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으로 보는 문화 이야기 | 아버지 문화와 어머니 문화로 보는 교육과 정치
[한문화]
본부 김덕기
들어가는 말
우주 만물은 음陰과 양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가 이룩한 문명은 남성 문화와 여성 문화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과 양이 상생하거나 상극하기도 하는 것처럼, 이들 문화는 서로 보완하거나 대립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인류 문화를 음양의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교육, 어떻게 해야 할까?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의 교육
최근 한류가 전 세계에 유행하면서 대한민국을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튜버들이 우리나라에 여행을 와서 직접 문화를 체험하고 영상을 찍어서 알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일은 ‘밤에도 여자와 아이들이 밖에 돌아다니고, 물건을 놓아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양심 있는 국민이 사는 범죄 없는 나라’로 칭송받던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리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는 ‘묻지 마 폭행’이 일어나고 있고, 공원에서는 ‘묻지 마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단에서는 ‘묻지 마 폭언’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본받고 존경하며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교단에서는 제자와 그 부모가 스승에게 폭언⋅폭행하고, 급기야 스승이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왜 동방예의지국으로 칭송받던 나라에서 사제師弟의 예와 도리가 무너진 것일까요?
물론 그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동안 학교 교육은 인성人性을 가르쳐야 하는 교육의 본래 목적을 잃어버리고, 국가의 경제 발전을 위한 산업 역군을 양성하는 데 치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보다, 학과 과목을 잘 가르치고 성적을 많이 올려 주는 선생님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학원 강사에게는 머리를 조아리지만, 학교 선생님은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혹자는 2010년에 공포된 ‘학생인권조례’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조례條例를 제정한 취지는 좋지만,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권이 침해되었다는 것입니다.*1)
*1)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존엄과 가치가 학교 교육 과정에서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각 교육청에서 제정한 조례로, 대체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표현의 자유, 교육 복지에 관한 권리, 양심과 종교의 자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의 붕괴는 사회 전반에 파급 효과를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에서 삶의 의미와 방식을 배우지 못하고 경쟁으로 내몰린 학생들은 어쩌다 어른이 되어 경쟁하는 사회에 진출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경쟁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더욱 굳건한 경쟁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에 따른 교육 방식
교육敎育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과 수단’을 의미합니다. 교육의 목적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졌지만, 대체로 ‘인간을 인간답게, 사회와 국가에 바람직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목적은 「교육기본법」 제2조에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제2조(교육이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은 크게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의 두 가지 방식이 서로 작용하여 행해지고 있습니다. 전자는 인간이 내면적으로 지니고 있는 천성, 곧 타고난 소질과 성품이 드러나고 개발되도록 하여 자기 발전을 도모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후자는 선생님이 계획된 목표와 방향에 따라 학생들을 이끄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교敎는 ‘방향을 제시하고 그곳으로 이끈다.’는 뜻이 있고, 육育은 ‘올바르게 자라난다, 육성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2)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교육’ 참고
그런데 교육의 형태가 자력과 타력으로 달라지는 요인은 사람이 본래 지니고 있는 천성天性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인간의 본성을 대하는 방식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본성은 선善하다.’는 ‘성선설性善說’입니다. 성선설은 맹자孟子가 주장한 학설로, 인간에게는 천성적인 양지양능良知良能이 갖추어져 있고, 이것에 의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단四端을 가지게 되며, 또 이 사단을 확충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선한 본성에 악이 생기는 것은 인간이 외물外物에 유혹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사람의 본성은 악惡하고, 선善은 인위적인 것이다.’라고 한 ‘성악설性惡說’입니다. 순자荀子가 주장한 학설로,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인 욕망이며, 후천적 노력을 통해 예禮(이상적인 규율, 나라의 제도나 법률)를 따르도록 힘써 선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3)
*3) 「철학사전」 ‘성선설과 성악설’ 참고
이에 따르면 성선설에 따른 교육은 ‘학생의 선한 본성을 일깨워 주어 최대한 발현될 수 있게 해 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학생을 사랑으로 대해 주고 타고난 재능을 최대한 살려 주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현 교육의 방식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성악설에 따른 교육은 ‘질서와 규율을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최대한 억제하고 선을 행하도록 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학생을 사랑의 매로 다스리고 제도와 규율에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 여기에 속합니다.
아버지의 교육과 어머니의 교육
교육은 본래 어버이와 자식 사이, 교사와 제자 사이, 선배와 후배 사이 등 일반적으로 경험이 풍부한 사람과 미경험자 사이, 혹은 성숙자와 미성숙자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어떤 성향을 띠는가에 따라 자식을 교육하는 방식도 다를 것입니다.
