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고려대 세종캠퍼스 도방 “도방의 원천은 패기와 열정입니다”

[가가도장]
고려대 도방은 깨어있고 살아있는 곳이다. 그저 명맥만을 유지한 채 별다른 이슈 없이 시간을 벗으로 삼는 경우와는 많이 다르다. 그 이유를 물으니 ‘열정과 패기로 뛰기 때문’이라는 명료한 답변이 돌아온다. 하지만 고려대 도방이 본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매사에 과정 없는 결과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표현하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있을 법했다.



Q1 먼저 선배이신 강 성도님께 고려대 동아리와 인연을 맺게 된 얘기부터 물어야겠군요. 여기 동아리에서 진리를 만나셨다구요?
강(강윤성 성도)- 예 그렇습니다. 저는 대학교 신입생 때 진리를 만났습니다. 입학 이후 학교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방황하던 무렵, 동아리 신입생 모집을 하고 있던 선배들을 만나게 되었고, 동북공정 관련 소책자를 받게 된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던 시절, 증산도 진리를 만나면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처음 증산도를 만난 날에 소책자를 받았고, 그 소책자를 반납하기 위해서 찾았던 곳이 지금 증산도 동아리 방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상제관, 우주관, 신관, 수행관을 다 배우고 수행도 동아리방에서 먼저 해본 뒤에 도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려대 동아리방이 저에게는 진리를 알게 된 첫 공간입니다.

Q2 이 성도님과 문 성도님은 어떻게 진리를 만나셨는지...
이(이상훈 성도)- 처음 증산도 신앙하던 선배를 만난 건 작년 1학년 1학기에 김영창 성도의 인도로 역사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별로 역사에 관심이 없었으나 절친했던 김영창 성도의 권유로 한번 듣게 되었습니다. 그 세미나는 강윤성 수석포감님의 세미나였고 그 세미나를 들은 후 2차 세미나로 음양오행에 대해서 세미나를 들었습니다. 역사세미나에서는 관심이 없었지만 음양오행은 제가 어느 정도 알았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더욱 흥미가 있었고 다음 세미나에도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동아리를 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잘 나지 않았고, 결국 세미나를 더 듣지 못하고 1학기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방학을 하고 대천제 때 김영창 성도가 입도를 하고 저는 2학기 때 입도한 상태의 김영창 성도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 성도의 권유로 2학기 말 즈음에 종도사님의 개벽대강연회를 들으러 서울 코엑스에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 강연회를 듣고 저는 여러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이건 꼭 알아봐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윤성 수석포감님과 여러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유네스코라는 봉사동아리의 회장에 출마했었습니다. 그런데 강연회를 듣고 고민을 한 끝에 제대로 증산도를 알아보자고 다시 마음을 먹고 봉사동아리 회장 후보직을 사퇴하고 증산도 진리 공부를 한 후에 입도까지 결심하여 결국 동지 대천제 때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문(문진주 성도)- 저는 작년 가을, 교양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농심국제관 앞에서 환단고기 역사패널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강윤성 포감님이 역사서명운동에 참여하러 온 저를 저녁 세미나에 초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수업이 끝나고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세미나의 주제는 역사왜곡이었습니다. 저는 국내외 한민족 역사왜곡의 실상에 대해서 알고 분노했고, 더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후에 동아리방에서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된 수렴 세미나와 일산, 강남, 국회에서 개최된 종도사님의 북 콘서트에도 참석했습니다. 대부분이 모르는 내용이었지만 새롭고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이것이 옳은 것이고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우주일년과 수행관에 대해 알게 되면서 강윤성 포감님의 권유에 이끌려 7일 정성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종강을 하고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저는 강윤성 포감님과 상담 후에 입도와 함께 방학 기간 동안의 도장 상주를 결심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학기 중에는 주말마다 주로 구미나 대구 등 타 지역으로 활동을 하러 다니고, 방학 중에는 도장 상주를 하면서 매일 수행과 진리공부, 포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심一心과 협일協一로 도방의 기반을 놓다


