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칼럼 | 구약성서 속의 신비의 인물 멜기세덱

[칼럼]
김현일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기독교 구약성서의 〈창세기〉는 크게 나눠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지창조로부터 대홍수에 이르는 창세역사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즉 족장들(patriarchs)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창세기〉의 전체 50개 장 가운데 11장부터가 모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삼대에 걸친 족장들 이야기이다. 그중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을 지닌 아브라함Abraham이 소돔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잡혀간 조카 롯Lot을 구하는 일전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살렘의 제사장이자 왕이었던 멜기세덱Melchizedek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을 바쳤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하지만 성서에는 멜기세덱에 대해 단편적인 언급만 있을 뿐 자세한 기술 내용이 없어 베일에 싸인 신비의 인물로 비춰지고 있다.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먼저 아브라함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아브라함은 원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수메르 문명이 태동하였던 도시국가 가운데 하나인 우르Ur 출신이다.

〈창세기〉에 의하면 그는 야훼Yahweh 신의 부름으로 우상숭배가 만연하던 수메르 땅을 떠나 자신과 후손에게 복을 내리겠다는 야훼의 약속만을 믿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였다. 그의 이러한 믿음 때문에 기독교도들은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받들고 있다.

아브라함은 혼자서 이주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처는 말할 것도 없고 부친 데라와 동생 하란, 조카 롯 등 일가가 모두 이주한 것이다. 도중에 동생인 하란과 부친 데라가 죽었으니 이주도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브라함 일가는 가축을 키우는 유목민이었다. 한곳에 정착해 사는 것이 아니라 초지를 따라 이동하였는데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팔레스타인 땅에 기근이 크게 들자 다시 이집트로 내려갔다. 이집트는 나일강이 매년 규칙적으로 범람하기 때문에 기근 걱정이 없는 나라였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 체류하는 동안 이집트 왕으로부터 많은 가축과 노예를 얻어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집트 왕 바로는 사라Sarah가 아브라함의 처라는 것을 모르고 아리따운 사라를 취하려고 하다가 그만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아브라함에게 크게 보상을 해 주었던 것이다.

멜기세덱과의 만남


아브라함이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 후 상당히 큰 전쟁이 있었다.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기록인데 엘람 왕에 대항하여 팔레스타인의 여러 왕들이 싸운 전쟁이다.

당시 이란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던 엘람 왕국의 왕 그돌라오멜은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지배하였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던 소돔, 고모라 등의 소왕국들이 그돌라오멜의 지배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돌라오멜과 그 휘하의 동맹국 왕들이 반란 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팔레스타인까지 온 것인데 이들은 소돔 지역에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집안사람들 및 소유물을 모두 사로잡아 갔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이 집안의 종자들 318명을 거느리고 약탈자들을 쫓아갔다고 한다. 그돌라오멜과 그 동맹 왕들을 시리아 땅의 다마스쿠스 근처까지 추격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롯과 그 식구들을 구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승전해서 돌아오자 소돔 왕도 영접하러 나왔을 뿐 아니라 멜기세덱Melchizedek이라는 인물도 환영하러 나왔다.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


〈창세기〉에 의하면 그는 ‘살렘Salem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제사장’이라고 하였다.

멜기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갖고 아브라함을 맞으러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 빵과 포도주는 아브라함과 그 가신들을 대접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식사 대접뿐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엘 엘뤼온El Elyon)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은 자신이 적들에게서 빼앗은 물건의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바쳤다.

살렘이 예루살렘Jerusalem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당시에 예루살렘이라는 나라가 있었던 것 역시 확실하지 않다. 예루살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E 1350년경의 엘 아마르나 문서Tell el-Amarna Tablets로서 이집트의 파라오 아케나톤과 예루살렘 총독 사이의 외교서신이다.

아브라함이 실존 인물이라면 아브라함의 생존 시기는 그보다 수백 년 이전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살렘을 지역으로 보지 않고 ‘평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살렘이 평화 혹은 평강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해석에 따르면 멜기세덱은 어느 지역의 왕이 아니라 사제였다. 후대의 유태인들은 멜기세덱을 아론Aaron의 후손들이 맡았던 일반적인 제사장과는 다른 부류의 특급 제사장으로 생각하였다.

