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선령의 감응으로 얻은 도방(정현근)
[가가도장]
정현근 성도
안산상록수도장에서 신앙하는 정현근 성도는 상제님 신앙으로 뭉친 친정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과 협력 속에서 도방 완성의 최종 착점을 앞두고 있는 도생이다. 진리를 만나고 그것을 가정에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은 가족인 어머니와 언니의 헌신적 조력 때문이었고, 그 기운을 바탕으로 신앙력을 키운 그는 스스로 평생신앙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 이제 가족에게 사랑과 신앙의 정신을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화룡점정의 가정도장 완결을 위해 정성을 쏟고 있는 정 성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끝없이 푸른 5월의 하늘 아래에 형형색색의 풍선처럼 동심의 아름다움이 메아리치는 어린이날 오후, 취재진은 경기도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안산安山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는 한 도방을 찾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주어야 할 요란스런 초립동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 대신에 ‘가족’이라는 말이 제대로 어울리는 도인들의 신앙과 삶의 이야기를 만나 흥미롭고도 감동적인 대담을 나눌 수 있었기에, 이날 도방 인터뷰는 부푼 가슴으로 마음껏 뛰노는 어린이들의 심성처럼 막힘이 없고 수수한 기운이 내내 향기를 발한 시간이 되었다.
가가도장을 찾은 날은 어린이날과 함께 절기상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였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생명의 씨앗이 본격적인 성장에 접어드는 전환점을 맞는 날이다. 아파트 2층에 자리한 정현근 성도의 도방도 이제 제대로 안착해 자리를 잡는 발전의 도상에 있다. 도방을 마련한 시간은 적지 않지만 그간 이런저런 오해와 사정으로 인해 가정의 중심에 자리를 잡기까지는 일정한 과정이 필요했다. 가정도장의 화목한 모습은 첫 분위기에서 드러났다. 도방의 주인 정현근 성도와 친정어머니로 함께 생활하고 계신 정금순 성도, 그리고 모태신앙인 딸과 늦둥이 아들까지 신앙인 네 사람이 취재진을 맞이하면서 보여준 밝고 온화한 기운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거실을 지나 왼쪽 방에 마련된 도방은 단정히 정돈된 느낌이었으나 천신단이 백색의 전용 책장 내부에 모셔져 있는 점이 특이했다. 다섯 식구가 사는 생활공간으로는 집이 다소 좁아 보이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족 중 유일하게 아직 도문에 들어오지 못한 남편에 얽힌 사연이 담겨 있기도 해서 인터뷰를 통해 관련 얘기를 자세히 들은 이후에야 비로소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천신단에 예를 올리고서 물러나와 국통맥 도표가 내걸린 거실 중앙에서 정현근 성도와 어머니 정금순 성도, 그리고 딸인 김경령 성도와 마주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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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근 성도가 상제님 진리를 만난 것은 가족인 언니를 통해서였다. 지난 1992년 입도해 현재 서울강남도장에서 신앙하며 서점관리 등 꾸준한 도정 활동으로 봉사와 신앙의 모범이 되고 있는 정현미 성도가 정 성도의 언니다. 당시에는 정현미 성도도 미혼이었고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을 때였다. 동생인 정현근 성도가 지켜보니, 언니가 어느 날부터 이상한 책을 읽고 이상한 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은근히 걱정을 하면서도 아는 척을 안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언니가 몇 페이지 안 되는 <시간여행>이라는 만화책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권했다. 평소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만화책이니까 별 부담은 없을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그 책을 읽었는데 하루에서 1년으로, 사람의 인생으로 확장되면서 전개되는 시간의 순환성이 똑같은 이치로 ‘우주1년’이라는 커다란 주기를 가진다는 내용이었다. 평소에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책을 보고 나니 정 성도가 늘 가져왔지만 답을 찾지 못했던 의문이 스르륵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깊이 공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성도님들의 사례처럼 진리에 목말라 하거나 종교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던 터라 더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고 했다.
그 후부터 언니는 함께 도장에 가기를 원했고 정 성도는 큰 거부감 없이 도장에 따라다니게 되면서 진리와의 인연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2년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임신했는데 어느 날 언니가 도장 책임자 분과 상담을 해보라고 권하고 나섰다. 그때의 상황에 대해 정 성도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는 진리에 대한 의식이 많이 부족할 때였어요.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었는데, 당시 교정이라 불리던 도장 책임자 분은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 왜곡 등 여러 역사 문제들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저에게 함께 입도해서 잘못된 문제를 바로잡는 정의로운 일에 동참을 하자고 하셨어요. 그 말에 감화를 받은 저는 21일간 약속된 정성수행을 하고 1993년 2월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입도를 했지만 정 성도가 열심히 신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사상신앙이 안된 터라 아이를 출산한 후 도장에 가끔씩 나가서 치성 참석만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신앙으로 인도한 언니는 동생의 신앙을 살뜰히 챙겼다. 입도 이후 3년 동안 매번 태전 증산도대학교 교육에 빠짐없이 정 성도를 데리고 다녔다. 당시는 세종도장 시절이라 교육환경이 여유롭지 못했지만 언니는 모든 교육자료를 두 개 이상 구입해서 늘 동생이 진리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챙기고 배려해 주었다. 언니의 이런 꾸준한 정성이 닿았는지 늘 이끌려 다니던 정 성도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지각이 열리면서 스스로 진리와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과는 달리 태사부님, 사부님의 도훈 말씀이 생생하게 귀에 들어오고 마음으로도 들리기 시작했어요. 정말로 신기하고 강렬한 체험이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언니는 물론이고 조상님들이 얼마나 저 때문에 맘고생을 하셨을지...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저는 상제님 진리와 신앙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저 혼자서 자립신앙도 가능해졌어요.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다른 성도님들 중에 신앙 정착이 잘 안 되는 도제가 있다면 반드시 증대교육 만큼은 꼭 현장 참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니의 정성으로 증산도 신앙을 시작한 정 성도는 온전한 가족신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친정어머니의 포교에 나섰다. 신앙을 한 지 10년이 지나며 가족신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고, 때마침 그 시기는 태사부님과 사부님께서 가족포교의 중요성에 대한 도훈 말씀을 많이 내려 주시던 때였다. 정 성도는 언니와 함께 가정포교를 위한 정성기도와 가정치성을 올리고서 어머니께 함께 신앙하기를 권유했다. 정 성도의 어머니는 평생을 한 절에 다니셨고, 그곳은 어머니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고 굶주렸던 아이들의 끼니를 해결해주던 곳이었으므로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에게 증산도 신앙을 권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 성도는 어느 날 어머니께 말을 건넸다. “엄마~ 언니네 식구도 증산도 신앙을 하고 나도 신앙을 하는데 다녀보니까 참 좋아요. 엄마가 믿으시는 부처님하고 다르지 않아요. 결국 미륵부처님을 신앙하는 거니까 같은 거예요. 자식들이 함께 신앙을 하고 있으니 엄마도 한번 함께해보는 게 어떨까요?”
