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시선 - 인류 최초의 창조 학교 바우하우스 이야기
[이 책만은 꼭]
이해영 객원기자 / 서울관악도장
김정운 박사의 『창조적 시선』 책을 접한 첫인상은, 일단 책 표지가 산뜻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벽돌을 넘어 시멘트 블록 같은 외형을 가진 책의 두께에 일단 기가 질릴 수 있다. 독서하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하는 지금 이렇게 두꺼운 책 그리고 정말 사악하다고 할 만한 가격을 지닌 이 책을 사서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이 많이 샀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드물다는 『총 균 쇠』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되는 건 아닐까? 그러기에는 정말 솔직히 두껍고, 비싸다.
하지만 내용을 읽다 보면 재미가 있다. 흥미진진한 126가지 이야기가 마치 연작 드라마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읽다 보면 20세기 창조의 역사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시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창조와 편집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근대 독일의 시각⋅조형예술 학교로 설립되어 모더니즘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바우하우스Bauhaus#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바우하우스의 창조적 시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줌과 동시에 20세기 창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저자의 10년간 연구의 결정체이다. 총 세 개의 파트 속에 126개의 유닛unit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유닛이 연결돼 있어 다음 내용이 궁금하여 눈을 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책은 바우하우스뿐 아니라 그 시대의 역사와 화가들의 생동감 넘친 일화와 함께 수백 권의 책 내용이 압축되어 있는데, 소개된 정보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식의 보물 창고와 같아서 창조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ChatGPT가 모든 질문에 대해 답을 해 주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어차피 그 대답도 기존에 있는 내용과 자료들의 재가공이지 않을까? 차라리 내 스스로 이를 수집하고 가공하고 재편집하는 ‘창조적 능력’을 지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책을 보는 이들에게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제시해 준 창조적 시선의 편집 및 구성과 함께 사진과 미술 작품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이 책은 보는 즐거움을 제공해 준다. 또한 책에 사진과 그림이 많아서, 아마도 이 책을 베개 삼아 낮잠을 자고 나면 머리에 책 내용이 쏘옥 들어올 것이라는 유쾌한 상상을 선사해 주는 부가적인 즐거움도 있다.
방대한 책인 만큼 미주, 참고문헌, 색인은 잘 정리되어 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여러 가지 책들의 출간을 기대하게 하면서 다음처럼 마무리를 짓고 있다.
바닷가에서 사랑스러운 강아지와 이렇게 지내다가 다 늙으면 ‘노인과 개’라는 책도 쓰고 싶습니다. ‘노인과 바다’에 버금가는 책이 될 겁니다.
‘아, 이 책들을 다 쓰려면 난 아주 오래오래 살아야 합니다.’
........
난, 아예 안 죽을 수도 있습니다. (책 968쪽)
김정운다운 마무리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정리되었고, 총 3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부분은 저자가 말하는 바우하우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한데, 바우하우스의 기능주의도 독일 프로이센 문화를 빼고 설명하기는 힘들다고 주장한다. 거칠게 표현하면 프로이센에서 비롯된 독일 역사, 문화에 관한 공부는 바우하우스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한다. 아울러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독일 프로이센 군대와 일본 군국주의의 관계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의 문제의식은 지속해서 공부해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이제 Part 1과 Part 2의 준비 과정을 통해 Part 3에서는 좀 더 심화한 바우하우스 이해가 가능해진다. 창조적 공부는 스스로 ‘메타언어’를 창조할 때 가능하다.
이제 이 방대한 바우하우스 이야기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저자는 독일에서 공부한 게 ‘일단 의심하기’라는 사고의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왜? 누가? 무슨 근거로..’라는 접근의 틀, 이걸 공부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학설을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고,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궁금함을 풀어 가는 걸 배웠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창조’와 관련된 궁금증을 풀기 위해 ‘구글 엔그램 뷰어’에서 검색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어떤 대상에 관해 알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그 대상, 그 언어가 도대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의 문화적⋅사회적 맥락, 즉 구성사적 맥락을 읽어야 그 뜻이 정확해진다.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은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언젠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대상을 ‘원래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과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내가 현재의 그 대상을 바꿀 수 있다. 아예 새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있었던 것’으로 보면 내가 개입할 영역이 전혀 없다. 그저 반복할 뿐이다. 그래서 구성사적 관점, 즉 역사적 관점이 중요한 것이다. (46~47쪽)
궁금했던 사항은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되는 문제였다. 우리는 근대화를 ‘서양을 대리한 일본’에 의해 강제로 주입받았고, 해방 이후에는 ‘미군 부대’를 통해 유입된 압축적 근대화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서구 근대의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창조’는 불가능해진다. “왜?”, “어떻게?”라는 질문이 빠져 있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에디톨로지Editology(편집학編輯學)적’으로 이야기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과거 어느 한 때의 ‘편집물’이라고 말한다. 존재하는 것들의 편집 과정과 그 맥락의 이해를 전제로 하는 에디톨로지에서 ‘창조’는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현존하는 편집의 방식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사람에게만 창조의 기회는 주어진다고 역설한다. 창조, 참 쉬운 일이었다.
