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도장은 신앙생활의 중심축입니다 (최춘석, 전숙희)
[가가도장]
최춘석, 전숙희 성도
경북 상주시에 있는 상주무양도장에는 부부가 함께 교사로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최춘석, 전숙희 성도가 신앙을 하고 있다. 진리를 만난 이후 모든 생활을 신앙 중심으로 풀어나가면서 늘 감사와 공경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전숙희 성도(포감)와 든든한 남편이요 최상의 도반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가족신앙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최춘석 성도(재정)는 조화롭고 안정감을 주는 도방 운영을 하고 있다. 성숙한 진리 의식을 갖고 자녀에게 최고의 신앙 자산을 물려주고자 늘 기도와 정성을 잊지 않고 있는 이 부부의 도방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만물이 생동하는 경칩이 지나고 3월 셋째 주가 시작되는 일요일 오후, 취재진은 삼백三白(쌀, 누에, 곶감)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경북 상주시 신봉동에 위치한 가정 신앙의 성소를 방문했다. 도방의 주인이 교직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지, 이곳 가가도장의 정서와 분위기는 예禮와 덕德으로 촘촘히 덮인 보따리를 살며시 열어 음미해야 할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 풀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번 호 도방 인터뷰의 사연은 상주무양도장에서 신앙하고 있는 최춘석, 전숙희 성도(이하 최 성도, 전 성도로 약칭) 부부의 이야기다. 두 사람 모두 현직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며, 평범한 듯하지만 순수하고 절제된 삶과 의지로 의미있는 신앙 생활을 다져나가고 있다. 2녀 1남의 자녀까지 함께 가족신앙을 하고 있는데, 부모이자 신앙인으로서 살아온 이야기 외에도 자녀들과 함께 삶과 신앙에 대해 소통하는 방식이 색다른 감흥을 안겨주는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취재를 가보면 여느 경우와 달리 처음이라도 낯설지 않은 정감이 담겨있는 곳이 도방이다. 생활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가정도장의 도기가 봄바람에 실려오는 신록의 내음처럼 훈훈한 기운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 부부의 도방도 그러했다. 아파트 7층에 소재한 가가도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최 성도와 전 성도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실내 공간 바로 오른쪽에 아담한 거실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중앙 벽면 위쪽에는 상제님 말씀이자 태상종도사님의 가르침인 ‘대인대의大仁大義’ 넉 자를 써놓은 액자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거실에서 주방쪽으로 들어가 좌측 방이 전용 도방인데 그 길목 천장에는 가가도장 북등이 매달려 멋진 도방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천신단을 모신 도방은 단정하고 깔끔한 분위기에 상제님과 태모님의 어진과 진영이 중심에 놓여 있고 태을주 족자와 천부경, 염표문이 좌우로 걸려 있으며, 진리 서적과 자료들로 가득 채워진 책장과 금방이라도 태을주 선율이 연주될 것만 같은 피아노가 또한 좌우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상주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가 감나무라고 하는데, 전 성도가 인터뷰를 하고자 마주 앉은 거실에 내온 것도 선홍색의 홍시와 백색 분으로 덮인 곶감이었다. 이날 진행된 인터뷰 역시 감 열매의 진액이 응축된 곶감처럼 도방의 열정과 순수한 감성이 잘 집약된 대화들로 이어져나갔다.
전 성도는 교사로서 부푼 꿈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벽지 학교에 발령받아 학교를 찾아가는 첫날, 면 소재지에서 대학 선배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지금의 남편 최 성도였다. 두 사람은 당시 같은 면내 학교에 있어 교사 모임에서 만날 기회가 생기기는 했지만, 전 성도가 낯가림이 있었던 탓에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친밀해지면서 마음이 열렸고 3년이 지난 후에는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전 성도는 결혼의 인연이 맺어진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상제님 신앙을 하며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데는 두 사람뿐 아니라 조상님들의 간절함이나 도움이 있었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고 열심히 살던 전 성도는 지난 2001년 가족을 통해 상제님 진리를 만났다. 교육대학교 4년 과정과 교직 생활, 그리고 결혼할 때까지도 줄곧 천주교 신앙을 해오던 전 성도는 교직에 들어선 후 벽지 학교로 발령을 받으면서 성당 나가는 게 어려워졌고, 결혼 후에도 이상하게 여건이 풀리지 않아 신앙 생활이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 때 대구에서 상제님 신앙을 하고 있던 언니 전명자 성도가 증산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잘 들어보지도 못한 곳에 다니는 언니가 걱정이 되었지만 그 진리 이야기를 들으면 딱히 뭐라고 반박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남동생에게 전해주려고 가져온 진리 관련 책이 전 성도의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 언니에게 자신이 읽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전 성도는 대학 시절 천주교 신앙을 하면서도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탈춤과 풍물놀이를 하는 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였으나, 정작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지는 못했던 아쉬운 기억을 갖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칠성님께 정화수를 떠 놓고 빌던 모습이나 정월대보름날 하는 동네 지신밟기나 동제 등의 풍속들이 단순한 미신이라고 여기지 않고 뭔가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고, 우리 교육이 서양 위주의 교육이라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해 오던 모습들을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문화식민지 같은 느낌이 들어 싫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언니가 준 책이 우리 문화나 말, 우리 민족에 깃든 뭔가를 알려주는 것 같은 영감을 받아 읽게 된 것이다.