조심스럽게 드린 권유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선뜻 자식들이 하면서 좋다고 하는데 한번 해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정 성도는 안산에 살고 있었고 어머니는 강원도 원주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진리를 배우겠다는 약속 그대로 21일간 하루도 안 빠지고 원주 도장에 나가 정성수행과 팔관법 교육을 받은 후 2004년 태전 태을궁에서 입도를 했다. 연세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버스를 타고 도장에 가서 교육을 받고 수행을 하는 일은 고마운 일임을 떠나 대단한 정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입도 후에 성금을 모실 때에도 먼저 어머니 방 봉청수 신단에 성금을 올려놓고 정성을 드린 후에 도장에 헌성을 했다. 누가 가르쳐 드린 게 아닌데도 늘 스스로 그렇게 하셨다고 했다. 정 성도의 입장에선 자식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함께 신앙의 길로 합류한 어머니의 신앙이 무척 큰 힘이 되었고, 이후 남동생들도 연이어 신앙을 하게 되는 경사로 이어졌다.
어머니인 정금순 성도에게 딸의 신앙 권유에 흔쾌히 응한 사연을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 “저는 무엇보다 내 자식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게 중요했지요. 그리고 신앙하며 모신다는 미륵불이 제게는 낯설지 않았어요. 또 우리 가족이 평화롭게 한마음으로 사는 걸 제가 원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명료하고도 시원스런 답변이 아닐 수 없었다.
정 성도의 가가도장은 사실 아직은 미완성 상태이다. 다른 가족들이 신앙으로 결합해 힘을 모으고 있지만 남편이 아직 신앙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성도는 남편이 참으로 신의도 있고 착하고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인데 어찌된 일인지 상제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 남편이 도장에 따라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눈 대화 도중 상씨름 이야기를 들어서 그랬는지 반응이 부정적이 되었고 그 후부터는 책도 보지 않고 얘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정 성도는 남편의 심한 신앙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치성 참석도 잘하고 가정에서 청수를 모시고 있었지만 자꾸 남편과 신앙문제로 부딪히며 지치고 힘이 들기 시작하면서 남편이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하나 양보하게 되는 퇴보가 이어졌다. 급기야는 도장에 가거나 증대를 비롯한 여러 교육에 참석하는 것도 제약을 받게 되고 참석을 하더라도 늘 불안하게 마음을 졸여야 했으며, 심지어는 청수조차도 몰래몰래 모시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 당시 남편에게 진리를 전해줄 기회가 왔을 때 이법적으로 제대로 전했어야 했는데 가족이다 보니 방심을 하고 절충하려 했던 것이 남편으로 하여금 신앙을 반대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된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2007년 늦둥이인 막둥이 아들을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어머니 정금순 성도가 정 성도의 집에 와서 함께 살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정 성도가 직장 문제로 육아에 지장이 생겨 어머니가 오셔서 돕기로 하신 것이다. 이렇게 신앙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남편과의 신앙대립이 점점 줄어들었다. 남편은 착하고 예의바른 사람이고 시부모님들이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지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깊었던지라, 정금순 성도가 도장 치성에 참석하고 증대교육에 함께 가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심하게 신앙 반대를 하지는 못하게 된 것이다. 정 성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금씩 도장 치성 참석 횟수를 늘려갔고 남편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집에서 신앙을 같이 하는 가족들과 함께 제물치성도 올렸다. 이는 태사부님과 사부님께서 도훈을 통해 가가도장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강조하셨던 뜻을 어떻게든 따르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그러자 신앙 문제에 있어서 남편이 하나둘씩 양보하게 되었고 급기야 집에서 천신단도 모시게 되는 반전이 일어났다.
정 성도는 도장 참여 신앙이 점점 늘어 가면서 진리중심, 도장중심 신앙에 좀 더 가까워지고 신앙심도 깊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날 신앙문제로 남편과 갈등을 빚었을 때 기간을 정해 놓고 신앙을 하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대립과 다툼을 피하려고 내놓은 타협안치고는 참 궁색하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상제님 진리를 만나 참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기한을 정해놓고 신앙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때는 답답한 마음에 진리의식도 약해서 어처구니없는 약속을 했지만,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중 기도를 올린 뒤 날을 잡아서 남편과 대화를 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증산도 신앙을 할 것이고 죽어서도 증산도 신앙을 하겠다고 다짐했으니까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신기하게도 남편이 자기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왜 자기가 신앙을 그렇게 반대했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의외의 말을 했다. 이에 용기백배해진 정 성도는 다시 가정에 어진과 청수를 모시고 남편이 없는 시간에 가족들과 도방에 모여서 가정치성을 올리기도 했다. 이때부터 개인신앙에 가깝던 정 성도는 도장 중심으로 신앙을 할 수 있었고 부족하지만 구역포감의 보직도 맡게 되었다.
