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 읽는 환단고기] 태일太一문화

[환단고기]

STEP1. 들어가기


일본에 남아있는 태일문화



축제를 일본 말로 ‘마쯔리祭り’라고 합니다. 원래 마쯔리는 신사에서 행하는 ‘신을 모셔오는’ 제례의식을 말합니다. 일본에서는 정치政治(せいじ)를 ‘마쯔리고토祭事’라고 합니다. 이것만 봐도 일본인들이 얼마나 마쯔리 행사를 소중히 여기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쯔리는 우리말의 ‘맞으리’와 음이 유사합니다. 사실 일본의 정신문화와 생활양식의 대부분이 한민족으로부터 열도로 전수된 것들입니다. 문화뿐만 아니라 한반도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야요이 시대로부터 서기 700년 경까지 약 1천년 동안, 일본인의 약 70~90%는 한국으로부터 건너 온 사람”(홍윤기, 백제는 큰 나라)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마쯔리는 부여의 제천행사인 ‘맞두드리[영고迎鼓]’에서 온 것입니다. 맞두드리→맞두리→‘마쯔리’로 변형되었습니다. 마쯔리에서 북은 필수품이고, 북을 두드리는 것은 신을 맞이하기 위한 예절입니다. 행사에서 가마꾼들이 신령을 모신 가마를 끌며 외치는 “왔쇼이, 왔쇼이”라는 구령은, ‘(한국에서 신이)오셨다’는 한국어 그대로입니다. 일본의 마쯔리 행사에서 동북아 인류원형 문화의 정수이자 혼이라 할 수 있는 태일太一을 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태일은 동북아 원형문화 인성론의 총결론입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한민족의 일본 개척사


일본 고대사는 한마디로 한민족사의 연장입니다. 일본 열도를 향한 한민족의 이주·개척의 물결과 문물 전수는 조몬繩文 문화(BCE 13000년 전~BCE 300년전) 이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약 1만 2천년 전에는 황해가 육지였고 일본도 한반도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수많은 한반도인이 육로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 후쿠오카현 일대에서 발견되는 세석기細石器가 시베리아와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유형과 동일하다는 사실로 입증됩니다. 한국인의 일본 개척사, 그 첫 기록을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①소시모리의 후손, 협야후의 삼도점거
戊申十年(무신십년)이라 豆只州濊邑(두지주예읍)이 叛(반)이어늘
命余守己(명여수기)하사 斬其酋素尸毛리(참기추소시모리) 하시니라
自是(자시)로 稱其地曰素尸毛리(칭기지왈소시모리)오 今轉音爲牛首國也(금전음위우수국야)라.
其後孫(기후손)에 有陜野奴者(유협야노자)가 逃於海上(도어해상)하야
據三島(거삼도)하고 僭稱天王(참칭천왕)하니라.
_ 단군세기 3세 가륵단군 조
재위 10년 무신(단기 161, BCE 2173)년에 두지주豆只州의 예읍濊邑이 반란을 일으키니 임금께서 여수기余守己에게 명하여 그곳 추장 소시모리素尸毛犂의 목을 베게 하셨다. 이로부터 그 땅을 소시모리라 불렀는데, 지금은 음이 변해서 소머리 나라[우수국]가 되었다. 그 후손에 협야노陜野奴라는 인물이 있는데, 바다를 건너가 삼도三島를 점거하고 스스로 천왕이라 참칭하였다. - 환단고기 완역본 본문 112쪽

甲寅三十八年(갑인삼십팔년)이라.
遣陜野侯裵반命(견협야후배반명)하사 往討海上(왕토해상)하시니
十二月(십이월)에 三島悉平(삼도실평)이러라.
_단군세기 3세 가륵단군 조
재위 38년 갑인(단기 1667, BCE 667년, 협야후陜野侯 배반명裵반命을 보내어 해상의 적을 토
벌하게 하셨다. 12월에 삼도三島를 모두 평정하였다. - 위의 책 본문 160쪽

