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문명의 발원지 페루
[세계지역문화탐방]
페루는 남미 대륙에 있는 다인종 국가로 마추픽추의 나라로 불릴 만큼 고대 잉카문명을 활짝 꽃피운 곳이다. 16세기 초에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어 근 300년 동안 통치를 받다가 산 마르틴, 시몬 볼리바르 등의 영웅들에 의해 1824년 독립을 달성한 뒤, 여러 권력자들의 정쟁과 좌익 테러 등으로 혼란을 겪다가 1990년대 이후 점차 안정을 찾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고대 문화유산을 잘 간직하고 있는 나라로 알려진 페루는 고유의 원주민 문화와 유럽풍 문화가 병존하고, 대가족 중심의 생활 양식과 문화를 전통으로 보존해 온 나라이기도 하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꾸준한 성장을 이루고 있는 개발도상국으로서, 정상 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는 페루를 찾아가 본다.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에서 여러 페루의 강이 발원한다. 페루의 주요 강은 우카얄리Ucayali 강, 마라뇬Maranon 강, 푸투마요Putumayo 강, 야바리Yavari 강, 우아야가Huallaga 강, 우루밤바Urubamba 강, 만타로Mantaro 강, 아마존Amazon 강 등이 있다.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티티카카Titicaca 호수는 운송로로 이용 가능한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3,812m에 있으며, 수량도 남아메리카 전체에서 으뜸이다.
페루는 열대 기후만 있는 것은 아니며, 안데스 산맥과 훔볼트 해류의 영향으로 기후 변화가 다양하다. 해안 지방은 날씨가 온화하고 강수량이 적고 북쪽 산자락을 제외하면 매우 습한 편이다. 산지 지방에서는 여름에 비가 잦으며 고도가 올라갈수록 기온과 습도가 떨어져서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는 얼음이 있다. 정글 지방에서는 비가 아주 많이 오고 날씨도 무덥지만 남부 끝 지역은 겨울이 춥다.
고대역사
페루의 역사는 안데스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한 원시 수렵 농경 시대(BCE 약 2만 년 전~BCE 3000)로부터 출발하며, 원주민을 몽고계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페루 지역은 잉카Inca제국의 발원지로 유명하지만, 그 이전의 초기 고대 문명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까랄Caral 문명이다. 이 문명은 미주대륙 최초의 도시 문화를 형성한 문명으로, 약 5,000년 전 이집트의 나일강 문명이나 인도의 갠지스 문명과 동시대에 번성하였으며, 페루 북부 해안지대 유적지에 피라미드, 원형극장, 주거지 등의 유적을 남겼다. 또한 페루 최초의 정착 농경문화를 형성한 차빈Chavin 문명(BCE 1200~200)은 페루 북부 지방인 현재의 앙카쉬Ancash 주州에서 발생했으며, 금세공 및 도자기 제작에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었다.
페루의 제1기 토착문화 시기(BCE 3C~CE 8C)에는 페루 북부 지방인 현재의 라 리베르타드La Libertad 주 트루히요Trujillo 시를 중심으로 모치카Mochica 문화가 번성했다. 모치카 문화는 관개수로 축조 기술과 치수治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농업을 발전시켰고, 무기와 연장, 장신구 제작을 위해 구리를 사용한 동기銅器 문화도 선보였다. 이와 함께 페루 중남부에서는 리마Lima, 나스카Nazca 문화 등을 중심으로 지역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토착문화 시기가 끝난 후 와리Wari 제국(8C~12C)이 티티카카Titicaca 호수를 중심으로 페루 전역에 걸쳐 통일국가를 형성함으로써 와리Wari 및 티아나와꼬Tiahuanaco 문화가 조성되었고, 와리 제국의 쇠퇴 이후에는 북부지역에 치무Chimu, 중부지역에 찬카이Chancay, 남부지방에 이카Ica 토착문화권이 형성됨으로써 제2기 지역문화(12C ~15C 중엽)가 펼쳐졌다.
잉카제국(1200~1500년)
페루의 여러 부족국가는 15세기에 잉카의 지배 체계로 편입되었으며, 15세기 중엽~16세기 초에는 안데스를 중심으로 현재의 에콰도르, 볼리비아, 칠레 북부까지 지배하는 광대한 잉카제국Inca Empire을 건설하였다. 태양신이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잉카(최고 지도자)는 태양의 아들이란 의미이고, 잉카 왕실의 혈통인 귀족 계급을 기반으로 통치하였다.
스페인 식민시대
1532년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내란상태에 있는 잉카제국을 정복하고, 1544년에는 스페인이 페루에 부왕청 (Virreynato)을 설치해 식민통치를 시작하였다. 18세기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청(Virreinato de Nueva Granada, 콜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파나마 일대), 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청(Virreinato del Río de la Plata, 아르헨티나) 설치 시까지 170여 년간 페루는 남미 전체를 관할하는 스페인의 식민통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페루 독립운동
19세기 초 페루에서는 식민지 출신 백인을 가리키는 크리올료Criollo 계층이 중심이 되어 독립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독립 운동은 과도한 세금 등 식민지 수탈정책, 크리올료들에 대한 고위직 진출 제한, 유럽견문에 따른 자유계몽 사상의 전파, 나폴레옹의 스페인 점령을 계기로 스페인 식민지에 대한 통제력의 급격한 감소 등이 촉발 요인으로 작용했다. 1814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나, 인디오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페루의 독립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남아메리카 제국의 독립 운동을 이끈 산 마르틴San Martín 장군에 의해 선도되었다. 그는 독립 혁명군을 지휘하여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킨 후, 칠레에서 국가 수반에 오른 베르나르도 오이긴스Bernardo O'Higgins의 지원으로 페루의 독립을 위한 해방 원정군을 편성하였다. 1820년 산 마르틴은 영국 출신 토머스 코크런Thomas Cochrane 제독의 함대 지원을 받아 칠레 발파라이소 항을 출항하여 1821년 7월 4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리마로 진격하여 페루의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페루의 보호자’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페루가 마침내 독립을 확립하기까지는 내륙 고지에서 저항을 계속하던 스페인 부왕군과 이를 공공연히 지원하기까지 한 기득권 지배층 크리올료들과 맞서 3년을 더 싸워야 했다. 마침내 1824년 베네수엘라 출신의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와 토레 타글레Torre Tagle 총독이 연합한 독립군이 다시 리마에 입성하여 스페인군을 격퇴함으로써 페루에 대한 300년간의 스페인 식민통치를 종식시키고 독립을 달성하였다.
독립 이후의 역사
페루는 공화국 초기에 군사 지도자들 사이의 지역적 권력 다툼으로 정치가 불안하였다. 1826년 신헌법에 의해 시몬 볼리바르가 페루의 종신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나 그란콜롬비아 사태로 물러났다. 1836년 10월에는 안드레스 데 산타 크루스Andrés de Santa Cruz에 의해 페루 - 볼리비아 연방(Peru - Bolivia Confederation)이 창설되었으나, 남미 남부 지역에서 세력 균형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강력히 반발해 전쟁을 벌임으로써 결국 1839년에 연방은 해체되고 말았다.
연방 해체 후 페루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기를 맞이했으나, 그 혼란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이 바로 페루 최대의 카우디요Caudillo(강력한 지배권을 장악한 정치 및 군사 지도자)인 라몬 카스티야Castilla y Marquesado, Ramón였다. 1840년대에서 1860년대 사이 페루는 라몬 카스티야 대통령 하에서 구아노guano 수출을 통한 국가 수입 증대로 안정기를 맞았다. 구아노는 수천 년 동안 페루 해안에 쌓인 조류의 배설물로써 1840년경부터 비료의 주원료로 이용되어 왔는데, 19세기 초 페루는 구아노의 수출로 국고 수입의 80%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1870년대에 이르러 구아노가 고갈되면서 국가는 빚더미에 올랐고 정치 내분이 일어났다. 그러던 중 칠레와 볼리비아 간에 아타카마 사막 지대의 구아노 생산지에 대한 경제적 이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면서 소위 태평양 전쟁(Guerra del Océano Pacífico, 1879~1884년)이 발발하였고 페루도 이에 개입되어 전쟁을 치렀다. 이 전쟁에서 칠레가 승리하면서 페루는 동맹국인 볼리비아와 함께 패전국이 되었다. 전쟁 후 미국의 중재로 1929년 체결된 리마Lima 조약에 따라 아리카Arica주는 칠레에 귀속되고, 타크나Tacna주는 페루에 반환되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페루에서는 내부 정쟁이 이어지다가 시민당(Partido Civil) 시대에 안정을 되찾았으나, 1919년 아우구스토 B. 레기아Augusto B. Leguía의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11년간 집권했던 레기아는 대공황으로 몰락하고 다시 정치 분쟁이 일어났으며 미주인민혁명동맹(APRA, Alianza Popular Revolucionaria Americana)이 등장하였다. 이후 이들의 반대파와 상류층-군부의 연합이 서로 대립하면서 30여 년간 페루 정계를 주도하였다.
1968년에는 좌경 성향의 후안 벨라스코 알바라도Juan Velasco Alvarado 장군이 무혈 쿠테타를 통하여 집권, 급진적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사회 동원제도를 채택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75년 쿠데타로 집권한 프란시스코 모랄레스 베르무데스Francisco Morales Bermúdez 대통령은 개혁에 손을 놓고 방관하다가 민정이양 계획을 발표하고 1980년 총선에서 당선된 민중행동당(Acción Popular)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Fernando Belaúnde Terry 후보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1980년대 페루는 많은 외채와 인플레이션 상승, 마약 밀매, 그리고 좌익 테러단체 “빛나는 길(Sendero Luminoso)”과 MRTA(투팍아마루 혁명운동, Movimiento Revolucionario Túpac Amaru)의 테러활동 격화 등 극도의 사회 불안상태가 지속되는 국정의 혼란이 이어졌다.
