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칼럼 | 나를 덜어 냄으로써 하늘의 보탬을 받을 수 있다(김재홍)
[철학산책]
김재홍(충남대 철학과 교수) / STB상생방송 <소통의 인문학, 주역> 강사
약력: 충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 취득(중국철학 전공, 세부전공 : 주역과 정역). 충남대학교 역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역임, 목원대, 배재대, 청운대 외래교수 역임하였고, 현재 충남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 중이다. STB상생방송에서 <주역 계사상·하편> 강의를 완강하였고 현재 <소통의 인문학 주역>을 강의, 방송 중이다.
인간은 실존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내가 한 노력보다 더 많은 대가를 바라는 망심妄心을 가지고 있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작은 노력과 실천의 대가가 하늘에 많을 것임을 바란다. 그러나 하늘은 그러한 간구를 들어주지 않으니 잠시 시험에 들어 번민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덜어 냄과 보탬이라는 것은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가? 『주역』에서는 덜어 냄(손損)과 보탬(익益)에 대하여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산택손괘山澤損卦
①아래 것을 덜어서 위 것에 보태는 것을 상징한다: 하괘의 육삼六三(밑에서 3번째 효)을 떼 내어 상괘의 육사六四(밑에서 4번째), 육오六五(밑에서 5번째)의 음효에 보태 주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②비가 내리면 산 위에서 물이 아래로 흘러 연못을 채우니 겉으로는 손해같이 보이지만 결국 이익이 되는 것이다.
③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복福은 위로부터 내리는 것이요, 아래에서 치오르지 아니하나니(도전 9:11:2) 이 또한 이익이 되는 것이다.
하늘의 보탬이란? 나를 덜어 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개인적인 탐욕과 물욕 그리고 아집과 편견, 독선 속에 빠져 있는 나를 먼저 덜어 내라는 것이다. 나를 덜어 내지 못하고, 배를 비우지 못한다면 진리의 말씀이 들어갈 곳이 없다. 나를 넘어서지 않고, 선천을 뛰어넘지 않으면 후천의 세상이 열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덜어 냄(손損)으로써 진리의 자각이라는 보탬(익益)이 있다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 개인의 행복과 허물없는 삶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공자가어孔子家語』(「논어」에 없는 공자의 일화를 기록한 책)에서도 “공자께서 「주역」을 읽으시다가 손익괘에 이르자 탄식하며, 말씀하시되 덜어 내고자 하는 자는 더하고, 더하고자 하는 자는 잃음이라.”라고 하였다. 이것은 덜어 냄과 보탬의 근저에는 먼저 인간적인 욕구와 욕심을 덜어 냄으로서 비로소 하늘로부터 보탬이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실존적인 삶 속에서 사욕을 버리는 것이 천도에 대한 주체적 자각의 계기가 되어 하늘의 은총을 얻게 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탬의 전제인 덜어 냄의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가?
덜어 냄의 의미에 대하여 “덜어 냄 없고, 바르게 할 수 있으며, 갈 데가 있으면 이로우니라. 어디에 쓰겠는가. 제기 그릇 두 개만 가지고도 제사를 바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손損은 아래 것을 덜어 위를 더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재물을 하늘에 바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나를 버리고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덜어 냄은 반드시 천도에 대한 믿음과 결부되어 있다. 인욕을 덜어 내는 데는 천리에 대한 믿음과 순응하는 성심이 있어야 덜어 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 그 결과가 크게 길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천도에 의지할 바가 있고, 제물은 초라하지만 지극한 정성을 가지고 행하면 마침내 허물도 없게 되어 바르게 됨을 밝히고 있다.
