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의 운명적인 만남 외(서혜주, 윤재국, 김규민)
[입도수기]
진리와의 운명적인 만남
서혜주(여, 53) / 서울광화문도장 / 도기 152년 음력 2월 입도
인연 있는 사람과 공부를 만나고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조상 대대로 강한 구도심이 준비되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진실로 내가 우리 가문을 살릴 씨종자일지, 모르겠다. 도기 152년 봄에 입도하기로 내 도수가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유아기의 힘든 체험으로 10대 때부터 ‘하늘이 계시다면 내 마음을 알아주시겠지.’ 하는 생각을 늘 해 왔다. ‘막살면 안 된다.’라는 스스로 정한 좌우명을 삶 전반에서, 언행에서 잘 지켜 왔다.
마음공부로서 30대의 상담심리학 공부, 이어서 단학 수련을 다년간 해 오고 있음에도 나의 깊이에 부족함이 있는지 그 학문의 한계 때문인지 무언가 허한 마음이 있었다.
단월드의 같은 센터에 있는 도반인 김동일 도생으로부터 2월 하순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생존의 비밀』 책자를 소개받았고, 다음번 만남에서 증산도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생존의 비밀』 책을 이틀 만에 독파하였다. 그냥 절로 술술 읽히고 장애 없이 이해가 빠른 자신이 고마웠다. 나보다 먼저 인연이 닿았고 더 많이 알고 있는 귀인이 자신의 경험 끝에 얻은 참정보를 전해 주니 시간과 노력이 절약되어 하늘로부터 선택받고 복 받은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곧바로 포정님을 소개받았고, 선물로 받은 『도전』 책이 너무도 재미있어 손에서 놓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언젠가 누군가 해 준 말, “천음을 듣는 데 능하다.”는 말이 문득 기억났다.
나의 지난 모든 시간들은 이 운명적인 공부를 만나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던 듯하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고, 어떤 일이든 일어날 만해서 일어난다. 결국 인연이 있어 만날 사람과 공부는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
미력하나 바르게 쓰이길 바라며
역사 속에서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분들을 세상에 내려보내신 분이 상제님이셨다. 그 성인들이 잘못한 것을 조목조목 꾸짖을 수 있는 분도 상제님뿐이시다. 100여 년 전에 짜 놓으신 도수에 따라 오늘날 세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이 이상도 이 이하도 없는 참을 만났는데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구도심의 속도와 정도에 스스로가 놀라겠다. 수호사님께 말씀드렸다. “미력하지만 이곳에서 제가 바르게 쓰이길 바랍니다.”라고.
이제 정신 차리고 보니 시간이 많이 없다. 머지않은 미래, 그때 나도 살리고 주변도 살리기 위해 의통 등 철저한 준비를 잘해야겠다.
저를 있게 하신 저의 조상님들께 감사합니다. 상제님, 태모 고 수부님, 저를 받아 주심에 진정 감사드립니다. 잘 성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저를 써 주십시오”
윤재국(남, 68) / 구미원평도장 / 도기 152년 음력 2월 입도
세상을 다니며 얻은 것들
저는 전라도 장성면 북이면 사거리(백양사 근처)에서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상제님의 고향과 아주 가까운 곳이었는데, 김제에 있던 외갓집과 아버지 그리고 그 일대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보천교를 신앙했습니다.
어릴 때 금산사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미륵불 불상을 보고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못했지만 저는 불상을 쓰다듬기도 하고 닦아 드리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 전라도에 있다가 의정부와 서울 마포에서 자랐습니다.
8살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커 가면서 여러 단계를 거쳐서 장로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서는 항상 무언가 비어 있고 허전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현대건설 기사로 취직을 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해외 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교회에서 만난 여성분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이라크와 이란의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을 세워야 한다며 다시 사우디로 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혼이라 못 간다고 했고, 이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후에 저를 대신해서 갔던 사람이 현지의 폭격 사고로 사망을 했습니다. 제가 갔으면 죽었을 수 있었는데 조상님께서 못 가게 말리신 것 같습니다.
이후 가야금을 만드는 정삼악기란 직장에 다녔는데, 여기서는 생산과장이란 직책을 맡아 악기를 만들 때 쓰이는 나무를 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악기를 만들 수 있는 나무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오동나무, 흑단, 아카시아 등 나무가 있는 곳이면 아프리카든 공산 국가든 가리지 않고 갔습니다.
