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무극대도 | 주역 여덟 번째 지도자와 일꾼들이 합심하여 새 세상을 여는 수지비괘水地比卦䷇
[기고]
한태일(인천구월도장 교무도군자)
흙과 물이 친하니
위에는 물괘(水,☵)가 있고 아래는 땅괘(地,☷)가 있어 물과 땅이 친하여 서로 돕는다는 수지비괘水地比卦(䷇)입니다. ‘비比’ 자는 ‘친하다, 돕다, 비교하다’의 뜻입니다. 왜 ‘물(水)이 땅(地)에 있는 것이 돕는다(比)’고 하는 것일까요? 흙(土)과 물(水)만 놓고 보면 오행의 상극 관계에서는 토극수土克水라 하여 돕기는커녕 서로 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홍수가 덮치면 인명과 재산 피해를 주지만 흙으로 제방을 쌓아 물길을 다스리면 괜찮습니다. 또 고비사막 같은데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날리면 황사로 피해를 주지만 물이 대지를 적시면 초원이 되어 막을 수 있습니다. 넓은 땅에 물이 없다면 황폐지로 전락하지만 비가 내리면 풍족함을 안겨 주는 농토가 됩니다. 이처럼 대지에 물이 있으면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므로 ‘수지水地는 비比’라고 합니다. 인사적으로 수지비괘는 한 개의 양효(⚊, 구오九五, 군왕)를 다섯 개 음효들(⚋, 백성)이 임금을 중심으로 서로 도와 나라를 세워 나가는 괘로 봅니다. 비괘의 괘상에서 보듯 임금이 펼치는 선정善政을 가리켜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이슬에 비유하여 임금의 크나큰 은혜를 우로지택雨露之澤이라 합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주역 7번째 지수사괘는 장수가 중심이 되어 전쟁하는 괘입니다. 대도 진리 입장에서 살펴볼 때 이 지수사괘가 대두목을 중심으로 추살개벽을 극복하는 괘라면, 8번째 수지비괘는 인사의 지도자(⚊, 구오九五)와 일꾼들(⚋)이 서로 힘을 모아 후천 상생의 시대를 열어 가는 괘입니다. 이렇게 수지비괘는 후천개벽 후 인사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천지의 녹지사들이 모여들어 선경세계를 건설하는 괘입니다. 도전道典에서도 “대두목은 대개벽기 광구창생의 추수자”(6:2:7)이시며, “일꾼은 천지일월 사체의 도맥과 정신을 이어받아 천지대업을 개척하여 후천 선경세계를 건설하는 자”(8:1:5)라고 하였습니다.
「서괘전」에 보면 “(지수사괘는) 많은 무리가 모이면 경쟁을 하게 되어 그다음에 수지비괘가 오게 되는데 비比에서는 서로 친하고 돕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지비괘를 뒤집어 보면 바로 앞 지수사괘地水師卦(䷆)가 되므로 서로 도전倒顚 관계에 있습니다. 이 두 괘를 비교하면 아래 표와 같습니다.
착하고 영구히 바르게 하면
☯ 괘 사
比(비)는 吉(길)하니 原筮(원서)하되 元永貞(원영정)이면 无咎(무구)리라
비比는 길한 것이니 처음 점을 쳐 보되 원하고 영하고 정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不寜(불녕)이어야 方來(방래)니 後(후)면 夫(부)라도 凶(흉)하리라
편하지 않아야 바야흐로 오는 것이니 뒤에 하면 대장부라도 흉하리라.
비比는 길한 것이니 처음 점을 쳐 보되 원하고 영하고 정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不寜(불녕)이어야 方來(방래)니 後(후)면 夫(부)라도 凶(흉)하리라
편하지 않아야 바야흐로 오는 것이니 뒤에 하면 대장부라도 흉하리라.
