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을 보고 성경신을 다하라

[태상종도사님 말씀]
도기 134. 1.14(수), 속초조양도장, 파방군령 3호

지금은 사람 개벽을 하는 때


인류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천지지간天地之間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唯人이 최귀最貴라’, 하늘땅 사이 만유 생명체 중에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고 말했다. 천지라 하는 것은 만유 생명을 생성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초목부터 미물, 곤충, 날아다니는 새, 기어 다니는 짐승, 사람에 이르기까지 만유 생명을 천지가 생성을 시킨다. 그중에 주체가 되는 것이 사람이다.

왜 그러냐 하면 알기 쉽게 말해서, 만유의 생명체는 수화금목토水火金木土 오행 가운데 한 가지 기운만 타고 나왔다. 그러나 사람은 오행 기운을 다 타고 나와서 기거좌와起居坐臥, 일어나고 앉고 눕고 다리도 뻗고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 신체를 전후좌우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또 머리도 영특하다. 그래서 만유 생명을 지배하고 필요에 따라서 사용도 하는 것이다. 만유라 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존재이다. 사람은 다른 생명체처럼 그저 왔다 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지혜가 있다. 철을 모르고 살면 초목이나 날아다니는 새나 짐승 같은 잡다한 생명체보다 나을 게 무엇이 있는가.

이 천지에서 지구에만 사람이 있다. 알기 쉽게 말해, 9대 행성 가운데 산소, 물이 있고 생물이 살 수 있게 환경이 조성된 데가 지구다. 이 지구가 만유 생명을 수용하기에 우리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형체 자체도 이 우주를 상징해서 만들어져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는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환절기다. 1년에도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四時에서 가을이 되면 초목이 멸망을 당한다. 초목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천지가 이법에 의해서 둥글어 가고, 그런 이법에 의해서 만유 생명체가 왔다 가는 것이다.

우리가 승평昇平 시대를 산다면 그저 모르고 왔다 가도 된다. 하지만 이런 환절기에는 반드시 진리를 알고 살아야 된다. 앎으로써 죽는 세상을 극복할 수 있다. 이 시점을 알지 못하면 결론적으로 죽는 것밖에 없다. 지금은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인간개벽기이기에 그렇다.

지구년이라 하는 것은 초목 농사를 짓는 것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때는 초목이 개벽을 당한다. 우주년은 사람 농사를 짓는데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때는 ‘사람 개벽’을 한다. 우리가 원하고 바라지도 않았건만 지금 바로 그 시점에 살고 있다.

천지라 하는 것은 이법에 의해서 둥글어 가지만 사람이 주체가 돼서 농사를 짓는다. 천지의 대역자代役者가 바로 사람이다. 천지에서 역사하여 초목 농사 지은 것을 사람이 천지를 대신해서 거둬들이고 열매를 따는 것이다.

이번에 하느님이 오셔서, 천지에서 사람 농사 지은 것을 천지를 대신해서 추수를 하신다.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보셔서 봄여름 세상, 과거 역사 과정에서 일어난 원과 한을 전부 해소하고 가을 세상을 열어 주셨다.

상제님이 집행하신 천지공사


선천 세상은 상극이 사배司配해서 강자는 약자를 잡아먹고, 약자는 강자한테 먹혀 버렸다. 상극이 무엇이냐 하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서 ‘서로 잡아먹는 것’이다. 선천 역사, 지나간 역사 과정에서는 서로 잡아먹고 살았다. 잡아먹힌 그 원혼귀들이 하늘땅 사이에 가득히 찼다. 선천 역사를 크게 묶어서 말하면 ‘전쟁의 역사’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죽이고 굴복시켜야 한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운다. 지나간 역사 과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됐다.

그 원혼귀, 원한 맺은 신명을 해원시키지 않으면 좋은 세상을 열 수가 없다. 그래서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해원공사解寃公事를 보신 것이다. 천지공사라는 것이 해원공사다.

상제님이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한도限度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道典 5:416:1~2)라고 하셨다. 굳게 짜 놓으신 도수, 다시 말해서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가 인간 세상에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표출된다. 그 프로그램에 의해서 세상이 지금 이렇게 열려서 돌아가는 것이다.

상제님이 신명해원 공사를 보셔서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붙이셨다. 앞으로 3차대전도 있다. 또 천지공사에 난장판 도수를 붙이셨다. 애기판, 총각판, 상씨름을 거기에 붙이신 것이다.