남자인 아버지는 양에 배속하고, 여자인 어머니는 음에 배속합니다. 양의 성질은 밝은 낮과 같아서 이성적이고 강한 힘이 느껴집니다. 반대로 음의 성질은 어두운 밤과 같아서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힘이 느껴집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규칙을 정하고 힘을 사용하여 이성적으로 교육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반해 어머니는 사랑으로 감싸면서 감성적으로 교육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성악설에 따른 교육은 아버지가 행하는 양의 방식에 속하고, 성선설에 따른 교육은 어머니가 행하는 음의 방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동양과 서양은 교육의 목적을 개인의 인성 발현보다 집단 전체의 권위와 이익⋅질서를 유지하는 것에 두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스파르타는 국방에 초점을 두고 국가의 이상적인 병사를 양성하는 데 주력했으며, 로마는 제정 시대에 부합해 정치 생활에 유능한 인간을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나 조선 시대에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교육을 하였습니다. 이는 아버지가 성악설에 근거하여 양의 교육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8세기에 일어난 계몽운동啓蒙運動과 프랑스대혁명을 비롯한 시민혁명市民革命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자유⋅평등⋅박애의 이념을 제시했습니다. 이때부터 개인주의⋅자유주의⋅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교육 목적이 수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는 어머니가 성선설에 근거하여 음의 교육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근엄하고 권위적인 교육 방식은 학생보다 선생님과 교육 제도가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 선생님이 교단에서 칼을 차고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가르친 것은 이 방식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식은 해방 후에도 일제 시대의 잔재로 남아 우리나라 교육을 멍들게 하였습니다. 이와 반대로 어머니의 자애롭고 자유로운 교육 방식은 선생님보다 학생의 권위와 자율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 학생을 사랑으로만 가르치다 보니 학생이 선생님께 폭언하고 폭행하는 것은 이 방식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자를 귀여워하면 할아버지 수염을 뽑는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이들 버릇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당장 좋게만 해 주는 것이 오히려 해롭다.’는 뜻으로, 둘 다 아버지 문화에 해당하는 속담입니다. 하지만 학생을 권위와 규율로만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듯이, 사랑과 자율로만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아버지의 근엄함과 어머니의 자애로움이 적절히 행해질 때 교육도 바로 서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왜 정치는 보수와 진보로 나뉠까?
엄격한 아버지 vs 자애로운 어머니
2019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와 미국의 의료비를 비교한 자료입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보다 우리나라의 의료비가 저렴한 이유는 건강보험 체계가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도 다양한 민간 의료보험이 있지만, 보편적인 의료보험 제도가 없어서 저렴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포나 일부 미국인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우리나라에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주도한 의료보험 개혁안이, 전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오바마케어Obamacare입니다. 오바마케어는 2010년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케어가 기업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재정 부담을 폭증시킨다는 이유로 공화당이 이에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민주당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그러다가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지면서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국가라면 당연히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의견을 달리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인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그 이유를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인식의 틀인 프레임frame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는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과 살아온 환경, 배운 지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프레임을 통해 목적, 계획, 행동 방식, 행동의 가치 등을 정하기 때문에 같은 사안을 바라보더라도 그에 대한 해석과 해결 방법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책에서 ‘엄격한 아버지’ 모델과 ‘자상한 부모’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가정에서 남성 역할과 여성 역할이 매우 다르다고 여기며, 중심적인 인물을 아버지로 보고 있습니다. 엄격한 아버지는 가족의 도덕적 권위자이며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그에 반해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가족을 보호하거나 부양하지는 못하며, 자녀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벌을 줄 수 있을 만큼 엄격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위험하고 살기 힘든 곳이며, 아이들은 원래 나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선하게 다듬어져야 한다고 가정합니다. 그래서 엄격한 아버지는 가족을 지원하고 방어하는 도덕적 권위자로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을 할지 지시합니다. 그리고 강한 규율과 고통스러운 체벌을 통해서만 자녀들을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지도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후자는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 둘 다 동등한 책임을 집니다. 모든 어린이는 본성이 선하며 더욱 선해질 수 있다고 여겨서,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자녀를 자상하게 보살피고 그 자녀들이 다시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키우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녀는 고통스러운 신체적 처벌을 통해 훈육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공감하는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부모가 먼저 책임 있는 모범을 보이고 자녀와 대화를 하면서 책임 있는 행동을 장려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협력을 거부할 때는 협력할 때 주어지던 특권을 박탈함으로써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이해시킵니다.
