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이 지은 하느님의 노래 - 『용담유사龍潭諭詞』

[이 책만은 꼭]

역저자 도올 김용옥
고려대학교 생물과, 철학과, 한국신학대학에서 수학하고 대만대학, 동경대학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다시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6년의 학부 수업을 마치고 의사가 되었다. 그는 고려대학, 중앙대학, 한예종, 국립순천대학교, 연변대학, 북경대학, 사천사범대학 등 한국과 중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제자를 길렀다.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등 90여 권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베스트셀러들을 통해 끊임없이 민중과 소통하여 왔으며 한국 역사의 진보적 흐름을 추동하여 왔다.

유교의 경전 역주를 완성하였으며, 신학자로서도 권위 있는 성서 주석서를 많이 저술하였고, 영화, 연극, 국악 방면으로도 많은 작품을 내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국학國學의 정립을 위하여 한국의 역사 문헌과 유적의 연구에 정진하고 있다. 또 계속 진행되는 유튜브 도올TV의 고전 강의를 통하여 그는 한국의 뜻있는 독서인들과 소통하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그의 저서 〈우린 너무 몰랐다〉, 〈스무 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금강경 강해(개정신판)〉,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노자가 옳았다〉, 〈동경대전1-나는 코리안이다〉, 〈동경대전2-우리가 하느님이다〉는 모두 그가 새로운 국학의 여정을 밟고 있는 역작들이다.

1894년 갑오 동학농민혁명의 원천, 『용담유사龍潭諭詞』


동학東學 신도들이 안심가安心歌를 잘못 해석하여 난을 지었느니라. (道典 5편 4장 1절)


경신년 4월 상제님 음성을 듣고 문답하며 도통한 최수운 대신사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문으로 된 『동경대전』과 한글로 된 『용담유사』를 집필하였다. 수운이 한글 가사를 열심히 썼던 이유에 대해서, 역주자는 한글은 민중의 언어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자신이 받은 ‘무극대도’는 한학 교육을 받은 고루한 의식 구조를 파고들어 가기가 매우 힘들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단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깨인 의식을 지닌 민중이 마음을 통하여야 ‘다시 개벽’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한글 가사는 수운이 애초 민중과 교섭하기 위한 매체로 설정한 문학 양식이었다는 것이다. 아주 쉬운 한글 가사를 통해 이는 구전口傳되면서 전국에 퍼져 나갔다. 말랑말랑한 수운의 의식은 이제 민중들의 동학이 되었고, 1894년 갑오년 역사의 대지진인 동학혁명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학 신도들이 「안심가」에서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개 같은 왜적 놈들’ 따위를 ᄒᆞᄂᆞᆯ님 조화 받아 하루아침에 물리칠 만큼 십이제국 괴질운수를 이겨 낼 수 있는 조화를 받았다는 것과 영남 유생들이 서학으로 음해한 것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한 내용이 원래의 의도와 달리 흘러가게 되었다. 서학에 대한 반감은 척양으로, 조선을 침략하는 ‘개 같은 왜적 놈’에 대한 분노는 척왜로 번져 마침내 갑오동학혁명으로 불타올랐다. 동학 신도들은 「안심가」에서 아버지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닦아 다시 개벽을 대비하라는 핵심 주제를 놓치고 일본을 향한 지엽적인 분노에 휩쓸려 성급하게 일을 도모했던 것이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동경대전』과 『대선생주문집』을 완역한 이후에 풍요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용담유사』를 완벽하게 지금의 우리말로 해체시켜 재구성해 냈다. 오염되지 않은 19세기 말 당시 언어 그대로 어려운 한문 내용은 한학의 전문가답게 출처를 밝히며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동학 이해의 개벽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수운 최제우


고운 최치원의 후손인 최제우는 경주 최 부잣집의 기틀을 놓은 정무공 최진립의 7대손이다. 당시 동양은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으로 국권과 온갖 이권을 침탈당하는 시대였다. 동방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 최제우는 일찍이 구도에 뜻을 두고, 공부에 전념하며 도를 구했다. 고향인 경주 구미산 아래 용담정에 들어가며 ‘뜻을 이루기 전에는 세상에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일심으로 기도에 정진했다. 이듬해, 그의 나이 37세이던 1860년 음력 4월 5일, 마침내 최제우는 천주이신 상제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물구물공勿懼勿恐하라. 세인世人이 위아상제謂我上帝어늘 여부지상제야汝不知上帝耶아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이르거늘 너는 어찌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 『동경대전』 「포덕문」 中