☞ 비比는 길한 것이니 처음 점을 쳐 보되 원영정이면 허물이 없으리라(比吉原筮元永貞无咎): 비比 자는 두 사람이 우측을 향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글자로 ‘친하다’에서 ‘견주다, 비교하다’라는 뜻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비比라는 글자처럼 두 사람이 서로 도와주니 길한 것이고, 수지비괘는 전쟁 같은 큰일을 힘을 합해 극복하고 서로 도와 나라를 세우니 길한 것이죠. 그리고 나라를 세우고 나서 임금이 정치를 잘할 것인지, 나라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에 대해 점을 쳐 봤는데 ‘착하고(元) 영구하고(永) 바르다(貞)’는 점괘가 나오므로 향후 군왕의 치세治世는 허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 편하지 않아야 바야흐로 오는 것이니 뒤에 하면 대장부라도 흉하리라(不寜方來後夫凶): 옛말에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사란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옵니다. 나라를 세우는 건국도 전쟁 같은 고난의 과정을 겪은 후 힘을 합쳐야 가능한 일입니다. 상하가 따로 없이 서로 돕는 비괘比卦의 정신을 가져야 대업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대업에 장삼이사張三李四 같은 범부들도 나서는데 능력 있는 대장부가 뒷전에서 수수방관하고 있다면 흉하다고 하였습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후천개벽 후 펼쳐지는 새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세계입니다. 추살개벽 후 지상에 건설되는 선경세계는 이 세상 어떤 큰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주적 대사건입니다. 병든 천지를 고치시기 위해 천지부모이신 상제님과 태모님께서도 평생 고난의 역정을 걸으셨는데, 하물며 천하사 일꾼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 우리 공부는 남 편할 적에 고생하자는 공부요 (도전 11:278:4)
태상종도사님께서도 “천지사업을 하는데, 천지의 틀을 집행하는데 어찌 편하기를 바라리오!”라는 경책의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선천 세상을 문 닫고 후천의 새 세상이 열립니다. 우리 모두 상제님의 화신이 되고 지도자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추살개벽을 극복해야 합니다. 창생을 살려내는 데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큰 일꾼일지라도 “죽지는 아니하나 앉을 자리가 없어서 참석하지 못할 것이요. 갈 때에 따라오지 못하고 엎어지리라.”(7:89:5~6)라고 상제님께서 말씀을 하셨으며, 태모님께서도 제 죽을 짓만 하는 창생들에게 “잘못된 그날에 제 복장 제가 찧고 죽을 적에 앞거리 돌멩이가 모자란다.”(11:70:9)는 탄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려움이 지나가야 도움이 오니
☯ 단 사
彖曰(단왈) 比(비)는 吉也(길야)며 比(비)는 輔也(보야)니 下(하) 順從也(순종야)라
단전에 이르길 “비比는 길하며, 비는 돕는 것이니 아래에서 순종함이라.
原筮元永貞无咎(원서워영정무구)는 以剛中也(이강중야)오
‘처음 점을 쳐 보되 원영정이 나와 허물이 없다’는 것은 강으로써 중을 했기 때문이요,
不寜方來(불녕방래)는 上下(상하) 應也(응야)오
‘편하지 않아야 바야흐로 온다’는 것은 상하가 응함이요,
後夫凶(후부흉)은 其道(기도) 窮也(궁야)라
‘뒤에 하면 대장부라도 흉하다’는 것은 그 도가 궁해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단전에 이르길 “비比는 길하며, 비는 돕는 것이니 아래에서 순종함이라.
原筮元永貞无咎(원서워영정무구)는 以剛中也(이강중야)오
‘처음 점을 쳐 보되 원영정이 나와 허물이 없다’는 것은 강으로써 중을 했기 때문이요,
不寜方來(불녕방래)는 上下(상하) 應也(응야)오
‘편하지 않아야 바야흐로 온다’는 것은 상하가 응함이요,
後夫凶(후부흉)은 其道(기도) 窮也(궁야)라
‘뒤에 하면 대장부라도 흉하다’는 것은 그 도가 궁해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비比는 길하며, 비는 돕는 것이니 아래에서 순종함이라(比吉也比輔也下順從也): 비괘比卦는 새 나라를 세우는 것이니 길한 것이며, 또한 비比가 서로 돕기 때문에 길한 것이죠. 백성들은 스스로 지켜 낼 수가 없고 군왕 또한 홀로 왕 노릇을 할 수가 없기에 위정자와 백성이 서로 힘을 합해야 합니다. 비比 자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듯이 백성이 임금의 뜻에 호응해 주고 따라 주어야 나라가 잘되는 것이죠. 임금(구오)은 상괘에서 중정한 군덕君德을 베풀어서 아랫사람들이 순종하고 있습니다.
