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산책 | 사후 세계 이야기

[기고]
얼마 전에 ‘신과 함께’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신관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하여 재미와 감동을 준 작품이죠. 국내뿐만 아니라 대만,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와 북미, 중남미, 유럽, 오세아니아 등 해외 각지에서 개봉을 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우리 원형문화의 사후 세계관에 대해 표현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요. 인간의 유한한 삶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이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의문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사후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들을 『도전』 말씀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죽음의 의미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1987년 타계 한 달 전에 천주교 한 신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영혼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세상의 부귀와 권세, 명예를 누렸던 그도 어쩌면 평생 가슴에 품고 있었을 질문을 죽기 전에 했던 겁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한국 최고의 임사 체험 연구가이며 한국죽음학회 회장인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는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는 유력한 증거를 다섯 가지로 알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세계 종교들이 모두 사후 세계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 

둘째는 영능력자(신비가)들이 전하는 사후 세계 이야기들이 증거이며 

셋째는 의사들도 사후 세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최면을 통해 사후 세계나 전생, 윤회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고

다섯째는 임사 체험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수백만 건이나 된다는 사실은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꼽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죽음과 삶은 둘이 아니기 때문에 진짜 제대로 된 삶을 살려면 죽음을 알아야 된다.”고 말합니다. 죽음과 삶은 둘이 아니라는 말에 저도 감동을 받았는데요. 삶과 죽음에 대해 상제님은 말씀하십니다.

生由於死(생유어사)하고 死由於生(사유어생)하니라.
삶은 죽음으로부터 말미암고 죽음은 삶으로부터 말미암느니라. 
사람의 죽음길이 먼 것이 아니라 문턱 밖이 곧 저승이니라. (도전 4:117)


이승에서의 죽음은 저승에서의 삶이 되고, 저승에서의 죽음은 이승에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지상에서 여러 생애를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한 번의 삶으로 모든 것을 마치는 게 아니라 여러 생애를 살아감으로써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영혼의 성숙을 위한 것입니다.

명부 세계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되죠. 죽음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죽어서 처음 가게 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을 명부冥府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상제님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3죽는 것도 때가 있나니 그 도수를 넘겨도 못쓰는 것이요, 너무 일러도 못쓰는 것이니라. 나의 명으로 명부에서 데려오라고 해야 명부사자가 데려오는 것이니 각기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서 끌고 오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서 모셔 오는 사람도 있느니라. 또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神明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 죽었다고 당장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니라. (도전 9:213)#}

명부는 지상 인간의 수명을 주관하고 죽은 자의 죄악과 공덕을 심판하는 천상의 법정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살다 보면 죄를 짓기도 하고 좋은 일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심판을 명부에서 받게 되는데요. 워낙 죄를 많이 지은 사람도 있고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에 따라 방망이로 목덜미를 쳐서 끌고 가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 모셔 가는 사람도 있다는 말씀이 놀랍습니다.

선령신의 인도


또한 사람이 죽게 되면 선령신의 인도, 지도가 있음을 상제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데요. 스웨덴보르그Swedenborg의 영계일기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영계에는 우리들을 여러모로 도와주고 안내해 주는 고급령이 있다고 합니다. 만일 이런 영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안내를 잘 받으면 되겠습니다. 이 고급령들은 흡사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수준에 맞게 공부 내용과 스케줄을 짜 줍니다. 이 고급령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니 우리는 그들의 지침을 잘 따르면 됩니다. (스웨덴보르그 영계일기 참고,『한국 사자의 서』103쪽)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라는 책을 쓴 임마누엘 스웨덴보르그는 1688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고, 20여 년 넘게 명부를 오간 사람입니다. 책을 통해 영혼 세계를 자세히 묘사하여 광대무변한 신명계의 실상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의 저서는 후에 괴테, 칸트, 헬렌 켈러, 에머슨 등 서양 최고의 작가, 철학자, 사회운동가 등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죽음은 혼줄이 끊어지는 것


오늘 저는 사후 세계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죽음은 육체와 영혼(유체幽體)을 연결하는 혼줄, 생명줄이 끊어지는 현상입니다. 탯줄을 끊으면서 사람이 태어나고 혼줄이 끊어지면 사람은 죽게 된다고 합니다. 상제님은 이러한 사후의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김송환金松煥이 사후死後의 일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하시니라. (도전 2:118)