Q3 얘길 듣고 보니 세 분 모두 책자나 세미나를 통해 ‘문제’가 뭔지를 깨닫고 ‘의식’으로 받아들여 진리를 추구하는 대열에 합류한 공통점이 있군요. 결단을 내리고 스스로 선택해 행동을 한 점도 인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구요. 이제 도방 얘기를 해보려 하는데요, 여러 요인들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타 대학 동아리에 비해 고려대 도방은 탄탄한 활동성과 저력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명히 난관이 없지 않았을 텐데 그걸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그런 얘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강- 그건 아마도 적극적인 마음가짐과 절박함에 대한 자각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입도한 이후의 고려대는 롤러코스터와 같았습니다. 대학문화의 꽃이 동아리인데, 고려대학교는 동아리문화가 살아 있고 그 활동에 대해 학내에서 존중을 받고 있습니다. 개강이나 중간 축제기간이 되면 학생회관 전체가 시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여럿이서 어울려 시끌벅적하게 같이 도우며 일을 추진해 나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학생회관에 혼자 있는 것이 제일 서럽고 힘들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다른 동아리는 치킨도 시켜 먹고 모여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데, 나는 왜 혼자인가... 함께 움직이고 즐거워하고 음식도 시켜 먹고 하는 모습들이 그때는 정말 부러웠습니다. 동아리 회장으로서 자책감에 빠져 있던 적도 많고, 동아리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습니다. 입도하고 꾸준했던 동아리 회원들이 군대, 휴학, 어학연수, 졸업 등등의 사유로 갑자기 빠져나간 상황이 발생하니까, 그에 대한 책임이 모두 다 저에게 있다고 자책하며 지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참 힘들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되돌아보면 그래도 상제님 진리를 널리 알리고 수호해야겠다고 거듭 다짐한 좋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난 뒤에는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지성공』 책이 나왔을 때에는 학교에 있는 모든 동아리방과 과방, 총학생회를 비롯한 여러 곳에 들어가서 책을 전달하였습니다. 또한 <상생신문>을 들고 교수연구실을 비롯한 과사무실에도 일일이 전달한 적이 있습니다. 이 난관을 넘으려면 바로 내가 직접 뛰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과 함께 이대로라면 동아리방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절박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굳은 마음가짐을 갖고 활동을 하던 중 2013년 1학기에 학내에서 대형패널 행사를 한 결과 13학번 김영창 성도님이 입도를 하게 되었고, 2학기 행사로 다시 대형패널을 하였는데 그때 이상훈, 문진주 성도님이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함께하는 동료가 생긴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열정을 바탕으로 의기투합해 같이 일을 하면 두려울 게 없습니다.