1985년 등장한 APRA당의 알란 가르시아Alan García 정권에서는 은행 국유화, 외채상환 거부 등 급진적 경제정책이 시행되었으나 정치 경제적 불안정을 막지는 못했으며, 1990년 대선을 통해 ‘Cambio 90’ 당의 일본계 알베르또 후지모리Alberto Fujimori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후지모리는 1993년 헌법 개정에서 대통령 연임이 허용됨으로써 1995년 4월 총선에서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그런데 2000년 11월 블라디미르 몬테시노스Vladimir Montesinos 정보부장 수뢰사건으로 후지모리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참석 후 일본으로 도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는 2005년 칠레에 입국했다가 체포되어 2007년 페루로 인도되었으며, 2010년에 25년형 선고를 받고 수감 중이다.
후지모리 사태 이후 2000년 11월 발렌틴 파니아구아Valentin Paniagua 국회의장이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새 내각을 구성했고, 2001년 7월에는 알레한드로 톨레도Alejandro Toledo가 원주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2006년 6월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는 APRA당의 알란 가르시아Alan García가 16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2011년에는 가나 페루Gana Perú 당의 우말라Humala 후보가 51.48% 득표로 케이코 후지모리Keiko Fujimori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말라 대통령은 취임 후 당초 좌파민족주의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대외개방 및 시장 친화적 정책기조를 유지하였고, 아울러 사회통합(social inclusion)을 위해 아마존 지역 등 낙후된 지역을 지원하고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
최근 2016년 6월에는 전직 총리이자 경제학자인 77세의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Pedro Pablo Kuczynski가 역대 최고령 기록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행정부
페루는 대의제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대통령 중심제로 정치 체제를 운영하는 국가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 겸 행정부 수반으로,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는데 유효 투표수의 과반수 이상을 득표해야 당선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 후보가 없을 경우 2차 결선투표 실시하며, 임기는 5년(연임 불가, 5년 후 재출마 가능)이다. 대통령 아래에 제1, 제2 부통령 제도를 두고 있으며, 행정부인 내각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18명의 각료와 각료회의 의장으로 구성되고, 각료 교체 시마다 내각 전체에 대한 의회의 별도 인준이 필요하다.
2016년 6월 5일 치러진 페루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변화를위한페루인당PPK’의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Pedro Pablo Kuczynski가 50.12%의 득표율로 케이코 후지모리 후보를 42,597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쿠진스키는 당선 후 신임 국무총리에 페르난도 사발라 롬바르디Fernando Zavala Lombardi를 지명했다.
쿠진스키 신정부의 정책방향은 시민안전 확보 및 부패방지, 경제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범정파적 연합정부 구성을 통해 대선 과정에서 표출된 지역간, 계층간 분열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국민통합의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소속 정당인 ‘변화를위한페루인당’이 국회 내에서 18석으로 제3당의 지위에 머물고 있어 여타 정당과의 연합전선 구축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지방행정
헌법에 의하면, 페루의 정부조직은 중앙정부(Gobierno Nacional), 지방정부(Gobierno Regional), 지역정부(Gobierno Local)의 3개로 구분되며, 이는 페루 헌법상 영토 구분과 연계되어 있다. 지방 행정구역은 Region(광역도), Departmento(주/도), Provincia(시/군), Distrito(구/읍/면)로 구분된다. 수도인 리마Lima 시는 리마 주(Departmento)의 관할권에 속하지 않고, 광역시(Provincia Metropolitano)의 특별지위를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페루는 25개의 주와 1개의 리마 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주는 4년 임기의 주지사와 주 의회를 선출한다. 리마 군은 시 의회가 관할한다.
입법부
페루의 국회는 단원제 의회로 임기 5년의 의원 130명으로 구성되며, 정기국회 회기는 제1회기(7.25~12.15)와 제2회기(3.1~6.15)로 나누어진다. 정기국회 폐회 시에는 의장단을 포함한 20명 이상의 의원들로 구성된 상임위원회(Comisión Permanente)가 운영된다. 국회의장단은 의장 및 부의장 3명(1년마다 선출)으로 구성되고, 총 24개의 일반위원회(Comision Ordinaria)가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우말라Humala가 2005년 설립한 좌파 민족주의 성향의 페루민족주의당PNP(Partido Nacionalista Peruano),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케이코 후지모리Keiko Fujimori가 2010년 설립한 자유보수주의 성향의 인민권력당(Fuerza Popular), 1924년 Haya de la Torre 주도로 설립된 사회민주주의 좌파 성향의 미주인민혁명동맹당APRA(Partido Aprista Peruano), 톨레도Toledo 전 대통령이 1994년 설립한 자유민주주의 중도 성향의 Peru Posible당(Perú Posible), 1956년 테리Terry 전 대통령이 설립한 민족민주주의 중도 성향의 민중행동당(Acción Popular), 1966년 민주기독당에서 분리된 기독민주주의 중도우파 성향의 인민기독당PPC(Partido Popular Cristiano), 1996년 루이스 카스타녜다Luis Castañeda가 설립(2006년 등록)한 자유보수주의 성향의 국민연대당(Solidaridad Nacional) 등이 있다.
사법부
페루의 사법체제는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으며, 사법행정권은 행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일반법원은 3심제로 운영되며, 대법원(Corte Suprema de Justicia)과 28개의 고등법원(Corte Superior de Justicia), 195개의 지방법원(Juzgado de Primera Instancia)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법원은 대법원장 및 18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데, 대법원장은 중앙법관회의CNM(Consejo Nacional de Magistrados)에서 과반수 투표로 선출하며 임기는 2년이고, 대법관의 임기는 70세 정년제로 운영된다. 대법원은 위헌심사 사건을 제외한 모든 일반사건의 최종심을 담당한다.
그밖에 소장, 부소장 및 5명의 재판관 등 7명으로 구성되는 헌법재판소(Tribunal Constitucional)를 두고 있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 및 행정기관으로부터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보호를 위해 인권보호관(Defensor del Pueblo: 국회에 의해 임명되는 옴부즈만) 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또한 특별법원으로 군사(경찰)법원을 두고 있는데, 군사법원 재판관에는 현역군인 임명이 금지되며 국가사법위원회CNM(Consejo Nacional de la Magistradura), 공개 시험을 통해 군사법원 판사를 선발한다.
대외정책
페루의 대외정책 기조는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반인종차별주의를 바탕으로 유엔헌장 및 미주기구 헌장의 원칙과 규범을 준수하고, 국내문제 불간섭 원칙을 존중하며, 국제조약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편성 원칙 및 다원주의에 입각한 세계 모든 국가와의 관계 수립과 개발도상국과의 협력 강화, 신국제경제질서의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주요 대외정책의 방향으로 삼고 있다.
페루는 역내 중남미 국가와의 결속 강화를 위해 남미국가연합(UNASUR) 메카니즘을 통해 역내 국가 간 협력 및 국제위기에 공동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고, 지역 통합 강화 방안으로 브라질과 전략적 동맹관계의 심화 발전을 추진 중이며, 콜롬비아 및 에콰도르와의 합동각료회의 정기적 개최 및 브라질과의 인프라 연결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서방 선진국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서는 과거 비동맹 지향 외교에서 탈피하여 미국, 캐나다, EU 등 대서방국 외교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고 있고, 당초 우려와는 달리 기존 자유무역협정(FTA)을 존중, 시행하는 한편 추가적 FTA 협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페루는 미국, 중국, 일본, 캐나다, 멕시코, 파나마, 한국, 태국 등 주요 교역국들과 FTA를 체결하였으며, 터키, 인도, 호주, 브라질 등과는 협상을 개시하거나 검토 중에 있다.
페루는 또한 아태 지역 외교에 정책적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데, 1998년 APEC에 가입하여 태평양 연안국과의 관계 강화를 추진(2008년 APEC 정상회의 개최)하였고, 최근에는 개방정책의 상징적 의미의 하나로 환태평양공동체TPP(Trans-Pacific Partnership) 협상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동 협상에서 인프라 개발, 저소득 지역 소득 증가 등 비전통적 이슈에 대한 논의를 강조하고 있다. 페루는 칠레와 함께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과 모두 FTA를 체결한 유일한 중남미 국가로서 아시아 주요 국가와의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페루의 경제 개황
2000년 이래 연평균 6% 수준의 빠른 성장을 구가해온 페루 경제는 에너지 광업 분야를 중심으로 한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유치정책에 힘입어, 최근에도 2010년 8.5% 2011년 6.5%, 2012년 6.0%, 2013년 5.8%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페루 경제가 고도성장을 시현해온 가장 큰 기반은 무엇보다도 근래 광물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원자재 수출액이 전체 수출의 70% 차지)에 기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14년에는 중국 등 주요 국가의 자원 수입 감소, 페루의 주요 수출품목인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성장속도가 둔화되어 예년보다 낮은 2.4%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2015년에는 3.3%로 회복세를 보였으며, 2016년에는 3.6%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페루는 최근 석유 생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석유 수요의 3분의 1을 에콰도르 등 인접 국가에서 수입하고 있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15.4조 입방피트로 남미 4위이나 가스 처리시설, 파이프라인 부족 등으로 생산량 및 소비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확대하고 있어 향후 LNG 생산 및 천연가스 소비가 증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페루는 석유 가스 이외에도 은, 동, 연, 아연 등의 광물자원도 풍부한 나라이다. 부존량에 있어서는 은이 세계 2위, 동과 아연이 세계 3위, 연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생산량에 있어서는 은, 동, 아연이 세계 3위, 연이 세계 4위를 차지할 정도이다.
페루의 경제 전망
페루는 2013년에 이어 2014년에도 약 25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는데, 최근 출범한 쿠진스키 정부는 대내적으로 부가가치세율 인하, 인프라 투자 촉진, 대규모 광산 개발 프로젝트 재개 등의 정책을 통한 경제성장 도모 및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되며, 대외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을 두고 2021년에 OECD 가입을 위한 개혁, 개방정책을 지속 추진해 나가면서 현재 진행 중인 터키, 인도 등과의 FTA 협상 마무리 및 TPP 조기 비준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 기준으로 페루의 10대 수출국은 중국, 미국, 스위스, 캐나다, 브라질, 일본, 칠레, 스페인, 독일, 콜롬비아이고, 10대 수입국은 중국, 미국, 브라질, 멕시코, 에콰도르, 독일, 한국(7위), 칠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이다.
