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의 진리 강좌 | 7장 세운공사世運公事 (1)
[증산도대학교]
증산도의 진리 7장
세운공사世運公事 (1)
이제 천지공사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이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후천 가을 세상을 열어 주시기 위해 천지공사를 집행하셨다. 상제님께서는 단주 이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원혼이 뿌려 대는 원한의 파괴적인 힘(원력寃力)을 새 역사 창조의 원동력으로 승화시켜 인류가 후천 가을 선경낙원 시대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리하여 사무친 원한을 품고 죽어 간 역사상 모든 원신寃神을 세 차례 크게 굽이치는 대전쟁에 역사케 하여 세운世運에 응기시키셨다. 또한 웅대한 이상과 정의감을 지녔지만, 역적으로 몰려 무참히 죽어간 혁명가의 영신(역신逆神)을 모두 도운道運에 붙여 역사하게 하셨다.
천지공사로 짜 놓으신 세운과 도운은 크게 #세 단계 변화(삼변성도三變成道)#를 거치면서 선천의 낡은 가치관과 불합리한 사회 구조가 개혁되고, ‘묵은 하늘’의 저주와 원한이 완전히 해소된다. 지금은 선천 여름철 말에서 후천 가을로 전환하는 대변혁기이자, 우주 생명이 최대로 분열하는 때이다. 상제님의 진리 도법을 세상에 드러내는 준비 기간으로 최대 분열수인 81(9×9)수를 쓰시고, 선천 역사의 난법을 정리하고 묵은 기운을 떨쳐 내는 데 천지 일원수一元數 100수를 한 도수로 정하여 공사를 처결하셨다.
이제 상제님께서 세계 역사의 운로를 결정하신 #세운 공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제1절 세운공사의 기틀
세운 공사世運公事란 인간 세상의 역사 운로, 곧 지구촌 역사의 운명을 정하신 상제님의 세계 정치를 의미한다. 여기서 ‘역사歷史’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다 포함하는 총체적 개념이지만, 이 글에서는 세운 공사의 중심 내용이 오선위기로 펼쳐지는 것을 고려해서 세계 정치사 또는 세계 정치 질서의 움직임으로 한정 지어서 보기로 한다.
상제님께서 보신 세운 공사에 따라 19세기 서양으로 기울어졌던 지구촌 힘의 질서가 이후 100여 년의 시간 동안 크게 세 번 굽이치면서 동서 간의 균형을 이루고,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개벽의 땅, 한반도의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후천 상생의 새 세상이 열리게 되는 대변혁의 노정이 펼쳐진다. 이는 천상 조화정부가 인간 역사 속에 자리 잡혀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1차 세계대전 후 결성된 국제연맹,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직된 국제연합 등의 과도기 준비 과정을 거친 후, 후천 가을개벽의 지구촌 문명 대전환 과정에서 천상의 조화정부가 인간 역사에 완전한 모습의 조직 체계로 자리 잡아 대한민국에 세계 통일 문명이 열린다는 것이다.
세운 공사의 역사 배경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1870년대는 서구 열강들에 의해 제국주의帝國主義 시대가 열리던 때이다. 15세기 말에 시작된 이른바 ‘지리상의 대발견, 대항해’의 시대부터 해외로 눈을 돌린 서구 열강들은 19세기 들어와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대되자, 시장 개척과 자원 확보를 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으로 침략의 손길을 뻗쳤다.
18세기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가장 부도덕한 전쟁인 ‘아편전쟁阿片戰爭’이 일어나 청나라가 무력하게 영국에 패하였고, 이후 서구 열강들과 일련의 불평등 조약을 맺고 반식민지 상태로 빠졌다. 이 무렵 러시아는 동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1860년에는 연해주를 차지하면서 조선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동북 간방艮方의 땅 조선도 제국주의 침략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고, 동양의 여러 나라들도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일찍이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대성사는 사후에 신도 세계에서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음덕으로 서양 사람들은 하늘(문명신)로부터 과학혁명, 산업혁명 등 천상 과학 문명의 기예를 전해 받았지만, 물질과 사리에만 정통하여 도리어 신神을 부정하고 수많은 상극의 죄악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였다. 인간의 정신 활동을 무시한 채 역사를 물질의 운동과 반영으로만 보고, 과학주의에 경도되어 신의 세계를 부정하며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려 하였다. 우월한 기술과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오만해진 서양 제국은 약소국을 침탈, 예속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이 땅에 강세한 우주 통치자 하느님이신 상제님께서는 삼계대권의 무궁한 조화로써 서양 문명의 이런 해악을 제어해 주셨다.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이런 서양 제국주의의 기운을 꺾고, 가을우주 통일 문명을 개창할 인류 시원 역사의 주인공을 동방 땅에 내는 과정이다.