이렇게 신앙 회복 및 안정화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정 성도는 가족들의 신앙을 강화하고 관리하기 위해 뭔가 의미 있는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언니가 ‘태을주 숨 쉬듯 읽기’를 시작해 보자는 제안을 했고 이를 받아들여서 가족들의 근본신앙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붙이고 한 달에 한 번 신앙을 함께하는 가족끼리 모여서 한 달 동안 태을주는 얼마나 읽었고 봉청수와 기도는 얼마나 했는지 서로 공유하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정 성도의 딸과 청포 신도였던 조카에게는 태을주 읽은 만큼 성금을 내주기로 했다. 어청포들은 부모님이 성금을 내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본인이 노력해서 성금을 확보하고 헌성을 할 수 있도록 하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가장 많이 태을주를 읽은 사람에게는 특별히 현금포상도 해줬다. 1독에 1원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상한금을 정해야 할 정도로 아이들은 열심히 태을주를 읽었다. 평소 생활에 쫓겨 태을주를 집중해서 읽는 데에 소홀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바로잡고 가족들의 신앙 결속력을 높이고자 시도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으신 정금순 성도가 대장암 1기에서 2기로 넘어가는 과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평생 고생만 하시고 지금도 막내를 키워주시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병을 얻게 되자 가족들은 크게 상심을 했다. 정 성도는 언니와 상의해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전에 일단 도장에서 어머니 치병치성을 올리기로 하고 도장 책임자 및 성도들과 공유를 했다. 안산상록수 도장은 개인적인 크고 작은 일이라도 무엇이던 도장에서 끌러내려는 노력을 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병이 났으면 치병치성을, 사업이 부진하면 사업번성치성을 올리고 모두 함께 참여하여 조력하고 기도해주는 신앙 문화가 있었기에, 치병치성을 올릴 때 많은 성도들이 함께 참여해 제물도 준비하고 기도에도 동참해주었다. 또한 집에서는 어머니가 수술하기 전까지 언니네 가족과 정 성도의 가족들이 모두 함께 어머니 신유를 하기 시작했다. 목욕재계를 하고 청수를 모시고 기도를 올린 뒤 누워 계신 어머니 주변에 빙 둘러앉아서 신유를 했다. 신유에 참가한 가족들은 병마를 내몰겠다는 생각으로 운장주도 읽고 어머니 몸에 태을주를 넣어드린다는 생각으로 일심으로 신유를 했다. 어머니는 검은색의 척신을 보기도 했고 뭉클뭉클하고 뜨거운 기운이 몸속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어느 순간 차가운 기운이 한쪽으로 쑥쑥 빠져나가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이 당시 가족들은 정말로 굳게 뭉쳐 합심을 했고 지금도 이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에 도장 수호사를 비롯한 성도들이 도방에 방문해서 정금순 성도를 격려하고 식사도 함께 하였는데, 그 자리에 정 성도의 남편도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무사히 수술을 잘 받으셨고 가족과 모든 분들의 정성으로 다행히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은 상태라는 확인을 받았다. 이후에도 신유를 지속했고 가정에서 제물치성도 계속 올렸다. 어느 정도 기력을 찾은 어머니는 도장 식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그런 어머니 마음을 받아주었고, 도방에서 수호사를 비롯한 많은 도장 성도들이 참석해 치성을 올리면서 집안 가득 태을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일은 도방의 기운이 전체적으로 바뀌는 분기점이 되었고, 남편도 그 시기에 마음을 많이 누그러뜨리게 되었다.
정 성도는 협심과 정성이 얼마나 도방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지 경험을 하고 용기를 내서 그날부터 매일 105배례와 태을주 수행을 시작했고 남편을 위해 지속적인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1년 이상 기도를 하다 보니 문득 시댁 천도식을 올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천도식 날을 잡고 시댁조상님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고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늦둥이 아들 세준이에게도 집중해서 태을주를 읽히기 시작했다. 그때 5살이던 아들은 도장 치성시간에 주문을 따라하는 것 외에는 집에서 태을주를 읽히지는 않았는데 도문에서 태을주 100만독 읽기 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매일매일 태을주를 읽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족 체크리스트에도 함께 올려 관리했다. 어린 아들에게 가볍고 재밌게 접근하기 위해서 첫날은 1독부터 시켰고, 매일매일 횟수를 늘려갔다. 도장 성도들도 칭찬과 격려로 지원을 해준 덕분에 재미가 붙은 아들은 점차 발전해 300백독까지 스스로 읽으며 자랑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들이 불쑥 “엄마, 왜 아빠는 태을주를 안 읽어요?” 하고 물었다. 순간 당황해서 “아~ 아빠는 아직 태을주를 못 배워서 몰라서 안 하는 거야”라고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제가 저번에 아빠한테 태을주 가르쳐 줬단 말이에요”라고 했다. 순간 아들한테 어쩔 수 없이 태을주를 배웠을 남편을 생각하니 정성도는 웃음이 났다고 했다. 이런 아들과 함께 첫 번째 시댁조상천도식을 위한 21일 정성수행에 돌입했다.