2016년의 글로벌 경제는 성장세가 이어지고는 있으나 성장 속도는 예상보다 더딘 반면 경기 하강 리스크는 고조되고 있는 국면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의 최근 분석 자료에 의하면, 대내외의 악재로 인해 중남미 대부분 국가들의 경제 성장 모멘텀이 크게 위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루의 경제 성장률은 2015년 3.3%에서 2016년 3.6%, 2017년 4.2%로 꾸준히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주요 광산 프로젝트의 본격 가동으로 인한 구리 생산 증가가 향후 2년간 페루의 경제 성장 모멘텀을 견인할 전망이다. 아울러, Lima Metro 2호선 건설, 남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Energy Node와 Talara 정유 시설 현대화 프로젝트 등과 같은 주요 인프라 건설 공사의 지속도 페루의 경제 성장세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반면, 하반기로 예정된 총선과 엘니뇨 강세는 페루의 경제 성장 모멘텀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리스크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개인 소득세 및 법인세 인하 정책과 공공 인프라 투자에 대한 재정 지출 확대로 말미암아 재정수지 악화 추세는 당분간 피할 수 없을 전망인데, 2016년과 2017년 말 페루의 GDP 대비 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각각 3.0% 및 2.7%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페루의 공공부채 부담은 여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인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중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 원자재 가격의 약세 기조 지속, 재정 여건 및 교역 조건 악화 등을 고려할 때, 페루 솔화의 약세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급격한 통화 약세를 저지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제한적인 외환시장 개입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수출 가격이 전반적으로 약세 기조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량 확대에 힘입은 구리 수출 급증은 페루의 경상수지 개선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구체적으로, 최근 2년간 GDP 대비 4.0%에 달했던 페루의 경상수지 적자폭은 2016년 3.2%, 2017년 3.1%로 꾸준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불어 올해 하반기 이후 통화 하락세가 진정되고, 엘니뇨 효과 퇴조에 따른 식료품 가격의 안정세가 나타나면서, 고조되었던 인플레이션 압력이 서서히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에 따라 2015년 말 4.4%를 기록했던 페루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6~2017년 말 각각 3.2% 및 2.8%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문화적 특징
페루는 라틴계 백인, 혼혈 메스티소, 원주민 인디오 및 기타 아시아계 이민으로 구성된 다인종 국가이다. 아메리카 토착민은 1520년대 900만으로 추산되다가 1620년에는 60만여 명으로 급감하였는데 주로 전염병 때문이었다. 식민지 시대에 스페인인과 아프리카인들이 토착민과 더불어 뒤섞였다. 독립 이후 서유럽인들이 들어왔으며, 1850년대에는 중국인들이 유입되면서 페루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종 구성에 있어, 전체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는 백인은 정치 경제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고, 37%의 메스티소mestizo(토착민과 유럽인의 혼혈)는 실질적인 산업 노동을 담당하고 있다. 45%인 원주민 인디오는 주로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며 대체로 문맹률이 높은 빈곤계층이며, 약 3%를 점유한 흑인 및 동양인은 주로 일본 및 중국계로서 상업에 종사하는 계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페루 사회는 경제적 불균등이 심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계층별, 지역별로 빈부차가 극심하여 전체 인구의 상위 10%가 전체수입의 37.9%를 차지하고 하위 10%가 총수입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페루 통계청(INEI) 자료에 따르면, 2001년 54.3%에 이르던 빈곤층이 2006년 44.5%, 2010년 31.3%, 2011년 27.8%, 2012년 25.8%, 그리고 2013년에는 23.9%를 기록하였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35%가 수도 리마에 거주하며, 국내 총생산의 44.8%를 생산하고 있다. 페루 정부가 지정한 최저 생계비 이하의 수입으로 생활하는 인구는 2007년 14.2%였고 2013년에는 6.2%로 2007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대폭 감소하였으나 2013년 극빈층은 143만 2000명(6.2%)에 달하는 실정이다.
페루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5,000여 년의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이다. 서기 15세기 잉카제국이 안데스산맥의 일대를 중심으로 지금의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칠레 및 아르헨티나 북부일대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면서 찬란한 잉카문화를 형성하였다. 잉카제국은 건축, 금은 세공, 수리관개, 농업 및 기하학적인 요새 구축 등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일으켰으나, 1532년 스페인에 정복당한 후 라틴계 서구문화가 도입됨으로써 그 시절부터 원주민, 페루 고유 문화와 유럽풍 문화가 병존하는 특징을 띠게 되었다.
인구 분포 및 언어
페루의 인구는 3,044만여 명으로 추산되며, 남아메리카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2015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인구 25만 명 이상의 주요 도시로 리마Lima, 아레키파Arequipa, 트루히요Trujillo, 치클라요Chiclayo, 이키토스Iquitos, 피우라Piura, 쿠스코Cusco, 침보테Chimbote, 우앙카요Huancayo, 푸카이파Pucallpa, 타크나Tacna, 훌리아카Juliaca 등이 있다. 언어는 공용어는 에스파냐어, 케추아어, 아이마라어이다. 페루인의 83.9%가 에스파냐어를 제1언어로 사용한다. 그 외 토착 언어 중 가장 비중 있는 케추아어는 인구의 13.2%가 구사한다.
종교와 교육
2007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12세 이상 인구의 81.3%가 자신의 종교를 로마 가톨릭이라 답하였고, 12.5%는 개신교(Evangelical)이며, 3.3%는 다른 종교이고, 2.9%는 무교였다. 전체 문맹률은 6.2%(2012년)이고, 도시 지역 인구의 문맹률은 3.3%, 농촌 지역은 15.9%로 도농 간의 격차가 크다. 또한, 여성의 9.3%, 남성의 3.1%가 문맹으로 남녀 간 격차도 크다. 초중등 교육은 의무 교육이며, 공립학교는 무료이다. 초등학교는 6년, 중고등학교는 5년 과정이고, 대학은 초급대학 2년, 일반대학 5년이다.
문학과 음악
페루 문화는 주로 아메리카 토착민과 스페인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여러 민족의 영향을 받았다. 페루의 예술 전통은 잉카 이전 문화의 세련된 도기, 직물, 보석, 조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 이후 예술은 침체를 겪다가 20세기 초 토착주의(Indigenismo)가 등장하고, 이후 페루의 예술은 외국과 지역 예술 조류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된다.
페루 문학은 구전 전승에서 시작되었다. 독립 이후 리카르도 팔마Ricardo Palma(1833~1919)를 중심으로 풍속주의(Costumbrismo)와 낭만주의가 주된 흐름을 이루었으며, 20세기의 주요 작가들로는 시로 알레그리아Ciro Alegría(1909~1967),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José María Arguedas(1911~1969), 세사르 바예호César Vallejo(1892~1938) 등의 작가가 나왔다. 20세기 중반 이후 페루 문학은 라틴아메리카 문학 붐을 이끈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 1936~) 등이 있다.
현대의 페루 음악은 안데스, 스페인, 아프리카의 음악이 섞여 있다. 식민지 시대 이전에는 케나quena와 팅야tinya가 널리 쓰인 악기였다가 스페인의 정복으로 기타나 하프와 같은 새로운 악기가 도입되었으며, 차랑고charango처럼 혼합된 악기가 발전하기도 하였다. 페루 음악에서 나타나는 아프리카의 영향으로는 그 리듬과 타악기 카혼cajón 등이 있다. 페루의 민속춤으로는 마리네라marinera, 톤데로tondero, 우아이노huayno 등이 있다.
페루 대부분의 축제와 행사는 카톨릭의 주요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고원지대의 인디안 마을의 카톨릭 축제는 보통 전통적인 농경 축제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주요 행사들 중에는 카르나발(2~3월), 춤과 행진을 펼치는 가장 큰 잉카 축제인 인티 라이미(6월 24일), 페루 독립 기념일(7월 28일), 만령제(11월 2일), 푸노Puno에서 열리는 푸노데이(11월 5일) 등이 있다.
언론
페루의 주요 일간지로는 정부기관지인 엘 패루아노El Peruano, 중도 보수지인 엘 코메르시오El Comercio, 중도적 성격의 엑스프레소Expreso, 진보지인 코레오Correo, 좌파적 성격의 라 레푸불리카La República, 중도적 성격의 경제지 제스티온Gestión과 진보적 성향의 페루 21Perú 21 등이 있다.
라디오 및 TV 방송국으로는 수도 리마에 라디오 방송국 68개와 텔레비전 방송국 25개 등 총 301곳이 있고, TV 채널은 7개가 있다.
풍속 및 관습
페루인의 의복 문화를 살펴보면, 도시의 중산층 이상은 현대식의 일반적 복장을 하지만 안데스 고원지대의 인디오들은 손으로 짠 모직옷(전통의상)을 입는 편이다.
페루 원주민들은 진한 보라색 옥수수를 끓여서 설탕을 혼합한 음료수인 치차모라다Chicha Morada를 마시는데, 이 음료는 대중화되어 리마 내 식당 어디에서나 주문할 수 있으며 식사 때 흔히 마시는 콜라, 잉카 콜라와 더불어 페루인들이 즐겨 마시는 국민 음료가 되어 있다. 페루의 대표적인 고유 술로는 포도를 원료로 한 증류주인 피스코Pisco가 있다. 페루인들은 피스코에 레몬주스 및 설탕 약간과 계란 흰자위를 혼합하여 만든 칵테일인 피스코 사우어Pisco Sour를 흔히 즐겨 마시며, 피스코에 각종 과일이나 다른 재료를 혼합하여 만든 칵테일 종류가 많이 개발되어 있다. 페루 요리는 아메리카 토착민과 스페인의 요리가 섞인 것으로 일반적인 요리로는 안티쿠초스anticuchos, 세비체ceviche, 파차만카pachamanca 등이 있다. 페루 요리는 재료와 요리법이 다양하여 최근에 주목받고 있다.
페루는 가족 제도에 있어 가톨릭 의식을 존중하며, 대가족 제도의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가족 중심의 생활양식을 따르고 가정 단위로 생일, 종교적 축제 및 행사를 가지는 것이 보편적이다.
