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 천지 일꾼의 도

[태상종도사님 말씀]
道紀 132년 2월 3일,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증산도대학교
[말씀요약] 증산도 상제님 신앙은 오직 심법으로 천지 일에 참여하는 신앙이다. 우리는 상제님을 신앙하는 신도로서, 신도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우리 자신부터 상제님 진리를 알아야 한다. 선천에서 후천으로 건너가는 길은 오직 하나, 증산도 상제님 진리를 타고서만 다음 세상에 갈 수 있게 되어져 있다. 천지에서 60억 인류를 다 죽이는데 다음 세상을 가는 생맥 붙은 길, 생문방이 바로 증산도다. 증산도는 선천에서 후천으로 건너가는 가교架橋다. 상제님 진리를 타고서만 새 세상을 갈 수가 있다.

포교 하나를 하면 자식 두는 것하고 똑같다. 상제님 진리를 전해 주면 교육을 시켜서 나보다 더 잘 믿는 신도로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그 사람도 육임을 짜게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잘되고 못되고, 그 승부가 어디서 나느냐 하면 포교를 얼마만큼 했느냐 하는 데서 결정이 된다. 그래서 상제님이 공功 중에 가장 큰 공은 천지에 쌓는 공이며 공은 포덕이 가장 크다고 하셨다. 앞으로 천지에 공 쌓은 대가로 도통을 받는다. 그러니까 얼마만한 도통을 받느냐 하는 것이 이번에 우리 신도들이 하기에 달려 있다. 열 명 포교한 사람 다르고 스무 명 포교한 사람 다르고 서른 명 포교한 사람 다르다.

증산도 신도들은 세 가지 특수한 복을 가져야 한다. 고생복, 욕복, 일복. 그 세 가지를 복을 가지지 않고서는 상제님 신도가 되기 어렵다. 그냥 잠 잘 새도 없이 뛰어야 하니까 고생복을 가져야 하고, 상제님 믿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 안 듣고 욕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욕복이 있으며, 상제님 일은 해도 해도 끝도 없는 일이니까 일복이 있다. 그런 특수한 세 가지 복을 가져야 한다. 그 세 가지 복의 대가가 백만 배도 더 차례가 온다. 욕먹은 것만큼, 고생한 것만큼 일한 것만큼 대가가 있다는 말이다.

우선 점입가경으로 몇 명씩 포교를 하다 보면 상제님 진리가 머릿속에 각인이 된다. 상제님 진리가 제대로만 머릿속에 입력되면 포교할 때 신바람도 나고 몸도 가벼워진다. 태을주 하나만 가지고서도 포교를 얼마고 할 수가 있다. 내가 거듭거듭 얘기했지만 절대로 액면 그대로를 받아들여 잘 믿어야 한다. 내가 상제님 진리를 대신해서 공사를 뿌리내리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진리의 사도로서 진리를 대변한다. 그리고 나는 거짓이 없는 사람이다. 상제님 진리는 또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 하니까 암만 바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그건 좀 뒷전으로 미뤄 두어라. 개인의 욕심 야망, 그런 것 다 내던지고 그저 상제님 사업에 전부 푹 묻혀서 살아라. 살고 나서 따져야 될 것 아닌가?

우리 신도들은 일한 것만큼 대복을 받는다. 하니까 그런 줄들을 알고, 서로 밀고 잡아당기고 해서 포교를 해라. 이게 다 한 가족이다. 혈통으로 말하면 형제하고 똑같다. 그러니 다 그렇게 친히 화합해서 일을 하란 말이다.



오직 심법으로 천지 일에 참여한다


증산도를 신앙하는 신도로서 우리 상제님이 참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신도는 여기에 한 사람도 없을 줄로 알고, 다시 한 번 우리 신앙인의 사명, 신도로서의 사명을 이 시간을 통해서 한마디 말해 주고 싶다.

내가 상제님 도장을 ‘증산도’라고 3변 간판을 붙이고서 종도사의 위치에서 이런 것을 서이필지書而筆之 해서 써 붙인 사실이 있다.

“도득기인道得其人하고, 인득기도人得其道라야 기도其道가 가성可成이라.”

‘도득기인, 천지의 도도 천지의 도를 믿을 수 있는 그 사람을 얻어야 되고, 인득기도라야, 사람이 아무리 신앙을 하고 싶어도 시의에 적절하고 천리를 집행하는 도를 만나야, 기도가 가성이라, 도와 사람이 서로 합치되어 그 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하는 말이다.

옛날에 범준范浚이라고 하는 사람이 좌우명座右銘에 뭐라고 써 붙였냐 하면 “참위삼재參爲三才하니 왈曰 유심이唯心爾로다.”라고 했다. 천지인을 삼재라고 한다. 하늘, 땅, 사람.

