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FOCUS | 종도사님께 듣는 대한역사관⑬

[STB하이라이트]

다섯 번째 국통맥 - 신라(1) (84~90번 질문)



Q84 신라의 역사와 뿌리를 이해하는 데 ‘진한辰韓’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한’에 대한 왜곡이 심각하다고 하는데요, ‘진한’에 대한 역사 왜곡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신라와 진한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진한은 신라의 첫 이름입니다. 신라는 북쪽 단군조의 삼한에서 진한 사람들이 내려와서 형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진서晉書』와 『양서梁書』에 ‘진한의 노인들이 중국 진시황 때 만리장성 노역을 피해서 동방으로 내려왔다’는 기록을 근거로 진한이 동방 진辰이 아닌 진나라 진秦이며, 신라도 전부 중국 사람들이 지배했다는 아주 악질적인 역사 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강단사학에서도 식민사학을 본받아 진국辰國은 한반도 남쪽에 있었으며, 신라와 백제, 가야가 생기기 전에 한반도 남쪽에 작은 성읍城邑 국가들이 있었고 그때 중심 세력이 생겼는데 그게 진辰이라고 합니다.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남쪽에 진辰이라는 세력이 있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마한, 변한, 진한의 연맹체로 성장했고 그것이 삼한이라고 나옵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사 교육의 현주소입니다. 강단사학에서 단군조선의 북쪽 삼한(진한, 번한, 마한)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현실적으로는 단군조선을 신화로 보고 총체적으로 근본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비롯한 우리 정통 기록에는 신라의 지배 세력은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단군조선이 망하면서 그때 북방에서 내려온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 단군조선의 중심이었던 진한辰韓에서 신라가 왔다는 것입니다. 『환단고기』에서도 이 신라의 전신을 진한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국이라는 것은 원래 동방의 천자 나라, 진한(진조선)입니다. 단군조선을 전체로 부를 때는 진국이고, 그것을 나눠서 부를 때는 만주가 진한이고, 왼쪽 요서, 산동까지가 번한이고, 한반도 전체는 마한입니다. 『환단고기』에서는 이것을 아주 명백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Q85 신라의 근원과 뿌리에 대한 역사 왜곡 중에 신라의 건국조인 박혁거세의 어머니에 대한 내용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박혁거세의 어머니에 대한 역사 왜곡의 실체와 진실이 궁금합니다.


이 왜곡의 핵심은 신라 건국자의 어머니가 조선 사람이 아니라 중국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신라 건국자의 어머니는 중국 제실의 따님, 중국 황실의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이 와서 박혁거세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를 보면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는 진한을 계승한 북부여 황실의 딸이라는 놀라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경주 선도산에 가면 선도산 성모 박혁거세 어머니를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斯盧始王(사로시왕)은 仙桃山聖母之子也(선도산성모지자야)라
昔(석)에 有夫餘帝室之女婆蘇(유부여제실지녀파소)가 不夫而孕(불부이잉)하니 爲人所疑(위인소의)하야
自嫩水(자눈수)로 逃至東沃沮(도지동옥저)하고 又泛舟而南下(우범주이남하)하야 抵至辰韓奈乙村(저지진한나을촌)하니
時(시)에 有蘇伐都利者(유소벌도리자)하야 聞之(문지)하고 徃收養於家(왕수양어가)러니
而及年十三(이급년십삼)에 歧嶷夙成(기억숙성)하야 有聖德(유성덕)이라
於是(어시)에 辰韓六部(진한육부)가 共尊(공존)하야 爲居世干(위거세간)하니
立都徐羅伐(입도서라벌)하고 稱國辰韓(칭국진한)이오 亦曰斯盧(역왈사로)라.
-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사로의 첫 임금은 선도산 성모의 아들이다. 옛적에 부여 황실의 딸 파소가 지아비 없이 잉태하여 남의 의심을 사게 되었다. 이에 눈수에서 도망하여 동옥저에 이르렀다가 또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진한의 나을촌에 이르렀다. 그때에 소벌도리라는 자가 이 소식을 듣고 가서 파소의 아이를 집에 데려다 길렀다. 나이 13세가 되자 뛰어나게 총명하고 숙성하여 성덕이 있었다. 이에 진한 6부가 함께 받들어 거세간이 되었다. 서라벌에 도읍을 세워 나라 이름을 진한이라 하였고, 사로라고도 하였다.