저자는 ‘창조’라는 개념 구성을 필요로 했던 첫 번째 사건은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의 등장이라고 한다. 한 개인의 의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며, 마치 강처럼 흘러간다는 주장이다. 유사한 개념을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도 주장하였다.
‘자유연상’이나 ‘의식의 흐름’이 창조와 연관되는 가장 결정적인 까닭은 ‘메타언어’의 창출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으로, ‘의식의 흐름’을 통해 ‘편집의 차원’을 달리하는 생각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통상의 맥락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각이 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낯선 연결 고리를 개념화할 때 ‘메타언어’가 창출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사진기의 출현으로 역할을 잃은 화가들이 ‘재현’에서 자유로워져 인상주의, 표현주의를 거쳐 추상주의까지 이르는 변화의 발전, 즉 ‘시각적 전환’이 일어났다. 객관적 세상의 ‘재현’이 아닌, 시각적 인상을 주체적으로 ‘표현’하게 되면서 인간의 공간 의식과 시간 의식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재현’, 즉 모방할 수 없게 되었으니 화가들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 즉 ‘편집의 자유’를 얻게 되었고 이 모든 시각적 전환의 결과들은 깔때기처럼 1919년 개교된 ‘바우하우스’로 수렴된 것이다.
이 4차 산업혁명은 독일에 이미 존재하던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에서 끌어온 것이다. 이는 2011년 하노버 박람회에 처음 소개된 개념으로 한계가 분명해 보이는 독일 제조업의 미래를 진단하며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으로 준비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독일 정부나 경제계는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하에 ‘정보통신기술’과 ‘제조업’의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슈바프는 이처럼 독일에서 전문가들 사이에 회자되던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으로 살짝 바꿔 소개한 것이라고 한다. 슈바프는 미래 변화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불안감을 아주 효과적으로 구체화해 불안감을 부추기는 개념으로 ‘혁명’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이다. 이 4차 산업혁명 개념은 칼럼과 책을 통해 빠르고 매우 효과적으로, 특히 한국 사회에 더 강력히 전달됐다.
지구상 어떤 나라보다 대한민국에서 4차 산업혁명은 매우 특별하게 논의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매우 흥미롭고 정치적인 개념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4차 산업혁명 개념이 느닷없이 부상한 것은 순전히 박근혜 정부의 몰락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한국 사회에서 산업화 세대의 몰락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20세기 한국 사회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대립과 충돌로 설명할 수 있는데, 21세기에 들어서 두 세력의 대립은 변증법적으로 마무리되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둘 다 사라졌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산업화 세대의 우상인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권력을 잡으면서 뒷전에 물러났던 산업화 시대의 인재들이 재등용되었다. 정책이 과거로 회귀하게 된 것인데, 박근혜 정부는 뜬금없이 ‘창조 경제’를 부르짖는 모순적 상황이 전개되었다.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든 것이다. 좋은 개념을 모았는데 실질적인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창조 경제’를 부르짖으며, 가는 곳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몰락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이 난무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창조 경제, 창조 경영, 창조 사회와 같은 개념들이 몰락한 박근혜 정부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때마침 4차 산업혁명이 나타났고,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참으로 황당하게도, 산업화 시대의 완벽한 몰락과 더불어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지극히 낡은 산업화 시대의 구호인 ‘산업혁명’을 또다시 부르짖었다고 저자는 비판적으로 말한다.
‘혁명’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격렬한 변화를 일컫는데,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 증기기관의 발명이 그렇게 급격했느냐는 비판으로 시작해서, 저자는 산업혁명이 아니라 ‘지식혁명’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후 중국에서 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담고 있고, 당시 영토를 초월해 전개되었던 지식 공동체의 출현인 ‘편지 공화국’의 이야기까지. 이 책은 이렇게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전개되어 간다.
우선 눈에 가는 2개의 유닛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엄청난 두께에 미리 겁먹지 말고 찬찬히 읽으면 많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들을 당연하게만 여기지 말고, 말랑말랑한 상태로 두뇌를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당연한 것을 의심해 보고 왜 그런지 근거를 찾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창조적인 내가 되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저자 김정운은 자유로운 영혼처럼 뽀글뽀글한 머리 모양에다 장난기 가득하고 발랄한 모습으로 비쳐 가벼워 보이지만, 굉장한 깊이를 가진 문화심리학자이자 ‘나름 화가’이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디플롬, 박사)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전임강사 및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 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하고 2015년 수료했다.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와 터를 잡은 곳은 전라남도 여수. 창밖으로 바다가 내다보이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가끔 작은 배를 몰고 나가 고기를 잡는다. 책으로 빼곡한 서재에서 글을 쓰며 시간 대부분을 보낸다. 조선일보 ‘김정운의 여수만만’과 채널예스 ‘김정운의 인터벨룸’을 연재 중이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에디톨로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을 집필했다.
