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꽃을 피게 해 준 진리 외(황근옥, 신춘화, 이용호, 류태진, 박희야)
[입도수기]
내 인생의 꽃을 피게 해 준 진리
황근옥(여, 62) / 청주흥덕도장 / 148년 음력 2월 입도
저는 강원도 원성군 소초면이라는 동네에서 9살까지 살았습니다. 그때는 5남매가 한집에 살았는데 남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귀가 아파서 고쳐 보느라 있는 땅을 다 팔았던 탓에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7살 때에는 제가 물에 떠내려가 이틀 만에 찾았는데 죽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해가 지면 공동묘지에다 묻으려고 저의 시신을 멍석에 둘둘 말아서 지게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담배를 한 대 말아 피우면서 넋두리를 하며 한숨을 쉬고 있다가 지게 위에서 물이 떨어지는 걸 보고 깜짝 놀라셨답니다. 얼른 안아서 풀어 놓으니 제 입에서 뿌연 물이 흘러나오므로 배를 꾹꾹 눌렀더니 ‘후~’ 하고 한숨을 쉬더래요. 제가 그렇게 다시 살아났는데 그때의 후유증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몸은 약해져 갔습니다. 입에서 피가 나오니 전염성 결핵인 줄 알고 동네에서 흉흉한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락방에 가두어져 1년 동안을 살았습니다.
9살 되던 해 가을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등잔불을 켜고 살았는데, 다락방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어느 날 저녁 다락 문 사이로 아버지, 어머니께서 심각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 근옥이, 이젠 공동묘지에 갖다 버립시다. 다른 식구도 살아야 하잖아요.” 엄마의 말씀이셨습니다. 저는 9살 어린 나이에 감당이 안되어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이튿날 저녁 엄마에게 업혀서 산으로 향하는데, 엄마의 등을 통해 울먹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당시 어린 나도 마음이 아팠는데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가슴이 메어졌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저를 묘지 앞에 내려놓으면서 “이따가 데리러 올게” 하시고 가셨는데, 때가 되어도 오시지 않는 엄마가 무척 미웠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자꾸 가는데 너무너무 무서웠습니다. 작은 들짐승들이 여기저기 내달리며 엉덩이, 발뒤꿈치 등을 물었고 살이 아픈지 안 아픈지, 통증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감각이 사라져 갔습니다. 제 몸은 묘지에 엎어져 있었는데 힘이 없어 움직일 수 없었고 멀리 보이던 마을의 모습이 노랗게 변하면서 의식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또 죽었습니다.
제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른 세상에 와 있었습니다. 보름 만에 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몸이 아프니 버려진 겁니다. 머리는 빡빡 깍은 채였고 온몸에는 시퍼런 주사 자국에 너무 말라서 제가 생각해도 산송장 그 자체였습니다. 공동묘지에 성묘하러 왔던 어떤 아주머니에 의해 구해지고 병원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병원 생활 3년 이후 11살 가을쯤 됐을 무렵 퇴원을 해서 저를 구해 주신 아줌마 집으로 가서 한 8개월 정도 있다가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심부름이나 아이들 방 청소, 빨래 등의 일을 닥치는 대로 다 했습니다. 세월은 흘러 16살이 됐는데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애기들 보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니까 그때부터 그냥 쓰러지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지금도 잘 쓰러지곤 합니다. 하도 힘들어서 부모 형제들이 보고 싶어 남몰래 많이도 울었습니다. 하도 사는 것이 벅차서 도망을 갔다가 다시 붙잡혀 많이도 맞았습니다. 19살이 되니까 머리가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16살에 화상을 입었을 때 언니들이 쓰다 버린 공책과 몽당연필을 주워서 쓰고 지우고를 반복해 가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한글을 터득했습니다.