Q86 신라 개국조인 박혁거세의 어머니가 북부여 고두막한의 따님인 파소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파소는 어떤 분이며 어떻게 북부여에서 경주로 오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한무제漢武帝가 우거 정권을 무너뜨리고서 동북아 대천자가 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구국의 영웅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분이 동명왕이라 불리는 고두막한高豆莫汗입니다. 파소婆蘇는 이분의 따님입니다. 이 고두막한은 단군조선의 마지막 47세 단군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이 고두막한이 북부여의 4세 해우루 단군의 뒤를 이어 5세 단군 자리에 오릅니다. 이 고두막한 단군의 따님인 파소가 혼전 임신을 하게 되어 경주 나정蘿井으로 오게 되는데 아마 이것은 어떤 비밀이 있다고 봅니다. 일설에는 박혁거세의 아버지 이름이 ‘사로斯盧’가 아니냐 하는 추정도 있습니다. 고주몽이 시조 할아버지 고향을 따서 나라를 고구려라 했듯이, 아마도 박혁거세 어머니가 사랑한 왕자님의 이름이 사로여서 진한에서 수도를 서라벌로 하고 나라 이름을 사로로 바꾸지 않았나 하는 추정도 해 봅니다.

Q87 신라 역사 전체로 봤을 때 그 역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김씨 왕조의 왕족이 북방 유목문화를 형성하고 유럽의 역사를 평정한 흉노족의 왕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신라 김씨 왕조의 혈통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라에서 첫 김씨 왕은 13세 미추왕입니다. 김씨는 북방 유목민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흉노의 한 왕자, 한무제에게 생포됐던 흉노 왕자의 후손이라 합니다. 이 왕자가 망하라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한무제의 목숨을 구해 주게 됩니다. 훈족은 사람 모양에 금을 입혀서 천제를 올리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을 ‘제천금인祭天金人’이라고 합니다. 이 풍습은 삼신상제님을 모신 천제天祭 문화와 환웅천황을 모신 웅상雄常 문화에서 기원된 것입니다. 이 제천금인의 풍속에 따라 한무제가 흉노 왕자에게 김金씨 성을 주었고 그 왕자가 김일제金日磾입니다. 그 후 김일제의 후손인 왕망이 나라를 빼앗고 신新나라를 세우게 되지만 30년 만에 패망하게 되면서 그때 김씨 왕족들이 망명을 통해 신라와 가야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김일제의 동생이 김륜인데 그 5세손 중에 형이 신라의 김씨 왕조의 시조가 되는 김알지이고, 그 동생 김수로는 가야의 시조가 됩니다. 신라 30대 문무왕 비문에도 우리 조상 할아버지는 ‘투후제천지윤秺侯祭天之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황하가 굽이친 오르도스 그쪽의 투후로서, 아주 강력한 제후로 봉함을 받은 김일제, 즉 흉노 왕손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Q88 북방 유목 민족은 모두 단군조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씀해 주신 바 있습니다. 세계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친 북방 유목문화의 특징과 대표적인 유물이 궁금합니다.


유목문화는 지구촌 동서남북의 문화를 소통하는 진정한 개척자로서, 문화 소통자로서 역할을 했습니다. 유목민은 야만인이 아닙니다. 말 타고 가축을 몰고 이동한다고 해서 문화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유목문화의 꽃은 ‘황금문화’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지구촌 여기저기를 가 보면, 스키타이라든지 몽고 서북쪽의 파지릭 등에 있는 황금문화를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목문화의 특징은 공통적으로 3수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립니다. 몽골도 그렇고, 흉노도 그렇고, 선비도 그렇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3수의 정신에 따른 좌현왕, 우현왕이 있고 그 밑의 군 조직에 우방과 좌방이 있고 24장의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방 유목문화의 유물을 보면 신라, 가야 유물과 상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편두偏頭를 하고, 동복銅鍑을 말의 등이나 엉덩이 위에 싣고 다닙니다. 동복을 제대로 보면 삼신의 3수 문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Q89 유목문화의 꽃은 ‘황금문화’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신라는 황금 금관으로 유명합니다. 신라 금관의 특징과 금관에 담긴 문화 정신이 궁금합니다.


