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와 임나의 진실을 밝힌다(3)
[종도사님 말씀]
도기 148. 12. 7(금), 2018년 세계환단학회 추계학술대회, 부경대학교 대학극장
본론 4. 가야와 임나가 동방 한국 신교문화를 일본에 전파
본론 4의 주제는 가야와 임나(대마)를 통해서 일본에 전파된 동방 한국의 신교문화입니다. #환국·배달·조선 이래 북부여·고구려·백제의 우주광명의 삼신문화가 대마도를 통해 끊임없이 일본에 전수#되었습니다. 인류가 진리의 궁극 명제를 향해서 깨달음을 추구하며 여태까지 살아왔는데, #인간의 영원한 참 나, 진아眞我를 성취하는 그 중심 주제가 바로 삼신#三神입니다.
1. 동방 신교 삼신문화의 완성, 삼한관경제
1) 삼신문화의 정의
우주 광명의 삼신문화는, 하늘 아버지의 광명과 어머니 땅의 광명 그리고 인간 몸과 마음 속에 있는 영원한 우주광명을 뜻합니다. 「천부경」 언어로 말하면 천일·지일·태일입니다. 단군조선은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의 삼신문화를 국가 경영제도로 이화理化하여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배달국과 단군조선에서 뻗어 나간 흉노, 돌궐, 몽골 등 북방 유목민족도 삼신관에 바탕을 둔 ‘삼한’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현대 국가 통치의 조직도 3수 문화를 근본으로 해서 입법, 행정, 사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우주광명의 삼신문화가 어떻게 대마도를 통해서 구주로 들어가게 되었는가?
2) 동방 신교 삼신문화 전수의 거점, 대마도
대륙 문화가 마지막으로 들어오면 잠금장치를 하는 대마도, 일본 문화의 자궁인 대마도는 일본 10만 개 신사문화의 근원입니다. 대마도에서는 대륙과 반도의 삼신문화 원형을 나름대로 보존하면서 변형시켜 왔습니다.삼랑, 삼시랑 문화를 근본으로 한 일본의 신교문화는 나중에 쇼군 문화로 흐르기도 했습니다.
2. 일본 신사의 궁극의 주제
일본 10만 개 신사문화의 궁극의 주제는 무엇인가? 동방 우주삼신 신학입니다.
구메 구니타케久米邦武(1839~1931) 동경대 교수는 「신도는 제천의 옛 풍속」이라는 논문에서 ‘일본의 신사문화가 단군조선의 고신도古神道에서 왔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의 신도는 단군조선 이후 저 대륙과 한반도에 있었던 바로 우리 조상들의 제천의식이 건너간 것입니다. 그 조상들의 제천의식은 천조대신을 모신 게 아닙니다. 본래의 천신, 한신韓神을 모셨단 말이에요. 그리고 일본과 바다 너머 한국은 신기神祇를 나누지 않고 온전히 하늘을 모셨습니다. 모시는 그 주신의 내용이 다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1)천부경 신사: 요시노가리(よしのがり), 출운出雲(いずもたいしゃ 이즈모) 대사大社
사가현 요시노가리吉野ケ里를 가 보면 야요이 시대(BCE 3세기~CE 3세기)의 역사문화를 알 수 있는데,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모두 한반도의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 왕의 궁전과 신전이 있습니다.저 유명한 출운 신사出雲神社, 이즈모 신사는 일본 신전 문화의 이상적인 태고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즈모 신사의 모습을 보면 완연히 ‘천부경 신사’입니다. 저 커다란 금줄이 보입니다. 그리고 거대한 기둥 세 개를 하나로 묶어서, 9×9=81 해서 신단의 기본 틀을 짰습니다. 저 각도를 여러 가지로 분석한 이즈모 신사 연구 책자도 나오는데, 현장에 가서 보면 참으로 수수께끼입니다.
이처럼 일본에 「천부경」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는 곧 셋이고, 셋은 하나입니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 일적십거一積十鉅 무궤화삼無匱化三,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 이 우주를 구성하는 궁극인 삼극三極 사상을 따라서 기둥 세 개를 묶어서 하나의 기둥으로 만들었어요.
요시노가리에 있는 주제단 기둥은 열여섯 개로 돼 있습니다. 여덟 개, 여덟 개로 팔음팔양八陰八陽을 상징합니다.
2) 일본에 남아 있는 한국의 역사문화
① 한국우두봉韓國宇豆峯(からくにうずみね 가라쿠니우즈미네) 신사우선 구주를 놓고 보면, 가고시마현 기리시마에 한국우두봉신사가 있습니다. 신사 이름에 집 우宇 자, 콩 두豆 자를 썼어요. 이것은 본래의 한국 문화 원형을 감추기 위해서 신사 이름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명치유신 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원래 소 우牛 자, 머리 두頭 자였고 현지에도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 가면 교토에 우두대왕牛頭大王 신사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간판을 뗐다 붙였다, 뗐다 붙였다 합니다.
이곳의 신을 거북산(구산龜山)에서 옮겨왔는데, 왜 거북산이라 했는가? 이것은 가야의 소도제천蘇塗祭天 터, 구지봉龜旨峰에서 온 것입니다. 허황후 묘 맞은편에 구지봉이 있습니다. 허황후의 둘째 딸 묘견 공주妙見公主가 거북이 배를 타고 내려왔다는 전설이 일본 구주九州(규슈)에도 전해 옵니다.
대마도를 거쳐서 구주로 가면 우리가 잘 아는 후쿠오카福岡가 있는데, 이 후쿠오카의 원래 이름은 ‘하카타博多’입니다. 하카타, 밝은 땅이라는 뜻입니다. 하は는 해니까 하카타는 광명의 땅, 밝달, 배달입니다.
② 영언산英彦山(ひこさん 히코산) 신궁
이제부터 이야기의 절정으로 가는데요. 일본 구주의 히코산, 영언산英彦山에 환국·배달·조선의 원原주신 환인과 환웅과 단군을 모신 삼신궁이 있습니다.