☞ 처음 점을 쳐 보되 원영정이 나와 허물이 없는 것은 강으로써 중을 했기 때문이오(原筮元永貞无咎以剛中也): 새 왕조를 열고 나라의 운명을 점쳐 보는데 ‘크게 발전하고(元) 오래토록(永) 정의로운(貞)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점괘를 얻어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군왕(구오)이 강건한(剛) 중도(中)의 심법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 편하지 않아야 바야흐로 온다는 것은 상하가 응함이오(不寜方來上下應也): 큰일을 하다 보면 어려운 일이 있기 마련이죠. 고생을 낙으로 삼고 견뎌 내면 좋은 때가 옵니다. 그렇게 되자면 조직의 상하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충분히 공감할 때나 가능한 일이죠.
☞ 뒤에 하면 대장부라도 흉함은 그 도가 궁해짐이다(後夫凶其道窮也): 나라 세움은 왕과 온 백성이 한마음으로 힘을 합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능력 있는 자가 자기 욕심 때문에 때나 헤아려 보고 있다든지, 한 발짝 물러나서 강 건너 불 보듯 하면 대업을 성취한 후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돌이킬 수 없는 회한만 남기게 됩니다.
* 인사는 기회(機會)가 있고 천리는 도수(度數)가 있느니라. (4:29:2)
* 개벽이란 것은 때와 기회가 있나니 마음을 눅여 어린 짓을 버리라. (3:283:4)
* 無恨有司之不明(무한유사지불명)하라.
맡은 바 일을 바르게 처리하지 못해 한(恨)을 남기지 마라. (8:113:1)
* 개벽이란 것은 때와 기회가 있나니 마음을 눅여 어린 짓을 버리라. (3:283:4)
* 無恨有司之不明(무한유사지불명)하라.
맡은 바 일을 바르게 처리하지 못해 한(恨)을 남기지 마라. (8:113:1)
선왕이 만국을 세우고 제후와 친하니
☯ 대 상
象曰(상왈) 地上有水(지상유수) 比(비)니 先王(선왕)이 하야 建萬國(건만국)하고 親諸侯(천제후)하니라
대상전에 이르길 “땅 위에 물이 있음이 비比니 선왕이 이를 본받아 만국을 세우고 제후와 친함이라.
대상전에 이르길 “땅 위에 물이 있음이 비比니 선왕이 이를 본받아 만국을 세우고 제후와 친함이라.
☞ 선왕이 이를 본받아 만국을 세우고 제후와 친함이라(先王以建萬國親諸侯): 수지비괘의 괘상은 땅 위에 물이 있는 모습으로 대지와 물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촉촉한 땅은 초목뿐 아니라 생물들의 생육 환경에 필수 조건입니다. 물은 생명수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며, 그 덕성은 만물과 다투지 않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합니다. 흙과 물이 상생하듯 위정자와 백성 또한 그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왕들은 백성들을 잘 보듬어 주고 지켜 주고자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봉건제에서 보듯 왕은 제후와도 친하여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믿음을 두고 도움을 줘야
☯ 육효사
初六(초육)은 有孚比之(유부비지)라야 无咎(무구)리니
초육은 믿음을 두고 도와야 허물이 없으리니
有孚(유부) 盈缶(영부)면 終(종)에 來有他吉(내유타길)하리라
믿음을 두고 질그릇에 가득하면 마침내 다른 길함이 있어 오리라.
象曰(상왈) 比之初六(비지초육)은 有他吉也(유타길야)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비괘의 초육은 다른 데에 길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초육은 믿음을 두고 도와야 허물이 없으리니
有孚(유부) 盈缶(영부)면 終(종)에 來有他吉(내유타길)하리라
믿음을 두고 질그릇에 가득하면 마침내 다른 길함이 있어 오리라.
