는 물론, 인류의 시원 역사, 진정한 창세 역사와 한민족이 잃어버린 그 뿌리 역사의 맥을 잡아놓은 이 『환단고기』 번역을 당신이 마무리 지어야 될 거 아니냐?”라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그런 번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땅에 안경전 당신뿐이라는 거예요.

제가 자격이 없는데도 그때 이 박사가 용기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이 박사는 나름대로 우리 한민족 문화와 역사의 현실을 알고 또 지금 학문이라는 것이 거의 서양 논리를 따르고, 과학주의, 이성주의 사고가 판을 치기 때문에 눈에 뵈지 않는 것은 안 믿는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어요. 자본주의 문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인류 태고의 황금시절 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래서 스스로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오류를 안고 살고 있단 말이에요.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시 용기를 내어 이 『환단고기』를 완역하게 된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북쪽에서 내려오신 이유립 선생이 충청도 태전에 자리를 잡으신 것이 인연이 되어서 제가 10대 그 청순했던 시절에 ‘커발한’, 삼신, 삼한, 우리 민족의 하나님 문화, 천제문화, 삼신상제 이런 언어를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또 20대 때 선생의 논문을 읽고 『환단고기』 원전을 통독하면서 책의 정수를 있는 그대로 보고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 저는 ‘고전은 있는 그대로 봐야 된다’는 이 한마디를 강조하고 싶어요. 우리가 유학을 알려면 공자의 마음으로 봐야 되고, 팔만대장경을 읽으려면 석가의 마음, 부처의 마음으로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구약을 읽으려면 예수의 마음으로 읽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리하여 그 성자들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환단고기』 다섯 권도 그 저자들의 심법으로, 그들의 역사의식으로 읽을 때 제대로 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정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류 황금시절의 문화 원전, 역사 원전


과연 『환단고기』는 어떤 책일까? 어느 날은 자면서 생각을 해 보았어요. 하늘의 광명을 환桓이라 하고 땅의 광명, 어머니 땅의 광명을 단檀이라 하니까, 『환단고기』란 바로 천지의 광명, 환단을 체험하고 살았던 우리 옛 조상들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환단고기』의 역사관을 한 글자로 정의를 하라고 하면 밝을 환桓 자입니다. 이 밝을 환, 광명의 실체가 뭐냐? 그게 신이라는 겁니다. 이게 동서고금의 깨달은 모든 성자, 철인의 가르침의 결론입니다. 그 환이 광명의 신이요, 그 신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옥입니다. 동북아뿐만 아니라 인류 창세 역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저 홍산문화의 가장 놀라운 유물이 바로 옥으로 만든 유물입니다. 5천 년, 6천 년, 7천 년, 8천 년 전에 옥으로 만든 여러 가지 장식물을 보면 컴퓨터로 조각한 것하고 거의 같은 수준입니다. 이 옥 문화는 참 놀라운 겁니다.

이 옥으로 된 장신구는 5천 년 전, 봉황을 새겨 놓은 사발은 6천 년에서 7천 년 전에 만든 거예요. 저 C자 용은 5,500년 전에 내몽골 옹우특기에서 발굴된 것입니다. 저 C자 용이 홍산문화 논의에 불을 댕긴 거예요.

이 홍산문화가 바로 『환단고기』의 우주광명 문화, 신성문화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학자들은 우리 문화의 코드를 읽지 못하기 때문에 저 문화는 우리 문화하고는 양식이 좀 다르니까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동북아 역사 재단의 교수님들이 쓴 논문에 그런 주장이 나오고 있단 말입니다.

이 『환단고기』를 간단하게 정의하면, 바로 인류 황금시절의 문화, 이 대우주의 본성인 광명을 체험한 광명문화와 역사를 기록한 원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 마음의 구성 원리를 밝혀 주는 『환단고기』의 우주론


둘째는 『환단고기』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역사를 만드는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며 그 인간은 우주에서 위격이 뭐냐, 인간의 삶의 목적은 뭐냐, 동시에 역사의 궁극 목적은 뭐냐 하는 것을 밝혀 줍니다. 이것을 어떤 종교의 성자도 전해 주지 못한 깨달음의 논리로 우주론의 논리로 가장 멋지게 전해 주는 유일한 역사서가 『환단고기』입니다. 『환단고기』는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구성되느냐 하는 것도 알려 줍니다. 저는 이런 내용을 보고서 그날 밤에 정말로 놀랐어요.