책을 통해 새롭게 열린 진리의 신세계는 전 성도에게 많은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속에도 우리 민족의 사명이 들어있었다는 것이나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 등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평소 성당에 다닐 때도 마음이 편해 다녔을 뿐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는 않았는데, 진리의 근본 틀인 우주일년의 이법을 대하고서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하느님의 존재를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 또한 단군이 한 분인 줄 알고 있었는데 무려 47분이 통치를 하셨고 환국의 환인과 배달의 환웅까지 모두 신화로 알고 있었던 내용이 역사적 실체가 있는 진실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통치자의 이름과 통치기간, 있었던 일이나 치적이 세세히 나와 있는 것은 분명 역사적 사실관계가 바탕이 되어 기록된 것이며 조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전 성도는 어느 순간 교직에 있는 자신이 제대로 역사를 알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화를 한 후 직접 도장에 찾아가게 되었다. 처음 도장에 방문하였을 때 도장 책임자가 도전 5편 6~7장을 펴서 읽으며 설명을 해주었는데 오선위기의 기틀과 상씨름 대세에 대한 성구 말씀들이 지금의 세계 정세와 부합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상제님께서 1902년에 보신 천지공사에 의해 현 상황의 기틀이 정해졌다는 점에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했다.
전 성도는 도장에 찾아가 처음으로 주문을 읽으며 수행을 하였을 때, 머리 위쪽 백회로부터 시원한 게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그간 아이 셋을 거의 연년생으로 출산하며 나빠졌던 건강이 신기하게도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진리 인식에 수행 체험이 더해진 전 성도는 진리에 확신을 갖고 일정 준비를 거쳐 무난히 입도를 했다.
흔히 진리에 충격을 받고 깨우침과 지각이 열리게 되면 그것을 가족이나 주변 지인에게 전하고 싶게 마련이다. 전 성도도 증산도 진리를 만나 공부를 할수록 재미있고 가슴이 벅차오름을 체감하면서 남편인 최 성도에게 진리 이야기를 건네게 되었다. 하지만 평소 과학적 사고방식을 선호했던 남편은 종교 인식에 있어서도 과학적인 것만 믿어야 하며 사람은 착하게만 살면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내인 전 성도가 도장에 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해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탐탁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평소 5분 걷기도 힘들어할 정도로 심각했던 아내의 건강이 입도 후 수행을 통해 호전되는 것을 목격한 최 성도는 내심 충격을 받았고 아내의 신앙을 장려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계속되는 전 성도의 권유로 진리 서적을 읽게 되고 도장 방문도 했으며, 전 성도와 우주일년과 진리에 대한 도담을 나누고 팔관법과 우주변화원리 VOD 등을 같이 시청하기도 했다. 최 성도는 도전을 읽고 아내의 수행 체험을 지켜보면서 점차 진리를 수용하게 되었으며, 조상을 모시는 자세 등 진리 문화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서 2002년 12월 자연스럽게 입도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최 성도와 전 성도는 교사로서 교육에 대한 사명과 의식이 굳건한 만큼 자녀들의 인생과 장래에 대한 관점 또한 분명하다. 이들 부부는 도문에 입도를 한 후, 자식들도 진리 속에서 강건하게 중심을 지키며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희망해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도장을 같이 다녔고 자식에게 물려줄 가장 좋은 것은 유형적 재산보다 제대로 된 진리라는 생각 때문에 아이들도 입도를 하도록 했고 도장에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가풍을 만들었다.
전 성도는 남편과 아이들이 같이 신앙을 하면서 가족들이 하나로 공유하고 지켜나갈 기본적인 신앙 규율을 한 가지쯤 만들고 싶었다. 평소 치성에 정시 참석을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치성 시간에는 늦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는 가족 모두가 묵시적으로 공유하는 룰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업무 등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본의 아니게 치성에 좀 늦어지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아이들이 “엄마, 요즘 왜 그래?”라고 물으면서 신앙 코치를 하는 일도 생겨났다. 전 성도는 그럴 때 멋쩍은 웃음으로 응답을 보냈지만 속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신앙 정착은 잘 하였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도장에 따라 다닌 자녀들이 점차 청소년으로 성장을 하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 신앙의 시작을 자기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앙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되면서 스스로 자립 신앙을 할 수 있게 하는 문제가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무조건 하라고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스스로 진리를 깨쳐서 혼자서도 치성과 여러 행사에 참석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도장의 포정님과 협의를 해서 방학 중에 매주 1~2회 정도 날을 잡아 책을 정해 읽어 오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부를 하도록 유도했고, 책을 잘 안 보려고 하는 경우도 있어 적당한 보상도 하며 신앙 관리를 해나갔다. 또 책을 잘 보는 아이에게는 책을 정해주고 공책에 정리하도록 했다. 평소에 이야기를 할 때면 진리와 역사 이야기를 같이 풀어나갔고 현실 속에서 왜곡된 역사에 대해 분개를 하면서 공감대를 끌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관심과 정성이 통해서일까. 세 자녀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서 치성에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해주었다. 물론 고등학생이다 보니 전부 다 참석은 어려웠지만 일요일만큼은 담임선생님께 당당히 말하고 자율학습 대신 치성 참석을 하며 신앙의 힘을 키웠다.