사람이 삼재에 참여하는데 오직 마음이라는 말이다. 사람이 무슨 육신으로서 천지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심법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심야자心也者는 일신지주一身之主라.” 마음이라 하는 것은 한 몸뚱이의 주인이다. 내 몸뚱이의 주인은 내 마음인 것이다.


우주변화원리를 글로 쓴 한동석 선생


상제님 진리는 유불선, 서교 등 기존 문화권의 진액을 뽑아 모아서 만사지萬事知 문화를 여는 문화다.

유교가 만사지 문화가 아니고 불교가 참선을 위주로 하지만 만사지 문화가 아니다. 그 사람들하고 우주변화원리 같은 것을 얘기하다 보면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아무런 방법이 없다. 지구상에 우주변화원리를 가르치는 데도 없고 아는 데도 없다. 세계 박사를 다 똘똘 뭉쳐서 갖다 놓아도 우주변화원리를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주역』을 읽은 사람이 오죽이나 많은가? 『주역』이 나온 지 5, 6천년이 잔뜩 됐는데 사람들이 대개가 『주역』은 점하는 책이라고 해 버린다.

이 과학 문명 시대에 사람들을 상제님 진리권으로 유도하는데, 내가 생각다 못해서 우주변화원리 도표를 그렸다. 우리 개벽책 같은 데에 나오지 않는가. 내가 25살 먹어서 그걸 그려서, 천지가 둥글어 가는 틀에다가 상제님 진리를 짜 맞춰서 포교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무슨 방법이 없다. 왜 그러냐? 상제님 천지공사가 100% 신명 얘기이기 때문이다. 지식이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뭐 그런 것도 같은데 그 시기가 납득이 안 되니까 ‘글쎄, 아들 대에 가서나 그렇게 될라나? 아, 애들 여위살이나 시켜놓고 한 10년 후에 좀 한가해지면 하겠다.’고 한다.

내가 24살에 8.15를 맞이했는데 그냥 세월을 보낼 수도 없고, 그래서 동양문화의 진수를 전부 다 추려서 우주변화원리 도표를 짜 놓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글 쓸 시간이 없잖은가. 헌데 얼마 뒤에 그것을 체계화를 시키느라고 한동석이라는 사람이 대신 글을 썼다.

그게 상제님이 부르짖은 것을 김일부가 『정역』으로 쓴 것과 같다. “김일부가 내 일을 하나 했다.”고 하신 게 그 말씀이다.

그렇게 한동석이 상제님 인사를 맡은 사람에게 『우주변화원리』를 써서 줬다. 그 사람은 그것 하나 쓰고서 죽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천지신명들이 그 사람에게 붙어서 “너는 이것이나 써 놓아라.” 한 것이다.

그런데 김일부 선생은 벌써 상제님이 역도 종장으로 추대를 하셨으니 해원을 했지만, 한동석 선생은 아직 해원을 못 하고 있다. 그도 상제님 사업하는 데 한 귀퉁이를 담당한 사람이다.


우리도 개벽장 하느님이신 상제님의 도구가 되자


내가 어떤 경우에 모 신학대학을 한번 방문한 사실이 있다. 헌데 정문을 열고서 보니까 손바닥만 한 큰 글자로 이런 것을 써 붙였다.

“저를 주님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옵소서.”

쉽게 예를 들어 목수라고 할 것 같으면 끌도 필요하고 톱도 필요하다. 그런 기술자가 필요에 의해 도구를 쓰는 것 모양, 주님의 도구로 사용해 달라는 뜻이다.

그렇게 그 사람들은 큰 학교를 요소요소에 지어놓고서 학생들에게 그렇게 강력한 교육을 시킨다. 저를 주님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상제님이 개벽공사를 보셨는데, 우리 신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동안 우리 신도들도 많이 성숙이 됐지만 더 한번 이 시간부터 우리 과거를 각성하고 해서 성숙된 신앙을 해야 되겠다. 우리도 신학교의 학생들과 같이 상제님의 도구가 되자는 말이다.

묶어서 상제님이 “나를 믿는 자는 각기 육임을 짜라.” 하셨다. 다시 말하면 구호대를 짜라는 말씀이다. 아주 솔직히 내가 깨놓고 하는 말이다. 아니 어떻게 해서 구호대라는 문구가 나오느냐? 이번에 다 죽기 때문이다. 그걸 이상하게 알아듣지 말고 지금은 개벽을 하는 때다. 우주의 개벽기가 돼서 상제님이 개벽장으로 오셨다.

그런데 상제님이 와 보시니 여러 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천고千古의 원억冤抑을 품고 죽었다. 인간세상에서 본의 아니게 억울함을 당해서 죽어 넘어간 사람들 신명이 천지에 가득 찼다.

하나 예를 들면, 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하고서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 현장을 가 보면 미끄러져서 발도 붙일 수가 없다. 돌아가면서 그냥 칼날 같이 쌓은 것이다. 만리장성을 보면 그 세상 사람들이 얼마만큼 노고를 들였는지 알 수가 있다. 한 번 끌려가면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거기서 일하다가 죽었다.