그의 주된 저서는 『에디톨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에디톨로지』를 통해 “창조는 편집이다.”라고 외쳤다. 저자는 ‘편집한다’라는 뜻의 ‘Edit’와 ‘학문, 연구, 이론’이란 뜻을 가진 라틴어 ‘-ologia’를 합쳐 ‘Editology(에디톨로지, 굳이 번역하자면 편집학編輯學)’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으며, 기존에 익히 존재하는 정보와 기술을 나만의 새로운 맥락으로 편집하였을 때, 진정한 창조가 탄생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데이터를 모으고, 데이터를 편집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에디톨로지』를 통해 “독일 예술종합학교 ‘바우하우스’에 관한 책을 쓰겠노라.”라고 이미 약속했다(『에디톨로지』 198쪽 참조). 책에서는 2016년에 출판 예정이라고 했지만, 2016년은 이미 지나갔다. 『에디톨로지』 이후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창조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집요하고 위대한 연구 결과의 완결판이 드디어 『창조적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창조적 시선』을 읽기 전에 『에디 톨로지』의 몇 부분을 살펴보고 『창조적 시선』과 연결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가장 창의적일 때는 멍하니 있을 때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멍하니 있을 때, 생각은 아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가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할 때가 있다. 그러고는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거꾸로 짚어 나간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생각의 흐름을 찾아냈을 때, 자신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날아다녔던 생각의 범위에 놀라게 된다.
오늘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보통 사람들도 천재처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신이 일부 천재들에게만 부여한 ‘날아다니는 생각’을 이제 보통 사람들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바로 ‘쥐’ 때문이다. 그건 컴퓨터의 ‘마우스’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생각을 날게 하는 도구를 갖게 된 것이다.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관심 있는 곳을 클릭하면 생각은 바로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방금 전의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다. 이건 엄청난 혁명이다.
- ‘04.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 쥐 때문이다!’ 중에서
자라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지적 충격을 받는다. ‘아, 나도 한번 저 사람처럼 글 쓰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다. 지식욕도 일종의 허영이다. 한번 폼 나고 싶은 거다. 사람은 남들에게 폼 나 보이고 싶을 때 성장한다. 어릴 때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나이 들면서는 대중에게 폼 나 보이려고 한다. 그리고 애나 어른이나 남자는 항상 여자에게 폼 나 보이고 싶어 한다. 헤겔의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의 핵심은 나도 한번 폼 나고 싶다는 심리학적 ‘동기(motivation)’다.
김용옥은 학문적 텍스트에 ‘나’라는 주어를 처음 쓴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인문⋅사회과학 텍스트에 ‘나’라는 주어를 쓰는 경우는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김용옥이 처음이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연과학이 학문의 전형으로 여겨진 후, 인식주체인 ‘나’는 학문적 글쓰기에서 사라졌다. 자연과학적 지식의 핵심은 ‘주체가 배제된 객관성’이기 때문이다.
- ‘05. 김용옥의 크로스텍스트와 이어령의 하이퍼텍스트’ 중에서
한국적 상황에서 강요받았던 공부의 방향이 상실되자, 주체적 학습의 내용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왜 공부해야 하는가의 때늦은 질문이기도 했다. ‘사회(Gesellschaft)’와 ‘문화(Kultur)’의 개념적 차이에 관한 논의에 특히 관심이 갔다. 결국 ‘문화심리학’으로 내 공부 방향을 결정했다.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Was ist deine Theorie?(네 이론은 뭔가?)” 면담 신청을 하고, 몇 달을 기다려 겨우 만난 지도 교수는 내게 물었다. 내가 펼쳐 놓은 논문 계획서는 읽어 보지도 않았다. ‘내 이론이라니?’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내 이론을 생각해 본 적도, 내 이론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지도 교수는 이제 막 독일에 정착한 내게, 내 이론이 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없다고 했다. 당신의 이론을 배우러 왔다고 했다. 그러자 나가라고 한다. 석사⋅박사 논문을 쓰겠다는 학생이 어찌 자기 생각이 없을 수가 있느냐는 거다. 남의 이론 요약하는 것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고 했다. 스스로 제시하고 싶은 이론의 방향을 생각해서 다시 오라고 했다. 주체적 시선으로 공부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학문적 문제의식이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내 주체적 관점이 분명해야 남의 이론을 흉내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공부하는 방법부터 바꿔야 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그저 대가의 이론을 이해하고 외우는 것만으로 내 이론 구성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 ‘06. 노트와 카드의 차이는 엄청나다’ 중에서
‘짓는 집 또는 건축학교’란 뜻의 학교 이름이다.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 제정이 몰락하고 들어선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1919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Adolph Georg Gropius가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병합하여 설립하였다. 독일어로 ‘집을 짓는다’라는 뜻의 하우스바우Hausbau를 도치시켜 학교 이름으로 하였다. 정식 명칭은 ‘슈타틀리헤스 바우하우스Staatliches Bauhaus’이다. 공예와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시도한 학교이며 독특한 디자인 접근 방식으로 유명하다. 주된 이념은 건축을 주축으로 삼고 예술과 기술을 종합하려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공예학교 성격을 띠다가 1923년에 이르러서야 예술과 기술의 통일이라는 연구 성과를 평가받기 시작하였다.