천하의 난을 동하게 한 동학혁명東學革命
19세기 후반 조선의 흥선대원군은 쇄국鎖國 정책을 고수하였다. 하지만 고종이 친정親政을 하면서 실각하였고, 정권을 잡은 명성황후를 위시한 조정 세력은 별다른 대책도 없이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해 문호를 열어 버렸다. 조선은 이후 미국과 가장 먼저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이후 다른 열강들과 연이어 통상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왕조 말기의 무기력과 사회 전반에 걸친 부정부패, 그리고 비전 없는 외교 정책으로 조선 사회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지배층은 외세에 빌붙어 정권을 유지하기에 급급하였고, 서구 열강에 이권을 빼앗기면서 국운이 심하게 기울고 있었다. 특히 조선을 둘러싼 청나라와 일본의 대립은 전쟁 직전까지 치닫고 있었다.
1882년 임오년에 구식 군대의 차별로 인해 군란(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났고, 1884년 갑신년에는 일본의 힘을 빌린 조선의 엘리트들에 의한 정변(갑신정변甲申政變)이 일어났으나 청나라에 의해 진압되고 청의 영향력은 강화되었다. 여기에 러시아가 조선에 입지를 넓혀 가자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려는 영국이 1885년 거문도를 무단 점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 열강 따라잡기를 시도한 일본은 급격한 개혁으로 인해 발생한 불안한 국내 사정을 잠재우기 위해 조선에 대한 침략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선은 위로부터의 혁명인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아래로부터 시작된 1894년 갑오 동학혁명이 일어나는 10여 년간 부국강병과 개혁을 위한 귀한 시간이 있었으나, 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였다.
당시 조선에는 1860년 상제님의 천명을 받아 창도된 동학東學이 민중의 삶 속에서 민족의 새로운 희망으로 세력화되고 있었다. 동학은 최제우 대신사가 처형된 이후 최시형을 중심으로 삼례 집회, 광화문 복합상소伏閤上疏, 보은 집회 등으로 교도들 사이의 동류 의식을 강화하였다. 이는 동학을 조직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1894년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에 동학 교도와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드디어 동학혁명東學革命이 일어났다. 초기에는 기존의 민란과 같은 형태였지만, 이후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전명숙全明叔)을 중심으로 동학 접주들이 봉기하여 승승장구하였다. 태인 대접주 김개남金開南, 무장茂長 대접주 손화중孫華仲 등이 중심 인물로 고부 황토현*1)에서 전라감영군을, 장성 황룡촌에서 홍계훈이 이끄는 중앙군을 상대로 승리하였고, 전주성에 입성하였다.
*1) 황토현 - 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으로 상제님 탄강지와 가깝다.
당시 조선 정부의 대책은 한심했다. 자국에서 벌어진 사변을 외세인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이에 기회를 노린 일본도 텐진조약天津條約(1885)을 근거로 조선에 군대를 급파하였다. 이에 동학군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외국 군대 철병과 폐정 개혁을 요구하며 정부와 화약을 맺고 해산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군대를 철수하기는커녕 무력을 앞세워 경복궁을 점령하고, 조선 내정 개혁을 강행하였다. 이것이 근대적 개혁이라고 알려진 갑오개혁甲午改革이었다. 갑오개혁은 자주적인 측면은 있지만, 일본의 침략 의도가 반영된 타율적 측면의 개혁 성격이 더 강했다. 동학군은 다시 결집해 공주로 진격했지만, 중화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이에 일본은 1894년 ‘조선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아산만에 정박한 청의 군함을 급습해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우세한 전력을 바탕으로 청에 승리하였다. 이는 ‘중국 중심의 정치 질서’에 종지부를 찍고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 이후 동아시아에서 촉발된 국제 정치 질서의 급변은 마침내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후천개벽의 개혁 정치를 외친 동학혁명은 세계 정치의 새 질서를 여는 근현대 역사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몰락
러시아를 중심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뭉쳐 청나라를 이긴 일본의 대륙 침략의 기세를 꺾는 삼국간섭 이후 고종과 명성황후는 친러 반일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이에 일본은 경복궁을 습격해 황후를 살해하고 정권을 탈취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이른바 아관파천俄館播遷을 단행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러시아를 비롯해 열강들에게 각종 이권이 침탈되면서 국운이 크게 기울게 되었다.
이에 고종은 1897년 환구단圜丘壇을 세우고 상제님께 고유제告由祭를 올리며 국호를 대한大韓 연호를 광무光武로 선언하고,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자주국이고 천자국임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다. 이후 광무개혁을 추진하였지만, 일본의 방해로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국력을 키운 일본은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따라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켰고 승리하여 제국주의화하였다.
그리고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제로 체결하게 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1907년 정미7조약으로 군대를 해산하는 등 강제 병합의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결국 한민족의 대한제국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의 강제 체결로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어 35년간 광명을 잃었다.
비록 대한제국은 일제의 의해 무너졌지만, 상제님의 세운 공사 천명에 따라 장차 이 지구촌에는 태고 시대 광명光明 문화의 원주인原主人인 한민족을 중심으로 세계일가世界一家의 통일 문명이 열리게 된다.