象曰(상왈) 比之初六(비지초육)은 有他吉也(유타길야)니라
소상전에 이르길 “비괘의 초육은 다른 데에 길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 믿음을 두고 도와야 허물이 없으리니(有孚比之无咎): 비괘는 나라를 세우는 괘로 초육은 백성의 자리입니다. 나라의 백성으로 나라가 잘되게 도와줘야 합니다. 사심을 갖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갖고 도와줘야 허물을 지지 않습니다.
☞ 믿음을 두고 질그릇에 가득하면 마침내 다른 길함이 있어 오리라(有孚盈缶終來有他吉): 백성의 믿음은 비록 질그릇처럼 투박하지만 진솔한 믿음으로 충직하게 나라와 군왕에게 도움을 준다면, 초육과 구오와는 비록 서로 응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생각지도 않는 데(구오, 나라님)에서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六二(육이)는 比之自內(비지자내)니 貞(정)하야 吉(길)하도다
육이는 돕는데 안으로부터 하니 바르게 해야 길하도다.
象曰(상왈) 比之自內(비지자내)는 不自失也(부자실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안으로 돕는다는 말은 스스로 잃지 않음이다.”고 하였습니다.
육이는 돕는데 안으로부터 하니 바르게 해야 길하도다.
象曰(상왈) 比之自內(비지자내)는 不自失也(부자실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안으로 돕는다는 말은 스스로 잃지 않음이다.”고 하였습니다.
☞ 육이는 아래 백성들 자리에서 중정中正한 선비입니다. 선비는 안으로 수양을 쌓고 덕을 길러야지 세상 밖에 나가서 출세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출세에 눈이 멀어 세속에 뛰어들면 안 된다고 하며, 마음을 다스려 지켜야 길하다고 합니다. 즉 자기 본심을 잃지 않아야 본분을 지킬 수 있습니다.
대업에 참가하지 않으면
六三(육삼)은 比之匪人(비지비인)이라
육삼은 도와줄 사람이 아니다.
象曰(상왈) 比之匪人(비지비인)이 不亦傷乎(불역상호)아
소상전에 이르길 “도와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또한 상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육삼은 도와줄 사람이 아니다.
象曰(상왈) 比之匪人(비지비인)이 不亦傷乎(불역상호)아
소상전에 이르길 “도와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또한 상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 도와줄 사람이 아니다(比之匪人): 육삼은 하괘의 끝에 있어 상괘로 넘어가는 자리이기에 불안하며 양 자리에 음효가 와서 제자리도 아니며 상육과도 서로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부정不正, 부중不中, 불응不應하여 남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니 비인匪人(사람이 아님)이라 하였습니다. 참고로 ‘비非’는 통상적으로 부정하는 ‘아니다’이며, ‘비匪’는 ‘ㄷ(상자 방)’안에 비非 자가 들어 있어 ‘(편견, 독선, 고정관념에 빠져서) 아니다’는 뜻입니다.
비괘는 임금이나 백성이 서로 한마음으로 새 나라를 건설하는 괘인데, 육삼의 비인匪人은 도움을 줄 마음도, 도와주지도 않는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이죠. 그야말로 나라를 세우는 데 도움은커녕 남에게 피해만 끼치는 사람입니다.
☞ 상제님 대도진리: 이번 후천개벽은 129,600년 만에 한 번 있는 우주 하추교역기의 인종 씨를 추리는 추살 개벽입니다. 선천 5만 년을 종결짓고 후천 5만 년을 여는 이 중차대한 가을개벽의 성업에 참가하지 않으면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 事之當旺(사지당왕)은 在於天地(재어천지)요 必不在於人(필부재어인)이라
然(연)이나 無人(무인)이면 無天地故(무천지고)로
天地生人(천지생인)하여 用人(용인)하나니
以人生(이인생)으로 不參於天地用人之時(불참어천지용인지시)면
何可曰人生乎(하가왈인생호)아
일이 흥왕하게 됨은 천지에 달려 있는 것이요
반드시 사람에게 달린 것은 아니니라.
