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무극대도 | 후천선경의 아이콘Icon
[기고]
주역 11번째, 지천태괘地天泰卦
한태일 (인천구월도장, 녹사장)
세상에는 존재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그중 상제님의 진리를 중심으로 문화 체계와 상징들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것은 바른 신앙생활의 유지 및 강화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본고에서는 주역 지천태괘에 대해 진리적 시각에서 접근한 도생의 글을 소개한다.
선후천의 상징괘, 천지비와 지천태
* 선천은 천지비天地否요, 후천은 지천태地天泰니라. 선천에는 하늘만 높이고 땅은 높이지 않았으니 이는 지덕地德이 큰 것을 모름이라. (道典 2:51:1~2)
선천 세상은 양陽이 음陰보다 하나 더 많은 삼양이음三陽二陰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음양 짝이 틀려 상극의 이치가 지배해 왔습니다. 그 결과 천지에서 하늘만 받드는 천존의 시대가 되었으며, 인간 사회 역시 남성 중심의 남존여비男尊女卑 세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축조차 비뚤어진 이 같은 선천의 하늘 아래에서 사는 인간이 만들어 낸 낡은 관념과 묵은 정신을 한마디로 상제님께서는 ‘묵은하늘’이라고 천명하셨습니다. 묵은하늘에서 투사하는 상극의 살기는 온 천하를 원한의 불덩어리로 만들어 버렸으며 사람들 간의 소통을 가로막는 불통의 세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선천세상의 상극 정신을 괘로 표현한 것이 바로 천지비괘天地否卦(䷋)입니다. 괘의 형상이 보여 주듯 위에 있는 하늘은 위로만 올라가려 하고, 아래 있는 땅은 그저 밑에만 있으려 하므로 하늘과 땅이 교류와 소통이 되지 않아 꽉 막혀 있는 비괘否卦가 됩니다. 비괘는 “음양이 불통하고 조화되지 않는 상으로 곧 선천 시대의 음양의 부조화와 상극 관계를 상징하는 괘”라고 종도사님께서 정의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지천태地天泰(䷊)괘는 천지비괘와 반대입니다. 위에는 땅(☷)이 있고 아래에는 하늘(☰)이 있어 서로 통通하고 있는 형상입니다.
왜 지地와 천天이 서로 통泰한다고 했을까요?
원래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는 것이 정상인데 아래 있는 땅이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는 하늘이 아래로 내려온다면 자연스레 하늘기운은 내려오고 마찬가지로 땅기운은 올라가 서로 사귀어 통하게 됨으로써 소통하고 교통한다는 지천태괘가 됩니다.
지천태괘와 같이 아래의 뜻이 막힘이 없이 위로 올라가고, 또 위의 뜻이 왜곡 없이 아래로 내려와야 상하 간에 소통이 잘되는 태평한 세상이 되겠지요.
선천 세상의 상극 기운으로 억압받아 온 뭇 여성들의 원과 한을 비롯하여 묵은하늘의 폐습을 개벽장 하느님이신 상제님의 천지공사로 지천태의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 내가 이제 후천을 개벽하고 상생의 운을 열어 선善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리라. 만국이 상생하고 남녀가 상생하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화합하고 분수에 따라 자기의 도리에 충실하여 모든 덕이 근원으로 돌아가리니 대인대의大仁大義의 세상이니라. (2:18:3~5)
그리고 지천태괘가 주역 64괘 중에서 ‘11번째’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일’은 ‘십일성도十一成道’, 즉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이신 상제님[10무극]과 인사 대권자[1태극]의 합덕으로 진정한 심통心通이 가능한 후천선경의 태평한 세상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참성단과 지천태
강화도에 있는 마리산은 예로부터 머리를 뜻하는 마리산摩利山 혹은 모든 산의 머리라는 뜻의 두악頭嶽으로 불러 왔습니다.
마리산의 정상에 자리 잡은 제천단인 참성단塹星壇은 위는 네모나게[上方] 돌로 단을 쌓고, 아래는 둥글게[下圓] 담을 쌓은 상방하원上方下圓 형태의 천단으로 우리 고유의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참성단의 축성 기법이 바로 지천태 괘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참성단은 위에는 땅[上地, ☷]을 상징하여 네모난[方] 제단을 두고 아래에는 하늘[下天, ☰]을 상징하여 둥글게[圓] 담을 쌓았는데, 이것이 바로 지천태괘(䷊)의 모습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늘의 광명[桓]이 아래로 내려와 땅의 광명[檀]이 되어 천지의 광명과 하나 된 인간[太一], 즉 천지의 뜻과 이상을 실현하는 천지보다 더 큰 광명의 존재로 인식한 것이 바로 ‘태일太一’입니다.