유불선, 기독교라든지 수행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수행을 해 보신 분들, 기도를 많이 해 보신 분들은 특히 행촌 이암이 지은 『단군세기』를 보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고조선 마흔일곱 분 단군의 역사를 기록한 『단군세기』의 서문을 읽다 보면 너무도 엄청난 내용이 있기 때문에 정말로 ‘죽었다 살아날’ 정도로 놀라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의 강단 사학자들은, 『단군세기』는 조작됐다, 여러 사람이 쓴 글이지 한 사람이 쓴 글이 아니다 하면서 철저히 부정하고 있습니다.

한민족 국통 맥을 바로 세워 주는 유일한 책


셋째로 이 『환단고기』는 무엇보다도 국통 맥, 잃어버린 우리 역사의 족보, 그 역사의 맥을 최초로 구체적으로 바로잡아 주는 유일한 책이라고 정의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세 가지는 잠시 후에 좀 더 자세히 정리해 보기로 하고 우선 『환단고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잠시 갖기로 하겠어요. 우리 상생문화연구소에 재직하는, 역사를 전공한 김현일 박사가 화면을 보면서 『환단고기』의 저자와 『환단고기』에 들어 있는 다섯 권의 책, 『삼성기三聖紀』 상하, 『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夫餘紀』, 그 다음에 여덟 권으로 이뤄진, 숨겨진 진정한 역사의 진실을 전해 주는 『태백일사太白逸史』라는 책을 소개해 주시겠습니다.

『환단고기』 저자와 책 소개 : 김현일 연구원


김현일 연구원 : 저는 『환단고기』를 간단하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환단고기』는 원래 전혀 알려지지 않은 글을 모은 것이 아니라, 1911년 나라가 망한 직후에 평안도 출신 계연수라는 분이 여러 글을 모아서 내어놓은 책입니다. 『삼성기』라는 글은 세조실록에도 그 이름이 나옵니다. 이러한 민간에 아주 드물게나마 알려져 있고 또 공식적으로는 나돌아 다니지 않던 글들을 모아 편찬한 것입니다.

계연수 선생은 『환단고기』의 서문에 해당하는 범례凡例라는 글에서 그 글들이 어디서 왔는지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결코 후대에 조작된 책이 아니고 예로부터 민간에 비장되어 온 그런 글들을 모은 것입니다.

해학海鶴 이기李沂라는 분이 범례에 나오는데, 이분은 여러분도 잘 알듯이 전라도 김제 출신으로서 한말에 계몽운동, 독립운동을 했던 분입니다. 이 이기 선생의 문인이 바로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 선생입니다. 그래서 스승에게 글을 보이고 감수를 받았다고 하죠. 그리고 목판에 새겨서 30권 정도를 간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원본이 전해지지 않아서 위서 시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환단고기』 첫 부분에 『삼성기』라는 짧은 두 개의 글이 나옵니다. 안함로安含老라는 신라시대의 승려와 원동중元董仲이라는 분이 각각 쓴 것입니다. 원동중이라는 분은 생몰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연대기 형식을 띤 『단군세기』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제 몇 세 단군, 몇 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식으로 돼 있거든요. 이런 것을 일반적으로 연대기라 하는데 이어서 나오는 『북부여기』도 이런 연대기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환단고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태백일사』라는 책입니다. ‘태백의 숨겨진 역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라는 뜻이죠. 이 『태백일사』는 저처럼 역사를 전문적으로 하던 이맥李陌이라는 조선 중종 때 찬수관을 역임한 분이 편찬을 했습니다. 모두 여덟 권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여기 보이는 것처럼 「삼신오제본기」, 「환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 「소도경전본훈」, 「고구려국본기」, 「대진국본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려국본기」로 돼 있습니다.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는 여러분이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삼신과 오제 사상에 대해서 또 우리의 시원 종교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환국본기桓國本紀」는 우리의 국통을 말할 때 제일 먼저 나오는 환국이라는 나라에 관한 기록이죠. 이 본기本紀라는 것은 중국 사마천이 쓴 『사기』에서 제왕들에 관한 기록을 ‘본기’라고 한 데서 따온 거죠. 제후들에 대한 기록은 ‘세가世家’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환국을 잇는 나라가 신시神市 배달倍達입니다. 그에 대한 기록이 「신시본기神市本紀」입니다. 그 다음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는 고조선의 역사입니다. 시대적으로는 행촌 이암 선생이 쓴 『단군세기』하고 같은 시대를 다룬 것이죠. 원래 고조선은 세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고조선에 진한, 번한, 마한 이렇게 삼한을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번한과 마한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것도 역시 연대기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이라고 있어요. 이 소도라는 것은 우리 옛 신교의 성지입니다. 이 글은 천부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 같은 신교의 경전들을 소개하고 있죠. 특히 천부경하고 삼일신고의 원문이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매우 귀중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일반적인 역사책의 형식을 띠고 있는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와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그리고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입니다. 모두 김부식의 『삼국사기』와는 달리 우리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저자들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삼성기』 상을 쓴 안함로는 신라의 고승입니다. 이분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그 이름이 나옵니다. 『삼국사기』에는 안홍安弘 법사로 나오고요, 진평왕 때 수나라에 유학을 하고 돌아온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삼성기』 하를 쓴 원동중이라는 분은 세조실록에 그 이름이 나온다는 것 외에는 아직 잘 알지 못합니다.