우리가 상궁에 올라가서 드론으로 찍었는데, 그 산의 정상에서 보면 상궁, 중궁, 하궁으로 3대 신전이 있습니다. 고구려의 조의선인皂衣仙人들이 구주로 들어가서 이 히코산에서 수험도修驗道를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단군조선 이전의 배달 문화, 원형문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여기 보물전에 가 보니 놀라운 게 있었습니다. 역사를 연대별로 쭉 정리한 그 아래에 보면 ‘단가檀家, 단나檀那’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 단군조선을 말할 때 ‘단가’라는 말을 씁니다. 자기들이 화랑花郞 즉 동방 원형문화의 국통을 가슴에 품고 있는 정통 문화 정신의 원류 집안이라는 것입니다. 낭가郎家의 다른 말이 단가입니다.
그리고 보물전 입구에 들어가서 왼쪽 위 단을 보면 ‘후지야마 환웅藤山桓雄’이라 해서 환웅상이 좌상의 모습으로 있습니다. 또 하궁에서 오른쪽으로 한참 가다 보면 타미야 신사, 수험굴 속에 환웅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곳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일본 벳푸 대학別府大学의 나카노 하타요시中野幡能 교수는 ‘이 신앙은 분명히 한국의 단군신앙에서 유래했다’고 하고 이 신령들은 환인·환웅·단군의 삼신 이야기라 했습니다. 그리고 히코산 수험도는 미륵 신앙과 신선도, 신라의 화랑도를 융합한 형태를 띠고 발전하였다고 했습니다.
현대 역사의 출발점에서 동학 3백만 교도가 일어났고, 농민혁명을 주도한 60만 동학군 중에서 30만이 패망당했습니다. 그 후예들이 참동학 증산도 초기 개창기에 일어난 보천교 6백만 신도가 되었습니다. 증산도의 문화 원전인 『도전』을 보면, 상제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조선국 상계신, 중계신, 하계신이 무의무탁無依無托하니 불가불不可不 문자로 계어인戒於人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환인·환웅·단군이 의지할 곳도 기댈 곳도 없으니 환부역조換父易祖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 환부역조, 아버지를 바꾸고 조상을 바꿔치기한단 말입니다.
朝鮮國(조선국) 上計神(상계신) 中計神(중계신) 下計神(하계신)이 無依無托(무의무탁)하니
不可不(불가불) 文字戒於人(문자계어인)이니라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 (『도전道典』 5편 347장 16절)
不可不(불가불) 文字戒於人(문자계어인)이니라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 (『도전道典』 5편 347장 16절)
그런데 히코산 삼신전에서 저 위에 상계신을 모시고, 중궁전에서 중계신을 모시고, 제일 아래 신전에서 단군을 모십니다. 그리고 환웅을 따로 모시고 있습니다.
③ 장식고분관裝飾古墳館
구마모토, 웅본熊本에는 일본 학자들이 다 달려들었지만 ‘우리는 이 비밀을 못 푼다’고 한 유명한 장식고분裝飾古墳(무덤 내외부에 조각, 색채화, 석인石人, 석마石馬 등으로 다채롭게 장식한 고분)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528년에 이와이의 난(磐井の亂)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고구려 세력이 야마토大和 정권에 저항했습니다. 세금이 너무 과하다고 구주에 있던 세력이 이와이 장군을 중심으로 뭉쳐서 야마토 왕궁과 맞장을 떴는데 무참하게 패망을 당해 버렸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그 문화를 무덤 속으로 가져간 것이 장식고분 문화입니다.
그 무덤 속에 새겨진 문양은 어떤 것인가? 이것을 일본 학자들이 풀 수 없어서 한국 학자들과 손을 잡았는데, 최근 2016년부터 인하대에서 한 3년간 세미나를 했습니다.
장식고분을 한번 볼까요? 여기 벽에 경면주사鏡面朱砂를 새빨갛게 바른 고분도 많습니다. 이건 『환단고기』 문화입니다. 인류가 1만 년 동안 깨달아 온 하늘의 신성, 땅의 신성, 인간의 영원한 신성을 원방각圓方角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아는 사람은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저것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내 정신이 뱅글뱅글 돈다’는 것을 표현한 게 아닙니다.
참동학 증산도에 갱생주更生呪라는 주문이 있습니다. 하늘이 다시 태어나고[천갱생天更生], 어머니 땅이 다시 태어나고[지갱생地更生], 모든 인간도 다시 태어난다[인갱생人更生]는 것입니다. 저 문양은 후천개벽의 진리 중심 명제를 노래한 「천부경天符經」의 완성, 갱생주를 연상하게 합니다. 어머니 땅을 먼저 놓고 그 위에 원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천태地天泰[䷊] 상象입니다.
다른 벽화 속에도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문양이 있습니다. 어떤 고분벽화에는 하늘의 별자리가 꽉 차 있습니다.
④ 기토라(キトラ) 고분군古墳群 사신의 관(四神の館)
나라현의 기토라 고분에 사신도四神圖가 나오고, 그 위에 하늘의 별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를 오전에 갔는데 아주 잘해 놓았습니다. 일본이 자기 문화를 정말로 소중하게 간직하는 그 마음씨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일본 한 지역에서 나온 작은 고분 문화를 아름답게 이야기로 만들어서 가꾸는 모습이 정말로 보기 좋더란 말입니다.
이 천문 이야기, 사신도 이야기를 영상으로 돌려서 보여 주는데 동방 청룡靑龍이 나타나서 꿈틀거리고, 주작朱雀, 백호白虎, 현무玄武가 나옵니다. 현무가 몸을 감고서 얼굴을 쳐다보며 빙긋 웃잖아요. 그다음 천문도를 비춰 주는 곳을 들어가 보면 황도대黃道帶와 이것저것을 막 돌리면서 입체적으로 별들을 보여 줍니다.