외교 관계
페루와 우리나라는 1963년 수교하여 2013년 수교 5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꾸준한 교류와 협력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양국은 2011년 발효된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경제적인 관계 또한 두터워지고 있다. 비동맹 핵심국인 페루는 1989년 알란 가르시아Alan García 집권 1기 당시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한반도 정책과 관련하여 페루는 원칙적으로 중립 불간섭 태도 견지 및 남북한 간 대화에 의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페루는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전수받아, 각종 경제개발 사업에 한국의 경험과 기술 이전을 기대하고 있으며, 특히 2011년 8월 발효된 한-페루 FTA 등 협력 채널을 통해 상호보완적 경제 기술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한국과 페루는 1993년 후지모리Alberto Fujimori 대통령의 국빈 방한,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국빈 방문, 2005년 톨레도Alejandro Toledo 대통령의 국빈 방한,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 2009년 가르시아Alan García 대통령의 국빈 방한 및 공식 실무 방한(2010년), 2012년 우말라Ollanta Humala 대통령의 국빈 방한,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의 국빈 방문 등 8회의 정상 상호 방문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이 긴밀화되었다.
또한 2008년 11월 페루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통해 양국이 ‘포괄적 협력 관계’를 수립하는 데에 합의하였고, 나아가 2012년 5월 우말라Ollanta Humala 대통령의 국빈 방한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양국은 1974년 이래 최근까지 무역, 경제·과학·기술, 문화, 투자, 관광, 사법, 과세 등 각종 협정을 체결하였고, 고위정책협의회와 경제공동위, 민간경협위, 자원협력공동위, FTA 공동위원회, 산업협력위원회 등의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1991년부터 2014년까지 7,263만 달러 규모의 개발협력(KOICA) 지원을 하고 있다. 개발협력은 프로젝트 개발조사, 초청연수, 봉사단원 및 전문가, 민관협력(기업/NGO/대학), 기타 물자지원, 긴급원조, 개발조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경제 관계
우리나라의 대對페루 수출입 규모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3년 유로존 경제 위기 시 다소 축소되었으나, 전반적으로는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대對페루 수출입 규모(28.2억 달러)는 2004년(5.3억 달러) 대비 5.3배가 증가하였고, 동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대對세계 교역은 2.3배 증가(4,783억 달러→10,987억 달러), 대對중남미 교역은 3.0배 증가(183억 달러→542억 달러)하였다. 특히, 2011년 8월 한-페루 FTA 발효 이후 양국 간 교역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4년 우리나라의 대對페루 교역 규모는 수출액이 13.9억 달러(자동차, 합성수지, 휴대폰 등), 수입액이 14.3억 달러(동, 은, 아연, 수산가공품 등)로 약 4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對페루 직접 투자는 1994년 이후 2014년 9월말까지 누계 기준으로 총 139건, 42.0억 달러(우리측 신고 기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로 투자 업종은 주로 광물·에너지 분야(58건 39.2억 달러)에 집중되어 있다. 페루의 대對한 투자는 2014년 말까지 26건, 1,322천불로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재외동포 현황
페루 재외 동포로는 1974년 박만복 배구 감독의 페루여자국가대표팀 감독 부임이 이민 1호였다. 1980년대 초까지 체육인(태권도 사범), 병아리 감별사 등 중심의 10여 세대가 초기 이민사회를 형성했고, 1980년대 후반 페루 연안 오징어잡이 수산업 진출과 더불어 1993년 이후 페루 치안 및 경기 안정으로 한인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상당수의 한인은 볼리비아, 파라과이, 칠레 등 인접국으로부터 재이민한 경우이다. 페루에 있는 우리 교민은 약 1,500명 수준이며, 90% 이상이 수도 리마시에 거주(이 중 체류자 약 200여 명)하고 있는데, 주로 의류·원단수입 판매, 중고차 판매, 수산업 등에 종사한다.
페루-북한 관계
북한은 1975년 리마에 통상대표부를 설치하였으며, 이후 양국 관계는 별다른 진전 없이 유지되다가, 1985년 7월 취임한 사회주의 성향의 가르시아 대통령 집권 1기인 1988년 12월 양국 간에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페루는 주중 대사를 북한 대사로 겸임토록 하고 있다.
대북한 수교 이후 페루 정부는 한국과의 기존 우호관계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극적으로 대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남북한 관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중립·불간섭 태도를 견지하는 한편, 남북한 간 대화에 의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하고 있다.
페루의 대북 교역량은 2013년 기준으로 수출 49.8만 달러(동식물생산품, 동, 의류 등), 수입 55.2만 달러(기계류, 플라스틱, 운수설비 등)를 기록하고 있다.
리마는 페루의 수도로 태평양 해안에 있으며 주변은 사막으로 1년 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도시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안데스 산맥으로부터 내려오는 풍부한 지하수로 농작물의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리마는 혼잡하고 오염, 소음도 심각하며 가끔은 날씨도 불쾌하지만 주민들은 친절하고 우호적이다. 볼거리들로는 수많은 금, 은, 보석 유물들을 소장한 오로 델 페루Oro del Peru박물관과 선사시대 전시물로 유명한 국립 고고 인류학 박물관을 들 수 있다. 카타콤으로 유명한 산 프란시스코 교회나 산토 도밍고 교회도 유명하며, 폴보스 아술레스Polvos Azules를 포함한 리마의 많은 시장들에서는 물건들과 수공예품을 구입할 수 있다. 교외의 바란코Barranco에는 많은 저렴한 식당들과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들이 있어 배낭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다른 교외인 미라플로레스Miraflores는 시내에서 가장 좋은 상점, 식당과 유흥가들이 있다.
리마 남부 연안에는 이슬라스 바이예스타스Islas Ballestas, 페닌술라 데 파라카스Peninsula de Paracas, 피스코Pisco 등이 있다. 더 남쪽에 있는 나스카Nazca는 도기나 BCE 900년에서 CE 600년 사이에 세워졌다고 추정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스카 유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레키파Arequipa와 티티카카Titicaca
하얀 도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아레키파는 엘 미스티El Misti화산을 포함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 도시의 특징은 실라르라고 불리는 밝은 색의 화산 바위로 만든 많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이다. 유명한 건축물로는 수녀원이었던 콘벤토 데 사니타 카탈리나Convento de Sanyta Catalina,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스이는 카사 리켓츠Casa Richketts 등이다. 콜카Colca협곡은 아레키파에서 갈 수 있는 인기 있는 여행지이다. 티티카카 호수는 3820m 높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이다. 또 남미에서 가장 큰 호수이기도 하다. 높은 고도 때문에 공기도 굉장히 맑으며 새파란 물은 특히 인상적이다.
쿠스코Cusco
안데스 고원 분지에 있는 쿠스코는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케추아어로 ‘세상의 배꼽’ 즉 ‘세상의 중심’이란 뜻이다.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 16세기 스페인에 의해 정복당하고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스페인 건축물이 들어섰다. 하지만 주요 건물들은 잉카 시대 건물의 기초 위에 지어졌다. 몇 번의 지진에도 끄떡없이 견딘 태양의 신을 모시던 신전 코리칸차Qorikancha의 기초위에 산토도밍고 성당을 지었고, 주요 건물의 외벽 역시 잉카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도시는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다른 유적으로는 근처에 삭사이와만Sacsayhuam, 켄코Qenko, 푸카 푸카라Puca Pucara, 탐보 마챠이Tambo Machay 등이 있다.
쿠스코 서쪽에는 마추픽추Machu Picchu가 있다. 우루밤바 강 옆 절벽, 해발 2,400미터의 높은 곳에 정교하게 다듬은 돌로 만든 공중도시다. 마추피추 중앙의 큰 바위 위에는 1미터 내외로 솟은 돌기둥이 있다. 이를 인티와타나Intihuatana라고 하는데, 케추아어語로 ‘태양을 끌어당기는 자리’라는 뜻으로, 이 기둥은 ‘태양을 묶는 기둥’인 셈이다. 태양을 숭배하는 잉카인들은 해마다 동지가 되면 이 돌기둥 바로 위에 떠 있는 태양을 붙잡아 매려고 돌기둥에 끈을 매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인티와타나는 해시계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인티’는 태양이란 뜻이고, ‘와타나’는 기둥이란 뜻으로 도시의 중앙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래쪽에서는 위로 올려다보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카라스Caraz
침보테Chimbote 동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카라스는 매력적인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과 주위에 아름다운 산책로들이 있다. 유명한 양가누코Llanganuco에서 산타 크루스SantaCruz까지의 트레킹 코스가 끝나는 지점이며 아름다운 라구나 파론Laguna Paron과 카뇬 엘 플라토Canon del Plato로 가는 길 여행의 출발점이다.
이슬라 타킬레Isla Taquile
이슬라 타킬레는 푸노Puno에서 24km를 지나 있는 티티카카 호수의 섬이다. 잉카 이전의 축대와 작은 유적들이 여기저기 보이며, 호텔, 전기, 도로, 탈것, 그리고 개도 없다. 푸노의 정박장에서 출발하는 배가 매일 있으며 섬까지 네 시간 정도 소요된다.
세친Sechin
세친이 있는 곳은 침보테의 남쪽 50km로 이곳은 페루에서 BCE 1500년경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마을 중 하나이다. 주요 볼거리로는 신전의 외벽으로 잔인한 전사들이 사로잡은 포로의 창자를 꺼내는 조각으로 덮여있다.
야리나코챠Yarinacocha
U자 모양의 호수인 야리나코챠는 아마존 유역에 있는 푸칼파Pucallpa에서 북동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있다. 한때는 우카얄리Ucayali 강의 한 부분이었으나 현재는 육지로 둘러싸여 있다. 쉽보Shipbo 인디안 마을을 방문하거나 수공예품을 사고, 카누를 타고 가 호수 주위의 자연을 둘러볼 수도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꾸준한 성장을 이루고 있는 개발도상국으로서, 정상 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는 페루를 찾아가 본다.