이러한 ‘천주님과의 천상문답’을 통해 수운 최제우는 천명과 신교를 받고 도통을 하게 된다. 이 과정과 가르침을 집필한 책이 『동경대전』이고, 다시 한글로 하느님을 노래한 가사집을 쓰니 바로 『용담유사』이다. 최제우는 ‘인간으로 오시는 천주님을 모신다.’는 ‘시천주侍天主’를 선언하고, ‘다시 개벽’의 새 세상이 열릴 것을 선포하고 동학을 창도하였다.

『용담유사龍潭諭詞』의 주요 구성과 내용 알아보기


동학의 사상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라는 수운 최제우가 직접 저술한 두 문헌으로 온전히 남아 있다. 『동경대전』은 순 한문으로, 『용담유사』는 순 한글로 지은 4.4조 가사이다. 용담은 경주 인근의 최수운이 활동하던 지역 이름이고 유사는 깨우침을 주는 노래라는 뜻이다. 『용담유사』는 당시에 『수운가사』라고도 하였다.

총 8편으로 이루어진 동학의 노래 『용담유사』는 한글 가사이기에 좀 더 쉽게 민중의 마음속으로 곧바로 파고들 수 있었다. 수운은 우리 한글로 자신의 생각을 민중과 소통하겠다는 위대한 발상을 했다. 표의문자인 한문과 표음문자인 한글이라는 양대 언어 양식을 동일한 무게로 취급하고, 심오한 사유를 두 언어 양식에 걸맞게 분산시켜 표현했다는 데 위대함이 있다.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는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수운의 인간적 면모와 개인적 삶과 생활의 질감이 묻어나는 사상 표현은 『용담유사』 쪽에 집약되어 있다.

도올의 수운가사
이 책에는 도올의 엄정한 문헌 비평에 의해 밝혀진 『용담유사』의 집필된 순서로 「용담가」, 「안심가」, 「교훈가」, 「도수사」, 「권학가」, 「몽중노소문답가」, 「도덕가」, 「흥비가」 등 8편의 가사 원문 전체를 1883년 계미중추본의 판본 한글 그대로 담고, 독자의 이해를 위해 각 어휘에 해당하는 한자를 첨가하였다. 그리고 각 편들의 전체 개요와 현재 우리말 풀이, 보충 설명을 달았다. 이 책의 말미에는 부록으로 근래에 도올이 국제적으로 발표한 ‘동학선언문’과 ‘동학과 21세기 혁명’이라는 두 편의 장쾌한 문장이 영어 버전과 함께, 그리고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에 관여된 다수의 문헌 자료가 실려 있다.

「용담가」의 주요 내용
1860년 4월 5일 경신년 상제님과 천상문답 사건으로 시천주주와 무극대도를 받아 낸 사건, 그 느낌이 생생하게 남아 있던 시기에 쓰인 것으로, 동학의 시작은 한글 노래였다. 경주 구미산 용담의 아름다움과 득도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그동안의 비극적인 삶의 역정이 무극대도 수용을 계기로 환희로 전환되는 그 감격이 여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안심가」의 주요 내용
문자 그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안심하라.”라는 메시지를 발하기 위해 쓴 글이다. 핵심은 내가 가르치는 도는 서학이 아니니, 안심하라는 뜻을 특히 부녀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득도의 과정과 “개 같은 왜적 놈아”라는 표현이 세 번 나오면서, 아무리 서양 제국주의의 위세가 세계를 전복시키고 있다 해서 이런 틈새를 타 발호하는 것은, 임진왜란 때 우리를 침략한 왜적 놈일 수밖에 없음을 갈파하고 있다.