1925년 경제적 불황과 우파의 출현, 정부의 압박 등으로 폐쇄 위기에 처했으나 데사우Dessau시市의 주선으로 시립 바우하우스로 재출발하게 되는데, 이 시기를 데사우기期로 부른다. 이 시기부터는 이미 종합적 안목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였기 때문에, 각 공방에서 3년의 과정을 마친 다음에는 모든 것을 통괄하는 건축 과정으로 넘어갔다. 바이마르 시절의 졸업생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하면서 바우하우스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새로운 생산 방식에 따른 디자인 방식의 도입은 물론, 공업화를 추구해 실제로 산업계와 제휴하기도 하였다.
1928년 그로피우스가 떠난 뒤에는 스위스 건축가 한네스 마이어Hannes Meyer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 바우하우스는 다시 한번 그 성격을 바꾸게 된다. 마이어는 바우하우스의 형식주의적인 면을 공격하고, 민중에 대한 봉사야말로 디자인의 역할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건축이 모든 의미의 미적 과정이라고 역설하였다. 1933년 나치스는 바우하우스를 완전히 폐쇄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망명 교사나 졸업생들이 그 명맥을 계속 이어 나갔으며, 1955년에는 바우하우스 졸업생 막스 빌Max Bill이 다시 울름조형대학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우하우스의 이념은 이후 독일보다는 오히려 미국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이는 설립자 그로피우스가 하버드 대학교 건축 부장으로, 마지막 교장이었던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일리노이 공과대학 건축학부장으로 각각 부임하고,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가 시카고에 뉴바우하우스를 개설한 데 힘입은 바 크다. 즉 이들로 인해 미국 동부에서는 하버드 대학교를 중심으로, 중부에서는 일리노이 공과대학을 중심으로 건축의 양대 산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바우하우스는 1933년에 완전히 폐쇄되기는 했지만, 이곳에서 제작한 제품들은 많은 곳에서 모방되었다. 또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물건들을 단순하고 편리하게 설계하는 방법 역시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교수법과 교육 이념 역시 세계 곳곳에 널리 보급되어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예술 교육 과정에 포함될 만큼 현대 조형예술(미술, 건축, 그래픽디자인, 실내디자인, 산업디자인 등 현대 건축 및 현대 디자인 등)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청기사파(Der blaue Reiter: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회화 유파)의 일원이었던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는 1922년부터 1933년까지 바우하우스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 책의 외형적 특징
김정운 박사의 『창조적 시선』 책을 접한 첫인상은, 일단 책 표지가 산뜻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벽돌을 넘어 시멘트 블록 같은 외형을 가진 책의 두께에 일단 기가 질릴 수 있다. 독서하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하는 지금 이렇게 두꺼운 책 그리고 정말 사악하다고 할 만한 가격을 지닌 이 책을 사서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이 많이 샀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드물다는 『총 균 쇠』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되는 건 아닐까? 그러기에는 정말 솔직히 두껍고, 비싸다.
하지만 내용을 읽다 보면 재미가 있다. 흥미진진한 126가지 이야기가 마치 연작 드라마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읽다 보면 20세기 창조의 역사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시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창조를 위한 126가지 이야기
이 책은 창조와 편집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근대 독일의 시각⋅조형예술 학교로 설립되어 모더니즘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바우하우스Bauhaus#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바우하우스의 창조적 시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줌과 동시에 20세기 창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저자의 10년간 연구의 결정체이다. 총 세 개의 파트 속에 126개의 유닛unit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유닛이 연결돼 있어 다음 내용이 궁금하여 눈을 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책은 바우하우스뿐 아니라 그 시대의 역사와 화가들의 생동감 넘친 일화와 함께 수백 권의 책 내용이 압축되어 있는데, 소개된 정보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식의 보물 창고와 같아서 창조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ChatGPT가 모든 질문에 대해 답을 해 주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어차피 그 대답도 기존에 있는 내용과 자료들의 재가공이지 않을까? 차라리 내 스스로 이를 수집하고 가공하고 재편집하는 ‘창조적 능력’을 지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책을 보는 이들에게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제시해 준 창조적 시선의 편집 및 구성과 함께 사진과 미술 작품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이 책은 보는 즐거움을 제공해 준다. 또한 책에 사진과 그림이 많아서, 아마도 이 책을 베개 삼아 낮잠을 자고 나면 머리에 책 내용이 쏘옥 들어올 것이라는 유쾌한 상상을 선사해 주는 부가적인 즐거움도 있다.
방대한 책인 만큼 미주, 참고문헌, 색인은 잘 정리되어 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여러 가지 책들의 출간을 기대하게 하면서 다음처럼 마무리를 짓고 있다.