첫 번째 시댁 천도식은 남편한테는 비밀로 하고 진행을 했었는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언니와 도장책임자의 조언을 받아들여 천도식을 이틀 남겨두고 용기를 내서 남편에게 말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남편은 완강하게 반대를 했다. 심한 언쟁을 벌인 후 남편은 배낭을 메고 지리산으로 떠났다. 불안한 마음이었지만 잘될 거라는 성도들의 위로 말씀을 위안으로 삼아 무사히 천도식을 마치고 집으로 갔다. 그날 밤에 남편도 집으로 돌아왔는데 크게 화를 내면 어쩌나 걱정했던 남편은 의외로 화를 내서 미안했다면서 부모님은 물론 일곱 살 때 병으로 돌아가신 자신의 형까지도 천도식을 올려준 것에 대해 눈물까지 흘리며 고마워했다. 더구나 돌아가신 형님은 정 성도가 동생인 줄로 잘못 알고 있었고 이름도 알 수 없어서 돌림자로 이름을 지어서 위패를 올렸었는데, 남편은 형이었다고 하면서 다음번에 다시 한 번 천도식 날짜를 잡으면 형님과 조상님 명세를 제대로 알려주고 남편도 함께 참석을 해보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정 성도는 조상님께 천도식을 올려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남편을 진리로 인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재차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작년에는 두 번째 시댁 천도식을 올려드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천도식 때도 별일도 아닌 일로 남편과 작은 언쟁이 있었고 결국 남편은 함께 천도식에 참석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큰댁에 연락해서 족보까지 찾아서 현조부님 내역을 알려줬고 이번엔 제대로 된 위패를 올릴 수 있었다. 시댁의 천도식 이후 남편은 정 성도의 증산도 신앙에 대해 마음을 많이 열었다. 정 성도는 두 번의 시댁 천도식을 올리면서 남편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고 조상선령님들이 천상에서 남편의 의식을 바꿔주려고 정성을 다하고 계심을 느꼈다고 했다. 이제 세 번째 천도식을 올릴 때에는 반드시 남편도 함께 참석해 상제님 진리로 인도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가정신앙을 할 때 집안의 어른이 함께 신앙을 해주는 것이 정말도 큰 기운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정 성도는 가가도장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하면서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해서 태상종도사님 어진도 제대로 모시고 넓게 천신단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정 성도는 태상종도사님 어진을 모시는 일이 보편화되기 전부터 도방에서 어진을 모셔 왔다. 그것은 어머니의 선물에서 비롯되었다. 정 성도가 어느 날 퇴근해 보니 어머니 정금순 성도가 태상종도사님 사진을 월간개벽지에서 취해 액자로 제작해서 선물로 준비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생각지도 못한 어머니의 이 선물이 도방을 더욱 풍요롭고 안정감 있게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정 성도는 천신단의 규모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가가도장에서 중요한 건 자신의 신앙 모습을 자녀들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교육의 관점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에 대한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집에 자주 오는 조카애가 있어요. 그 애가 지금 교회에 다니는데, 방과 후 학교 숙제도 봐주고 저녁도 먹여주는 교회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요. 그 애가 왔을 때 저희 어머니가 ‘교회에 가면 하나님께 부모님 건강하고 열심히 살 수 있게 해주세요 하고 빌어. 하나님이 상제님이야’라고 말씀하셨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제 아들 세준이가 ‘아닌데, 우리는 먼저 조상님께 빌고 그 다음 조상님이 상제님께 빌어야 되는 건데’라고 말했다는 걸 딸아이한테 전해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제 아들이 어려서 그냥 시키니까 생각 없이 도전을 읽는 줄 알았는데 생각을 하면서 도전을 읽었던 거예요. 그래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사소한 이야기 속에서도 진리를 전달해줘야겠구나, 의식을 틔워줘야겠구나, 가정에서부터 아주 어려도 계속해서 평상시에 늘 은연중에라도 진리의식을 넣어줘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이 이야기는 도방이 단순한 신앙 유지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간 가가도장이 제대로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해 직면한 많은 난관들을 헤쳐와야 했고, 그 과정에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정성을 올리고 하는 과정에서 정 성도는 많은 것을 깨닫고 얻었다. 생각이 지극해지면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말씀처럼 정 성도도 늘 신앙의식을 잊지 말고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그에게 가가도장이란 한 가족이 같은 마음으로 신앙의지를 굳건히 하고 조상님들과 함께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도장이며, 작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기운이 자리 잡은 곳이다. 실제로 가가도장을 통해 정 성도는 가족의 단합을 굳게 하였고 조상님과 신명의 감응을 체험했으며 일을 성사시키는 크고 작은 열쇠를 체험으로 얻었다. 정 성도는 이곳 가가도장에서부터 진실된 신앙이 시작된다면 더 나아가 지역도장에서도 늘 도장 중심 신앙, 진리중심 신앙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정 성도의 향후 신앙 계획과 각오를 물었다. 정 성도는 “신유술 3년의 시간대는 바로 우리 일꾼들이 정말로 올바른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나서 상제님께서 바라시는 천하사를 하는 일꾼, 태을랑이 되어 천지의 수족 노릇을 하게 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저의 23년 신앙의 모습을 뒤돌아 봤을 때 정말 많이 변해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청수도 제대로 못 모시고 하루 종일 태을주를 변변히 읽지도 못했던 제 신앙의 초기 모습에서 벗어나, 지금은 인간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신앙을 위한 최선의 삶을 위해 늘 기도하고 노력하면서 저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행동하는 일꾼이 되어서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께서 내려주시는 큰 기운을 올곧이 내려 받는 일꾼이 되고자 맹세하는 기도를 하면서 반드시 신유술 3년 동안 태을주 조화 성신을 내려 받아서 크게 쓰임을 받는 일꾼이 될 것을 다짐합니다. 남편도 꼭 진리로 인도해서 천지일월께 보은하고 조상님께도 보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제가 살고 있는 선부동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작지만 규모 있는 도방 공간을 마련해 반드시 사람을 살려내는 가가도장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정리를 했다.
어머니 정금순 성도는 “꾸준히 자식 따라 열심히 신앙하고 싶습니다. 도장에 가면 만나는 분마다 반갑고 보는 것마다 즐거워서 참 좋습니다. 우리 가족이 잘 되고 늘 같이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는 말을 남겼고, 딸 김경령 성도는 “모태신앙을 하여 지금까지 왔지만 더 노력하고 공부해서 신앙한 만큼 진리를 제대로 알고 싶어요. 예전에는 엄마의 교과서적인 신앙이 신기했지만 이제는 배우고 함께하며 스스로 성숙해지고 싶습니다.”라는 각오를 밝혔다.
이번 정현근 성도의 가가도장을 통해 우리는 도방이 바로 서려면 가족신앙의 중심이 굳건해야 함을 확인했다. 정 성도의 경우, 입도 시에는 언니가 입도 후에는 어머니가 도방신앙의 중심추 역할을 했다. 더불어 가족의 결속력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에서 오는 것이며, 가족이 서로 결속하고 참여하는 경험을 통해 도방의 기운이 상승하고 단단해진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신앙 초기에 언니로부터의 증대 참석 훈련이 누적되면서 신앙의 지각이 열렸고, 자녀에 대한 엄마의 생활 속 근본신앙 지도가 보이지 않는 차이를 만들었으며, 도방이 훌륭한 신앙교육장의 역할도 한다는 점을 살펴보면서 근본신앙의 훈련이 신앙력을 좌우한다는 결론을 얻기도 했다. 또한 신앙의 일관성과 강한 의지력이 난관을 극복하는 묘수가 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 모든 과정을 가족과 함께 이루어 온 정 성도의 도방에 커다란 감화와 성령의 은혜가 충만해서 지역 사람들을 진리로 구원하는 도방의 메카가 되기를 축원 드린다.