동서남북 중앙 방위를 지키는 자연신을 그린 사신도에서, 가야는 거북이산(구산龜山), 북방 현무의 문화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⑤ 옥산玉山(たまやま 타마야마) 신사
가고시마현의 히오키시에 미산美山(미야마)이라는, 임진왜란 때 끌려온 도공들이 만든 마을이 있습니다. 거기에 『환단고기』의 주제를 암시하는 환단 신사桓檀神社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10년 전에 여기를 갔을 때 폐사되었는데, 신사 이름을 조작해서 옥산 신사玉山神社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정신을 보여 주는 신사에 지원을 끊고 박대해서 축소시켜 버렸어요. 압록강 유역에 살았던 압씨족鴨氏族의 시조를 모신 신사가 오사카에 있는데 거기를 두 번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미시마카모三島鴨대신사가 쭈그러들어서 동네에서 쌀, 곡물을 바쳐야 운영이 됩니다.
백제에서 건너간 학자 아즈키阿直岐를 모시던 신사는 완전 폐사됐고, 왕인 박사王仁博士를 모신 신사도 그 궁사가 먹을 게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폐사된다고 궁사가 말합니다.
박성수朴成壽의 『단군문화기행』에서는 「옥산궁유래기」를 근거로 하여 옥산 신사를 ‘예전에 단군조 이후로 옛 우리 조상들이 내려가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면서 세운 사당’이라 합니다. 단군조선을 개국하신 단군을 모신 사당이라는 겁니다. 옥산 신사의 원래 이름은 환단 신사입니다.
3) 구주에 남아 있는 신교문화
① 우좌팔번궁宇佐八幡宮(うさはちまんぐう 우사하치만궁)구주九州(규슈)를 통해서 실제 일본 역사의 심장부로 들어갈 수 있는데요. 우사하치만宇佐八幡 신사로 가봅시다. 하치만 신사는 왜 중요한가? 일본 10만 개 신사의 심장부이기 때문입니다. 10만 개의 46%, 신사 두 개 중에 하나는 하치만 신사예요. 원형은 대마도에서 우리가 살펴봤지만 하치만 신사의 총 본궁은 우사하치만 신사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름을 알 수 없게 돌려놓았어요.
이곳 마성산馬城山을 뭐라고 했는가? ‘성지’라고 했습니다. 여기도 마한馬韓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대원산大元山이라고 합니다. 이 마성산은 모든 역사, 문화, 일본 황실의 역사, 초대 왕의 시원, 근본이 되는 산입니다. 그러면서 거북이 산(구산龜山)을 신체神體로 삼고 있습니다.
입구의 간판에 있는 마지막 영어 문장을 볼까요? “USA Sanctuary area is suitable as a typical home of Japanese spirit.”입니다. 우사하치만 신사는 일본 정신, 문화 역사의 ‘전형적인 고향’이라는 것입니다. 하치만 신사는 일본 역사문화 심장부라는 겁니다. 일본 역사문화를 만드는 문화 정신의 원형이 여기에 살아 있습니다. 그 상징이 ‘팔번八幡’입니다.
그런데 하치만 신사를 건립하게 된 정말로 놀라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치만 신사는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가? 오오가노 히기大神比義라는 노인이 3년 동안 절식을 하면서 “저에게 신성을 내려 주옵소서.” 하고 천지에 절규를 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흠명천황 32년, 571년 2월 첫 묘일) 신이 나타났어요. 그 신이 누구냐? 바로 #일본의 15세 응신왕#應神王입니다. 응신의 혼령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는 하치만 신이다. 너는 이곳에 신사를 세워서 나를 섬겨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응신은 누구인가? 그 대답은 『환단고기』에만 나옵니다. 『환단고기』를 보면, 서부여의 의려국依慮國 왕자 의라依羅가 일본으로 건너가 15세 응신왕이 되었는데 ‘삼신의 부명에 응한다(應三神符命)’ 하여 응신應神이라 했습니다.
그럼 왜 8이라는 수를 갖다 놓았는가? 8은 항상 삼신과 조합되어 일체가 됩니다. 중국 사람들은 ‘8은 불멸의 수로서 신선을 상징한다, 복을 상징한다’ 해서 올림픽도 2008년 8월 8일 저녁 8시 8분에 열었잖아요. 그 문화를 상징하는 수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이 하치만 신사의 본궁 신전을 가기 전, 왼쪽 안에다 작은 신사를 모셨는데 여기에 천지 진리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자아, 생명의 절대 근원 자리는 무엇인가? 바로 북진北辰, 북극성입니다. 그래서 그 작은 신사 이름이 ‘북진 신사北辰神社’입니다. 이 북진 신사는 태일신太一神을 모시는 신사입니다. 동방 9천 년 인류 창세 황금시절의 원형문화, 삼신 신교문화의 주제는 삼신과 칠성 두 가지인데, 궁극으로 가면 태일신입니다. 이 북진 신사에서 태일신을 모시고 있는 겁니다.
신사 원형을 전체적인 모형으로 만든 그 현장으로 들어가 보면 무엇이 있는가? 이 하치만 신사의 심장부에는 미륵불을 모신 미륵사彌勒寺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인류를 부처로 만들어 주시는 원原부처, 최상의 으뜸 부처를 ‘종불宗佛’이라고도 합니다. 미래에 오시는 도솔천 천주님, 그 미륵 부처가 오심으로써 모든 꿈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치만 신사의 미륵사에는 기가 막힌 일화가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미륵사에 주기적으로 불이 난다는 겁니다. 보수적인 본토 사람들, 배불파排佛派가 신도의 원형문화를 보존하고 불교를 탄압해서 미륵사에 불을 질러 버리는 겁니다. 이 태일신사를 보존한 소가씨蘇我氏는 불교 사찰을 만든 숭불파崇佛派였는데, 그에 반대한 모노노베씨物部氏 세력이 있었습니다. 모노노베씨는 스슌崇峻천황이 즉위한 후 멸족을 당합니다. 이렇게 하치만 신사 내부에서도 극도의 갈등과 반목, 영적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② 향춘香春(かわら 가와라) 신사
옆 동네로 가면 하치만 신사의 고향, 향춘 신사香春神社가 있습니다. 보통 향춘 신사에서 궁사 노릇을 하는 사람은 그 너머 일본 신사의 심장부, 하치만 신사로 발령이 나서 간다고 합니다.