세운 공사의 결론 : 세계일가 통일 문명 건설
상제님께서 의도하시는 후천 5만 년 상생의 조화낙원 세상은 한민족이 중심되어 개창하는 세계일가, 나아가 우주일가를 이루는 통일 문명이다. 상제님 천지공사의 도수 섭리에 따라 가을 천지를 향한 난법 해원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선천에 누적된 고루한 가치관이 바로잡히고 새 기틀이 열린다. 그래서 지금은 ‘만고의 역신과 원신’이 인간에게 붙어서 뿌리 깊은 원한을 풀어 가는 해원解寃의 시간이자, 후천의 세계 통일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상제님은 선천 우주의 상극 구조가 오선위기五仙圍碁의 형국으로 펼쳐지는 세 판의 씨름(세 번에 걸친 세계대전) 과정에서 모두 허물어지게 하셨다.
상제님은 선천 세상을 바로잡아 통일하시기 위해 ‘세계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는 ‘세계일가世界一家 통일정권統一政權 공사’를 보셨다. 그래서 지난 호에 언급한 대로 인류의 영원한 화평을 이루기 위해 먼저 각 지방신과 지운을 통일하는 공사를 집행하셨다. 한반도에 위치한 천지의 부모산 회문산과 모악산을 중심으로 사명당四明堂이 기운을 발동하게 하셨으며, 이후 전 세계를 통일하여 후천 가을 세상을 여시기 위해 이 땅에 황극신皇極神을 불러오는 공사를 보셨다. 황극신은 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제왕에 응기된 신이다. 황극은 우주가 변화하는 작용의 중심이요, 인사로는 역사의 중심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통치자를 가리킨다. 상제님 당시 이 황극신은 청나라의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되어 있었다. 이에 상제님께서 후천 통일 문명 시대를 여시기 위해 그 신명을 부르는 공사를 보심에 따라, 빛의 실마리라는 뜻을 담은 광서제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였고, 이후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를 거쳐 동아시아 최초의 근대적인 공화국인 한족의 중화민국中華民國으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국을 황하 문명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역사의 종주로 인식하고 있었다. 유교 사관에서는 진시황이 전국 시대를 통일하고 황제라 칭한 후로 천자 문화권이 정립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환국 이후 동방 천자의 종주권을 계승한 천자天子 문화의 본고향은 동방의 한민족韓民族이다. 동방 한민족, 배달겨레는 대대로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상제님을 대행하여 세상을 통치한 천자 문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다 고려 25세 충렬왕 대에 천자권을 몽골의 원元나라에 양도하고 왕王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후 건국된 한양 조선朝鮮은 사대모화주의事大慕華主義를 근본으로 한 왕정으로 일관하다 결국 패망의 위기에 몰렸다. 가까스로 고종 광무제가 천제를 올리면서 천자국의 위상을 회복한 것이다. 인간으로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께서 1908년 무신년 10월에 보신 세계일가 통일정권 공사가 역사의 전면에 총체적으로 실현됨으로써 황극신이 동방의 이 땅에 온전히 넘어오게 되었다. 이는 동방 시원 경전인 『환단고기桓檀古記』를 통해서 문헌적으로 명백히 밝혀졌고, 20세기 후반 한민족의 주 활동 무대인 만리장성 밖 요서 지역에서 발굴된 홍산紅山 문명으로 인해 유적과 유물로도 입증되었다.
세운 공사로 펼쳐지는 역사의 대세
지금으로부터 약 5,300년 전 강수姜水에서 배달국 군병을 감독하던 소전少典의 아들 염제 신농神農씨는 의학과 경농의 시조로서 인류 문화에 복록과 수명의 길을 열어 준 분이다. 의학은 인류에게 수명을 연장해 주었고, 농사는 천지의 녹을 취하면서 복록을 가져다 준 것이다. 또한 시장을 열어 물건을 교역하게 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토대인 시장 문화를 최초로 개척하였고, 인류 시원 성姓인 강姜씨의 시조가 되었기에 상제님도 원시반본의 가을 문화 시대를 맞아 강씨 성으로 오시게 되었다.
상제님은 천상 신도 세계에서 근대 문명의 발전을 선도해 후천 문명의 토대를 마련하고 인류 복록과 수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 인물로 가톨릭 예수회 출신의 마테오 리치 신부를 말씀해 주셨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명明나라에 선교사로 와서 지상 천국을 건설하려는 웅지를 갖고 지적인 역량을 발휘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사후에는 천상으로 올라가 천상 신명들과 함께 서양의 근대 문명을 혁신하는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도전道典 2:30 참조)
이에 따라 유럽에서는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비약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제국주의가 시작되었으며, 지구촌에 자본주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근대 역사의 원동력이 되기는 했지만 부의 집중과 투기를 조장해 빈부의 격차와 계층 간의 갈등을 심화 확대시키는 모순과 부조리를 안고 있었다. 이런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생산 수단을 사회적으로 공유해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 공산주의가 나타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공산주의 국가 소련이 처음 등장했지만 체제의 한계로 인해 결국 해체되는 수순을 밟았다.