그 다음 『단군세기』를 쓰신 행촌杏村 이암李嵒 선생은 고려 말에 재상을 역임한 굉장히 유명한 분입니다. 또 학자로도 유명한 분이었으니까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라는 책의 열전에 올라간 일종의 위인인 셈이죠.

그리고 행촌 이암과 거의 같은 시기에 『북부여기』를 낸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 역시 고위 관료를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가 망하고 나서 이성계가 고려의 충신을 쓰려고 하니까 상당히 많은 사람이 거부를 했습니다. 두문동에 은거하고 나가지 않은 사람들을 두문동 72인이라 하는데, 범장은 그 중에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태백일사』를 보면 이 범장과 이암, 그리고 청평거사淸平居士 이명李茗이라는 분이 나옵니다. 이 세 사람이 지금 서울 북쪽 경기도 양주에 있는 천보산에서 소전거사素佺居士라는 분으로부터 옛 사서史書를 전해 받고 각자 역사책을 하나씩 썼는데, 범장이 『북부여기』를 남긴 겁니다. 이명 선생은 『진역유기』라는 책을 남겨서 그것이 17세기 숙종 때 나온 『규원사화』라는 책의 저본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태백일사』를 지은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은 연산군과 중종 때 고위 관료를 역임하고 말년에는 찬수관을 지냈습니다. 찬수관撰修官은 역사를 편찬하는 직책이므로 내각에 비장된 서적과 사료를 볼 수 있는 거죠. 일십당 이맥은 자기가 전혀 몰랐던 기록, 다른 시각에서 서술된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랐고 그런 기록들을 열심히 베껴 두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태백일사』를 보면 『조대기』, 『대변경』, 『삼성밀기』, 이 『삼성밀기』는 『삼성기』를 말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그 다음에 『진역유기』 등등 여러 권의 비서祕書를 언급하고 그 내용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서들을 상당히 베껴 쓴 책이 『태백일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맥 선생은 마지막으로 「고려국본기」라는 글을 썼는데 거기에 보면 자기 조상들 이야기가 다소 실려 있어요. 예를 들면 행촌 이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행촌 이암은 자신의 고조부이거든요. 그 고조부의 할아버지인 이존비라는 분이 높은 관직을 지냈는데 그분에 관한 서술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려국본기」는 이존비와 행촌 이암의 후손이 썼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의 편찬 과정과 구성 등에 대한 소개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고성 이씨 행촌 이암이 전한 『단군세기』


운초 계연수 선생은 대한제국이 성립했던 바로 그 다음해에 해학 이기 문하에 들어가면서 스승의 명을 맡아서 『환단고기』를 묶게 됐어요. 그래서 그 범례를 읽어보면 이 책에 수록된 다섯 권이 어디에서 전수되었는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의 다섯 권 가운데서 『삼성기』 상하는 모필 글씨로 한 5, 6페이지밖에 안 되고 그 다음에 『단군세기』 속에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단군의 조선사가 잘 정리돼 있어요. 『규원사화揆園史話』나 『단기고사檀奇古史』보다 더 체계적이고 또 연대기적으로도 보면 그 앞 시대인 환국, 배달과 그 뒷시대인 북부여, 고구려 역사의 그 연대기적인 시간대가 아주 정합합니다. 『단기고사』, 『규원사화』는 부분적으로 맞는 내용이 많이 있지만, 연대가 맞질 않아요.