향춘 신사의 입구 왼쪽 도리이에는 정말로 재미있고 놀라운 얘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도리이에 ‘삼신위령三神威霛’, 존귀하고 위엄 있는 삼신의 성령님이시여, ‘강복무강降福無疆’, 저희들에게 한이 없는 복을 내려 주옵소서라는 기원문이 쓰여 있습니다. ‘삼신님이시여, 당신의 위엄 있는 존귀하신 성령으로 무량한 복을 내려 주옵소서’ 이런 기도문입니다.
그리고 왼쪽에 보면, 그 뒤에 큰 둥근 바위가 있고 앞에 현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풍전국풍토기豊前国風土記』 일문逸文(산실散失된 문자나 문헌)에 ‘옛날 신라국 신이 스스로 도래해서 하원河原에 살았다. 그 이름을 가와라鹿春 신이라 한다고 적혀 있다.’고 했답니다. 신라에서 온 신을 모시기 때문에 박대를 받은 겁니다. 백제 계열이 아닌 신사는 그 명칭을 다른 글자로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향춘 신사라는 이름도 ‘가와라鹿春’를 ‘가와라香春’로 돌린 것입니다.
③ 팔대묘견궁八代妙見宮(やつしろみょうけんぐう 야쓰시로묘켄궁)
이제 일본 역사문화의 궁극의 진리 깨달음의 근본이 되는 묘켄 신사로 가 보겠습니다. 야쓰시로묘켄궁이었는데 팔대묘견궁八代妙見宮이라고 합니다. ‘묘견妙見’은 오묘할 묘妙 자, 볼 견見 자입니다. 우주의 궁극의 신성이 드러난다는 현見 자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묘견을 묘현妙見으로도 해석합니다. ‘팔대묘견궁’에 왜 8을 갖다 놓았을까?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묘켄이라는 것은 묘견妙見 공주를 말합니다. 그 설명을 보면 명치유신 전에는 묘켄궁인데,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둘째 딸 묘견 공주(히미코)가 여기에 와서 야마대국邪馬台國을 건설하고 동생 선견仙見 왕자가 보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 왕자도 각기 나라를 세웠다고 합니다.
묘켄 신사의 신당, 신전 지붕 처마 끝에 무엇이 있는가? 귀사龜蛇 즉 거북과 뱀, 바로 현무玄武가 자리 잡고 있어요. 그래서 이 지역 마쯔리는 이것을 근본으로 합니다. 바로 구지봉, 거북이, 북방 현무를 주제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 전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야, 묘켄 공주의 원형문화, 우주 원형문화의 정신이 여기 와서 살아 있구나. 허황후의 딸, 묘견 공주가 여기서 제2의 가락 왕국을 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겠구나’ 하는 확신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각성을 바로 저 처마 밑에 있는 북방 거북이의 모습과 축제에서 느끼게 됩니다.
구주九州(규슈)를 한참 달리다 보면 해변에 ‘가랏파 도라이노 비(河童渡来の碑)’가 있습니다. 가랏파는 ‘가락국 무리에 속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가랏파, 3천 명 가야 군대가 내려와서 나라를 세웠다는 겁니다. 그것은 환웅천황의 코미타투스 3천 명, 창업의 특수부대 이야기와 상통합니다.
묘켄 신사에서 모시는 주신은 누구냐?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천어중주존天御中主尊(아메노미나카누시노카미)과 국상입존国常立尊(쿠니노도코타치노미코토)입니다. ‘천어중天御中’은 ‘하늘에서 높고 높으신’이라는 뜻입니다. 천어중주존은 하늘에서 높고 높으신 중심에 계시는 주신입니다. 북두칠성에 계시는 원原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서양에서 말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동양의 모든 성자들이 말한 천상의 하나님, 상제님이십니다.
인류의 모든 신전, 예를 들면 불교의 사찰도 있고 서양의 성당도 있는데, 그곳에서 섬기며 기도하는 궁극의 절대자 아버지 주신이 바로 묘켄 신사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모시는 주신이 체體와 용用으로 나눠져 있어요. 그중에서 체體가 되는 태일신太一神을 진실로 깨달은 역사의 제왕은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입니다.
앞에서 말한 북진 신사에도 북극성 태을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참동학 증산도에서는 궁극으로 신성이 완성된 그분을 ‘태을천太乙天 상원군上元君’으로 불렀습니다. 이것을 도교에서도 몇 사람이 알았는데, 이곳 가야 땅에서도 아는 사람이 한 분 나왔습니다. 누구예요? 바로 ‘칼을 찬 유학자’, 평생 벼슬을 하지 않은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선생입니다. 그분이 그린 신명사도神明舍圖에 ‘태일군太一君’이라 쓰여 있습니다. 남명 선생은 가야 문명의 땅 김해에서 잠시 살다가 고향 합천으로 돌아갔지만 그런 깨달음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④ 영부靈符(れいふ레이후) 신사
마지막에 묘켄 신사는 어디서 끝나는가? 바로 뒤에 있는 묘켄 신사의 말사라 하는 레이후 신사, 영부 신사靈符神社입니다. 인류 원형문화의 궁극의 언어는 부符인데, 부적符籍이라 할 때의 부(talisman)입니다. 지금의 언어 이전, 인류 원형 언어는 부, 암호화된 기호언어입니다.
이 영부신사는 누구를 모시고 있는가? ‘영부존성靈符尊聖’을 모십니다. 그래서 예전에 『일본은 한국이더라』라는 책을 쓰신 아남그룹 회장님이 궁사에게 ‘장막을 좀 열어 달라고 해서 보니 신성한 부가 있더라’고 했습니다. 그 중심에 너무도 신성한 천상의 존위尊位가 계신 거예요. 그 존위가 ‘태상신선진택영부太上神仙鎭宅靈符’입니다. 이 우주의 지존자, 태일신으로 보이는 분이 모셔져 있는데, 여기에서 태을천 상원군님이 노출되는 것입니다.