역주자는 수운의 가사는 실로 중층적인 외연, 내포를 가지고 있어서 그 모든 맥락을 표면화시키지 않으면 명료한 뜻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정말 「안심가」 주석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고 토로하고 있다. 더불어 수운을 이해한다는 것은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요구한다고 하고 있다.(책 126쪽)

「교훈가」의 주요 내용
8개 가사 중 가장 포괄적이고 교리의 핵심을 전한다. 경주에 남기고 온 제자들을 향해 무극대도에 관한 바른 교훈을 일깨우기 위해 쓴 글로 「안심가」가 압축적인 데 반해 산문적이고 유장하다. 운수는 좋지만 최수운 자신을 믿지 말고 한울님, 즉 호천금궐의 상제님을 믿어 정심 수도하는 것에 정성과 공경을 다하라는 당부의 마음이 담긴 글이다.

「도수사」의 주요 내용
1861년 12월 25일경 완성되었다. 이후 거처를 남원 교룡산성 은적암으로 옮긴다. 원래는 덕밀암德密庵인데, 수운이 정착하면서 그곳을 자신이 한갓지게 자취를 숨기고 은거하는 암자라 하여 은적암隱跡庵이라고 개명하였다. 은적암은 수운이 반년 이상 머문, 동학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훗날 동학혁명군의 김개남 장군의 군대가 주둔하였다.

문자 그대로 도를 어떻게 닦아야 하냐에 관한 담론으로, 직접 가르침을 베풀지 못하는 안타까움 속에서 용담에서 도를 닦고 있는 도인들의 수도 자세에 관하여 애타는 돌봄의 심사가 끊임없이 끓어오르고 있다. 제자들에게 도를 닦는 요체를 설명하는데, 성경誠敬 두 자를 닦으면서 연원을 잘 바룰 것과 스승 되는 법과 제자 되는 법을 잘 따라 난법난도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권학가」의 주요 내용
수운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이단으로 몰리고 있는 난처한 상황에 매우 근원적인 처방을 기획하게 되었다. 본래 무극대도라고 표현한 득도 내용을 좀 더 서민들이 알아듣기 쉽게 고쳐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자기를 음해하는 난법난도자들에게 왜곡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서학의 추종자로 낙인찍는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배제하는 명칭을 필요로 하여, 이에 ‘동학’이라고 하였다.

서학에 대한 “동학”이라는 명칭은 “무극대도”라는 본래적 성격을 너무 피상적으로 만들고, 대립적이고 국부적이고 상대적인 제한성을 가할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수운의 “동”은 해동의 동이요, 조선의 동, 단군 조선의 동, 살린다는 동으로 봐야 할 것이다. 간결하고 발음하기 편하고, 서학으로 오인될 소지를 없애 버렸다. 이 무렵 최수운은 교룡산성 산등성이에서 달밤에 웅장한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며 「검결」을 읊었다.

「권학가」는 동학을 권하는 노래이다. 다 같이 동귀일체同歸一體할 것을 권유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으로 ᄒᆞᄂᆞᆯ님을 공경할 것과 성경誠敬 두 자로 ᄒᆞᄂᆞᆯ님을 공경하면 신병身病이 물약자효勿藥自效할 것임을 밝히고, 백년 신세를 말하는 사람이 있거든 이 가사를 주고 가르침을 주어 새 운수를 받들도록 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몽중노소문답가」의 주요 내용
수운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한 작품이다. 이 가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자 하였으며, 다시 개벽의 확신을 선포하고자 하였다. 수운의 출생, 성장, 득도 과정, 득도 내용을 픽션으로 구성하고 있다. 여기서 꿈은 무극대도의 도래에 대한 확신과 선택된 자로서의 신념을 의미하고 있다.

자신이 모습을 이상화하고, 신비롭게 만들고, 다시 개벽의 리더로서 새롭게 주장하고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 오만 년 운세가 총집결된 금강산에서 태어난 옥동자가 주류 팔도하고 금강산으로 돌아와 꿈속에서 도사를 만나 깨우침을 얻는다는 내용이 있다. 하느님의 뜻을 민중에게 깨우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도덕가」의 주요 내용
남원을 떠나 다시 경주로 돌아왔다. 한글 가사 중 가장 짧은 노래로 도덕은 영어의 morality가 아니다. 현대어 도덕은 과학적 사실과 대비되는 인간 행위의 가치 영역을 의미하지만, 우리 동방 언어에는 그런 대비적 개념성이 없다. 도는 길이다. 인간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다. 덕은 인간이 그 길을 걸어가는 데 필요한 덕성이고, 그 길은 길과 더불어 온축蘊蓄되어 가는 것이다. 도덕은 삶의 총체이며 삶이 위치한 우주의 총체이다.