안산상록수도장에서 신앙하는 정현근 성도는 상제님 신앙으로 뭉친 친정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과 협력 속에서 도방 완성의 최종 착점을 앞두고 있는 도생이다. 진리를 만나고 그것을 가정에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은 가족인 어머니와 언니의 헌신적 조력 때문이었고, 그 기운을 바탕으로 신앙력을 키운 그는 스스로 평생신앙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 이제 가족에게 사랑과 신앙의 정신을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화룡점정의 가정도장 완결을 위해 정성을 쏟고 있는 정 성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언니가 전한 한 권의 책
끝없이 푸른 5월의 하늘 아래에 형형색색의 풍선처럼 동심의 아름다움이 메아리치는 어린이날 오후, 취재진은 경기도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안산安山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는 한 도방을 찾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주어야 할 요란스런 초립동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 대신에 ‘가족’이라는 말이 제대로 어울리는 도인들의 신앙과 삶의 이야기를 만나 흥미롭고도 감동적인 대담을 나눌 수 있었기에, 이날 도방 인터뷰는 부푼 가슴으로 마음껏 뛰노는 어린이들의 심성처럼 막힘이 없고 수수한 기운이 내내 향기를 발한 시간이 되었다.
가가도장을 찾은 날은 어린이날과 함께 절기상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였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생명의 씨앗이 본격적인 성장에 접어드는 전환점을 맞는 날이다. 아파트 2층에 자리한 정현근 성도의 도방도 이제 제대로 안착해 자리를 잡는 발전의 도상에 있다. 도방을 마련한 시간은 적지 않지만 그간 이런저런 오해와 사정으로 인해 가정의 중심에 자리를 잡기까지는 일정한 과정이 필요했다. 가정도장의 화목한 모습은 첫 분위기에서 드러났다. 도방의 주인 정현근 성도와 친정어머니로 함께 생활하고 계신 정금순 성도, 그리고 모태신앙인 딸과 늦둥이 아들까지 신앙인 네 사람이 취재진을 맞이하면서 보여준 밝고 온화한 기운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거실을 지나 왼쪽 방에 마련된 도방은 단정히 정돈된 느낌이었으나 천신단이 백색의 전용 책장 내부에 모셔져 있는 점이 특이했다. 다섯 식구가 사는 생활공간으로는 집이 다소 좁아 보이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족 중 유일하게 아직 도문에 들어오지 못한 남편에 얽힌 사연이 담겨 있기도 해서 인터뷰를 통해 관련 얘기를 자세히 들은 이후에야 비로소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천신단에 예를 올리고서 물러나와 국통맥 도표가 내걸린 거실 중앙에서 정현근 성도와 어머니 정금순 성도, 그리고 딸인 김경령 성도와 마주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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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근 성도가 상제님 진리를 만난 것은 가족인 언니를 통해서였다. 지난 1992년 입도해 현재 서울강남도장에서 신앙하며 서점관리 등 꾸준한 도정 활동으로 봉사와 신앙의 모범이 되고 있는 정현미 성도가 정 성도의 언니다. 당시에는 정현미 성도도 미혼이었고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을 때였다. 동생인 정현근 성도가 지켜보니, 언니가 어느 날부터 이상한 책을 읽고 이상한 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은근히 걱정을 하면서도 아는 척을 안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언니가 몇 페이지 안 되는 <시간여행>이라는 만화책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권했다. 평소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만화책이니까 별 부담은 없을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그 책을 읽었는데 하루에서 1년으로, 사람의 인생으로 확장되면서 전개되는 시간의 순환성이 똑같은 이치로 ‘우주1년’이라는 커다란 주기를 가진다는 내용이었다. 평소에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책을 보고 나니 정 성도가 늘 가져왔지만 답을 찾지 못했던 의문이 스르륵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깊이 공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성도님들의 사례처럼 진리에 목말라 하거나 종교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던 터라 더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고 했다.
그 후부터 언니는 함께 도장에 가기를 원했고 정 성도는 큰 거부감 없이 도장에 따라다니게 되면서 진리와의 인연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2년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임신했는데 어느 날 언니가 도장 책임자 분과 상담을 해보라고 권하고 나섰다. 그때의 상황에 대해 정 성도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는 진리에 대한 의식이 많이 부족할 때였어요.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었는데, 당시 교정이라 불리던 도장 책임자 분은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 왜곡 등 여러 역사 문제들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저에게 함께 입도해서 잘못된 문제를 바로잡는 정의로운 일에 동참을 하자고 하셨어요. 그 말에 감화를 받은 저는 21일간 약속된 정성수행을 하고 1993년 2월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입도를 했지만 정 성도가 열심히 신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사상신앙이 안된 터라 아이를 출산한 후 도장에 가끔씩 나가서 치성 참석만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신앙으로 인도한 언니는 동생의 신앙을 살뜰히 챙겼다. 입도 이후 3년 동안 매번 태전 증산도대학교 교육에 빠짐없이 정 성도를 데리고 다녔다. 당시는 세종도장 시절이라 교육환경이 여유롭지 못했지만 언니는 모든 교육자료를 두 개 이상 구입해서 늘 동생이 진리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챙기고 배려해 주었다. 언니의 이런 꾸준한 정성이 닿았는지 늘 이끌려 다니던 정 성도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지각이 열리면서 스스로 진리와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과는 달리 태사부님, 사부님의 도훈 말씀이 생생하게 귀에 들어오고 마음으로도 들리기 시작했어요. 정말로 신기하고 강렬한 체험이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언니는 물론이고 조상님들이 얼마나 저 때문에 맘고생을 하셨을지...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저는 상제님 진리와 신앙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저 혼자서 자립신앙도 가능해졌어요.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다른 성도님들 중에 신앙 정착이 잘 안 되는 도제가 있다면 반드시 증대교육 만큼은 꼭 현장 참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딸을 믿고 신앙의 길에 함께한 어머니
언니의 정성으로 증산도 신앙을 시작한 정 성도는 온전한 가족신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친정어머니의 포교에 나섰다. 신앙을 한 지 10년이 지나며 가족신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고, 때마침 그 시기는 태사부님과 사부님께서 가족포교의 중요성에 대한 도훈 말씀을 많이 내려 주시던 때였다. 정 성도는 언니와 함께 가정포교를 위한 정성기도와 가정치성을 올리고서 어머니께 함께 신앙하기를 권유했다. 정 성도의 어머니는 평생을 한 절에 다니셨고, 그곳은 어머니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고 굶주렸던 아이들의 끼니를 해결해주던 곳이었으므로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에게 증산도 신앙을 권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 성도는 어느 날 어머니께 말을 건넸다. “엄마~ 언니네 식구도 증산도 신앙을 하고 나도 신앙을 하는데 다녀보니까 참 좋아요. 엄마가 믿으시는 부처님하고 다르지 않아요. 결국 미륵부처님을 신앙하는 거니까 같은 거예요. 자식들이 함께 신앙을 하고 있으니 엄마도 한번 함께해보는 게 어떨까요?”