상제님은 진짜로 이 우주를 주재하시는 분이다. 상제님이 “나는 천지일월이다. 나는 옥황상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 대우주의 주인공은 상제님이시다. 사람의 마음이 내 몸뚱이의 주인이 되듯이 이 천지의 주인은 바로 우리가 신앙하는 옥황상제, 참 하나님이시다. 일월도 상제님이 명령해서 둥글어 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우주 천체권 내, 이 우주의 주인공이 바로 옥황상제님이시다. 그렇게 알면 틀림없다.

사람으로 말하면, 마음으로 ‘누구를 만나야 되겠다’ 하면 이 몸뚱이가 간다. 마음이 가면 몸뚱이도 간다. ‘심야자心也者는 일신지주一身之主라’, 마음이라 하는 것은 한 몸뚱이의 주인이다. 다 각기 마음을 가지고 있잖은가. 심령을 다 가지고 있다. 사람 몸뚱이의 주인이 바로 내 마음이다. 마음이 아프면 병도 난다.

상제님 진리는 자연 이법, 자연 섭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상제님 진리가 자연 섭리이고, 자연 섭리가 상제님 진리이다. 그래서 천지 이법 그대로 이화理化해서 천리와 지의와 인사에 합리적인 최선의 방법으로, 그 이상 더 적절하게 할 수 없는 최선의 방법으로 천지공사를 집행하셨다. 물은 위에서 밑으로 흘러 내려가고 불은 위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이법 아닌가? 그런 이법에 의해서 그렇게 공사를 집행하셨다. 그래서 꼭 그렇게만 되고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게 상제님 진리이다.

복록성경신, 수명성경신


우리는 불행히도 개벽하는 시점을 만났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제님 진리를 만났다. 그렇다면 천지에서 선택된 참 운 좋은 사람이다.

이런 좋은 자리를 만나고도 좇아가기 어렵다 하면 그런 사람은 허수아비 아닌가. 허수아비 노릇을 할 수는 없잖은가. 사람은 저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이다. 하루에 밥 세 번을 먹는데 배고플 때 그 밥이 얼마나 좋은가? 밥 한 그릇을 먹으려 해도 단단히 달라붙어서, 허리띠 끌러 놓고, 땀을 뻘뻘 흘려 가면서 먹는다.

그런데 조상도 구하고 나도 잘되고 자손만대도 잘되는 막중한 일이 어떻게 쉽게 될 수가 있겠는가. 하니까 결심을 단단히 하고 신앙 자세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천지에서 여태 사람 농사를 지었는데, 이제 신인神人이 합일合一하는 알갱이 문화가 나온다. 신명은 사람을 만나야 되고, 사람은 신명을 만나야 한다. 앞 세상은 신명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 컴퓨터 같은 정보 기구를 빌리지 않고도 내 스스로 알아서 세상만사를 환하게 안다. 지금 내가 ‘가서 아무개라는 놈 때려 주겠다’ 하면 상대도 ‘저놈이 나를 때리러 온다’ 하고 먼저 안다. 그런 좋은 문화, 그게 만사지萬事知 문화다.

‘시천주 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 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 우주의 주재자 하나님, 증산 상제님, 참 하나님을 모시고서 조화를 정했으니 영세토록 잊지 못한다. 후천 5만 년 이 대우주 천체권이 얼어붙어서 일체 생물이 멸망당할 때까지, 상제님이 만사지 문화를 열어 주신 그 은총을 잊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복록福祿도 성경신誠敬信이요, 수명壽命도 성경신誠敬信이다. 참 하나님 상제님을 얼마만큼 성경신을 바쳐서 믿느냐 하는 데 따라서 잘살고 못사는 것이 결정된다. 상제님을 얼마만큼 잘 신앙을 하느냐 하는 데 따라서 오래 살 수도 있고 일찍 죽을 수도 있다. 상제님을 신앙하는 그 성경신에 따라서 복록과 수명, 잘살고 못살고 오래 살고 일찍 죽는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사람은 신앙을 하기 위해서 알아야 된다. 진리를 앎으로써 유형, 무형을 다 바쳐서 신앙하고, 포교도 할 수 있다.

사람은 다 비판력도 있고, 추고력推考力도 있지 않은가. 『도전道典』에는 토씨 하나 거짓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천지공사를 깨칠 수 있다. 『도전』은 후천 5만 년 전 인류의 교과서다. 생명을 바쳐서 『도전』을 만들었다. 저 『도전』이 나오는 데 수십만 시간이 들어갔다. 일심 정력을 다 바쳐서 만든 것이다. 『도전』을 보고서 신앙을 하든지 말든지 결정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신앙을 하려면 첫째로 육임을 짜라. 개벽하는 이 세상에는 생사양로生死兩路밖에 없다. 죽는 길, 사는 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