그러나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또한 없는 것과 같으므로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사람으로 태어나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 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 (8:100:2)
然(연)이나 無人(무인)이면 無天地故(무천지고)로
天地生人(천지생인)하여 用人(용인)하나니
以人生(이인생)으로 不參於天地用人之時(불참어천지용인지시)면
何可曰人生乎(하가왈인생호)아
일이 흥왕하게 됨은 천지에 달려 있는 것이요
반드시 사람에게 달린 것은 아니니라.
그러나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또한 없는 것과 같으므로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사람으로 태어나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 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 (8:100:2)
주역에서 ‘비인匪人’이란 표현은 소인이 득세하여 군자가 숨어 버리고 소통이 되지 않는 비색否塞한 세상을 상징하는 천지비괘天地否卦(䷋)의 괘사에도 나옵니다. 괘사에 ‘否之匪人(비지비인)’ 즉 ‘비否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즉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사욕만을 위해 세상을 농단하는 소인배를 가리킵니다.
☞ 도와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또한 상하지 않겠는가?(比之匪人不亦傷乎): ‘사람 같지 않는 사람(匪人)’은 도와줘 봐야 도리어 도와준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참고로 주역 384효사의 소상전小象傳의 모든 글은 ‘~야也’로 끝납니다(단 두 개만 예외). ‘也(잇기 야, 어조사 야)’는 ‘~이다’라는 종결어로 효사를 해석한 소상전의 끝에는 ‘也’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수지비괘의 육삼효’와 ‘택화혁괘의 구삼효(革言三就又何之矣)’는 ‘호乎’와 ‘의矣’로 끝맺고 있습니다. 여기서 호乎는 ‘~느냐?’라는 반어적인 표현을 할 때 쓰며, 의矣는 화살(矢)이 날아가서 한 곳에 멈춘다는 뜻으로 주로 문장의 끝에서 단정斷定을 표현할 때 씁니다.
六四(육사)는 外比之(외비지)하니 貞(정)하야 吉(길)하도다
육사는 밖에서 도우니 바르게 해야 길하도다.
象曰(상왈) 外比於賢(외비어현)은 以從上也(이종상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밖에서 어진 이를 돕는 것은 위를 따르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육사는 밖에서 도우니 바르게 해야 길하도다.
象曰(상왈) 外比於賢(외비어현)은 以從上也(이종상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밖에서 어진 이를 돕는 것은 위를 따르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 육사는 하괘에 있는 백성이나 선비와 달리 상괘에서 군왕을 보필하는 신하 자리입니다. 밖에서 돕는다는 말은 세상 밖으로 나와 나라에서 녹을 받는 신하로서 군왕을 돕는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녹봉을 받으니 백성을 위해 올바른 정치를 해야 길한 것이죠. 군왕이 선정을 펼치도록 보필을 잘하고, 군왕의 뜻에 따라 국정을 집행해야 합니다.
거슬리는 것은 버리고 순한 것은 취하니
九五(구오)는 顯比(현비)니 王用三驅(왕용삼구)에 失前禽(실전금)하며
邑人不誡(읍인불계)니 吉(길)하도다
구오는 빛나게 도우니 군왕이 삼구법을 씀에 앞의 새를 잃으며 읍 사람이 경계하지 않으니 길하도다.
象曰(상왈) 顯比之吉(현비지길)은 位正中也(위정중야)오
舍逆取順(사역취순)이 失前禽也(실전금야)오
소상전에 이르길 “빛나게 도와 길하다는 것은 자리가 바르고 가운데 함이요, 거슬리는 것은 버리고 순한 것을 취하는 것은 앞의 새를 잃음이요,
邑人不誡(읍인불계)는 上使(상사) 中也(중야)일새라
읍 사람이 경계하지 않는 것은 위에서 부림이 중을 지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邑人不誡(읍인불계)니 吉(길)하도다
구오는 빛나게 도우니 군왕이 삼구법을 씀에 앞의 새를 잃으며 읍 사람이 경계하지 않으니 길하도다.
