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년 역사문화로 참진리를 찾다 되(김민호, 김동욱, 문장호, 김순임, 김형수, 박기숙)

[입도수기]

일만 년 역사문화로 참진리를 찾다


김민호(남, 54) / 수원영화도장 / 146년 음8월 입도

2015년 초겨울 11월 그때 저는 수원 영통구 매탄 3동에서 안양 인덕원까지 버스로 출근을 할 때였습니다. 그날따라 버스정류장에서 책을 꽂아 놓은 가판대가 눈에 들어왔는데 ‘환단고기’라 적혀 있었습니다. 속으로 ‘고기? 환단고기? 그런 고기도 있나?’ 생각하며 자세히 보니 ‘역사’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먹는 고기가 아니고 옛 기록 역사라는 얘기였구나’ 하고 이해가 되니 관심이 가서 환단고기 요약본을 들고 출근하게 되었고 낮에는 시간이 안 되어서 퇴근 후 읽기 시작했는데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고조선 역사가 단군신화가 아니라 실존 역사였으며, 환국-배달-조선으로 이어온 대한민국 국통맥이 9천년이 넘는다는 사실과 이 엄청난 우리의 역사가 일본 식민시대 민족정신 말살 정책의 음모에 의해 송두리째 불태워지고 왜곡되어졌다는 사실에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환단고기 가이드북을 읽기 며칠 전 꿈을 꾸었는데, 동그랗고 엄청 밝은 광명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어머니께서 나오셔서 밝은 얼굴로 아무런 말씀도 없이 크고 푸른빛이 나는 (칼집에 꽂혀 있는) 청동검을 제 앞에다 세워 놓으시고 다시 그 빛 속으로 사라지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환단고기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중간에 나와 있는 비파형 동검이 꿈에 어머니가 주시고 간 그 청동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뒤에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형이었던 이병관 도생님을 만나 환단고기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병관이 형은 환단고기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나름 환단고기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있었으며 저에게 사단법인 대한사랑(수원지부)에서 주최하는 강좌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이번에 함께 입도를 하게 된 김리예 누님도 그때 같이 소개를 받아서 함께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찬란한 1만년 역사의 진실은 강의를 듣는 내내 제 심장을 고동치게 했으며 흥분되고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2016년 1월 병관이 형은 수원 정자사거리 상생문화센터에서도 역사 강의가 있다는 안내를 해주었고, 저는 일요일 오후 2시 강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날 강사는 대한사랑에서 역사 강의를 하셨던 바로 그 분이었고 열강을 하시던 모습을 또 뵙게 되어 기뻤습니다. 그날도 그분의 열정적인 강의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우주1년 이야기는 너무도 이치에 맞고 반론의 여지가 없었으며 진리의 근본이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공감하였습니다. 전 인류 문화와 종교의 뿌리인 삼신 신교문화는 우리 민족이 일만 년을 이어온 자랑스러운 전통문화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 신앙 환경에서 자라온 저로서는 놀라운 충격이었습니다. ‘조상에게 절하는 것은 미신’이라고 배웠고 ‘(조상)신은 없다’라고 배웠는데... 그래서 부모님 제사도 안 지내고 (조상)신을 부정해 왔는데 불충불효한 사실에 혼란스러우면서도 진실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알면 알수록 진리가 깊고 제 의식도 넓어짐을 느꼈습니다. 5월에 입문을 하고 얼마 후 꿈을 꾸었는데 어릴 적에 일찍 하늘로 간 고향친구인 경진이가 밝은 얼굴로 나타나 “너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네가 상제님 신앙을 하게 된 것을 무척 기뻐하셨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기독교 신앙을 독실히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이제 2016년 9월 10일 자로 입도를 하게 되어 기쁘고, 돌아보면 이룬 것 없는 굴곡진 인생인데 저를 붙들어 주시고 참진리의 자손으로 삼아주신 조상님 음덕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진리로 인도해 준 이병관 도생님, 초심자로 함께 의지해 온 김리예 도생님께도 감사하고 무엇보다 입도를 하게 되어 기쁩니다. 한결같이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듬고 감싸주신 강은영 포감님, 따스하고 포근하게 가족처럼 대해주신 수원영화도장 도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시라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더 많은 진리의 소식을 전해 주시기 위해 애쓰고 이끌어 주시는 한승철 포정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족함이 넘치지만 일심으로 증산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배우고 깨쳐서 작은 힘이지만 참진리를 실천하는 태을핵랑, 상제님의 참신앙인이 되겠습니다. 보은!◎

