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핵랑이 되어 새 역사를 개척하는 일꾼이 되고파!

[참신앙의 축복]
이연주(29세) | 청주흥덕도장 | 2003년 음력 2월 입도


대포포감으로서의 고충은 무엇이었나요?


방황의 시간 청소년포교부(약칭 청포) 때 입도한 저는 대학교에 진학하여 대학생포교부(약칭 대포)에 소속되어 신앙을 했고, 2010년에는 대포 포감을 맡게 되었습니다. 초임간부를 맡으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봉직하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이 되었는데, 여러 대포 성도들이 한꺼번에 졸업을 하면서 활동 인원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저는 활동할 때 많은 일들을 감당하느라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그러한 한계 때문에 제 스스로 자책도 해보면서 방황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가슴에 뜻을 품고 예전에 한 포정님께서 “천하사를 할 때는 뜻을 세워야 된다.”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막상 힘든 상황이 닥치니, 궁하면 통하게 된다고 그때 그 말씀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구한말 동학혁명을 이끌었던 전명숙 장군께서는 흥선대원군에게 “제 흉중胸中에 품은 뜻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한번 죽고자 하는 마음뿐이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서 어떤 뜻을 품어야 될까, 내가 죽기를 각오하고 해야 될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봤습니다. 저는 조상님 음덕으로 증산도를 만났고 청포 때부터 신앙을 시작했기 때문에 제 삶의 모든 것이 증산도였고, 내 인생이 증산도였으며, 증산도가 제 인생이었습니다. ‘나의 사명은 무엇일까’에 대해 깊이 고심한 끝에 오직 제가 가야할 길은 ‘청대포 간부가 되어서 사역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도道를 만나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거라 생각되었습니다. “운명을 지고 태어난 자는 운명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더 이상 환경을 탓하지 않고 저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흉중의 뜻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천지부모님을 향해 “제가 충북지역 대포의 뿌리가 되어서 인재 양성과 조직 성장에 모든 것을 다 바치겠나이다. 삼신 상제님을 수호하는 진리의 핵랑이 되어서 새 역사를 개척하는 정의로운 일꾼이 되겠습니다.”라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동지를 만나다 일단 뜻을 품고 나니 함께 활동할 동지도 생겨났습니다. 2012년 2월, 군을 제대하고 한동안 뜨음하던 대포 성도 한 명이 재발심을 하고 도장에 왔을 때에 제가 세운 뜻을 전했습니다. “상제님 신앙이 천하사인데 우리는 후천문명을 여는 창업의 시조다. 지금 충북대가 새 판을 짜는데 같이 창업의 역사를 써보자, 꼭 이뤄보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와 뜻을 함께 해주는 동지가 된 그 성도님이 바로 천○○ 부포감입니다.

대학가 활동은 어떻게 전개했나요?


너는 내 운명 2012년 3월, 개강이 되어서 가두모집 기간이 되었습니다. 부스 세팅을 마치고 모집 활동을 하고 있는데 신입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지나가다가 국통맥 홍보패널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동아리 구경하고 가세요.” 하면서 쳐다봤는데, 그 여학생으로부터 밝은 서기가 뻗쳐왔습니다. 그 순간 제가 본능적으로 느낀 것은 ‘너는 내 운명!’이라는 심중의 울림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어렸을 적부터 역사드라마들을 보면서 ‘역사 속의 배달이 뭐지?’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집에서 할머니가 한얼교 신앙을 하는데 단군을 모시는 종교여서 어렸을 때부터 마니산의 제천행사도 참여했고 집에서도 청수 모시는 문화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때문에 동아리방에 와서도 우리 문화가 자연스러웠고, 잘 정착되어서 6월 대천제 때 입도를 했습니다. 제가 별명을 붙였는데 ‘밀리언달러 베이비’입니다.