그리고 아이가 대학에 진학을 하면서는 정말로 자립신앙을 굳건히 해나가야 할 시험대라는 생각에 걱정을 했으나 그것도 결과적으로 기우에 불과했다. “저에게 아이들은 자식이기 전에 소중한 가족의 일원이고 신앙을 잘했으면 하는 도반이기도 합니다. 대구에서 대학에 다니는 큰딸 같은 경우는 염려를 했지만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진리 홍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대견했습니다. 어떤 때는 바빠서 집에도 거의 안 오니 그래도 한 번씩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집에 가끔 오면 엄마가 활동 나가서 잘 못봤다고 투덜대기도 했어요.” 아이들의 신앙과 건강을 위해 도장과 가정도방에서 늘 기도하고 정성을 쏟는 전 성도는 큰딸과의 정감있는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며 스스로 신앙 자립을 해나가는 아이들에 대한 흐뭇함과 온화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전 성도는 입도 후 증산도 진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공부보다도 말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진리 내용들이라 토씨 하나 붙이는 것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고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이 진리를 어떻게 전개하고 표현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책을 읽고 강사들의 VOD도 열심히 시청했다. 이렇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것이 참 진리이고 상제님이 참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진리를 소중히 생각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걸 다시 표현하고자 정성을 기울이는 일은 순수한 진리의식과 신앙의지가 뒷받침이 돼야 가능한 일이다. 전 성도는 입도하고 신앙을 하는 과정에서 진리에 대한 자각과 확신이 강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태사부님, 사부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따른다는 자세로 신앙을 했고 도정에 참여해 왔다.
“제가 특별한 능력은 없어도 진리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아낌없이 다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힘들면 때로는 좀 쉬면서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전거의 페달을 계속 밟지 않으면 가지 못하고 넘어진다는 간단한 이치를 상기하곤 하죠. 정신을 가다듬고 내 신앙의 근본인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을 떠올리며 더욱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 성도의 이 말 속에는 그가 신앙을 생각하는 발상과 마음가짐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이러한 의식과 행동은 최 성도를 비롯한 가족신앙인 모두와 그대로 공유되고 보이지 않는 가가도장의 색채와 문화로도 남게 된다. 진리에 순종하는 삶은 결국 신앙의 강화와 도약으로 이어지면서 어떤 식으로든 좋은 결실을 맺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전 성도는 입도 이후 모든 일에 신앙을 우선으로 하며 생활했으며 그렇게 마음을 먹고 사니 크게 힘들다거나 어려움을 겪는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도장에서도 늘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자 노력했고, 처음부터 도장의 보직이나 당면한 여러 일들이 그저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신앙을 했다고 한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도장 일을 병행하는 것이 힘에 부칠 때도 있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여겼고, 어떤 때는 그런 과정이 시련 속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은혜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갖기도 했다.
최 성도도 신앙에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열심히 활동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역 사회의 종교적 편견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하여 한때 의기소침했던 시간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힘을 내서 난관을 돌파하겠다는 생각으로 업무 수행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교감 승진을 바라보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특이한 것은 아내인 전 성도 또한 같은 단계에 이르러 승진의 문턱에 있다는 점이다. 전 성도는 겁내지 않고 일을 열심히는 했지만 특별히 승진을 위해 애를 쓴 것은 아니라며 이 모든 것이 신명의 도움임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최 성도와 전 성도가 집에 가정도장을 마련한 시기는 2004~2005년경부터였다. 이들 가족이 아침에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도방의 천신단 앞에서 읍배를 드리고 인사를 올리는 것이다. 외출할 때나 집에 들어올 때도 항상 천신단 앞에서 상제님, 태모님께 인사를 먼저 드린다. 가족에게 삶의 한 부분이요 성경신의 바탕이 되고 있는 도방의 의미에 대해 전 성도는 다음과 같이 정리를 했다.
“집안에 어른을 모신 것처럼 평소에 하고 있습니다.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을 보면서 늘 깨어있는 일꾼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매일 태을주를 읽고 있어요. 집에서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청수 모시고 사배심고와 수행을 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신단 위에 포교대상자 사진을 올려놓고 기도하고 수행을 하기도 합니다. 가정도장이라고 특별히 무엇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가정에 천신단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늘 생활의 중심을 잡아주고 상제님, 태모님을 모신다는 든든함을 갖게 합니다. 그 힘이 모든 일에 미치고 작용을 하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전 성도는 또한 가가도장의 힘으로 가능했던 일들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이야기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 신앙인 여러 사람이 모여 장례식장에서 태을주를 읽어 드렸고 계속 태을주를 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49재 때는 가족 형제들, 조카들까지 모두 20명 가까이 도장에 참석하였습니다. 시할머니 장례식 때는 장례식장에 놓여 있는 STB 상생방송 화환과 도장 성도님이 함께 태을주 읽는 모습을 지켜보고서 진리에 관심을 가진 분이 있었고 평소에 상생방송을 즐겨보며 진리를 공부했다는 친구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단주를 팔에 끼워드리고 태을주와 도전, 환단고기를 넣어드렸습니다. 물론 49재도 도장에서 하고 형제들이 제물을 나눠서 준비하여 올렸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가가도장의 힘으로 가능했던 일들입니다. 평상시와는 다른 경우이기는 하지만 조상과 신명을 받들고 진리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 신앙을 하지 않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증산도 문화를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도방은 또 하나의 작은 도장이다. 그 규모에 차이가 있고 모시는 환경도 각기 다를 것이지만, 도방이 존재하는 이유와 의미를 분명히 자각하고 생활신앙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이 신앙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클 것이다. 이 가족의 도방은 그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되고 있다.