바닷가에서 사랑스러운 강아지와 이렇게 지내다가 다 늙으면 ‘노인과 개’라는 책도 쓰고 싶습니다. ‘노인과 바다’에 버금가는 책이 될 겁니다.
‘아, 이 책들을 다 쓰려면 난 아주 오래오래 살아야 합니다.’
........
난, 아예 안 죽을 수도 있습니다. (책 968쪽)
김정운다운 마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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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별 주요 내용
지식이 넘쳐 나는 세상에 책 한 권을 출판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저자는 고민한다. 검색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이 몇 초 안에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 말이다. 존재하는 지식을 체계화하는 일은 ChatGPT가 훨씬 잘하는데. 그래서 저자는 ‘의식의 흐름’은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 권한이자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영역이라고 한다.그래서 이 책은 저자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정리되었고, 총 3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Part 1은 ‘걸으며 공부하기’이다
. 저자는 일단 현장에 가 봐야 한다고 한다. 빚을 내서라도 가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장에 가서 직접 자기 발로 걸어 다니면서 보고 생각해야 공부할 의욕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가 10년 동안 10여 차례 유럽 도시들을 헤매며 바우하우스 흔적을 찾아다닌 산물이며, 그 과정에서 책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문제의식과 통찰을 얻었다고 회고한다. ‘추상’이라는 ‘편집의 단위’를 최초로 고민한 곳이 바로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인데, 추상화는 ‘청기사파’로 대표되는 뮌헨의 문화적 토양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바우하우스와 관련된 인물들의 도시들도 헤집고 다녀 빈-뮌헨-바이마르-라이프치히-데사우-베를린으로 이어지는 바우하우스 로드(Bauhaus Road)가 만들어졌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Part 2 ‘전쟁의 시대, 그 무렵 우리는?’
은 ‘도대체 왜 지금 내가 바우하우스를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 대한 설명이다. 모든 공부는 ‘여기 지금(here and now)’라는 관점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한다. 바우하우스 공부는 한국의 기형적 모더니티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됐는가에 대한 저자의 의문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 중년 남자들의 의식에 결정적 역할을 미치는 ‘한국 군대’의 기원에 관한 의문이다. 지금도 한국 남자들은 환갑이 넘어서도 군대 이야기를 한다.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데 ‘군대’를 빠뜨릴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군대에 관한 깊이 있는 문화사적 설명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군대’와 한국 사회의 모더니티 형성 과정이 독일 프로이센 군대(이를 모방한 일본 군대)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저자가 말하는 바우하우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한데, 바우하우스의 기능주의도 독일 프로이센 문화를 빼고 설명하기는 힘들다고 주장한다. 거칠게 표현하면 프로이센에서 비롯된 독일 역사, 문화에 관한 공부는 바우하우스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한다. 아울러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독일 프로이센 군대와 일본 군국주의의 관계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의 문제의식은 지속해서 공부해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이제 Part 1과 Part 2의 준비 과정을 통해 Part 3에서는 좀 더 심화한 바우하우스 이해가 가능해진다. 창조적 공부는 스스로 ‘메타언어’를 창조할 때 가능하다.
바우하우스 공부를 통해 얻어낸 저자의 최종 메타언어는 ‘감각의 교차편집’이라고 한다. 근대가 끊임없는 분류의 과정이었다면 새로운 세계는 근대에서 만들어진 ‘편집의 단위’를 또 다른 맥락에서 재편집할 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제시하고 바우하우스에서 구체화되는 ‘종합예술’이 바로 그 시작이라고 한다. 이 ‘감각의 교차편집’ 개념은 AI로 야기된 오늘날의 지식 혁명을 설명하는 데도 매우 통찰적인 관점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이제 이 방대한 바우하우스 이야기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Unit 2 인간은 언제부터 창조적이었을까?
오늘날 누구나 ‘창조적’이 되어야 살아남는다고 한다. 근데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창조’는 낯선 단어였다. 창조를 말하는 creativity는 100년도 안 된 단어이다(정확히는 1920년대). 저자는 이에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저자는 독일에서 공부한 게 ‘일단 의심하기’라는 사고의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왜? 누가? 무슨 근거로..’라는 접근의 틀, 이걸 공부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학설을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고,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궁금함을 풀어 가는 걸 배웠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창조’와 관련된 궁금증을 풀기 위해 ‘구글 엔그램 뷰어’에서 검색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어떤 대상에 관해 알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그 대상, 그 언어가 도대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의 문화적⋅사회적 맥락, 즉 구성사적 맥락을 읽어야 그 뜻이 정확해진다.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은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언젠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대상을 ‘원래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과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내가 현재의 그 대상을 바꿀 수 있다. 아예 새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있었던 것’으로 보면 내가 개입할 영역이 전혀 없다. 그저 반복할 뿐이다. 그래서 구성사적 관점, 즉 역사적 관점이 중요한 것이다. (46~47쪽)
궁금했던 사항은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되는 문제였다. 우리는 근대화를 ‘서양을 대리한 일본’에 의해 강제로 주입받았고, 해방 이후에는 ‘미군 부대’를 통해 유입된 압축적 근대화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서구 근대의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창조’는 불가능해진다. “왜?”, “어떻게?”라는 질문이 빠져 있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에디톨로지Editology(편집학編輯學)적’으로 이야기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과거 어느 한 때의 ‘편집물’이라고 말한다. 존재하는 것들의 편집 과정과 그 맥락의 이해를 전제로 하는 에디톨로지에서 ‘창조’는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현존하는 편집의 방식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사람에게만 창조의 기회는 주어진다고 역설한다. 창조, 참 쉬운 일이었다.
