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 스님의 불교핵심교리 설법
[이 책만은 꼭]
이성호 / 본부도장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불교의 공과 마음, 사성제와 팔정도, 십이인연법, 반야심경 설법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2002년 5월 서울 도봉산 광륜사를 개원하고 2003년 음력 10월 19일 성륜사 조선당에서 열반에 들었다.
우리가 불교를 공부할 때에 가장 허무감을 느끼고 저항을 느끼는 점은 지극히 소중한 자기가 원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바탕에서 볼 때는 사실은 제법諸法이 공空으로서 존재성이 본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누구나가 다 꿈속에 있다고 합니다.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구분이 분명히 있지만 깨닫고 보니까 다 텅텅 비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법은 마음을 깨닫는 법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기껏해야 이 몸뚱이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마음의 근본성품根本性品은 한도 끝도 없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무량무변無量無邊한 생명 자체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본래로 헤아릴 수 없이 우주에 충만한 무량무변의 것인데 우리 마음은 제한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어리석은 마음이며 무명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란 허공 같은 것인데 다만 허공같이 텅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는 한량없는 성품 공덕이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면, 자비로운 면, 능력 있는 면, 어떤 면으로 보나 무한의 가능성 무한의 에너지가 거기에는 충만해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눈에 안 보이는 미시적인 소립자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미시적인 그런 것 속에도 한도 끝도 없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에너지, 우주의 기氣가 조그마한 눈곱만큼도 못한 것 가운데 가서 무시무시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도 역시 한량없는 힘이 다 들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의 근본 성품이 바로 불심입니다. 마음은 과거에 태어나지도 금생에 태어난 것도 아닌 것이고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처음도 끝도 없이 항시 존재하는 생명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정말로 조작도 되지 않고 조금도 흠도 없는 진실한 자리이기 때문에 진여眞如라고 부릅니다. 우리 중생들은 자기 몸을 자기로밖에는 모르는 정도인데 이것은 소아小我이고, 본래 참나는 우주에 충만해 있는 대아大我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가 바로 참나로서 참 진眞 자, 나 아我 자, 진아眞我입니다.
1 고제苦諦 삼계三界(욕계, 색계, 무색계) 육취六趣(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아수라도, 인간도, 천상도)의 고보苦報니 미迷의 과果입니다. 삼계육도, 삼계육취의 고보苦報란, 고의 과보를 결과로 받는, 하나의 보답으로서 받는 미혹迷惑의 과보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미혹의 결과입니다.
2 집제集諦 탐貪, 진嗔, 치痴 등의 번뇌와 선악의 제업諸業으로서 차이此二가 능히 삼계육취三界六趣의 고보苦報를 집기集起(결합하여 발생)하므로 미迷의 인因입니다. 탐심, 진심, 치심, 이런 번뇌가 있으면 자연히 이것이 우리 몸이나 입이나 뜻으로 발동할 때는 업業이 되는데, 삼독심三毒心에서 우러나온 여러 가지 선악의 업이 인간의 여러 가지 번뇌나 고생의 원인인데 이것이 집集입니다.
3 멸제滅諦 열반涅槃을 뜻하며 열반을 풀이하면 영생永生입니다. 사제四諦를 풀이할 때에 멸제는 그냥 번뇌만 멸한다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체 공덕을 갖춘 영생, 영생의 지혜, 영생의 생명입니다.
4 도제道諦 팔정도八正道로서 능能히 열반涅槃에 통通하는 도道이니 오悟의 인因입니다. 도제는 능히 열반에 통하므로 ‘도’라 이름하며 바로 깨달음의 원인이라는 뜻입니다.
‘정正은 성聖이다. 기도편사其道偏邪를 리離하므로 정도正道라 운云하고, 또한 성자聖者의 도道이므로 성도聖道라 한다.’
- 치우치고 삿됨을 떠나므로 정도라 하고, 또한 성자聖者의 도道이므로 성도聖道라 하며 여기에 여덟 가지 법문이 있습니다.
1 정견正見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四諦의 리理를 분명히 견見함을 운云하며, 팔정도의 주체입니다. 바른 견해, 바른 인생관, 바른 가치관이 정견입니다.