조심스럽게 드린 권유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선뜻 자식들이 하면서 좋다고 하는데 한번 해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정 성도는 안산에 살고 있었고 어머니는 강원도 원주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진리를 배우겠다는 약속 그대로 21일간 하루도 안 빠지고 원주 도장에 나가 정성수행과 팔관법 교육을 받은 후 2004년 태전 태을궁에서 입도를 했다. 연세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버스를 타고 도장에 가서 교육을 받고 수행을 하는 일은 고마운 일임을 떠나 대단한 정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입도 후에 성금을 모실 때에도 먼저 어머니 방 봉청수 신단에 성금을 올려놓고 정성을 드린 후에 도장에 헌성을 했다. 누가 가르쳐 드린 게 아닌데도 늘 스스로 그렇게 하셨다고 했다. 정 성도의 입장에선 자식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함께 신앙의 길로 합류한 어머니의 신앙이 무척 큰 힘이 되었고, 이후 남동생들도 연이어 신앙을 하게 되는 경사로 이어졌다.
어머니인 정금순 성도에게 딸의 신앙 권유에 흔쾌히 응한 사연을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 “저는 무엇보다 내 자식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게 중요했지요. 그리고 신앙하며 모신다는 미륵불이 제게는 낯설지 않았어요. 또 우리 가족이 평화롭게 한마음으로 사는 걸 제가 원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명료하고도 시원스런 답변이 아닐 수 없었다.
도방에 찾아온 위기와 반전
정 성도의 가가도장은 사실 아직은 미완성 상태이다. 다른 가족들이 신앙으로 결합해 힘을 모으고 있지만 남편이 아직 신앙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성도는 남편이 참으로 신의도 있고 착하고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인데 어찌된 일인지 상제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 남편이 도장에 따라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눈 대화 도중 상씨름 이야기를 들어서 그랬는지 반응이 부정적이 되었고 그 후부터는 책도 보지 않고 얘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정 성도는 남편의 심한 신앙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치성 참석도 잘하고 가정에서 청수를 모시고 있었지만 자꾸 남편과 신앙문제로 부딪히며 지치고 힘이 들기 시작하면서 남편이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하나 양보하게 되는 퇴보가 이어졌다. 급기야는 도장에 가거나 증대를 비롯한 여러 교육에 참석하는 것도 제약을 받게 되고 참석을 하더라도 늘 불안하게 마음을 졸여야 했으며, 심지어는 청수조차도 몰래몰래 모시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 당시 남편에게 진리를 전해줄 기회가 왔을 때 이법적으로 제대로 전했어야 했는데 가족이다 보니 방심을 하고 절충하려 했던 것이 남편으로 하여금 신앙을 반대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된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2007년 늦둥이인 막둥이 아들을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어머니 정금순 성도가 정 성도의 집에 와서 함께 살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정 성도가 직장 문제로 육아에 지장이 생겨 어머니가 오셔서 돕기로 하신 것이다. 이렇게 신앙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남편과의 신앙대립이 점점 줄어들었다. 남편은 착하고 예의바른 사람이고 시부모님들이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지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깊었던지라, 정금순 성도가 도장 치성에 참석하고 증대교육에 함께 가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심하게 신앙 반대를 하지는 못하게 된 것이다. 정 성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금씩 도장 치성 참석 횟수를 늘려갔고 남편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집에서 신앙을 같이 하는 가족들과 함께 제물치성도 올렸다. 이는 태사부님과 사부님께서 도훈을 통해 가가도장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강조하셨던 뜻을 어떻게든 따르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그러자 신앙 문제에 있어서 남편이 하나둘씩 양보하게 되었고 급기야 집에서 천신단도 모시게 되는 반전이 일어났다.
종신신앙 선언으로 정면 돌파를 하다
정 성도는 도장 참여 신앙이 점점 늘어 가면서 진리중심, 도장중심 신앙에 좀 더 가까워지고 신앙심도 깊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날 신앙문제로 남편과 갈등을 빚었을 때 기간을 정해 놓고 신앙을 하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대립과 다툼을 피하려고 내놓은 타협안치고는 참 궁색하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상제님 진리를 만나 참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기한을 정해놓고 신앙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때는 답답한 마음에 진리의식도 약해서 어처구니없는 약속을 했지만,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중 기도를 올린 뒤 날을 잡아서 남편과 대화를 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증산도 신앙을 할 것이고 죽어서도 증산도 신앙을 하겠다고 다짐했으니까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신기하게도 남편이 자기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왜 자기가 신앙을 그렇게 반대했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의외의 말을 했다. 이에 용기백배해진 정 성도는 다시 가정에 어진과 청수를 모시고 남편이 없는 시간에 가족들과 도방에 모여서 가정치성을 올리기도 했다. 이때부터 개인신앙에 가깝던 정 성도는 도장 중심으로 신앙을 할 수 있었고 부족하지만 구역포감의 보직도 맡게 되었다.