창조와 바우하우스
‘creativity’라는 단어가 1920년대부터 사용되었다면 그 시대에 ‘창조’와 관련된 뭔가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는 뜻이다. 당시 상황을 제대로 서술할 수 있는 정확한 개념이 그 당시에는 없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어떤 상황이었을까?저자는 ‘창조’라는 개념 구성을 필요로 했던 첫 번째 사건은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의 등장이라고 한다. 한 개인의 의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며, 마치 강처럼 흘러간다는 주장이다. 유사한 개념을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도 주장하였다.
‘의식의 흐름’ 또는 ‘자유연상(Freie Assoziation)’이야말로 창조적 사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자유연상’이나 ‘의식의 흐름’이 창조와 연관되는 가장 결정적인 까닭은 ‘메타언어’의 창출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으로, ‘의식의 흐름’을 통해 ‘편집의 차원’을 달리하는 생각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통상의 맥락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각이 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낯선 연결 고리를 개념화할 때 ‘메타언어’가 창출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사진기의 출현으로 역할을 잃은 화가들이 ‘재현’에서 자유로워져 인상주의, 표현주의를 거쳐 추상주의까지 이르는 변화의 발전, 즉 ‘시각적 전환’이 일어났다. 객관적 세상의 ‘재현’이 아닌, 시각적 인상을 주체적으로 ‘표현’하게 되면서 인간의 공간 의식과 시간 의식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재현’, 즉 모방할 수 없게 되었으니 화가들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 즉 ‘편집의 자유’를 얻게 되었고 이 모든 시각적 전환의 결과들은 깔때기처럼 1919년 개교된 ‘바우하우스’로 수렴된 것이다.
Unit 84. 4차 산업혁명 같은 것은 없다
사방에서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는다. 그런데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이는 별로 없다. 그래서 저자가 찾아 봤더니, 4차 산업혁명을 처음 들고나온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는 이렇게 정리했다. 1차 산업혁명은 176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기계혁명, 2차 혁명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전기와 생산 조립 공정이고, 3차는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컴퓨터와 인터넷 IT 혁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은 ‘유비쿼터스 모바일 인터넷’과 인공 지능을 기반으로 21세기에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익숙해진 개념인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자율주행, 3D 프린팅, 인공지능 등에 ‘4차’라는 숫자를 편집해서 만든 개념이다.이 4차 산업혁명은 독일에 이미 존재하던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에서 끌어온 것이다. 이는 2011년 하노버 박람회에 처음 소개된 개념으로 한계가 분명해 보이는 독일 제조업의 미래를 진단하며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으로 준비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독일 정부나 경제계는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하에 ‘정보통신기술’과 ‘제조업’의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슈바프는 이처럼 독일에서 전문가들 사이에 회자되던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으로 살짝 바꿔 소개한 것이라고 한다. 슈바프는 미래 변화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불안감을 아주 효과적으로 구체화해 불안감을 부추기는 개념으로 ‘혁명’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이다. 이 4차 산업혁명 개념은 칼럼과 책을 통해 빠르고 매우 효과적으로, 특히 한국 사회에 더 강력히 전달됐다.
지구상 어떤 나라보다 대한민국에서 4차 산업혁명은 매우 특별하게 논의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매우 흥미롭고 정치적인 개념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4차 산업혁명 개념이 느닷없이 부상한 것은 순전히 박근혜 정부의 몰락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한국 사회에서 산업화 세대의 몰락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20세기 한국 사회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대립과 충돌로 설명할 수 있는데, 21세기에 들어서 두 세력의 대립은 변증법적으로 마무리되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둘 다 사라졌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산업화 세대의 우상인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권력을 잡으면서 뒷전에 물러났던 산업화 시대의 인재들이 재등용되었다. 정책이 과거로 회귀하게 된 것인데, 박근혜 정부는 뜬금없이 ‘창조 경제’를 부르짖는 모순적 상황이 전개되었다.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든 것이다. 좋은 개념을 모았는데 실질적인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창조 경제’를 부르짖으며, 가는 곳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몰락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이 난무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창조 경제, 창조 경영, 창조 사회와 같은 개념들이 몰락한 박근혜 정부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때마침 4차 산업혁명이 나타났고,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참으로 황당하게도, 산업화 시대의 완벽한 몰락과 더불어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지극히 낡은 산업화 시대의 구호인 ‘산업혁명’을 또다시 부르짖었다고 저자는 비판적으로 말한다.