2 정사유正思惟 먼저 사제四諦의 이치를 분명히 알고, 더욱 사유주량思惟籌量하여 참다운 지혜를 늘리는 것입니다.
3 정어正語 참다운 지혜로써 구업口業을 닦는다는 말입니다. 일체 비리非理, 이치에 어긋나는, 이치가 아닌 말을 짓지 않음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4 정업正業 바른 지혜로써 몸의 일체 삿된 업을 다 없애고 청정한 신업身業에 머무름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몸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것, 몸으로 나쁜 업을 떠나는 것입니다.
5 정명正命 신구의身口意 삼업, 몸과 입, 뜻으로 짓는 이 삼업三業을 청정히 하여, 정법正法 즉 부처님의 참다운 진리에 따라서 생활을 하며, 삿된 생활을 떠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6 정정진正精進 참다운 지혜를 일으켜서 강인하게 꿋꿋하게 꺾임이 없이 열반의, 영생의 길을 닦는다는 말입니다.
7 정념正念 참다운 지혜로써 정도를 마음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8 정정正定 참다운 지혜로써 무루청정한 선정에 들어감을 말합니다. 무루청정한 수행은 원래 번뇌가 없고 본래 무 번뇌입니다. 본래 물질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부처님만 계시고 오직 마음만 있음을 보는 수행이 무루청정無漏淸淨한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행법이 많이 있으나 세 차원으로 나누어서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제법문四諦法門,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 육바라밀.
십이인연법은 우리 중생이 과거로부터 현재를 통해서 미래까지 나아가는 생사윤회를 간단히 풀이한 것입니다. 무명無明은 과거세에 헤매던 우리의 번뇌이고 식識은 어머님의 태 안에 막 들어올 때의 한 생각입니다. 무명과 행行은 과거에 해당하고,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 다섯은 현재에 해당합니다.
현재 애愛욕을 느끼고 다시 갖고 싶어 하는 취取와 있을 유有는 현재 짓는 우리의 업에 해당합니다. 이런 업에 따라서 미래에도 다시 태어나는 생生과 늙고 죽는 노사老死가 있습니다. 십이인연법이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서 깨달을 때에 몸소 하신 수행법이고, ‘과연 내 생명이 무엇인가?’ 하고 부처님께서 자기 생명의 근원을 탐구하신 법이기 때문입니다.
반야般若란 참된 지혜智慧입니다. 우리 인간이 축적한 지식이 아니라, 깨달아서 번뇌를 떠나 버린 성자의 참다운 마음에서 우러나온 지혜입니다. 반야심경 설법에서는 모든 것이 비어 있다, 공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어 있음, 공을 모르면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같은 위대한 도인들도 영생에 이르는 지혜를 닦을 때에 맨 먼저 정신과 물질이 다 비어 있음을 비춰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의 해탈에 이르는 반야지혜를 얻으려고 할 때는 나를 비롯해서 천지우주가 다 비어 있다는 것을 비춰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인생고人生苦의 생로병사나 일체의 고액을 다 면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색불이공色不異空, 물질이 마음과 다름이 없고, 마음이라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이니까 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불이색空不異色, 공이 물질과 다름이 없다. 물질이나 원자나 다 근본 요소는 결국은 다 마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이 별도로 있다는 잘못된 관념을 부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흔적도 없는 것인데, 다만 중생이 물질의 본질이 마음인 줄을 모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제법공상諸法空相, 모든 만법이 비어있는 상相,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유교 _중생 차원의 가르침. 그냥 있다 없다 하는 선악 인과를 따져서 하는 법문
둘째 공교 _일체 정신과 물질은 비어 있다
셋째 중도 _텅 비어 있는 그 가운데 일체 공덕을 다 갖추고 있음. 자비, 지혜, 행복, 기능技能
영생하는 상常과 행복이 다 갖추고 있는 락樂과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아我와 또는 조금도 번뇌가 없는 청정무구淸淨無垢한 그런 청정한 정淨, 상락아정常樂我淨이 불성 가운데, 텅 빈 마음 가운데 꽉 차 있으니 인생은 고苦라는 것과 인생의 참다운 목적은 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서 멸滅을 그리워하는 그런 마음으로 도를 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부처와 나와 둘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공부가 안 되고, 부처와 나, 모든 존재와 나, 우주와 나가 절대로 둘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우주의 부처님 도리의 근본 자리를 여의지 않고서 공부하는 게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문란한 행동을 취하면 멸滅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역시 철저한 도덕적 행동 밑에서 우리가 생활을 해야만 마음이 맑아 온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공空과 마음에 대해서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반 