象曰(상왈) 顯比之吉(현비지길)은 位正中也(위정중야)오
舍逆取順(사역취순)이 失前禽也(실전금야)오
소상전에 이르길 “빛나게 도와 길하다는 것은 자리가 바르고 가운데 함이요, 거슬리는 것은 버리고 순한 것을 취하는 것은 앞의 새를 잃음이요,
邑人不誡(읍인불계)는 上使(상사) 中也(중야)일새라
읍 사람이 경계하지 않는 것은 위에서 부림이 중을 지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빛나게 도우니 군왕이 삼구법을 씀에 앞의 새를 잃으며(顯比王用三驅失前禽): 구오는 군왕입니다. 임금은 하늘을 대신해 백성들을 다스리므로, 왕도 정치를 함으로써 빛나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顯比). 삼구법三驅法이란 임금의 사냥법으로 몰이꾼이 사냥감을 몰 때 사면四面으로 몰지 않고 한 방향은 터 주어 도망갈 수 있게 하고 세 방향에서만 몰이를 해서 잡는 것입니다. 삼구법은 상商나라를 건국한 탕왕湯王의 사냥법으로 새나 짐승을 잡을 때도 남획하지 않는 그의 어진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정치를 펼치는 데 있어서도 왕이 백성들을 너무 혹독하게 다루지 말고, 언로言路도 열어 놓고 어질게 다스려 백성들이 스스로 임금을 따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의 새를 잃음(失前禽)은 사냥꾼에게 뒤를 보이며 도망가는 짐승을 말하는 것으로 굳이 살려고 도망가는 사냥감을 쫓아가서 잡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읍 사람이 경계하지 않으니 길하도다(邑人不誡吉): 사냥을 할 때도 사냥감을 다 잡아들이지 않듯 임금이 정치를 하는 것도 백성들을 가혹하게 하지 않아야 백성들(읍 사람)로부터 원성을 사지 않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빛나게 도와 길하다는 것은 자리가 바르고 가운데 함이오(顯比之吉位正中也): 구오는 가운데(中)하고 바른(正) 자리, 즉 중정中正한 군왕이기에 현명한 판단과 중도中道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을 위한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거슬리는 것은 버리고 순한 것을 취하는 것이 앞의 새를 잃음이오(舍逆取順失前禽也): ‘쥐를 몰아도 도망갈 구멍을 주라’는 속담이 있듯 한 쪽 면을 터 주는 삼구법은 도망치는 짐승까지 잡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치를 할 때도 임금에게 반대하고 저항하는 자들과는 함께하지 말고, 뜻이 통하는 자들과 함께 국정을 펼치는 것이 바로 삼구법의 사냥하는 방식입니다.
☞ 읍 사람이 경계하지 않는 것은 위에서 부림이 중을 지키기 때문이다(邑人不誡上使中也): 백성들(읍 사람)이 경계하지 않고 호응을 해 준다는 것은 상괘에 있는 구오(군왕)가 정치를 행함에 중도를 지켜 선정을 펼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上六(상육)은 比之无首(비지무수)니 凶(흉)하니라
상육은 돕는데 머리가 없으니 흉하니라.
象曰(상왈) 比之无首(비지무수)는 无所終也(무소종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돕는데 머리가 없다는 것은 끝나는 바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상육은 돕는데 머리가 없으니 흉하니라.
象曰(상왈) 比之无首(비지무수)는 无所終也(무소종야)라
소상전에 이르길 “돕는데 머리가 없다는 것은 끝나는 바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돕는데 머리가 없으니 흉하니라(比之无首凶): 비괘는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나라를 세우는 것을 상징하며 상육은 비괘의 끝자리입니다. 건국 같은 대사를 추진함에 누구보다 더 지도자(首)의 역할과 도움이 절실한데 브레인 역할을 할 지도자가 없다면, 혹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방관자처럼 한다면 흉한 일이죠. 단사에서 ‘뒤에 하면 대장부라도 흉하다는 것은 그 도가 궁함(後夫凶其道窮也)’이라는 말이 바로 상육의 방관자적인 태도를 지칭한 것입니다. 또한 상육은 도와줄 위인이 못 되는 육삼(匪人)과 상응하므로 상육 역시 도움을 줄 수가 없겠죠.
☞ 돕는데 머리가 없다는 것은 끝나는 바가 없는 것이다(比之无首无所終也): 머리(首)를 시간적으로 볼 때는 처음(始)으로 볼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돕지 않았는데 하물며 끝(終)에 가서 돕겠느냐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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