이상을 통해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부모’ 모델은, 앞서 살펴봤던 ‘아버지 문화’와 ‘어머니 문화’에 대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화당은 아빠당, 민주당은 엄마당
엄격한 아버지의 역할을 국가에 투사하면 ‘보수주의保守主義(Conservatism) 정치’를 대면하게 됩니다. 이들에게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악에 대항해 선을 유지하려면 자제와 극기를 통해 도덕적으로 강해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가를 보호하고 형벌을 통해 질서를 수호하며 정의를 실현하고 기업 활동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사회복지가 사람들을 공공의 도움에만 의지하는 나약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악한 것이며 제거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이에 반해 자애로운 부모의 역할을 국가에 투사하면 ‘진보주의進步主義(Progressivism) 정치’를 대면하게 됩니다. 이들에게 세상은 공정하며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입니다. 사회적 지위나 건강 문제 등으로 인해서 공정한 경쟁을 제한받았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가 된 것이므로, 이들을 돕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주장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범죄나 마약, 담배 등 유해한 것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처럼, 진보주의 정치는 환경 보호, 노동자 보호, 소비자 보호, 질병으로부터의 보호에 중점을 둡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엄격한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보수주의는 양陽의 정치 형태라고 할 수 있고, 자애로운 부모(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진보주의는 음陰의 정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현실 정치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라는 두 가지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보수주의 평론가들은 공화당共和黨(Republican Party)을 ‘아빠당’, 민주당民主黨(Democratic Party)을 ‘엄마당’이라고 부릅니다. 공화당은 엄격한 아버지인 보수주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은 자애로운 부모인 진보주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엄격한 아버지 정치와 자애로운 어머니 정치라는 프레임에서 보면, 공화당과 민주당이 지향하고 펼치는 정치의 색깔이 다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우리나라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 대응됩니다. 그러므로 양의 정치와 음의 정치라는 두 개의 프레임은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데도 유용합니다.
그런데 이를 확대하면, 자본주의資本主義(Capitalism)는 엄격한 아버지의 모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보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공산주의共産主義(Communism)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공정한 곳으로 보고 경쟁이 없는 공평한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4)
*4) 경쟁이 없고 모두가 평등한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투쟁을 외친 것은 공산주의의 모순이자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음과 양은 함께 공존하면서 상호 조화調和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선천 인류 역사는 음양의 상극相克이 일어나는 투쟁의 장으로 변한 지 오래입니다. 역사적으로 아버지 문화는 어머니 문화를 억누르고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이를 억음존양抑陰尊陽이라고 합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어 싸우던 지구촌은 이제 자본주의와 권위주의權威主義(Authoritarianism)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습니다. 국민도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결사 투쟁을 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버지 문화와 어머니 문화가 서로를 인정하며 조화를 이룰 때 인류 화평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전파와 주화파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난 1636년, 청淸의 대군이 공격해 오자 인조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들었습니다. 하지만 한겨울의 추위와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앞에서 청군에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강화도까지 무너지자 이조판서 최명길崔鳴吉(1586~1647)은 청군에게 항복하는 치욕을 겪더라도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예조판서 김상헌金尙憲(1570~1652)은 모두가 죽더라도 청의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명분을 지켜야 한다고 주창했습니다. 서로 가고자 하는 길은 달랐지만 조선을 생각하는 마음만은 한결같았습니다.
결국 병자호란은 조선의 임금 인조가 항복하고 삼전도에서 청의 칸에게 신하의 예를 표하기 위해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굴욕을 당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짧은 전쟁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쟁 포로로 수십만의 백성이 청나라로 끌려가 조선의 피해가 유례없이 막심했습니다.
역사에서는 최명길을 주화파主和派라고 하고, 김상헌을 주전파主戰派(척화파斥和派)라고 합니다. 주화파는 우리가 아직 힘이 없으니 청의 요구를 일단 들어주고 장기적으로 힘을 기르자는 세력입니다. 주전파는 청의 요구는 죽어도 들어줄 수 없으니 전쟁을 하자는 세력입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비둘기파와 매파로 부르고 있습니다. 비둘기파(Doves)는 정책을 추진하는 면에서 성향이 부드러운 온건파穩健派(평화주의자)를 일컫고, 매파(Hawks)는 급진적이고 강력한 강경파強硬派(강경론자)를 부르는 용어입니다. 매는 공격적인 맹금류로 양에 배속할 수 있고,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으로 음에 배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전파인 매파는 양의 성격을 띠고, 주화파인 비둘기파는 음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주전파가 명분名分을 택한 것에서 아버지 문화에 속하고, 주화파가 백성을 생각하며 실리實利를 택한 것에서 어머니 문화에 속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최명길은 병자호란을 수습하고 조선을 끝까지 지켜 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상과 실천은 주류 지배층인 서인西人의 입장과 달랐기에 당시는 물론 훗날에도 매국노로 매도당하며 조선 왕조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에 비해 김상헌은 서인 노론의 집권 이후 충절과 절개의 화신으로 남아 조선 말기까지 존경받았습니다. 그리고 병자호란 이후 조선 조정은 그의 자손들이 주도했습니다. 세도정치勢道政治를 주도한 김조순과 김좌근 등이 모두 김상헌의 후손입니다. 나라가 망하더라도 명분을 지키고자 했던 김상헌의 후손들에 의해 조선이 멸망의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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