3. 일본에 들어간 태일문화
우주의 삼신문화의 구조는, 현상세계에서는 하늘과 땅과 인간이지만 천상 중심으로 보면 바로 북두칠성과 관련된 천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혼과 넋을 삼혼칠백三魂七魄이라 합니다. 삼태성三台星을 ‘허정육순곡생虛精六淳曲生’이라 말하는데 인간은 삼태성에서 삼혼 즉 영혼을 받습니다. 그리고 칠성에서는 몸(백)을 받아요. 그렇게 해서 인간이 됩니다.
그런데 그 칠성의 근원처는 어디인가? 칠성의 여섯째 별 옆에 하나님 아버지 궁전이 있단 말입니다. 저기 칠성의 무곡성 옆에 붙어 있는 별, 존성存星(고상옥황高上玉皇)과 재성在星(자미제군紫微帝君)입니다. 그리고 칠성의 근원은 대륙에서 1만 년 동안 깨달아 온 우주 원형문화의 신격, 바로 태일신太一神입니다. 태일신은 하나님 아버지보다 위에 계신 분입니다. 이것은 도교에서만 옛사람이 신선이 되어 천상에 올라가서 본 겁니다. 그래서 태일신 문화의 전통이 있습니다. 이 문화가 환웅, 단군을 거쳐 북부여로 전해졌고 남삼한, 가야를 통해서 일본 본토로 들어간 것입니다.
대륙의 흉노 제국 번왕藩王인 휴도왕休屠王의 아들이 어머니 알씨閼氏를 모시고 한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가 황실의 엄숙한 제천문화, 하나님을 섬기는 문화의 도리를 품격 있게 가르쳤습니다. ‘알씨’는 원래 흉노 언어인데 우리말에서 ‘아씨, 아가씨’가 되었습니다. 흉노의 제왕 문화에서 쓰는 언어가 우리 일상 언어로 된 것입니다.
그 알씨와 흉노 왕자 김일제金日磾의 직계손이 가야 땅에 들어왔고, 또 허황후 같은 제왕 문화의 공주님이 와서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제천문화가 가야 대왕국의 역사 속에서 아주 강력하게 전수되고 구주 문화에서 크게 꽃피었습니다. 그 중심이 야츠시로 묘켄 신사이고 우사하치만 신사입니다. 하치만 신사는 전 지구촌 인류가 화해할 수 있는 하나의 원류 정신, 하늘의 중심 신, 천어중주존을 모신 신사이자, 불교의 메시아 하느님, 미륵불을 모신 신사입니다.
응신왕의 혼령이 ‘나는 하치만 신이다. 이곳에 신사를 세워서 나를 섬겨라’ 하고 나타나서 세운 것이 하치만 신사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의 전 역사에서 일본 민족의 자손을 낳아 주는 천상의 주권을 잡은, 역사 대권을 잡은 주신, 삼신은 누구인가? 바로 15세 응신왕應神王이라는 겁니다. 응신은 누굽니까? 오사카를 가 봐야 그 역사의 비밀이 풀립니다.
북부여의 5세 단군 해부루解夫婁는 북부여의 단군이 되었지만, 바로 그때 고두막한에게 제위를 빼앗겼습니다. 해부루에게 재상 아란불阿蘭弗이 “동쪽 가섭원에 좋은 기름진 땅이 있습니다. 폐하 가시죠.” 해서 그곳에 나라를 세운 것이 가섭원부여迦葉原夫餘입니다. 동쪽에 있어서 동부여라고도 합니다. 거기서 해부루를 이어 금와金蛙, 말썽꾸러기 대소帶素로 3대가 내려옵니다.
그 동부여가 망하면서 대소왕帶素王의 종제從弟가 북쪽으로 올라가서 서부여를 열었습니다. 서부여의 마지막에 의려왕依慮王이 나오는데, 의려가 아마 백제를 거쳐 일본 오사카에 들어가서 살았는가 봐요. 그리고 의려의 아들 의라依羅도 나중에 일본으로 갔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사카에 의라 신사依羅神社가 있습니다. 거기도 다 망해서 궁사가 밥을 먹을 수 없으니까 나가서 취직을 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녁 때 잠깐 만나서 얘기를 했는데 역사를 다 잃어버려서 하나도 모릅니다. 의라 신사 이름만 알고 그 유래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환국·배달·조선 이후 북부여, 남삼한에서 행해졌던 천지광명의 하나님 모시는 소도제천단蘇塗祭天壇 신전문화는 우리 한민족사를 통해서 연면히 이어 왔지만, 한편으로 진한 제국의 대제왕들을 통해서, 또 절대 충신 김일제와 그 후손들을 통해서도 내려왔습니다.
그 후손들이 이곳 한반도 남부 가야 땅에 와서 역사문화의 큰 틀을 열었고, 여덟 왕자와 공주가 구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우주의 진리, 궁극의 태일신을 모신 묘켄 신사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결론. 동북아 1만 년 신교문화와 동학혁명
1. 동학문명은 천주 아버지 문명의 시작
현대 문명의 출발점에서 1만 년 신교의 천지 소도제천 문화의 부활을 외친 분은 경주 사람 최수운崔水雲(1824~1864) 대신사입니다. 최수운 대신사가 “무극대도 닦아 내니 5만 년의 운수로다.”(「용담가」)라고 했습니다. 천상의 아버지가 수운 대신사에게 “내 주문을 받아라. 이제 아버지 문명 시대를 선포하라.” 하신 데서 동학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 이 우주의 질서, 틀이 바뀝니다. ‘다시 개벽’은 선천에서 후천개벽으로 가는 새 역사 선언입니다. 이 근본 외침이 다 왜곡되어서 결국 동학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은 ‘천주님을 모셔라. 이제 아버지 세상이다. 아버지가 오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선언입니다. 그런데 동학의 시천주가 인내천人乃天으로 왜곡되고 변질되었습니다. ‘천지의 원주인原主人 아버지를 섬겨라. 그래서 천주는 상제님이고, 상제님이 천주다.’ 이것이 『동경대전東經大全』에 있는 첫 소식입니다. 경신년 음력 4월 5일, “내 도를 펴라. 내 주문을 받아라. 내가 이 세상에 나갈 것을 선언해라.” 하고 최수운 대신사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리신 것입니다.