19살에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도망간 곳이 경북 안동이었습니다. 안동에 처음 갔을 때에는 배도 고프고 사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낙동강에 가서 죽으려고 몇 번 시도를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좋은 언니들을 만났고 어린 시절은 잊고 열심히 일도 하면서 활기차게 살았습니다. 안동에서 보낸 세월은 제 삶에 있어 제일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23살 되던 해에 언니들을 따라서 충남 아산군 둔포면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첫 남편을 만났는데 제 주민등록증이 없었습니다. 호적이 무엇인지 주민등록증이 뭔지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사방팔방으로 부모 형제들을 찾으려고 노력한 지 7~8년 만에 가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먹서먹하게 만나고 보니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엄마는 막내 하나 데리고 가난하게 사시고, 언니와 동생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몰랐는데 언니만 횡성에 살고 있다는 소식에 찾아갔더니 아이 하나를 낳고 결혼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호적을 만들고 주민증을 만들고 해서 결혼을 하여 아이 둘을 낳았지만 너무너무 무시를 당하며 살다가 큰아이가 7살 때 이혼을 하였습니다. 몇 년이 흘러 재혼을 했지만 처음보다 삶이 더 힘들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며 20억 이상의 돈을 벌기도 하였으나 가정적으로는 아주 더 많이 무섭고 힘든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결국 무일푼이 되어 이젠 정말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밧줄을 준비해 배낭에 넣고 집에서 나와 어느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무에 줄을 걸려고 하면 안 되고 던지려 해도 안 되고 정말 죽어야겠다고 그러는데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마음대로 안됐습니다. 저에게는 가슴으로 낳은 딸 하나 제가 낳은 아들 하나가 있는데, 그 딸이 시집을 가서 아이도 낳고 사위도 얻고 큰 딸 33살, 작은 아들 25살이 됐습니다. 딸은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2002년에 세상을 하직하겠다고 집을 나와 산으로 들어가서 4년 있다가 청주로 올라왔는데 막막했습니다. 식당도 다니고 시장에서 파도 까서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었지만 병원에 갖다 주기 바빴습니다. 의료보험을 만들려고 동사무소에 갔더니 제가 집을 나온 그 이튿날 주민증이 말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작년 11월 말경에 청주 육거리 시장에서 철학관 아르바이트를 하는 박경용 도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몸이 아픈가? 인생이 괴로운가?’ 하는 것을 상담하다가 상제님 진리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15년 전 계룡산에서 알게 된 태을주와 『증산도 기본교리』 책자도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가까운 지인과 함께 도장에 방문하여 수행과 진리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MP3에 저장된 노래 6천 곡을 모두 지우고 종도사님 태을주 도공을 저장하였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청수를 모시며 24시간 태을주 도공을 틀어 놓고 따라 읽고 있습니다.
둘째 날 태을주 수행을 하면서 아픈 무릎이 좋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건강이 매우 좋지 못하기에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우주 1년, 태을주 수행, 기본교리 책을 공부하는데, 병원 치료(간경화로 복수가 차고, 신장과 척추 질환으로 병원 처치)를 받으면 2~3일 동안은 움직이기도 힘들었습니다. 2018년 3월 16일 온 포정님과 박 도생님이 저의 집에 오시어 제물치성을 올리고 가정 기도를 해 주시던 날, 태을주를 한참 읽다 보니 가슴과 손발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태을주 도공 신유)를 하는데 머리 뚜껑이 열리면서 그 불길이 머리로 들어와 발바닥으로 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물이 나면서 몸이 너무 뜨거워 견디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가정치성을 하던 날 새벽 꿈에 하얀 한복을 입으신 분이 깨끗한 리어카에 흰 보자기로 무언가를 싸 가지고 저에게 오셨습니다. 나이는 85세로 보였고 얼굴 피부는 30대 초반처럼 깨끗한 얼굴이었습니다. 흰 보자기의 물건을 저에게 주시면서 다정하게 “아가! 열심히 공부하거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집에 돌아오면 한 글자 한 글자 한문도 배웁니다. 온 포정님도 한문을 아낌없이 가르쳐 주십니다. 제 이름도 한문으로 쓸 생각조차도 못 했는데, 이젠 잘은 못 써도 쓰기는 합니다. 노트에다 우주 1년, 주문지의 주문과 서전서문까지 사경을 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한 일도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저하고 이야기도 안 하고 말대꾸도 안 해 주는데, 매일 혼자라고 어린 시절부터 생각하고 살았던 저에게 어른들께서 먼저 와 주시는 겁니다. “막내야 넌 어쩜 그렇게 어른들한테 잘하냐?” 하시며 예뻐해 주십니다. 복지교실에 가면 어른들께서 저를 기다리십니다. 자리까지 맡아 놓으시고 할머님들께서 저를 사랑해 주시어 모든 일, 모든 것이 행복합니다.