도방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신앙 계획과 각오를 물었다.
최 성도는 스스로의 신앙을 되돌아보며 “앞으로는 이성적인 차원에서 한걸음 나아가 좀 더 당당하고 간절함이 묻어나는 신앙으로 업그레이드됐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살려내야 한다는 마음을 실어 제대로 표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 친가나 처가쪽 가족들 중 신앙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가슴에 응어리진 것도 잘 풀려나가 가족신앙이 마무리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했고,
전 성도는 “제 신앙의 방향은 매일 태을주 읽으며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리는 것입니다. 사람 살리는 인도가 사실 전부라는 생각을 요즘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만나는 분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책을 전하여 진리를 알게 하는 것이죠. 그것이 제가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조상과 자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봉사이고 제 신앙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1000일 기도를 지속하며 한층 노력하는 신앙을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매듭을 지었다.
이번 가정도장 탐방은 신앙생활에 있어 도방에 대한 의미 부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진리와 신앙을 바라보고 실천하는 기본 의식과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삼 깨닫게 해준 기회가 되었다. 또한 가족들 간의 신앙적 교류, 특히 자녀신앙에 대한 정성과 관점 등이 남과 구분되는 도방의 자산이요 문화적 특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가족이 형성하고 지켜갈 도방은 앞으로도 많은 시너지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가족신앙의 의식과 의지가 굳건한 만큼 도방의 결집력과 염원도 클 것이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결실들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 도방의 입구를 밝히고 있는 북등처럼 가가도장의 밝은 빛이 온 누리를 환히 비추기를 기원드린다
전 성도는 수행 시의 몇 가지 체험에 대해 더 얘기했다. “제가 처음 신앙할 때 도장에서 수행을 여러 번 하였는데 그때마다 피리 소리가 들렸어요. 같이 수행하던 포정님도 저와 같이 수행하면 피리소리가 들린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남편과 같이 도장에서 수행하면 또 다른 목소리로 같이 주문을 읽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 조상님이 같이 수행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 수행을 하면서 예지몽을 꾸는 경우도 많구요, 도전에서도 좋은 기운이 나온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도전을 펴놓으면 심신이 편안해지고 잠도 잘 오거든요. 제 친할머니께서 90세가 되셨을 때 입문을 하셨는데 그때 주문을 권유해 알려드렸더니 꼭 읽으셨어요. 후에 요양원에 가셔서도 넷째 손녀인 저를 자꾸 찾으셨다고 해요. 평소 저에게 애정이 더 있거나 하신 게 아니었는데도 유독 저를 찾으시다 돌아가셨는데, 꿈에 할머니께서 황금빛이 으리으리한 큰 집에서 나오시는 걸 봤어요.”
전 성도는 같이 생활하는 주변 동료나 만나는 지인들에게 진리 책자를 전하고 있고, 동창회 모임에서도 부지런히 진리 자료 전달과 STB상생방송 채널 홍보에 힘을 쏟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아시아 이상주의> 책이 포교에 유용한 자료 중 하나라고도 했다. 또 외국인이 원어민으로 학교에 오는 경우가 있는데 먼 타국에서 이 학교에 온 것은 그 조상들의 노력이고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개벽 소식을 알고 자신들의 나라에 알릴 수 있도록 소책자를 주거나 영어번역본 책자를 꼭 건넨다고 한다. 전 성도는 온라인에서도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명언나라 진리나라’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으로 상제님 진리를 전하고 있는데, 울산에서 신앙하는 도제도 이 카페를 통해 포교가 성사되었다고 한다. 최 성도의 경우에는 지인들에게 책을 전하는 활동을 꾸준히 벌이고 있으며, 요소요소에서 홍보 거치대 5개 정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비치한 자료들이 꾸준히 소진되면서 기운이 붙고 있다고 한다.