소시모리는 『일본서기』에서 ‘소시모리曾尸茂梨’라는 지명으로 나타납니다. 일본의 국조신 아마테라스의 아우인 스사노素盞鳴가 과도한 야심을 품고 난동을 피우자 주민들이 단결하여 그를 그의 본국인 신라(당시에는 고조선이었다)로 쫓아냈습니다. 『일본서기』는 스사노가 이때 ‘신라국에 내려와 소시모리라는 곳에 살았다[降到於新羅國. 居曾尸茂梨之處]’고 전합니다. 일본 왕가의 뿌리와 연관된 소시모리 추장의 이름을 지명으로 변형하여 그들의 역사책에 심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도 일본에는 ‘소머리’라는 뜻의 우두牛頭라는 성씨가 있고 우두신牛頭神을 모신 신사를 ‘소머리데라牛頭寺’라 합니다. 삼국유사에는 우수주가 원래 한반도 지명임을 밝히고 현재 강원도 춘천에 남아 있는 우두산牛頭山이 옛적의 ‘소시모리牛首國’였음을 시사합니다. 오늘날 이곳을 조상의 땅이라 하여 찾는 일본인이 많습니다.

『일본서기』에서는 초대 천황 진무가 큐슈 섬 일향日向에서 출발하여 일본 열도를 평정하고 BCE 660년에 천왕으로 등극하였다고 말합니다. BCE 667년으로 기록된 단군세기의 배반명 참칭 사건과 불과 7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두 사건이 사실 동일사건입니다. 『일본서기』를 따르면 진무 왕의 어렸을 적 이름이 협야狹野였다고 합니다.(※협야라 하는 것은 어렸을 때의 이름이다. 뒤에 천하를 평정하고 8주를 다스렸다[所稱狹野者, 是年少時之號也. 後撥平天下, 奄有八洲]) 비록 한자 표기는 다르지만 협야후와 협야는 같은 동일 인물입니다. 일본 천황가의 시작이 단군조선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②언파불합의 웅습평정
戊午五十年(무오오십년)이라 帝遣將彦波弗哈(제견장언파불합)하사 平海上熊襲(평해상웅습)하시니라 _단군세기 35 세 사벌 단군조
재위 50년 무오(단기 1611, BCE 723)년에 임금께서 장수 언파불합을 보내어 바다 위의 웅습熊襲(구마소)을 평정하셨다. - 위의 책, 본문 158쪽

③ 의려국 왕의 일본 정벌
正州(정주)는 依慮國所都(의려국소도)니 爲鮮卑慕容외所敗(위선비모용외소패)하야 憂迫欲自裁(우박욕자재)라가
忽念我魂尙未泯(홀염아혼상미민)하니 則何왕不成乎(즉하왕불성호)아.
密囑于子扶羅(밀촉우자부라)하고 踰白狼山(유백랑산)하야 夜渡海구(야도해구)하니 從者(종자)가 數千(수천)이라 遂渡(수도)하야 定倭人爲王(정왜인위왕)하니 自以爲應三神符命(자이위응삼신부명)이라 하고 使群臣獻賀儀(사군신헌하의)하니라.
-태백일사 대진국 본기

정주는 의려국이 도읍한 땅이다. 의려국 왕이 선비 모용외에게 패한 뒤 핍박당할 것을 근심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다. 이때 문득, ‘나의 영혼이 아직 죽지 않았는데 어디에 간들 이루지 못하리오?’ 라는 생각이 들어, 은밀히 아들 부라에게 왕위를 넘기고, 백랑산을 넘어 밤에 해구를 건너니, 따르는 자가 수천 명이었다. 마침내 바다를 건너 왜인을 평정하고 왕이 되었다. 스스로 삼신의 부명에 응한 것이라 하고, 여러 신하로 하여금 하례 의식을 올리게 하였다. - 위의 책, 본문 678쪽