환단고기 강연회 3월에 가두모집을 완료하고 4월 30일에 환단고기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150석의 학교 메인 회관을 빌려 충북대 안○○ 교수님을 초청하여 수렴 세미나식으로 운영키로 하였습니다. 과감히 기획은 했지만 과연 좌석을 다 채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도뿐이라고 생각해 성전에서 하루에 20분씩 통성기도를 강력하게 했습니다. ‘상제님 진리와 인연 있는 사람들이 들불처럼 일어나서 우리 강연회 장소를 꽉 채울 수 있게 해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사활을 걸고서 함께 기도하고 포스터를 붙이고 초대장 홍보를 한 결과, 마침내 4월 30일 강연회 당일에는 자리가 가득 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조화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이 터질까 싶었습니다. ‘하면 되는구나!’ 이런 자신감을 얻고서 1학기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환단고기 스터디 이후에 여름방학을 맞았습니다. 당시 여름 대포수련회에서는 『환단고기』 출간을 앞두고 교정 작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갓 입도한 박○○ 성도님도 교정 작업에 참여하면서 환단고기를 정독했고 방학 내내 도장에 모여 매일 환단고기를 공부하며 실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그 덕분에 2학기 때는 새롭게 입회한 회원들과 함께 환단고기 스터디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2학기 가두모집을 하던 때는 당시 인기를 끌던 드라마 〈각시탈〉을 패러디하여 비슷한 복장을 한 채 탈을 쓰고 역사광복을 외치면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예전과 다르게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유난히 많이 입회했으며, 그 중 다섯 명 정도가 매주 환단고기 스터디에 함께 했고, 두 명은 도장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중 한 명은 21일 정성수행도 같이 하고 팔관법 교육도 했는데, 정작 입도를 안 하고 입대를 해버렸습니다. 돌아보면, 진리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고 단순한 역사계몽을 한 것이 아니었나 싶어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심과 실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며 겨울방학을 맞았습니다.

조직운영과 일꾼양육에 대한 마인드는?


교육을 통한 질적 성장 대포 조직이 고3에서 대포로 올라오는 성도들과 새로 입도한 성도들로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자 조직의 방침과 철학, 프로그램 등 대포 조직 운영의 ‘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는 삼신을 수호하는 젊은 인재들이 양육되어 주요 관직을 맡고 나랏일을 해왔듯이 그 맥을 우리 대포가 이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기 중에는 동아리 중심으로 반드시 아침수행을 하고, 방학 때는 집중적으로 교육을 해서 인재양육을 하는 틀을 세웠습니다. 대포가 수적으로 아무리 많아져도 그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간부가 부족하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으므로 포교를 통한 양적 성장과 동시에 교육을 통한 질적 성장을 일으켜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꾼양육을 위한 방법론 그래서 그해 겨울방학 때 『도전』과 『환단고기』 교육을 하면서 동시에 팔관법 강사 양성을 진행했습니다. 또 하나 일꾼양육을 위해 활용한 방법은 치성 때 도훈 말씀을 같이 요약하고 느낀 점을 공유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신입 신도들이 많다 보니 어려운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관련된 도전 말씀을 같이 보고 서로 느낀 점을 공유했습니다. 또한 대포 카톡방을 운영하면서 수행 일일공유도 했는데, 거의 1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각자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하루에 49배례, 태을주 계수기 500독, 수행 15분 이상을 최저 선으로 정하고서 매일 공유를 했습니다.

최근의 활동성과가 궁금한데요?