이때 수운은 1862년 12월 말 흥해에서 제창한 접주 제도를 거두고 해월 최시형을 후계자로 지목하여, 1863년 8월 15일 새벽에 도통을 전수한다. 접주들의 방만한 다원화된 체제가 아닌, 해월 한 사람만의 지도력으로 자기 사후 동학을 이끌어 가게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 선택이야말로 동학이 오늘날 ‘민족의 동학’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관건이 되었다. 수운은 해월의 성품과 인격, 그 지극정성이 겸허한 삶의 태도, 그리고 무전제적인 배움의 수용, 몸에 배인 인간 평등관, 순결한 대인접물의 자세, 즉 도덕과 관련이 있어서 그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해월조차도 직접 상제님을 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천주라는 동학의 핵심 메시지가 왜곡되기 시작하였다.

역주자는 「몽중노소문답가」에서 수운은 무극대도의 선포자로서 자아상을 매우 신비롭고 신적으로 그리고 했다면, 「도덕가」에서는 철저히 상식적이다. 초월에서 내재로, 비상에서 범상으로, 일시적 혁명에서 영구적 혁명으로, 초월적 인격성에서 일상 인과적 자연성을 전환시키고 있다면서 수운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서술하고 있다(269쪽). 또한 「도덕가」는 수운의 글 중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글이며 가장 사상적으로 성숙한, 어른스러움을 과시하는 대논설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흥비가」의 주요 내용
「흥비가」는 난해하기로 유명하고 역주자는 그의 유언장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시경詩經의 노래체인 흥興과 비比를 사용하여 도를 닦는 법을 가르친 노래다. 흥은 먼저 다른 물건을 읊어서 그 목적한 것을 끄집어 일으키는 것이요, 비는 어떤 사물을 끌어대어 그와 비슷한 다른 사물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즉 도를 닦는 일은 결코 어렵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일상적인 일부터 요령 있게 행하는 데에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도를 깨달아 무궁한 우주적 존재인 ᄒᆞᄂᆞᆯ님과 같은 무궁한 인간의 존재를 깨닫는 곳에 도의 본체가 있다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모기가’라고 바꾸어도 되는데, 이는 종교 사기꾼들을 ‘모기’에 비유하여, 모기의 행태를 자세히 분석하고 사기꾼들의 행각을 섬세하게 그려 나가고 있다. 이것이 무극대도 경전 내용이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하기 때문에, 수운은 시경의 시를 짓는 작법의 원리에 비의比擬하여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이 「흥비가」를 1863년 8월 13일에 반포하였는데 그로부터 4개월 후인 1863년 12월 10일 새벽 최수운은 용담에서 선전관 정운구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3월 10일 대구 남문 앞 개울가에 있는 관덕당 뜰에서 효수되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용담유사』는 기본적으로 한글 가사, 즉 노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 내서 읽기를 권한다. 한 번이 아니라 열 번 이상 소리 내서 읽기 바란다. 여기에 우리가 아는 아리랑이나 쾌지나칭칭나네와 같은 음조를 곁들여 보는 것도 읽는 맛을 더해 줄 수 있다. 그러면 바로 앞에서 최수운 대신사님이 일러 주는 것 같은 생생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맥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꼭 여러 번 소리 내어 흥얼거려 보기를 바란다.

또한 이 책은 번역한 책이다. 비록 한글이지만, 100여 년 전에 사용한 우리의 어휘가 이렇게 달랐을까 싶기도 하고, 중간중간의 한문에 대한 기본적 지식도 있어야 하기에 번역이 필요했다. 하지만 역자의 생각도 많이 들어가 있고 현재 우리가 쓰는 언어의 결과물로 비교적 최선의 구성을 이룬 책이 바로 도올의 『용담유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를 참고하시되, 최수운 대신사가 상제님을 뵙고 받아 내린 시천주주를 수련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본래의 뜻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수운의 『용담유사』는 도올의 『용담유사』가 아니라, 이를 읽고 수도하는 이들의 『용담유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