지금 지구촌에서 한류 문화가 새롭게 격동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고 근거가 있습니다. 새 역사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원형문화의 웅대한 비전과 우주광명 문화가 대한의 혼 속 깊은 곳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천주님이신 삼신상제님께서 현대 문명의 출발점 동학을 통해 우주광명 문화가 복원되는 첫 소식을 이 땅에서 알리신 것입니다.
2. 태을천의 궁극의 지존자, 태일신
일본 문화의 심장부 하치만 신사, 일본 10만 개 신사의 50%를 차지하는 약 5만 개의 하치만 신사에서 삼신문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여와 백제의 지원을 받은 응신왕이 이 삼신문화로 일본 문화의 삼신, 제왕이 되었습니다.
오늘 묘켄 신사 그리고 영부 신사에서 본 신령한 우주 원형문화의 기호언어, 부호언어는 바로 태일, 태을을 말하는 것입니다. 동경에 있는 이세 신궁伊勢神宮에서는 이것을 태일 마쯔리로 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진정 궁극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태일 마쯔리입니다.
원래 20년에 한 번씩 일본의 태양신 신전, 이세 신궁을 허물고 새로운 신전을 지어 드린다고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제관들이 밥을 해서 성찬을 올립니다. 일본 역사문화의 고향인 이세 신궁에는 내궁과 외궁에 우주의 원형문화인 삼신과 태일신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신전 중심에 있는 큰 기둥은 태일신을 상징하고, 오른쪽 외궁의 문양에 하나님의 수레가 있습니다. 바로 북두칠성입니다. 북두칠성은 상제님이 타시는 수레입니다. 그리고 내궁 문양에는 대우주 궁극의 지존자인 태일신이 있습니다. 바로 북진 신사의 주신이며 묘켄 신사의 또 다른 절대자인 태일신이 이세 신궁 내궁에 그려져 있습니다.
우주에는 태일신이라는 궁극의 신성하고 존귀한 신격이 있습니다. 태일신은 태을천의 궁극의 지존자입니다. 참동학에서는 태일신을 1만 년 역사의 전통으로 정의를 해서 ‘하늘 으뜸가는 임금님, 태을천 상원군’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유교와 도교에서는 상제님이라 호칭하는데, 그분보다 더 높은 분이 계십니다. 이것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한 30년 전에 ‘그분은 할아버지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도 모르는데 할아버지는 더 모릅니다.
3. 참동학의 깨달음, 가을 문명이 열린다
동학과 참동학의 궁극의 깨달음은 무엇인가? 그 내면의 깨달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앞으로 가을 문명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가을 우주로 들어가는 관문인 개벽의 문턱에서 지구촌 인간 씨종자를 추리기 시작합니다.
대자연의 이치에서 오는 병란病亂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두, 즉 천연두의 대발大發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앞으로 시두時痘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도전』 7:63:9), “상씨름이 넘어간다.”(5:325:9), “시두의 때를 당하면 태을주를 읽어야 살 수 있느니라.”(11:264:3)라고 하셨습니다.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이것은 진정한 우주의 노래입니다. 세속의 아름다운 명곡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영적인 감동도 받지만 실제적인 영원한 노래, 부르면 부를수록 내 몸과 마음이 강해지고 밝아지는 우주 조화의 노래가 태을주太乙呪입니다.
현대 문명사의 출발점 동학에서 부른 천주 아버지의 노래, 아버지가 직접 작곡을 해서 내려 주신 주문은 시천주 주문입니다.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열석 자와 ‘지기금원위대강’ 강령주문 여덟 자입니다. 이제 동학이 나온 지 160년이 됐습니다. 참동학 증산도 역사는 150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주의 원형문화, 근본 진리의 중심 주제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는가? 우리가 이것을 다시 한번 깊이 각성해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경주 김씨, 김해 김씨 그리고 김해 허씨를 합하면 천지 소도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문화 전통을 가진 북방 유목 문화의 황손들이 근 천만 명에 육박합니다. 적어도 5천만 가운데 천만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 역사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가? 이것을 알면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매우 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겨레에게 가야는 1,500년 전 가장 남단에 있던 왕국이었습니다. 가야 대왕국은 강단사학으로부터 ‘국가가 아니라 6가야 연맹체’라고 찬밥 취급을 당하며 폄하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을 통해 가야 제국의 역사와 문화의 원류정신에 대해서 다시 한번 뜨거운 가슴으로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자랑스러운 대한국인으로서 우리의 영성문화 주제를 감통感通하여, 통일의 새 역사를 준비하는 그 중심에 설 것을 다 함께 다짐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요시노가리吉野ケ里 유적
요시노가리吉野ケ里 유적은 일본 구주九州(규슈) 사가현佐賀縣 요시노가리 마을에 위치한 초기 국가 시대 유적이다. 야요이 시대에 만든 것으로, 호를 파서 외부의 공격을 막는 형태의 집단 주거지(환호집락環壕集落)이다. 요시노가리에서 나온 인골人骨은 기원전 3세기 외국인으로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계渡來系의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요시노가리의 제사전을 확장한 것이 이즈모 대사出雲神社이다.이즈모 신사는 일본 신사 건축의 원형
이즈모 대사는 제1대 신무神武왕의 장인인 대국주신大國主神을 모셨다. 신무가 카시하라로 들어가 나라를 세웠을 때, 신무의 왕비는 대장간 집안 딸이었다. 그 아버지가 대국주신이다. 이즈모 건축은 천부경 신사문화의 상징이다.한국우두봉신사韓国宇豆峯神社에 대한 기록
우사군 소량산小椋山(일명 거북산亀山)은 우사하치만궁의 본궁이 위치한 곳이다. 한국우두봉신사에서 모시고 있는 신은 원래 우사하치만궁宇佐八幡宮에서 모시던 신으로, 우사하치만궁이 원래는 한국신을 모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714년, 풍전국豊前国에서 200호의 백성을 이 땅에 이주시켰는데, 그때의 이주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우사기宇佐記』에 의하면 흠명천황 32년(571년) 2월, 풍전국 우사군 히사가타의 소량산小椋山에 모셔진 신을 우두봉의 정상에 모셔 왔고, 서기 1504년 12월에 현재의 위치에 옮겨졌다. (속일본기)
일본 북규슈의 백산 신앙
나카노 하타요시中野幡能 교수는 『영언산英彦山을 탐구한다』(添田役場 編, 1985)라는 책에서 “영언산을 비롯한 일본 북규슈北九州의 여러 산에는 백산신白山神이 모셔져 있다. 이것은 한국의 산악 신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국의 산악 신앙이란 단군 신앙을 말하는 것으로 백두산을 중심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신앙의 대상은 환인·환웅·환검(단군)의 삼신三神인데, 그중에서도 환웅은 인간 세상을 교화하기 위하여 태백산에 내려온 신으로서 고대 조선을 개창했다 하여 민중의 신앙이 두터웠다. 이 한국의 환웅 신앙이 일본 영언산에 전파되어 등원환웅藤原桓雄이 되고 일본 환웅 신앙이 되었다. 그 때문에 백산 신앙이 따라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하치만 신앙 연구로 유명한 나카노 하타요시의 저서로는 『하치만 신앙과 수험도(八幡信仰と修験道)』, 『하치만 신앙사 연구(八幡信仰史の研究)』, 『하치만신이란 무엇인가(八幡神とはなにか)』, 『히코산과 규슈의 수험도(英彦山と九州の修験道)』 등이 있다.