한편으로는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이라든지, 예수님 무덤에도 가 보고 공자가 태어난 곳 등 역사적으로 이름난 곳을 다 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도 우리나라처럼 살기 좋은 곳은 없었습니다. 물맛도 가장 좋고 약의 효능도 가장 좋고 사람들도 가장 똑똑하고 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입니다.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신 까닭은 분명히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면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홍산문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우하량과 내몽골 지역에 산이 빨간 홍산이란 곳이 있습니다. 거기서 유물이 많이 나왔는데 그걸 직접 눈으로 다 지켜봤습니다. 제게 도움을 받은 후배들이 고맙다면서 지금 있는 사무실에 홍산 유물을 하나씩 갖고 왔는데, 하나 둘 모인 홍산 유물이 점점 많아져서 이젠 놓을 자리가 부족할 만큼 많이 있습니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홍산 유물을 보고 깜짝 놀라며 흥미 있어 합니다.
입도 직전 별세한 아내
증산도를 알게 된 것은 다시 국내로 돌아와 아내와 식당을 경영하면서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기독교 방송을 보려고 채널을 돌렸는데 상생방송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는데 상생방송을 계속 보다가 보니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그리고 여러 도생님들이 나와서 말씀하시는 걸 들을 수 있었고, 상제님이 참 하느님이시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상생방송에 전화를 했더니 책을 보내 주셔서 도전과 여러 가지 진리 책들을 같이 읽었습니다. 구미원평도장도 소개를 받았는데 수호사님이 직접 찾아와 주셨습니다.
도장에서 교육도 받고 치성 참여도 하면서 입문을 했습니다. 입도식은 당시 태을궁에서 입도자들이 다 함께 한다고 해서 가려고 했는데 척신이 방해를 했는지 아내가 아팠습니다. 아내는 병을 이기지 못하여 세상을 떠났고 저는 방황을 했습니다. 같이 죽으려고 동맥을 끊어 보고 수면제를 사 놨는데 수면제가 빗물에 녹으면서 실행을 못 했습니다. 이후에는 뱀에게도 물렸는데 죽지를 않았습니다.
지금은 생업으로 약초를 캐서 사람들에게 팔고 무료로 지압을 해 주면서 병든 사람들을 고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사람 살리면서 돈을 받지 말라 하셨기 때문에 무료로 지압을 해 주는데 몸이 나은 사람들이 고맙다고 쌀도 갖다 주고 반찬, 된장 소금을 갖다 주곤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항상 상제님 진리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듭나 사람을 살릴 때
입도를 하려다 못 한 이후로 항상 마음으로 도장에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실천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도장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온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였는데 3월 초에 수호사님과 집정님이 찾아와 주셔서 다시금 이렇게 입도를 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예전에 교회를 다니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늘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저의 마음속에는 상제님, 태모님, 조상님으로 꽉 차 있습니다. 잘못 살아왔던 길이 바른 길로 들어서고 있고, 확실한 진리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저의 남은 삶은 상제님과 태모님, 조상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갈 것입니다. 이제 피하지도 숨지도 않고, 상제님과 태모님, 조상님께 착한 자손이 되리라 결심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는 항상 상제님과 태모님께서 누가 천지를 위해 참일꾼이 되어 줄 것이냐고 자꾸만 묻는 음성이 들립니다. ‘저를 써 주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서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하고 마음에서 우러나 절규하듯 외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증산도인으로서의 삶이 너무나 벅차고 기대됩니다. 마음을 비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면서 맺어 온 인맥으로 저와 인연이 된 많은 사람들을 살리겠습니다. 항상 상제님, 태모님, 조상님께서 저와 함께하실 것을 믿으며 오늘도 내일도 사람 살리는 일을 실천하겠습니다. 보은! ◎
Beginnings(始原)으로서의 증산도
김규민(남, 63) / 안양만안도장 / 도기 152년 음력 2월 입도
건축가로서 바라본 원시반본