경북 상주시에 있는 상주무양도장에는 부부가 함께 교사로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최춘석, 전숙희 성도가 신앙을 하고 있다. 진리를 만난 이후 모든 생활을 신앙 중심으로 풀어나가면서 늘 감사와 공경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전숙희 성도(포감)와 든든한 남편이요 최상의 도반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가족신앙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최춘석 성도(재정)는 조화롭고 안정감을 주는 도방 운영을 하고 있다. 성숙한 진리 의식을 갖고 자녀에게 최고의 신앙 자산을 물려주고자 늘 기도와 정성을 잊지 않고 있는 이 부부의 도방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열매의 진액이 응축된 곶감처럼
만물이 생동하는 경칩이 지나고 3월 셋째 주가 시작되는 일요일 오후, 취재진은 삼백三白(쌀, 누에, 곶감)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경북 상주시 신봉동에 위치한 가정 신앙의 성소를 방문했다. 도방의 주인이 교직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지, 이곳 가가도장의 정서와 분위기는 예禮와 덕德으로 촘촘히 덮인 보따리를 살며시 열어 음미해야 할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 풀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번 호 도방 인터뷰의 사연은 상주무양도장에서 신앙하고 있는 최춘석, 전숙희 성도(이하 최 성도, 전 성도로 약칭) 부부의 이야기다. 두 사람 모두 현직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며, 평범한 듯하지만 순수하고 절제된 삶과 의지로 의미있는 신앙 생활을 다져나가고 있다. 2녀 1남의 자녀까지 함께 가족신앙을 하고 있는데, 부모이자 신앙인으로서 살아온 이야기 외에도 자녀들과 함께 삶과 신앙에 대해 소통하는 방식이 색다른 감흥을 안겨주는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취재를 가보면 여느 경우와 달리 처음이라도 낯설지 않은 정감이 담겨있는 곳이 도방이다. 생활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가정도장의 도기가 봄바람에 실려오는 신록의 내음처럼 훈훈한 기운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 부부의 도방도 그러했다. 아파트 7층에 소재한 가가도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최 성도와 전 성도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실내 공간 바로 오른쪽에 아담한 거실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중앙 벽면 위쪽에는 상제님 말씀이자 태상종도사님의 가르침인 ‘대인대의大仁大義’ 넉 자를 써놓은 액자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거실에서 주방쪽으로 들어가 좌측 방이 전용 도방인데 그 길목 천장에는 가가도장 북등이 매달려 멋진 도방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천신단을 모신 도방은 단정하고 깔끔한 분위기에 상제님과 태모님의 어진과 진영이 중심에 놓여 있고 태을주 족자와 천부경, 염표문이 좌우로 걸려 있으며, 진리 서적과 자료들로 가득 채워진 책장과 금방이라도 태을주 선율이 연주될 것만 같은 피아노가 또한 좌우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상주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가 감나무라고 하는데, 전 성도가 인터뷰를 하고자 마주 앉은 거실에 내온 것도 선홍색의 홍시와 백색 분으로 덮인 곶감이었다. 이날 진행된 인터뷰 역시 감 열매의 진액이 응축된 곶감처럼 도방의 열정과 순수한 감성이 잘 집약된 대화들로 이어져나갔다.
교사로서의 자각을 불러온 증산도의 가르침
전 성도는 교사로서 부푼 꿈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벽지 학교에 발령받아 학교를 찾아가는 첫날, 면 소재지에서 대학 선배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지금의 남편 최 성도였다. 두 사람은 당시 같은 면내 학교에 있어 교사 모임에서 만날 기회가 생기기는 했지만, 전 성도가 낯가림이 있었던 탓에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친밀해지면서 마음이 열렸고 3년이 지난 후에는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전 성도는 결혼의 인연이 맺어진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상제님 신앙을 하며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데는 두 사람뿐 아니라 조상님들의 간절함이나 도움이 있었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고 열심히 살던 전 성도는 지난 2001년 가족을 통해 상제님 진리를 만났다. 교육대학교 4년 과정과 교직 생활, 그리고 결혼할 때까지도 줄곧 천주교 신앙을 해오던 전 성도는 교직에 들어선 후 벽지 학교로 발령을 받으면서 성당 나가는 게 어려워졌고, 결혼 후에도 이상하게 여건이 풀리지 않아 신앙 생활이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 때 대구에서 상제님 신앙을 하고 있던 언니 전명자 성도가 증산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잘 들어보지도 못한 곳에 다니는 언니가 걱정이 되었지만 그 진리 이야기를 들으면 딱히 뭐라고 반박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남동생에게 전해주려고 가져온 진리 관련 책이 전 성도의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 언니에게 자신이 읽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전 성도는 대학 시절 천주교 신앙을 하면서도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탈춤과 풍물놀이를 하는 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였으나, 정작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지는 못했던 아쉬운 기억을 갖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칠성님께 정화수를 떠 놓고 빌던 모습이나 정월대보름날 하는 동네 지신밟기나 동제 등의 풍속들이 단순한 미신이라고 여기지 않고 뭔가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고, 우리 교육이 서양 위주의 교육이라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해 오던 모습들을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문화식민지 같은 느낌이 들어 싫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언니가 준 책이 우리 문화나 말, 우리 민족에 깃든 뭔가를 알려주는 것 같은 영감을 받아 읽게 된 것이다.