또 인류역사에서 전쟁이 암만 길어도 10년 넘도록 쉰 사실이 없다. 사람 씨알이 어지간히 퍼지면 전쟁터에 데려다가 죽여 버렸다. 군대에 오라고 하면 백성은 꼼짝 못 하고 가야 한다. 가다가 죽을망정 끌려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는 관계가 없지만 칼 마르크스, 레닌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스탈린이 공산주의를 실현하면서 수천만을 죽였다.

러시아의 서울이 레닌그라드라고 하는 데였다. 지금 모스크바는 스탈린이 황무지에다가 수도를 다시 세운 것이다. 대권을 가진 사람이 사는 장소 하나를 만들려면 그 주변에 동그랗게 강을 팠다. 그러려면 사람이 1, 2천명 가지고 되겠는가? 그런 역사를 시켰다. 말을 안 들으면 다 죽여 버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상제님이 그 신명들의 해원공사解寃公事를 보셨다. 그래서 상제님 진리가 신명과 사람을 건지는 해원, 상생이다. 그 공사를 보시는 데 9년이 걸렸다.

원신寃神은 정치판으로 투사를 하고 역신逆神은 내적으로 우리 도운에 투사를 하고. 역신과 원신을 그렇게 갈라서 해원을 시키셨다.

그리고 3변 성도가 돼서 세상이 중간에 한 번씩 끊어졌다. 전쟁도 1차 대전 하고서 끊어져 버렸고, 또 얼마 있다 2차 대전이 나왔다가 끊어져 버렸고, 지금 6.25동란이 3차다. 도운도 1변 2변 3변이 있잖은가.

증산도는 선천에서 후천으로 건너가는 외길


우리는 상제님을 신앙하는 신도로서, 신도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우리 자신부터 상제님 진리를 알아야 한다. 『도전』이 닳아 떨어지도록 자꾸 읽다 보면 이해가 된다.

내가 늘 입버릇처럼 말을 하지만 의통목 터지는 시간대까지 그 속에 들어 있다. 그 수많은 것을 하나하나 입력해서 알고서 보면 이해집중이 돼서 자연 알아지는 것이다. 상제님 말씀과 같이 선지후각先知後覺이다. 먼저 알아야 뒤에 깨달아지는 것이다. 상제님 『도전』을 통투通透하면 정답이 나온다. 물을 것도 없이 자연 알아진다, 자연. 왜 죽느냐 하는 문제도 거기에 함축돼 있다.

선천에서 후천으로 건너가는 길이 오직 하나가 있다. 상제님을 믿어서, 증산도 상제님 진리를 타고서만 다음 세상에 갈 수 있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게 외길이다. 길이 두 가지도 없다. 천지에서 60억 인류를 다 죽이는데 다음 세상을 가는 생맥 붙은 길, 생문방이 바로 증산도다. 증산도는 선천에서 후천으로 건너가는 가교架橋다. 상제님 진리를 타고서만 새 세상을 갈 수가 있다.

그런데 상제님은 천지공사를 보셨고, 대도인사大道人事는 내가 맡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다시 더 나올 사람이 없잖은가. 상제님 사업하는 데도 증산도밖에 없잖은가?

그래 상제님 진리 글을 쓰려면 그렇게밖에는 써질 수가 없는 현실이 돼서 “상제 행 천지공사上帝行天地公事하시고, 상제님은 천지공사를 행하시고.” 그리고 상제님 앞에서는 내가 소자小子라고 하는 수밖에 없잖은가. 그래 “소자 정 대도인사小子政大道人事하니, 소자는 대도인사를 다스린다.”고 교육관 상량문上樑文에다가 쓴 사실이 있다.

나는 상제님 진리를 인간 세상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이다. 조금이라도 삿되게 거짓말 하는 사람을 상제님이 이 세상에 내 보냈겠는가. 나는 상제님 진리를 뿌리내리는 외길인생이다. 내가 뭐이가 있나?

이 종도사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라. 상제님 진리는 머리털만큼도 거짓이 없다. 상제님 진리 얘기도 다 할 수가 없는데 무엇 하러 거기에 재주를 부려서 거짓을 첨가할 리가 있나. 이번에 다 죽는다.

전 인류의 생사가 우리 손에 매여 있다


내가 상제님 진리로 하나 더 곁들일 테니 들어 보아라. 이게 내가 노냥 하는 말이다.

“천하창생의 생사가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 상제님 말씀에 천하창생이라는 것은 지금 60억 인류를 얘기한 것이다. “너희들이 잘하면 많이 살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다 죽이는 수밖에 없다.” 또 다시 “천지에서 십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종자는 있어야 쓰지 않겠냐?”

천지에서 다 죽인다. 상제님이 죽이는 것도 아니고, 본래 가을철에 가서는 풀 한 포기 안 남기고서 다 말리게 되어져 있다.