Q4 동아리 활동을 경험하신 문 성도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문- 작년 도기 143년에 김영창, 이상훈 성도님과 제가 입도하기 이전까지 고려대 동아리는 강윤성 포감님께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지켜오셨습니다. 하지만 저와 이상훈 성도님이 조치원남리도장 성도님들의 정성과 일심에 이끌려 상제님의 진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도장 상주를 결정했을 때 가족의 반대가 있었지만 지혜롭게 처신해서 도장 상주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제주도에 있는 부모님에게 한민족에게 잃어버린 9천년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언젠가 준비된 상태로 상제님의 진리를 알려서 가가도장을 만들고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현재 고등학생인 남동생에게는 도전 말씀을 근본으로 해서 조언의 편지를 써서 보내주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고려대학교에서 패널행사를 하지 못하는 대신에 플래카드와 포스터로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올 3월에 고려대가 개강하기 며칠 전부터 김영창, 이상훈 성도님과 저는 학교에 게시할 플래카드의 문구와 디자인을 정하기 위해 3일 내내 도장에서 회의를 해야 했습니다. 플래카드를 게시하는 목적을 설정하고, 주로 노출시킬 목표 계층(예를 들어, 4학년 혹은 2학년 혹은 신입생 이런 식으로요)을 정하며, 플래카드를 걸 장소 선정까지 여러 과정들을 거치다 보니 3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회의를 할 때에는 처음에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고,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과 함께 때로는 짜증도 났고 나중에는 회의 장소가 감옥같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몇 시간 동안 회의 끝에 정한 내용들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정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애를 써서 완성한 플래카드가 고려대학교를 비롯해서 타 지역의 금오공대, 경북대학교에도 걸리고 홍보가 되자 저희가 맡아서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인 저의 친구들과 후배들도 이전에는 증산도를 한다고 하면 그게 뭐냐고 생소해 했는데 이제는 다들 학내에 증산도 동아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그리고 포감님들이 저희를 믿고 플래카드 제작을 맡겨 주셨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희 세 사람의 협력과 정성이 타 지역의 성도님들에게도 봉사가 되고 다른 분들의 시간을 아껴주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낍니다. 목표를 정해서 서로 힘을 모으고 정성을 쏟으니 일이 되어 갔습니다. 그것이 우리 동아리의 원동력입니다.

Q5 역시 좋은 모습 뒤에는 아픔과 노력의 과정이 있었군요. 그러면 이제 동아리의 근본신앙과 일정 운영 및 활동 모습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저희 고려대학교와 조치원남리도장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정기치성, 개강치성, 종강치성은 주로 도장에서 합니다. 도장에서 상주하고 있는 상주자는 아침수행, 정성수행을 도장에서 진행하고 있고, 기숙사처럼 학교 내부나 학교 근처에 사는 신도는 정성수행을 주로 동아리방에서 합니다. 저희 학교 동아리방에는 선배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진리서적, 사부님 추천도서, 기타 전공, 교양서적들이 많이 구비가 되어있어 자신의 노력만 있다면 언제든 공부에 매진할 수 있습니다. 진리공부는 날짜를 잡아 발표를 하거나 수렴세미나가 정해지면 그 세미나 준비를 하는 차원에서 하고 있습니다. 포교활동은 주로 학교 내외부에 포스터, 플래카드를 걸어서 학내에 열심히 증산도를 알리고, 연락이 오면 그 사람이 세미나를 준비해서 진행하도록 합니다.

문- 제 경우도 주로 도장에서 아침수행을 진행하고, 그 외 정성수행과 진리공부는 각자 개인적으로 진행합니다. 치성이 있는 날에는 최대한 일찍 도장에 도착해서 치성 준비를 함께 하고 치성을 모십니다. 치성이 끝나면 간단하게 모여 그날 도훈 말씀에서 감명 깊었거나 새로이 알게 된 점들을 차례로 공유합니다. 그 후 금월의 지역 활동 일정과 재정을 공유합니다. 포교활동 역시 각자 하되 SNS(카카오 톡) 및 네이버 카페로 언제 어디에서 어떤 내용의 수렴 세미나를 했고, 대상자의 반응이 어땠는지 등을 공유합니다.

동아리 일정 운영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먼저 수업이 있는 일반적인 경우에는 기숙사에서 나와 동아리방에서 1시간 동안 아침수행을 합니다. 그 후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에 가고, 수업을 마치면 이상훈 성도님과 고려대학교에 한민족과 증산도 포스터를 붙이거나 동아리회의에 함께 참석하는 등의 활동을 합니다. 이후에 개인 정성수행을 합니다.