서구사회에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취해 인류의 이상 세계를 향한 ‘제3의 길’을 열어 가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선천 세상에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현재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성장을 목표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을 극대로 부추기고 있고, 이로 인한 모순과 갈등이 축적되어 세상을 분열과 대결의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온 인류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정의로운 이상 세계는 개벽 뒤에 열리는 후천 세상에서 비로소 건설되게 된다. 상제님께서는 장차 지구촌의 녹을 고르게 분배해 창생의 삶을 평등하게 하는 후천의 복록소福祿所 도수를 보셨다. 다만 당분간 자본주의의 녹줄을 서양에 두고서 세계를 먹여 살린다고 하셨다. 이후 인류에게 녹줄을 분배하는 복록 대권의 심장부 조직이 장차 개벽과 함께 복록수 도수에 따라 대한민국으로 넘어오게 되어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부富를 창출하여 윤택하게 살아가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 했고, 사회주의에서는 복지福祉와 분배分配 문제가 해결된 평등平等한 사회를 꿈꾸었지만 인간이 잊어버리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 하나가 있다. 상제님께서는 근대 문명이 인간 생존 환경의 바탕인 하늘땅을 병들게 했기 때문에 “이제는 병든 천지를 바로잡아야 한다.”(도전道典 2:58)라는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는 천지 변화의 틀, 변화의 정신을 제대로 알아야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촌의 온갖 재앙은 생명의 큰 부모인 천지 자체가 병들어서 일어나는 것이다.
상제님은 하늘 땅이 만물 생명의 근원이요 만물을 만들어 내는 실제적인 조물주라 밝혀 주셨다. 천지는 만물이 비롯된 근원이요, 인간에게 모든 녹祿을 내려주는 존재가 바로 천지부모天地父母이다. 우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 공기와 자원까지 천지부모의 품에 있는 생명을 인간이 가져다 쓰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이 녹을 쓰고, 또 생산하고 공유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은 천지의 꿈과 대이상을 실현하는 존재이다. 천지의 뜻과 목적에 부합함으로써 다가오는 후천 가을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온 우주의 생명은 선천 상극相克 질서가 무너지고, 후천 상생相生의 질서로 거듭나 진정한 하나의 공동체로 태어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상생의 문명을 설계하신 상제님의 9년 천지공사를 제대로 들여다봄으로써 앞으로 후천 가을우주의 조화 문명, 상생의 통일 문명이 열리는 역사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운 공사의 기틀 : 오선위기五仙圍碁 바둑판과 세 차례 씨름판
상제님께서는 구원의 새 법방을 ‘판’의 개념으로 쉽게 말씀하셨다. ‘판’은 열린 공간으로서 ‘마당’이자,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으로 사건의 ‘바탕’이 된다.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온 선천 역사를 ‘판 안’이라고 한다면, ‘판밖’은 선천 세상에 매여 있지 않는 상제님 후천 가을 세상을 상징한다. 사전적 의미로도 ‘판밖’은 ‘일이 벌어진 자리 밖’을 뜻한다. 그래서 ‘판밖의 남모르는 법’(도전道典 2:134)은 선천의 한계를 넘어선, 창세 이래 이 천지에 등장한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후천의 새 진리 법방이다.
다섯 신선이 바둑을 형국五仙圍碁, 바둑판 도수
상제님께서는 선천 판 안의 모든 법을 정리하시고, 가을철 통일 문명, 지상 조화선경 문화가 열릴 수 있도록 판밖의 남모르는 법으로 천지조화의 기틀을 새롭게 짜셨다. 만유 생명의 어머니인 지구의 혈穴 자리인 한반도 순창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五仙圍碁의 지기가 발동해서 세계 정치 질서가 새롭게 열리도록 ‘천지의 판’을 짜신 것으로, 지난 20세기로부터 세계사 정치 판도가 개벽의 땅 한반도를 중심으로 오선위기 형국으로 벌어지며 천지 해원의 과정이 전개되어 왔다.
오선위기 도수에 따라 선천 역사의 ‘해원판’이 열려 천지의 모든 갈등과 증오와 원한의 살기가 세 차례의 바둑판(씨름판) 과정에서 모두 씻겨 나가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이는 대전쟁과 문명 이기의 비약적 발전으로 드러난다.
상제님께서는 바둑의 시조인 단주丹朱가 인류 역사상 원한의 뿌리임을 밝혀 주셨다. 선천의 모든 원과 한을 풀어 주시기 위해 단주의 해원을 첫머리로 삼아 오선위기 도수로 세계 운로를 정해 놓으셨다. 오선위기란 ‘다섯 신선이 둘러 앉아 바둑을 둔다.’는 뜻으로 다섯 신선은 바둑판 주인인 조선과 이 바둑판에 참여하는 주변 4대 강국(미국, 일본으로 상징되는 해양 세력과 중국, 러시아로 상징되는 대륙 세력)을 가리킨다. 다섯 신선이 세계 운로를 잡아 돌리는 것은 #역사 운동의 본체가 바로 5황극五皇極#이기 때문이다.