이와이의 난
서기 527년에 한반도 남부로 출병하려던 오우미노 케나近江毛野가 이끄는 야마토 정권군의 진군을 츠쿠시노키미 이와이筑紫軍磐井가 막자, 528년 11월에 모노노베노 아라카이物部雛鹿火가 진압하였다. 한반도 남부의 이권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을 이 반란 혹은 왕권 쟁탈전의 배경으로 추정한다.구마모토 장식고분은 고구려 세력의 것
❶ 배에서 사람이 내리는 그림, 고구려 벽화에서 나오는 두꺼비 그림 등으로 볼 때 장식고분은 바다를 건너 들어온 고구려계 북방 세력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❷ 돌로 석실을 만들고 벽에 극채색 벽화를 그리는 문화는 화상석이 대종인 중원에서는 별로 없으며 북방계에서도 거란이나 선비족도 별로 하지 않는 고구려풍의 문화이다.
❸ 415년 전후, 5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규슈 지방에 장식고분이 등장하는 것과 고구려의 전성기(광개토태왕~장수태왕)와는 모종의 관계가 있을 수 있다. 또한 광개토태왕 시기에 왜 잔당 추격군의 규슈 정벌 상륙 이후, 현지 고구려계 다파라국 세력과의 연합체를 형성한 흔적이 장식고분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옥산 신사는 환단桓檀 신사
『옥산궁유래기』에 의하면 ‘조선개조 단군사당’이라 쓰여 있다. 1673년 규슈 남부 가고시마현의 조선인 마을 뒷산에 하늘에서 큰 불덩어리가 떨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달려가 보니 큰 바위가 떨어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멀리 고국에서 날아온 ‘단군 바위’라 칭하고 매년 8월 15일에 제사를 올렸다. 이날에는 고려가를 부르고 고려 신무를 춘다. (박성수, 『단군문화기행』)
모노노베와 소가씨의 싸움
모노노베 집안은 백제에서 전래한 불상 숭배 문제를 놓고 대신大臣 소가노 이나메蘇我稲目를 비롯한 숭불파에 맞서서 배불파의 선두에 섰다. 이 다툼은 그들의 아들인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와 모노노베노 모리야物部守屋에까지 이어졌다. 대신 우마코는 비다쓰敏達왕에게 아뢰어 불법을 받들도록 허락받았지만, 마침 역병이 돌아 불교 신앙이 중지되었다. 비다쓰왕에 이어 즉위한 요메이用明왕은 소가씨와 혈연관계였고, 불교를 지지하였지만 즉위 2년 만인 587년에 사망했다. 차기 천황 자리를 두고 다투던 두 집안의 싸움은 같은 해 7월, 소가씨와 그 연합군의 공격으로 모노노베노 모리야가 자신의 본거지에서 전사함으로써 끝났다. 소가씨의 추천을 받은 스슌崇峻천황이 즉위한 후 모노노베씨는 몰락하고 말았다.일본인의 마음의 고향 우사하치만 신궁
800만 신을 모시는 신神들의 나라!열도 전역에 10만 개가 넘는 신사를 만든 나라! 일본!
그래서 신도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일본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10만 개 신사에서 모시는 800만 신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 신들 중 상당수는 대륙과 한반도에서 실존했던 역사 인물들이었다!
일본 10만 개 신사 중 절반가량은 하치만 신八幡神을 모시는데 그 신사문화의 뿌리가 우사하치만 신궁이다! 이곳은 일본 신도문화의 주신인 삼신이 탄생한 신성한 장소이자 일본 3대 신궁 중 하나다. 하치만 신앙은 그 유래를 살펴보면 한국과 연관이 깊다. 하치만 신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辛国の城に初めて八流の幡と天下って 吾は日本の神となれり。
“한국(辛国) 땅에서 시작하여 팔류八流의 깃발(幡)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와 나는 일본의 신이 되었다. 나는 응신이다.”
『우사궁어탁선집八幡宇佐宮御託宣集』 1313년
“한국(辛国) 땅에서 시작하여 팔류八流의 깃발(幡)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와 나는 일본의 신이 되었다. 나는 응신이다.”