‘혁명’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격렬한 변화를 일컫는데,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 증기기관의 발명이 그렇게 급격했느냐는 비판으로 시작해서, 저자는 산업혁명이 아니라 ‘지식혁명’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후 중국에서 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담고 있고, 당시 영토를 초월해 전개되었던 지식 공동체의 출현인 ‘편지 공화국’의 이야기까지. 이 책은 이렇게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전개되어 간다.
우선 눈에 가는 2개의 유닛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엄청난 두께에 미리 겁먹지 말고 찬찬히 읽으면 많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들을 당연하게만 여기지 말고, 말랑말랑한 상태로 두뇌를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당연한 것을 의심해 보고 왜 그런지 근거를 찾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창조적인 내가 되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그의 또 다른 저서 『에디 톨로지』
저자 김정운은 자유로운 영혼처럼 뽀글뽀글한 머리 모양에다 장난기 가득하고 발랄한 모습으로 비쳐 가벼워 보이지만, 굉장한 깊이를 가진 문화심리학자이자 ‘나름 화가’이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디플롬, 박사)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전임강사 및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 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하고 2015년 수료했다.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와 터를 잡은 곳은 전라남도 여수. 창밖으로 바다가 내다보이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가끔 작은 배를 몰고 나가 고기를 잡는다. 책으로 빼곡한 서재에서 글을 쓰며 시간 대부분을 보낸다. 조선일보 ‘김정운의 여수만만’과 채널예스 ‘김정운의 인터벨룸’을 연재 중이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에디톨로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을 집필했다.
그의 주된 저서는 『에디톨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에디톨로지』를 통해 “창조는 편집이다.”라고 외쳤다. 저자는 ‘편집한다’라는 뜻의 ‘Edit’와 ‘학문, 연구, 이론’이란 뜻을 가진 라틴어 ‘-ologia’를 합쳐 ‘Editology(에디톨로지, 굳이 번역하자면 편집학編輯學)’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으며, 기존에 익히 존재하는 정보와 기술을 나만의 새로운 맥락으로 편집하였을 때, 진정한 창조가 탄생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데이터를 모으고, 데이터를 편집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에디톨로지』를 통해 “독일 예술종합학교 ‘바우하우스’에 관한 책을 쓰겠노라.”라고 이미 약속했다(『에디톨로지』 198쪽 참조). 책에서는 2016년에 출판 예정이라고 했지만, 2016년은 이미 지나갔다. 『에디톨로지』 이후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창조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집요하고 위대한 연구 결과의 완결판이 드디어 『창조적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창조적 시선』을 읽기 전에 『에디 톨로지』의 몇 부분을 살펴보고 『창조적 시선』과 연결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가장 창의적일 때는 멍하니 있을 때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멍하니 있을 때, 생각은 아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가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할 때가 있다. 그러고는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거꾸로 짚어 나간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생각의 흐름을 찾아냈을 때, 자신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날아다녔던 생각의 범위에 놀라게 된다.
오늘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보통 사람들도 천재처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신이 일부 천재들에게만 부여한 ‘날아다니는 생각’을 이제 보통 사람들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바로 ‘쥐’ 때문이다. 그건 컴퓨터의 ‘마우스’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생각을 날게 하는 도구를 갖게 된 것이다.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관심 있는 곳을 클릭하면 생각은 바로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방금 전의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다. 이건 엄청난 혁명이다.
- ‘04.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 쥐 때문이다!’ 중에서
자라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지적 충격을 받는다. ‘아, 나도 한번 저 사람처럼 글 쓰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다. 지식욕도 일종의 허영이다. 한번 폼 나고 싶은 거다. 사람은 남들에게 폼 나 보이고 싶을 때 성장한다. 어릴 때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나이 들면서는 대중에게 폼 나 보이려고 한다. 그리고 애나 어른이나 남자는 항상 여자에게 폼 나 보이고 싶어 한다. 헤겔의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의 핵심은 나도 한번 폼 나고 싶다는 심리학적 ‘동기(motivation)’다.
김용옥은 학문적 텍스트에 ‘나’라는 주어를 처음 쓴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인문⋅사회과학 텍스트에 ‘나’라는 주어를 쓰는 경우는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김용옥이 처음이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연과학이 학문의 전형으로 여겨진 후, 인식주체인 ‘나’는 학문적 글쓰기에서 사라졌다. 자연과학적 지식의 핵심은 ‘주체가 배제된 객관성’이기 때문이다.