이 『환단고기』가 성편되기까지 그 과정을 보면, 고성 이씨固城李氏 가문이 중심이 되어서 우리나라 잃어버린 9천 년 역사의 맥을 바로 세우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고성 이씨인 행촌 이암 선생은 고려 공민왕 때 수문하시중,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는데 학덕이 아주 대단한 분이에요. 이분이 소전거사로부터 우리 민족의 시원문화 역사를 전수받아 가지고 집대성했어요. 그래서 신교문화에서 신과 같은 인물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행촌 이암이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찾아 준 하나님 같은 인물이에요. 그리고 행촌의 현손인 이맥 선생이 연산군, 중종 때 나와서 조선 왕조에서 살아남은 우리 역사서를 집대성하고, 또 윗대 할아버지로부터 내려 온 『단군세기』 등 여러 서책을 묶어서 여덟 권으로 된 『태백일사』를 냈습니다. 『태백일사』의 첫째 책이 뭐냐? 바로 「삼신오제본기」입니다. 이게 우리 민족의 창세 역사서인데, 이 「삼신오제본기」 몇 페이지를 읽어봐야 이 동북아의 역사 정의가 바로잡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국에서 말하는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바로 삼신오제三神五帝에서 온 겁니다. 진시황이 삼황오제에서 황皇 자, 제帝 자를 따서 황제라는 왕호를 만들어 썼어요.

『환단고기』의 핵심을 다시 한마디로 말하면, 잃어버린 한민족과 인류의 뿌리 역사 시대, 즉 환국과 배달과 조선, 이 삼성조 역사, 40년 부족한 7천 년, 이 7천 년의 역사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잘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성자가 태어나기 7천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시기 6천 년 전, 세계 종교를 창시한 그분들이 이 세상에 오시기 약 6천 년에서 7천 년 전에, 그들이 깨달은 바보다 더 근원적인 소위 인류의 황금시절의 문화, 역사를 정리해 놓은 것이 『환단고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류의 가장 평화로웠던, 인간이 우주의 광명과 하나가 되어서 살았던 그 황금시절의 문화의식을 되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 원형을 잃어버렸어요. 문화의 원형 정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이겁니다. 우리 민족이 지금 중국과 일본의 노예역사관에 시달리고 찌들고 세뇌가 되어서 스스로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이거예요.

『삼국사기』 「고조선」에서 전하는 역사 진실


오늘 우리가 이 원형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문헌이 없는 것이 아닌데 이것 또한 우리가 부정을 했습니다. 바로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기記를 보면 그 내용이 뭐냐?

2천 년 전에 단군이 있었고 그분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조선이라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전에 환국이 있었고 환웅을 내려 보냈고, 환웅이 배달국을 창건하고 나라를 통치하고 국통을 전수했다는 내용입니다. 초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교과서에 전부 이 『삼국유사』 「고조선」기를 번역해 놓고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 거예요. 과연 우리 역사의 황금시절, 시원역사 시대, 환국과 배달과 단군의 조선이 신화인가? 이걸 기록한 사람, 그 원본을 기록한 사람 마음을 간단히 한번 읽어보면서 오늘의 본론인 환국, 배달, 조선의 역사를 『환단고기』와 현장에 가서 직접 답사를 해서 찍은 사진, 자료, 영상물을 중심으로 해서 펼쳐볼까 합니다.