책을 통해 새롭게 열린 진리의 신세계는 전 성도에게 많은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속에도 우리 민족의 사명이 들어있었다는 것이나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 등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평소 성당에 다닐 때도 마음이 편해 다녔을 뿐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는 않았는데, 진리의 근본 틀인 우주일년의 이법을 대하고서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하느님의 존재를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 또한 단군이 한 분인 줄 알고 있었는데 무려 47분이 통치를 하셨고 환국의 환인과 배달의 환웅까지 모두 신화로 알고 있었던 내용이 역사적 실체가 있는 진실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통치자의 이름과 통치기간, 있었던 일이나 치적이 세세히 나와 있는 것은 분명 역사적 사실관계가 바탕이 되어 기록된 것이며 조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전 성도는 어느 순간 교직에 있는 자신이 제대로 역사를 알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화를 한 후 직접 도장에 찾아가게 되었다. 처음 도장에 방문하였을 때 도장 책임자가 도전 5편 6~7장을 펴서 읽으며 설명을 해주었는데 오선위기의 기틀과 상씨름 대세에 대한 성구 말씀들이 지금의 세계 정세와 부합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상제님께서 1902년에 보신 천지공사에 의해 현 상황의 기틀이 정해졌다는 점에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했다.
전 성도는 도장에 찾아가 처음으로 주문을 읽으며 수행을 하였을 때, 머리 위쪽 백회로부터 시원한 게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그간 아이 셋을 거의 연년생으로 출산하며 나빠졌던 건강이 신기하게도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진리 인식에 수행 체험이 더해진 전 성도는 진리에 확신을 갖고 일정 준비를 거쳐 무난히 입도를 했다.
아내의 변화와 정성에 마음을 열다
흔히 진리에 충격을 받고 깨우침과 지각이 열리게 되면 그것을 가족이나 주변 지인에게 전하고 싶게 마련이다. 전 성도도 증산도 진리를 만나 공부를 할수록 재미있고 가슴이 벅차오름을 체감하면서 남편인 최 성도에게 진리 이야기를 건네게 되었다. 하지만 평소 과학적 사고방식을 선호했던 남편은 종교 인식에 있어서도 과학적인 것만 믿어야 하며 사람은 착하게만 살면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내인 전 성도가 도장에 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해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탐탁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평소 5분 걷기도 힘들어할 정도로 심각했던 아내의 건강이 입도 후 수행을 통해 호전되는 것을 목격한 최 성도는 내심 충격을 받았고 아내의 신앙을 장려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계속되는 전 성도의 권유로 진리 서적을 읽게 되고 도장 방문도 했으며, 전 성도와 우주일년과 진리에 대한 도담을 나누고 팔관법과 우주변화원리 VOD 등을 같이 시청하기도 했다. 최 성도는 도전을 읽고 아내의 수행 체험을 지켜보면서 점차 진리를 수용하게 되었으며, 조상을 모시는 자세 등 진리 문화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서 2002년 12월 자연스럽게 입도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물려줄 최대의 유산은 진리
최 성도와 전 성도는 교사로서 교육에 대한 사명과 의식이 굳건한 만큼 자녀들의 인생과 장래에 대한 관점 또한 분명하다. 이들 부부는 도문에 입도를 한 후, 자식들도 진리 속에서 강건하게 중심을 지키며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희망해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도장을 같이 다녔고 자식에게 물려줄 가장 좋은 것은 유형적 재산보다 제대로 된 진리라는 생각 때문에 아이들도 입도를 하도록 했고 도장에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가풍을 만들었다.
전 성도는 남편과 아이들이 같이 신앙을 하면서 가족들이 하나로 공유하고 지켜나갈 기본적인 신앙 규율을 한 가지쯤 만들고 싶었다. 평소 치성에 정시 참석을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치성 시간에는 늦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는 가족 모두가 묵시적으로 공유하는 룰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업무 등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본의 아니게 치성에 좀 늦어지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아이들이 “엄마, 요즘 왜 그래?”라고 물으면서 신앙 코치를 하는 일도 생겨났다. 전 성도는 그럴 때 멋쩍은 웃음으로 응답을 보냈지만 속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신앙 정착은 잘 하였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도장에 따라 다닌 자녀들이 점차 청소년으로 성장을 하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 신앙의 시작을 자기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앙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되면서 스스로 자립 신앙을 할 수 있게 하는 문제가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무조건 하라고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스스로 진리를 깨쳐서 혼자서도 치성과 여러 행사에 참석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도장의 포정님과 협의를 해서 방학 중에 매주 1~2회 정도 날을 잡아 책을 정해 읽어 오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부를 하도록 유도했고, 책을 잘 안 보려고 하는 경우도 있어 적당한 보상도 하며 신앙 관리를 해나갔다. 또 책을 잘 보는 아이에게는 책을 정해주고 공책에 정리하도록 했다. 평소에 이야기를 할 때면 진리와 역사 이야기를 같이 풀어나갔고 현실 속에서 왜곡된 역사에 대해 분개를 하면서 공감대를 끌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관심과 정성이 통해서일까. 세 자녀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서 치성에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해주었다. 물론 고등학생이다 보니 전부 다 참석은 어려웠지만 일요일만큼은 담임선생님께 당당히 말하고 자율학습 대신 치성 참석을 하며 신앙의 힘을 키웠다.