우울증을 극복하고 삶의 기쁨을 찾아


김동욱(남, 60) / 서산도장 / 146년 음8월 입도

저는 서산 동부시장 내에 위치하고 있는 서산종묘농약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농약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가게에서 20년 정도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가게의 사장님은 박선웅씨로 내포제시조內浦制時調 인간문화재 보유자이기도 합니다. 사장님과 알고 지내는 서산도장 포정님이 저희 가게를 자주 방문하였는데, 사장님의 소개로 어느 날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평소 저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가정이 깨어졌고 한동안 혼자 지내고 있는 상태였기에 평소 말이 적고 힘이 없었고, 삶의 의욕을 잃고 사는 상태였습니다. 만사가 귀찮아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포정님이 상제님을 믿고 도장에서 기도하고 수행하면 우울증도 낫고 하는 일도 잘 되고 삶도 즐거워지고 밝아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귀찮고 사는 게 힘들었지만 포정님이 이야기 하시는 것을 듣고는 이상하게 한번 따라 해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로 도장에 나가 기도 수행을 시작하였습니다. 포정님이 가정사에 얽힌 조상님들에 대해 자세하게 파악하여 기도문을 작성해 주었습니다. 집에서도 계속 기도문을 읽으면서 수행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포정님 말씀을 따라서 매일 기도를 조금씩 시작하였습니다. 마음이 점차 평안해졌고 삶의 의욕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밝아지면서 무기력한 인생이 차츰차츰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말이 없었는데 사람들과 말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활달해졌습니다. 포정님이 본부에서 상제님 수부님 태상종도사님 어진을 사다 주셨고, 집에 천신단을 만들어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청수를 모시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기도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우울증 증세는 거의 사라졌고 몸과 마음이 아주 건강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이제 사는 게 좋아졌습니다. 이전에는 사는 게 싫었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는데 이제는 사는 게 기쁩니다. 죽으려고 집에 농약도 갖다 놓았던 적이 있는데, 이제는 지금까지 힘든 인생이 상제님을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더 열심히 상제님 수부님을 믿고 열심히 기도 수행하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겠습니다. ◎

답은 쉽고 가까운 곳에 있었다!


문장호(남, 62) / 강화도장 / 146년 음8월 입도

제가 증산도에 입도하게 된 동기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증산도가 우리나라 종교이고 조상숭배를 중시하고 역사문제를 제대로 알게 해 주었습니다. 또 우주의 법칙이나 개인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는 대로 행해져 왔다는 사실에 공감을 느꼈고 앞으로의 과정도 이미 정해진 대로 갈 것이라는 것임을, 또 그에 대한 해답이 있다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이 너무도 힘들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대학시절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군 생활도 무척 힘들게 하였고 사회생활도 막힘이 많았습니다. 군을 제대하고 나서는 10.26사태 때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어 가족이 헤어지게 되었고 결혼하기로 상견례까지 한 첫 여인과도 이별하였습니다. 또 법적문제로 수년간 시달리어 한창 사회에 진출하여 기반을 다질 나이에 집안을 살리기 위해 법적으로 고군분투한 결과 협심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지금 생각해도 너무 비참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그 와중에 결혼한 애들 엄마와 헤어졌고 강화에서 만난 여성과도 10년 만에 또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왜 나는 인생이 이렇게 평탄하지 못하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외롭게 살아야 하나? 원인이 무엇일까? 이유를 찾으려고 여러 종교를 기웃거렸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나의 살아온 지난 과정을 돌이켜 보니 젊을 때 어머니와 점집에서 들은 내용과 똑같이 내 인생이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정해진 팔자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과거의 고통스런 삶의 상처 때문에 저의 몸은 많은 술에 의지하며 방황하는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증산도 강화도장 이미향 수석포감을 만나게 되었고 그 후 이상하게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평생 그 많은 술을 마셔온 제가 갑자기 술을 끊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하면서 돌아가신 아버님, 어머님이 제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꿈에 나타나시는 것을 통해 제 곁에서 조상님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상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의외로 답은 쉬웠고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저는 타 종교를 돌아다니며 헛수고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 또한 상제님의 뜻이라 생각하지만 그동안 절망적인 삶을 살아 온 것이 너무도 기막혀 그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려 합니다. 이것이 제가 입도하게 된 동기이고 앞으로의 삶도 해원하여 뜻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를 닦는 것이 목적입니다. 앞으로 증산도를 신앙하면서 상제님 진리를 전하는 데 노력을 하고 제 스스로도 일심 신앙을 할 것을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