- ‘05. 김용옥의 크로스텍스트와 이어령의 하이퍼텍스트’ 중에서
한국적 상황에서 강요받았던 공부의 방향이 상실되자, 주체적 학습의 내용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왜 공부해야 하는가의 때늦은 질문이기도 했다. ‘사회(Gesellschaft)’와 ‘문화(Kultur)’의 개념적 차이에 관한 논의에 특히 관심이 갔다. 결국 ‘문화심리학’으로 내 공부 방향을 결정했다.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Was ist deine Theorie?(네 이론은 뭔가?)” 면담 신청을 하고, 몇 달을 기다려 겨우 만난 지도 교수는 내게 물었다. 내가 펼쳐 놓은 논문 계획서는 읽어 보지도 않았다. ‘내 이론이라니?’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내 이론을 생각해 본 적도, 내 이론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지도 교수는 이제 막 독일에 정착한 내게, 내 이론이 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없다고 했다. 당신의 이론을 배우러 왔다고 했다. 그러자 나가라고 한다. 석사⋅박사 논문을 쓰겠다는 학생이 어찌 자기 생각이 없을 수가 있느냐는 거다. 남의 이론 요약하는 것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고 했다. 스스로 제시하고 싶은 이론의 방향을 생각해서 다시 오라고 했다. 주체적 시선으로 공부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학문적 문제의식이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내 주체적 관점이 분명해야 남의 이론을 흉내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공부하는 방법부터 바꿔야 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그저 대가의 이론을 이해하고 외우는 것만으로 내 이론 구성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 ‘06. 노트와 카드의 차이는 엄청나다’ 중에서
#메타언어(meta-language)#
저자는 이 책에서 메타언어가 있고 없고에 따라 창조와 짜깁기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메타언어(meta-language)는 대상을 직접 서술하는 언어 그 자체를 다시 언급하는 언어나 상징(symbol)으로서 고차언어高次言語라고도 한다. 메타언어에서 ‘메타meta’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Metaphysics』에서 유래했지만, 여기서는 ‘~다음에(after), ~를 넘어선(trans)’이라는 원래의 뜻보다는 ‘~자체에 관한(concerning), ~에 대한(on), ~보다 상위의(high ordered)’이라는 뜻이 강하다.
바우하우스Bauhaus(1919~1933)
‘짓는 집 또는 건축학교’란 뜻의 학교 이름이다. 저자는
창조학교
라고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 제정이 몰락하고 들어선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1919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Adolph Georg Gropius가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병합하여 설립하였다. 독일어로 ‘집을 짓는다’라는 뜻의 하우스바우Hausbau를 도치시켜 학교 이름으로 하였다. 정식 명칭은 ‘슈타틀리헤스 바우하우스Staatliches Bauhaus’이다. 공예와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시도한 학교이며 독특한 디자인 접근 방식으로 유명하다. 주된 이념은 건축을 주축으로 삼고 예술과 기술을 종합하려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공예학교 성격을 띠다가 1923년에 이르러서야 예술과 기술의 통일이라는 연구 성과를 평가받기 시작하였다.
1925년 경제적 불황과 우파의 출현, 정부의 압박 등으로 폐쇄 위기에 처했으나 데사우Dessau시市의 주선으로 시립 바우하우스로 재출발하게 되는데, 이 시기를 데사우기期로 부른다. 이 시기부터는 이미 종합적 안목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였기 때문에, 각 공방에서 3년의 과정을 마친 다음에는 모든 것을 통괄하는 건축 과정으로 넘어갔다. 바이마르 시절의 졸업생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하면서 바우하우스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새로운 생산 방식에 따른 디자인 방식의 도입은 물론, 공업화를 추구해 실제로 산업계와 제휴하기도 하였다.
1928년 그로피우스가 떠난 뒤에는 스위스 건축가 한네스 마이어Hannes Meyer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 바우하우스는 다시 한번 그 성격을 바꾸게 된다. 마이어는 바우하우스의 형식주의적인 면을 공격하고, 민중에 대한 봉사야말로 디자인의 역할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건축이 모든 의미의 미적 과정이라고 역설하였다. 1933년 나치스는 바우하우스를 완전히 폐쇄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망명 교사나 졸업생들이 그 명맥을 계속 이어 나갔으며, 1955년에는 바우하우스 졸업생 막스 빌Max Bill이 다시 울름조형대학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우하우스의 이념은 이후 독일보다는 오히려 미국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이는 설립자 그로피우스가 하버드 대학교 건축 부장으로, 마지막 교장이었던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일리노이 공과대학 건축학부장으로 각각 부임하고,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가 시카고에 뉴바우하우스를 개설한 데 힘입은 바 크다. 즉 이들로 인해 미국 동부에서는 하버드 대학교를 중심으로, 중부에서는 일리노이 공과대학을 중심으로 건축의 양대 산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바우하우스는 1933년에 완전히 폐쇄되기는 했지만, 이곳에서 제작한 제품들은 많은 곳에서 모방되었다. 또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물건들을 단순하고 편리하게 설계하는 방법 역시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교수법과 교육 이념 역시 세계 곳곳에 널리 보급되어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예술 교육 과정에 포함될 만큼 현대 조형예술(미술, 건축, 그래픽디자인, 실내디자인, 산업디자인 등 현대 건축 및 현대 디자인 등)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청기사파(Der blaue Reiter: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회화 유파)의 일원이었던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는 1922년부터 1933년까지 바우하우스에서 교편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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