〈시편〉에 ‘멜기세덱의 법통을 따르는 제사장’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1 야훼께서 내 주께 선언하셨다.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
2 야훼가 시온에서 너에게 권능의 왕장을 내려 주리니, 네 원수들 가운데서 왕권을 행사하여라.
3 네가 나던 날, 모태에서부터 네 젊음의 새벽녘에 너는 이미 거룩한 산에서 왕권을 받았다.”
4 야훼께서 한번 맹세하셨으니 취소하지 않으시리라. “너는 멜기세덱의 법통을 이은 영원한 사제이다.”
5 당신의 오른편에 주님 계시니 그 진노의 날에 뭇 왕들을 무찌르리라.
6 뭇 나라를 재판하여 시체를 쌓고 넓고 먼 저 땅에서 머리들을 부수리라.
7 그는 길가에서 시냇물을 마시고 머리를 쳐들리라. (공동번역, 시편 110장)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고 있는 이 시의 주제는 단순하다. 야훼가 다윗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왕일 뿐 아니라 멜기세덱의 법통을 이은 사제이다. 신성한 ‘사제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법통은 그리스어 역에서는 계급을 뜻하는 ‘타크시스’로 번역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론의 자손들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사제들과는 다른 계통, 즉 다른 계급의 사제라는 것이다. 멜기세덱 계통의 높은 사제가 있다는 관념은 신약성서의 〈히브리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거기서는 예수를 일반 제사장과는 다른 멜기세덱의 계통에 속하는 제사장이라고 하였다. 신약성서 가운데서 신학적 논문의 성격을 띤 〈히브리서〉의 저자는 멜기세덱에 관한 설명이 어렵다는 말을 하면서 멜기세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습니다. 그는 여러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맞아 축복해 주었고
2. 아브라함은 그에게 모든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고 그다음 살렘 왕이라는 칭호는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이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서 영원히 사제직을 맡아보는 분입니다.
(공동번역 히브리서 7:1-3)


그는 하느님의 아들과 비슷한 존재이니 보통 제사장과는 급이 다른 것이다. 예수가 바로 이러한 멜기세덱급의 제사장이라고 〈히브리서〉 저자는 뒤에서 말한다.

멜기세덱은 이집트 사람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가 멜기세덱을 일컬어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는’ 영원한 사제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중세 유럽의 한 연대기에서는 이 멜기세덱을 아비와 어미가 있는 인간으로 제시하였다.

7세기 이집트의 니키우 주교였던 요한이라는 사람이 쓴 연대기이다. 이 책은 원래는 그리스어로 쓰였고 (당시 이집트는 비잔틴제국의 영토였다) 아랍인들에 의해 정복된 이후에는 아랍어로 번역되었다가 다시 근대에 와서 아랍어에서 에티오피아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현재 그리스어본이나 아랍어본은 사라졌고 에티오피아어 번역본만이 남아 있어 이 판본으로부터 1916년 영역본이 나왔다.

니키우 주교의 연대기는 모두 122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세 시대의 많은 연대기들처럼 인간의 창조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태고 시대에 관한 서술에서는 구약성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의 신화와 전설들도 대거 동원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흥미롭다. 저자가 그냥 구약성서의 이야기들을 그대로 베껴 놓았거나 요약해 놓았더라면 이 연대기의 가치는 훨씬 떨어질 것이다.

멜기세덱에 관한 서술은 연대기 제28장에 나온다. 구약성서에서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고 한 것은 그가 아브라함 일가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실은 이집트 왕가 출신이었다. 즉 멜기세덱의 선조는 이집트에서 온 시두스라는 인물로 가나안 땅을 다스렸다고 한다. 시두스는 페니키아의 유명한 도시 시돈을 건설하였다.

가나안인들이 그러하듯 멜기세덱의 부모는 모두 우상숭배자였다. 즉 가나안의 여러 신들을 숭배하였다. 멜기세덱은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부모를 비난하고 가출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의 사제가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왕으로서 가나안인들을 다스렸다고 한다. 그는 또 골고다 언덕에 시온이라는 도시도 세웠는데 이 도시는 ‘평화’를 의미하는 살렘이라고도 불렸다. 니키우 주교의 연대기에 의하면 그는 살렘을 113년이나 다스리다 죽었다.

니키우 주교는 왕이면서 제사장이었던 이 멜기세덱이 최초로 하느님에게 빵과 포도주를 제물로 바친 사람이라고 그 공덕을 찬양하였다. 즉 동물을 죽여 그 피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라는 제물, 즉 평화의 제물을 바쳤다. 그 때문에 멜기세덱은 평화의 왕이라고 불렸다.

멜기세덱은 엘 엘뤼온을 섬기던 대제사장


돌이켜보면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멜기세덱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르침을 내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브라함이 그에게 흔쾌히 십일조十一條를 바쳤을 리가 없다.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엘 엘뤼온’을 섬기던 사람이었다. 필자는 엘 엘뤼온을 우리 식대로 표현하자면 ‘상제上帝’라고 번역할 수 있다고 본다. 우상숭배가 만연하던 당시에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을 섬겼던 그에게 아브라함은 크게 감동하였다. 〈히브리서〉에 의하면 예수도 결국 이러한 멜기세덱과 같이 상제님을 섬기는 제사장이었다. 예수가 하느님과 동등한 분이라는 것은 후대 기독교회의 삼위일체론자들에 의한 주장으로 이는 예수의 정체에 대한 명백한 왜곡이었다. 멜기세덱은 가톨릭교회가 권력을 쥐고 삼위일체설을 정통교리로 만들기 전, 기독교의 원래 뿌리와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천신天神신앙, 우주 주재자에 대한 상제신앙이 인류의 원형문화였다고 한다면, 멜기세덱은 유대교 이전의 인류 뿌리신앙의 대제사장일 것이다.

김현일
필자약력: 서울대학교 인문대 서양사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서양 근대기업사에 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서양의 제왕문화》, 《동학의 창도자 최수운》, 《유럽과 만난 동양유목민》 등의 저서가 있으며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프랑스문명사》, 《금과 화폐의 역사》 등의 번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