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결정하면 끝날 때까지 해야죠!!
[가가도장]
Q1. 어떻게 상제님 진리를 만나게 되었나요?
-저는 도기 132년 음력 2월에 입도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안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1991년 경이었죠. 본부에서 개척단이 와서 안산 지역에 도장 개척을 할 때입니다. 그 중에 오OO 성도가 저희 사무실에 우연히 들러 『한민족과 증산도』 책을 주었어요. 사실 대학 다닐 때 그 책을 접해서 읽어보았는데 그때는 내용이 너무 우리나라를 부각시키는 부분이 짙다고 생각해서 조금 읽다가 책을 덮어두었어요. 하지만 오OO 성도님이 책을 주고 나서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책 읽는 상황을 물으러 오셨어요. 그때 제가 책 내용 중 궁금한 점을 묻고 설명을 듣기도 했는데 그때는 책 내용이 쉽게 쉽게 다가오더라구요. 그때 도장 얘기가 나와서 도장을 방문하였죠. 제가 학교 때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기 때문에 도장 분위기에 부담은 없었어요. 그때는 도장이 작은 포교소급으로 아직 개도치성도 하지 않은 개척단계였어요. 그래서 입도하기 이전부터 패널을 함께 만들고 개척활동도 자연스레 따라 나갔어요.
Q2. 신앙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 당시에 저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되는지 상당히 궁금할 때였습니다. 죽어서 내 몸이 썩고 벌레들이 기어다니게 되는 광경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곤 했어요. 정말 그렇게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죠.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안 죽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책에 태을주를 읽으면 무병장수할 수 있다는 대목이 크게 와닿았어요.(ㅋㅋ) 또 오성도님이 태을주를 읽으면 5만년 동안 살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진리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거잖아요. 나도 저런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 나도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우주관을 처음 공부했을 때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도 심취해서 과연 종말이 올까 생각했어요. 그게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도훈 말씀이나 도전 말씀을 통해 알게됐을 때 절망에서 희망을 갖게 됐죠. ‘아 내가 죽는구나’에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구나, 서로 헐뜯고 하는 세상에서 서로 도와주고 보살펴주고 하는 세상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제 성격이 한번 결정하면 끝날 때까지 하는 성향을 갖고 있어요. ‘이것저것 집적댈 게 아니라 한번 하기로 결정했으니까, 입도를 할 때 태사부님 사부님께 약속을 했으니까, 나는 죽을 때까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Q3. 가가도장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저는 남편을 도장에서 만났어요. 남편은 이미 1986년도에 입도를 했었고 대학 다닐 때 증산도 동아리를 개창할 정도로 열심히 활동을 했었어요. 제가 입도를 위해 21일 정성수행을 할 때 남편이 바래다 줬고 패널을 만들 때도 같이 만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진리 얘기를 많이 나눴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정이 들어 1994년에 결혼을 했어요. 아들의 경우 태어나기 전부터 태을주 수행으로 태교를 했어요. 100일 되기 전에 도장에 와서 입도를 했고요. 항상 함께 도장에 가고 증산도대학교 교육에 참석하고 태전도 함께 가고 그런 게 일상적인 것이어서 자연스레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거죠.
그리고 저는 친정 식구들이 다 신앙을 해요. 부모님 슬하에 2남 2녀인데 여동생이 첫 번째로 입도를 했어요. 이어 막내동생과 어머니가 입도를 했고 마지막으로 큰 동생 가족이 입도를 했어요. 아버지와 제부(여동생 남편) 빼고는 형제들과 조카들이 다 신앙을 해요. 그래서 친정 쪽으로 가족모임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제물을 올리고 치성을 드려요.
Q4. 가족신앙을 만드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첫 가족포교는 입도한 지 1년이 안되어서 여동생을 입도시키는 게 시작이었죠. 제가 여동생보다 결혼이 늦었어요. 여동생이 아이를 낳았을 때 제가 안고서 도장에 걸어다녔어요. 그렇게 하니까 동생이 도장으로 따라오더라구요. 저는 여동생이 신앙한 걸 너무너무 고마워합니다. 여동생과 같이 가족들을 포교한 거죠. 여동생이 정성수행을 참 많이 했어요. 불교를 오래 하신 어머니가 포교가 되면서 다른 가족들 포교가 쉽게 된 것 같아요. 가족 중에 남동생이 제일 마지막에 포교됐는데 재작년 여름에 입도했으니 자그마치 20년이 걸렸네요. 사실 남동생이 신앙을 제일 심하게 반대했어요. 한번은 명절날 차례를 지내고 나서 진리말씀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틀었어요. 그때 동생이 화를 내면서 집안이 뒤집어졌어요. 서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엄청 싸웠죠. “왜, 명절날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걸 트느냐? 누나는 예전에 하던 불교나 할 것이지 왜 새로운 걸 하느냐”고 하더군요. 사실 제가 동생들을 다 불교 학생회에 데리고 갔었거든요. 그랬지만 자기 부인과 애들이 도장에 가는 건 말리지 않았어요.