활동이나 행사가 있는 특별한 경우에는 도장에서 2시간 30분간 아침수행(전 주문 합송 후 도공수행)을 함께 합니다. 그리고 홍익대학교 등 타 대학교에 포스터를 붙이고, 학생들에게 홍보지를 전해주면서 증산도를 알립니다. 또한 이번 학기에는 구미의 금오공과대학교와 대구의 경북대학교로 연합포교활동을 다녀왔습니다. 먼저 경북대에서는 구미 지역과 대구 복현의 대포 성도님들과 함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간 대형 패널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주로 재학생들에게 한민족과 증산도 홍보지를 나눠주고, 서명운동을 받으며 한민족 역사왜곡의 실상과 증산도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또, 금오공대에서는 접이식 테이블을 차려놓고 서명운동과 함께 대상자를 모집했습니다.

강- 일반적으로 동아리방은 도장의 역할과 학교의 동아리 역할을 다 하고 있습니다. 동아리방이라는 곳이 여러 가지 공간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공간에서 세미나도 하고, 수행도 하고, 교육도 진행합니다. 세미나가 개최되는 경우에는 동아리방을 세미나룸으로 변경하여 세미나실의 형태로 운영이 됩니다. 고려대 동아리가 일정한 필요에 의해 제 역할을 최대한 가동하도록 항상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것이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본가라 할 수 있는 지역 도장과의 연대 및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기 고려대 가까이에 있는 조치원남리도장은 지역적 특성상 대학생 신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동아리방보다는 도장 위주로 일정을 진행토록 조력하고 있습니다. 도장에서 아침수행을 진행하고, 개인적인 정성수행을 동아리방에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각자가 필요할 때 동아리방을 이용하는데, 포스터나 홍보물의 부착, 고려대생 세미나 등 주로 활동 측면에 초점을 두어 운영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Q6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고려대 동아리방의 특성을 한두 마디로 정리한다면 뭐라 할 수 있을까요?
이- 고려대 동아리방은 ‘우리 학교의 심장’입니다. 가장 소중히 지켜야 하는 곳이며, 심장이 피를 순환시키듯이 우리 동아리방을 기점으로 홍보지와 포스터, 진리서적을 순환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장이 있어야 사람이 살아가듯 저는 동아리 방이 있어야 학우들을 살리고, 사람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 저는 ‘활기차다! 다재다능하다!’로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고려대 도방은 다양한 필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바꿔가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항상 활력이 있고 능소능대한 그 정성과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준비와 실천을 통해 대학가 포교의 전진기지로!


Q7 대학가 동아리의 활동과 목표는 오직 사람을 살리는 대의에 부합해 추진되고 확산되어야 합니다. 고려대 동아리가 지향하는 활동 및 성장 목표, 그리고 향후의 계획이나 각오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저는 이번 학기에 동아리 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돌아가는 전반적인 상황과 다른 동아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더욱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학교에 대한 책임감과 애착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학내에 증산도라는 이름을 알려, 포스터가 절대 떨어지지 않게 하고 홍보지를 많이 뿌리려고 합니다. 저는 사실 수업 팀플레이 중에도 내가 증산도를 하고 있다, 내가 증산도인이다 라는 것을 당당히 말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아는 한에서는 기분 나빠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제가 준비되어 있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제가 자신 있게 세미나를 할 수 있고, 제가 몸담고 있는 진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참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내에 증산도를 알리고 참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도도 더 강력히 하고, 자신 있게 세미나를 할 수 있고 포교를 할 수 있는 참일꾼이 되도록 더욱더 열심히 신앙하겠습니다.

문- 저희는 언제나 전국 대포와 대학생이 하나의 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큰 일꾼이 생기고 부흥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상제님과 태모님께 기도드릴 것입니다. 또, 대상자 단 한 명을 포교하더라도 그 사람의 인생을 진정으로 함께 고민하고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바른 심법을 세워 나가겠습니다. 대상자가 상제님 천하사를 하는 동료로서 함께 상제님의 진리를 올바르게 신앙할 수 있도록 저부터 바른 신앙을 실천하고 매순간 일심을 다하겠습니다.