『삼국유사』 「고조선」기 원본은 강독 자료집 제일 앞에 나와 있어요. 참고로 한 번 보시면 우리 역사가 왜 이토록 잘못 기록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 이재석 박사가 『삼국유사』 「고조선」기를 구수하게 낭독하도록 모실까 합니다.
『삼국유사』 「고조선」기 낭독 : 이재석 연구원


- 단군왕검은 신화가 아니다
이 「고조선」기 마지막 부분을 보면 ‘웅녀자熊女者가 무여위혼고無與爲婚故로’, 이 웅녀, 웅씨족 여인이 함께 결혼을 할 상대가 없어서, ‘매어단수하每於壇樹下에’, 늘 신단수에 와서, ‘주원유잉呪願有孕이어늘’, 아기를 갖게 해 달라고 빌었어요. 그래서 ‘웅雄이 내가화이혼지乃假化而婚之하사’, 우선 천지광명의 환족으로 귀화를 시켜서, 결혼을 하게 했단 말이죠. 여기서 ‘잉생자孕生子하시니’, 애를 낳았고, ‘호왈단군왕검號曰壇君王儉이시다’,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에는 환웅과 곰이 결혼을 해서 단군왕검을 낳았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신화라는 겁니다. 우리 역사의 시작과 상고 역사의 과정과 그 끝매듭을 그냥 단칼로 베어서 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제일 앞으로 가 보면 ‘위서魏書에 운云 내왕이천제乃往二千載에’, 위서라는 책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유단군왕검有壇君王儉이’ 단군왕검이 계셨는데, 위서는 조조의 위나라 역사를 다룬 책인데, 2천 년 전에 유단군왕검, 있을 유有 자를 썼어요.

단군왕검이 계셨다! ‘입도아사달立都阿斯達하시고’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시고, ‘개국開國하사 호조선號朝鮮하시니’,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이라 하시니라 하여 개국 사건을 전하고 있는데, ‘여고동시與高同時니라’, 요임금하고 같은 때다. 우리가 유학에서 성인을 말할 때 아주 입에 익은 말로 요순우탕문무주공堯舜禹湯文武周公을 말합니다. 요임금의 당나라, 순임금의 우나라. 그 다음에 하나라의 우임금, 은나라, 원래는 상나라죠, 상나라의 탕임금. 그 다음에 주나라의 문왕과 그의 아들 무왕, 무왕의 동생 주공까지.

그리고 춘추전국시대를 거쳐서 진시황 대에 와서 6국을 통합, 천하를 통일해서 최초의 천자, 황제로 불리지만 불과 15년 만에 망하고, 초패왕과 유방이 나와서 다투다가 유방이 천하를 통일했어요. 그 한나라가 전한, 후한을 거치고 거기서 위오촉 삼국시대로 해서 서진시대, 그 진나라가 펼쳐져 나갑니다.

그런데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지을 당시는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었는데, 고려는 전 세계 4분의 1 이상을 통일한 대제국 원나라에게 패망당하지 않고 원나라 황제의 부마국 노릇을 하면서 존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때 각성이 일어나서 우리 역사의 참모습을 한번 되찾자 하는 자주의식으로 이걸 썼던 거예요. 단군왕검이 계셨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세웠다, 요임금과 같은 때 4,300년 전이다 이겁니다.

- ‘석유환국’, ‘오환건국이 최고라’에서 전하는 인류 창세 역사
그러면 단군왕검의 조선뿐이더냐, 그게 아니다, 그 이전에 환국과 배달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기古記’에 뭐라고 했느냐? ‘석유환국昔有桓國’, 석유환국은 우리가 늘 머릿속에다 담아놓을 만한 것으로 우리 역사의 모든 걸 얘기해 줍니다. 이게 인류 창세 역사란 말입니다. 『환단고기』는 환국의 역사, 바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총체적으로 전해 주고 있어요. ‘석유환국’,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는 겁니다.

문자 그대로 광명의 나라, 밝을 환. 이 우주의 본성은 광명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 이 우주 역사는 영원히 한 광명으로 충만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의 본성에 대한, 그리고 인류의 최초의 창세 역사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민족의 시원에 대한 선언이에요.

그리고 『환단고기』의 첫째 책 『삼성기』의 첫 문장이 뭐냐면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입니다. 우리 한민족의 시원을 얘기하고 있는데 한민족, 한국, 대한민국이라 할 때, 이 한韓의 근원이 뭐냐? 환에서 왔다는 겁니다. 우리 환족이 나라 세운 것이 가장 오래 되었다, 오환건국이 최고라, 이것을 『삼국유사』 「고조선」기에서는 ‘석유환국’이라고 선언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고기古記를 일연 스님도 분명히 읽었는데 고기의 원본이 뭐냐? 『삼성기』 상하, 여덟 편으로 이뤄져 있는 『태백일사』의 「환국본기」, 이런 책들이 이 고기의 원본입니다. 그 원본 내용을, 이 환국, 배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확신할 수가 있습니다.