가정치성 다음 날에는 주변에 살고 있는 할머니 세 분이 저희 집에 오시더니 가정신단에 절을 하고 성금 만 원씩을 놓고 가셨습니다. 그 돈을 더하여 3월 22일에 다시 제물치성을 모시고 수행과 도공 신유를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양 손바닥부터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 그 기운이 가슴으로 오면서 가슴에 불이 나고 눈물이 나오면서 가슴이 뚫리게 되었습니다. 눈을 감고 태을주를 읽고 있는데 한복을 곱게 입은 30대 후반 나이의 매우 예쁘고 아름다운 여인이 웃는 표정으로 저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라서 저도 황홀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후 몸이 많이 좋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생활에 활기도 생겼습니다. 이젠 혼자가 아닌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집에 올 때마다 가정신단의 상제님, 태모님, 조상님께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할 수가 있습니다. 병원 다니는 것도 중단해 가고 있고 먹는 약도 줄이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이 듭니다. 증산도를 접하고 나서 저에게도 꽃이 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상제님 진리와 태을주 수행으로 거듭 태어나 ‘알캥이 열매’로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진리 공부도 열심히 하고 주문도 열심히 읽고 전도도 열심히 하는 증산도 일꾼이 되겠습니다. 저는 일도 잘하고 성격도 활달하고 사람을 몰고 다니는 기운이 있습니다. 일꾼의 수칙을 잘 지키고 진리를 전하여 육임도 짜고 싶습니다. 참하나님 진리를 만나 입도하게 돼서 너무나 영광스럽고 감사드립니다. 주위에 계신 분들도 저처럼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고 『도전』과 <월간개벽>을 많이 좀 봐 주셨으면 좋겠네요. 너무 좋은 말씀이 많아요. 보은!! ◎
인생의 등불이 된 증산도
신춘화(여, 47) / 의정부도장 / 148년 음력 3월 입도
저는 특별한 종교가 없이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세상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진지하게 바라보고 인생의 깊은 의문들을 곰곰 생각해 보고 책도 읽어 보고 하면서 관심을 갖는 편이었고 대학을 철학과를 가게 되면서 세상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일찍 결혼도 하고 세상살이에 바빠서 인간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결혼 후 남편은 젊은 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오던 천주교 신앙을 시작했고 저도 자연적으로 남편을 따라서 성당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천주교 진리나 신앙이 왠지 가슴속에 크게 와닿지는 않았고 남편을 따라 그저 성당만 다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0여 년 전쯤인데 의정부에 있는 저의 부동산 사무실에 증산도 신앙을 하시던 한복철 포정님이 집을 구하러 오셔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이 끝날 무렵 한 포정님은 증산도의 진리에 대해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개벽과 더불어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하시면서 그러한 변화가 올 수밖에 없는 이치를 말씀하시는데 참 명쾌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한 포정님은 저의 사무실에 가끔 방문을 하셨는데 한번은 『개벽 실제상황』 책을 가지고 오셔서 설명을 해 주셨고 저는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생활이 바쁘고 하다 보니 책을 읽지는 못하였고 한 포정님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증산도 진리는 잊혀졌습니다. 포정님께서 간간이 문자를 보내 주셨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렀습니다. 거의 10년이 지났는데 부동산 사무실을 옮기면서 간판을 새로 달게 되었습니다. 이때 간판을 달아 주셨던 사장님이 증산도 신앙을 하는 함상섭 도생님이었습니다. 마침 함 도생님의 광고 사무실이 저의 사무실 바로 옆이라 함 도생님께서 자주 저의 사무실에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 즈음에 저는 시아버지와 시동생의 장례를 치렀고 그 이전부터 있었던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물음에 답해 줄 책들이나 명리학 공부를 해 보고 싶은 생각들도 하고 있던 중이라 함 도생님이 전해 주시는 증산도의 진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궁금하게 생각하던 것들도 많이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증산도 진리가 폭넓고 근원적이며 참 명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증산도 공부를 