사람이 죽어 천상에 올라가서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야 신명계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말에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혼은 하늘에 올라가고 백인 넋은 흩어진다는 표현입니다. 동양의 고전 「예기禮記」에서는 혼백을 “혼기귀우천魂氣歸于天(혼기는 하늘로 돌아가고), 형백귀우지形魄歸于地(육체는 땅으로 돌아간다)”고 적고 있습니다. 돌아가시다라고 표현을 하는 것은 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넋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민족은 죽음 이후의 세계관에 밝은 민족이라는 것을 이런 언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죽음과 관련된 칠성문화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전통, 이것이 한국 문화가 가진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가장 많이 잊혀 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돌아가셨다’는 표현은 우리 고유문화인 칠성문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람은 칠성의 기운을 받아서 태어나고 죽으면 다시 칠성으로 돌아간다고 믿었습니다. 눈 2개, 귀 2개, 콧구멍 2개, 입 1개로 칠성 기운을 받아 태어나고 죽으면 장례관에 있는 칠성판에 누워 장례를 치렀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 덕흥리 1호분에도 칠성이 새겨져 있고 고구려의 장천1호분에도 해와 달,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습니다.

예로부터 한 가정에서는 우리 어머님들이 정화수 신앙을 통해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님께 비나이다.”라는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칠성은 하나님이 계신 별자리로 하나님의 별칭이기도 합니다.

과학에서도 북두칠성의 기운이 내려온다는 것을 증명한 바 있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 러시아 과학자 125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2008년부터 5년간의 연구 끝에 북두칠성 근처에서 극한의 우주에너지선이 내려온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죽음에 대한 칠성문화로 49재가 있습니다. 인간이 천상 신도 세계로 돌아갈 때는 49일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망자亡者가 되어 저승에서 49일에 걸쳐 재판을 받게 되는데요. 그동안 이승에서는 망자를 위해 49일간의 정성과 함께 49재를 치러 주는 것입니다.

고인을 기리는 제사


고인을 기리는 문화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사입니다. 얼마 전 저는 멕시코 제사 문화를 상징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봤습니다. 자손이 영정 사진을 올려놓으면 이승의 자손 집으로 갈 수 있다는 내용을 보며 마치 우리나라 제사 때 신위, 위패를 모셔 놓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제사나 명절 차례를 지낼 때도 신위를 모십니다. ‘현고학생부군 신위神位’ 할 때의 신위는 ‘신명의 자리’라는 뜻입니다. 제사상을 차려도 신위를 모시지 않으면 신명이 오지 못한다는 것과 내용이 흡사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조상신이 음식을 드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상제님 말씀 중에는 “신神은 사람 먹는 데 따라서 흠향歆饗하느니라.”(도전 4:144)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증산 상제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천지에만 빌어도 안 되나니 먼저 조상에게 빌고 그 조상이 나에게 와서 빌어야 뜻을 이루느니라.”(도전 9:213)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자손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가 조상님이 아닌가 합니다. 천상에서 복을 내려 주시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조상님에 대한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우리 도생들은 언제고 수많은 조상들이 나를 보호해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과연 수많은 내 조상 성신들이 나를 감싸 주고 있고, 그 은총으로 내가 산다’라고 하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태상종도사님 도훈)

“도공으로 신도가 내릴 때 앞장서서 밀고 내려오는 신명은 각자의 조상신이다. 조상신이 맨 앞에 서서 나온다. 신명들은 내 자손, 내 집안을 먼저 찾는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인간농사에서 자식 농사, 자손 농사가 가장 막중하기 때문이다.” (종도사님 도훈)


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고 보호해 주는 존재, 그것이 바로 나의 조상님인 것입니다. 조상님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조상님을 잘 모시는 것은 우리 민족만의 고유문화이기도 합니다. 그 의미를 잘 새겨본다면 우리 생활에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소중한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윤회의 목적


마지막으로 영적 성숙을 이룰 수 있다는 윤회輪廻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윤회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인류는 우주의 봄, 여름에만 성장 발전하기 때문에 봄여름 시간의 끝자락인 하추교역기에는 윤회가 마감되고 매듭이 지어집니다. 어떤 목적으로 이 세상을 살든지 우주의 봄여름 동안 윤회하며 성장해 왔던 나의 영혼이 우주의 가을개벽기에 성숙된 인간, 성숙된 영혼으로 거듭나는 것이 우주의 봄여름 윤회의 최종 목적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삶과 죽음, 사후 세계에 대해서 상제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여러 예화들과 함께 소개해 드렸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 삶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인생이 될까요? 저는 인생으로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천지 부모와 하나 된 존재가 되는 것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와 관련된 상제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 이 시간을 마치겠습니다.

天地生人(천지생인)하여 用人(용인)하나니
不參於天地用人之時(불참어천지용인지시)면 何可曰人生乎(하가왈인생호)아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 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 (도전 2:23:3)