강- 동아리방은 학내의 도장입니다. 상제님과 태모님 어진과 진영을 모시고 학내에 증산도를 당당히 드러내 놓고 있는 대학가 포교의 전진기지입니다. 학내에서 활동할 때 중앙동아리인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중앙동아리라는 것은 학교와 학생들이 모두 인정한 동아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학교에서 우리만의 자체적인 공간이 있다는 것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충남 대학생 포교의 전진기지로서, 충남 대학생 포교의 출발과 시작점으로서 반드시 크게 성장을 시켜 타 지역으로 개창을 나가는 일꾼들이 배출되는 고려대 동아리가 되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Q8 세 분의 말씀에서 기운과 희망을 얻게 됩니다. 열심히 하는 그 정성으로 결국엔 많은 일을 이룰 것으로 믿습니다. 조금 다른 얘기인데, 포교를 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아쉽거나 특별한 사연 같은 게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문- 작년에 기숙사 후배를 수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는 기숙사 생활을 처음 하는 신입생이었는데, 저에게는 처음으로 생긴 후배여서 잘 챙겨주고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저에게 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최근에 아버지가 자살기도를 하려고 아파트 7층에서 뛰어내렸고, 현재 반신불수가 되어서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충격적인 사건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상제님의 진리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성수행을 시작했으며 강윤성 포감님에게 부탁을 해서 약속을 잡았고, 고려대 동아리방에서 열린 수렴세미나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이어 네 차례에 걸쳐 수렴 세미나를 진행했으며, 함께 7일 정성수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의 정성이 부족해서인지 정성수행의 마지막 날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 친구와 함께 상제님 신앙을 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제가 좀 더 성숙하고 준비가 되는 날에 반드시 인연이 닿아서 포교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의 경우는 전국 대포 연합 활동이 더 공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되어 연합 활동과 타 지역의 대상자 수렴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이번 1학기 때부터 관리하던 대상자가 있었습니다. 그 대상자는 제 친구이며 같은 과, 같은 학번입니다. 증산도에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증산도 도장 행사가 있다면 참석해 주고 몇 차례 세미나도 들었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친구를 아직 포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일심이 부족해서입니다. 정말로 제가 하는 그만큼 그 친구도 증산도에 관심을 두고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방심했고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 친구를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왜 상제님께서 덕은 포덕이 제일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를 조금 알겠습니다. 그 사람을 포교하기 위해선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고 그 사람을 항상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저만 알고 살았기에, 그런 구도자의 삶을 살지 않았기에, 내 모든 묵은 기운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너무 어려웠고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제가 더욱더 성숙해서 남을 살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충의로 뛰는 상생의 일꾼이 되어


Q9 끝으로 성도님께서 평소에 좌우명으로 여기는 도전 성구와 그 이유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
“나는 추상과 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4:15:7)

제가 이 성구를 좌우명으로 여기는 이유는 우선 가을의 정신인 의를 본받고 싶었습니다. 신앙하기 전에도 의리 없는 사람을 싫어했고, 정의를 지키며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키는 사람을 본받고 싶어했습니다. 이 뜨거운 마음으로 정의를 본받고 정의를 굳게 지키며 내 모든 것을 헌신하는 모습이 제 지향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소에 생각했던 의리가 절대 잃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오히려, 상제님께서도 사랑하셨던 소중한 마음이었다는 것이 다시 확인되는 것 같아서 매 순간 이 구절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문-
“나의 도는 상생相生의 대도이니라”(2:18:1), “대학지도는 재신민이라.”(2:79:7)

증산도를 만나고 가장 큰 변화는 제 삶의 목표가 나의 행복을 위한 삶에서 인류의 행복을 위한 삶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여태까지는 나만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제는 인류를 위해서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인생에 많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직접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증산도를 소개하면서 느끼는 것은, 종종 방황하고 갈등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기쁨과 보람이 크다는 것입니다. 고려대학교의 친구들도 저를 통해서 상생의 상제님 대도를 만나서 내면의 광명을 되찾고 함께 진정한 태일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강-
“천하사는 글만 가지고 안 되나니 직접 뛰어다녀야 하느니라.”(5:434:3)