상제님 말씀에 다시 “천지와 같은 대덕大德으로도 춘생추살春生秋殺, 봄에는 물건을 내고 추살, 죽일 살 자 아녀? 가을철에는 죽이는 은위恩威, 은혜와 위엄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천지의 이치, 천지 이법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천지의 생장염장 이법은 어떻게 바꿔놓을 수도 없고 거부해도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에 추살기운을 맞이했다. 아니 죽는 시기를 당했는데, 나중에 가서 알아서 뭘 하나?

내가 가족을 포교하면 내 가정 사람들은 다 사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여기 누구도 혈통에 대한 마음은 똑같잖은가. 가족이 한 사람이라도 죽으면 서운하고 보고 싶고 불쌍하고, 누구도 다 그럴 거란 말이다. 사람인지라 인정상 그러니 가족도 살려줘야 한다.

나는 예외가 될 게다? 우리 가족은 괜찮을 게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봉사를 하라


내가 잘되고 못되고 그런 걸 떠나서, 내 능력으로써 꼭 죽는 사람을 살려준다고 할 것 같으면 사람으로서 그 이상 더 큰 영광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람이 이 세상에 하나 생겨나려면 똥도 수만 번 싸고 오줌도 수만 번 싸고, 철을 알아서 지각이 날 때까지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서 “엄마 저거 뭐야? 엄마 저거 뭐야?” 하고 수만 번을 물어가며 성장하는 것이다. 좀 노력을 해서 그 사람을 살려주면 동티날 일이 있어? 뭐이가 있어?

기독교 같은 데는 봉사를 잘한다. 테레사 수녀는 평생을 행려병자들 똥 닦아 주다가 늙어서 죽었다. 테레사 수녀가 세계 123개 나라에 수백 개 선교 단체를 만들어서 지금도 4천5백여명 수녀들이 봉사를 하고 있다. 기독교 교리가 옳고 그르고 그걸 떠나서, 현실적으로 그네들은 그렇게 봉사를 잘한다.

증산도 신도들은 그렇게 하면 무슨 동티나나? 잘못될 일 있어? 그네들은 바라는 게 없다. 우리 증산도 신도들은 무슨 비전을 찾고 그러지만 그네들은 비전 같은 것도 안 찾는다. 세상을 위해 포교를 해서 봉사를 하란 말이다.

옛날 고고학도 보면 “적덕지가積德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요. 적덕을 한 가정에는 반드시 좋은 경사가 찾아오고. 적악지가積惡之家에 필유여앙必有餘殃이라. 적악한 집구석은 반드시 뒤쫓아 오는 재앙, 악살이 있다.”고 했다.

상제님 진리는 공짜로 하라는 것도 아니다. 상제님 말씀으로 “내게 하나를 바치면 너희들에게 만으로 갚는다.”고 하셨다. 하나를 바치면 만 배를 받는다. 아니, 만 배도 더 받는다.

포교하는 것은 자손을 낳는 것


포교 하나를 하면 자식 두는 것하고 똑같다. 아버지가 씨를 전하고, 어머니 뱃속에서 자식을 낳으니 틀림없이 아버지 어머니다. 그러니 천추만대 내려가도록 과연 내 조상이다 하고 떠받든다.

그것과 같이 도를 전해 주면 도 받은 사람이 조상처럼 떠받든다. 그 사람이 아니면 도를 못 받았을 것 아닌가? 상제님 진리를 못 만났을 것 아닌가?

상제님 진리를 전해 주면 교육을 시켜서 나보다 더 잘 믿는 신도로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그 사람도 육임을 짜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얼마나 많이 퍼지겠나? 그 사람들이 한 번씩 육임을 짜도 벌써 6×6 = 36, 본인까지 해서 42명이다. 한 사람이 도 전해준 것 가지고서 그만큼 퍼진다. 그걸 자식 낳는 데다 대나? 그러면 이 하늘이 끝마칠 때까지 벌어지는 자손들이 얼마나 많겠나?

서울의 박씨 종친회에 내가 잘 아는 간부가 있어서 그 사람보고 서울에 박씨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한 백만 된다고 한다. 한 부모에게서 퍼진 자손이다.

포교를 하면 그 자손들이 자기 시조 할아버지 모양 하늘높이 사당을 짓고서 영세불망 잊지 않고 추대를 하고 제사도 지낸다. 그러니 자손하고 똑같잖은가.

상제님은 자손이 없다. 상제님이 왜 자손 둘 줄을 몰라서 안 두셨나? 상제님은 자손을 두면 역적이 된다. 본의 아니게 세상에서 역적을 만들어 버린다. 상제님 아드님을 떠메고서 별의별 짓을 다 할 것 아닌가? 그런 짓을 하면 그 피해는 누가 입느냐? 우리 국민이 입는다. 그리고 상제님 아드님은 또 본의 아니게 협잡꾼이 된다. 그래서 상제님이 아드님을 안 두셨다.