사실 동생이 신앙하게 된 데에는 여동생의 노력이 컸죠. 집이 서로 가까이 있어 집안일도 많이 돌봐주고 기도도 많이 했죠. 그때 동생이 술을 즐겨 거의 알콜 중독 수준이었는데 도장에서 태을주를 하면서 많이 극복을 했어요. 그때 여동생이 “너 병원에 들어갈래? 도장에 들어갈래? 도장에 가서 치료를 해봐라. 너한테 주는 마지막 기회다” 이렇게 해서 결국 입도를 하게 됐어요. 큰 남동생 입도식 하러 태전에 갔을 때 그때가 신앙기간 중 가장 보람되었던 순간이었습니다.
Q5. 서점포교사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데 언제부터 서점활동을 하셨나요?
-서점활동을 한 지는 한 10년 정도 됐네요. 제가 일단 책을 좋아하고 서점의 분위기를 좋아해요. 서점은 대중들에게 공개된 공간이고 또 우리 진리서적이 전시된 곳이니 제2의 도장이라 할 수 있죠. 사람들이 도장으로 찾아오는 건 힘들지만 지나다니다가 서점에서 자연스레 우리 책을 볼 수 있죠. 그런 서점에서 우리 책이 사람들 눈에 띄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대상자나 구역원을 이끌고 서점에 자주 가요. 자연스레 우리 책들과 접하게 하는 거죠.
제가 서울의 강남지역과 경기 일부지역을 포함해서 약 20개의 서점을 관리하는데 아직 우리 책이 안 깔린 곳이 많아요. 이것은 도장 책임자나 서점 책임자만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고 다 함께 힘을 합쳐야 해요. 천도식을 올릴 때 폐백으로 홍보서적을 올리는 문화가 정착되면 서점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되죠. 하지만 아직 이런 문화가 정착된 도장이 많이 없어 안타까워요.
도서전시회 할 때는 제가 참 신나요. 준비를 해서 행사를 치르는 5일간의 그 과정이 너무너무 좋아요. 사람들에게 증산도를 크게 홍보하는 기회잖아요. 우리가 부스를 정성들여 잘 만들면 눈에 잘 띄고 또 사람들이 많이 와서 증산도를 크게 알리는 기회거든요.
Q6. 신앙과정에서 특별한 수행 체험을 하신 게 있나요?
2008년 여름 무렵 태을궁에서 ‘태을주 조화성신 체험의 날’ 밤새 도공수련을 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죄스러움 속에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해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요. 거의 통곡 수준으로 하염없이 흘러 내리더라구요. 그때 태을궁 가득 어떤 자상한 음성이 울려퍼지는 겁니다. 태을궁에 아무도 없고 저와 그 음성만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음성은 “내가 너를 용서해줄게” 였습니다.
저는 그 음성을 태모님의 성음으로 느꼈고요. 한없이 인자하고 측은한 마음이 담긴 음성이었습니다. 그동안 전생과 현생에 걸쳐 지었던 모든 죄와 허물이 그 음성 하나에 모두 씻겨지고 완전히 깨끗한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계속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태모님께 죄를 용서받았다는 당당함,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기니까 이 세상에 못할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교에도 더욱 자신감이 붙고 적극적으로 대상자를 만나러 나갔습니다.
Q7. 좋아하거나 즐겨읽는 성구말씀이 있나요?
-도전 2편 22장에 있는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니라” 이 성구가 제게는 화두와 같은 성구입니다. 우주 역사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가 인존人尊이잖아요. 나 스스로가 인존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해야 되겠죠. 저는 이 성구를 외우며 우리 일의 비전을 되새기고 또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도 합니다.
Q8. 마지막으로 갑오년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제가 패널, 인터넷, 서점 등 각 부분에서 육임을 짜는 큰 계획을 세웠는데 올해는 인터넷 활동으로 육임을 짜고 싶어요. 지금까지 인터넷 카페활동으로 1명을 포교하는 데 그쳤지만 올해는 더욱 박차를 가할 겁니다. 특히 스마트폰을 적극 활용해야죠. 또 제가 환단고기닷컴이란 카페를 운영하는데 앞으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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