협일로 만들어간 가족들의 근본신앙
이렇게 신앙 회복 및 안정화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정 성도는 가족들의 신앙을 강화하고 관리하기 위해 뭔가 의미 있는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언니가 ‘태을주 숨 쉬듯 읽기’를 시작해 보자는 제안을 했고 이를 받아들여서 가족들의 근본신앙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붙이고 한 달에 한 번 신앙을 함께하는 가족끼리 모여서 한 달 동안 태을주는 얼마나 읽었고 봉청수와 기도는 얼마나 했는지 서로 공유하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정 성도의 딸과 청포 신도였던 조카에게는 태을주 읽은 만큼 성금을 내주기로 했다. 어청포들은 부모님이 성금을 내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본인이 노력해서 성금을 확보하고 헌성을 할 수 있도록 하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가장 많이 태을주를 읽은 사람에게는 특별히 현금포상도 해줬다. 1독에 1원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상한금을 정해야 할 정도로 아이들은 열심히 태을주를 읽었다. 평소 생활에 쫓겨 태을주를 집중해서 읽는 데에 소홀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바로잡고 가족들의 신앙 결속력을 높이고자 시도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치병을 위해 뭉친 가족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으신 정금순 성도가 대장암 1기에서 2기로 넘어가는 과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평생 고생만 하시고 지금도 막내를 키워주시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병을 얻게 되자 가족들은 크게 상심을 했다. 정 성도는 언니와 상의해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전에 일단 도장에서 어머니 치병치성을 올리기로 하고 도장 책임자 및 성도들과 공유를 했다. 안산상록수 도장은 개인적인 크고 작은 일이라도 무엇이던 도장에서 끌러내려는 노력을 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병이 났으면 치병치성을, 사업이 부진하면 사업번성치성을 올리고 모두 함께 참여하여 조력하고 기도해주는 신앙 문화가 있었기에, 치병치성을 올릴 때 많은 성도들이 함께 참여해 제물도 준비하고 기도에도 동참해주었다. 또한 집에서는 어머니가 수술하기 전까지 언니네 가족과 정 성도의 가족들이 모두 함께 어머니 신유를 하기 시작했다. 목욕재계를 하고 청수를 모시고 기도를 올린 뒤 누워 계신 어머니 주변에 빙 둘러앉아서 신유를 했다. 신유에 참가한 가족들은 병마를 내몰겠다는 생각으로 운장주도 읽고 어머니 몸에 태을주를 넣어드린다는 생각으로 일심으로 신유를 했다. 어머니는 검은색의 척신을 보기도 했고 뭉클뭉클하고 뜨거운 기운이 몸속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어느 순간 차가운 기운이 한쪽으로 쑥쑥 빠져나가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이 당시 가족들은 정말로 굳게 뭉쳐 합심을 했고 지금도 이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에 도장 수호사를 비롯한 성도들이 도방에 방문해서 정금순 성도를 격려하고 식사도 함께 하였는데, 그 자리에 정 성도의 남편도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무사히 수술을 잘 받으셨고 가족과 모든 분들의 정성으로 다행히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은 상태라는 확인을 받았다. 이후에도 신유를 지속했고 가정에서 제물치성도 계속 올렸다. 어느 정도 기력을 찾은 어머니는 도장 식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그런 어머니 마음을 받아주었고, 도방에서 수호사를 비롯한 많은 도장 성도들이 참석해 치성을 올리면서 집안 가득 태을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일은 도방의 기운이 전체적으로 바뀌는 분기점이 되었고, 남편도 그 시기에 마음을 많이 누그러뜨리게 되었다.
남편을 위한 정성기도를 올리다
정 성도는 협심과 정성이 얼마나 도방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지 경험을 하고 용기를 내서 그날부터 매일 105배례와 태을주 수행을 시작했고 남편을 위해 지속적인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1년 이상 기도를 하다 보니 문득 시댁 천도식을 올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천도식 날을 잡고 시댁조상님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고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늦둥이 아들 세준이에게도 집중해서 태을주를 읽히기 시작했다. 그때 5살이던 아들은 도장 치성시간에 주문을 따라하는 것 외에는 집에서 태을주를 읽히지는 않았는데 도문에서 태을주 100만독 읽기 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매일매일 태을주를 읽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족 체크리스트에도 함께 올려 관리했다. 어린 아들에게 가볍고 재밌게 접근하기 위해서 첫날은 1독부터 시켰고, 매일매일 횟수를 늘려갔다. 도장 성도들도 칭찬과 격려로 지원을 해준 덕분에 재미가 붙은 아들은 점차 발전해 300백독까지 스스로 읽으며 자랑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들이 불쑥 “엄마, 왜 아빠는 태을주를 안 읽어요?” 하고 물었다. 순간 당황해서 “아~ 아빠는 아직 태을주를 못 배워서 몰라서 안 하는 거야”라고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제가 저번에 아빠한테 태을주 가르쳐 줬단 말이에요”라고 했다. 순간 아들한테 어쩔 수 없이 태을주를 배웠을 남편을 생각하니 정성도는 웃음이 났다고 했다. 이런 아들과 함께 첫 번째 시댁조상천도식을 위한 21일 정성수행에 돌입했다.