자연환경과 역사
영토와 자연환경
페루공화국República del Perú(Republic of Peru)은 남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태평양 연안국가로, 전체 면적은 1,285,220㎢이며 멕시코 면적의 3분의 2, 한반도 면적의 약 6배 정도이다. 에콰도르와 콜롬비아가 북쪽에 있고 브라질이 동쪽, 남동쪽으로 볼리비아, 남쪽으로는 칠레와 접하고 있으며 태평양 연안을 끼고 있다. 안데스 산맥이 태평양 해안을 따라 뻗어 페루 전역을 3등분한다. 서쪽에 있는 해안 지방(costa)은 좁은 평원으로 계절에 따라 강이 생겨서 형성된 계곡을 제외하면 대개 건조한 곳이다. 고원 지방(sierra)은 알티플라노altiplano 고원이 있고 페루에서 가장 높은 6,768m의 우아스카란Huascaran 봉우리가 있다. 정글 지방(selva)는 동쪽으로 펼쳐진 아마존 강의 열대우림으로 뒤덮인 넓은 평원이다. 이 지역은 페루 국토 전체의 60%를 차지하며, 브라질, 콩고,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세계 네 번째의 열대 우림이다.안데스 산맥의 봉우리에서 여러 페루의 강이 발원한다. 페루의 주요 강은 우카얄리Ucayali 강, 마라뇬Maranon 강, 푸투마요Putumayo 강, 야바리Yavari 강, 우아야가Huallaga 강, 우루밤바Urubamba 강, 만타로Mantaro 강, 아마존Amazon 강 등이 있다.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티티카카Titicaca 호수는 운송로로 이용 가능한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3,812m에 있으며, 수량도 남아메리카 전체에서 으뜸이다.
페루는 열대 기후만 있는 것은 아니며, 안데스 산맥과 훔볼트 해류의 영향으로 기후 변화가 다양하다. 해안 지방은 날씨가 온화하고 강수량이 적고 북쪽 산자락을 제외하면 매우 습한 편이다. 산지 지방에서는 여름에 비가 잦으며 고도가 올라갈수록 기온과 습도가 떨어져서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는 얼음이 있다. 정글 지방에서는 비가 아주 많이 오고 날씨도 무덥지만 남부 끝 지역은 겨울이 춥다.
페루의 역사
고대역사
페루의 역사는 안데스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한 원시 수렵 농경 시대(BCE 약 2만 년 전~BCE 3000)로부터 출발하며, 원주민을 몽고계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페루 지역은 잉카Inca제국의 발원지로 유명하지만, 그 이전의 초기 고대 문명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까랄Caral 문명이다. 이 문명은 미주대륙 최초의 도시 문화를 형성한 문명으로, 약 5,000년 전 이집트의 나일강 문명이나 인도의 갠지스 문명과 동시대에 번성하였으며, 페루 북부 해안지대 유적지에 피라미드, 원형극장, 주거지 등의 유적을 남겼다. 또한 페루 최초의 정착 농경문화를 형성한 차빈Chavin 문명(BCE 1200~200)은 페루 북부 지방인 현재의 앙카쉬Ancash 주州에서 발생했으며, 금세공 및 도자기 제작에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었다.
페루의 제1기 토착문화 시기(BCE 3C~CE 8C)에는 페루 북부 지방인 현재의 라 리베르타드La Libertad 주 트루히요Trujillo 시를 중심으로 모치카Mochica 문화가 번성했다. 모치카 문화는 관개수로 축조 기술과 치수治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농업을 발전시켰고, 무기와 연장, 장신구 제작을 위해 구리를 사용한 동기銅器 문화도 선보였다. 이와 함께 페루 중남부에서는 리마Lima, 나스카Nazca 문화 등을 중심으로 지역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토착문화 시기가 끝난 후 와리Wari 제국(8C~12C)이 티티카카Titicaca 호수를 중심으로 페루 전역에 걸쳐 통일국가를 형성함으로써 와리Wari 및 티아나와꼬Tiahuanaco 문화가 조성되었고, 와리 제국의 쇠퇴 이후에는 북부지역에 치무Chimu, 중부지역에 찬카이Chancay, 남부지방에 이카Ica 토착문화권이 형성됨으로써 제2기 지역문화(12C ~15C 중엽)가 펼쳐졌다.
잉카제국(1200~1500년)
페루의 여러 부족국가는 15세기에 잉카의 지배 체계로 편입되었으며, 15세기 중엽~16세기 초에는 안데스를 중심으로 현재의 에콰도르, 볼리비아, 칠레 북부까지 지배하는 광대한 잉카제국Inca Empire을 건설하였다. 태양신이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잉카(최고 지도자)는 태양의 아들이란 의미이고, 잉카 왕실의 혈통인 귀족 계급을 기반으로 통치하였다.
스페인 식민시대
1532년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내란상태에 있는 잉카제국을 정복하고, 1544년에는 스페인이 페루에 부왕청 (Virreynato)을 설치해 식민통치를 시작하였다. 18세기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청(Virreinato de Nueva Granada, 콜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파나마 일대), 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청(Virreinato del Río de la Plata, 아르헨티나) 설치 시까지 170여 년간 페루는 남미 전체를 관할하는 스페인의 식민통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페루 독립운동
19세기 초 페루에서는 식민지 출신 백인을 가리키는 크리올료Criollo 계층이 중심이 되어 독립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독립 운동은 과도한 세금 등 식민지 수탈정책, 크리올료들에 대한 고위직 진출 제한, 유럽견문에 따른 자유계몽 사상의 전파, 나폴레옹의 스페인 점령을 계기로 스페인 식민지에 대한 통제력의 급격한 감소 등이 촉발 요인으로 작용했다. 1814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나, 인디오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페루의 독립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남아메리카 제국의 독립 운동을 이끈 산 마르틴San Martín 장군에 의해 선도되었다. 그는 독립 혁명군을 지휘하여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킨 후, 칠레에서 국가 수반에 오른 베르나르도 오이긴스Bernardo O'Higgins의 지원으로 페루의 독립을 위한 해방 원정군을 편성하였다. 1820년 산 마르틴은 영국 출신 토머스 코크런Thomas Cochrane 제독의 함대 지원을 받아 칠레 발파라이소 항을 출항하여 1821년 7월 4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리마로 진격하여 페루의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페루의 보호자’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페루가 마침내 독립을 확립하기까지는 내륙 고지에서 저항을 계속하던 스페인 부왕군과 이를 공공연히 지원하기까지 한 기득권 지배층 크리올료들과 맞서 3년을 더 싸워야 했다. 마침내 1824년 베네수엘라 출신의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와 토레 타글레Torre Tagle 총독이 연합한 독립군이 다시 리마에 입성하여 스페인군을 격퇴함으로써 페루에 대한 300년간의 스페인 식민통치를 종식시키고 독립을 달성하였다.
독립 이후의 역사
페루는 공화국 초기에 군사 지도자들 사이의 지역적 권력 다툼으로 정치가 불안하였다. 1826년 신헌법에 의해 시몬 볼리바르가 페루의 종신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나 그란콜롬비아 사태로 물러났다. 1836년 10월에는 안드레스 데 산타 크루스Andrés de Santa Cruz에 의해 페루 - 볼리비아 연방(Peru - Bolivia Confederation)이 창설되었으나, 남미 남부 지역에서 세력 균형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강력히 반발해 전쟁을 벌임으로써 결국 1839년에 연방은 해체되고 말았다.
연방 해체 후 페루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기를 맞이했으나, 그 혼란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이 바로 페루 최대의 카우디요Caudillo(강력한 지배권을 장악한 정치 및 군사 지도자)인 라몬 카스티야Castilla y Marquesado, Ramón였다. 1840년대에서 1860년대 사이 페루는 라몬 카스티야 대통령 하에서 구아노guano 수출을 통한 국가 수입 증대로 안정기를 맞았다. 구아노는 수천 년 동안 페루 해안에 쌓인 조류의 배설물로써 1840년경부터 비료의 주원료로 이용되어 왔는데, 19세기 초 페루는 구아노의 수출로 국고 수입의 80%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1870년대에 이르러 구아노가 고갈되면서 국가는 빚더미에 올랐고 정치 내분이 일어났다. 그러던 중 칠레와 볼리비아 간에 아타카마 사막 지대의 구아노 생산지에 대한 경제적 이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면서 소위 태평양 전쟁(Guerra del Océano Pacífico, 1879~1884년)이 발발하였고 페루도 이에 개입되어 전쟁을 치렀다. 이 전쟁에서 칠레가 승리하면서 페루는 동맹국인 볼리비아와 함께 패전국이 되었다. 전쟁 후 미국의 중재로 1929년 체결된 리마Lima 조약에 따라 아리카Arica주는 칠레에 귀속되고, 타크나Tacna주는 페루에 반환되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페루에서는 내부 정쟁이 이어지다가 시민당(Partido Civil) 시대에 안정을 되찾았으나, 1919년 아우구스토 B. 레기아Augusto B. Leguía의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11년간 집권했던 레기아는 대공황으로 몰락하고 다시 정치 분쟁이 일어났으며 미주인민혁명동맹(APRA, Alianza Popular Revolucionaria Americana)이 등장하였다. 이후 이들의 반대파와 상류층-군부의 연합이 서로 대립하면서 30여 년간 페루 정계를 주도하였다.
1968년에는 좌경 성향의 후안 벨라스코 알바라도Juan Velasco Alvarado 장군이 무혈 쿠테타를 통하여 집권, 급진적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사회 동원제도를 채택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75년 쿠데타로 집권한 프란시스코 모랄레스 베르무데스Francisco Morales Bermúdez 대통령은 개혁에 손을 놓고 방관하다가 민정이양 계획을 발표하고 1980년 총선에서 당선된 민중행동당(Acción Popular)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Fernando Belaúnde Terry 후보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1980년대 페루는 많은 외채와 인플레이션 상승, 마약 밀매, 그리고 좌익 테러단체 “빛나는 길(Sendero Luminoso)”과 MRTA(투팍아마루 혁명운동, Movimiento Revolucionario Túpac Amaru)의 테러활동 격화 등 극도의 사회 불안상태가 지속되는 국정의 혼란이 이어졌다.