제대로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올 1월에 함 도생님과 함께 의정부도장을 방문하였고 그날로부터 수호사님과 진리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더불어 10년 전에 사 놓았던 『개벽 실제상황』 책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내면에서 진리에 대한 욕구가 강했었는지 읽고 있는 책이 너무 재미가 있었고 도장에서 공부하는 내용들도 너무나 새롭고 신선하고 내용 하나하나가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천주교 신앙을 자의반 타의반 해 오면서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었다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고 죄를 짓게 하고 또 심판하고 구원하고 하는 것이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많아 신앙에 몰입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우주 일 년에서 가을 개벽기에 천지 이치를 모르고 제 죄에 걸려 죽어 넘어갈 중생들을 위해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구체적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증산도의 ‘상제님’에게서 대우주 참하나님의 면모를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고, 그런 ‘상제님’의 존재에 믿음이 가고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주문을 읽고 도공을 하며 정성 공부를 21일간 했습니다. 오늘의 저를 있게 하기 위해 수많은 조상님들이 염려하고 이끌어 주심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문을 읽으면서 저의 간절한 바램들이 제가 읽는 주문 소리에 담겨 조상님들과 성령님들께 전달되는 거구나 하는 신비스러우면서도 성스러운 느낌을 받으며 집중 수행을 하였습니다. 동양의 정신문화, 우리 민족 고유 문화의 참맛을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수행을 하는 내내 드디어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제대로 자리를 잡은 듯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대학 때 철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인생에 대한 의문에 문을 두드린 이후, 오늘에 와서 아무나 기대할 수 없는 큰 진리 해답을 얻게 되기까지 저를 이끌어 주신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많은 손길과 또 현실에서 여러 일꾼의 손길들로 제가 인도되었음을 알게 되니 그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너무 큽니다.
참 진리를 세상에 열어주신 상제님과 태모님,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그리고 조상님과 많은 도생님들께 감사드리며 상제님 진리를 인생의 등불로 삼고 진리의 뜻대로 살아가는 일꾼이 될 것을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
나의 소명은 사람 살리는 것
이용호(여, 59) / 공주신관도장 / 148년 음력 3월 입도
여고 시절부터 사람은 왜 살아야 하고 어디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이런 문제들이 늘 궁금해서 공부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결혼 적령기가 되어 쓸쓸함과 허전함을 채워 보려고 결혼을 하였지만 심리적인 갈등과 고통의 연속이었기에 부처님께 귀의하여 많은 서원을 세우며 자손 창성과 불도를 이루겠다며 많은 기도 정진을 해 나갔습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조상님과 연결되어 있는 듯하여 조상 천도와 천도제를 수도 없이 지내게 되면서 답답함도 풀리고 생활고도 풀려 다행히도 자녀 교육은 잘 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마음수련을 하게 되었는데 나 자신을 관하게 되면서 일생을 돌아보니 내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되었고 3년간 많은 참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떠나간 남편도 그때 용서가 되었고 많은 상처 또한 명상을 하면서 치유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온 이유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일체 중생을 다 구원하라”는 명령이 하늘에서 내 가슴속으로 한 자씩 꽂히게 되어 나의 소명이 중생 구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요양 보호사를 하던 중 어르신께서 〈상생방송〉을 보시고서 “조상이 하나님이다”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럴 것 같다는 생각에 방송을 자세히 보니 ‘개벽 책’을 보고 모든 의심이 풀렸다는 어느 도생 이야기가 감동을 주었고 방송국에 전화하여 신관동에 있는 증산도 도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포정님께서 개벽 책을 주시어 