세운은 단주 해원 도수인 오선위기의 바둑판 도수로 전개되면서 선천 상극 역사의 시비是非가 모두 가려진다. 이 모든 시비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대사건이 바로 오선위기의 마지막 대결전인 남북 상씨름이다. 오선위기 도수의 전개 과정에서 동북 간방의 한민족이 ‘새 역사 창조의 구심점’으로 거듭나 마침내 지상에 가을철 통일 문명, 지상 조화선경을 열게 된다. 결론적으로 한민족을 중심으로 세계 4대 강국이 얽혀 세 차례의 씨름(전쟁)을 벌이면서 선천 판을 매듭짓게 된다. 즉 한반도는 바둑판인 동시에 씨름판이 된다.
세 차례 씨름판 도수(전쟁 도수)
상제님께서는 후천 새 역사의 문을 여는 오선위기 바둑판 도수가 삼변성도三變成道 원리에 따라 ‘세 차례의 바둑’을 통해 이루어지게 하셨다. 이 대결 과정을 ‘애기판-총각판-상씨름판’이라는 우리 전통 씨름판에 비유해서 말씀해 주셨다.
씨름은 우리 고유의 정서가 깃든 민속놀이이자 전통 무예의 일종으로, 상제님 재세 시 난장亂場이 서면 으레 씨름판이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난장은 정기적인 시장이 아닌 특수한 장으로, 지역 생산물이 집산되는 곳에서 열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방의 경기 부양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 열리는 수도 있었다. 여기에는 장사꾼뿐만 아니라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소비를 조장하였으며, 노름이나 싸움 등도 흔하게 행해졌다. 한편에서는 장이 서고 다른 한편에서는 씨름, 줄다리기, 윷놀이 등 온갖 민속 행사들이 함께 펼쳐지곤 했다.
이때 씨름판은 초반에 아이들이 겨루는 애기판과, 청년들이 겨루는 총각판을 거친 후 마지막 상씨름판에는 어른들이 겨루어 최종 승자를 결정지었다. 특히 이 상씨름은 ‘소[牛]’를 상품으로 걸고 최후의 일전을 벌였기에, ‘소걸이 씨름’이라고도 불렸다. 상제님께서는 이 고유한 풍속을 천지 공사에 끌어다 쓰셨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세운 공사의 애기판 씨름은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전개되었고, 총각판 씨름은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상씨름은 남쪽 상투쟁이와 북쪽 상투쟁이가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힘을 겨루는 한국전쟁과 앞으로 펼쳐질 제3차 세계대전으로 전개된다.
상제님께서 보신 전쟁 도수는 선천 세상에 쌓여 온 온갖 원과 한을 해소하는 과정이다. 상제님께서는 선천의 원한으로 인류가 진멸지경에 이른 상황을 전쟁으로 조율하심으로써 ‘큰 화를 작은 화로써 막아 다스리며’(도전道典 2:17) 단계적으로 원한의 살기를 해소하고자 하셨다. 전쟁 도수는 인류를 많이 건지기 위해 상제님께서 조율하신 최선의 전략인 것이다.
전쟁은 비극이다. 수많은 인명 피해와 물적 손실이 나오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창조를 위한 파괴 현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전쟁의 근본 원인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클라우제비츠Clausewitz 『전쟁론』의 경구처럼 전쟁은 최후의 정치 행위 수단으로도 쓰인다.
인류 문명사의 모든 원한과 고통, 모순과 비극을 일소一掃하는 최후의 결전 상씨름 과정이 지나면, 궁극적으로 전쟁의 역사를 끝막고 선천의 상극 질서가 정리되는 것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이는 남북 상씨름은 결과적으로 지구촌 동서양 문화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세계 상씨름이며, 천지 질서가 분열에서 통일로 돌아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천지 전쟁이며 개벽 전쟁이다. 지구촌 전 인류의 생사를 판가름하는 상씨름 전쟁을 제대로 인식하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삶의 향방은 물론 한반도의 갈등과 분단의 역사, 나아가 동서양 근현대사를 보는 안목이 달라진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오선위기 도수를 보실 때 “바둑을 마치고 판이 헤치면 판과 바둑은 주인에게 돌아가느니라.(도전道典 5:6)”라고 하신 이 ‘주인主人’이 상씨름 판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주인은 인류 시원 문명의 종주이자 후천 세상을 여는 주체 민족인 우리 한민족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뜻은 선천 역사를 종결짓고 후천 새 세상을 여는 도운의 참주인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즉 세운은 도운의 주인, 상제님 도통 문화의 진주眞主에 의해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8장에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제2절 애기판 씨름: 제1변 세운공사
이제 세상 운로를 결정하신 상제님의 세운 공사 내용을 살펴보면서 세계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가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을 내세워 서양 제국주의를 물리치심 : 러일전쟁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보신 20세기 초엽에는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약소국 침략이 절정에 이르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물론 태평양의 작은 섬까지도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고, 동북 간방의 조선도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이에 상제님께서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꺾고 꺼져 가는 동방의 빛을 훗날 다시 밝히기 위해 일본日本이라는 나라를 일꾼으로 내세웠다.