천부경을 공부하다 증산도 도장을 찾아가다


김순임(여, 78) / 밀양도장 / 146년 음9월 입도

1970년대 중반 저희 집은 공장을 경영하였는데 남부럽지 않게 생활하였지만 그래도 가슴 한가운데에는 진리 공부와 기도를 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기도의 목적은 나 잘되고 가업이 흥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자식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때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이후 1980년대 중반에 사업이 기울면서 1차 폐업하고 4년 후 재도전하여 성공하였으나 화재로 인하여 큰 손실을 보면서 2차 폐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경남 밀양의 무안으로 이사를 한 후 전국의 사찰을 다니면서 기도와 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천태종 구인사와 조계종 계열의 많은 사찰을 다녔지만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이후 밀양 영남루 경내에 있는 ‘천진궁’에서 기도하면서 천부경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81자를 외우며 기도하였습니다. 매일 그렇게 정성을 들였습니다. 정말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렇게 지극정성을 들였는데 더 이상 공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지인이 태을주를 이야기했고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태을주를 찾기 위하여 금산사를 방문하였는데 자신들은 증산도와 관련이 없다고 하였고 저 또한 아니다 싶은 생각에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영남루 천진궁을 왕래하면서 천부경을 암송하였는데 왕래하는 길에 밀양시 삼문동에 증산도 도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용기를 내어 도장으로 전화를 하였고 지난 8월 25일 밀양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처음 방문하였을 때 너무나도 편안하였고, 여기가 내 평생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부산에 살고 있는 지인 서무학 씨에게 ‘내가 먼저 증산도에 가서 좋으면 나중에 같이 가자’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며칠 뒤 서무학 씨와 함께 밀양도장에 방문하였고 이창율 도생님으로부터 증산도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후 이창율 도생님과 함께 서무학 씨를 주거지와 가까운 부산덕천도장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이제 상제님 진리에 입도하면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어렵고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공부할 것이며 나아가 저의 자식들도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

계속된 진리 인연 끝에 드디어 입도하다!


김형수(남, 25) / 부산광안도장 / 146년 음8월 입도

저는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상고사에 관심을 두고 여러 책을 읽던 중 『환단고기』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 읽기에는 버거운 책이라 원문보단 읽기 쉬운 만화로 된 환단고기를 읽었고,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학교 동아리 행사 중 우연히 환단고기에 대한 세미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많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박기숙 도생님을 통해 증산도를 알게 되었으며 입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죽 공부를 하고 증산도 활동을 하고 했으면 벌써 입도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 당시에는 제가 군대도 가야 되고 이것저것 할 것도 많고 하여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진리에 대한 의심은 없었지만 간절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군 전역 후에도 복학하고 학교생활과 취업준비 때문에 역시 입도를 미루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틈틈이 혼자 도전을 본다던지 유튜브에서 STB를 시청한다던지 하며 저도 모르게 계속 증산도를 접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올 하반기부터 다시 한번 신앙생활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21일 정성수행과 8관법 공부도 하고 드디어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일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노력하겠으며, 그동안 저를 이렇게 입도까지 이끌어 주신 수호사님과 여러 도생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인도자 수기]“살려 주세요, 그 자손을 꼭 살려 주세요!”