중생들한테 베푸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베풂이 본래 부처인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지는 나와 한마음이라는 상제님 말씀과 같이 우리의 본래 마음을 인식할 때 깨달음이 깊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들어가는 글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자신의 본래 모습 ‘진아眞我’를 찾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주의 가을이 오는 때로 인간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길이 크게 열렸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선천 종교의 핵심을 정확히 안다면, 상제님의 말씀이 더 깊은 깨달음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청화 스님은 우리가 깨닫는다는 것은 천지 우주와 자기가 결국 하나가 되는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은 진아를 깨닫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불교의 공과 마음, 사성제와 팔정도, 십이인연법, 반야심경 설법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프로필
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법호는 무주無住, 법명은 청화淸華.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대화상을 은사로 출가해 이후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종식一種食과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청정지계로 수행, 정진해 깨달음을 얻었다. 1985년 전남 곡성군 동리산 태안사에서 3년 결사를 시작으로 1995년까지 태안사를 중창 복원하여 구산선문 중 하나인 동리산문을 재건했다. 또한 미주 포교를 위해 카멜 삼보사, 팜스프링스 금강선원 등을 건립하여 3년 결사를 성만하고 조계종 원로의원, 곡성 성륜사 조실을 지냈다.2002년 5월 서울 도봉산 광륜사를 개원하고 2003년 음력 10월 19일 성륜사 조선당에서 열반에 들었다.
공과 마음
우리가 불교를 공부할 때에 가장 허무감을 느끼고 저항을 느끼는 점은 지극히 소중한 자기가 원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바탕에서 볼 때는 사실은 제법諸法이 공空으로서 존재성이 본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누구나가 다 꿈속에 있다고 합니다.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구분이 분명히 있지만 깨닫고 보니까 다 텅텅 비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법은 마음을 깨닫는 법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기껏해야 이 몸뚱이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마음의 근본성품根本性品은 한도 끝도 없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무량무변無量無邊한 생명 자체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본래로 헤아릴 수 없이 우주에 충만한 무량무변의 것인데 우리 마음은 제한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어리석은 마음이며 무명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란 허공 같은 것인데 다만 허공같이 텅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는 한량없는 성품 공덕이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면, 자비로운 면, 능력 있는 면, 어떤 면으로 보나 무한의 가능성 무한의 에너지가 거기에는 충만해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눈에 안 보이는 미시적인 소립자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미시적인 그런 것 속에도 한도 끝도 없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에너지, 우주의 기氣가 조그마한 눈곱만큼도 못한 것 가운데 가서 무시무시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도 역시 한량없는 힘이 다 들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의 근본 성품이 바로 불심입니다. 마음은 과거에 태어나지도 금생에 태어난 것도 아닌 것이고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처음도 끝도 없이 항시 존재하는 생명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정말로 조작도 되지 않고 조금도 흠도 없는 진실한 자리이기 때문에 진여眞如라고 부릅니다. 우리 중생들은 자기 몸을 자기로밖에는 모르는 정도인데 이것은 소아小我이고, 본래 참나는 우주에 충만해 있는 대아大我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가 바로 참나로서 참 진眞 자, 나 아我 자, 진아眞我입니다.
사성제
1 고제苦諦 삼계三界(욕계, 색계, 무색계) 육취六趣(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아수라도, 인간도, 천상도)의 고보苦報니 미迷의 과果입니다. 삼계육도, 삼계육취의 고보苦報란, 고의 과보를 결과로 받는, 하나의 보답으로서 받는 미혹迷惑의 과보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미혹의 결과입니다.