저는 1979년 대학 시절에 증산도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증산도를 하던 친구의 소개로 교과서에 언급된 천부경 81자를 처음으로 확인하였고, 태상종도사님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도에 대한 궁금증과 그러한 수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전공인 건축을 공부하면서 건축이 단순히 집을 짓기 위한 학문이나 기술 습득이 주된 학문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원형적 사고를 통해 건축 형태 분석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논문은 이성과 감성의 의미인 Thought와 Feeling 두 가지 측면에서 영감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시원始原’에서 출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많은 건축을 디자인하고 다양한 여행을 통해 답사하면서 제 사고의 과정과 배경으로 원시반본原始返本은 변함없이 지속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0년경 우연히 상생방송을 보면서 신화와 일본 역사에 연관된 내용들을 흥미롭게 보았고, 같이 시청하던 어머니께 어린 시절 일본의 교육 시에 저런 내용을 들으신 적이 있냐고 여쭤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렴풋이 비슷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하셔서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이후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지속적으로 시청하고 증산도에 대해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리와 정성 공부의 과정
그러던 중 2012년경 우연히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거리 패널 홍보를 하던 분들을 만났고, 그중 한 분이 제가 ‘환단고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자 『한민족과 증산도』를 읽어 보라고 권하면서 연락처를 남겨 주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분이 바로 인도자이신 이경숙 도생님이셨습니다. 이후 역삼역 부근 한 빌딩에서 진행되었던 여러 특강에 몇 차례 친구들도 데리고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제 전화번호로 역사 강의며 행사 안내 등을 꾸준히 보내 주셨고, 드디어 2020년에 이경숙 도생님이 인도를 하여 수행을 목적으로 성남태평도장을 처음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집이 과천이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니기엔 거리가 멀어 다시 과천에서 가까운 안양만안도장을 방문하여 3개월에 걸쳐 21일 수행을 하였습니다.
저는 시간이 되는 대로 스물한 번만 참석을 하면 21일 수행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워낙 스타일이 강하다 보니 아마도 제게 맞춰 주시느라 그렇게 허용해 주신 듯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좀 더 태을주 도공 수행을 열심히 하고 상제님 진리에 대한 마음도 크게 열려 입도 의사를 밝혔으나 21일 수행을 끊이지 않고 하는 것이 입도의 최소 기준이라는 안내를 받고 결국 당시에 입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제 생활 패턴에서 21일을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은 당시로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도장과 다시 거리가 좀 생겼으나 코로나19가 잠깐 소강상태에 있던 때에 상생방송을 통해 알게 된 ‘금산사’에 찾아가서 ‘시루’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고 같은 시기에 삼남길에 대한 방송을 접하고 정읍 탄강지를 거쳐 땅끝 해남까지 도보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강화도 마리산의 4개 루트를 등반하고 원주 치악산 둘레길을 돌며 ‘원천석 묘’도 답사를 했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송영대 수호사님은 간간히 SNS로 계속 역사 자료나 강의, 행사 등을 보내 주시며 소통을 하셨습니다.
이성과 감성이 합일된 상제님 신앙
그리고 다시 2022년 올해가 시작되면서, 그간의 증산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고 상제님께 새해 인사를 올리고 싶은 마음에 간소한 제물을 준비하고 안양만안도장을 방문했습니다.
송영대 수호사님을 다시 만나 굳건한 결심을 하고 모든 일정들을 뒤로 한 채 21일 집중 수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수호사님이 안 계실 때는 혼자서라도 도장에 나와 하루도 빠짐없이 21일 수행을 완수하여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강한 스타일과 묵은 관념들과 허물들을 벗겨 주시고 겸손하게 새로 태어나게 하시려고 21일 수행을 시켜 주셨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증산도는 종교가 아니라는 종도사님의 말씀과 더불어, 이성과 감성을 각각 대표하는 철학과 종교 관계를 생각해 볼 때 “맞다. 다양한 분야에서 이성과 감성의 합일이 지극 또는 최상의 지위라 여겨 왔는데 바로 이성과 감성이 합일된 상제님의 가르침이 Silence-Light로 존재하는 곳이며, 신앙의 대상이겠구나!”라고 스스로 정의를 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입도 후 상제님의 참도생이 되어 도전 공부를 통해 더욱 성숙한 일꾼이 되겠습니다. 제가 가진 작은 능력과 경험이 초기 증산도 성전의 원형적 이미지를 건축화하는 작업에 도움이 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참여도 해 보고 싶습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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