전 세계에서 황금 금관이 13개 정도 나왔다고 하는데 그중 7개가 신라에서 나왔습니다. 신라는 금관의 종주국입니다. 여러 무덤에서 나온 신라의 금관은 인류의 원형문화, 우주 역사의 원형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신라의 금관 문화에 나오는 우주 창세 역사 문화의 어떤 최상의 상징, 우주의 진정한 수수께끼는 곡옥이라고 생각합니다. 곡옥은 아름답고 신비스러우며 신성한 기운이 있습니다. 이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태아의 모습, 물고기 모습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곡옥이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이 만든 술어입니다. ‘구부러진 옥’이란 뜻인데 사실은 아무 의미 없는 유치한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식민사학의 연장선에서 나온 술어입니다.

중국에서는 5,500년 전에서 9,000년 전의 문화인 홍산문화가 드러나면서 동북아의 인류 창세 역사문화의 유적지가 나왔습니다. 거기에서 나온 문화의 상징이 용봉龍鳳입니다. 초기에 옥으로 만든 용을 곡옥이라 부르지 말고 옥룡으로 부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라의 황금 보검을 보면 삼태극이 있는데, 이 삼태극 문양을 곡옥처럼 새겨 놓았습니다. 삼태극 문양은 우주의 조물주의 생명과 신성을 3수로 표현하는 천일-지일-태일, 하늘광명-땅광명-인간광명에서 온 것입니다.



Q90 ‘화랑’은 신라를 대표하는 조직이자 신라 역사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민족의 낭가 문화와 ‘화랑’의 원형이 궁금합니다.



소도에서 삼신을 모시는 제관이 삼랑三郞입니다. 강화도에는 마리산 참성단 주변에 삼랑성이 있습니다. 바로 이 소도에서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이 삼랑이고, 이 삼랑문화를 계승한 것이 화랑입니다. 삼랑에서 화랑이 나왔습니다.

源花(원화)는 稱女郞(칭여랑)이오 男(남)은 曰花郞(왈화랑)이니 又云天王郞(우운천왕랑)이라.
自上(자상)으로 命賜鳥羽冠(명사오우관)하야 加冠(가관)에 有儀注(유의주)라.
時(시)에 封大樹(봉대수)하야 爲桓雄神像而拜之(위환웅신상이배지)라
神樹(신수)를 俗謂之雄常(속위지웅상)이니 常(상)은 謂常在也(위상재야)라.
-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원화는 여랑을 말하고, 남자는 화랑花郞이라 하는데 천왕랑이라고도 하였다. 임금으로부터 오우관을 하사받아 썼는데 관을 쓸 때 예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큰 나무를 봉하여 환웅신상桓雄神像으로 삼아 여기에 배례를 올렸다. 이러한 신수神樹를 세속에서 웅상雄常이라 불렀는데, 상常이란 ‘항상 임하여 계신다(常在)’는 뜻이다.


단군조선 때는 천지화天指花, 하늘에서 지적해 준 꽃을 꽂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천지화랑天指花郞입니다. 신라에서 10대 젊은 소년 중에서 인간성이 좋고 용기와 의리가 있는 자를 추천받아서 제도화, 조직화한 것이 화랑입니다. 그 책임자를 풍월주風月主라 합니다.

소도에는 반드시 경당扃堂이 있었습니다. 경당은 인류 학교 문화의 고향입니다. 이 경당에서 배우는 학동, 도생을 국자랑國子郞이라 합니다. 『단군세기』에 보면, 환웅이 3천 명 개척단을 데리고 왔는데 그 정신을 계승한 것이 바로 이 국자랑이고, 이 국자랑을 계승한 것이 북부여의 천왕랑天王郞입니다. 이 천왕랑이 신라의 화랑花郞으로 내려왔습니다. 고구려는 검은 옷을 입고 띠를 두르고서 조의선인皂衣仙人이라 했습니다. 이 조의선인 문화가 일본에 그대로 전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