박기숙(여, 35) / 종감, 부산가야도장

김형수 도생을 처음 만난 것은 약 5년 전 김 도생이 신입생이었을 때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고 증산도 동아리방에 인도했었습니다. 그 이후 여러 번 입도 준비를 했지만 항상 상황이 꼬여 입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만나거나 연락을 하면 증산도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늘 입도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상황이 계속 여의치 않게 되어 말뿐으로 그친 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아, 장기적으로 살려야 될 대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7월 말경 새벽에 태을궁 3층 성전에서 300배례를 마치고 수행을 하면서 운장주를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조상님 다섯 분이 기운으로 응감하셨는데 상생신도와 도장에서 신앙하고 있는 신도, 그리고 김형수 도생의 조상님이었습니다. 김 도생의 조상님은 할아버지 같으셨는데 다섯 분의 조상님 중 가장 간절함이 느껴졌고 서럽게 우셨습니다. 그 기운에 감응되어 운장주를 읽다 저도 펑펑 울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저는 주문 대신 두 손을 꼭 쥐고 “살려 주세요. 그 자손을 꼭 살려 주세요.” 하고 30여 분이나 통성기도를 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니 눈물이 납니다.

그 이후 포교의 절대성을 느끼고, 내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정한 것이 도장 내 새벽수행이었습니다. 21일, 49일 점차적으로 새벽수행을 체질화하자는 마음을 먹고 새벽수행을 시작하는데 문득 서럽게 우셨던 김형수 도생의 조상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김 도생의 조상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형수가 계속하여 입도하고 신앙할 상황이 안 되니 장기적인 대상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상님께서 만약 형수를 살리시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그러한 상황을 앞당겨 주십시오.” 그렇게 새벽수행과 더불어 기도하던 3일차에 김형수 도생으로부터 광안도장에서 21일 수행을 하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입도는 하지 않았으나 수요일마다 치성에 참석하고 있던 김 도생은 대포 도생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그때 상황이 21일 수행을 할 수밖에 없게끔 흘러갔었다고 최근에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김 도생의 21일 정성 공부에 맞추어 저도 함께 21일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부터 김 도생의 조상님이 응감하셔서 같이 수행을 해 주셨습니다. 수행하면서 그 조상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14일이 넘어서부터였습니다. 21일 수행 중 남은 7일 동안에는 새로운 조상님들이 매일매일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보이진 않았지만 매일 새로운 조상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루는 50, 60대 정도 되는 남성으로 조금은 퉁명스러운 듯하지만 카리스마가 있는 목소리를 가진 분이 태을주를 같이 읽어 주셨습니다. 수행이 끝나고 난 후, 김 도생은 수행 중에 갑자기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고 말했습니다. 그 외할아버지가 50, 60대에 돌아가셨고 어릴 때 무서워했다는 말을 하는데, 제가 들었던 그 분과 목소리나 느낌이 굉장히 비슷했습니다. 아, 김형수라는 자손을 살리려고 조상님들이 총동원되어 오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더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도전 7편 19장을 보면 ‘자손에게 선령은 곧 하느님’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천지만 섬기면 살 줄 알지마는 먼저 저희 선령에게 잘 빌어야 하고, 또 그 선령이 나에게 빌어야 비로소 살게 되느니라”는 도전 성구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를 지켜 주시는 우리 조상님. 조상님의 마음은 얼마나 간절하실까요? 포교라는 것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또한 그 조상님과 자손줄의 생사가 달린 일이라 생각하니 정말 간절합니다. 김형수 도생이 입도를 통해서 상제님 참 일꾼으로 거듭 태어나 도장에 봉사하고 천지일월을 제대로 모시는 진정한 태을랑 일꾼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