일본 최초의 통일 왕조인 야마토大和 정권을 연 사람들은 부여계입니다. 1921년 기다 사다기치喜田貞吉(1871~1939)는 “부여는 한반도에서 고구려·백제·신라를 건국했을 뿐 아니라, 4세기에 일본열도로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고 하여 일본의 기마민족설을 최초로 주장하였습니다. 이어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1906~2002)는 동북東北 부여계의 기마민족騎馬民族이 한반도 남부를 거쳐 일본열도로 들어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에 야마토大和 지방에 야마토 조정을 세웠다는 ‘기마민족정복왕조설騎馬民族征服王朝説’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태백일사의 기록입니다. 의려국은 일명 연나부 부여입니다. 고구려 3세 대무신열제가 동부여를 멸망시킨 후 동부여 3세 대소왕의 종제를 연나부에 안치하였는데, 대소왕의 종제가 그 후에 자립하여 백랑산(요령성 객좌현)에 이르러 정착하였습니다. 그 후손 의려왕이 선비족 모용외의 침략을 받아(285년) 패하여 추종자를 이끌고 바다 건너 고대 일본을 건설하여 일본 최초의 통일국가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의려왕이 곧 일본서기에 나오는 15세 오진應神왕입니다. 삼신의 부명에 응했기에 응신應神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STEP2. 환단고기에서 만나는 태일문화


1. 삼신의 자기현현自己顯現 천지인


예로부터 동양문화에서는 하늘·땅·인간을 삼재三才라고 하였습니다. 우주를 3수의 구조로 인식한 것입니다. 바로 삼신문화에서 천지인 삼재가 나왔습니다. 삼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이 셋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일신이 세가지 다른 덕성(조화, 교화, 치화)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삼신이 현실에 자신을 드러낸 것이 하늘, 땅, 인간입니다. 하늘·땅·인간이 바로 살아움직이는 삼신 그 자체입니다. 천지인 속에 삼신의 생명과 신성과 지혜와 광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천지인을 상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천일天一·지일地一·인일人一입니다. 천지인에 각기 ‘한 일一’자를 붙인 것은 살아 있는 삼신인 하늘과 땅과 인간이 궁극으로는 ‘일신一神’ 또는 ‘일기一氣’라는 하나의 근원자리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환단고기 원문] 천일지일태일부분
{{夫三神(부삼신)호니 曰天一(왈천일)과 曰地一(왈지일)과 曰太一(왈태일)이시니
天一(천일)은 主造化(주조화)하시고 地一(지일)은 主敎化(주교화)하시고 太一(태일)은 主治化(주치화)하시니라.
[역주]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삼신三神 은 천일天一과 지일地一과 태일太一 이시다.
천일天一은 (만물을 낳는) 조화造化를 주관하시고,
지일地一은 (만물을 기르는) 교화敎化를 주관하시고,
태일太一은 (세계를 다스리는) 치화治化를 주관하신다. - 삼신오제본기

2. 천부경과 염표문의 태일太一사상


천부경 한민족 최초의 경전인 천부경을 보면 하늘과 땅과 인간을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이라 하였습니다. 하늘도 한 하나님이요 땅도 한 하나님이요, 인간도 똑같이 한 하나님입니다.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에서 하늘은 양의 지극한 경계에 있기에 양수 1이 되고 땅은 음의 지극한 경계에 있기에 음수 2가 됩니다. 인간을 3이라고 한 것은 천지가 하나로 조화되어 인간이 나왔기 때문입니다[하늘 1 + 땅 2]. 인간이 바로 천지의 자녀이자 천지의 꿈을 이루는 존재입니다. 인일人一은 후에 태일太一로 바뀌게 됩니다. 태일이라 한 것은 인간이 하늘·땅의 뜻과 이상을 실현하는 존재로 하늘·땅보다 더 크고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천부경』은 우주만물의 근원과 창조의 원리를 1에서 10까지 수數로써 밝히고 있다. 그 핵심에는 우주 만유가 전적으로 하나[一]에서 나와서 벌어졌다가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 하나는 천지만물의 존재 근원으로 무궁무진한 상징성과 포용성을 함유한다. 동양 사상의 근간인 음양론이 정리된 첫작품이 바로 『천부경』이다. 그 후 음양론이 더욱 심화 발전된 것이 5,600년 전, 배달의 5세 환웅의 막내아들인 태호복희씨가 하늘로부터 받아 내린 하도河圖이다. 이 하도에서 팔괘가 나오고, 팔괘에서 주역의 64괘 음양론이 나왔다. 현세의 음양오행 문화 역시 신교의 우주론에서 뻗어 나온 것이다. 하경은 하늘과 땅의 창조 목적이 되는 ‘태일 인간론’의 극치로,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본심이 태양처럼 천지를 밝히고, 그러한 본래 마음의 우주 광명을 열어 천지와 하나로 통하여 태일의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태일의 광명 인간이 되어야 인간은 비로소 천지일심의 경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환단고기 완역본 해제 402쪽, 상생출판)