상제님은 1903년 10월에, 친일파로 몰려 순검대에게 쫓기고 있던 김병욱 성도를 통해 애기판 씨름 공사(도전道典 5:50)를 보시어 공사公事와 사사私事가 함께 끌러지게 하셨다.
이 애기판에서 동양 제국주의 일본과 서양 제국주의 러시아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판을 대하게 되었다. 본래 동양에 속했던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 때 개혁을 통해 근대화를 가속하였다. 이후 러시아는 영토 확장과 함께 겨울철에 얼지 않는 부동항不凍港을 얻기 위해 남하를 시작하였고, 인도印度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이를 저지한 대영제국 간에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 벌어졌다. 이 게임은 중앙아시아 내륙에서 충돌하다가 중국과 극동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면서 막을 내렸다.
한편 메이지 유신으로 급격한 근대화를 추진한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한 영국과 동맹을 맺어 극동에서 가장 우수한 해군력을 갖추게 되었다. 러시아는 영국과 영원한 맞수인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이에 맞섰다.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훈수를 한다.”는 상제님 말씀대로 오선위기 편 가르기가 시작된 것이다.
1895년 동학혁명군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전쟁의 결과로 얻었던 랴오둥반도遼東半島를 삼국간섭三國干涉(러시아⋅독일⋅프랑스)에 의해 빼앗기자 절치부심 군국주의로 나아갔다. 러시아와 일본은 한반도를 드나들며 산발적인 전투를 벌였고, 상제님께서 일러전쟁을 붙인다(도전道典 5:50)고 하신 후로 약 1년 반 동안, 일본과 러시아는 또 다른 두 씨름꾼인 영국과 프랑스의 훈수를 받으면서 싸움을 벌였다. 당시 대한제국은 ‘주인은 어느 편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한다.’고 하신 말씀대로 국외 중립을 선언하였다.
때를 벼르던 일본은 1904년 2월 8일, 마침내 선전포고 없이 기습적인 선제공격을 감행하여 러일전쟁이 발발하였다. 일본은 요동반도에 있는 여순항을 향해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고 진격해 결국 점령하였다. 여기에서 일본은 무조건 돌격하는 이른바 ‘반자이萬歲’ 돌격과 인명 경시의 전술을 내세웠다. 총병력 13만 명 중 절반 이상이 전사하였고, 장교는 10분의 1만 살아남았다. 이 외에도 한반도 전역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만주 등지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 정부는 동해에서 러시아 군함을 감시하기 위해 울릉도와 독도에 군사용 망루를 설치하였다. 1905년 2월 22일에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내용의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발표하였다. 울릉도에는 1904년 9월, 독도에는 1905년 8월에 망루를 세웠다. 이 전쟁의 분수령이 되는 대한해협 전투의 마지막 추격전이 독도 인근에서 끝나게 되어, 독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러일전쟁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 싸움은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大韓海峽에서 전개된 쓰시마 해전으로, 일본 연합 함대와 세계 최강으로 불린 러시아 발틱 함대의 결전이었다. 영국의 방해로 세계의 절반을 돌아 9개월을 항해한 끝에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들어가 정비할 틈도 없이 조선의 동해에 이른 발틱 함대는 일본 함대의 공격에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 해전의 완승으로 일본은 확고하게 제국주의帝國主義 열강의 반열에 올라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는 1945년까지 동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했다.*2)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정국이 혼란한 러시아와 국력이 소진된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어 미국의 중재로 포츠머스강화조약을 체결해 전쟁을 매듭지었다. 당시 주일 미국 대사관 주재 무관이었던 아서 맥아더Arthur MacArthur는 러일전쟁을 참관한다. 이때 아들인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1880~1964)를 부관으로 데리고 있었다. 바로 우리가 아는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이다. 이렇게 장차 상씨름판의 훈수꾼이 될 미국이 애기판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2)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도 ‘무조건 돌격’을 외치다 무수한 사상자를 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전海戰의 흐름이 항공모함 위주의 전투였는데, 대형 전함 위주로 대응하다 패배했다.
일본인들은 대한해협 해전에서 천우신조로 불어온 동남풍(도전道典 5:53, 상제님께서 보신 ‘49일 동남풍 공사’)을 ‘가미가제神風’라 불렀다. 당시 연합 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鄉平八郎 제독의 참모로 참여한 아끼야마秋山 중장(당시 중좌, 중령급)은 발틱 함대가 대한해협을 항진하는 장면을 영몽靈夢으로 두 번이나 자세히 계시받음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다(아사노 키즈지로淺野和三郞, 『동룡冬龍』).