밤새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부터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포정님께서 세상 이치를 모두 다 오픈해 놓고 열강하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수행을 해 보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3주 정도 공부할 무렵 계속 신명이 저를 시험하셔서 잠도 오지 않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괜찮아졌다가 태을주를 읽으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너무도 헷갈려서 신원사 중악당에 가서 계룡산 산신님께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 올바른 길로 인도해 달라고 간곡히 6시간을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니 산신께서 “내가 너 하나를 못 살리면 산신이겠느냐?” 하셨고, 산신님으로부터 많은 기를 받아 오면서 그날부터 태을주를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한 달쯤 수행했을 무렵 문득 일에 열중하던 중 나의 본성을 깨치게 되는 감격을 겪었습니다. ‘태을주가 견성(전생에 무엇이었다는 것)도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인당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나더니 생각이 과거로도 가지 않고 미래로도 가지 않고 항상 지금 여기에 머물게 되면서 번뇌 망상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수행을 두 시간으로 늘리면서 눈동자가 맑아지고 목소리가 청아해졌으며 머리도 맑아지고 점점 영성도 회복되면서 행동도 조신해지고 품위가 있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젠 오직 돈을 버는 것도 상제님 일을 위해서 벌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만날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먹는 것을 맹세하며 오직 참진리만을 위하여 살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
참 진리를 만나 감사합니다
류태진(남, 67) / 인천구월도장 / 148년 음력 3월 입도
우리는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친구같이 살아온지도 어언 41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이 나이에도 언제나 서로 의지하며 집사람이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들을 배려했고 할 수 있게 도우며 살아왔습니다. 살면서 고난도 많았고 고비도 많았으나 언제나 종교의 힘으로 의지하며 헤쳐 나왔습니다. 그러던 중 크게 실망할 일이 생겨 믿는 종교를 관두게 되었고 아내가 형수님의 소개로 증산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집사람을 무척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대순진리회, 마음수련원, 절에 다니면서 정말 성심껏 신앙을 하였으나 매번 실망을 하였고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실망을 하고 힘들어할까봐 “제발 이제 종교는 그만 두라”고 하면서 반대를 했으나 아내는 제 의견은 안중에도 없었고 <상생방송>을 보고 도장에 방문하며 책도 읽고 하는 상황이 되니 더 반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려면 당신 혼자나 하라”고 했는데 퇴근하고 돌아오면 증산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습니다. 열심히 하는 아내를 보고 증산도에 대해서 궁금해졌고 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내 따라서 도장도 방문하고 태을궁 정삼치성에도 참석해 보았습니다. 상제님, 조상님, 우리 역사 등 정말 몰랐던 것을 많이 들으며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은 도장을 방문하여 포정님께 제가 하는 일이 새벽에 나가 밤늦게 집에 돌아와 도장에 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씀드렸는데 그때 해 주신 얘기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몸이 힘들 때는 쉬어야 하니 도장에 오지 않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기도가 있다고 말씀해 주실 때 너무나 감사하고 따뜻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수도복으로 갈아입고 청수를 모시고 수행을 1시간 정도 한 후에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태을주는 하루 종일 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감이 느껴집니다. 저는 화물차를 운행하는 직업상 새벽부터 밤까지 화물차 운전을 합니다. 운행 중에는 차안에서 『도전』 말씀, 태사부님 말씀, 사부님 말씀 CD를 경청하고 있습니다. 조상님이 제1의 하나님이라는 태사부님의 말씀이 너무나 가슴에 남고 인상적이라 잊히지 않았고 그런 조상님을 미처 알지 못했던 제 무지함에 죄송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신앙하여 꼭 쓸 자손이 되겠습니다.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 감사합니다. 참진리를 만났으니 이제는 더 이상 종교에 방황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진리 공부도 열심히 하고 가족도 살려 가가도장을 이루겠습니다. 늘 따뜻한 말씀으로 대해 주시는 인천구월도장 포정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친절한 도장 도생님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보은! ◎