1985년 등장한 APRA당의 알란 가르시아Alan García 정권에서는 은행 국유화, 외채상환 거부 등 급진적 경제정책이 시행되었으나 정치 경제적 불안정을 막지는 못했으며, 1990년 대선을 통해 ‘Cambio 90’ 당의 일본계 알베르또 후지모리Alberto Fujimori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후지모리는 1993년 헌법 개정에서 대통령 연임이 허용됨으로써 1995년 4월 총선에서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그런데 2000년 11월 블라디미르 몬테시노스Vladimir Montesinos 정보부장 수뢰사건으로 후지모리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참석 후 일본으로 도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는 2005년 칠레에 입국했다가 체포되어 2007년 페루로 인도되었으며, 2010년에 25년형 선고를 받고 수감 중이다.
후지모리 사태 이후 2000년 11월 발렌틴 파니아구아Valentin Paniagua 국회의장이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새 내각을 구성했고, 2001년 7월에는 알레한드로 톨레도Alejandro Toledo가 원주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2006년 6월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는 APRA당의 알란 가르시아Alan García가 16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2011년에는 가나 페루Gana Perú 당의 우말라Humala 후보가 51.48% 득표로 케이코 후지모리Keiko Fujimori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말라 대통령은 취임 후 당초 좌파민족주의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대외개방 및 시장 친화적 정책기조를 유지하였고, 아울러 사회통합(social inclusion)을 위해 아마존 지역 등 낙후된 지역을 지원하고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
최근 2016년 6월에는 전직 총리이자 경제학자인 77세의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Pedro Pablo Kuczynski가 역대 최고령 기록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정치 및 행정
행정부
페루는 대의제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대통령 중심제로 정치 체제를 운영하는 국가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 겸 행정부 수반으로,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는데 유효 투표수의 과반수 이상을 득표해야 당선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 후보가 없을 경우 2차 결선투표 실시하며, 임기는 5년(연임 불가, 5년 후 재출마 가능)이다. 대통령 아래에 제1, 제2 부통령 제도를 두고 있으며, 행정부인 내각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18명의 각료와 각료회의 의장으로 구성되고, 각료 교체 시마다 내각 전체에 대한 의회의 별도 인준이 필요하다.
2016년 6월 5일 치러진 페루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변화를위한페루인당PPK’의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Pedro Pablo Kuczynski가 50.12%의 득표율로 케이코 후지모리 후보를 42,597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쿠진스키는 당선 후 신임 국무총리에 페르난도 사발라 롬바르디Fernando Zavala Lombardi를 지명했다.
쿠진스키 신정부의 정책방향은 시민안전 확보 및 부패방지, 경제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범정파적 연합정부 구성을 통해 대선 과정에서 표출된 지역간, 계층간 분열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국민통합의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소속 정당인 ‘변화를위한페루인당’이 국회 내에서 18석으로 제3당의 지위에 머물고 있어 여타 정당과의 연합전선 구축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지방행정
헌법에 의하면, 페루의 정부조직은 중앙정부(Gobierno Nacional), 지방정부(Gobierno Regional), 지역정부(Gobierno Local)의 3개로 구분되며, 이는 페루 헌법상 영토 구분과 연계되어 있다. 지방 행정구역은 Region(광역도), Departmento(주/도), Provincia(시/군), Distrito(구/읍/면)로 구분된다. 수도인 리마Lima 시는 리마 주(Departmento)의 관할권에 속하지 않고, 광역시(Provincia Metropolitano)의 특별지위를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페루는 25개의 주와 1개의 리마 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주는 4년 임기의 주지사와 주 의회를 선출한다. 리마 군은 시 의회가 관할한다.
입법부
페루의 국회는 단원제 의회로 임기 5년의 의원 130명으로 구성되며, 정기국회 회기는 제1회기(7.25~12.15)와 제2회기(3.1~6.15)로 나누어진다. 정기국회 폐회 시에는 의장단을 포함한 20명 이상의 의원들로 구성된 상임위원회(Comisión Permanente)가 운영된다. 국회의장단은 의장 및 부의장 3명(1년마다 선출)으로 구성되고, 총 24개의 일반위원회(Comision Ordinaria)가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우말라Humala가 2005년 설립한 좌파 민족주의 성향의 페루민족주의당PNP(Partido Nacionalista Peruano),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케이코 후지모리Keiko Fujimori가 2010년 설립한 자유보수주의 성향의 인민권력당(Fuerza Popular), 1924년 Haya de la Torre 주도로 설립된 사회민주주의 좌파 성향의 미주인민혁명동맹당APRA(Partido Aprista Peruano), 톨레도Toledo 전 대통령이 1994년 설립한 자유민주주의 중도 성향의 Peru Posible당(Perú Posible), 1956년 테리Terry 전 대통령이 설립한 민족민주주의 중도 성향의 민중행동당(Acción Popular), 1966년 민주기독당에서 분리된 기독민주주의 중도우파 성향의 인민기독당PPC(Partido Popular Cristiano), 1996년 루이스 카스타녜다Luis Castañeda가 설립(2006년 등록)한 자유보수주의 성향의 국민연대당(Solidaridad Nacional) 등이 있다.
사법부
페루의 사법체제는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으며, 사법행정권은 행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일반법원은 3심제로 운영되며, 대법원(Corte Suprema de Justicia)과 28개의 고등법원(Corte Superior de Justicia), 195개의 지방법원(Juzgado de Primera Instancia)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법원은 대법원장 및 18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데, 대법원장은 중앙법관회의CNM(Consejo Nacional de Magistrados)에서 과반수 투표로 선출하며 임기는 2년이고, 대법관의 임기는 70세 정년제로 운영된다. 대법원은 위헌심사 사건을 제외한 모든 일반사건의 최종심을 담당한다.
그밖에 소장, 부소장 및 5명의 재판관 등 7명으로 구성되는 헌법재판소(Tribunal Constitucional)를 두고 있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 및 행정기관으로부터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보호를 위해 인권보호관(Defensor del Pueblo: 국회에 의해 임명되는 옴부즈만) 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또한 특별법원으로 군사(경찰)법원을 두고 있는데, 군사법원 재판관에는 현역군인 임명이 금지되며 국가사법위원회CNM(Consejo Nacional de la Magistradura), 공개 시험을 통해 군사법원 판사를 선발한다.
대외정책
페루의 대외정책 기조는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반인종차별주의를 바탕으로 유엔헌장 및 미주기구 헌장의 원칙과 규범을 준수하고, 국내문제 불간섭 원칙을 존중하며, 국제조약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편성 원칙 및 다원주의에 입각한 세계 모든 국가와의 관계 수립과 개발도상국과의 협력 강화, 신국제경제질서의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주요 대외정책의 방향으로 삼고 있다.
페루는 역내 중남미 국가와의 결속 강화를 위해 남미국가연합(UNASUR) 메카니즘을 통해 역내 국가 간 협력 및 국제위기에 공동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고, 지역 통합 강화 방안으로 브라질과 전략적 동맹관계의 심화 발전을 추진 중이며, 콜롬비아 및 에콰도르와의 합동각료회의 정기적 개최 및 브라질과의 인프라 연결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서방 선진국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서는 과거 비동맹 지향 외교에서 탈피하여 미국, 캐나다, EU 등 대서방국 외교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고 있고, 당초 우려와는 달리 기존 자유무역협정(FTA)을 존중, 시행하는 한편 추가적 FTA 협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페루는 미국, 중국, 일본, 캐나다, 멕시코, 파나마, 한국, 태국 등 주요 교역국들과 FTA를 체결하였으며, 터키, 인도, 호주, 브라질 등과는 협상을 개시하거나 검토 중에 있다.
페루는 또한 아태 지역 외교에 정책적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데, 1998년 APEC에 가입하여 태평양 연안국과의 관계 강화를 추진(2008년 APEC 정상회의 개최)하였고, 최근에는 개방정책의 상징적 의미의 하나로 환태평양공동체TPP(Trans-Pacific Partnership) 협상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동 협상에서 인프라 개발, 저소득 지역 소득 증가 등 비전통적 이슈에 대한 논의를 강조하고 있다. 페루는 칠레와 함께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과 모두 FTA를 체결한 유일한 중남미 국가로서 아시아 주요 국가와의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경제
페루의 경제 개황
2000년 이래 연평균 6% 수준의 빠른 성장을 구가해온 페루 경제는 에너지 광업 분야를 중심으로 한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유치정책에 힘입어, 최근에도 2010년 8.5% 2011년 6.5%, 2012년 6.0%, 2013년 5.8%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페루 경제가 고도성장을 시현해온 가장 큰 기반은 무엇보다도 근래 광물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원자재 수출액이 전체 수출의 70% 차지)에 기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14년에는 중국 등 주요 국가의 자원 수입 감소, 페루의 주요 수출품목인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성장속도가 둔화되어 예년보다 낮은 2.4%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2015년에는 3.3%로 회복세를 보였으며, 2016년에는 3.6%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페루는 최근 석유 생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석유 수요의 3분의 1을 에콰도르 등 인접 국가에서 수입하고 있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15.4조 입방피트로 남미 4위이나 가스 처리시설, 파이프라인 부족 등으로 생산량 및 소비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확대하고 있어 향후 LNG 생산 및 천연가스 소비가 증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페루는 석유 가스 이외에도 은, 동, 연, 아연 등의 광물자원도 풍부한 나라이다. 부존량에 있어서는 은이 세계 2위, 동과 아연이 세계 3위, 연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생산량에 있어서는 은, 동, 아연이 세계 3위, 연이 세계 4위를 차지할 정도이다.
페루의 경제 전망
페루는 2013년에 이어 2014년에도 약 25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는데, 최근 출범한 쿠진스키 정부는 대내적으로 부가가치세율 인하, 인프라 투자 촉진, 대규모 광산 개발 프로젝트 재개 등의 정책을 통한 경제성장 도모 및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되며, 대외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을 두고 2021년에 OECD 가입을 위한 개혁, 개방정책을 지속 추진해 나가면서 현재 진행 중인 터키, 인도 등과의 FTA 협상 마무리 및 TPP 조기 비준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 기준으로 페루의 10대 수출국은 중국, 미국, 스위스, 캐나다, 브라질, 일본, 칠레, 스페인, 독일, 콜롬비아이고, 10대 수입국은 중국, 미국, 브라질, 멕시코, 에콰도르, 독일, 한국(7위), 칠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이다.