서양 대전쟁 기운의 조성과 약소민족 해방 도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본의 승리로 유럽 강대국들은 일본의 패기와 진취성에 놀랐다.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되었다. 이후 사회주의 실험 70년의 길을 걸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극동 지역을 지배하려던 꿈을 접고 발칸반도 쪽으로 눈을 돌렸고, 이후 유럽에서는 발칸반도에서 오랫동안 쟁점이 되어 온 복잡한 인종 문제와 식민지 쟁탈 문제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 같은 긴장 국면의 이면에는 상제님 천지공사에 따른 신도神道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었다. 유럽 제국의 침략 야욕을 풀어놓기 위해, 유럽 전역에 전운이 조성되게 공사를 보신 것이다. 즉 유럽은 내부 단속을 해야 했고, 이어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으로 국력을 많이 소진하게 된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이를 위해 한민족의 수호성신을 서양으로 보내셨다(도전道典 2:58). 그리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약소민족과 식민지 국가들은 자주 정신을 배양하고 근대화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었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그렇게 꿈꾸던 조선을 독점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고, 만주에 대한 주도권을 잡음으로써 대륙 침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러일전쟁 종전 직후 대한제국은 일본군의 강압에 의해 외교권을 빼앗겼다(1905 을사늑약). 이에 조선은 큰 충격에 휩싸였고, 민족의 정기가 극도로 쇠잔해져 갔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고종 황제의 시종무관이던 충정공 민영환閔泳煥의 순국殉國을 명부 공사로 처결하시어 자주독립을 향한 민족의 대동 단합이 이루어지도록 대세를 잡아 돌리셨다. 을사늑약 체결에 비분강개한 민영환이 할복 자결하자 피폐하던 민족정신은 자주독립을 향한 충정으로 혁신되어 을사 의병으로 민족의 혼 속에 불붙어 갔다. 대마도로 끌려간 면암 최익현의 순국(도전道典 5:139), 의암 손병희의 죽음(도전道典 6:123)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도전道典 5:365) 등도 모두 상제님의 명부 공사 처결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안安’씨 성姓에 붙인 이등박문 심판 공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충혼 안중근安重根 의사는 동양 평화의 꿈을 향한 대한의 기개와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떨친 위대한 인물이다. 1909년 10월 16일 옛 조선의 도읍 하얼빈哈爾濱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伊藤博文)를 심판한 이 사건은 동방 천자 문화의 종주인 조선의 식민지화를 주도하고, 동북아 역사의 종주권을 빼앗아 아시아의 패권을 움켜쥐고 지배하려는 검은 야심은 천지에서 용납할 수 없는 불의이기에 역사의 한 인물을 내어 그를 처단하신 것이다.
조선을 일본에 의탁하신 연유
여기서 우리는 조선을 일본에 의탁하신 상제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 봐야 한다.첫 번째로는 서양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조선을 구하신 것이다. 한민족은 동방 천손 민족이다. 하지만 19세기 말 당시 조선은 상제 문화와 신교 문화를 잃어버려 국력이 쇠잔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애기판 씨름에서 승리한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에 일꾼으로 들어와 서양 세력 진출을 막고 개화의 길을 닦는 데 역사하게 하시고, 주인인 조선에게는 본연의 도덕적 기품과 충의의 정신을 잃지 않게 하셨다. 무엇보다 인류 시원 역사의 주인공인 한민족으로 하여금 시련의 역사 속에서 잠자는 민족혼을 일깨우고 민족정기를 일신함으로써 인류 구원과 후천 문명 건설이라는 성스러운 대업을 감당할 수 있게 연단시키려는 깊은 뜻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임진왜란 때 #일본 사람들이 품었던 세 가지의 한恨을 풀어 주는 해원解寃#의 의미가 있다.
임진란 당시 조선에 와서 성공하지 못해 맺혔다는 일본 사람의 삼한三恨(도전道典 5:286)을 풀어 주시기 위해, 상제님께서는 #천지역군에게 닥칠 큰 화액을 직접 대속#하시는 공사를 보셨다. 1907년 정미년 1월 상제님께서 ‘#진주 도수眞主度數#’ 공사를 보시기 위해 고부 경찰서에 친히 들어가 일본 헌병에게 모진 고문과 갖은 모욕을 당하셨다. 상제님께서 뒤에 말씀하시길 “지난 임진 난리에 사명당이 일본에 가서 인피 삼백 장을 받아 오려 하였나니, 그때 일본 공주가 ‘나 먼저 벗기라.’ 하고 자결하였느니라. 그 죽은 혼령이 원귀가 되어 내가 죽은 뒤에 너희를 죽이려고 헌병을 이끌고 왔나니, 내가 해원시켜 그 도수를 때웠노라.”(도전道典 5:214)라고 하셨다. 일본 공주의 원혼이 400여 년 동안 천지에 맺혀 있다가, 강력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더불어 해원하려 하기 때문에, 서슬 시퍼런 제국주의의 기세에 살아남을 자가 적을 것을 아시고 #일본 공주를 해원#시키고 미리 액땜을 해 주신 상제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다. 진주 도수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제8장 도운 공사에서 다시 살펴볼 예정이다.