염표문 염표문은 말 그대로 마음속에 지닌 큰 뜻을 드러낸 글입니다. 환웅천황이 처음 공포하였고 11세 도해단군이 천지인의 창조정신을 덧붙여 완성하였습니다. 이후 염표문은 대대로 한국인의 ‘신교문화헌장’으로서 인성론과 심법교육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염표문은 먼저 천지부모의 덕성을 가르쳐줍니다. 하늘은 한순간도 거짓됨이 없이 참되고 땅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한순간도 쉼 없이 생명을 기릅니다. 그리고 사람은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여 서로 협력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을 진일眞一, 근일勤一, 협일協一로 표현하였습니다. 인간은 천지부모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태일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하나 되어 참여하고 협력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염표문은 이렇게 인간이 할 바를 밝힌 다음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천명합니다. 바로 ‘삼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려서[在世理化]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라[弘益人間]’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삼신으로부터 참마음을 받은 광명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삼신의 가르침으로 다스려 일깨워서 천지의 뜻과 대이상을 펼치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을 진정한 태일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염표문이 전하는 홍익인간의 궁극입니다.

3. 태일은 진선미의 인간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의 진선미
『환단고기』에서는 인간 삶의 영원불변한 3대 가치인 ‘진선미眞善美’에 대해서도 놀라운 가르침을 전합니다. 진선미 사상의 발원처는 바로 삼신이 낳은 천지인입니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서는 ‘고려팔관기’를 인용하여 하늘을 ‘청정과 참됨을 본질로 삼는 지극히 큰 본체[淸眞大之體]’로 표현하였습니다. 하늘은 언제나 맑고 참된 존재입니다. 아버지 하늘이 진실을 주장하므로 인간 역시 진실무망의 길을 가야 합니다.

땅은 ‘선함과 거룩함을 본질로 삼는 지극히 큰 본체[善聖大之體]’입니다. 땅은 만물을 길러 내는 선의 덕성으로 충만하고 성스러운 존재입니다. 선은 모든 것을 수용해서 어느 것도 마다하지 않고 낳아서 기르는 어머니의 덕성입니다.

인간은 ‘아름다움과 지혜로 지극히 큰 본체[美能大之體]’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아름다움[美]을 추구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는 주체입니다. 천지의 덕성인 참[眞]과 선善을 체득하여 천지의 꿈과 이상을 이루는 태일의 존재가 되었을 때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高麗八觀記(고려팔관기)의 三神說(삼신설)에 云(운)
「上界主神(상계주신)은 其號曰天一(기호왈천일)이시니 主造化(주조화)하사
有絶對至高之權能(유절대지고지권능)하시며
無形而形(무형이형)하사 使萬物(사만물)로 各通其性(각통기성)하시니
是爲淸眞大之軆也(시위청진대지체야)시오
下界主神(하계주신)은 其號曰地一(기호왈지일)이시니 主敎化(주교화)하사
有至善惟一之法力(유지선유일지법력)하시며
無爲而作(무위이작)하사 使萬物(사만물)로 各知其命(각지기명)하시니
是爲善聖大之軆也(시위선성대지체야)시오
中界主神(중계주신)은 其號曰太一(기호왈태일)이시니 主治化(주치화)하사
有最高無上之德量(유최고무상지덕량)하시며
無言而化(무언이화)하사 使萬物(사만물)로 各保其精(각보기정)하시니
是爲美能大之軆也(시위미능대지체야)시니라.