2016년의 글로벌 경제는 성장세가 이어지고는 있으나 성장 속도는 예상보다 더딘 반면 경기 하강 리스크는 고조되고 있는 국면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의 최근 분석 자료에 의하면, 대내외의 악재로 인해 중남미 대부분 국가들의 경제 성장 모멘텀이 크게 위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루의 경제 성장률은 2015년 3.3%에서 2016년 3.6%, 2017년 4.2%로 꾸준히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주요 광산 프로젝트의 본격 가동으로 인한 구리 생산 증가가 향후 2년간 페루의 경제 성장 모멘텀을 견인할 전망이다. 아울러, Lima Metro 2호선 건설, 남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Energy Node와 Talara 정유 시설 현대화 프로젝트 등과 같은 주요 인프라 건설 공사의 지속도 페루의 경제 성장세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반면, 하반기로 예정된 총선과 엘니뇨 강세는 페루의 경제 성장 모멘텀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리스크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개인 소득세 및 법인세 인하 정책과 공공 인프라 투자에 대한 재정 지출 확대로 말미암아 재정수지 악화 추세는 당분간 피할 수 없을 전망인데, 2016년과 2017년 말 페루의 GDP 대비 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각각 3.0% 및 2.7%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페루의 공공부채 부담은 여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인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중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 원자재 가격의 약세 기조 지속, 재정 여건 및 교역 조건 악화 등을 고려할 때, 페루 솔화의 약세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급격한 통화 약세를 저지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제한적인 외환시장 개입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수출 가격이 전반적으로 약세 기조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량 확대에 힘입은 구리 수출 급증은 페루의 경상수지 개선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구체적으로, 최근 2년간 GDP 대비 4.0%에 달했던 페루의 경상수지 적자폭은 2016년 3.2%, 2017년 3.1%로 꾸준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불어 올해 하반기 이후 통화 하락세가 진정되고, 엘니뇨 효과 퇴조에 따른 식료품 가격의 안정세가 나타나면서, 고조되었던 인플레이션 압력이 서서히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에 따라 2015년 말 4.4%를 기록했던 페루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6~2017년 말 각각 3.2% 및 2.8%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와 문화
사회문화적 특징
페루는 라틴계 백인, 혼혈 메스티소, 원주민 인디오 및 기타 아시아계 이민으로 구성된 다인종 국가이다. 아메리카 토착민은 1520년대 900만으로 추산되다가 1620년에는 60만여 명으로 급감하였는데 주로 전염병 때문이었다. 식민지 시대에 스페인인과 아프리카인들이 토착민과 더불어 뒤섞였다. 독립 이후 서유럽인들이 들어왔으며, 1850년대에는 중국인들이 유입되면서 페루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종 구성에 있어, 전체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는 백인은 정치 경제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고, 37%의 메스티소mestizo(토착민과 유럽인의 혼혈)는 실질적인 산업 노동을 담당하고 있다. 45%인 원주민 인디오는 주로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며 대체로 문맹률이 높은 빈곤계층이며, 약 3%를 점유한 흑인 및 동양인은 주로 일본 및 중국계로서 상업에 종사하는 계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페루 사회는 경제적 불균등이 심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계층별, 지역별로 빈부차가 극심하여 전체 인구의 상위 10%가 전체수입의 37.9%를 차지하고 하위 10%가 총수입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페루 통계청(INEI) 자료에 따르면, 2001년 54.3%에 이르던 빈곤층이 2006년 44.5%, 2010년 31.3%, 2011년 27.8%, 2012년 25.8%, 그리고 2013년에는 23.9%를 기록하였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35%가 수도 리마에 거주하며, 국내 총생산의 44.8%를 생산하고 있다. 페루 정부가 지정한 최저 생계비 이하의 수입으로 생활하는 인구는 2007년 14.2%였고 2013년에는 6.2%로 2007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대폭 감소하였으나 2013년 극빈층은 143만 2000명(6.2%)에 달하는 실정이다.
페루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5,000여 년의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이다. 서기 15세기 잉카제국이 안데스산맥의 일대를 중심으로 지금의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칠레 및 아르헨티나 북부일대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면서 찬란한 잉카문화를 형성하였다. 잉카제국은 건축, 금은 세공, 수리관개, 농업 및 기하학적인 요새 구축 등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일으켰으나, 1532년 스페인에 정복당한 후 라틴계 서구문화가 도입됨으로써 그 시절부터 원주민, 페루 고유 문화와 유럽풍 문화가 병존하는 특징을 띠게 되었다.
인구 분포 및 언어
페루의 인구는 3,044만여 명으로 추산되며, 남아메리카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2015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인구 25만 명 이상의 주요 도시로 리마Lima, 아레키파Arequipa, 트루히요Trujillo, 치클라요Chiclayo, 이키토스Iquitos, 피우라Piura, 쿠스코Cusco, 침보테Chimbote, 우앙카요Huancayo, 푸카이파Pucallpa, 타크나Tacna, 훌리아카Juliaca 등이 있다. 언어는 공용어는 에스파냐어, 케추아어, 아이마라어이다. 페루인의 83.9%가 에스파냐어를 제1언어로 사용한다. 그 외 토착 언어 중 가장 비중 있는 케추아어는 인구의 13.2%가 구사한다.
종교와 교육
2007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12세 이상 인구의 81.3%가 자신의 종교를 로마 가톨릭이라 답하였고, 12.5%는 개신교(Evangelical)이며, 3.3%는 다른 종교이고, 2.9%는 무교였다. 전체 문맹률은 6.2%(2012년)이고, 도시 지역 인구의 문맹률은 3.3%, 농촌 지역은 15.9%로 도농 간의 격차가 크다. 또한, 여성의 9.3%, 남성의 3.1%가 문맹으로 남녀 간 격차도 크다. 초중등 교육은 의무 교육이며, 공립학교는 무료이다. 초등학교는 6년, 중고등학교는 5년 과정이고, 대학은 초급대학 2년, 일반대학 5년이다.
문학과 음악
페루 문화는 주로 아메리카 토착민과 스페인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여러 민족의 영향을 받았다. 페루의 예술 전통은 잉카 이전 문화의 세련된 도기, 직물, 보석, 조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 이후 예술은 침체를 겪다가 20세기 초 토착주의(Indigenismo)가 등장하고, 이후 페루의 예술은 외국과 지역 예술 조류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된다.
페루 문학은 구전 전승에서 시작되었다. 독립 이후 리카르도 팔마Ricardo Palma(1833~1919)를 중심으로 풍속주의(Costumbrismo)와 낭만주의가 주된 흐름을 이루었으며, 20세기의 주요 작가들로는 시로 알레그리아Ciro Alegría(1909~1967),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José María Arguedas(1911~1969), 세사르 바예호César Vallejo(1892~1938) 등의 작가가 나왔다. 20세기 중반 이후 페루 문학은 라틴아메리카 문학 붐을 이끈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 1936~) 등이 있다.
현대의 페루 음악은 안데스, 스페인, 아프리카의 음악이 섞여 있다. 식민지 시대 이전에는 케나quena와 팅야tinya가 널리 쓰인 악기였다가 스페인의 정복으로 기타나 하프와 같은 새로운 악기가 도입되었으며, 차랑고charango처럼 혼합된 악기가 발전하기도 하였다. 페루 음악에서 나타나는 아프리카의 영향으로는 그 리듬과 타악기 카혼cajón 등이 있다. 페루의 민속춤으로는 마리네라marinera, 톤데로tondero, 우아이노huayno 등이 있다.
페루 대부분의 축제와 행사는 카톨릭의 주요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고원지대의 인디안 마을의 카톨릭 축제는 보통 전통적인 농경 축제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주요 행사들 중에는 카르나발(2~3월), 춤과 행진을 펼치는 가장 큰 잉카 축제인 인티 라이미(6월 24일), 페루 독립 기념일(7월 28일), 만령제(11월 2일), 푸노Puno에서 열리는 푸노데이(11월 5일) 등이 있다.
언론
페루의 주요 일간지로는 정부기관지인 엘 패루아노El Peruano, 중도 보수지인 엘 코메르시오El Comercio, 중도적 성격의 엑스프레소Expreso, 진보지인 코레오Correo, 좌파적 성격의 라 레푸불리카La República, 중도적 성격의 경제지 제스티온Gestión과 진보적 성향의 페루 21Perú 21 등이 있다.
라디오 및 TV 방송국으로는 수도 리마에 라디오 방송국 68개와 텔레비전 방송국 25개 등 총 301곳이 있고, TV 채널은 7개가 있다.
풍속 및 관습
페루인의 의복 문화를 살펴보면, 도시의 중산층 이상은 현대식의 일반적 복장을 하지만 안데스 고원지대의 인디오들은 손으로 짠 모직옷(전통의상)을 입는 편이다.
페루 원주민들은 진한 보라색 옥수수를 끓여서 설탕을 혼합한 음료수인 치차모라다Chicha Morada를 마시는데, 이 음료는 대중화되어 리마 내 식당 어디에서나 주문할 수 있으며 식사 때 흔히 마시는 콜라, 잉카 콜라와 더불어 페루인들이 즐겨 마시는 국민 음료가 되어 있다. 페루의 대표적인 고유 술로는 포도를 원료로 한 증류주인 피스코Pisco가 있다. 페루인들은 피스코에 레몬주스 및 설탕 약간과 계란 흰자위를 혼합하여 만든 칵테일인 피스코 사우어Pisco Sour를 흔히 즐겨 마시며, 피스코에 각종 과일이나 다른 재료를 혼합하여 만든 칵테일 종류가 많이 개발되어 있다. 페루 요리는 아메리카 토착민과 스페인의 요리가 섞인 것으로 일반적인 요리로는 안티쿠초스anticuchos, 세비체ceviche, 파차만카pachamanca 등이 있다. 페루 요리는 재료와 요리법이 다양하여 최근에 주목받고 있다.