그렇지만 상제님을 믿는 신도들이 다 상제님의 아들딸이다. 그러면 상제님 진리 그대로 해서 후천 오만년 동안 상제님은 아버지요 태모님은 어머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다 그 자손이다.

여기 있는 우리 신도들이 포교를 하면 하나님도 못 뺏어가고 종도사도 못 뺏어간다. 그게 뺏어지나? 아. 포교를 한 사람이 있고 도를 받은 사람이 있는데.

포교를 많이 하면 그게 후천 오만년 권위요 녹이다. 내가 그렇게만 얘기한다.

포교를 하는 건 자손을 낳는 거라고 생각을 해라. 포교하면 내 자손이다. 아주 틀림없이 꼭 그렇게 되는 것이다.

포교는 천지에 쌓는 가장 큰 공


앞으로 잘되고 못되고, 그 승부가 어디서 나느냐 하면 포교를 얼마만큼 했느냐 하는 데서 결정이 된다. 그래서 상제님이 공 중에 가장 큰 공은 천지에 쌓는 공이다. 공은 포덕이 가장 크다고 하셨다. 포교를 해서 사람 살리는 공, 그게 천지에 쌓는 공이다. 상제님 진리로써 내가 그렇게 풀이를 해 주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포교를 해야 되고, 포교를 하면 신도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켜야 한다. 교육을 시켜야 그 사람이 신앙인도 되고, 정신도가 돼서 그 사람도 또 포교를 할 것이다.

상제님 진리에 통투를 하면 관성제군 같은 대인대의의 공명정대한 사람, 바르고도 큰 사람이 된다. 상제님 진리가 불의를 뿌리뽑고 정의를 규명하는 진리가 돼서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은 진리 가운데에서 살지 않는가. 진리가 정립되면 나라는 인간이 정립되는 것이다.

상제님을 신앙해서 살고 잘도 되려면 포교를 많이 해라. 개인적으로도 살고 난 다음에는 잘돼야 하지 않는가.

상제님 말씀이, 공덕에 따라서 복록도 결정이 된다고 하셨다. 아랫사람이 윗사람 욕을 하면 그 자리에서 입이 삐뚤어진다고 하셨다. 먹고 사는 것까지도 차등이 있다.

상제님 진리가 군사부君師父 진리 아닌가? 상제님의 군사부 진리는 뺏으려고 할 이유도 없고 그것을 넘보려고 할 사람도 없고 넘봐야 되지도 않는 것이다. 아주 그건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건 도리가 없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을 낳은 것보다도 더하다.

전세계를 상제님 진리로 다 덮어서 새 세상을 만드셨으니 감히 상제님과 태모님에게 누가 거역을 할 수가 있나. 그건 아주 엄두도 못 낸다. 후천 오만년 영세토록 상제님의 군사부 진리를 바탕으로 해서 내려간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도들이 포교를 해서 판이 짜지면, 조직체가 그렇게밖에는 도리가 없다. 거기도 군사부다. 내가 인사를 맡은 사람으로서 얘기하는 것이다. 상제님 진리가 그렇게 되어져 있다.

『도전』을 탐독하고 그 정성을 가지고 포교를 많이 해라. 나중에 절대로 누구 원망하지 말고. 그때 가서 ‘아, 내가 포교를 많이 했더라면…,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포교를 좀 더 많이 할 건데, 아뿔사 한발 늦었다.’고 후회하지 말고.

포교를 해서 벌어져 나가면 그게 내 자손이다. 아니 내 자손보다도 더 끔찍하다.

이 세상을 사는 지혜


신앙은 반드시 도장 중심으로 해야 한다. 도장이 거리가 멀면 자주 다닐 수가 없지만, 도장에 가야 상황도 공유하고, 또 신앙 동지는 형제보다도 더 친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근래에 와서 자꾸 강조하는데, 절대로 화합을 해야 한다. 내 편협하고 오만불손한 것을 신앙 동지한테 들키면 나는 평생 안 좋은 사람이 돼 버린다.

여러 천년 묵은 각 아배 자식, 각 핏줄이 모였는데 어떻게 내 생각에 꼭 부합될 수가 있는가? 천치바보가 아니고서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조차도 없다. 아니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에도 의사가 안 맞는데, 어떻게 남남 사이에서 내 비위에 맞기를 바라는가 말이다.

그러니 사람은 이 세상을 살기 위해 처신할 줄을 알아야 된다. 내가 이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 생각에 적응을 해야 한다. 그것 뭐 손해날 것 없잖은가. 화합하지 않으면 그 도장은 절대로 성장을 못 한다. 첫째로 화합해야 한다.

나는 2변 때에 이 한 몸뚱이를 가지고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내 품안에 다 안아버렸다. 그 젊은 시절 동충서돌東衝西突하고 남추북웅南追北應, 말 그대로 용맹스런 장수가 전지에서 냅다 칼춤을 추듯 그렇게 해서 그 일을 다 해 냈다.