역주
『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의「 삼신설三神說」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상계 주신上界主神은 천일天一로 불리시니, 조화造化를 주관하시고 절대지고의 권능을 갖고 계신다. 일정한 형체는 없으나 뜻대로 형상을 나타내시고 만물로 하여금 제각기 그 성품[性]을 통하게 하시니, 이분은 청정함[淸]과 참됨[眞]의 대본체[淸眞大之體]이시다. 하계 주신下界主神은 지일地一로 불리시니, 교화敎化를 주관하시고 지선유일至善惟一의 법력이 있으시다. 함이 없으시되 만물을 짓고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목숨[命]을 알게 하시니, 이분은 선함[善]과 거룩함[聖]의 대본체[善聖大之體]이시다.

중계 주신中界主神은 태일太一로 불리시니, 치화治化를 주관하시고 최고 무상의 덕德을 간직하고 말없이 만물을 교화하신다. 만물로 하여금 각기 그 정기[精]를 잘 보존케 하시니, 이분은 아름다움[美]과 능함[能지혜]의 대본체[美能大之體]이시다. - 삼신오제본기


「대변경大辯經」의 진선미
대변경에서는 종倧, 선仙, 전佺과 성명정의 원리로 진선미를 실현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종·선·전은 다음호 신교 부분 참조) 먼저 진眞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을 통해야[通性] 합니다. 여기서 성은 삼신에게서 받은 본래의 성품자리를 말합니다.

선善을 이루기 위해서는 명을 깨달아야[知命] 합니다. 여기서 명은 삼신의 영원한 생명이자 삼신상제님의 천명天命을 의미합니다. 곧 상제님이 나에게 내려주신 천명을 깨달아 널리 선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미美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을 지키고 보호하여야[保精] 합니다. 인간 삶의 모든 활동 에너지가 정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몸에서는 신장의 수기水氣가 바로 정의 근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신수腎水가 훤하다’라는 말로 아름답다는 말을 대신하였습니다.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여러 말들 중에 가장 원리에 부합하고 품격있는 말입니다. 아름다워지는 것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그 동력원이 정을 잘 지키고 가꾸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태일의 인간이 되는 그 출발 역시 이에 달려있습니다.

大辯經(대변경)에 曰(왈)
「神市氏(신시씨)는 以佺修戒(이전수계)하사 敎人祭天(교인제천)하시니
所謂佺(소위전)은 從人之所自全(종인지소자전)하야 能通性以成眞也(능통성이성진야)오.
靑邱氏(청구씨)는 以仙設法(이선설법)하 사 敎人管境(교인관경)하시니
所謂仙(소위선)은 從人之所自山(종인지소자산)하야 (山산은 産也산야라)
能知命以廣善也(능지명이광선야)오.
朝鮮氏(조선씨)는 以倧建王(이종건왕)하사 敎人責禍(교인책화)하시니
所謂倧(소위종)은 從人之所自宗(종인지소자종)하야 能保精以濟美也(능보정이제미야)라.