페루는 가족 제도에 있어 가톨릭 의식을 존중하며, 대가족 제도의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가족 중심의 생활양식을 따르고 가정 단위로 생일, 종교적 축제 및 행사를 가지는 것이 보편적이다.
한국과 페루의 관계
외교 관계
페루와 우리나라는 1963년 수교하여 2013년 수교 5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꾸준한 교류와 협력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양국은 2011년 발효된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경제적인 관계 또한 두터워지고 있다. 비동맹 핵심국인 페루는 1989년 알란 가르시아Alan García 집권 1기 당시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한반도 정책과 관련하여 페루는 원칙적으로 중립 불간섭 태도 견지 및 남북한 간 대화에 의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페루는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전수받아, 각종 경제개발 사업에 한국의 경험과 기술 이전을 기대하고 있으며, 특히 2011년 8월 발효된 한-페루 FTA 등 협력 채널을 통해 상호보완적 경제 기술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한국과 페루는 1993년 후지모리Alberto Fujimori 대통령의 국빈 방한,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국빈 방문, 2005년 톨레도Alejandro Toledo 대통령의 국빈 방한,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 2009년 가르시아Alan García 대통령의 국빈 방한 및 공식 실무 방한(2010년), 2012년 우말라Ollanta Humala 대통령의 국빈 방한,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의 국빈 방문 등 8회의 정상 상호 방문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이 긴밀화되었다.
또한 2008년 11월 페루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통해 양국이 ‘포괄적 협력 관계’를 수립하는 데에 합의하였고, 나아가 2012년 5월 우말라Ollanta Humala 대통령의 국빈 방한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양국은 1974년 이래 최근까지 무역, 경제·과학·기술, 문화, 투자, 관광, 사법, 과세 등 각종 협정을 체결하였고, 고위정책협의회와 경제공동위, 민간경협위, 자원협력공동위, FTA 공동위원회, 산업협력위원회 등의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1991년부터 2014년까지 7,263만 달러 규모의 개발협력(KOICA) 지원을 하고 있다. 개발협력은 프로젝트 개발조사, 초청연수, 봉사단원 및 전문가, 민관협력(기업/NGO/대학), 기타 물자지원, 긴급원조, 개발조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경제 관계
우리나라의 대對페루 수출입 규모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3년 유로존 경제 위기 시 다소 축소되었으나, 전반적으로는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대對페루 수출입 규모(28.2억 달러)는 2004년(5.3억 달러) 대비 5.3배가 증가하였고, 동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대對세계 교역은 2.3배 증가(4,783억 달러→10,987억 달러), 대對중남미 교역은 3.0배 증가(183억 달러→542억 달러)하였다. 특히, 2011년 8월 한-페루 FTA 발효 이후 양국 간 교역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4년 우리나라의 대對페루 교역 규모는 수출액이 13.9억 달러(자동차, 합성수지, 휴대폰 등), 수입액이 14.3억 달러(동, 은, 아연, 수산가공품 등)로 약 4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對페루 직접 투자는 1994년 이후 2014년 9월말까지 누계 기준으로 총 139건, 42.0억 달러(우리측 신고 기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로 투자 업종은 주로 광물·에너지 분야(58건 39.2억 달러)에 집중되어 있다. 페루의 대對한 투자는 2014년 말까지 26건, 1,322천불로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재외동포 현황
페루 재외 동포로는 1974년 박만복 배구 감독의 페루여자국가대표팀 감독 부임이 이민 1호였다. 1980년대 초까지 체육인(태권도 사범), 병아리 감별사 등 중심의 10여 세대가 초기 이민사회를 형성했고, 1980년대 후반 페루 연안 오징어잡이 수산업 진출과 더불어 1993년 이후 페루 치안 및 경기 안정으로 한인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상당수의 한인은 볼리비아, 파라과이, 칠레 등 인접국으로부터 재이민한 경우이다. 페루에 있는 우리 교민은 약 1,500명 수준이며, 90% 이상이 수도 리마시에 거주(이 중 체류자 약 200여 명)하고 있는데, 주로 의류·원단수입 판매, 중고차 판매, 수산업 등에 종사한다.
페루-북한 관계
북한은 1975년 리마에 통상대표부를 설치하였으며, 이후 양국 관계는 별다른 진전 없이 유지되다가, 1985년 7월 취임한 사회주의 성향의 가르시아 대통령 집권 1기인 1988년 12월 양국 간에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페루는 주중 대사를 북한 대사로 겸임토록 하고 있다.
대북한 수교 이후 페루 정부는 한국과의 기존 우호관계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극적으로 대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남북한 관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중립·불간섭 태도를 견지하는 한편, 남북한 간 대화에 의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하고 있다.
페루의 대북 교역량은 2013년 기준으로 수출 49.8만 달러(동식물생산품, 동, 의류 등), 수입 55.2만 달러(기계류, 플라스틱, 운수설비 등)를 기록하고 있다.
페루의 주요 도시
리마Lima리마는 페루의 수도로 태평양 해안에 있으며 주변은 사막으로 1년 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도시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안데스 산맥으로부터 내려오는 풍부한 지하수로 농작물의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리마는 혼잡하고 오염, 소음도 심각하며 가끔은 날씨도 불쾌하지만 주민들은 친절하고 우호적이다. 볼거리들로는 수많은 금, 은, 보석 유물들을 소장한 오로 델 페루Oro del Peru박물관과 선사시대 전시물로 유명한 국립 고고 인류학 박물관을 들 수 있다. 카타콤으로 유명한 산 프란시스코 교회나 산토 도밍고 교회도 유명하며, 폴보스 아술레스Polvos Azules를 포함한 리마의 많은 시장들에서는 물건들과 수공예품을 구입할 수 있다. 교외의 바란코Barranco에는 많은 저렴한 식당들과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들이 있어 배낭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다른 교외인 미라플로레스Miraflores는 시내에서 가장 좋은 상점, 식당과 유흥가들이 있다.
리마 남부 연안에는 이슬라스 바이예스타스Islas Ballestas, 페닌술라 데 파라카스Peninsula de Paracas, 피스코Pisco 등이 있다. 더 남쪽에 있는 나스카Nazca는 도기나 BCE 900년에서 CE 600년 사이에 세워졌다고 추정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스카 유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레키파Arequipa와 티티카카Titicaca
하얀 도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아레키파는 엘 미스티El Misti화산을 포함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 도시의 특징은 실라르라고 불리는 밝은 색의 화산 바위로 만든 많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이다. 유명한 건축물로는 수녀원이었던 콘벤토 데 사니타 카탈리나Convento de Sanyta Catalina,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스이는 카사 리켓츠Casa Richketts 등이다. 콜카Colca협곡은 아레키파에서 갈 수 있는 인기 있는 여행지이다. 티티카카 호수는 3820m 높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이다. 또 남미에서 가장 큰 호수이기도 하다. 높은 고도 때문에 공기도 굉장히 맑으며 새파란 물은 특히 인상적이다.
쿠스코Cusco
안데스 고원 분지에 있는 쿠스코는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케추아어로 ‘세상의 배꼽’ 즉 ‘세상의 중심’이란 뜻이다.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 16세기 스페인에 의해 정복당하고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스페인 건축물이 들어섰다. 하지만 주요 건물들은 잉카 시대 건물의 기초 위에 지어졌다. 몇 번의 지진에도 끄떡없이 견딘 태양의 신을 모시던 신전 코리칸차Qorikancha의 기초위에 산토도밍고 성당을 지었고, 주요 건물의 외벽 역시 잉카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도시는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다른 유적으로는 근처에 삭사이와만Sacsayhuam, 켄코Qenko, 푸카 푸카라Puca Pucara, 탐보 마챠이Tambo Machay 등이 있다.
쿠스코 서쪽에는 마추픽추Machu Picchu가 있다. 우루밤바 강 옆 절벽, 해발 2,400미터의 높은 곳에 정교하게 다듬은 돌로 만든 공중도시다. 마추피추 중앙의 큰 바위 위에는 1미터 내외로 솟은 돌기둥이 있다. 이를 인티와타나Intihuatana라고 하는데, 케추아어語로 ‘태양을 끌어당기는 자리’라는 뜻으로, 이 기둥은 ‘태양을 묶는 기둥’인 셈이다. 태양을 숭배하는 잉카인들은 해마다 동지가 되면 이 돌기둥 바로 위에 떠 있는 태양을 붙잡아 매려고 돌기둥에 끈을 매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인티와타나는 해시계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인티’는 태양이란 뜻이고, ‘와타나’는 기둥이란 뜻으로 도시의 중앙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래쪽에서는 위로 올려다보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카라스Caraz
침보테Chimbote 동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카라스는 매력적인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과 주위에 아름다운 산책로들이 있다. 유명한 양가누코Llanganuco에서 산타 크루스SantaCruz까지의 트레킹 코스가 끝나는 지점이며 아름다운 라구나 파론Laguna Paron과 카뇬 엘 플라토Canon del Plato로 가는 길 여행의 출발점이다.
이슬라 타킬레Isla Taquile
이슬라 타킬레는 푸노Puno에서 24km를 지나 있는 티티카카 호수의 섬이다. 잉카 이전의 축대와 작은 유적들이 여기저기 보이며, 호텔, 전기, 도로, 탈것, 그리고 개도 없다. 푸노의 정박장에서 출발하는 배가 매일 있으며 섬까지 네 시간 정도 소요된다.
세친Sechin
세친이 있는 곳은 침보테의 남쪽 50km로 이곳은 페루에서 BCE 1500년경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마을 중 하나이다. 주요 볼거리로는 신전의 외벽으로 잔인한 전사들이 사로잡은 포로의 창자를 꺼내는 조각으로 덮여있다.
야리나코챠Yarinacocha
U자 모양의 호수인 야리나코챠는 아마존 유역에 있는 푸칼파Pucallpa에서 북동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있다. 한때는 우카얄리Ucayali 강의 한 부분이었으나 현재는 육지로 둘러싸여 있다. 쉽보Shipbo 인디안 마을을 방문하거나 수공예품을 사고, 카누를 타고 가 호수 주위의 자연을 둘러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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