대학가는 인생에서 가장 열정이 넘치는 20대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아직은 어리고 서툴지만 열정 하나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패기가 살아 있는 곳입니다. 직접 뛰어다니는 마음으로 고려대를 넘어서 타 지역으로도 널리 나아갈 수 있는 고려대 동아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_활동 체험기


Q 신앙이나 활동 등을 통해 진리적, 영적으로 체험한 내용이나 특별한 사건 같은 게 있다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작년 겨울, 조치원남리도장 성도님들과 4박 5일 태을궁 집중수행에 갔을 때 4일째 되는 날 새벽에 태을주의 수기를 내려 받는 신비로운 체험을 했습니다. 새벽이 되니 졸면서 태을주를 읽고 있는데 어느 순간 신단의 연갈색 나뭇결이 두 줄기의 강이 되어 서로 교차되어 흐르기 시작했고, 신단에 모셔진 청수그릇에서는 하얀 분수 같은 가느다란 물줄기가 곡선을 이루며 제 눈앞에 흩뿌려졌습니다.

또한 그 경험을 하기 이전에는 제 뒤에서 한 여자가 제 어깨에 손을 대려는 동작을 취하고 있던 척신의 검은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기숙사 룸메이트를 포교할 때에는 척신과 복마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룸메이트와 함께 세 번째 수렴 세미나를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온 다음 날, 저는 난생 처음으로 여름 감기에 걸렸습니다. 이전에 얘기를 나눌 때 룸메이트는 평소에 손발이 자주 저리고 여름에도 감기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의 경험이 제가 그 친구 집안의 죄를 대속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혼자 밤에 동아리방에서 정성수행을 했을 때에는 ‘악귀잡귀 금란장군’이라는 개벽주의 특정 단구를 자꾸만 빼먹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척신의 방해를 받은 것 같습니다.

이- 제가 처음으로 태을궁 수행을 2박 3일로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둘째 날 오후 즈음이 되어 수마가 찾아오고 잡념도 많아진 상태에서 수행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졸게 되었는데 갑자기 푸르스름한 성스러워 보이는 검이 탁 나타나더니 스릉~ 하고 검집에서 반쯤 뽑혀 나왔습니다. ‘헛생각 하지마라!’ 라는 듯이 저에게 강한 기운을 보냈습니다. 순간 깨어나서 ‘아, 정신차리고 수행을 하라는 계시다’라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딴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며 주문을 외웠던 체험이 있습니다. 또 다른 체험은 역시 태을궁 수행이었습니다. 4박 5일 태을궁 수행이었는데, 마지막 5일차 새벽에 제가 마지막 순번으로 열심히 의전을 보고 마무리로 도공을 하였습니다. 도공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제 손에 맞추어 금빛이 따라 움직이면서 회색빛이던 성전을 제가 금빛으로 색칠을 하였습니다. 금빛으로 다 칠하고 나니 도공이 끝났습니다. 너무 신기했고, 몸도 피곤했었는데 개운해졌습니다. 그리고 조금 어두웠던 얼굴색이 엄청 밝아졌습니다.

강- 저는 증산도 동아리의 회장으로서 여러 해 동안 활동하였습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동아리 회장들만을 대상으로 회식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내에서 처음 자기 소개를 할 때 증산도 동아리 회장이라고 말하면 놀래거나 경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도 그런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택견 동아리 회장이 “증산도가 뭐예요?”라고 질문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신도 이야기와 우주일년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많은 회장들과 친분이 생기게 되었으며 실제로 모형항공기 동아리와 뉴스위크 연구 동아리 회장과는 친분이 깊어져서 동아리방에 놀러가기도 했습니다. 다른 여러 동아리방을 방문해 그들에게도 우주일년을 전하고 책을 전달하면서 학우들과 어울리고 진리를 전했던 추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