천天·지地·인人을 아는 공부
박희야(여, 46) / 부산온천도장 / 148년 음력 3월 입도
작년 9월 초 토요일, 남편이 증산도 부산온천도장에 부모님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니까 가 보자고 해서 함께 내려왔습니다. 도장 근처에서 만나기로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바로 남편을 증산도로 인도해 주신 이라나 도생님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오신 이 도생님과 남편은 10여 년 만에 만났다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저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남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 도생님이 저에게 증산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으셨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종교를 믿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오빠가 종교 문제로 심한 갈등이 있었던 것을 봐 왔고 남편도 그런 저에게 증산도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인 일요일 온천도장에 갔는데, 마침 천도식이 있었습니다. 증산도 도장에 처음 갔고 배례를 한 뒤에 남편과 함께 천도식에 참석했는데 불편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내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고 기분도 좋았습니다. 수호사님과 도생님들이 모두 가족처럼 인사하고 반겨 주셔서 기뻤고 인상에 남았습니다. 『도전』과 태을주 족자를 비롯한 여러 책을 집으로 챙겨 왔고 이라나 도생님의 섬세하고 따뜻한 배려로 증산도 동영상 및 좋은 글들을 받았습니다.
증산도를 알리는 것에 대해 조심했던 남편은 이제부터 조금씩 태을주를 꼭 읽으라는 말을 하며 같이 청수를 모시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청수를 모시다가 어느새 매일 청수를 모시게 됐고, 운전을 할 때에도 노래 대신 태을주를 외우며 안전 운전을 기원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면 놀라우면서도 점점 마음이 열려 갔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진심이 담긴 권유와 응원에 증산도 입도에 대한 마음을 굳혀 갔습니다.
21일 동안 도장에 가서 정성 수행 및 진리 공부를 하면서 증산도는 단순한 종교 개념이 아니라는 그 말씀이 묵직하게 제 가슴에 다가왔습니다. 증산도는 천지인을 아는 공부라고 하셨던 수호사님의 말씀에 점점 더 흥미를 갖게 되었고 신비롭고 대단한 진리의 힘을 느꼈습니다. “모든 만물에는 음과 양이 있고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살아 숨 쉬고 순환한다. 동양은 대우주 자체를 신으로 여긴다.”는 말씀 하나하나가 신기함과 동시에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상제님을 믿기 전에 너의 조상을 먼저 믿고 섬기라.”라는 태상종도사님의 말씀에 저는 다시 한 번 깊은 감동을 받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의 위대함을 매일매일 느꼈습니다. 21일 동안 도장에 가는 길이 힘들지 않고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제가 몰랐던 자연의 이치와 상제님의 크신 진리를 하나씩 알아 가고 깨우치는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마음속의 의문들이 풀려 가서 상쾌했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다른 종교들이 왜 그토록 와닿지 않았는지 증산도를 만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조금 더 빨리 알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증산도에 먼저 입도하고 저를 안내해 준 남편과 저의 남편의 인도자이신 이라나 도생님께서 신앙의 열정과 정성을 나눠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매일 새벽 기도로 아침을 열어 주시고 저희 부부를 위해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에 저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 제가 살아갈 인생의 방향을 알려 주시는 상제님을 믿으며 거룩하신 상제님의 도와 진리를 세상에 알리는 데 진심어린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보은~!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