이 구절에서 천명闡明하고 있는 ‘덜어 냄’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덜어 냄은 인간의 욕심을 덜어 내라는 것이다. ‘욕심을 덜어 내면 크게 길하고, 허물이 없고, 바르게 할 수 있으며, 갈 데가 있으면 이롭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 덜어 냄은 ‘허식’을 덜어 냄이다. 제사와 같이 정성으로 행해야 하는 예禮에 있어서는 비록 대그릇 둘만을 쓰듯이 간략하고 검소하지만 정성을 다하면 모든 사람이 믿어 승복함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욕심을 덜어 내면 길하다’는 것이나 제사가 간략하지만 그 정성을 다한다면 사람들이 믿고 승복한다는 것은 바로 천도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공자께서는 실천적인 덕목으로 “군자는 덜어 냄을 통해서 성냄은 물로 불 끄듯이 막고, 욕심은 산이 물 막듯이 하라.”라고 하였다(징분질욕懲忿窒慾: 화를 누르고 욕심을 막는다). 덜어 냄이란 자기 수양을 위한 것으로서 바로 곧 자신의 덕이 닦이는 계기가 됨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연못 속의 흙을 덜어 낸 만큼 못은 깊어지고, 덜어낸 흙을 보탠 만큼 산은 높아진다. 이 말은 천도에 대한 믿음과 그때의 마땅함에 맞게 행하되 인간적인 사욕과 생각을 덜어 내고 인도를 행함이 이롭고 허물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손괘에서는 먼저, 처음부터 덜어 버릴 것은 빨리 덜어 버리라고 한다. 수양론의 측면에서 말하면 ‘공부’란 자기 수양을 목표로 나를 버리는 것이 공부이다. 다시 말하면 덜어 내는 상황을 수양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진리를 담을 수 있고, 마음의 평안함을 누릴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하늘로부터 타고난 본성을 보존하는 데 저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야 성인聖人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다음으로 인격적으로 병든 부분을 다 덜어 버리라고 한다. 군자의 입장에서 인격적으로 병든 부분을 다 덜어 버리라는 말이다. 병든 부분을 다 떨어 버린다는 것을 ‘욕심을 덜어 냄’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격을 병들게 하는 주요인이 되는 소인지도 혹은 용심(심술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빨리 떨어 버리면 기쁨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군자유구사君子有九思(군자로서 항상 생각해야 하는 것 아홉 가지) - 『논어』 「계씨季氏」 편
시사명視思明: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고
청사총廳思總: 들을 때는 똑똑하게 들을 것을 생각하고
색사온色思溫: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모사공貌思恭: 태도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
언사충言思忠: 말을 할 때는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사사경事思敬: 일을 할 때는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의사문疑思問: 의심이 날 때는 질문할 것을 생각하고
분사난忿思難: 화가 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견득사의見得思義: 이득이 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의로운지를 생각한다
시사명視思明: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고
청사총廳思總: 들을 때는 똑똑하게 들을 것을 생각하고
색사온色思溫: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모사공貌思恭: 태도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
언사충言思忠: 말을 할 때는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사사경事思敬: 일을 할 때는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의사문疑思問: 의심이 날 때는 질문할 것을 생각하고
분사난忿思難: 화가 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견득사의見得思義: 이득이 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의로운지를 생각한다
『주역』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천인합일이다. 내 마음속에 하늘의 은총이 임하게 되어 천도를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덜어 냄’이란 단순한 수양적인 의미이거나 도덕적인 행위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천도에 입각한 수양론이며, 군자가 주체적으로 자각을 통해서 실천해야 할 원리임을 밝히고 있다. 즉 성인지도의 자각과 순종을 통한 하늘의 섭리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하늘의 뜻을 자각하여 밝힌 성인지도를 덜어 냄과 보탬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이를 실존적인 삶의 공간에서 실천해야 할 주요한 가치임을 밝히고 있다. 성인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나를 덜어 냄이란 도리어 하늘의 보살핌에 의한 보탬으로 이루어지며, 반면에 성인의 말씀을 의심하여 지키지 않고 사욕을 취함은 도리어 손해를 본다고 말하고 있다.
『주역』에서는 천도에 대한 신의를 가지고 항상 순응하며, 정도를 실천하는 자세가 항상 곧으며, 성실한 마음으로 행하면 하늘로부터 도움이 있어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음을 도처에서 천명하고 있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주역』 「계사」 편에서 “성인과 군자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건도乾道를 자각하게 되고,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그 향이 난초와 같다.”라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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