역주
『 대변경大辯經』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신시씨神市氏(배달 초대 환웅)는 전佺의 도로써 계율을 닦아 사람들에게 제천祭天을 가르치셨다. 이른바 전佺이란 사람의 본래 온전한 바탕을 따라 능히 본성에 통해[通性] 참됨[眞]을 이루는 것이다.
청구씨靑邱氏(14세 치우천황)는 선仙의 도로써 법을 세워 사람들에게 천하를 나누어 다스리는 법도[管境]를 가르치셨다. 선仙이란 사람이 본래 저마다 타고난 바를 따라서 자신의 참된 영원한 생명력을 깨달아[知命] 널리 선善을 베푸는 것이다.
조선씨朝鮮氏(단군왕검)는 종倧의 도로써 왕을 세워 사람들에게 책화[責禍]를 가르치셨다. 종倧이란 사람이(우주 안에서) 스스로 으뜸 되는바에 따라 정기를 잘 보존[保精]하여 (대인이 되어) 아름다움[美]을 실현하는 것이다. - 신시본기


STEP3. 나오면서


태일太一에 대한 역주자 말씀


정리1
조물주 삼신의 신령한 손길에서 천지인 삼재가 나왔다. 다시 말해서 삼신이 현실계에 자신을 드러낸 것이 바로 천지인이다. 때문에 천지인 각각은 삼신의 생명과 신성을 고스란히 다 가지고 있고, 각각에 내재된 삼신의 생명과 신성神性은 서로 동일하다. 이러한 천지인을 『환단고기』는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이라 정의한다. 인간을 태일이라 부르는 것, 이것이 한민족 우주사상의 핵심이다. 인간을 ‘인일人一’이라 하지 않고 ‘태일’이라 한 것은 인간이 천지의 손발이 되어 천지의 뜻과 소망을 이루는, 하늘땅보다 더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역주본 해제 84쪽)
정리2
수백 만 년 전의 인간이든, 십만 년 전의 인간이든 오늘의 인간이든 모두 우주 광명과 통해 있는 신령스런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신령한 인간을 삼신의 가르침으로 다스려 일깨워서 천지의 뜻과 대이상을 펼치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을 진정한 태일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염표문이 전하는 홍익인간의 궁극이다. 이러한 홍익인간의 도를 실천하는 인간이 곧 우주의 광명 인간이자 태일이다.(역주본 해제 400쪽)
정리3
이제 인류 시원시대에 환국 백성들이 누리던 천지광명이 온전히 부활하는 우주의 가을개벽 세상이 열린다. 그 세상에서는 태일문화의 주문 수행이 보편 생활문화가 되고, 모든 사람이 신성한 인간으로, 대자연과 신을 노래하는 위대한 철인으로, 삼신의 신성을 발현한 신적 존재로 거듭나 광명한 삶을 살아간다. 그때 인간은 누구나 대한이 되고, 태일이 되고, 홍익인간이 된다.(역주본 해제 602쪽)
정리4
19세기 말엽에 한민족의 태일 문화를 복원시키는 중대한 사건이 있었다. 전남 함평의 도인道人 김경수가 태일 문화의 완성작으로 태을천太乙天의 소식을 전한 것이다. 50년 수행 끝에 그는 삼신상제님으로부터 태을주太乙呪를 받아 내려 세상에 전하였다. 태을주의 탄생은 인류 정신문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 중의 하나로 9천년 태일신 사상의 최종 결실이라 할 수 있다.(역주본 해제 439쪽)
정리5
‘한’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는 미래의 인간상이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한’은 인간에게 내재한 광명, 또는 광명이 깃든 신성한 존재로서의 인간 등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한’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은 장차 천지의 뜻과 이상을 역사 속에서 직접 실현할 천지의 아들딸로서 ‘태일太一의 인간’을 가리킨다. 미래 문명사회에서 보편적인 인간상이 될 태일 인간, 이것이 ‘한’의 궁극이다.(역주본 해제 567쪽)


Plus+ 자료
동황태일
동황태일東皇太一은 『초사楚辭』「구가 九歌」<동황태일東皇太一>에 나온다. 굴원屈原의『 초사「』구가」는 본래 신령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악곡인데, 특히 최고의 주신인‘ 동황태일’을 노래하였다. 동황태일이라 이름한 것은, 태일이 동쪽을 관장하는 신이고 그 사당이 동쪽에 있기 때문이다. 단군조선 시대 때 전 영토를 삼신의 우주관인 천지인 삼계의‘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정신에 따라 삼한三韓(진한·번한·마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동황태일은 곧 삼한 중에 진한辰韓의 대왕[天王, 대단군]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신 단군왕검을 말한다. 단재 신채호는“ 『초사楚辭』에 보면 동황태일 곧 단군왕검을 제사하는 풍속이 (중국 양자강 유역인) 호북湖北, 절강浙江 등지에서 많이 유행하였다”라고 하였다(신채호『,조선상고사』상, 115쪽).