2 집제集諦 탐貪, 진嗔, 치痴 등의 번뇌와 선악의 제업諸業으로서 차이此二가 능히 삼계육취三界六趣의 고보苦報를 집기集起(결합하여 발생)하므로 미迷의 인因입니다. 탐심, 진심, 치심, 이런 번뇌가 있으면 자연히 이것이 우리 몸이나 입이나 뜻으로 발동할 때는 업業이 되는데, 삼독심三毒心에서 우러나온 여러 가지 선악의 업이 인간의 여러 가지 번뇌나 고생의 원인인데 이것이 집集입니다.
3 멸제滅諦 열반涅槃을 뜻하며 열반을 풀이하면 영생永生입니다. 사제四諦를 풀이할 때에 멸제는 그냥 번뇌만 멸한다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체 공덕을 갖춘 영생, 영생의 지혜, 영생의 생명입니다.
4 도제道諦 팔정도八正道로서 능能히 열반涅槃에 통通하는 도道이니 오悟의 인因입니다. 도제는 능히 열반에 통하므로 ‘도’라 이름하며 바로 깨달음의 원인이라는 뜻입니다.
* 불교에서 가장 가치 있고 귀중하게 여기는 세 가지 보배가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 삼보三寶인데 법보法寶에 사제四諦, 팔정도八正道,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 육바라밀六波羅蜜이 있습니다. 사제四諦를 사성제四聖諦, 사진제四眞諦라고도 하며, 성자聖者 소견所見의 진리성자가 보는 바의 진리라고 합니다.
*고苦라는 과果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原因이 있는데 원인을 집集이라 하고, 고를 떠나서 영생하는 행복이 있는데 영원히 안락한 행복 이것이 멸滅입니다. 멸滅에 이르는 영생의 극락, 영생의 행복에 이르는 방법 수단, 이것이 도道입니다. 도는 삼학도三學道 계戒, 정定, 혜慧이고, 삼학도를 더 부연시키면 팔정도八正道입니다.
*고苦라는 과果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原因이 있는데 원인을 집集이라 하고, 고를 떠나서 영생하는 행복이 있는데 영원히 안락한 행복 이것이 멸滅입니다. 멸滅에 이르는 영생의 극락, 영생의 행복에 이르는 방법 수단, 이것이 도道입니다. 도는 삼학도三學道 계戒, 정定, 혜慧이고, 삼학도를 더 부연시키면 팔정도八正道입니다.
팔정도八正道
‘정正은 성聖이다. 기도편사其道偏邪를 리離하므로 정도正道라 운云하고, 또한 성자聖者의 도道이므로 성도聖道라 한다.’
- 치우치고 삿됨을 떠나므로 정도라 하고, 또한 성자聖者의 도道이므로 성도聖道라 하며 여기에 여덟 가지 법문이 있습니다.
1 정견正見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四諦의 리理를 분명히 견見함을 운云하며, 팔정도의 주체입니다. 바른 견해, 바른 인생관, 바른 가치관이 정견입니다.
2 정사유正思惟 먼저 사제四諦의 이치를 분명히 알고, 더욱 사유주량思惟籌量하여 참다운 지혜를 늘리는 것입니다.
3 정어正語 참다운 지혜로써 구업口業을 닦는다는 말입니다. 일체 비리非理, 이치에 어긋나는, 이치가 아닌 말을 짓지 않음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4 정업正業 바른 지혜로써 몸의 일체 삿된 업을 다 없애고 청정한 신업身業에 머무름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몸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것, 몸으로 나쁜 업을 떠나는 것입니다.
5 정명正命 신구의身口意 삼업, 몸과 입, 뜻으로 짓는 이 삼업三業을 청정히 하여, 정법正法 즉 부처님의 참다운 진리에 따라서 생활을 하며, 삿된 생활을 떠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6 정정진正精進 참다운 지혜를 일으켜서 강인하게 꿋꿋하게 꺾임이 없이 열반의, 영생의 길을 닦는다는 말입니다.