그리고 군대를 기르는 것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잖은가? 군대를 길러서 싸우자는 건데, 싸움은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다. 아니 지려면 전쟁을 왜 하나? 아. 질 재판을 왜 하고, 밑지는 장사를 왜 하나? 장사를 하면 반드시 이득을 봐야 되고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포교를 하면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

열매 문화인 상제님 문화는 만사지 문화


만사지 문화를 아까 내가 얘기하다가 말았지만, 공자가 만사지 문화를 못 열었다. 공자는 신도神道를 경이원지敬而遠之라고 했다. 신, 신명은 가까이 할 게 아니라고, 조심해서 멀리하라고 했다. 공자의 지식이 거기까지다.

불교는 참선을 바탕으로 끌고 내려오지만 거기에 만사지 문화가 있나, 기독교에 만사지 문화가 있나?

기존 각색 문화의 진액을 전부 뽑아 모은 상제님 문화가 문화의 열매다.

내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상제님이 금산 미륵불에 임어臨御해 계시면서 경신년 4월에 경주 용담에 있는 최제우에게 신통神通을 내려 주셨다. 최제우가 신통을 받고서 자기가 온 사명을 알았을 것 아닌가? 또 누가 신통을 내려 주었는지도 알 것 아녀?

최제우가 상제님한테 신통을 받아서 대표적으로 주문 걸은 게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다. ‘참 하나님을 모시고서 조화를 정하니 영세만년토록 만사를 아는 은총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제님이 만사지 문화를 여시기 위해 최제우를 내보내신 것이다. 그런데 그가 유학자다. 고리사근한 유도의 테 밖에 벗어나야 되는데 도저히 안 된다. 무슨 도즉천도道卽天道요 학즉동학學卽東學이라고 해 가면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래서 상제님이 “수운이 유도의 테를 벗어나서 참법을 지어내지 못한 고로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서 내가 이 세상에 친히 스스로 나왔다.”고 하셨다.

상제님이 신통을 내려주고 만 4년 만에 신통 기운을 거둬버리셔서, 갑자년에 최제우가 대구 달성공원에서 참형을 당했다. 그러고서 그 8년 후에 상제님이 신미생으로 오셨다.

그러니까 시천주주는 최제우가 내걸기는 했지만 그가 상제님 대행자로 왔기 때문에 상제님 일을 내건 것이다. ‘상제님을 모시고서 조화를 정하니 영세토록 만사를 아는 그 은총을 잊지 못한다.’ 상제님 문화가 만사지 문화다.

지금 무슨 컴퓨터니 뭐니 그게 우리 생활이기로서 크게 도움은 되지만, 별스러운 것이 아니잖은가. 상제님 문화는 신인神人이 합일合一해서 불학이능문장不學而能文章하고 불점이지길흉不占而知吉凶하는, 배우지 않고도 능히 문장이 되고 점치지 않고도 좋고 그른 것을 아는 그런 문화다.

인류문화의 결실이 만사지 문화다. 만사지 문화를 열려고 그 동안 역사적으로 각 종파에서 별스럽게 노력을 다 했지만, 만사지 문화의 문전에도 못 가고 말았다.

인류문화의 과도기적 현실을 다 뭉쳐서 상제님이 신인이 합일하는 만사지 문화를 열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신명도 사람을 만나야 신명 노릇을 하고 사람도 신명을 만나야 사람 노릇을 한다. 내가 늘 입버릇처럼 말을 하지만 신명세계의 조직체와 인간세계의 조직체가 합일이 돼 버린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 만사지 문화가 열린다.

도통은 천지에 공을 쌓은 대가로 받는 것


앞으로 천지에 공 쌓은 대가로 도통을 받는다. 그러니까 얼마만한 도통을 받느냐 하는 것이 이번에 우리 신도들이 하기에 달려 있다. 열 명 포교한 사람 다르고 스무 명 포교한 사람 다르고 서른 명 포교한 사람 다르다.

그러니 하늘땅이 생긴 이후로 증산도 비전보다 더 큰 비전이 어디 있나? 여러 천년 인류역사의 모든 것을 돌돌 뭉쳐서 증산도 신도들에게 다 갖다 맡기는데!

그것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섭리가 맡기는 것이다. 요구한다고 되나? 아. 세상 말로 호박이 그냥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것이다. 받기 싫은가?

어저께도 얘기했지만 상제님 말씀이 “운수를 열어 주어도 이기어 받지 못하면 그 운수가 본처로 돌아가기도 하고 또는 그 수를 남에게 빼앗기기도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가끔 내가 이런 얘기도 한다. 옛날 고고학을 보면 “천여불수天與不受면 반수기앙返受其殃이라. 더불 여 자를 줄 여 자라고도 한다. 하늘에서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반수기앙, 돌이킬 반 자, 받을 수 자, 앙화라는 앙 자, 도리어 그 앙화를 받는다.”고 했다고.