천상의 병마대권자 관운장과 제1차 세계대전
서양 제국주의 침략의 손길이 아프리카를 넘어 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아편전쟁으로 청나라를 병들게 하고 이제 마지막 관문인 한반도를 향해 뻗쳐 왔을 때, 상제님께서는 일본 제국주의를 앞세워 서양 세력을 막게 하셨다. 그리고 약소민족을 지키기 위해 유럽에 대전쟁을 일으키는 공사를 보셨다. 이 대전쟁 공사를 신도에서 집행하는 주인공이 바로 천지 병마대권兵馬大權을 맡아 주재하는 관운장關雲長이었다. 상제님께서는 충의로 충만한 관운장에게 서양 제국주의의 불의와 오만을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로 내리쳐 베게 하신 것이다. 이때 조선의 각 지방을 돌보고 지켜 주는 보호성신들도 상제님의 명을 받고 서양에 가서 크게 역사하였다.
1906년부터 1914년까지 유럽에서는 영국⋅프랑스⋅러시아(삼국협상三國協商)와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삼국동맹三國同盟)의 두 제국주의 집단이 충돌을 일으키며 긴장을 고조시켜 나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유럽은 세계의 화약고라 불린 발칸반도에서 복잡하게 얽힌 민족 문제(독일 중심의 범게르만주의와 러시아 중심의 범슬라브주의와의 충돌)가 불거지면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갔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령 보스니아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수도 사라예보에서 ‘기묘한 불운’이 중첩되는 가운데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이 바로 누구도 원하지 않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의 도화선이 되었다.
분개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후 34개국이 참여한 세계 대전쟁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일본도 뒤늦게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뒤 연합국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런데 이 세계 대전쟁 중에 질병疾病이 돌자 1918년 돌연 종전을 맞이하였다. 한번 걸리면 3일 만에 죽는다 하여 ‘3일 독감’이라 불린 스페인 독감(실제로는 프랑스에 주둔했던 미군 병영에서 시작되었다)이 창궐하여 군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넘어가면서 서둘러 전쟁을 끝맺게 된 것이다.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함께 오느니라.”(도전道典 7:34)라고 하신 상제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에서는 더 큰 전쟁이 준비되었다. 전후 파리 강화회의에서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면서, 독일에 엄청난 배상금을 물게 하고 전승국의 의도에 따라 복잡하고 새로운 국경선이 다시 그어지면서 민족 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이런 제국주의 열강의 꺼지지 않는 탐욕은 더 큰 전쟁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애기판 씨름의 역사적 의의
이제까지 우리는 천상 조화정부에 있는 한민족의 보호성신들이 자손 곁을 떠나 지상에서 세계 역사를 선도해 가는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애기판 씨름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유럽 전역에서 불붙음으로써 침략욕에 불타던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동양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주춤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진행된 강화회의에서 미국의 윌슨Thomas W. Wilson 대통령이 제창한 14개 조항의 평화 원칙이 적용되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는 전쟁 후 발칸반도 및 동유럽의 패전국들이 식민지를 내놓고, 승리한 영국과 프랑스가 패전국의 식민지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윌슨의 선언은 패전국 영토에 귀속된 소수의 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오해한 우리나라에서는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났다(일본은 이때 승전국의 일원이었다). 이는 인도, 중국, 서남아시아 등지에서 일어난 반제국주의 운동의 효시였다.
유럽과 중동에서 일부 제국이 몰락하고 많은 약소국이 독립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은 동서양의 세력 균형을 이루는 첫 손길로 작용하였다. 영국 등 유럽 제국은 기세가 한풀 꺾이고, 오스만튀르크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었다. 독일 제국은 빌헬름 2세가 퇴위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섰고, 러시아는 공산 혁명으로 무너졌다. 반면 인권과 민주주의를 세계에 뿌리내린다는 ‘자유 이념’을 들고나온 미국은 군사 강국으로 자리를 잡았고, 일본도 많은 이익을 챙기며 신생 제국으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
애기판 씨름의 결과 동양 여러 나라는 구시대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훗날의 번영을 기약하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아울러 상제님의 ‘세계일가 통일정권 공사’에 따라 천상 조화정부가 지상에 발현되기 시작하였다. 전쟁 처리를 위해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면서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의 결과로 국제연맹國際聯盟(League of Nations, 1920년 42개 회원국으로 출범)이 192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창설되었다. 이로써 세계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기구가 설립되어 역사 속에 세계 통일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