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깊이 쌓은 신앙의 심지 외(곽창현, 이혜숙)
[입도수기]
가슴 깊이 쌓은 신앙의 심지
곽창현(남, 63) / 창원명서도장 / 149년 음력 12월 입도
정성 가득했던 신앙의 추억들
저는 경상남도 끝 거창 가북 중촌에서 5남매의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에 어머니께서 새로운 음식을 하시면 큰방 윗목에 정한수 한 그릇과 같이 상에 올려놓기도 하고, 아버지께서 산판에 일하러 가시면 장독대 위에 청수를 올리고 앞에서 비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정월달이면 목욕재계를 하신 후 음식을 차려 놓고 삼신상제님께 자식들 잘되게 해 달라고 비셨습니다. 음식을 정성껏 해서 바구니에 담아 용왕 먹인다고 하시면서 저를 데리고 약 1km쯤 떨어진 냇가 큰 바위 밑에 음식을 차리고 촛불을 켜 한참을 비시고 저보고도 절하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20여 년을 채운 구도의 시간
제가 처음 상제님의 진리를 만난 것은 1990년경 이성담 선사님의 단전호흡을 배우던 중 백광제라는 분을 만나 처음으로 대순진리 부산도장에서 입도를 하면서였습니다. 대순진리회 여주도장까지 다녀오고 집에서 청수를 올리며 촛불을 켜 두고 아침저녁으로 수행하던 중 백광제 씨가 여기는 아니라고 하면서 광제원이라는 곳을 소개해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해인 자리라고 상단전 자리를 점지해 주면서 잘 수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도전에 나오는 나승렬 선생님을 만나서 현무경 공부도 하였고, 1997년경에는 12인승 이스타나 차량을 구입하여 도생들을 모시고 1년에 2~3회 상제님 생가와 금산사, 관왕묘를 다녀오기도 하였으며, 거제도 동부면 노자산 아래에 계신 김광직 선생님을 만나 주역과 일기부를 치고 소축하는 공부를 하고 했지만 워낙 학식이 부족하여 가르침에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 구도 공부를 중단하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인도자인 박동호 도생을 알게 되었고 직장 일로 매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박 도생이 증산도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끔 저에게 증산도 정보지 또는 책자를 전해 주기도 하며 약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종도사님 말씀에 감동해 입도를 결심하다
그러던 중 지난 12월 동지치성에 참석하여 종도사님 말씀에 엄청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본부에서 1박 2일 천지성공 연수교육을 받고 창원명서도장에서 팔관법 교육을 받으면서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증산도에서는 체계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뭉클한 느낌을 받았고 죽어도, 죽어서도 상제님의 진리를 배워야 된다는 각오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상제님 진리로서만 살 수 있다는 일념과 열심히 뼈를 깎는 각오로 증산도 태을랑이 될 수 있는 그날까지 우선 태을주 천만 독을 목표로 시작하겠습니다.
가까이 제 가족들에게 상제님 진리 말씀을 전하여 가가도장을 만들고, 육임 천명을 완수하여 천지일월 사체 하나님과 조상님께 보은하는 일꾼이 되도록 열심히 임하겠습니다. 끝으로 이런 엄청난 진리를 다시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박동호 도생과 창원명서도장 김창현 수호사님의 가르침에도 감사드립니다. 입도식 때 따듯하게 축하해 주신 창원명서도장 도생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은. ◎
“시천주를 찾으라”
이혜숙(여, 60) / 강릉옥천도장 / 149년 음력 11월 입도
중생 구제의 사명으로 지내 온 세월
저는 무속인입니다. 경자생이고 60년의 세월을 살면서 많은 종교를 다 거쳐서 불교에 입문하여 마음 공부를 거의 30년을 하는 도중 예기치 않은 일들이 수없이 많이 지나갔습니다. 남편의 사업이 쓰러지고, 모든 일이 되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많은 기도와 수행을 거듭하다 보니 신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고, 정말 남들보다 어떠한 고통과 고초를 겪으면서 지금의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돌봐 주시는 신명님의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도를 하는 것도 산천이나 용신이나 정말 험한 산중에 들어가서 했습니다. 