천지에서 결실을 하는, 군사부 일체가 되는 참으로 커다란 천지의 복덩이를 상제님이 마련해서 우리 신도들에게 갖다가 붙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능력만 있으면 얼마고 받을 수 있다. 실컷 파가 보아라.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증산도는 우주촌을 건설하는 진리


그리고 상제님 진리는우주촌을 건설하는 진리다. 그러니까 이 지구상 천하만국에 전부 상제님 진리를 심는 진리다. 상제님 도가 그렇잖은가. 상제님 진리가 우리나라에 국한된 진리도 아니고 동양에만 국한된 진리도 아니고 오대양 육대주, 지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상제님은 저 우주촌까지 전부 포괄적으로 공사를 보셨다.

증산도는 우주촌을 건설하는 공사를 집행하기 때문에 많은 간부가 필요하다. 뭐 금강산 1만2천 봉 도수에 의해 1만2천 도통군자가 나온다고 했는데 그것 가지고도 숫자가 부족할 게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신도가 얼마나 되나? 아직 들어오지 않은 간부가 사회 속에 잔뜩 있다. 증산도에서는 지금 개인 신도를 성장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간부로 양성시키려는 것이다. 전 신도를 간부화를 시킨다.

하니까 과히 싫지 않으면 의식구조를 좀 새롭게 해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신바람을 내서 뛰어라.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신명이 안 나니까, 제가 제 신명이 나서 뛰어야 한다.

이 이상 더 좋은 일이 세상 하늘 밑에 어디에 있나? 민주주의 국가라는 건 자유 광장 아닌가. 지금 세계 판도가 그렇게 되어져 있잖은가. 재주만 있으면 어디든지 가서 마음껏 뜻을 펼칠 수가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과거·현재·미래를 다 정리해 놓으셨건만 아직까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른다. 참 그 얼마나 안타까운가.

증산도 신도가 갖는 세 가지 특수한 복.


내가 다시 한 번 말해 줄 테니, 증산도 신도들은 세 가지 특수한 복을 가져야 한다. 고생복, 욕복, 일복. 그 세 가지를 복을 가지지 않고서는 상제님 신도가 되기 어렵다.

고생복. 그냥 잠 잘 새도 없이 뛰어야 하니까 말할 것도 없이 고생복을 가져야 한다.

또 상제님 믿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면에 집안에서 말 안 듣고 욕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까 욕복이 있다.

상제님 일은 해도 해도 끝도 없는 일이니까 일복이 있다. 그런 특수한 세 가지 복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그 세 가지 복의 대가가 백만 배도 더 차례가 온다. 욕먹은 것만큼, 고생한 것만큼 일한 것만큼 대가가 있다는 말이다. 고생한 대가, 일한 대가, 욕먹은 대가가 있다. 활동을 많이 했으니 욕도 그만큼 먹었을 것 아닌가? 그런 욕은 먹어도 괜찮잖아? 욕하는 사람이 나쁘지. 욕은 ‘출호이자반호이出乎爾者反乎爾’라고 했다. 누워서 하늘 보고 침 뱉으면 도로 제게로 떨어지지! 아, 이건 뭐 하나님 일인데 그렇잖은가.

태을주의 기적


한꺼번에 어마어마한 소리를 하면 참 아이쿠 하고 놀랠 것도 같은데, 우선 점입가경으로 몇 명씩 포교를 하다 보면 상제님 진리가 머릿속에 각인이 된다. 상제님 진리가 제대로만 머릿속에 입력되면 포교할 때 신바람도 나고 몸도 가벼워진다. 우선 태을주 하나만 가지고서도 포교를 얼마고 할 수가 있다.

내가 엊저녁에도 말했지만 이 세상 과학문명이라는 것을 전부 다 뭉쳐도 태을주 조화기운 하나 턱도 안 된다. 태을주만 가지면 안 되는 게 없다.

『태을주로 개벽한 나의 몸』이라는 책이 있잖은가. 그걸 사다가 짬짬이 좀 읽어 보아라. 그것은 우리 신도들이 다 체험한 것이다. 태을주 읽어서 못 고치는 병이 세상 천지 어디 있나 말이다.

증산도는 안 믿어도 태을주라도 읽어라. 아주 죽기 살기로 읽으면 무슨 병이고 다 고친다, 무슨 병이고. 그런데 덮어놓고 그냥 태을주 몇 번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병이 아주 극단에 달한 사람, 병원에 가서도 못 고치고 무엇으로도 못 고쳐서 죽는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나는 반드시 살아야겠다!’ 하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서 태을주를 읽으면 문둥병도 고쳐진다.

첫째로 믿어야 한다. 내가 거듭거듭 얘기했지만 절대로 액면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상제님 진리를 다 얘기해 주고 싶어도 너무 엄청나서 못 한다.