이 같은 태일이 추구하는 세상이 바로 지천태가 추구하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군왕검이 참성단을 축성할 때 우리의 신교神敎 정신이 자연스레 담겨진 결과입니다. 지천태의 태泰 자에 있는 ‘三’은 천지인으로서 인간이 천지와 하나 되어 천지의 광명을 체득해 천지와 하나 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지천태의 세상이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삼성조 시대인 환국, 배달, 그리고 단군조선 시대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의 화두는 소통입니다. 세상에 분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불상사라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부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사회에서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에 소통이 원활치 못하며, 국민과 정치권이 불통하며, 국가와 국가 간에 반목이 팽배한 것은 서로 간에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긴 것입니다.
* 피차 마음을 알아야 인화人和 극락 아닐쏘냐. 마음 닦는 공부이니 심통心通 공부 어서 하라. (11:250:9~10)
그럼 지천태괘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태괘를 총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괘사를 보면,
태괘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여 형통하느니라
泰(태)는 小往(소왕)코 大來(대래)하니 吉(길)하여 亨하니라
泰(태)는 小往(소왕)코 大來(대래)하니 吉(길)하여 亨하니라
지천태괘의 괘상(䷊)을 보면 상괘(☷)는 모두 음효[소인小人]로 바깥으로 물러나 있으며, 하괘(☰)는 모두 양효[군자君子]로 안에서 다스리고 있으니 태평한 세상이 되어 길하고 형통하다는 것입니다.
즉 양陽인 하늘을 상징하는 군자는 현실 정치에서 실권을 잡아 제대로 다스리고 있으며, 음陰인 땅으로 상징되는 소인배들은 바깥으로 쫓겨나 있는 형상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군왕이 높은 데서 군림하지 않고 백성들의 삶 속으로 내려와 백성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니 그야말로 태평한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통하듯 즉 상하가 사귀어서 그 뜻이 같아지며 안으로는 군자의 도가 강건하고, 밖으로는 소인의 도가 유순해지니 군자의 도는 커나가고 소인의 도는 사라지느니라.
彖曰(단왈) 則是天地交而萬物(즉시천지교이만물)이 通也(통야)며 上下(상하) 交而其志 同也(교이기지동야)라.
內陽而外陰(내양이외음)하며 內健而外順(내건이외순)하며
內君子而外小人(내군자이외소인)하니 君子道(군자도) 長(장)하고 小人道(소인도) 消也(소야)라
彖曰(단왈) 則是天地交而萬物(즉시천지교이만물)이 通也(통야)며 上下(상하) 交而其志 同也(교이기지동야)라.
內陽而外陰(내양이외음)하며 內健而外順(내건이외순)하며
內君子而外小人(내군자이외소인)하니 君子道(군자도) 長(장)하고 小人道(소인도) 消也(소야)라
지금과 같은 불통의 시대는 서로 막혀 있는 천지비 세상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후천 시대는 도성덕립道成德立하여 누구나 심통心通하는 지천태 세상입니다.
선천은 상극의 세상으로 힘 있는 자들이 판치며 소인들이 득세하는 죄로 먹고사는 시대였으나, 다가오는 후천은 성인의 시대로 선으로 먹고살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선천에는 위무威武로써 승부를 삼아 부귀와 영화를 이 길에서 구하였나니, 내가 이제 후천을 개벽하고 상생의 운을 열어 선善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리라. 선천 영웅시대에는 죄로 먹고살았으나 후천 성인시대에는 선으로 먹고살리니 죄로 먹고사는 것이 장구하랴, 선으로 먹고사는 사는 것이 장구하랴. 이제 후천 중생으로 하여금 선으로 먹고살 도수度數를 짜 놓았노라. (2:18:2,3,6~8)
또한 선천의 천지비괘상과 후천의 지천태괘상은 팔괘도로도 알 수 있습니다. 선천역先天易을 나타낸 ‘복희팔괘도’를 보면 남북축은 하늘인 건괘乾卦가 위에 있고, 땅인 곤괘坤卦는 아래에 위치해 있어 ‘천지비괘상(䷋)’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후천역後天易을 나타낸 김일부 대성사의 ‘정역팔괘도’의 남북축은 땅인 곤괘가 위에 있고 하늘인 건괘는 아래에 있는 ‘지천태괘상(䷊)’의 형상입니다.
그리고 지천태괘의 핵심은 ‘천지의 사귐’이라는 것이 대상전에 나와 있는데요.