『우사궁어탁선집八幡宇佐宮御託宣集』 1313년
놀랍게도 하치만 신은 ‘자신이 응신왕’이며, ‘한국 땅에서 건너와 일본의 신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응신왕의 실체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환단고기』에서 그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定倭人爲王(정왜인위왕) 自以爲應三神符命(자이위응삼신부명)
정주正州는 의려국依慮國이 도읍한 땅이다. 의려국 왕이 선비鮮卑 모용외慕容廆에게 패한 뒤 핍박당할 것을 근심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다. 이때 문득, ‘나의 영혼이 아직 죽지 않았는데 어디에 간들 이루지 못하리오?’라는 생각이 들어, 은밀히 아들 부라扶羅에게 왕위를 넘기고 백랑산白狼山을 넘어 밤에 해구海口를 건너니, 따르는 자가 수천 명이었다. 마침내 바다를 건너 왜인을 평정하고 왕이 되었다. 스스로 삼신三神의 부명符命에 응한 것이라 하고, 여러 신하로 하여금 하례 의식을 올리게 하였다. ( 『환단고기』 「대진국본기」)
의려국은 일명 서부여로 북부여의 서쪽, 오늘날 북경 근처 정주正州에 있었다. 이곳 의려국 왕은 의려였고 태자는 의라였다. 285년, 선비족 모용외의 습격에 패하여 의려왕은 죽고 태자 의라가 신하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최초의 통일 왕조를 건설했다. 이 의라왕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제15대 응신應神왕이다.
실제 일본 오사카에는 의라씨의 조상신을 모시는 대의라신사가 있는데 북규슈를 거쳐 오사카로 이주했던 의라왕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이것이 일본 하치만 신앙의 주신인 ‘응신應神왕’의 역사 진실이다.
일본 전역에서 꽃핀 삼신문화의 뿌리인 우사 신궁은 어떻게 삼신을 모시는가? 국보로 지정된 우사 신궁의 본전에는 응신왕応神王과 히메노카미比売大神, 그리고 신공황후神功皇后를 하치만 삼신八幡三神으로 모시는 삼신전이 있다. 삼신전 옆 북진 신사北辰神社에서는 일본의 조화삼신을 모신다. 그리고 우사 신궁의 신체산인 오오모토산大元山(御許山)에도 세 개의 신석神石을 모신다.
그렇다면 이 삼신문화를 뿌리내린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그것은 우사 신궁宇佐神宮이 위치한 지명과 지형에서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우사 신궁의 본전이 위치한 산을 지금도 거북산(구산龜山)이라 부르며 거북산 신사(龜山神社)를 모시고 있다. 이것은 금관가야의 도읍지인 김해의 구지봉과 김수로왕의 탄생 설화, 그리고 수로왕의 둘째 딸 묘견 공주가 거북배를 타고 도래한 것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가야로부터 대마도, 오키노시마 등 대한해협을 건너 규슈 지방으로 건너온 도래인들이 제2의 가야 왕국을 건설하면서 우사 신궁에 동방 신교 삼신문화도 함께 뿌리내렸던 것이다. 그 토양 위에 응신왕의 혼령이 하치만 신으로 현현하여 삼신문화를 활짝 꽃피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사하치만 신궁은 지금의 일본 문화를 만든 정신의 고향이며 뿌리인 것이다!
<참고자료>
『환단고기』 완역본, 안경전
『단군문화기행』 박성수
『일본서기』
『우사궁어탁선집』
히미코는 김수로왕의 둘째 딸 묘견 공주
김수로왕金首露王의 둘째 딸 묘견 공주 비미호卑彌呼(히미코)의 재위 기간은 ?~247년(혹은 248년)으로, 남편이 없고 남동생이 정치를 보좌하였다. 영적인 능력을 가진 제사장으로, 종교적 권위자였다. 히미코를 천조대신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이도흠 한양대 교수도 “고대 일본 첫 여왕인 ‘히미코(卑彌呼)’가 가야국 공주로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의 두 딸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3세기 일본 규슈 사마태국은 가야와 같은 이모작을 했고, 철기 공방이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이는 일본으로 건너간 가야인들의 흔적”이라고 했다. 귀사龜蛇는 거북과 뱀이 하나로 합쳐진 상상의 동물이다. 일본에서는 약 1,300년 전 묘견 신이 중국에서 바다를 건너올 때 귀사를 타고 왔다고 한다.
其國本亦以男子爲王(기국본역이남자위왕) 住七八十年(주칠팔십년) 倭國亂(왜국란)
相攻伐歷年(상공벌역년) 乃共立一女子爲王(내공위일여자위왕) 名曰卑彌呼(명왈비미호)
그 나라(왜)는 본래 남자를 왕으로 삼았는데, 70~80년을 다스리다가 왜국이 어지러워져서 서로 공격하고 정벌하여 오랫동안 싸웠다. 이에 함께 한 여자를 왕으로 세우니, 이름을 히미코라 한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 조)
相攻伐歷年(상공벌역년) 乃共立一女子爲王(내공위일여자위왕) 名曰卑彌呼(명왈비미호)
그 나라(왜)는 본래 남자를 왕으로 삼았는데, 70~80년을 다스리다가 왜국이 어지러워져서 서로 공격하고 정벌하여 오랫동안 싸웠다. 이에 함께 한 여자를 왕으로 세우니, 이름을 히미코라 한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 조)
二十年(이십년) 夏五月(하오월) 倭女王卑彌乎(왜여왕비미호) 遣使來聘(견사래빙)
(아달라 이사금) 20년(173년) 여름 5월에 왜의 여왕 히미코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 『삼국사기』 「아달라 이사금본기」)
(아달라 이사금) 20년(173년) 여름 5월에 왜의 여왕 히미코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 『삼국사기』 「아달라 이사금본기」)
야마타이국의 히미코와 구노국 남왕의 대립
남쪽 구노국狗奴国의 남왕男王 히미궁호卑弥弓呼와 불화不和하여 전쟁 상태에 있었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 조)
당시에 구노狗奴 사람이 여왕과 서로 다퉈 찾아가는 길을 매우 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
당시에 구노狗奴 사람이 여왕과 서로 다퉈 찾아가는 길을 매우 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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