그리고 아이가 대학에 진학을 하면서는 정말로 자립신앙을 굳건히 해나가야 할 시험대라는 생각에 걱정을 했으나 그것도 결과적으로 기우에 불과했다. “저에게 아이들은 자식이기 전에 소중한 가족의 일원이고 신앙을 잘했으면 하는 도반이기도 합니다. 대구에서 대학에 다니는 큰딸 같은 경우는 염려를 했지만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진리 홍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대견했습니다. 어떤 때는 바빠서 집에도 거의 안 오니 그래도 한 번씩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집에 가끔 오면 엄마가 활동 나가서 잘 못봤다고 투덜대기도 했어요.” 아이들의 신앙과 건강을 위해 도장과 가정도방에서 늘 기도하고 정성을 쏟는 전 성도는 큰딸과의 정감있는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며 스스로 신앙 자립을 해나가는 아이들에 대한 흐뭇함과 온화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진리에 순종하는 삶이 가져올 신앙의 도약
전 성도는 입도 후 증산도 진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공부보다도 말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진리 내용들이라 토씨 하나 붙이는 것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고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이 진리를 어떻게 전개하고 표현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책을 읽고 강사들의 VOD도 열심히 시청했다. 이렇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것이 참 진리이고 상제님이 참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진리를 소중히 생각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걸 다시 표현하고자 정성을 기울이는 일은 순수한 진리의식과 신앙의지가 뒷받침이 돼야 가능한 일이다. 전 성도는 입도하고 신앙을 하는 과정에서 진리에 대한 자각과 확신이 강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태사부님, 사부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따른다는 자세로 신앙을 했고 도정에 참여해 왔다.
“제가 특별한 능력은 없어도 진리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아낌없이 다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힘들면 때로는 좀 쉬면서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전거의 페달을 계속 밟지 않으면 가지 못하고 넘어진다는 간단한 이치를 상기하곤 하죠. 정신을 가다듬고 내 신앙의 근본인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을 떠올리며 더욱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 성도의 이 말 속에는 그가 신앙을 생각하는 발상과 마음가짐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이러한 의식과 행동은 최 성도를 비롯한 가족신앙인 모두와 그대로 공유되고 보이지 않는 가가도장의 색채와 문화로도 남게 된다. 진리에 순종하는 삶은 결국 신앙의 강화와 도약으로 이어지면서 어떤 식으로든 좋은 결실을 맺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전 성도는 입도 이후 모든 일에 신앙을 우선으로 하며 생활했으며 그렇게 마음을 먹고 사니 크게 힘들다거나 어려움을 겪는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도장에서도 늘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자 노력했고, 처음부터 도장의 보직이나 당면한 여러 일들이 그저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신앙을 했다고 한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도장 일을 병행하는 것이 힘에 부칠 때도 있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여겼고, 어떤 때는 그런 과정이 시련 속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은혜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갖기도 했다.
최 성도도 신앙에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열심히 활동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역 사회의 종교적 편견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하여 한때 의기소침했던 시간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힘을 내서 난관을 돌파하겠다는 생각으로 업무 수행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교감 승진을 바라보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특이한 것은 아내인 전 성도 또한 같은 단계에 이르러 승진의 문턱에 있다는 점이다. 전 성도는 겁내지 않고 일을 열심히는 했지만 특별히 승진을 위해 애를 쓴 것은 아니라며 이 모든 것이 신명의 도움임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도방은 신앙 생활의 중심축
최 성도와 전 성도가 집에 가정도장을 마련한 시기는 2004~2005년경부터였다. 이들 가족이 아침에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도방의 천신단 앞에서 읍배를 드리고 인사를 올리는 것이다. 외출할 때나 집에 들어올 때도 항상 천신단 앞에서 상제님, 태모님께 인사를 먼저 드린다. 가족에게 삶의 한 부분이요 성경신의 바탕이 되고 있는 도방의 의미에 대해 전 성도는 다음과 같이 정리를 했다.
“집안에 어른을 모신 것처럼 평소에 하고 있습니다.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을 보면서 늘 깨어있는 일꾼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매일 태을주를 읽고 있어요. 집에서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청수 모시고 사배심고와 수행을 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신단 위에 포교대상자 사진을 올려놓고 기도하고 수행을 하기도 합니다. 가정도장이라고 특별히 무엇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가정에 천신단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늘 생활의 중심을 잡아주고 상제님, 태모님을 모신다는 든든함을 갖게 합니다. 그 힘이 모든 일에 미치고 작용을 하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전 성도는 또한 가가도장의 힘으로 가능했던 일들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이야기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 신앙인 여러 사람이 모여 장례식장에서 태을주를 읽어 드렸고 계속 태을주를 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49재 때는 가족 형제들, 조카들까지 모두 20명 가까이 도장에 참석하였습니다. 시할머니 장례식 때는 장례식장에 놓여 있는 STB 상생방송 화환과 도장 성도님이 함께 태을주 읽는 모습을 지켜보고서 진리에 관심을 가진 분이 있었고 평소에 상생방송을 즐겨보며 진리를 공부했다는 친구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단주를 팔에 끼워드리고 태을주와 도전, 환단고기를 넣어드렸습니다. 물론 49재도 도장에서 하고 형제들이 제물을 나눠서 준비하여 올렸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가가도장의 힘으로 가능했던 일들입니다. 평상시와는 다른 경우이기는 하지만 조상과 신명을 받들고 진리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 신앙을 하지 않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증산도 문화를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도방은 또 하나의 작은 도장이다. 그 규모에 차이가 있고 모시는 환경도 각기 다를 것이지만, 도방이 존재하는 이유와 의미를 분명히 자각하고 생활신앙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이 신앙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클 것이다. 이 가족의 도방은 그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되고 있다.