시댁 천도식과 남편의 변화
첫 번째 시댁 천도식은 남편한테는 비밀로 하고 진행을 했었는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언니와 도장책임자의 조언을 받아들여 천도식을 이틀 남겨두고 용기를 내서 남편에게 말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남편은 완강하게 반대를 했다. 심한 언쟁을 벌인 후 남편은 배낭을 메고 지리산으로 떠났다. 불안한 마음이었지만 잘될 거라는 성도들의 위로 말씀을 위안으로 삼아 무사히 천도식을 마치고 집으로 갔다. 그날 밤에 남편도 집으로 돌아왔는데 크게 화를 내면 어쩌나 걱정했던 남편은 의외로 화를 내서 미안했다면서 부모님은 물론 일곱 살 때 병으로 돌아가신 자신의 형까지도 천도식을 올려준 것에 대해 눈물까지 흘리며 고마워했다. 더구나 돌아가신 형님은 정 성도가 동생인 줄로 잘못 알고 있었고 이름도 알 수 없어서 돌림자로 이름을 지어서 위패를 올렸었는데, 남편은 형이었다고 하면서 다음번에 다시 한 번 천도식 날짜를 잡으면 형님과 조상님 명세를 제대로 알려주고 남편도 함께 참석을 해보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정 성도는 조상님께 천도식을 올려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남편을 진리로 인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재차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작년에는 두 번째 시댁 천도식을 올려드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천도식 때도 별일도 아닌 일로 남편과 작은 언쟁이 있었고 결국 남편은 함께 천도식에 참석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큰댁에 연락해서 족보까지 찾아서 현조부님 내역을 알려줬고 이번엔 제대로 된 위패를 올릴 수 있었다. 시댁의 천도식 이후 남편은 정 성도의 증산도 신앙에 대해 마음을 많이 열었다. 정 성도는 두 번의 시댁 천도식을 올리면서 남편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고 조상선령님들이 천상에서 남편의 의식을 바꿔주려고 정성을 다하고 계심을 느꼈다고 했다. 이제 세 번째 천도식을 올릴 때에는 반드시 남편도 함께 참석해 상제님 진리로 인도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가정신앙을 할 때 집안의 어른이 함께 신앙을 해주는 것이 정말도 큰 기운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도방은 신앙 성공의 살아있는 교육장
정 성도는 가가도장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하면서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해서 태상종도사님 어진도 제대로 모시고 넓게 천신단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정 성도는 태상종도사님 어진을 모시는 일이 보편화되기 전부터 도방에서 어진을 모셔 왔다. 그것은 어머니의 선물에서 비롯되었다. 정 성도가 어느 날 퇴근해 보니 어머니 정금순 성도가 태상종도사님 사진을 월간개벽지에서 취해 액자로 제작해서 선물로 준비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생각지도 못한 어머니의 이 선물이 도방을 더욱 풍요롭고 안정감 있게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정 성도는 천신단의 규모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가가도장에서 중요한 건 자신의 신앙 모습을 자녀들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교육의 관점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에 대한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집에 자주 오는 조카애가 있어요. 그 애가 지금 교회에 다니는데, 방과 후 학교 숙제도 봐주고 저녁도 먹여주는 교회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요. 그 애가 왔을 때 저희 어머니가 ‘교회에 가면 하나님께 부모님 건강하고 열심히 살 수 있게 해주세요 하고 빌어. 하나님이 상제님이야’라고 말씀하셨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제 아들 세준이가 ‘아닌데, 우리는 먼저 조상님께 빌고 그 다음 조상님이 상제님께 빌어야 되는 건데’라고 말했다는 걸 딸아이한테 전해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제 아들이 어려서 그냥 시키니까 생각 없이 도전을 읽는 줄 알았는데 생각을 하면서 도전을 읽었던 거예요. 그래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사소한 이야기 속에서도 진리를 전달해줘야겠구나, 의식을 틔워줘야겠구나, 가정에서부터 아주 어려도 계속해서 평상시에 늘 은연중에라도 진리의식을 넣어줘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이 이야기는 도방이 단순한 신앙 유지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간 가가도장이 제대로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해 직면한 많은 난관들을 헤쳐와야 했고, 그 과정에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정성을 올리고 하는 과정에서 정 성도는 많은 것을 깨닫고 얻었다. 생각이 지극해지면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말씀처럼 정 성도도 늘 신앙의식을 잊지 말고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그에게 가가도장이란 한 가족이 같은 마음으로 신앙의지를 굳건히 하고 조상님들과 함께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도장이며, 작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기운이 자리 잡은 곳이다. 실제로 가가도장을 통해 정 성도는 가족의 단합을 굳게 하였고 조상님과 신명의 감응을 체험했으며 일을 성사시키는 크고 작은 열쇠를 체험으로 얻었다. 정 성도는 이곳 가가도장에서부터 진실된 신앙이 시작된다면 더 나아가 지역도장에서도 늘 도장 중심 신앙, 진리중심 신앙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보은하고 행동하는 도방을 위하여
인터뷰 말미에 정 성도의 향후 신앙 계획과 각오를 물었다. 정 성도는 “신유술 3년의 시간대는 바로 우리 일꾼들이 정말로 올바른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나서 상제님께서 바라시는 천하사를 하는 일꾼, 태을랑이 되어 천지의 수족 노릇을 하게 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저의 23년 신앙의 모습을 뒤돌아 봤을 때 정말 많이 변해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청수도 제대로 못 모시고 하루 종일 태을주를 변변히 읽지도 못했던 제 신앙의 초기 모습에서 벗어나, 지금은 인간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신앙을 위한 최선의 삶을 위해 늘 기도하고 노력하면서 저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행동하는 일꾼이 되어서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께서 내려주시는 큰 기운을 올곧이 내려 받는 일꾼이 되고자 맹세하는 기도를 하면서 반드시 신유술 3년 동안 태을주 조화 성신을 내려 받아서 크게 쓰임을 받는 일꾼이 될 것을 다짐합니다. 남편도 꼭 진리로 인도해서 천지일월께 보은하고 조상님께도 보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제가 살고 있는 선부동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작지만 규모 있는 도방 공간을 마련해 반드시 사람을 살려내는 가가도장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정리를 했다.
어머니 정금순 성도는 “꾸준히 자식 따라 열심히 신앙하고 싶습니다. 도장에 가면 만나는 분마다 반갑고 보는 것마다 즐거워서 참 좋습니다. 우리 가족이 잘 되고 늘 같이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는 말을 남겼고, 딸 김경령 성도는 “모태신앙을 하여 지금까지 왔지만 더 노력하고 공부해서 신앙한 만큼 진리를 제대로 알고 싶어요. 예전에는 엄마의 교과서적인 신앙이 신기했지만 이제는 배우고 함께하며 스스로 성숙해지고 싶습니다.”라는 각오를 밝혔다.
이번 정현근 성도의 가가도장을 통해 우리는 도방이 바로 서려면 가족신앙의 중심이 굳건해야 함을 확인했다. 정 성도의 경우, 입도 시에는 언니가 입도 후에는 어머니가 도방신앙의 중심추 역할을 했다. 더불어 가족의 결속력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에서 오는 것이며, 가족이 서로 결속하고 참여하는 경험을 통해 도방의 기운이 상승하고 단단해진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신앙 초기에 언니로부터의 증대 참석 훈련이 누적되면서 신앙의 지각이 열렸고, 자녀에 대한 엄마의 생활 속 근본신앙 지도가 보이지 않는 차이를 만들었으며, 도방이 훌륭한 신앙교육장의 역할도 한다는 점을 살펴보면서 근본신앙의 훈련이 신앙력을 좌우한다는 결론을 얻기도 했다. 또한 신앙의 일관성과 강한 의지력이 난관을 극복하는 묘수가 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 모든 과정을 가족과 함께 이루어 온 정 성도의 도방에 커다란 감화와 성령의 은혜가 충만해서 지역 사람들을 진리로 구원하는 도방의 메카가 되기를 축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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