석유환국, 그 다음 구절을 보면 뭐라고 그랬어요? ‘서자환웅庶子桓雄이’, 서자도 적자, 서자 구분할 때의 그 서자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아니고, 왕족 가운데서 그 계승자들, 집안 자녀들을 교육하는 기관인 서자부庶子部를 가리키는가 봐요. 이 서자부라는 부서는 중국 당나라 때도 실제로 있었어요. 서자환웅이 ‘삭의천하數意天下하사’,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서, ‘탐구인세貪求人世하니’,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뜻을 두니, ‘부지자의父知子意하시고’, 아버지가 아들 뜻을 알았어요. 여기서 군사부 문화 원형이 나옵니다. 환국의 통치자 환인은 아버지이고 그 계승자인 환웅을 내려 보내지요. ‘하시삼위태백下視三危太伯하시니’, 삼위산과 태백산을 이렇게 둘러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고서 동방 태백산으로 보냈는데, 한편으로 여기 나오는 삼위산으로 간 사람이 중국 한족의 시조인 반고씨盤固氏입니다. 이 내용은 『삼성기』 하에 나오는데 아주 깜짝 놀랄 중국의 창세 역사의 시조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그리고 그 다음을 보면 ‘가이홍익인간可以弘益人間이라’, 홍익인간 할 만한 곳이다 이거예요. 홍익인간도 흔히 그냥 홍익인간,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을 하지만, 실제는 이 천지광명의 뜻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이상적 인간을 뜻한다는 것을 『환단고기』를 통해서 처음 깨닫게 됩니다.

그러고서 정통의 상징, 역사 계승의 종통 계승자의 상징으로서 ‘내수천부인삼개乃授天符印三箇하사’, 천부와 인, 세 개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천부경이냐, 아니면 다른 어떤 그 신권, 대권을 상징하는 그런 물증이냐 하는 것은 알 수 없지만, 천부경으로 해석을 해도 전혀 무리는 아닙니다. 『환단고기』를 보면 천부경의 절대적 가치를 알 수 있어요. 천부경에 의해서 인류 문화가 탄생한 것입니다. 지금의 1에서 10수의 체계, 이 수학 체계도 지구의 수학의 탄생도 천부경에서 나왔다는 것이 연구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한 소식입니다.

이 천부와 인, 세 개를 줬는데, 5,500년 전에서 6천 년 전에 사용된 옥도장이 이미 중국에서 발굴이 됐어요. 조금 있다가 그 원본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견왕이지遣往理之하시니라’, 가서 다스리게 했다 이거예요.

그러고서 이때 데리고 온 조직이 나오는데 바로 그것이 뭐냐? ‘장풍백우사운사將風伯雨師雲師하시고’, 풍백과 우사, 운사를 거느렸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 문명의 국가 조직, 모든 조직은 여기서 나온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경주대학교 이강식 교수가 환국, 배달, 조선의 조직사組織史를 연구했는데 상생방송에서 여러 번 방영했어요. 제가 예전에 그 교수의 저서를 보고,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 연구에 희망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보면 농경문화 시대에 곡식, 왕의 명령, 병을 다스리는 것, 형벌을 집행하는 것, 선악을 다스리는 것 이런 일들을 주관했다고 합니다.

-삼신三神과 칠성문화를 알아야 바르게 읽을 수 있다
우리 역사의 그 문화의 핵심 내용을 돌돌 말아 놓은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를 보면, 이 우주는 대광명으로 충만해 있는데 그게 바로 조물주 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신을 일신一神이라 하지 않고 삼신三神이라고 합니다. 신은 삼三으로써, 삼의 구성 원리로 하여 우주를 만들고 인간을 탄생시키고 역사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조물주 신은 반드시 삼수三數로써 세계를 구성하고 역사를 운행하는 것입니다. 그래 삼신이라는 거예요.

이처럼 우리 한민족의 문화는 삼신문화인데, 이 삼신문화는 바로 음양의 짝인 칠성문화와 하나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삼신과 칠성문화를 알 때 한민족의 잃어버린 문화, 역사의 큰 틀을 함께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걸 알 때 『환단고기』를 바르게 읽을 수가 있는 거예요. 우리 문화의 실제 핵심이 뭐냐? 이것을 『환단고기』에서 이처럼 전해 주는데 『환단고기』의 축소판이 『삼국유사』 「고조선」기입니다. 그러면 「고조선」기의 확장이 뭐냐, 그게 바로 『환단고기』이다, 이렇게 알면 더도 덜도 없습니다.