가가도장의 힘으로 이뤄야 할 것들
도방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신앙 계획과 각오를 물었다.
최 성도는 스스로의 신앙을 되돌아보며 “앞으로는 이성적인 차원에서 한걸음 나아가 좀 더 당당하고 간절함이 묻어나는 신앙으로 업그레이드됐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살려내야 한다는 마음을 실어 제대로 표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 친가나 처가쪽 가족들 중 신앙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가슴에 응어리진 것도 잘 풀려나가 가족신앙이 마무리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했고,
전 성도는 “제 신앙의 방향은 매일 태을주 읽으며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리는 것입니다. 사람 살리는 인도가 사실 전부라는 생각을 요즘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만나는 분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책을 전하여 진리를 알게 하는 것이죠. 그것이 제가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조상과 자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봉사이고 제 신앙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1000일 기도를 지속하며 한층 노력하는 신앙을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매듭을 지었다.
이번 가정도장 탐방은 신앙생활에 있어 도방에 대한 의미 부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진리와 신앙을 바라보고 실천하는 기본 의식과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삼 깨닫게 해준 기회가 되었다. 또한 가족들 간의 신앙적 교류, 특히 자녀신앙에 대한 정성과 관점 등이 남과 구분되는 도방의 자산이요 문화적 특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가족이 형성하고 지켜갈 도방은 앞으로도 많은 시너지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가족신앙의 의식과 의지가 굳건한 만큼 도방의 결집력과 염원도 클 것이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결실들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 도방의 입구를 밝히고 있는 북등처럼 가가도장의 밝은 빛이 온 누리를 환히 비추기를 기원드린다
도방에서의 수행과 포교
최 성도는 평소 도방에서 수행 시 보호신명이 같이 수행하는 걸 느끼는 경우가 많다. 도장에서 직선조 천도치성을 올리던 날에는 친가쪽 집에서 하는 가게 영업이 온 종일 사람들로 북적이면서 유독 잘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전 성도는 매일 도장을 방문한다는 생각으로 생활하며 주로 도장에서 수행에 집중하는 편이다. 전 성도가 태을주 수행을 통해 출산으로 나빠진 건강을 회복했음은 이미 언급한 바 있는데,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가게에서 장사하며 늘 고된 생활을 하고 계신 시어머니께도 아프지 마시고 편안하시라는 뜻으로 태을주를 알려드렸다. 그랬더니 시어머니께서 하루는 가게에 손님이 없어 태을주를 읽고 있었더니 손님들이 많이 몰려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한다.전 성도는 수행 시의 몇 가지 체험에 대해 더 얘기했다. “제가 처음 신앙할 때 도장에서 수행을 여러 번 하였는데 그때마다 피리 소리가 들렸어요. 같이 수행하던 포정님도 저와 같이 수행하면 피리소리가 들린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남편과 같이 도장에서 수행하면 또 다른 목소리로 같이 주문을 읽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 조상님이 같이 수행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 수행을 하면서 예지몽을 꾸는 경우도 많구요, 도전에서도 좋은 기운이 나온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도전을 펴놓으면 심신이 편안해지고 잠도 잘 오거든요. 제 친할머니께서 90세가 되셨을 때 입문을 하셨는데 그때 주문을 권유해 알려드렸더니 꼭 읽으셨어요. 후에 요양원에 가셔서도 넷째 손녀인 저를 자꾸 찾으셨다고 해요. 평소 저에게 애정이 더 있거나 하신 게 아니었는데도 유독 저를 찾으시다 돌아가셨는데, 꿈에 할머니께서 황금빛이 으리으리한 큰 집에서 나오시는 걸 봤어요.”
전 성도는 같이 생활하는 주변 동료나 만나는 지인들에게 진리 책자를 전하고 있고, 동창회 모임에서도 부지런히 진리 자료 전달과 STB상생방송 채널 홍보에 힘을 쏟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아시아 이상주의> 책이 포교에 유용한 자료 중 하나라고도 했다. 또 외국인이 원어민으로 학교에 오는 경우가 있는데 먼 타국에서 이 학교에 온 것은 그 조상들의 노력이고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개벽 소식을 알고 자신들의 나라에 알릴 수 있도록 소책자를 주거나 영어번역본 책자를 꼭 건넨다고 한다. 전 성도는 온라인에서도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명언나라 진리나라’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으로 상제님 진리를 전하고 있는데, 울산에서 신앙하는 도제도 이 카페를 통해 포교가 성사되었다고 한다. 최 성도의 경우에는 지인들에게 책을 전하는 활동을 꾸준히 벌이고 있으며, 요소요소에서 홍보 거치대 5개 정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비치한 자료들이 꾸준히 소진되면서 기운이 붙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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