서명운동과 세미나 그렇게 겨울방학을 보내고 대망의 2013년, 사오미 개명의 첫해인 계사년이 되자 본격적으로 도장에서 ‘역사찾기서명운동’과 관련된 홍보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신입 성도들은 처음에 홍보활동 하는 걸 쑥스러워했지만, 차츰 익숙해져서 서명을 받고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세미나에도 적극 인도하였습니다. 3월 신학기 수업을 마치면 매일같이 서명운동을 했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좋은 경험을 쌓아갔다고 생각합니다. 4월부터 12월까지 도장에서 세미나를 매주 한 번씩 진행했고 대포에서도 별도로 세미나와 스터디를 운영해 많은 사람들을 인도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분은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후손이었는데, 세미나에 오시면 불의한 역사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된다며 열변을 토하셨습니다. 홍산문화 연구로 유명한 이형구 박사님의 제자인 선문대 대학생이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봄여름에 흘린 땀방울 이렇게 종횡무진 서명운동을 하고 줄기차게 세미나를 이어갔는데, 봄이 가고 여름이 가도록 눈에 드러나는 성과가 없어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8월에도 어김없이 활동을 나갔는데, 거미가 계속 눈에 띄는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차를 타도 거미가 보이고, 도장에서도 거미가 나타나고, 심지어 거미가 제 몸에 거미줄을 칭칭 감아서 떨쳐내도 와서 달라붙고 그랬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했는데, 문득 상제님 말씀에 “조그만 거미도 줄을 치면 새도 잡아먹고 뭣도 잡아먹는데…”(도전 8:7:7)라는 성구가 생각났습니다. ‘우리 대포가 조직화가 되려는 상象인가 보다’ 이런 희망을 얻고 다시 힘을 내보았습니다. 봄여름 이렇게 땀 흘리며 활동했는데 결실을 못 맺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습니다.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도록 기도도 많이 하고, ‘노력은 반드시 믿음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참사람을 만나리라 그러던 차에 8월쯤 세미나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이 인도됐습니다. 특히 두 명 정도가 반응이 좋아서 그들을 따로 만나 책을 구입하게 하고 매주 한 번씩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3주 정도 모임을 갖고 신교와 상제님을 얘기할 차례가 됐는데,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9월 2학기 가두모집을 시작한 첫날, 활동을 위한 부스 세팅을 마치고 앉아있는데 연락이 두절됐던 그 학생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습니다. 알고 보니 휴대폰이 분실돼서 연락이 안 된 것이었는데, 이후 자주 마주치면서 인사를 주고받곤 했습니다. 한번은 동아리홍보를 하고 있는데 그 학생이 『개벽실제상황』책에 관심을 보이며 빌려가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빌려주겠다고 했더니 동아리에 들어오겠다고 해서 입회를 시키고 동아리방으로 인도해서 수행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환단고기를 믿는 사람이라면 증산도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그동안에 했던 모든 힘들었던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바로 이거다, 이 사람을 만나려고 지금까지 고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이 박○○ 성도님입니다. 평일은 동아리방에서 수행하고 토요일은 등교를 안 하므로 도장에서 수행을 했는데, 곧바로 100일 정성수행을 시작하였고 거의 매일 도장에 와서 교육을 받았으며 11월에 입도를 했습니다. 마치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속전속결로 입도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도장에서 5천 배례를 연속으로 올리기도 했습니다. “일심이면 천하를 돌리는데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나중 난 뿔이 우뚝할 수 있느니라.”(8:81:3)는 상제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동고동락한 대포성도들 그 무렵에 대포 두 명이 더 입도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하○○ 성도님은 ‘역사찾기서명운동’을 벌이던 중에 찾아와서 얘기를 듣고 바로 다음날 도장에 방문하였는데, 『우주변화의 원리』와 『환단고기』, 『이것이 개벽이다』를 이미 다 읽은 상태였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집안의 할머니께서 도를 닦아 체험을 하셨는데, “앞으로 서양은 물로 망하고 우리나라는 병란으로 망한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한명인 원○○ 성도님은 공익근무중인 성도님과 같이 일하는 동료였습니다. 처음에 교육을 받고 입도를 생각했는데 부모님 반대로 주춤하다가, 꿈속에서 개벽에 대한 강한 체험을 하고서 다시 마음을 돌려 무사히 11월에 입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대포에서 11월에 세 명이 입도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입도식을 봉행하는데 힘들었던 지난 활동 순간들이 생각나서 다들 울컥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두 함께 도와가면서 이루었기에 더욱 의미가 값진 것 같습니다. 인디언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후천선경이 결코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더디어도 우리가 꼭 함께 가는 그런 대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포부는?


생각을 바꾸자 신앙을 하면서 처음에는 제가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선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변하지 않고선 아무것도 바뀌지 않더군요. 그래서 제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내가 대포를 이끌어가자, 내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자, 내가 그 사람이 되자’ 그렇게 생각을 바꾸었더니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도장을 위해 내가 해야 될 게 무엇인지, 성도님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런 일을 찾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고생스러워도 내가 대포의 뿌리가 되어서 앞으로 오는 후배들에게는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 함께 하는 일꾼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보면,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수천만 선배 신앙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포가 있고 증산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픈 마음뿐입니다. 언젠가는 배턴을 넘겨받아야 할 다음세대 대포 일꾼들을 기르기 위해서 제가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고픈 길 대포에 외롭게 남게 되었을 때 누군가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러면 포감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래서 제가 딱 한마디를 했습니다. “나에게 무엇이 남은 것이 아니라 대포에, 충북대에 내가 남은 것이다!” 상제님께서도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이루어지느니라.”(10:26:5)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지가 일월이 아니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至人)이 아니면 빈 그림자라.”(5:196: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지극한 정성을 가지고 그런 한 사람이 되어서 동아리를 사수하고 대포 역사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후천선경의 도성덕립道成德立이 되었을 때, 대포 성도들이 각 학교의 산 증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소원> 보셨나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구절을 소개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가장 외로운 사람이 가장 친절하고, 가장 슬픈 사람이 가장 밝게 웃는다. 그리고 상처 입은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