동황태일
吉日兮辰良(길일혜진량)
穆將愉兮上皇(목장유혜상황)
撫長劍兮玉珥(무장검혜옥이)
璆鏘鳴兮琳琅(구장명혜림랑)
瑤席兮玉瑱(요석혜옥전)
盍將把兮瓊芳(합장파혜경방)
蕙肴蒸兮蘭藉(혜효증혜란적)
奠桂酒兮椒漿(존계주혜초장)
揚포兮拊鼓(양포혜부고)
疏緩節兮安歌(소완절혜안가)
陳竽瑟兮浩倡(진우슬혜호창)
靈偃蹇兮姣服(영언건혜교복)
芳菲菲兮滿堂(방비비혜만당)
五音紛兮繁會(오음분혜번회)
君欣欣兮樂康(군흔흔혜락강)

길한 날 좋은 때에 경건하게
상황을 즐겁게 하리라.
손에는 장검의 옥 손잡이 거머쥐고,
몸에는 달강이며 우는 패옥 소리.
옥자리와 옥압진을 갖추고서,
옥방초를 곁들였네.
혜초로 싼 고기 난초에 받치어,
정결한 계수나무 술과 후초 술을 함께 올리자.
북채를 들고서 북을 치면서
느린 박자로 연주하며 가락 맞추어
생황과 가야금으로 성대히 어울리는도다!
신내린 여인의 화려한 옷이여,
향기가 그윽하여 사당에 가득 차네.
오음이 요란하게 소리가 조화를 이루니
신령께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도다.

동북아의 태일신太一神 숭배
동북아에서는 이 태일을 신격화하여 오랜 옛날부터 태일신으로 숭배하여 왔다. 한 무제가 태일신에게 제사 지낸 일을 기록한『 사기「』봉선서」에 따르면, 무제는 태일신을 국가적 제천행사의 주신으로 받들어, 수도 장안의 동남방에 태일단을 쌓고 봄가을로 제사를 올렸다. 이 제사를 청한 신하 유기謬忌는‘ 천신 중에 가장 존귀한 분은 태일신’이라고 무제에게 고하였다. 이 태일신 제사는 서한西漢 시대를 풍미하였고, 태일신은 중국사에서 지고신至高神으로 추앙되었다.

이 땅에서 태일신에게 제사를 드린 것은 고려 시대의 사료에서 비로소 확인된다.『 고려사』의 스물여덟 곳에서 태일의 용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태일초례를 거행한 기록은 20회에 이른다. 최소한 고려시대까지 태일신 신앙은 국가적 의례로 전승되어 온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궁궐의 소격전과 지방의 태일전太一殿에서 태일신을 모셨다. 고려 때는 궁궐 안에 태일전이 따로 있었으나, 조선 태조 때에 이르러 태일전을 파하여 소격전에 합하였다. 지방에는 태일성太一星이 움직이는 방위에 따라 통주(현 강원도 통천), 의성(현 경상북도 의성) 등에 태일전을 지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 소격전의 초제醮祭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말하듯, 태일신에게 예를 바치는 제사라기 보다 계절의 조화를 빌고 왕실의 건강과 치병을 기원하는 예식에 그쳤다. 이마저도 중종 13년(1518)에 조광조의 상소로 소격전이 철폐되어 중지되었다. 8년 뒤 중종 21년에 모후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소격전을 다시 설치하였지만 임진왜란 후에 완전히 폐지되면서 이 땅의 태일 신앙은 명맥이 거의 끊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