아무도 없이 혼자 기도할 때는 눈물도 많이 흘렸고, 서릿발 같은 눈을 맞고 머리에 고드름이 달릴 정도로 하면서 이곳까지 왔는데, 이 신의 세계가 알면 알수록 더 갈증이 나고 남들은 다 안주를 하면서 가지만 저는 안주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사람을 살리는 것이 중생제도를 하는 길인 줄 알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면서 지금까지 올 때에 같은 도반들이 뭔 기도를 그렇게 많이 하냐고 말을 할 때에도 제 기도는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무언지 모르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해 가야 하는 것만 같고, 무엇인지 나를 이끄는 것만 같고, 이렇게 올 때에는 회한도 많이 들었지만 분명 그 위에는 무엇이 있겠거니 믿었습니다. 또 중간중간 신명이 일러 주는 대로, 여러 중생을 살리면서 온다는 어떤 소명으로 이 길을 택해서 걸어왔습니다. 좌판대에서 여러 사람들이 서서 무언가를 나누어 줄 때에도 조그마한 전단지를 하나 받아서 보기는 하지만 아무런 감흥도 없었고, “이런 믿음도 다 있나?” 하는 마음에 버리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저 내 신명이 최고인 줄 알고 열심히 기도 정진하며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내 상좌를 살리러 왔느니라”
그러던 중, “도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이 자체가 도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기도도 많이 하고, 또 스님들을 찾아다니면서 도라는 게 뭔지 논의도 많이 해 보고, 여러 가지 다방면으로 찾아다녔지만 알려고 하면 할수록 갈증은 더 났습니다.
그러던 중, 기도를 하는데 저의 신명인 할머니가 오셔서 “옥황상제님의 명을 받고 치성광여래불의 손길을 잡고 내 상좌를 살리러 왔느니라~.”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치성광여래불이라는 게 무엇일까? 궁금증이 많이 들었습니다.
휴대전화를 열고 치광광여래불을 찾아 보던 중에 증산도가 스쳐 지나갔고, 그리하여 TV를 틀다 보니 상생방송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방송에 나오는 구절구절이 우리가 믿고 가는 신명님의 가르침과 너무나 같았습니다. 그래서 상생방송에 나오는 전화번호를 보고 문의를 했습니다. 도전이라는 책도 보고 싶었고, 환단고기라는 책도 보고 싶었습니다. 옥황상제라는 그 말이 너무나 너무나 가슴에 와닿았고, 많은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더 이상의 공부는 없으니...
상생방송 시청자 상담사가 어디에 사는지 물어보고 강릉옥천도장을 소개해 주어서, 저는 한걸음에 도장을 방문하고 『도전』과 『환단고기』를 구입하였습니다.
도장 수호사님이 증산도의 진리에 대해 설명을 잘해 주셨고, 집으로 돌아와서 기도를 하는 도중에 “시천주를 찾아라”라는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집에 찾아온 수호사님과 손유정 수석포감님께 문의를 하였습니다. 관련 내용에 대해 상세히 듣고서 그날 저녁부터 태을주太乙呪를 읽었습니다. 태을주를 읽을 때마다 우리들의 신명의 길보다 더 강하게 들어오는 이치가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시천주주도 읽었고, 정진하는 결과가 우리들이 믿는 신명 길보다 더 강하게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마침내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태을주를 읽으면서 여러 무녀들에게 태을주를 읽으라고 했습니다. 무녀들이 태을주를 읽었더니 마치 신명을 다 쫓아내는 듯한(쓸어내는 듯한) 동작이 자꾸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굿을 하러 갈 때에도 나 혼자만의 기도가 있습니다. 항시 저는 태을주를 속으로 읽어 줍니다.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면서 태을주를 읽어 주고 있습니다. 무녀들에게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도 설명해 주고,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 주면, “누가 가르쳐 주냐?”고 물어봅니다.
제가 증산도 공부, 옥황상제님의 진리 공부를 하다 보니 신명이 “더 이상의 공부는 찾지 말라”고 합니다. 더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제 기도는 항상 “중생구제를 할 수 있는 큰 인물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는데, 상제님의 진리를 알고 나서는 그것이 큰 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며, 대도의 길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증산도에 입도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상제님 진리를 전하고, 모두가 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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