- 일본 사학자 금서룡의 조작
이 『삼국유사』 「고조선」기를 부정한 대표적인 일본사학자가 바로 금서룡今西龍, 이마니시 류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고조선의 중심지였던 하얼빈에서 쏴 죽인 저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들어와서, 한민족을 정복하려면 역사를 뿌리 뽑아야 된다고 절감을 했어요. 그래서 이토가 일본 학자들에게 조선의 역사를 뿌리 뽑으라고 했는데, 우리 상고사 말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한 사람이 바로 이 금서룡입니다. 그 사람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는 말에서 나라 국國 자를 조작해서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최초의 창세 국가 환국이 사라지고 대신에 환인이라는 인물이 있었던 것이 되고, 또 그분이 보낸 환웅이 곰하고 결혼했다고 역사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인, 환웅, 단군왕검 이분들은 다 신화의 인물이고 따라서 환국, 배달, 조선은 실제 역사가 아니라고 왜곡, 말살한 것입니다.

- 불교사관으로 잘못 해석 : 환국을 제석신이라 주석
그런데 이 금서룡이라는 자는 자신이 역사 해석을 억지로 그렇게 한 게 아니고, 이 기록을 남긴 저자 일연 스님이 ‘환국을 제석신이라고 주석’한 것을 근거로 했다고 둘러 대었습니다. 일연 스님이 ‘위제석야謂帝釋也’라 하여 ‘환국’을 불교 신화에 있는 ‘제석帝釋’, 제석 신神을 일컫는 것으로 「고조선」기에 달아 놓은 주석을 보고, ‘환국’을 ‘환인’으로 글자 자체를 엉뚱하게 고쳐 넣고 신화의 나라로 왜곡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영성문화와 우리의 본래 종교와 우리의 역사관으로 역사를 해석한 게 아니라 불교 역사관을 악용했던 것입니다.

- 유교사관으로 불태워진 사서들
또 이성계가 세운 조선에 와서는 그 아들 되는 태종 이방원이 서운관에 있던 우리 전통 역사서를 다 불질러 버렸습니다. 유교의 가르침, 그 국시와 역사관이 맞지 않는다 해서. 그 뒤에는 이런 사서를 가지고 있는 자는, 책을 숨긴 자는 전부 ‘익자처참匿者處斬’, 목을 벤다고 했습니다. 이게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기록이에요.

그러니까 역사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역사관이라는 것은 불교사관, 유교사관이고, 이것이 조선 오백 년을 내려오면서 결국은 우리 역사를 일본에게 다 내주고 노예 민족으로 전락했던 것입니다. 그 중심에 근대 역사의 문을 연 동학혁명 농민군의 절규가 있었습니다.

- 일웅일호는 한 마리의 곰과 호랑이가 아니다
조금 전에 본 『삼국유사』에 환국과, 배달의 역사 문을 연 환웅천황, 그 계승자인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가 압축되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나오는 ‘일웅일호一熊一虎’를 한 마리의 곰과 한 마리의 호랑이로, 지금 모든 역사 교과서가 그렇게 해석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환단고기』는 그게 아니고 ‘웅호이족熊虎二族’, 웅족과 호족이라는 족호族號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실제 곰과 호랑이로 해석하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 잘못된 해석을 하는 민족은 지구에서 우리 한민족밖에 없어요. 저 시베리아에 있는 모든 소수민족,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 또 일본 북해도에 있는 아이누족도 웅족을 말하고 있습니다. 웅족은, 곰을 자기 부족을 수호해 주는 하나의 토템, 보호신으로 섬긴 것을 나타내는 족호인데 이걸 실제 동물로 해석을 합니다.

우리나라 저 산청에 있는 한의학 박물관에 가 보면 곰과 호랑이가 사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또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됐다고, 저렇게 곰의 형상을 직접 세워 놓았어요. 그러나 실제 중국 현지를 가 보면 웅녀를 저렇게 사람 모습으로 세워놓고 있단 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