지금 현무경玄武經만 가지고도 이 세상을 세 번을 뜯어고친다고 했다. 우리 증산도 뺏지에 언청계용신을 그렸는데, 현무경에서 그 부 하나 쓴 것이다. 그 나머지는 그냥 있다.

상제님 진리는 너무 호호탕탕해서 그 숱한 얘기를 해 줘야 다 들어가지도 않고, 또 지나치는 거 알아야 소용도 없다. 그저 우리가 당면한 것, 첫째 신도의 사명, 신도로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걸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상제님을 참 하나님으로 100% 믿고, 또 내가 잘되고 세상사람 살리기 위해서 포교도 많이 해야 된다. 그건 아주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도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화합을 해야 된다.

상제님 사업은 계몽 운동


내 어록 같은 건 어지간한 사람들은 하루저녁이면 한 권을 다 본다. 어지간하면 중학교는 나오지 않았어? 그 사람들 눈에 비치면 그냥 줄줄줄줄 읽어 내려가진다. 그냥 머릿속에 입력돼버리고 만다. 저 자막이 다다다다 나오는 것하고 같다.

또 아까 얘기한 『태을주로 개벽한 나의 몸』이라는 책을 포교대상자한테 우선 갖다 주어라. 그러면 금세 보잖아. 그건 전부 기적만 써 놓은 것이다. 사람의 능력으로써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창출되는 걸 기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 책을 보면 ‘야, 과연 기적이다. 흥밋거리다.’ 할 게다. 그러고서 그 사람하고 얘기를 하면 흥미를 갖고 들으려고 할 게다. 그러니 포교하는 데도 좋다.

또 종도사 어록을 보게 만들면 그것만큼 신앙 성숙이 된다. 내가 알기 쉽게 핵심만 따서 얘기하지 않는가. 하늘땅이 생긴 이후로 이 증산도 종도사보다 더 쉽게 얘기하는 사람이 없을 게다. 내 어록이 교육의 원천적인 재료다.

나는 상제님 사업을 계몽啓蒙 운동이라고 말한다. 활짝 열어놓는다는 계 자, 어릴 몽 자, 계몽이다. 어릴 몽 자는 가르칠 몽이라고도 한다.

왜 어릴 몽을 가르칠 몽 자라고 하느냐? 애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젖을 빨면서 엄마를 안다. 젖 빨면서 ‘아, 내 밥을 주는 엄마다.’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보고, 모레도 보고, 한 달, 두 달 보면서 ‘엄마다.’ 하는 것을 안다. 또 엄마하고 가장 가까운 게 아버지다 하고 입력을 하면서 보면 전부가 다 새롭다.

아이가 뱃속에 있다가 무형이 유형 돼서 나왔는데 무엇을 아나? 그러니까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쫓아다닌다. 애들은 잘 때도 엄마를 붙잡고서 잔다. 엄마를 잃어버릴까봐서, 놓칠까봐서. 애들을 키워봤으니 알잖은가? 꼭 붙잡고서 잔다.

아이는 제 지각이 형성돼서 사물을 판단할 때까지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엄마 이거 뭐야?” 하고 묻는다. 그래서 어릴 몽 자를 가르칠 몽이라고 하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걸 계몽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모르는 상제님 진리를 대중에게 가르치는 것이니 계몽운동이다. 상제님 진리를 누가 아나, 세상천지!

진리의 사도로서 진리를 대변한다


내가 상제님 진리를 대신해서 공사를 뿌리내리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진리의 사도로서 진리를 대변한다.

그리고 나는 거짓이 없는 사람이다. 상제님 진리는 또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 아니 있는 상제님 진리도 다 설명을 못 하는데 거짓말할 턱이 있나. 여기 앉았는 게 삼대三代를 농사지은 내 신도인데, 내가 뭐하려고 발등에 떨어질 거짓말을 하나?

하니까 암만 바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그건 좀 뒷전으로 미뤄 두어라. 아니 죽는 판에 뭐이가 있나? 개인의 욕심 야망, 그런 것 다 내던지고 그저 상제님 사업에 전부 푹 묻혀서 살아라. 살고 나서 따져야 될 것 아닌가?

내가 이 이상 간곡히 얘기할 수가 없다. 나는 지극히 내 정성을 다해서 간곡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그래야 증산도도 성장을 한다. 그래야 상제님도 ‘야, 참 내가 공사 본 보람이 있다. 내가 인간 몸을 빌려서 세상에 와서 천지공사를 행했는데 그래도 좀 소득이 있겠다.’ 하실 것 아닌가!

우리 신도들은 일한 것만큼 대복을 받는다. 하니까 그런 줄들을 알고, 서로 밀고 잡아당기고 해서 포교를 해라. 이게 다 한 가족이다. 한 도문에서 한 상제님을 모시고 한 종도사 밑에서 신앙하는 한 가족이니 혈통으로 말하면 형제하고 똑같다. 그러니 다 그렇게 친히 화합해서 일을 하란 말이다. 뭐 한도 끝도 없으니 그만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