7 정념正念 참다운 지혜로써 정도를 마음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8 정정正定 참다운 지혜로써 무루청정한 선정에 들어감을 말합니다. 무루청정한 수행은 원래 번뇌가 없고 본래 무 번뇌입니다. 본래 물질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부처님만 계시고 오직 마음만 있음을 보는 수행이 무루청정無漏淸淨한 수행입니다.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행법이 많이 있으나 세 차원으로 나누어서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제법문四諦法門,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 육바라밀.
*십이인연법: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십이인연법은 우리 중생이 과거로부터 현재를 통해서 미래까지 나아가는 생사윤회를 간단히 풀이한 것입니다. 무명無明은 과거세에 헤매던 우리의 번뇌이고 식識은 어머님의 태 안에 막 들어올 때의 한 생각입니다. 무명과 행行은 과거에 해당하고,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 다섯은 현재에 해당합니다.
현재 애愛욕을 느끼고 다시 갖고 싶어 하는 취取와 있을 유有는 현재 짓는 우리의 업에 해당합니다. 이런 업에 따라서 미래에도 다시 태어나는 생生과 늙고 죽는 노사老死가 있습니다. 십이인연법이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서 깨달을 때에 몸소 하신 수행법이고, ‘과연 내 생명이 무엇인가?’ 하고 부처님께서 자기 생명의 근원을 탐구하신 법이기 때문입니다.
반야심경 설법
반야般若란 참된 지혜智慧입니다. 우리 인간이 축적한 지식이 아니라, 깨달아서 번뇌를 떠나 버린 성자의 참다운 마음에서 우러나온 지혜입니다. 반야심경 설법에서는 모든 것이 비어 있다, 공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어 있음, 공을 모르면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같은 위대한 도인들도 영생에 이르는 지혜를 닦을 때에 맨 먼저 정신과 물질이 다 비어 있음을 비춰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의 해탈에 이르는 반야지혜를 얻으려고 할 때는 나를 비롯해서 천지우주가 다 비어 있다는 것을 비춰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인생고人生苦의 생로병사나 일체의 고액을 다 면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 관세음보살: 우리 중생을 구제救濟한다는 자비로운 보살. 거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체만유一切萬有를 다 알아서 일체 모든 것을 다 알고 생사를 초월할 수 있는 지혜를 알아 가지고서 일반 중생을 영원의 저 언덕으로 인도하는 보살.
색불이공色不異空, 물질이 마음과 다름이 없고, 마음이라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이니까 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불이색空不異色, 공이 물질과 다름이 없다. 물질이나 원자나 다 근본 요소는 결국은 다 마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이 별도로 있다는 잘못된 관념을 부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흔적도 없는 것인데, 다만 중생이 물질의 본질이 마음인 줄을 모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제법공상諸法空相, 모든 만법이 비어있는 상相,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유교 _중생 차원의 가르침. 그냥 있다 없다 하는 선악 인과를 따져서 하는 법문
둘째 공교 _일체 정신과 물질은 비어 있다
셋째 중도 _텅 비어 있는 그 가운데 일체 공덕을 다 갖추고 있음. 자비, 지혜, 행복, 기능技能
영생하는 상常과 행복이 다 갖추고 있는 락樂과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아我와 또는 조금도 번뇌가 없는 청정무구淸淨無垢한 그런 청정한 정淨, 상락아정常樂我淨이 불성 가운데, 텅 빈 마음 가운데 꽉 차 있으니 인생은 고苦라는 것과 인생의 참다운 목적은 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서 멸滅을 그리워하는 그런 마음으로 도를 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론
우리 마음이 부처와 나와 둘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공부가 안 되고, 부처와 나, 모든 존재와 나, 우주와 나가 절대로 둘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우주의 부처님 도리의 근본 자리를 여의지 않고서 공부하는 게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문란한 행동을 취하면 멸滅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역시 철저한 도덕적 행동 밑에서 우리가 생활을 해야만 마음이 맑아 온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공空과 마음에 대해서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반 중생들한테 베푸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베풂이 본래 부처인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지는 나와 한마음이라는 상제님 말씀과 같이 우리의 본래 마음을 인식할 때 깨달음이 깊어진다고 생각합니다.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