주역 대상전에는 대부분 군자를 내세우고 있습니다만, 64괘 중에서 ‘후后’를 쓴 것은 44번째 괘인 천풍구天風姤괘와 지천태괘가 유일합니다. 여기서 후는 남자 왕보다는 임금의 정비正妃인 ‘왕후王后’나 ‘여왕女王’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태괘泰卦는 후천을 상징하는 키워드Key word이며 땅이 하늘보다 위에 있는 여성 상위 괘로 후천의 곤도坤道를 나타내므로 남자 왕이 아닌 여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를 도운의 인사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우리 일은 여자女子 성씨姓氏가 나와 상제님의 도운을 새로 개척한다(6:74:6 측주)’라는 부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경복궁 교태전의 유래
서울 경복궁이나 북경에 있는 자금성에 가보면 왕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이 있습니다. 교태전이란 전각의 이름이 바로 지천태괘 『대상전』에서 따온 것입니다.
대상전에 이르길 ‘하늘과 땅의 사귐[交]이 태[泰]’니 왕후가 이를 본받아 천지의 도를 재단하여 이루고 천지의 마땅함을 도와서 백성들을 좌우로 돕느니라
象曰(상왈) 天地交(천지교) 泰(태)니 后(후) 以(이)하여 財成天地之道(재성천지지도)하며 輔相天地之宜(보상천지지의)하여 以左右民(이좌우민)하느니라
象曰(상왈) 天地交(천지교) 泰(태)니 后(후) 以(이)하여 財成天地之道(재성천지지도)하며 輔相天地之宜(보상천지지의)하여 以左右民(이좌우민)하느니라
교태전交泰殿은 ‘천지의 사귐[交]으로 크게 통한다[泰]’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하늘[王]과 땅[王妃]의 두 음양기운이 교합하므로 만물이 생겨나 번성하듯이 왕과 왕비의 화합으로 왕실의 종묘사직 또한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지은 것입니다.
이렇게 천지가 사귀어 크게 통하는 것을 본받아 천지의 뜻을 인간 세상에 펼치는 군왕 또한 천지 운행의 법칙을 터득하여 천하 사람들을 위해 정치를 펼치라는 것입니다. 아주 먼 옛날 요순 시대에는 나라님이 천문을 관측하여 절기에 맞게 농사지을 수 있도록 백성들에게 책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농사짓는 절기와 책력은 임금만이 가질 수 있는 권한이자 의무였던 것입니다.
앞으로 우주 가을개벽 시대를 맞이할 후천에는 일 년 360일 정역正曆 시대에 맞게 새로운 책력이 쓰일 것입니다.
그럼 지천태괘의 주요 효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내괘에서 중中을 득하고 있는 구이효九二爻를 보면
구이는 거친 것을 싸며 맨발로 강을 건너며 멀리 있는 것을 버리지 아니하며 붕당을 없애 버려야 중도中道를 행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모든 것을 얻으리라
九二(구이)는 包荒(포황)하며 用憑河(용빙하)하며 不遐遺(불하유)하며 朋亡(붕망)하면 得尙于中行(득상우중행)하리라
九二(구이)는 包荒(포황)하며 用憑河(용빙하)하며 不遐遺(불하유)하며 朋亡(붕망)하면 得尙于中行(득상우중행)하리라
구이九二자리는 육효 중에서 계층으로 볼 때 선비 혹은 하급 지방 관리 자리입니다. 구이는 비록 음陰 자리에 있지만 강건한 양陽이고 내괘에서 중中을 얻어서 육오 군왕을 도와 태평한 세상을 건설하는 역군입니다. 가을개벽의 실제 상황에서는 천지사업을 집행하는 핵심 일꾼(태을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네 가지 정치하는 법도는 주공周公이 언급한 것이지만 상제님의 천하사 일꾼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첫째 ‘포황包荒’은 버려진 황무지든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이든 간에 잘 경작해서 굶주린 민생에 기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천하사로 말하자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 내서 후천세상에 함께 넘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천하창생의 생사生死가 다만 너희들 손에 매여 있느니라. (8:21:3)
이 『도전』 성구들은 그러한 효사의 의미와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빙하憑河’란 『논어』에도 나오는 말로 ‘포호빙하暴虎馮河’, 즉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배도 안 탄 채 맨발로 강을 건널 수 있을 만큼의 강단 있는 추진력을 말합니다. 광구천하匡救天下를 하다 보면 험난한 역경과 고통스런 가시밭길을 건널 때도 있겠지만 천지 일꾼이라면 능히 극복해야 합니다.
* 일을 하려면 화지진火地晉도 해야 하느니라. (5:234:4)
주공周公과 일심 일꾼
셋째 ‘불하유不遐遺’란 저 멀리 두메산골 오지에 살고 있는 백성이라도 능력이 있다면 나라의 동량으로 적재적소에 쓰라는 말입니다. 광구천하의 대업을 실현하려면 상제님 천지사업의 큰 일꾼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송죽같이 한결같은 일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 썩지도 않고 불로도 못 태우고 벼락이라도 못 때릴 터이니 부디 영구장생永久長生하는 도심주道心柱를 잘 가지라. (8:51:9)
이 대목에서 천하사 일꾼들이 가슴에 새길 만한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주공周公과 관련 있는 ‘악발토포握髮吐哺’라는 말입니다.
이 고사성어는 큰 인재를 구하고자 하는 주공 단旦의 강렬한 일심을 표현한 것으로, 나라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능력 있는 인재들을 모으는 데 남달랐던 그의 면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공은 인재가 찾아오면 ‘머리를 한 번 감을 때에 세 번씩이나 감고 있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물을 뚝뚝 흘리면서 손님을 맞으러 나갔으며(一沐三握髮)’, 또 ‘한 끼 밥을 먹는 동안에 세 번씩이나 입안에 씹고 있던 밥을 뱉으며(一飯三吐哺)’ 천하의 인재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 정성을 다해 현인들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 참사람이 어디 있느냐. 참사람을 만나야 하리니 춘하추동 사시절에 일시라도 변치 말고 성경신 석 자로 닦으면서 진심으로 고대하면 참사람을 만나리라. (11:277:3~4)
그리고 넷째로 ‘붕망朋亡’이란 말 그대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붕당朋黨, 즉 특정 집단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벌 정치를 없애야 백성들이 살맛 나는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도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제님의 종통을 계승한 고수부님을 부정하거나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종통 및 역사를 왜곡·날조하는 등 난법을 지어 무리를 획책하는 훼도자들에게 상제님께서는 엄중한 경계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 내 도道에 없는 법으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난법난도亂法亂道하는 자는 이후에 날 볼 낯이 없으리라. (8:13:2)
다음은 구삼효九三爻를 보겠습니다.
[#구삼은 비탈지지 않은 평평함은 없으며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으니 어렵더라도 바르게 하면 허물이 없으니 근심하지 않아도 미더운지라. 먹는 데 복이 있으리라.
상왈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천지의 사귐이라
九三(구삼)은 无平不陂(무평불피)며 无往不復(무왕불복)이니 艱貞(간정)이면 无咎(무구)하여 勿恤(물휼)이라도 其孚(기부)라
于食(우식)에 有福(유복)하리라
象曰(상왈) 无往不復(무왕불복)은 天地際也(천지제야)라#}
세상 이치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세상사가 평범해 보여도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굴곡이 있게 마련입니다.
현재는 소인배들이 물러갔다고 좋아하겠지만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无平不陂]. 소인배들이 돌아올 걸 대비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 이치란 돌고 도는 것이니까요[无往不復].
특히 구삼효는 큰 틀로 보면 동양의 우주 순환 원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천지의 사귐’이라는 소상전의 이 말은 낮과 밤으로 변화하는 하루의 순환, 춘하추동으로 변화하는 일 년의 순환 등 자연이법이 모두 순환의 법칙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시간의 법칙인 인간농사 짓는 우주일년조차 순환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 천지개벽도 음양陰陽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2:20:4)
그리고 구삼은 내괘[先天]에서 외괘[後天]로 넘어가는 자리이므로 선후천론으로 고찰해 볼 수도 있습니다. 우주 봄·여름의 선천에는 상극이 지배하는 틀 속에서 비록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다 할지라도[艱貞], 죄짓지 않고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지 말아야[无咎] 선후천 교체기를 잘 넘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선천 상극 세상에서 후천 상생 세상으로 바뀌는 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이법으로 오는 것이며[勿恤], 때가 되면 철이 바뀌듯 자연스레 천지의 계절이 바뀌면서 가을개벽은 찾아온다는 것[其孚]을 말하고 있습니다.
후천 가을개벽의 선경세계는 선천세상처럼 약육강식이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선善으로 먹고사는 세상이니 누구나 천복天福을 누리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 후천에는 만국이 화평하여 백성들이 모두 원통과 한恨과 상극이 (중략) 그치므로 웃는 얼굴에 화기和氣가 무르녹고 (중략) 빈부의 차별이 철폐되며,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이 바라는 대로 빼닫이 칸에 나타나며 (7: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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